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365
363화 무림맹(3)
“커억!”
한쪽 얼굴을 강하게 얻어맞은 구백영이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맨손이 아니라 무기를 들었더라면 치명상이었을 것이다. 지금도 순식간에 멍이 올라오고, 이 두어 개가 흔들렸다. 눈앞이 여전히 어지러웠지만 그래도 경험 많은 S급 헌터인 구백영은 급히 바닥에 무릎을 대고 웅크리며 방패를 변형시켰다.
반투명한 방패가 반구형이 되며 그의 몸을 완전히 감싼다. 보기 좋은 꼴은 절대 아니라 웬만해선 쓰지 않는 방법이었지만 체면보다는 목숨이 더 중요했다.
“두, 윽, 두 번은 없다!”
욱신거리는 볼에 포션을 뿌리며 구백영이 소리쳤다. 쿠드득, 방패에 박혀있던 군림자의 검이 뽑혀 나갔다. 지금의 한유현으로서는 저 방패를 완전히 부수는 것은 불가능했다.
구백영의 방패는 금속도 광물도 아니라 녹아내린 마지막 문에 의해 약화되지 않는다. 거기에 구백영 자신의 방어 스킬만 아니라 S급, A급 헌터들의 버프까지 잔뜩 추가된 채였다. 한유진의 공격 스킬 두 배 효과라도 받는다면 모를까, 현존하는 S급 헌터들 중 저 방패를 부술 수 있는 자는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렇기에 구백영은 한유현의 서늘한 시선을 눌리지 않고 맞받았다.
“내 부하들도 모두 나와 동일한 방어력을 지니고 있지. 네놈의 공격은 통하지 않아!”
이 특수 방어 스킬 덕에 구백영은 상하이 제1특수군을 거느릴 수 있게 되었다. 무림맹이 주요 도시인 상하이를 여러 번 노렸으나 구백영의 방어막을 뚫지 못하고 번번이 도망만 쳤다.
다만 구백영보다 총 스탯이 낮은 각성자에 한해서만 방어력 공유가 가능했기에 지키는 데에만 뛰어날 뿐 적을 제대로 붙잡은 적은 거의 없었다. 구백영의 능력치 자체는 낮은 편이라 던전 공략 효율도 좋지 못했다.
“도망칠 거라면 도망쳐라! 대신 화풀이는 네 형이 당할 거다!”
적이 달아나지만 않는다면 승산은 백 퍼센트다. 한유진의 영상을 일부러 가지고 온 것도 한국의 헌터를 도발하기 위해서였다.
“거북이 따위가?”
한유현이 나직하게 말했다. 웅크리기만 할 줄 아는 놈보다야 한유진이 훨씬 더 쓸모가 많다. 그런데 고작 저런 놈 따위가 형을 건드릴 수 있을까. 그 말에 구백영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전투계 S급 헌터들이 그를 조롱할 때 쓰는 말이 다름 아닌 거북이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한 채 웅크리고만 있는 거북이 새끼.
“나, 나는 중국 최고의 도시 상하이를 책임지는 몸이다! 고작해야 한국에서 잡아 온 헌터쯤 손대지 못할 줄 아느냐! 달아나 봐라, 채찍질을 해 주마!”
그 영상도 네놈 눈앞에 틀어 주겠다며 구백영이 이를 득득 갈며 소리쳤다.
“뭐 해! 잡아!”
구백영이 공격당하는 것을 보고 굳어 있던 중국 헌터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전투계 S급은 한 명뿐이고 능력치도 낮은 편에 다른 하나는 보조계와 A급들이다. 원래라면 상대도 되지 않을 전력이다.
하지만 한유현의 공격은 그들에게 통하지 않았다.
커다란 도를 든 S급 헌터가 한유현을 향해 덤벼들었다. 비각성자는 눈으로도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빠른 움직임이었지만 한유현에게는 굼뜬 움직임이었다. 들이닥치는 칼날을 몸을 약간 트는 것만으로 가볍게 피한 한유현이 군림자의 검을 중국 헌터의 목에 찔러 넣었다. 바늘에 실을 꿰듯 정확한 공격이었지만.
텅!
군림자의 검은 적의 피부에 흠집하나 내지 못한 채 튕겨져 나왔다. 대신 구백영의 방패에 금이 약간 갔지만 이내 회복해 버린다. 타격에 실패한 한유현을 향해 무기와 스킬이 쏟아져 내렸다. 하지만 한유현의 모습은 순식간에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콰득! 콰광!
애꿎은 바닥만 갈라지고 터져 나가는 가운데 S급 보조계 헌터가 소리쳤다.
“위다!”
푸른 버들잎이 흩날린다. 밝아져 가는 하늘 위로 검푸른 불길이 버들잎을 휘감았다. 쏟아져 내리는 불의 비에 중국 헌터들이 헛숨을 삼켰다. 구백영의 방어력을 믿고 있음에도 본능적으로 불길을 피하고자 뒷걸음질 친다.
“겁 먹지 마라, 안 통해! 멍청이들아!”
구백영이 버럭 외쳤다.
“까짓 불티쯤 간지럽지도 않다! 계속 공격해! S급이라도 혼자다, 결국 지칠 거다!”
바닥에 내려앉은 검푸른 불꽃이 두껍게 포장 된 도로를 녹였다. 공항에 남아 있는 시설물들과 차량을 삼키며 사람 키만큼 솟아오른다. 평범한 인간이라면 한순간도 버티지 못할 불바다였지만 중국 헌터들은 아무렇지 않게 다시 한유현을 향해 무기를 들었다.
화살이 발사되고 비행 스킬을 보조받아 S급 공격계 헌터가 공중으로 치솟았다. 버들잎을 밟으며 빙그르 몸을 돌려 화살과 칼날을 피한 한유현이 돌연 아래로 뚝 떨어졌다. 제 발로 내려온 그의 모습에 구백영이 부하들을 독려했다.
“기회다! 목숨만 붙여 놔라! 팔다리 한둘쯤 잘려도 S급이니 안 죽는다! 포위해!”
중국 헌터들이 이를 악물고 한유현을 쫓았다. 어째서인지 한유현은 너른 공항을 두고도 얼마 움직이지 않고 몰아쳐 오는 공격을 피하기만 했다. 그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있는 헌터는 없었지만 상대적으로 수가 너무 많았다.
심지어 이곳의 헌터들, 군인들은 항상 협동 공격을 해 온 자들이었다. 처음에는 한유현의 압도적인 능력치에 눌려 당황했지만 점차 침착하게 서로 손발을 맞춰 가기 시작했다.
서걱, 한유현의 옷자락 끝이 미미하게 잘려져 나갔다. 강하게 던져진 창끝이 귓가를 스치고 검붉은 덩굴이 땅에서 솟아나 발목을 휘감으려 들었다. 어깨를 향해 내리찍는 칼날을 피하는 한유현의 바로 앞으로.
쿠웅!
단단한 벽이 나타났다. 군림자의 검이 순식간에 벽을 부수었지만 움직임이 막힌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포박 스킬을 담은 와이어와 덩굴이 덮쳐들었다. 검은 날이 연검화하며 휘어져 와이어를 후두둑 잘라 낸다. 하지만 목표에 닿기 전까지는 실체가 없는 덩굴 스킬까지는 막아 내지 못했다.
검붉은 덩굴이 한유현의 한쪽 발목을 휘감았다. 덩굴이 형체화되기 무섭게 불길이 태워 버렸지만 잠깐이나마 멈칫거리게 되는 것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결국, 창날이 한유현의 어깨를 길게 가르며 얕게나마 상처가 났다. 예장의 방어력 중첩이 아니었다면 부상이 꽤 컸을 공격이었다.
“좋아! 그대로 몰아가라! 포션 쓸 틈 주지 마!”
드디어 한유현에게 부상을 입힌 것에 구백영이 기뻐하며 소리쳤다. S급 헌터, 그것도 SS급 몬스터를 다수 해치웠다는 강력한 각성자다. 그런 S급 헌터를 사로잡는다면 자신에 대한 평가도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초화운 그 망할 새끼, 두고 보라지.’
무림맹 헌터들을 죄다 놓치기만 하는, 집지키는 개조차 못 되는 거북이 소리를 귀 따갑게 들어왔다. 같은 S급 헌터조차 제 눈에 안차면 깔아 보는 개새끼.
콰득!
한유현이 팔뚝을 들어 칼날을 막았다. 옷이 잘리고 살이 패여 핏방울이 튄다. 그런 자잘한 상처가 점차 늘어나고 있었다. 자신의 공격이 전혀 통하지 않는 상태에서 계속해서 피하고 막는 것에는 결국 한계가 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저놈이 도망치지만 않는다면.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허억, 헉!”
A급 헌터 하나가 숨을 헐떡이기 시작했다. 심지어 그 외의 다른 A급 헌터들까지 비틀거리고 있었다.
“무, 무슨 일이냐!”
구백영이 놀라 소리쳤다. A급 헌터들이 허우적거리며 자신의 목을 부여잡았다.
“숨이, 숨···.”
“여기서, 나가야-!”
사람 키보다 높이 솟은 불길. 헌터들을 휘감은, 특히 머리 주위를 가리듯 감싼 불꽃. 구백영이 두 눈을 크게 치떴다.
“산소, 젠장! 벗어나! 아니, 내 스킬 범위를 나가면 안 돼!”
불이 산소를 태우고 있었다. 방어 스킬은 공격 대미지만 막아 줄 뿐 숨까지 쉬게 해 주진 못한다. 뛰어올라도 불길을 완전히 떨쳐 내는 건 불가능했다. 이미 번질 대로 번진 불바다를 빠져나갈 수도 없었다. 그 전에 방어 스킬의 범위를 먼저 벗어나 불타 버릴 것이다.
비행 스킬을 지닌 A급 헌터가 위로 날아오르려 했다. 하지만 그보다 빠르게 한유현이 그의 몸을 짓밟아 녹아내린 바닥에 파묻었다. 직접적인 타격은 받지 않지만 짓누르는 힘까지는 어쩔 수 없다. 버둥거리던 헌터가 이내 잠잠해지고 다른 A급 헌터들도 하나둘 쓰러지기 시작했다.
S급 헌터들 또한 희박해진 산소에 움직임이 더뎌졌다.
“무, 무슨, 이건···!”
구백영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에게 주어졌던 보조 스킬들이 빠르게 사라져 간다. 한유현은 아직 버티고 선 S급 헌터들을 무시한 채 웅크리고 있는 구백영에게로 다가갔다. 일 미터쯤 앞두고 멈춰 선 한유현이 군림자의 검을 늘어뜨리듯 쥐었다. 장검이 연검으로 변하며, 한유현의 한쪽 발이 앞으로 내디뎌짐과 동시에 연검을 강하게 휘둘렀다.
쾅!
“흐익!”
검은 칼날이 반구형 방패를 두들겼다. 방패에 금이 쩌적 간다. 그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검을 쥔 팔과 어깨에서 등으로 이어지는 근육 전체에 힘을 가하며, 또다시 한유현이 군림자의 검을 채찍처럼 내리쳤다.
콰앙!
쾅!
콰득, 콰드득, 방패가 부서져 내려가고 구백영의 얼굴 또한 새파랗게 질려갔다. 냉랭하게 그를 향하는 눈길이 더없이 두렵게 느껴졌다. 같은 S급 헌터건만 마치 굴을 파헤치는 늑대 앞의 생쥐가 된 듯했다.
또다시 콰앙, 검날이 방패를 두들기고 반투명한 방어벽이 결국 후두둑 무너졌다. 기겁하며 도망치는 구백영을 새카만 뱀처럼 연검이 뒤쫓았다.
“으아악!”
등을 얻어맞은 구백영이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그의 머리통 바로 옆을 칼날이 내리찍는다. 바닥을 파헤치며 빠르게 거두어진 연검이 이번에는 구백영의 다리를 노렸다. 검날이 아닌 옆면으로 강하게 후려 맞은 구백영이 부러진 다리를 끌어안으며 쓰러졌다.
휘리릭, 길게 뻗었던 검을 거두며 한유현이 뒤쪽을 돌아보았다. 높이가 줄어든 불길 사이로 S급 헌터들이 엉거주춤 서 있었다. 그중 보조계가 급히 외쳤다.
“저, 전 가족을 인질로 잡혀서!”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공격계 헌터 앞에 한유현이 내려섰다. 공격계 헌터가 허둥지둥 방어하려 했지만 그보다 한유현의 발길질이 더 빨랐다.
“컥!”
복부를 걷어 차인 헌터가 한참을 날아가 바닥에 처박혔다. 홀로 남은 보조계 헌터가 겁에 질려 뒷걸음질 치는 그때.
“한, 화현 헌터!”
은세선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그 사람 말은 사실입니다! 우리 쪽에 정보가 등록되어 있어요.”
유체화 상태의 피스에게 팔을 잡혀 공중에 뜬 채 은세선이 이어 외쳤다.
“그리고 피하세요!”
갑자기 피하라니. 눈썹을 약간 치켜올리던 한유현의 귀에 낮은 땅울림이 들려왔다. 무수한 무언가가 이쪽으로 접근해 오고 있다.
박예림.
한유현은 푸른 버들잎을 쓰며 보조계 헌터의 뒷덜미를 낚아챘다. 공중으로 높이 뛰어오른 그의 눈에 허물어져가는 공항 건물이 들어왔다.
물이었다.
쿠르르르릉-!
수십 미터 높이로 치솟은 파도가 공항을 삼키고 있었다. 이미 반대편 활주로에 모여 있던 비행기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먼저 다다른 작은 파도가 공항 건물 안을 헤집으며 창문을 와장창 깨뜨린다. 집기들이 물결에 흘러나오는 것도 잠시, 이어 거대한 파도가 덮쳐들었다.
바다를 그대로 옮겨 온 듯, 모든 것이 순식간에 물에 잠겨들었다. 무시무시한 수량이 바닥을 두들기는 소리만이 천둥처럼 들려온다.
활주로를 전부 휩쓴 물이 빠져나가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젖은 땅 위로 한유현이 내려섰다. 들고 있던 보조계 헌터를 내동댕이치는 그의 옆으로 박예림이 날아왔다.
“으, 뒷골 땡겨.”
박예림이 얼른 마나 포션을 꺼내 꿀꺽꿀꺽 단숨에 마셨다.
“쓸데없이 힘 빼지 말라고 했다.”
“연습 삼아 해 본 거야, 연습 삼아. 여기 공항 엄청 넓더라. 근데 그러는 한유현 넌 꼴이 그게 뭐야.”
크게 다친 곳은 없었지만 멀쩡하지도 않았다. 박예림이 포션을 한유현에게 던졌다.
“아저씨 뺨 맞았다고 괜히 더 날뛴 거 아냐?”
한유현은 대답 대신 포션을 상처에 부었다. 그런 두 사람을 은세선이 경외감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박예림의 스킬도 무시무시했지만 무림맹이 그토록 애를 써도 부수지 못했던 구백영의 방패를 혼자 깨트린 한유현 또한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이제 어디로 가면 돼요, 언니?”
“아, 연락을 해 두었으니 곧 차가 도착할 겁니다.”
은세선이 넋 놓고 쓰러져 있는 보조계 헌터를 일으켜 세웠다.
“가순 헌터, 이대로 사망 처리 해 드리겠습니다. 가족에 대한 감시가 약해지면 그때 구출 시도를 할 겁니다.”
“···예.”
가순은 한유현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한 채 끄덕거렸다. 상처를 치료한 한유현이 은세선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은세선이 반사적으로 흠칫 어깨를 움츠렸다.
“노산도로 바로 갈 수 있습니까?”
“다른 루트로 오는 분들과 합류하실 거라고 들었습니다만.”
“먼저 가도 됩니다.”
“그냥 근처까지만 갈게요. 아무것도 안 하고, 구경만.”
박예림까지 거들고 나서자 은세선이 알겠다고 대답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무림맹에서 보낸 차가 도착했다.
쾅!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잠결에 폭탄 버튼이라도 누른 건 아닐 테고, 눈을 뜨자 반쯤 부서진 문이 덜렁거리는 게 보였다. 그리고 황림이 싱글대며 침대 옆에 서 있었다.
“···뭡니까.”
“공항이 완전히 쓸려 나갔어.”
“네?”
“물에 말이야, 물에. 해연의 어린 헌터 짓이겠지?”
대답하는 대신 몸을 일으키며 손으로 내 얼굴을 세수하듯 비볐다. 애들 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