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384
382화 신규 던전 (1)
귀가 멍멍했다. 누군가 소리친 것도 같았지만 두꺼운 막에 가로막힌 듯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지이익, 늘어진 몸이 끌려갔다. 한쪽 다리가, 다리를 감싼 옷이 핏물에 젖어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어떻게든 정신을 차리려고 애썼다. 은혜가 제대로 나를 보호해 주지 못하는 한, 유현이도 다른 사람들도 지금 내 꼴을 지켜만 볼 수밖에 없었다. 섣불리 구하려 들었다간 나도 다칠 테니까.
무거운 눈꺼풀을 억지로 들어 올렸다. 고개를 들자 웅크리듯 쓰러져 있는 윤윤의 모습이 언뜻 보였다. 돋아났던 뿔도 꼬리도 사라진 채다.
그리고 그 옆으로.
[1급 마족종 – 자아내는 악몽]검붉은 연기 덩어리 같은 것이 둥실 떠 있었다. 그 덩어리에서 나온 한줄기 연기가 내 다리를 꿰뚫고 천천히 끌어당기고 있다. 저건, 설마.
‘이름 없는 마왕?’
윤윤이 성장할 때 삼킨 아이템의 주인이, 아니 그건 흡수되어 사라진 거 아니었어? 통증에 자꾸만 흐려지는 눈으로 주위를 살폈다. 하지만 온통 검붉은 연기에 잠겨 보이는 것은 없었다. 저만치 엎어져 있는 빨간 구슬 도깨비만 언뜻 눈에 들어왔다. 내 스탯이 F급인 채니까 다들 무사는 하겠지만 가슴이 조마조마해졌다.
그때 눈앞으로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주의!!※시스템에 등록되지 않은 보스 몬스터 감지!
시스템을 벗어난 던전의 강제 동기화가 시작됩니다!]
뭐? 시스템을 벗어난 던전이라면 지금 여기를 말하는 건가? 사라졌던 마왕이 나타나서 던전으로 인식된… 이전에 뭘 주의하라는 거야!
[흔들림과 지형의 변화에 대비하세요! 던전의 등급은 등급은 등급은! SS급으로 확정! 존재가치 등급 A급 이하는 외부로 밀려나게 됩니다.]메시지가 연속으로 나타났다. SS급 던전이라고? A급 이하는 내보내 주는 건가. 다행이다, 가 아니잖아!
“도깨비들만 내보내! 신입아! 나는 그냥 두고!”
나는 남아 있어야 한다. S급이 아닌 SS급 던전이라면 더더욱.
[던전 동기화 중 ■■□□□□□]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데이터 수집 중!] [해당 세계의 파편을 사용하여 새로운 던전이 생성됩니다.] [해당 세계 기준 20XX년 XX월 XX일 XX시] [시스템에 새로운 던전이 등록됩니다!] [8R-30-DES8320던전 제작자: 탑에 갇힌 왕, 무해의 왕, 유명우]
…순간 눈을 의심했다. 명우 네가 왜 거기 끼어 있냐. 동명이인인가. 게다가 무해의 왕은 죽었잖아!
쿠르르릉!
세상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빨간 구슬의 모습이 사라지고 윤윤과 자아내는 악몽 또한 흐려지듯 없어졌다.
[※주의! 주의! 주의!※SSS급 이상 외부에 영향을 주는 스킬의 사용을 금합니다!]
시스템 메시지가 빨갛게 깜박거렸다. 그런 스킬 먹고 죽으려야 없어!
[오류 확인 중 ■■■□□□□완성도 65.451%] [추가 보수 및 개선이 필요한 던전입니다!] [파편 정보가 과도한 영향을 끼칩니다.] [파편 정보가 공략자들의 영향을 받습니다.] [공략자들이 파편 정보의 영향을 받습니다.] [다량의 오류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미 발생한 오류 23개! 빠른 수정을 권유합니다!] [던전 제작자의 솜씨가 서툽니다! 무척이나 미숙한 제작자가 영향을 끼칩니다.]
메시지들이 일일이 확인하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게 눈앞을 스치고 지나간다. 대략 던전 상태가 엉망이라는 거 같은데, 오류가 뭐?
이내 시스템 메시지가 사라지고 주위가 온통 새하얗게 밝아졌다. 점점 더 눈부시게 빛나는 것에 더 버티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사방 모든 공간이 무너져 내리듯 뒤흔들린다.
얼마쯤 지났을까, 귀를 먹먹하게 만들던 소리가 돌연 뚝 사라지고 침묵이 찾아왔다. 천천히 눈을 떴다. 어둑어둑한 공간에 눈이 적응하고.
“…뭐야, 이게.”
익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텅 빈 지하철역. 빛이 꺼진 개찰구가 줄줄이 늘어서 있다. 전기가 완전히 나가진 않았는지 비상등이 여기저기 켜져 있었다. 뒤틀어졌던 주위 마나가 정상으로 돌아온 것을 확인하고 은혜부터 S급으로 올렸다.
– 삐익!
“그래, 괜찮아.”
걱정스러워하며 튀어나온 은혜를 달래며 피범벅이 된 다리에 포션을 부었다. 그나마 다친 다리 쪽이라 다행이었다. 인벤토리에서 창을 꺼내 지팡이 대신으로 쓰며 몸을 일으켰다.
“신입아!”
대체 어떻게 된 거냐고 나직하게 불렀다. 그러자 시스템 메시지가 다시 나타났다.
[신규 던전에 최초로 입장하셨습니다!완벽하게 새로운 던전! 공략 보너스 +500%!]
“…아니 이런 건 필요 없고. 보너스 500%는 고맙긴 하다만.”
던전 첫 공략 시 보상이 제일 좋긴 하지만 무려 다섯 배는 처음 듣는 소리였다.
‘여태까지의 새 던전은 사실은 다른 세계에서 공략된 적이 있었다는 뜻일까.’
우리 세계에서는 최초 공략이지만 전 우주, 시스템 통합으로는 처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이 던전은 갓 만들어진 따끈따끈한 것이고…….
“설명 좀 해줘, 설명 좀. 명우는 어떻게 된 건데? 무해의 왕은?”
[시스템 점검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아, 네.”
일단 걸음을 옮겨갔다. 다른 사람들과 합류부터 하는 게 좋겠지. 보기엔 그냥 사람 없는 지하철역이지만 던전인 이상 언제 몬스터가 튀어나올지 알 수 없다. 살쾡이 세트를 걸치고 은신 스킬을 썼다. 보자, 역삼역? 그, 여기 설마. 아니 똑같긴 한데, 설마.
개찰구를 지나 걸어가다가.
“…….”
우뚝 멈춰서고 말았다. 지하철역의 광고판 앞에서. 낯익은 얼굴이었다.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얼굴이 무표정하게 나를 마주봐왔다.
“…해당 세계의 파편이라는 게.”
이런 뜻이었나. 스물네 살, 혹은 다섯 살 즈음의, 동생이었다. 광고판의 문구는 지워져 보이지 않았다.
“던전이, 이런 것이라는 거, 알고는 있었지만…….”
상위 던전일수록 문명의 흔적이 짙게 나타났다. 성, 마을, 도시 등등. 근원에게 삼켜져 사라진 세상의 흔적들. 그리고 이것은.
내가 회귀하면서 잘려나간 세계의 흔적이었다. 한참을 말없이 동생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 진짜. 동업자 씨랑 송 실장님에게는 말도 못 했는데. 윤윤도 까맣게 모르고.”
송 실장님과 윤윤에게는 시스템이 멋대로 만들어 낸 거다, 라고 말하면 믿지 싶었지만 성현제는 백 퍼센트 눈치챌 게 뻔했다.
숨을 길게 내쉬었다. 괜찮아. 그냥 던전이다. 사람 한 명 없이 몬스터들만 득시글거리는 던전. 그런 것치곤 보존 상태가 너무 좋지만. 혹시 공략된 횟수에 따라 건물도 망가져 가는 것일까.
선명한 광고사진을 다시 올려다보며 공포 저항 스킬을 켰다. 동시에 박하율에게 미안해졌다. 스킬 효과가 발휘되는 거 보니 멀쩡히 살아는 있나 보네. 돌아가고 싶지만 그러려면 던전을 공략해야 하니까. 공략 직후 다시 꺼야지.
기계는 작동하지 않아 계단을 힘겹게 올라 지상으로 나왔다. 너무나 익숙한 거리 풍경에 기분이 묘해졌다. 아직 해가 완전히 지지도 않았는데 인도도 차도도 텅 비어 있는 모습이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다. 원래라면 유동인구 많은 곳인데.
“…버스도 택시도 없어.”
– 삑.
“이 던전 얼마나 넓은 거지. 자전거라도 가지고 올걸. 이 다리론 어차피 못 타나.”
보자, 여기가 역삼이니까… 해연길드 쪽으로 가볼까. 아마 유현이와 예림이는 해연으로 오지 싶었다. 성현제와 송 실장님도 합류를 위해 그리로 갈 듯하고, 윤윤은 괜찮은지 모르겠다. 공간이동 스킬이 있으니 정신만 차렸다면 문제없겠지. 해연길드까지 걸어서 삼십 분은 족히 걸릴 텐데. 지금 이 다리로는 더 느릴 것이다.
“그나마 몬스터는 안 보여서 다행이긴 한데, SS급 던전이면 일반 몬스터가 S급인 거 아닐지 몰라.”
살쾡이 재킷 버프를 더하면 S급에게도 은신 스킬이 통해서 다행이다. 일단은 방향을 잡고 걸어가기 시작했다.
도시는 정말로 멀쩡하게 보존되어 있었다. 심지어 편의점에 상품들까지 가득 채워진 채였다. 길가에 세워진 자동차도 드문드문 보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차 키가 없었다. 만능열쇠로 시동은 못 걸겠지.
“강남역 더럽게 멀다.”
심지어 거기서 또 더 가야 한다. 강남역 근처에 헌터협회 있는데 혹시 송 실장님 그리로 안 갔을까. 굳이 자기 자리로 간다면 협회가 아닌 각성자 관리실로 가셨겠지만.
길을 따라 터덜터덜 걸어갔다. 신호탄을 쏴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랬다가 S급 이상 몬스터들이 몰려들면 곤란하다. 그래도 도깨비들은 윤윤 빼곤 다 나갔을 테니 나머지 사람들이야 자기 몸 지키는 것쯤은…….
‘잠깐만, 왜 난 남겨뒀냐.’
신입이 내 요청을 들어준 건가. 어쨌든 얼른 합류해서 스킬 두 배 써서 공략하면 된다. 아이고, 드디어 협회 건물이 보이기 시작하네. 헌터협회에는 사람들도 있… 다……?
“…조용히 해야 해, 은혜야.”
– 삑.
은혜가 작게 울곤 목걸이의 보석 안으로 들어갔다. 인간이다. 그것도 아는 얼굴까지 보였다.
‘미친.’
헌터들. 헌터협회 소속 헌터들이 협회 건물 주위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설마설마하며 떡잎 스킬을 사용했다.
현재 스탯 등급 S
각성 가능 스탯 등급 A
최적화 초기스킬
대신 맞아 줍니다!(S) 획득
방패 막기(A) 획득
강철 피부(A) 획득 실패]
‘각성자가 몬스터냐!’
그래, 저 얼굴 본 기억 확실히 난다. 원래는 A급 헌터였는데 SS급 던전 버프라도 받았는지 S급이 되어 있었다. 그럼 S급 헌터는 SS급인건가.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무서운 사실이 떠올랐다.
유현이와 성현제. 아니, 이때의 성현제는 실종 후인가.
‘…아니겠지. 아니라고 해줘라, 신입아. 유현이는 안 돼.’
그리고 파트너 씨는 제발 실종 후 시점이기를. 지금도 힘든데 SS급 성현제라니, 악몽이 따로 없잖아. 그걸 어떻게 잡아.
만약을 대비해 은혜를 SS급으로 올리고 협회 건물에서 멀찍이 떨어진 채 살금살금 걸음을 옮겨갔다. 그런데 이대로 해연길드로 가도 되는 건가. 보아하니 해연에는 해연 헌터들이 몬스터화되어 있지 싶었다. 이 시기의 해연이면 S급 헌터가 유현이 빼고도 둘이 더 있었던가? 한 명은 지방 지부를 맡긴 했지만.
‘정확한 시기부터 확인하고, 만약 성현제 실종 후라면 세성부터 공략하는 편이 낫겠지.’
S급 이상 던전 중에는 이런 식으로 거점이 부분부분 나누어진 형태도 있었다. 그런 곳은 보통 약한 거점을 먼저 공략해야 했다.
브레이커는… 없을 듯하고. MKC는 아직 있나? 한신도 있을 거고 각성자 관리실… 으, 제발 실종 후 시기이길. 제발 제발 제발. 성현제에 송 실장님까지 SS급이라고 생각하자 공포 저항이 켜져 있음에도 등골이 다 서늘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유현이는, 없을 가능성이 낮으니 포기한다 쳐도 다른 두 명은 제발.
공략해야 할 곳이니 밖에 나와 있는 협회 헌터들을 하나하나 떡잎 써서 확인해 가며 지나쳐가고 있는데.
“누구냐!”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젠장, 걸린 건가. 그보다 말도 할 수 있어?
쇄애액!
공기를 찢는 소리가 귀를 때렸다. 그와 동시에 정확히 내 목에서 텅! 묵직한 소리가 들려왔다. 상처는 나지 않았지만 목을 세게 얻어맞은 통증과 함께 몸이 뒤로 나뒹굴었다.
“큭!”
SS급 헌터구나! 은혜가 피해를 완전히 해소하지 못할 만큼 강한 헌터. 협회에 S급 헌터가, 그래, 한 명 들어갔었지. 창을 쓰는…….
기억을 다 더듬기도 전에 공격이 연이어 날아들었다. 스탯 F급인 내 눈에는 상대의 모습이 보이지도 않았다. 복부를 걷어차이는 느낌이 들며 콰앙! 햄버거 가게 유리벽에 처박혔다. 은혜를 SSS급으로 올릴까 했지만 마나의 샘도 무한정은 아니다. SS급으로 버틸 수 있는 정도니까, 아직은.
“악!”
콰장창! 밀려닥친 돌풍에 내 몸이 다시 밀려나며 유리벽이 산산이 부서졌다. 쿠당탕, 테이블과 의자가 이리저리 넘어진다. 시발, 폭탄이라도 터뜨릴까. 뭐가 보이지도 않…….
[신규 던전 최초 공략 시도 보너스! 특별 도우미 소환! 천만 포인트 → 만 포인트 초대박 할인!!소환하시겠습니까? YES/NO]
시스템 메시지가 반짝 떠올랐다. 뭔지 모르겠지만 한다, 해! 진짜 초대박 할인이네! YES 버튼을 얼른 눌렀다. 그리고.
카앙!
내 눈앞에 드리워진 대검이 창날을 막아냈다. 카가가각, 대검의 표면을 길게 긁은 창날이 터엉 튕겨나간다. 창의 주인이 눈살을 찌푸리며 뒤로 뛰어 물러나는 것이 보이고.
“이 나이 먹고 무슨 고생인지.”
혀를 쯧쯧 차는 익숙한 투덜거림이 들려왔다. 붉은 눈이 나를 탓하듯 힐끔 쏘아봐온다. 그 시선을 향해 하하, 민망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안녕하세요, 어르신!”
어쨌든 더럽게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