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353
351화 논의 중 (3)
[호, 혼돈님!]신입이 당황하며 소매를 팔랑거렸다.
[시간은 제가 말로 끌어 볼게요, 말로!]“뒤로 가라, 토끼야.”
[갑자기 왜 이러세요!]“난 원래 이랬어.”
태도의 끝이 허공을 향해 겨누어졌다. 공기가 흔들리고 바람이 태어나 눈발을 휩쓸어 춤춘다. 신입이 시키는 대로 폴짝 어린 혼돈의 뒤로 숨으면서 빼액거렸다.
[선공 못 하신다며요! 혼돈님!]“선공은 무슨. 인사야.”
이거 맞고 죽기는커녕 다칠 놈도 없다. 가볍게 내뱉곤 위에서 아래로, 청광이 서린 날이 움직였다. 기울어진 석양천의 태도. 그 이름 그대로 반으로 갈라진 공간이 비스듬히 쓰러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수 미터 정도였던 상처가 끝도 없이 길어지며 주위의 영역들을 빨아들이듯 삼켜간다.
바다가 기울어 쏟아지고 땅이 조각조각 흩어졌다. 빛으로 가득하던 영역은 순식간에 어둠에 파묻혔다. 정교하게 만들어 낸 공간들이 도미노처럼 연달아 무너져 가는 광경에 신입이 속으로 비명을 지르며 발을 동동 굴렀다.
[판 엎기만 하신댔으면서! 아예 부수면 어째요!]“말이 많다.”
[부수긴 쉬워도 만들긴 얼마나 힘든데!]“쉽다고?”
신입이 울상을 지으면서 움찔 고개를 저었다.
[아, 아뇨, 쉬워 보여서요…….]“나한테는 쉽지.”
어린 혼돈은 그가 말하는 소위 잡기들에는 무지했다. 하지만 그것을 부수는 솜씨만큼은 그 어떤 초월자보다도 탁월했다. 이유야 간단했다. 많이 부숴 보았으니까. 공들여 만들어 내고 지키려는 동급의 존재들을 수없이 상대하며 몸으로, 본능적으로 깨닫고 터득했다.
누구보다도 무지하면서도 동시에 힘의 본질 자체를 누구보다도 정확히 느끼고 있었다.
그사이에도 뒤틀린 틈은 초월자들의 영역을 침범하고 있었다. 몇몇이 화를 내며 파괴자를 노려보았다. 몇몇은 시큰둥했으며 또 몇몇은 조용히 자리를 피했다. 그리고 몇몇은 어린 혼돈이 만들어 낸 균열을 막기 위해 움직였다.
결국 틈이 사라지고 유일하게 온전한 신입의 공간, 설원을 향해 무수한 시선들이 모여들었다. 어린 혼돈이 한쪽 손을 들어 가볍게 흔들었다.
“안녕.”
숲을 잃은 바위가 누구냐고 물었다. 반쯤 남은 꽃밭 속의 쥐가 사납게 발을 굴렀다.
“환영하는 분위기는 아니로군.”
[당연한 거 아니에요? 다 망가뜨려 놓으셨는데!]“아는 얼굴이 거의 없어. 초승달도 불참했나. 우물돌은, 참 내가 죽였지. 옛날에 내가 알던 놈들 반은 잡아 죽였고 나머지 반은 시스템에 동화되고 몇 안 남은 녀석들도 볼 수가 없으니 세월이 무정해.”
혀를 쯧쯧 차며 혼돈이 빙그레 웃음 지었다.
“자기소개나 해보렴, 젊은것들아.”
눈앞에 모인 초월자들을 내려다보는 그의 어투에 노기 어린 으르렁거림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설원이 크게 울리며 나무에 쌓여 있던 눈이 우수수 떨어진다. 시선들 중 어린 혼돈에 대해 알고 있는 상당수가 조용히 사라졌다. 화를 내는 일부와 구경꾼의 자세를 취한 일부들 사이를 팔랑팔랑 레이스 같은 지느러미의 거대한 고래가 가로질렀다.
[반수 이상이 자리를 떠났으니 파장합니다. 어린 혼돈은 다음 협상 테이블에 참석이 불가능해요. 자리 마련을 위한 시스템 조율에 시스템 기준 317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됩니다.]공지와 함께 막이 내렸다. 신입은 도망치듯 어린 혼돈을 데리고 임시로 만든 공간으로 몸을 피했다. 텅 빈 공간에 들어서자 이내 빛이 내리쬐며 부드러운 잔디가 자라났다. 테이블에 의자, 테이블을 빙 두르는 시냇물. 하늘색 버드나무를 만들어 내고 찻잔에 차를 따랐다. 바람이 기분 좋게 살랑거렸다.
어린 혼돈이 의자에 앉으며 찻잔을 들었다.
“편하긴 편해.”
“혼돈님이랑 같이 가는 게 아니었는데!”
“시스템 기준 317시간이면 망아지들 세계에선 며칠쯤 되지?”
“그때그때 달라요. 그래서 시스템 기준시를 쓰는 거고요. 짧으면 일주일에서 길면 한 달인데 지금 시스템 연결을 위한 간섭 중이니 일주일 안팎일 가능성이 높아요.”
신입이 툴툴거리며 말했다. 인상을 찡그릴 때마다 두 귀도 덩달아 쫑긋거렸다.
“시간은 벌었지만, 그 사이에 허니가 자기 나라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채터박스는 정 안 되면 강림까지 염두에 두고 있는 모양이에요. 신탁만 되어도 곤란한데. 허니 세상은 신적 존재에 대한 믿음이 적은 편이지만 없는 건 아니니까요.”
“뭔 소린지 모르겠다.”
“세계에 따라선 신이 내리는 보상으로 꾸미기도 하거든요. 용사 양성 계획 같은 거 말이에요. 다양한 신을 믿고 있고 그 영향력이 강하면 신으로서 나서는 게 거부감도 적고 시스템 운영 효율도 좋고요. 보통 동시다발적으로 세상을 구해야 한다는 신탁을 내리면서 시작하는데…….”
종알종알 설명을 늘어놓던 신입이 돌연 입을 다물었다. 긴장한 듯 코끝을 찡그린다.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어린 혼돈이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신입이 눈을 굴려 혼돈을 바라보았다.
“…어쩔까요?”
“누군데.”
“채터박스요.”
똑똑똑. 노크 소리가 재차 들려왔다. 이어 쾅쾅,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땅이 흔들렸다. 어린 혼돈이 손을 뻗어 넘어지려는 찻주전자를 붙잡았다.
“열어 줘.”
“들어오세요!”
신입의 허락이 떨어지고 버드나무 아래로 검은 상복을 입은 남자가 나타났다. 수 미터쯤 되는 새카만 베일을 뒤집어써, 입술 외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유일하게 드러난 입술이 천천히 움직였다.
“당신이 왜 굳이 방해를 하는지 모르겠군요.”
“그러는 네 녀석은 왜 굳이 어린애를 건드리려 드는 거야. 초월자면 초월자답게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내버려 둬.”
혼돈이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붉은 입술이 반달 같은 미소를 머금었다.
“사랑하니까요. 나는 근원에도 세계에도 관심 없습니다. 내 사랑을 추모하고 싶을 뿐이지요.”
어린 혼돈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채터박스를 바라보았다. 그의 두 눈이 약간 찡그려졌다.
“어린애 잡아다 죽여 가며?”
“단순히 죽이진 않을 겁니다. 무엇보다 양육자에게 관심을 가지는 이들이 많으니까요. 그러니 기억을 확인하고 정말로 양육자가 내 사랑을 살해했다면, 그 손으로 직접 양육자의 소중한 이들의 숨을 끊어 놓게 만들 겁니다. 그 후에는 협조의 대가를 바라는 이들에게 넘겨주겠지요.”
온갖 희귀한 것들을 수집하고 관찰하며 호기심 속에서 살아가던 무해의 왕이 목숨을 걸 정도로 탐냈다는 것만으로도, 양육자에게 관심을 비추는 초월자들이 더러 생겨났다. 어린 혼돈이 다시 찻잔을 들어올렸다.
“말이 통하지도 않을 판인데 왜 왔어.”
“당신은 관계가 없지 않습니까.”
“있다면 어쩔 거냐.”
“부딪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가장 오래된 검이 부러지지 않기를.”
경고조의 말을 남기고 채터박스의 모습이 사라졌다. 눈치를 살피며 굳어있던 신입이 귀를 바싹 세웠다.
“허니 어째요, 허니!”
“어쩌긴, 이놈아. 이렇게 된 거 채터박스가 개입한 게 차라리 잘된 걸지도 모르겠어. 두 무리가 일단 협상을 끝내면 함부로 침입해 오진 못할 테니.”
아무런 제약이 없다면 몇몇이 작당하고 억지로 침입해 양육자를 잡으려 둘 수도 있었다. 무해의 왕과 같은 탐구심 넘쳐나는 초월자들은 여럿 있었으니. 혼돈의 말에 신입이 어깨를, 귀를 축 늘어뜨렸다.
“왜 이렇게 된 걸까요. 허니의 세상은 쉽게 근원의 힘을 막아 낼 수 있을 줄 알았거든요. 태생 S급도 여럿이고, 체인과 허니의 동생은 특이하게도 세상을 지키려고 노력했으니까요.”
태생 S급이라 해도 그 특성에 따라 성격이 다양했지만 진지하게 세상을 구하려고 하는 자들은 드물었다. 하지만 무려 둘이나 있었기에 처음에는 간섭이 크게 필요 없는 세계로 분류되었었다.
“그런데 허니 동생이 허니를 지키기 위해 죽었고… 그거부터가 말이 안 된다고요! 게다가 허니가 F급이라 소원석이 나왔죠. 시간이 되돌려지고, 허니는 처음 보는 칭호를 가지게 되었고. 초월자가 둘이나 죽었어요. 세상에.”
흔한 세계들 중 하나에서 전대미문의 사건이 줄줄이 터졌다.
“초승달과 하얀새는.”
“네?”
“설마 정원사까지 연관되어 있는 건 아니겠지.”
어린 혼돈이 찻잔을 비웠다. 애초에 자신의 검을 빌려달라는 부탁부터가 평범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는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으며 어떻게 끝이 날지 그로서도 까마득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어린것이 팔자가 뭐 이리 사나워. 던전에 간섭은 언제쯤 가능해지냐.”
“허니 나라 밖이라면 곧이요. 근데 채터박스가 알게 되면 가만히 있지 않을걸요. 아직 협상 중인데 선수 쳤다고요.”
“난 쫓겨났잖아.”
그러니 무슨 상관이냐는 말에 신입이 불안해하면서도 준비해 드리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 꺄아우!
블루의 발끝이 수면을 스쳤다. 물이 갈라지며 날개를 펼치듯 높게 솟아오른다. 던전에 들어갈 때가 아니고선 일정 거리에만 갇혀 있었던 탓인가, 평소보다 멀리 나온 산책에 신이 난 모양이었다. 너라도 즐거우니 다행이다, 블루야. 그래도 조금만 덜 오르내리자. 멀미 나겠다.
“안 돼, 돌고래 쫓아가지 마. 그거 몬스터 아니다.”
인간과 가축은 건드리면 안 된다고 가르쳐 줬는데 돌고래는 처음 봐서인가 잡으려고 들었다. 블루를 달래어 다시 고도를 높였다.
“박하율 넌 왜 아는 게 없어.”
서해를 가로지르는 내내 이것저것 슬쩍 캐내려 해봤지만 수확이 별로 없었다. 중요한 정보를 교묘하게 잘 감추는 건지, 진짜 모르는 건지 헷갈릴 정도였다. 박하율이 넉살 좋게 헤헤 웃었다.
“말 못 한다니까요, 형.”
“그런 것치고도 영 어리바리하잖아. 일단 중국엔 위장 잠입한 거다, 이건 맞지?”
“이야기하자면 길어요. 위장이 아니었는데 위장이 되었다고 해야 하나? 각성은 한국에서 했거든요.”
“한국에서?”
“네. 형 만나려고 하다가요. 자꾸 귀찮게 군다고 끌려가서 맞은 적도 있어요!”
이상행동 보인다고 기사까지 날 정도였으니… 열 받은 상급 헌터가 손을 댄 건가.
“아직 비각성자였으면 신고하지. 각성자가 비각성자 건드리는 거 중범죄야.”
“에이, 형. 포션 뿌리면 증거 싹 사라지잖아요. 암말 못 해요, 보통은.”
“…그건 그렇다만.”
나도 당해 본 일이다. 게다가 상급 헌터는 중하급 포션 정도야 쉽게 쓸 수 있으니 깽값 대신 포션값이란 말도 나왔었다.
“몬스터가 아니라 사육소랑 빌딩 지키는 헌터들한테 맞다가 각성했는데, 갑자기 제 얼굴 보고는 좀 미안해졌다며 놓아주더라고요. 그땐 아직 스킬 두 개밖에 없었지만, 효과는 약간 있었어요.”
최적화 각성은 아니었구나. 그래도 최적화 스킬을 얻긴 한 모양이었다. 각성 조건 맞추기 힘들 거라 생각했는데 몬스터가 아니라 사람 상대로 위협을 느낀 덕에 제대로 각성한 건가.
“각성은 했는데 등급은 낮으니까 여전히 형 만나는 건 힘들 거잖아요. 그래도 헌터 등록은 할까 고민하는데 어쩌다 이상한 놈들한테 걸려서 중국에 팔려갔어요~”
박하율이 상큼하게 말했다. 자랑이다.
“야, 넌 죽을 뻔하고도 또 그랬냐?”
“원래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거랬어요.”
남에게 함부로 이런 말 하면 안 되긴 하지만, 솔직히 박하율 얘는 머릿속이 좀 꽃밭 같다. 스킬 걸려서 호의적인 지금도 그런 생각이 들 정도이니 실제로는 더 심각한 게 아닐까.
“너는 뭐랄까, 인생 편하게 살아왔을 거 같다.”
“당연히 편했죠. 잘생겼잖아요.”
“어, 그래.”
“형과 만난 그날부터 최초의 인생 역경이 시작되었죠.”
“미안하다고 해야 하냐. 일단은 구해 줬다만.”
“당연히 아니죠! 요즘이 더 재밌긴 해요.”
역시 애가 좀 문제가 있는 것 같았다. 아직 어린 나이긴 한데 그래도 너무 현실을 제대로 인식 못 하는 듯도 하고.
“야, 위험한 일에는 얼른 발 빼고 얼굴 팔아서 편하게 사는 게 최고야. 가족은? 너 걱정 안 해?”
“해외에 있어요. 누님이 잘 보호해 주신대요.”
대체 그놈의 누님이 누구냐. 목적이 뭐야. 이런 애를 데리고 뭘 하려는 거지. 하지만 박하율은 자신이 맡은 일에 대해서만큼은 입을 꾹 다물었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중국에 도착할 텐데.
“하율아.”
상체를 비틀어 박하율을 돌아보며 말했다.
“네가 날 그렇게나 걱정하며 만나려고 애썼을 줄은 까맣게 몰랐어.”
양육자 키워드가 적용된 사람들에게는 박하율의 정신계 스킬이 제대로 통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박하율에게 키워드를 적용시킨다면 어떻게 될까. 사람 상대로는 신중히 쓸 생각이었지만 편하게 산 녀석이니 별문제 없을 터였다. 기껏해야 또 엄마 소리 정도나 듣겠지.
“뭘요, 형도 갇혀 있었잖아요.”
아니라니까 진짜. 스킬에 걸려있음에도 자꾸 욱하게 만드는 것도 재주다.
“그동안 연락 못 해준 것도 미안해. 그런데도 나에 대해서 비밀을 지켜 준 건 정말 고맙고.”
“…계속 입 다물긴 했거든요. 진짜 쪼끔 말했어요.”
“그래, 대놓고 방송에서 입 안 턴 게 어디냐. 그러니까, 하율아.”
지금 이 녀석이라면 대충 말해도 찰떡같이 키워드 적용이 될 것이다. 눈치도 별로 없어 보이니 부담 없이.
“비록 내가 날 납치… 라기엔 내가 다 했지만, 아무튼 이런 짓을 했어도 일단은 사랑한다. 네 스킬 때문일 수도 있지만 뭐, 근본이 나쁜 녀석이라곤 생각 안 해.”
자, 그럼 키워드가─
[대상이 다른 유사한 스킬의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키워드 적용이 불가능합니다.]…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