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36
36화 마수 사육사 (1)
“피스야~”
도깨비가 사 온 파스를 받은 뒤 축객령 내리고 거실로 향했다. 우리 안의 피스가 좌우로 폴짝폴짝 뛰며 나를 반겨 주었다. 봐도봐도 귀여운 녀석.
언제나처럼 피스를 품에 안아들고 목덜미를 쓰다듬어 주었다. 갸르릉거리는 소리가 듣기 좋다.
이제 안고 다닐 날도 얼마 안 남았구나. 성장 시작하면 금세 나보다 더 커지겠지. 좀 아쉬웠다.
“다 컸다고 아빠 모른 척하고 그러면 안 된다.”
몬스터도 사춘기 같은 거 있을까. 아빠 미워, 하고 앞발 휘두르면 최소 입원 각인 데다. 우리 피스는 착하니까 그럴 일 없겠지.
피스를 바닥에 내려놓고 내 새끼 스킬을 썼다. 이내 메시지창이 눈앞에 떠올랐다.
[내 새끼가 최고(L) 성장 효과가 3일간 대상자 피스에게 적용됩니다!2급 유니콘아종 – 화염 뿔사자 피스의 성체 탈태 소요 시간(365:00) 효과 지속 시간(72:00)
던, 양육자가 대상자를 훈련해 성체탈태
전체 소요 시간을 줄여
오랜
기다림 없이 성장시킬 수 있습니다.]
…평소라면 효과 지속 시간(72:00)으로 끝났을 텐데 설명이 붙어 있었다. 오타도 났다. 아니, 평범한 오타가 아닌 듯했다.
‘일부러 오타 냈네.’
척 봐도 세로드립이잖아, 이거. 원래는 단, 이었을 텐데 던으로 오타인 척 하고 있었다. 세로로 읽으면,
던전 오기.
하다하다 설명창으로 지시도 다 내리네. 와, 대단해. 뭐 하시는 분인지 진심으로 궁금하다.
‘던전은 또 왜 오라는 거야.’
이렇게까지 하는 거 보니 D급 던전 들어갔을 때처럼 채팅창 띄워서 말하는 건 던전 내에서만 가능한가 보군. 아마도 던전 밖에서는 무슨 제약이라도 있는 듯했다. 그러니 이렇게 설명창 세로드립을 쓴 거겠지.
‘던전 내에서도 직접적인 메시지를 보내면 새새끼 튀어나온 것처럼 버그가 생기는 듯하고.’
뉘신진 몰라도 역시 전능하진 않은 모양이었다.
‘내가 던전에 들어가기 전에는 찾아내지도 못한 걸로 봐선 던전 밖, 이 세계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는 것 같고. 그래서 던전으로 오라는 건가.’
근데 내가 뭘 믿고 가. 갔다가 또 실수해서 이번에는 S급 보스 몬스터라도 튀어나오면 어쩌라고.
미안하지만 시스템 만든 당신, 혹은 당신들에 대한 신뢰 따위 바닥 친 지 오래입니다. 유현이가 아니라 평범하게 A급 교육 담당자와 들어갔으면 이미 요단강 건넜을지도 모른다고.
그러니 못 본 척하자. 설마 메시지 무시했다고 별일이야 있겠어.
‘…있을 거 같다는 게 문제지.’
시발, 아무 이유 없이 세로드립 치고 있을 한가한 인생 혹은 신생(神生)일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널려 있는 S급들 다 놔두고 왜 하필 나야. 회귀해서 그런가. 소원석 들고 빌어먹을 던전이랑 각성자 없애 주세요, 하고 빌기라도 했어야 하는 건가.
– 끼앙?
내가 멍하니 서서 생각에 빠져 있자 피스가 무슨 일이냐는 듯 작게 울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이 아빠가 이상하고도 미친 것 같은 새끼에게 잘못 걸린 것 같구나. 피스를 다시 안아 주며 한숨을 삼켰다.
왜 사람이 편하게 사는 꼴을 못 보냐. 나는 그저 놀고먹고 싶었을 뿐이다. 그게 그렇게 큰 욕심도 아니잖아.
“에휴, 길게 고민해 봤자 무슨 소용이겠냐만.”
어차피 선택지는 두 가지뿐이었다. 무시하거나, 순순히 던전에 들어가거나. 시스템이 저한테 이런 메시지를 보내왔는데요, 하고 상담할 상대가 있는 것도 아니고. 5년 후에도 시스템의 ㅅ자도 파악하지 못했으니 지금은 더하겠지.
검고졸 F급이 각성자와 던전 시스템에 대해 세상에서 제일 잘 알고 있다니, 어쩌라고. 진짜 어쩌라고다.
‘일단 피스부터 성장시키자.’
훈련을 시키면 성장이 빨라진다니 그나마 반가운 소식이었다. 던전에 들어가는 건 피스가 성체가 된 후에 생각해 보자. 급하면 어떻게든 연락해 오겠지.
“그런데 훈련은 내가 직접 시켜야 하는 건가?”
양육자가 시키라고 하니 그런 모양이었다. 어떻게 하면 되지. 공 물어오기? 원반던지기? 일단 단련실 하나 빌려야겠다.
마수 사육에 관한 건 어차피 밝힐 생각이었으니 유현이에게 먼저 말해 줘야지. 마침 레벨도 10 찍었겠다, 피스와 놀아주던 중에 사육 스킬을 얻었다고 하면 자연스러울 것이다.
해연에게 도움 받을 겸 거대 길드들과의 협상 건은 석시명에게 떠넘기면 되고. 날 공짜로 부려먹었으니 나도 좀 부려먹어 봅시다.
[혹시 저녁에 시간 되냐.]유현이에게 문자를 보냈다. 협회에서 뒤처리하느라 바쁜지 답장은 좀 늦었다.
[ㅇㅇ] [할 말이 있어. 집에서 보자.]네 집에서라고 썼다가, 고쳤다. 이 녀석은 자기 집을 우리 집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니까.
두 번째 답장은 더 늦었다.
파스 붙였다가 피스가 지랄해서 도로 떼어내고, 장비를 반납한 유명우가 귀가해 칼 만 개 가는 것에 대해 이야기 나눈 뒤, 훈련 효과 시험해 보려고 피스에게 공을 던져 주고 있을 때 문자가 왔다.
[나는 형을 믿어.]얼씨구, 귀여운 소리를 하네. 던전에서 나한테 이상해졌다고 말한 게 신경 쓰였던 모양이었다. 내가 내 수상쩍음에 대해 변명하려고 만나자 하는 거라고 생각했나.
[술 사 갈게.]네 냉장고 너무 건전하더라. 그러고 보니 동생 놈과 술 마신 적은 아직 없었다. 유현이가 미 자 딱지 뗐을 땐 이미 사이 틀어진 뒤였으니까. 나만 취해서 집에 기어들어간 적이야 있었지만.
설마 아직 미경험인 건 아니겠지. 처음 마신다 해도 S급 스탯빨이 있으니 잘 취하진 않겠지만. 나도 못 취하고. 뭐가 이러냐.
언젠가는 마음 놓고 스킬 끌 날도 오겠지.
* * *
한 손으론 피스를 안고 다른 손으론 술병과 안줏거리로 채워진 봉지를 들고 동생 집으로 향했다. 술은 산 건 아니고 관리실에 문의했더니 준비해 주었다. 이름도 잘 모르는 고급진 것들로.
난 그냥 좀 비싼 맥주 정도나 원했는데.
관리실에서 불러 준 주류 담당 직원은 방긋방긋 웃는 얼굴로 이딴 건 스탯 B급도 못 취해요, 라며 알콜도수가 하늘을 찌르는 것으로 주르륵 늘어놓아 주었다. 입가심용 와인도 섞어서. 그랑 크뤼 어쩌고 하던데 모르겠고, 봉다리에 넣어 달랑달랑 들고 다니긴 죄스러울 수준일 것임은 분명했다.
유현이 앞으로 달아 놨으니 상관없지만.
집 안은 처음 왔을 때처럼 조용했다. 혼자 살기엔 역시 너무 넓은 곳이다. 결혼은 아직 이르지만 연애라도 해라.
“왔어?”
술병과 안주를 테이블에 늘어놓고 소파에 앉아 있자 얼마 지나지 않아 유현이가 나타났다. 막 씻고 나온 건지 머리카락이 젖어 있다. 새새끼 피가 제법 튀긴 했었지.
“협회에서 꽤 오래 잡아 뒀나 봐.”
“드문 사태니까. 겸사겸사 다른 볼일도 봤고.”
잔을 가지고 온 유현이가 따로 떨어져 있는 1인용 소파에 앉았다. 녀석이 테이블 위의 술병을 보더니 미간을 살짝 찌푸린다.
“너무 독한 거 아냐?”
알아보네. 처음은 아니구나. 괜히 아쉬웠다. 아니면 쬐끄맣게 붙은 도수를 그새 본 걸까.
“바로 며칠 전에도 업혀 들어왔으면서.”
“걱정 마. 오늘은 적당히 마실 거야. 그리고 어차피 집이잖아.”
집에선 개가 되어도 무슨 문제랴. 취할 일은 없지만.
“그러고 보니 여기엔 도깨비도 들어오기 힘들겠지?”
포털 이동은 열쇠가 필요한 데다가 위치가 숨겨져 있으니 공간이동도 힘들 테고.
“불가능하진 않을걸.”
유현이가 술병을 따며 말했다.
“창이 있으니까. 밖에서 하나하나 공간이동으로 뒤지면 결국 발견하겠지.”
그렇게 귀찮은 짓까지 할 성격으론 안 보였지만. 도깨비를 피하려면 포털 이동에 더해 교모하게 위치를 숨긴 암실 같은 거라야 하려나.
“도깨비는 신경 안 써도 돼. 스스로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비밀은 확실히 지켜 줄 테니까. 꺼림칙한 점만 잊으면 무척이나 유용하기도 하고.”
“비밀스런 연락 같은 거 할 때?”
“그것도 있지만, 서로 못 믿는 상대와 약속 잡을 때 도깨비를 통하면 안전까지 확인해 주거든. 덕분에 비각성자 고위층에게 인기가 많아. 각성자들보다는 그쪽에서 더 자주 찾기도 하고.”
그런 서비스도 해 줬었군. 도깨비를 위해서라도 나를 위해서라도 우리의 계약에 대해서는 역시 비밀로 해 두는 편이 나을 듯했다. 계약서에 남의 비밀은 알려 주지 않겠다는 조항이 있다 해도 높으신 분들은 틀림없이 불안해할 테니까.
“그런데 도깨비 말이다, 하는 짓 보면 어린 거 같지 않냐?”
“응? 좀 특이한 성격이긴 하지. 그래도 일 처리는 정확하고 꼼꼼해. 어리다기보단 아마 컨셉 같은 게 아닐까. 자기 능력에 맞춰서 캐릭터 만들고 연기하는 헌터들 몇 있잖아.”
그런가? 하긴 계약서 작성할 때도 어린애라기에는 너무 철저하게 이것저것 조건을 따져 넣었다.
유현이 말대로 진짜 어린 게 아니라 도깨비라는 캐릭터에 과몰입한 것일까. 하는 짓이 딱 전래동화에 나오는 도깨비긴 하지. 장난 좋아하고 사람 놀리려 들며 다재다능하면서도 동시에 어수룩한 면도 있고.
돈 빌려주면 매일매일 계속 갚아 주려나.
반짝거리는 유리병을 건드려 보고 싶어 하는 피스를 다독이며 동생이 따라 준 술잔을 들었다. 음… 한 20밀리 되려나. 이봐요, 동생님. 술이 잔 바닥만 적시고 있는데.
“이건 좀 심하잖아. 한 모금도 안 되겠다.”
“독하다고 했잖아. 한 모금씩만 마셔.”
그러면서 제 잔은 반 넘게 채운다.
“내가 술이 그리 약하진 않거든?”
마셔도 너보다 오 년, 아니 십 년을 더 마셨다. 투덜거리며 잔을 홀짝 비우고 다른 술병을 집어 들었다. 뭐 인마, 노려보면 어쩔 건데. 뺏을 거냐.
“말만 독하지 간에 기별도 안 오는구만.”
진짜 기별도 없다. 그냥 향이 좋고 알싸하니 제법 먹을 만하다는 것밖에 모르겠다. 비싼 거라 그런가 취기 없어도 괜찮네.
“뚱한 얼굴 하지 말고 너도 한 잔 받아라. 처음이잖아.”
잠깐 머뭇하던 유현이가 제 잔을 단숨에 비워내곤 내밀었다. 그 모습을 보니 기분이 묘해졌다.
회귀 전에는 이렇게 주거니 받거니 하는 일, 생각지도 못했었는데. 아니, 세상이 변하기 전까지는 언젠가 동생과도 술 마실 날이 있겠거니 했었다.
수능 끝나고 나면 이렇게 한잔 따라 주며, 물론 싸구려였겠지만, 내가 술을 가르쳐 줄 것이라고 당연한 일처럼 생각한 적이 있었다.
“넌 좋은 동생이었어.”
부족한 것 참 많았는데 어린애답지 않게 불평도 않고. 정말 착했지. 갑자기 집 나가 버린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물론 지금도 좋은 동생이고.”
빈 잔을 가득 채워 주며 웃었다. 좀 귀찮게 굴긴 하지만 스킬 때문이니까. 스킬이 아니더라도 날 걱정해서 그러는 거고.
“…좋은 동생이었다고.”
유현이가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착했던 거 맞잖아. 모범생이었고. 녀석의 표정이 영 떨떠름해 혹시 나 모르게 사고라도 친 적 있냐고 물으려는데 유현이가 먼저 말을 꺼냈다.
“할 말 있다는 게 뭐야?”
“어, 그게.”
내 무릎 위에서 그릉거리고 있는 피스를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10레벨 스킬 때문에.”
“스킬? 하긴 보스 몬스터 퇴치할 때 옆에 있었으니 경험치 받았겠구나. A급 던전 수준이라 했으니 레벨 업 하고도 남았겠네. 무슨 스킬인데?”
“마수 사육사.”
몬스터보단 마수가 더 있어 보이니까. 시스템이라면 이렇게 지을 것도 같고.
“…마수, 사육사?”
유현이의 시선이 피스를 향해 내려간다. 눈길을 느낀 피스가 맘에 들지 않는다는 듯 이빨을 슬쩍 드러냈다. 앞으로 네 파트너 될 사람인데 그러지 마라.
“어. 아마 피스를 돌봐 온 게 스킬에도 영향을 미친 모양이야. 스킬 등급은 S급이고—”
“S급?!”
동생 놈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스탯이 F인데, 스킬이… 그것도 특수 스킬이 S…….”
“야, 이상한 생각 하지 마라.”
또 가둬 두니 어쩌니 하면 집 나갈 테다.
“하지만 형—”
“하지만이고 저지만이고 쓸데없는 소리 말고 듣기나 해. 스킬 효과는 이름 그대로 마수, 몬스터를 키우는 스킬이야. 정확히는 성장시키는 거지. 피스가, 화염 뿔사자 새끼가 자라지 않는다고 했었지? 화염 뿔사자 새끼는 원래 성체의 도움 없이는 성장할 수 없어. 하지만 내 스킬을 쓰면 성장이 가능하지. 테이밍된 채로.”
테이밍이 끝난 화염 뿔사자 성체.
그 가치는 누구보다도 한유현, 저 녀석이 제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침묵이 내려앉았다. 피스가 꼬리를 살랑 흔들었다.
복잡한 얼굴의 유현이가 한참 만에 입을 연다.
“하지만, 그럼 형은.”
“또 하지만이냐. 생각해 봐. 지금 상급 기승수가 필요한 S급이 몇 명이지?”
“…전부 다. 중하급 기승수는 S급 던전에서는 쓸 수 없으니까. 1회용으로 쓰기에는 거대 길드라 해도 부담돼서, 첫 공략 때나 가끔 데리고 가는 정도야. 중하급 기승수가 S급 던전에서 살아나올 확률은 극히 희박하거든.”
약간 멍하던 목소리가 점차 차분해지며 설명을 이었다.
“그러니 S급만이 아니라 팀원 전체에게 수요가 있어. 화염 뿔사자 같은 최상급이 아니라 그냥 S급 던전에서 버틸 수 있을 정도만 되어도, 국내만이 아닌 전 세계에서 몰려들겠지.”
말을 끝낸 유현이가 손으로 제 얼굴을 감싸며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미소 지었다.
“그 정도 수요면 조율하기 어렵지 않겠지?”
“…그야 물론, 진짜… 낮에 스킬 조언도 그렇고…….”
유현이가 얼굴을 덮었던 손을 내렸다. 살짝 넋이 나간 듯한 그 표정이 우습다. 좀 귀엽기도 하고. 어릴 때 생각나네. 애가 귀엽긴 귀여웠어. 정말로.
“형은 진짜 최고야.”
별말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