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356
354화 차오후 특별지구 (3)
중국 헌터가 내 두 팔을 등 뒤로 돌려 수갑을 채웠다. 갑자기 이러는 걸 보니 저 중년 남자는 비각성자인 모양이었다.
“이역만리 타향에서 같은 나라 사람을 만나니 참으로 반갑습니다~ 라고 해야겠지만, 누구시더라.”
테이블 쪽으로 다가가자 중년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입꼬리를 비틀었다.
“한때 헌터 협회에 몸담고 있었지. 한 소장 덕분에─”
“아! 기억났다! 완용 씨구나. 성은 이 씨, 맞죠? 이야, 어쩐지 중국 애들이 내 정보 빠삭하다 싶더니 완용 씨가 이름값 하셔서 그랬네.”
독 저항은 병원 쪽에도 아는 사람 많으니 그렇다 쳐도, 떡잎 스킬은 극비였는데 말이야. 각성센터 협상하느라 협회 쪽에만 알렸었다.
내 말에 완용이가 인상을 확 찌푸리더니 대뜸 내 멱살을 움켜잡았다.
“이 새끼가 입만 살아선!”
“아무렴 댁보다 더 살았을까. 얼마나 떠벌렸어요? 네? 얼굴이 반지르르한 게 대접 잘 받으셨나 보다.”
“나는 헌터 협회 인사부장이었던─!”
“네, 완용 씨. 안다니까 그러네.”
얼굴 구겨지는 것 봐라, 이러다 한 대 치겠다.
“나라 팔아 자리 잡으셨으면 얌전히 잘 먹고 잘사시지 전 왜 만나려고 한 겁니까? 뭐뭐 팔아먹었어요? 인사부면 협회 헌터들 능력치는 다 넘겼겠네. 송 실장님이 협회 소속이 아닌 게 다행인가. 헌협에서 그냥 쫓아냈을 린 없고, 입 다물라는 계약서 썼을 텐데 해주받으셨나 봐.”
혹시 몰라 저주 저항을 잠시 껐다. 완용 씨가 갑자기 홱 돌아서 날 끌어안기라도 하면 저주가 풀릴 테니까. 내 말에 완용 씨가 욕을 내뱉었다. 계약을 어긴 대가로 받은 저주 못 푼 건가. 사지는 멀쩡해 보이는데 무슨 저주지.
“내가, 협회 초창기부터 얼마나 노력해서 자리를 잡았는데!”
“들었어요. 초기 멤버들 쫓아내는 데 한몫 단단히 하셨다면서? 원래 쫓아냈으면 쫓겨나기도 하는 거고, 세상은 빙글빙글 도는 거잖습니까. 지은 대로 잘 받으셨네.”
단순히 분풀이하려고 날 만난 건가. 그건 아닐 텐데. 협회에서 쫓겨난 인간들 중 감옥살이 면한 놈들이 얌전히 살 거란 생각은 안 했지만 이렇게나 빠르게 정보 팔이를 할 줄이야. 알았다고 해도 막을 방법은 딱히 없었겠지만.
‘계약서 좀 강한 거로 쓰지.’
하지만 협회로선 인권 문제도 신경 써야 할 테니까. 발설하면 네 목 날아감 수준을 대놓고 쓸 순 없다. 그래서 헌터 등록할 때 스킬이나 능력치 감추는 거 눈치채도 보통 그냥 넘어가는 거고.
“혹시 같이 온 친구는 더 없어요? 전 MKC 쪽은 어때요? 그쪽도 중국이랑 손잡았었다던데. 사육소 정보 많이 팔았습니까? 해연은요?”
해연 소리가 나오자 내 멱살 잡은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완용 씨가 나를 당겨 테이블 위로 반쯤 끌어올렸다. 철제 테이블의 각진 모서리가 좀 아프다.
“동생 새끼나 형 새끼나…….”
놈이 이를 갈며 중얼거렸다. 유현이가 왜 나와.
“남의 동생은 왜 걸고넘어집니까?”
“한유현 그 애새끼가 막 각성했을 때 협회에서 거두려고 한 거 모르나? 하긴 그 새끼가 난장 쳐 놨으니.”
…협회에서 임시 보호했다는 건 아는데, 난장? 무심코 인상을 찌푸리자 완용이 놈이 이어 떠벌리기 시작했다. 역시 나보다 두 배쯤은 더 살아 있는 주둥이다.
“미성년자고, S급이니까 협회 소속으로 두려고 설득을 했지. 아무것도 없는 어린애가 S급 헌터라는 게 알려지면 가족도 무사하지 못할 거라고.”
…며칠간 실종되었다가 나타난 유현이가 차갑게 돌아섰던 것이 떠올랐다. 협회 놈들이 헛소리를 지껄였던 건가. 물론,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나와 유현이가 계속 사이가 좋았더라면 아무 뒷배 없는 S급 헌터를 차지하기 위해 날 인질로 잡으려 드는 인간들이 분명 있었을 테니까.
그래도 어린애를 그딴 소리로 협박해? 그게 어른이 할 짓이냐?
“네놈 말대로 그 앤 어린애였어. 그런데 가족 운운하며 숙이게 하려 해? 빌어 처먹을 개새끼가.”
어린애 약점 잡아서 흔들려고 했다니. 더럽기 그지없다. 성인 대 성인이라도 가족을 인질로 삼는 건 치사한 짓인데 미성년자잖아. 속이 뜨거워졌다. 개새끼가 이죽거렸다.
“그 애새끼가 상급 각성자 임시 숙소를 쓸어버리고 협회 소속 헌터들까지 죄다 때려눕혔다는 건 알고 하는 소린가. 우린 최대한 좋게 설득하려고 했어. 시발, 그 새끼가 자기 길드 만들 거라며 방해가 들어오면 우리부터 죽이겠다고 협박을─”
“잘했네.”
우리 유현이 똑똑하기도 하지. 석시명 도움 받기 전엔 혼자 어떻게 길드 만들 준비를 했나 걱정이었는데 눈앞의 개새끼를 부려먹었다니. 애가 고생 덜해서 다행이다.
“가족 인질 삼는 건 실패했고, 결국 약점 하나 없는 S급 헌터니까 엄청 쫄았겠다? 수틀리면 네놈들 다 죽이고 해외로 튀어도 환영받을 테니까 살려면 얌전히 내 동생 뒤처리하고 다녀야 했겠네. 참 고맙다 고마워.”
길드가 자리 잡은 후라면 저런 식의 협박은 통하지 않는다. 자칫하면 길드에 악영향이 가니까. 하지만 그 전이면 뭐, 세상에 알리겠다고 발악해 봐야 잃을 것도 없지. 길드 세운 후 약점으로 잡힐 가능성은 있지만 그건 석시명이 잘 처리해 주지 않았을까.
완용이가 욕을 지껄였다. 눈을 힐끗 돌려 주위를 살펴보았다. 문 앞에 헌터 두 명이 지키고 서 있었다. 그 옆의 초화운은 지루해하는 얼굴이었다. 테이블 옆에도 하나 서 있었지만 바싹 붙은 건 아니었다. 상급 헌터로도 안 보이고.
“그래서 완용 씨, 한국과 아직 연락합니까? 협회 청소는 했지만 전부 엎은 건 아니다 보니 걱정되네.”
심각한 부분만 잘라낸 정도다. 그 뒤로도 내부 정리를 하고는 있지만 싹 가는 건 불가능했다. 철제 테이블 모서리. 되려나. 운동 좀 열심히 할걸.
“나 어차피 여기서 도망치기 힘든데 스파이가 누구누군지 들어나 봅시다. …아, 자세 불편하네.”
멱살 좀 놓아주지, 하고 투덜대며 자연스럽게 테이블 위로 몸을 올려 앉았다.
“그걸 말해 줄 것 같나. 하지만 한 소장에게 충고 정도는 해줄 수 있지.”
음, 이거 혹시 그건가. 먼저 전향한 사람이 야, 너도 편하게 지내려면~ 운운하는 거. 동무 어쩌고 하는 장면 본 적 있어.
어쨌든 이 새끼는 앞으로도 계속 한국에서 정보 빼낼 테고, 내 동생 협박도 했고.
“아니, 충고해 주겠단 사람이 시비를 걸어요? 일 더럽게 못하네.”
“시비는 네놈이 먼저 걸었잖아! S급들이 그렇게나 싸고돌더니 결국 여기 끌려온 꼴을 구경도 할 겸─”
상체를 뒤로 확 젖혔다. 테이블에 등이 닿고 내 멱살을 잡고 있던 개새끼가 휘청거린다. 동시에 테이블을 박차며 다리를 치켜올렸다. 굽힌 내 무릎이 개새끼의 뒷목에 닿고, 몸을 뒤구르기 하듯 완전히 굴리며 그대로 테이블 모서리를 향해 내 무릎을, 개새끼의 목을 내리찍었다.
쾅!
소리와 함께 우득, 목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한발 늦게 달려온 중국 헌터가 나를 붙잡았다. 완용 씨 몸뚱이가 테이블 아래로 주르륵 미끄러지며 쓰러졌다.
“힐러를, 아니, 즉사했습니다!”
니킥이라는 게 원래 그냥 맞아도 위험한 거라서. 거기에 철제 테이블이 거들어 줬으니 제대로 들어갔으면 비각성자로선 살아남기 힘들지. 느긋하게 걸음을 옮겨 온 초화운이 쓰러진 완용 씨를 발끝으로 툭 찼다. 그리곤 내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뭐 불만 있느냐는 듯 웃어 보였다.
“겉보기와 다르게 가차 없군.”
“나라 팔아먹는 개새끼를 살려 둘 이유가 있습니까. 심지어 내 동생까지 건드렸다는데.”
살려 두면 한국에서 날 구하려는 움직임까지 흘러들어 오게 될지도 모른다. 처리할 수 있을 때 처리해야지. 초화운이 손을 뻗어 내 뒷덜미를 낚아챘다. 쥐새끼라도 다루듯 가볍게 들어선 바닥에 내던졌다.
“아, 씨.”
아프잖아. 등 뒤로 손목이 묶인 채라 무방비하게 바닥에 엎어질 수밖에 없었다.
“해연길드장이 감싸고도는, 각성한 지 채 반년도 못된 F급 헌터. 그것도 특수보조계. 그럼에도 아무렇지 않게 사람을 죽였어.”
“내가 각성한 진 얼마 안 됐는데, 겪은 일은 한두 가지가 아니라서. 그전에도 팍팍하게 살았지. 납치만 해도 경력자야.”
회귀 전까지 합치면 열 손가락을 넘는다.
“그리고 내가, 다른 건 다 참아도 내 동생, 우리 애들 건드리는 것만큼은 못 참아서.”
서늘하게 내려다보는 시선과 눈을 마주했다.
“우리 애들한테 손대면 S급이고 뭐고 죽어.”
허세로 생각했는지 초화운이 소리 없이 웃었다. 진심이다만. 그때 놈이 내 오른쪽 다리를 지그시 밟았다.
“내 책임하에 사람이 죽었으니 대가를 치러라.”
“지랄, 죽든 말든 상관없었잖아.”
떨어져 있었고 한눈도 팔았지만, 명색이 S급 헌터다. 날 막을 시도를 했다면 성공할 가능성이 없지는 않았는데, 눈썹 하나 까딱 않고 거북이처럼 느릿느릿 기어 온 주제에 뭔 헛소리야. 하지만 초화운은 들은 척도 안 하고.
“……!”
발에 힘을 주었다. 다리뼈가 순식간에 부러졌다. 순간 눈앞이 하얗게 물들었다. 이를 악물었다가 간신히 숨을 내뱉는데 부러진 뼈를 아예 으스러뜨리기라도 하려는 듯 자근자근 밟아댄다.
“아으, 윽! 미친…….”
극심한 고통으로 전신이 벌벌 떨렸다. 나도 모르는 사이 손가락이 바닥을 긁고 있었다. 미친 새끼가, 으윽…….
내 다리를 짓밟던 발이 겨우 떨어져 나가고 놈이 포션을 꺼내 들었다. 그것을 보자 등골이 서늘해졌다.
“자, 잠깐만! 지금, 포션을 쓰면…….”
뼈가 단순히 부러진 것도 아니고 산산조각 난 상태에서 상급 이하 포션을 쓰면 상처가 제대로 아물지 않는다. 엉망이 된 그대로 회복해 버리기에 오히려 더 치료하기 힘들어진다. …경험으로 아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놈은 그대로 포션을 내 다리에 부었다. 고통이 줄어들었지만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다. 다친 다리를 움직이려고 힘을 주자.
“…윽.”
저릿한 통증이 내달렸다. 진짜, 개새끼네.
“앞으로 네가 살 곳을 직접 안내해 주지. 따라와.”
놈이 나를 지나쳐 문 쪽으로 걸어갔다. 야 이 개새끼야!
“일어나지도 못하겠거든?!”
“그럼 기어라도 와야지.”
나를 내려다보는 눈빛이 무척이나 기분 더럽게 느껴졌다. 시그마는 저 새끼에 비하면 애가 참 착했어. 밥도 여기보다 맛있었고. 우리 달이가 막 그리워지는구나.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더니 개새끼라 내가 개새끼로 보이냐. 기어 오라고 지랄이야, 멍멍. 방금 너 욕했다. 뭐라고 욕했게.”
초화운의 눈썹이 약간 찌푸려졌다.
“못 알아들었나? 개새끼가 아니면, 야옹? 냐아옹. 이것도 아니면 뭘까. 매애애?”
“일으켜 세워.”
초화운의 명령에 중국 헌터가 나를 일으켰다. 오른쪽 발을 바닥에 딛기가 무섭게 통증이 느껴졌다. 초화운이 문 쪽으로 다가갔다. 아니, 어떻게 걸으…….
중국 헌터의 손이 재촉하듯 내 등을 밀었다. 반사적으로 발을 내디뎠다가 그대로 쿠당탕, 앞으로 넘어졌다.
“못 걸─”
“다시 일으켜.”
냉정한 명령이 떨어졌다. 뭐… 이런. 내가 만난 개새끼들 중에서도 순위권에 들어갈 개새끼다. 어쩐지 박하율마저도 눈치를 보더라니 여간 미친놈이 아니었구나. 다시 몸이 일으켜지고 이를 악문 채 걸음을 옮겼지만 채 두 발짝도 못 가 쓰러졌다.
“일으켜.”
아, 집에 가고 싶다.
“차오후 특별지구는 따로 관리관찰이 필요한 각성자들이 보내지는 곳이다.”
초화운 놈은 의외로 제대로 된 길안내를 해주었다. 걷기 힘든 사람을 억지로 끌고 다니는 것만 제외한다면 귀담아들어야 할 내용도 더러 있었다.
“그중에서도 노산도 제1특수각성자 관리소에는 희귀하거나 중요한 스킬을 지닌 각성자들이 관리받고 있다.”
뭐지, 털어가라는 소린가. 하지만 감시는 확실히 철저했다. 이곳에 현재 머무는 S급 헌터만 해도 초화운과 관 낭자라는 사람을 포함해 셋이었다. 로테이션은 이루어지지만, 항상 세 명 이상 대기한다고 하였다. 그에 더해 긴급 시 상하이에 지원 요청이 가능하다고 했다.
‘상하이가 엄청 큰 도시이니 못해도 S급 헌터 서넛은 있겠지.’
여기서 얼마나 가깝지. 일단 S급 헌터 일곱 명 이상이 수 시간 내에 모일 수 있다고 생각해 둬야겠다. 반면에 여기 올 수 있는 우리 쪽 S급 헌터는, 많아야 다섯 명 정도일까. 한국에도 몇 명 남아 있어야 하니까.
“여기는 2번 식당이다.”
“…궁금하지 않습니다만.”
그냥 놓아줘, 개새끼야. 등이 식은땀으로 흥건했다. 초화운이 나를 돌아보며 미소 지었다.
“독 저항 조절이 가능하다면 진통제를 주겠다.”
“못 해. 게다가 뭘 믿고 받아먹어? 내가 진짜 개새낀 줄 아나.”
아니, 개도 안 먹을 거다. 그게 진짜 진통제인지 아니면 자백제나 기타 수상한 약물인지 어떻게 알고 넙죽 받겠냐. 초화운 새끼가 다시 걸음을 옮겼다. 방향을 틀다가 또 넘어졌다.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전신이 멍투성이가 되지 않았을까.
‘기죽이려고 드는 거겠지, 망할 놈이.’
그냥 잘못했다고 엉엉 울면 이쯤에서 봐줄지도 모른다. 그게 더 편할 테지만, 젠장. 엿 먹으라 그래.
건물 내부에서 끌려다니다가 밖에까지 나왔다. 어느새 해가 지고 호수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차갑게 전신을 덮쳐들었다. 계단, 망할, 계단. 그래도 계단에서는 내 머리가 모서리에 부딪힐 거 같으면 잡아는 주었다. 거의 온몸으로 구르다시피 계단을 올라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전망대에 섰다. 아니, 구겨졌다.
난간에 기대 웅크려 앉은 채 미친 개새끼를 노려보았다.
“사람 고문하는 데 소질 있다?”
단순히 고통만 주는 게 아니라 지치게 만들었다. 초화운 놈이 난간에 등을 기대며 시가 같은 것을 꺼내 들었다. 중국에는 벌써 상급 각성자용 담배가 나온 건가. 아니면 기분만 내는 걸까. 익숙한 손놀림으로 끝을 커팅하고 불을 붙여 입에 문다.
“앞으로 오래 볼 관계이니 머릿속에 확실히 새겨 두도록.”
“새겨? 웃기고 있네.”
코웃음을 쳐주었다. 꿈도 크셔.
“난 집에 돌아가면 깨끗이 치료받고 잘 살 거다. 노력은 하셨지만, 이까짓 거 아무것도 아니야. 정말 아무것도 아니지.”
내 가슴을 찢어 놓고 아물지도 못하게 만든 녀석은, 단 한 명뿐이다. 거기에 비하면 진짜 별거 아니었다. 눈을 가늘게 뜨며 난간 틈 사이로 흔들리는 검은 수면을 바라보았다. 감시탑의 불빛이 길게 비쳤다 멀어져 간다.
지금쯤 다들 뭐 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