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355
353화 차오후 특별지구 (2)
문을 연 남자가 벽에 붙은 비상 버튼을 누르곤 순식간에 내 멱살을 움켜잡았다.
“어떻게 한 거냐!”
“뭘 어떻게 해? 내가? 무슨 수로?”
왜 지랄이냐는 시선을 던져주며 말을 이었다.
“스탯 F급이 뭘 할 수 있겠어. 나도 어떻게 된 건지 몰라. 제대로 못 봤어. 내가 쟤들 둘을 한번에, 소리 없이 처리할 수 있는 능력자였으면 여기 끌려오지도 않았다.”
비상 알람을 듣고 몇이 더 몰려들었다. 쓰러진 헌터들을 살피는 놈들을 향해 더더욱 억울해하며 투덜거렸다.
“나도 내가 쓰러뜨린 거면 좋겠네! 진짜! 그랬음 멱살 잡은 놈 손모가지 부러뜨리고 비행기 옆구리 뚫어 탈출했지 이렇게 덜렁덜렁 들려 있겠냐. 머릿속에 든 게 초콜릿 코팅한 호두가 아니라면 생각이란 걸 좀 해봐라.”
진짜 호두면 맛있기라도 하지. 내 빈정거림에 멱살 잡은 놈이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나를 내던지듯 놓아주었다. 쫀 척 침대 구석으로 가 앉았다. 베개를 몸으로 살짝 깔면서.
쓰러진 두 헌터가 들려나가고 새로운 감시자가 빈자리를 차지했다. 기절한 두 놈이 깨어난다 하더라도 쉽게 사실을 밝히진 못할 것이었다. 나한테 뇌물 받아먹으려 했다는 걸 자백하는 짓이니까. 내가 탈출한 것도 아니니 그냥 입 다물고 조합법이나 챙기는 편이 낫지.
정확한 시간은 알 수 없었지만 대략 두 시간 남짓 후 비행기가 착륙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휴대폰은 걸리지 않았으니 위치추적도 계속해서 이루어지고 있을 것이다. 비행기의 흔들림을 느끼며 최대한 자연스럽게 베개를 품에 끌어안았다.
“…저기 말입니다, 여기가 어딘지 물어봐도 대답 안 해주겠죠?”
살짝 겁먹었지만 아닌 척하는 티를 내며 감시자들을 힐끔거렸다. 침묵 속에서 베개를 끌어안은 팔에 좀 더 힘을 주었다. 이대로 마지막 목적지까지 갈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덜컹거림과 함께 비행기가 활주로에 내려서고 얼마 지나지 않아 완전히 멈추었다. 중국 헌터들이 나를 일으켜 세워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다행히 베개를 빼앗지는 않았다.
“형!”
박하율이 반질반질한 얼굴로 나를 반겼다.
“그 베개는 뭐예요?”
“새로 사귄 친구.”
“네?”
“저놈들이나 얘나 입도 벙긋 안 하는 건 마찬가진데 얜 폭신하기라도 하잖냐. 그러니 얘를 친구 삼는 게 훨씬 낫지.”
무해하고 부드럽고. 보면 볼수록 진국이다. 앞뒤로 감시 받아가며 비행기에서 내려서는 바로 그때였다.
콰앙!
폭음과 함께 공항 건물의 귀퉁이가 박살 났다. 동시에 기다렸다는 듯이 군복 차림의 헌터들이 우르르 공항 건물로 달려 나간다. 이런 습격이 잦았던 듯 익숙한 움직임이다.
솟아오른 먼지구름을 헤치며 누군가 튀어나왔다.
“…뭐야 저게.”
하얀 옷자락과 긴 검은 머리카락이 흔들린다. 공중으로 높게 뛰어오른 백의의 남자가 멋들어진 자세로 검을 뽑아들었다. 검이 지잉 울리며 군인들을 향해 휘둘러졌다. 군인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대열을 만들었다. 맨 앞에 선 군인들이 방어 스킬을 사용하는 것이 보였다.
쿵! 겹겹이 펼쳐진 방어막 위로 검이 내려쳐지고, 또다시 커다란 폭음이 울려 퍼졌다. 무슨 일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옷이 왜 저 꼴이야.”
하얀 옷이, 그 뭐냐. 무협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바로 그 차림이었다. 당장에라도 호기롭게 문파와 이름을 밝힐 것 같…….
“나는 무림맹 별동대 대장 첨성의 사목월이오!”
…S급 헌터로 추정되는 백의의 남자가 크게 소리쳤다. 나를 향해. 시시오 뺨치네. 내가 다 쪽팔린다. 보지 마, 저리 가. 엮이기 싫어.
사목월이라는 놈이 자신을 향해 찔러드는 창을 발끝으로 가볍게 디디며 다시 허공으로 몸을 솟구쳤다. 뒤따라오는 공격 스킬들이 검신에 가로막히며 폭죽처럼 터져 나갔다.
“공자가 바로 해동화룡의 형인 마수사 한유진인가!”
그런 사람 모릅니다. 해동화룡은 또 뭐야. 중세시대에서 넘어오셨나. 난 미래에서 왔다.
“…하율아, 저거 대체 뭐냐.”
“군부에 반하는 무림인이에요.”
박하율이 태연하게 말했다. 뭔 소리야. 지금 21세기 아냐?
“…무림인이 왜 여기서 튀어나오는데.”
“민간 각성자 단체를 자칭 무림맹이라고 하거든요. 근데 중국에서 각성자는 무조건 국가 소속이어야 해서 투쟁 중이죠.”
그렇… 구나. 그런데 왜… 어째서…….
“왜 굳이… 저러는 걸까.”
“이미지 관리요.”
박하율이 설명해 주었다.
“현대식 무장단체보다 무림인이라고 하며 나서면 일반 사람들이 덜 위협적으로 느낀대요. 무림인이면 뭐 관부와 싸울 수도 있고, 라나요. 친근감도 있고요.”
말을 듣고 나니 제법 그럴듯해 보였다. 새롭게 긍정적인 단체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것보다 기존에 존재하는 단체를 가지고 오는 게 훨씬 쉽고 빠르다. 거기에 신체 능력이 뛰어난 각성자라면 무협영화의 무공고수처럼 느껴지겠지.
미국에서도 슈퍼히어로로 상급 각성자 이미지메이킹을 했는데, 그것과 비슷한 방식인 모양이었다.
“한 공자아아아!!”
쩌렁쩌렁한 외침이 공항을 울렸다. 저게 좋은 방법이라는 건 인정하지만 내가 엮이는 건 역시 싫어. 게다가 여기서 중국 내부 문제와 얽히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자리를 피해야 하지 않겠냐고 박하율에게 말하는데 사목월의 전신을 검은빛이 휘감았다. 그리고는.
쿵! 쿵! 쿵!
“크억!”
“막아!”
사목월이 요란한 발소리를 내며 그대로 내 쪽을 향해 돌진해 오기 시작했다. 군인들이 그를 막으려 했지만, 코뿔소에 치인 쥐새끼처럼 우수수 튕겨 나간다. 무기는 물론 각종 공격 스킬도 사목월의 몸에 상처를 내지 못했다. 강력한 방어 스킬인 모양이었다.
막아서는 군부대를 뚫고서 사목월이 나와 빠르게 가까워져 갔다. 설마 여기서 또 납치당하는 건 아니겠지. 살짝 긴장되는 그때, 누군가가 사목월 앞을 가로막고 섰다. 군화로 감싸인 발이 바닥을 강하게 딛고 몸을 크게 틀며 한쪽 다리를 휘두른다. 전신의 힘을 실은 발차기가 돌격해 오는 사목월을 향했다.
쾅!
사목월의 손바닥과 군홧발이 맞부딪쳤다. 공기가 크게 진동하고 바닥에 금이 쩌저적 간다. 사목월이 자신을 막아선 사람을 향해 씨익 웃었다.
“오랜만이오, 관 낭자.”
“꼬리에 불붙은 멧돼지 새끼가.”
냉랭한 목소리와 함께 새로 나타난 S급 헌터가 한쪽 발을 붙잡힌 그대로 몸을 허공에 띄우며 킥을 날렸다. 또다시 요란한 소리가 울리고 두 사람의 공방이 거세어졌다. F급의 스탯으로는 눈으로조차 움직임을 따라가기 불가능했다.
“그새 냄새를 맡은 건가.”
갑자기 내 옆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흠칫 고개를 돌리자 날카로운 인상의 남자가 서 있었다. 그가 눈동자를 움직여 나를 내려다보았다. 입꼬리를 올려 미소 짓는 얼굴이 잘생기긴 했지만 차갑기 그지없었다.
언뜻 봐도 그 과다. 중급 이하 각성자는 인간 취급 안 하는 잘나신 S급.
“어, 초화운 상장님.”
박하율이 그를 보고 아는 척했다. 상장이 뭔진 모르겠지만 높은 자리겠지. 내 주위 중국 헌터들이 바싹 얼어붙은 것이 보였다. 박하율도 답지 않게 긴장한 기색이다. 건드리면 위험한 놈인가 보다. 초화운을 살짝 올려다보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그래도 S급 헌터면 나한테 기승수 맡기고 싶을 테니까 막 대하진 않겠지. 그사이 비행기 한 대가 박살 났다. 여기까지 파편이 마구 날아들고 내 눈앞에서도 퍽, 소리와 함께 큼직한 비행기 파편이 터져 나갔다. 옆에 선 S급님께서 막아 주신 건가. 움직임을 보지도 못했다.
“사목월 한 놈뿐인가? 다른 일당들은.”
“사목월 외의 별동대원은 보이지 않습니다.”
“도로 주위에 잠복하고 있을지도 모르니 수색해라.”
초화운이 명령을 내렸다. 여기서만 S급 헌터 세 명이라. 공항 상태를 보니 그리 큰 도시도 아닌 듯한데.
현재 중국에 S급 헌터가 몇 명이나 있을까. 공식적으로는 아홉 명이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많을 터였다. 단순히 인구수만 해도 우리나라의 열 배가 넘으니까. 한국이 S급 헌터 수가 많은 걸 감안하더라도 최소 이삼십은 되지 싶었다.
‘…조금 걱정되네.’
초월자 상대 아니면 괜찮아, 라고 했지만 숫자 앞에 장사 없단 말도 있잖은가. 애들한테 조심하라고 전해주고 싶은데.
지금 내 능력으론 전투의 승패를 짐작할 수 없었지만 사목월은 내게 접근하기는커녕 되레 조금씩 멀어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초화운까지 합세하는 걸 경계하는 듯했다. 두 사람의 싸움을 살펴보던 초화운이 앞서 걸음을 옮겼다. 박하율과 나도 그 뒤를 따라갔다.
“이제 어디로 가는 건데?”
“차오 호라고 커다란 호수 있어요.”
박하율이 대답했다.
“차오후 특별지구라고 민간인은 출입 금지된 곳이죠.”
저 앞에서 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공항을 힐끗 돌아보았다. 비행기 한 대에 더해 두 대째까지 박살 났지만 공항 시설 자체에는 큰 타격이 없어 보였다. 바닥에 금 좀 가고 말았다.
중국에는 아직 기승수가 없고 기승수가 있다 해도 웬만해선 비행기가 더 빠르다. 그러니까.
조용히 폭발 버튼을 눌렀다.
콰과과광-!!
“악, 형!”
“뭐야!”
무시무시한 폭음과 함께 내가 타고 온 비행기와 그 일대가 완전히 날아갔다. 내리기 직전 침대 밑에 슬쩍 넣어 놓은 폭탄이다. 하늘 높이 치솟은 파편들이 유성우처럼 쏟아져 내린다. 활주로는 물론 공항 건물까지 잔해들의 세례를 받고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와장창, 유리창 깨지는 소리가 연달아 들려왔다.
“우, 우리 있던 자리예요!”
박하율이 기겁하며 소리쳤다. 나도 놀라 말문이 막힌다는 표정으로 끄덕거렸다.
“무섭네… 정말…….”
와, 소름 돋아. 이 동네 너무 살벌하다. 초화운의 얼굴도 굳어졌다. 저래서야 한동안 이 공항은 사용하기 힘들 것이다.
“저 자리에 있던 자들과 비행기에 접근했던 자들을 전부 조사해.”
그럼 댁도 포함되는데. 초화운은 앞의 차를 타고 나는 뒤쪽의 짙게 선팅된 차에 태워졌다. 이번에는 박하율도 같이 탔다. 이내 차가 출발했다.
“민간 헌터들과 군부 헌터들의 갈등이 심한가 봐.”
“정부 소속이 아니면 던전 공략도 못 하니까요. 중국은 워낙 넓어서 미등록 던전이 널려 있지만 걸리면 끝이죠. 심지어 던브 때도 미등록 헌터는 나서면 안 돼요.”
그건 심했네. 최소한 던전 터졌을 때는 봐줘야지. 중국에 대해서는 회귀 전에도 워낙 밝혀진 게 없다 보니 나도 아는 게 별로 없었다. 중국 출신 헌터 중에 가목월이란 이름을 들어 보지도 못했고. …죽었나? 초화운 또한 기억나지 않았다.
‘헌터 간의 분쟁이 심해져 S급 헌터까지 여럿 죽어 버린 걸까.’
우리끼리 싸울 때가 아닌데.
“혹시 중국에 S급 헌터가 몇이나 되는지 아냐?”
“저도 정확히는 몰라요. 군부 소속은 그것도 극비라, 열 명은 확실히 넘을걸요. 무림맹도 다섯 명 이상이라고 했고요. 마피아 쪽도 두엇 있는 모양이고, 무소속도 있을 거예요.”
아무튼 많아요, 하고 박하율이 대답했다.
“많아도 던전 관리는 제대로…….”
박하율이 맞은편에 앉은 헌터의 눈총을 받고 입을 다물었다. 대립하는 세력이 있으니 제대로 안 되는 게 당연하겠지. 중국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문제기도 했다. 주력이 던전 공략하고 있으면 밖에 남은 본진이 털릴 가능성이 있다. 이 사실 때문에 단순히 던전만 공략하는 것 이상의 전력이 필요했다.
사실상 잉여인력이었다. 서로서로 해치지 말자, 합의가 잘되면 남아도는 헌터 없이 다들 동시에 던전에 들어갈 수 있을 텐데. 뭐, 이게 가능했으면 군대도 없어졌겠지만. 서로 침범하지 맙시다, 라는 합의와 그에 대한 믿음이 없으니까 군비 펑펑 들이는 거 아니겠냐.
한참을 달리던 차가 멈춰 섰다. 차에서 내려서자 하늘에는 어느새 노을이 져 있었다. 눈앞에 펼쳐진 드넓은 호수에 불그스름한 물이 들었다. 이게 차오 호인가. 호수 한번 무지하게 크네. 모르고 봤으면 바다인가 싶을 정도였다.
“여긴 배가 없어요. 예전엔 있었는데 싹 없앴대요.”
호숫가에 쳐진 난간으로 다가가는데 박하율이 말했다. 굳이 배가 없다고 말하는 거면, 호수 중앙에 시설이 있는 건가. 수면을 바라보다가 안고 있던 베개를 던졌다.
“형?”
“그냥 짜증 나서.”
베개 솜이 이내 물을 먹고 천천히 가라앉았다. 여기서 휴대폰 신호가 끊기면 목적지에 도착했다고 짐작하겠지.
준비된 헬기에 올라탔다. 공중에서 봐도 호수는 정말 컸다. 얼마 가지 않아 철조망이 높게 둘러쳐진 섬이 나타났다. 나 혼자서 도망치는 건 힘들 듯했다.
‘내 스탯으로 헤엄쳐서 나가는 건 불가능하겠고.’
배도 없고 헬기 조종도 못한다. 은신 스킬을 쓴다 해도 헬기 뜨기 전 수색을 철저히 하겠지. 불행 중 다행이라면 저렇게 외부 침입과 탈출이 어려운 환경이라면 나에 대한 감시도 느슨해질 거라는 사실이었다.
일단 내부에서 정보 털어먹으면서 바깥의 도움을 기다리는 길로 갈까.
“피곤해 죽겠는데 오늘은 일찍 자면 안 되냐.”
헬기에서 내려서며 박하율에게 부탁했다. 박하율이 말은 해볼게요, 라고 대답하기 무섭게 거친 손길들이 내 양쪽 팔을 붙잡았다. 그리고 초화운의 명령이 이어졌다.
“몸수색 다시 하고 위치추적기 달아.”
내 팔자야. 박하율이 살살해 주세요! 하고 소리쳤다. 그대로 끌려가서 또 옷이 벗겨지고 발목에 추적기도 달렸다. 몸 안에 안 심고 밖에 달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해야 하나.
연달아 먼 거리를 이동하고 끌려다니다 보니 말만이 아니라 진짜 지쳤다. 저녁이고 뭐고 이만 쉬게 해줬으면 싶은데, 장식 하나 없이 건조한 복도를 따라 안내된 곳은 침실이 아니었다. 취조실쯤 되는 분위기의 작은 방 테이블에 중년 남자가 앉아 있었다.
“…어디서 본 것 같은 얼굴인데.”
중년 남자가 나를 보며 웃었다.
“오랜만이야, 한유진 소장.”
억양과 입 모양이 한국이었다. 한국인인가, 저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