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385
383화 신규 던전 (2)
한숨 돌리자마자 얼른 떡잎 스킬부터 썼다.
[1급 인간종 – 공격계 헌터현재 스탯 등급 SS
각성 가능 스탯 등급 A~S]
SS급, 원래 S급 헌터는 1급인 건가. 그럼 태생 S급은? 일단은 S급이니 똑같이 1급 인간종일까.
그러니까, 던전 출몰 6년 차에 각성한 S급 헌터, 최이람. 본명인지는 알 수 없다. 그때의 상급 헌터들은 대부분 개인정보 관리가 철저했고 S급 헌터들은 더더욱 까다롭게 보호되었다.
‘송 실장님은… 사망한 뒤인가.’
헌터 협회에 저 사람이 있다는 것은, 송 실장님이 죽은 이후 시점이라는 뜻이었다. 협회를 받쳐주던 송태원의 사망 후 헌터 협회는 S급 헌터와 S급 던전을 관리하지 못하게 되면서 빠르게 약화되었다.
실질적인 힘은 대부분 잃었지만 그래도 헌터 협회가 존속은 해야 하니 대형 길드들이 공동 소속으로 삼아 S급 헌터를 보내 주었다. 대외적으로는 협회 소속이긴 하지만 협회장의 지시도 걸핏하면 무시해 대서 말이 많았었지. 그러다가 결국은 해연에게 완전히 먹혔고.
‘그럼 성현제도 실종 후일 가능성이 높겠네.’
송태원의 사망과 세성 길드장의 실종은 시기적으로 그리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성현제가 더더욱 의심받기도 했었고.
하지만 이곳은 만들어진 던전이다. 시간대가 뒤섞여 있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다. 그래도 피스와 명우는… 확실히 없을 거고 노아 씨나 리에트, 에블린 씨도 서울 배경인 이상 없을 확률이 높겠지. 내가 모르는 루트로 들어와 있었을 수는 있겠지만.
리에트까지 있으면 진짜 환장할 판인데. 태생 S급 하나로도 힘들다고. 그나마 칭호는 못 얻었겠지만 그래도 까다로운 상대다.
“다른 던전은 이렇지 않았잖아요.”
우선 은신 스킬을 풀며 말했다. 마나 아껴야지.
“이건 너무─”
“해연 길드장 형이잖아?”
순간 혀가 딱딱하게 굳었다. 손끝이 희미하게 떨렸다. 내 귀를 의심했지만,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흐릿해서 몰라봤는데 한유진, 맞지?”
최이람을 올려다보았다. 정말 생생하게, 의아해하는 표정을 짓고 있다. 몬스터가 아닌 평범한 인간처럼.
“F급 쓰레기가 어떻게 된 거지. 내 공격을 맞고도 멀쩡하다니. 그 은신 스킬은 또 뭐야?”
[두려움이 옅어집니다!]공포 저항 스킬 메시지창이 반짝거렸다. 그럼에도 심장이 아플 정도로 펄떡거렸다. 최이람의 눈빛이 사나워졌다.
“모습을 복사하는 몬스터인가? 하지만 왜 저런 쓸모없는 인간을……. 아니면 해연길드를 노리는 헌터냐! 어차피 해연 길드장은.”
창이 치켜 들렸다. 스킬을 시전하는 듯 하얀 빛이 창날에 모인다.
“형 따위 버린 지 오래야!”
그 외침이 창날처럼 가슴에 박혔다.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카앙! 쇠붙이와 쇠붙이가 충돌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코앞인데도 멀리서 울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내 그 소리마저도 사라졌다.
그저 멍했다. 지독한 감기에 걸려 독한 약을 가득 삼킨 것처럼. 몽롱했다. 텅 빈 머릿속에 열만 화끈 올라왔다. 아니, 수십 수백 가지의 온갖 생각들이 동시에 떠올라 알아볼 수 없게, 새카맣게 뒤섞여 버린 것만 같았다.
텅─!
“네놈은 누구냐! 너처럼 어린 S급은 들어 본 적 없는데!”
“일단은 이놈 보호자다. 첫째야!”
“몬스터가 아니라면, 미국? 인도? 혹시 러시아인가.”
카가가각, 콰앙!
“이 망할 망아지가!”
내 몸이 낚아채졌다. 콰광! 요란한 소리가 울리며 앞을 가로막은 벽이 터져 나갔다. 주위의 풍경이 순식간에 뒤바뀐다.
드넓게 펼쳐진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불그레한 노을이 지고 있었다. 그 끝에 희미한 청보라 빛이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빌딩의 옥상인 듯했다. 제대로 쉬어지지 않던 숨이 쿨럭 터져 나왔다.
“이, 이 던전, 없애야…….”
“제대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 그런 거라더라.”
헐떡거리며 주먹으로 내 가슴을 두들겼다. 은혜가 막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당황한 듯 삑삑거렸다.
“왜, 왜……. 말은, 그렇다 쳐도, 기억을…….”
왜, 어째서. 어째서 전부 다 기억하고 있는, 거지. 나를 알아보는 거냐고. 어린 혼돈이 손끝으로 머리를 조금 긁적였다.
“원래는 정보는 전부 지워진다. 다른 세계로 빠져나가선 안 되니까 말이야. 나는 자세히 모른다만 몬스터들도 사라진 세계를 바탕으로 하되 새롭게 만들어 낸다고 하더군. 하지만 여기는.”
옥상의 난간 위로 가볍게 올라서는 발끝이 보였다. 헐렁한 옷자락이 바람결에 흔들렸다.
“첫째 네 세상을 바탕으로, 네 세상에 만들어진 던전이지. 일종의 정보 과잉에 급하게, 서툴게 만든 탓인 모양이다.”
“신입, 신입에게 전해 주세요! 이 던전을 없애 달라고!”
겨우 진정은 했지만, 여전히 몸이 약하게 떨렸다.
“애초에 왜 이런 던전을 만든 겁니까! SS급 마왕이 튀어나왔다고 해도, 그냥 잡게 내버려 두지! 충분히 해결할 수 있었는데!”
도깨비들이 있으니 스킬 두 배에 더해 우리 애까지 쓸 수 있었다. 그거면 SS급 정도야 잡기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던전을! 혼돈이 고개를 돌려 나를 내려다보았다.
“자아내는 악몽은 무해의 왕과 연관이 있는 마족이었다. 이름이 지워져서 시스템상 파악이 불가능했지만, 무해의 왕은 도깨비를 보자마자 알아챈 것이지.”
…예전 기억들을 빠르게 더듬었다. 무해의 왕이 나타났을 즈음에 중국으로 간 윤윤의 연락이 끊겼었다. 그리고, 무해의 왕과 계약한 최석원도 중국과 연관이 있었다. 나를 넘기고 중국의 지원을 받으려고 했었지, 분명.
“무해의 왕이, 관여한 함정입니까.”
그녀가 죽은 후의 일은 중국 군부의 계획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밑바탕에는 무해의 왕이 있었다. 직접 개입할 순 없었겠지만 윤윤을 다룰 방법을 알려 줬을 것이다. 흡수되어 사라진 마왕을 끌어낸 것도 무해의 왕의 힘이었겠지.
머릿속이 천천히 식어 갔다.
“자아내는 악몽은 어떤 마왕입니까. 무해의 왕과 관련이 있다면, 기억… 하긴 악몽도 사람의 기억이 만들어 내는 것이죠.”
“그런 자잘한 몬스터를 내가 어떻게 다 알아. 이것도 토끼가 말해 준 거다.”
자잘한이냐. 그래도 SS급인데 잡몹 취급을 하시네.
“대충, 그대로 두면 위험하기에 토끼가 던전으로 약화시킨 거라더군. 무해의 왕이 관여했기에 조건이 맞아떨어지면 SSS급 이상으로 빠르게 성장한다나.”
…최석원 때처럼 말인가. 그런 거였으면 어쩔 수 없었겠구나. 하지만, 그래도.
“그래도, 여긴… 자, 잠깐만요! 다른 사람들도 다 들어와 있잖아요! 유현이, 유현이도!”
심장이 다시 덜컥 내려앉았다. 목이 따갑게 말라 붙었다.
“동생은, 모르는데, 아무것도 모르는데… 어, 어디 있는 거지. 해연으로, 갔으면. 아니, 다른 사람들에게도, 몬스터들에게 나에 대해 묻기라도 하면…….”
무슨 이야기를 들을지 불 보듯 뻔했다. 허겁지겁 일어나려다가 비틀거리며 주저앉았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억지로 힘을 주는 바람에 욱신욱신 아파 왔다. 빨리 찾아야, 이거 다 마왕의 짓이라고, 그냥 악몽이라고…….
“둘째 말고 네 녀석 걱정이나 해라.”
가벼운 발소리가 내 앞으로 다가왔다.
“금방이라도 명줄 끊어질 듯한 얼굴을 하고서는.”
“걘 모른다고요! 다들 동생이 절 버렸다고, 그렇게 말할 텐데. 그냥 버린 것도 아니고… 내가, 혹시라도 내가 당한 일들도, 다 알게 되면, 그, 그리고 내가 유현이 원망하는 것처럼 꾸민 기사도 있었는데! 또, 또…….”
내가 각성하기 전에는 그저 사이가 틀어진 정도였다. 하지만 각성한 후는 아니다. 공포 저항 스킬 메시지가 끊임없이 깜박거렸다. 죽을 것처럼 초조한데도 내 몸뚱이는 제대로 움직이지도 않았다.
“둘째 녀석이 널 제대로 보호하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을 가진다 해도, 그건 둘째 녀석이 감당해야 할 일이지.”
“유현이 잘못이, 아닙니다!”
아랫입술을 깨물며 말을 이었다.
“제가 약해서예요, 제가. 아직 어린 동생이 집을 떠나야 했던 것도요, 절 지키기 위해서였으니까요. 제가 좀 더 강했더라면 떠나지 않았을 텐데. 혼자 외롭지도 않았을 텐데. 혼자 먼저 가버리는 일도, 없었을 텐데.”
동생 잘못은 없다. 그 애는 노력했다.
“파랑새 너 가만히 있어라.”
– 삑?
어린 혼돈이 손을 들어 올렸다. 반사적으로 귀를 가렸지만 이번에는.
“악!”
등짝이었다. 아프다! 아니, 따갑다. 등 전체가 얼얼하게 화끈거렸다.
“약해서는 뭘 약해서야.”
“약한 거 맞잖아요!”
“내 눈에는 첫째나 둘째나 오십보백보다! 토끼나 늑대나.”
“완전히 다른데요? 심지어 초식이랑 육식이잖습니까.”
“용에게는 둘 다 쬐끄만 간식거리야.”
찰싹, 소리와 함께 등짝이 한 대 더 후려쳐졌다. 안 그래도 고여 있던 눈물이 주르륵 흘러나왔다. 뺨이 금세 흠뻑 젖었다.
“약한 게 잘못이 될 순 없다.”
어린 혼돈이 단호하게 말했다.
“약한 것이 잘못이라면 나 빼곤 죄다 잘못된 것이 되겠지.”
“그건…….”
“모자라고 부족한 건 잘못이 될 수 없다. 높은 곳에서 떨어져 죽은 사람에게 날지 못한 탓이라 말할 거냐. 맹수에게 쫓겨 물려 죽은 사람에게 더 빨리 뛰지 못한 탓이라 말할 거냐.”
“…아니죠, 당연히.”
“못하는 건 못하는 것. 딱 그뿐이다. 그 자체는 죄가 아니야.”
그건, 그렇지만. 그렇지만.
“하지만 저 때문에, 동생이 힘들었잖아요.”
“둘째 선택이니 둘째가 책임질 일이다.”
“되게 쉽게 말하시네!”
“네 동생이 그것 하나 못 견딜 녀석이냐.”
입을 꾹 다물었다. 어린 혼돈이 입꼬리를 올렸다.
“내가 보기에는 첫째 너만 있으면 무슨 일이 생기든 멀쩡할 것 같다만.”
“그래도, 저는. 동생이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거든요.”
“네가 다 감싸 줄 수는 없어.”
아픈 일 없었으면 좋겠다. 힘든 일 없었으면 좋겠다. 세상 누구보다 행복하게, 미소 지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둘째도 네가 자기 때문에 힘들어하는 건 싫어할 거다. 쓸데없이 다 짊어지려 하지 말고 둘이 부둥켜안아. 그거면 다 될 녀석이니.”
다시 몸을 일으켰다. 천천히, 넘어지지 않게 조심해서.
“분명 미안해할 거예요. 엄청나게.”
“받아 줄 사람이 있으면 괜찮아.”
“…그렇죠. 받아 줄 사람이 있으면 괜찮죠. 괜찮다고 해줄 사람이 있으면, 정말로 괜찮아지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동생이 이미 알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빨리 만나서 괜찮다고 해줘야 했다.
“해연길드로, 그러니까… 저쪽이에요. 부탁드리겠습니다.”
어린 혼돈이 나를 들었다. 어린애 모습이다 보니 모양새는 영 별로였지만 의외로 예림이 보다는 안정적이었다. 사람 많이 들어 보셨나.
가벼운 발구름 한 번으로 주위 풍경이 쓱쓱 바뀌었다. 빌딩과 빌딩 사이를 뛰어넘으며 순식간에 해연길드와 가까워져 간다. 너무도 익숙한 풍경이 내 눈에 들어왔다. 어린 혼돈이 도로 위로 사뿐히 내려섰다. 가로수 가지를 꺾어 손날로 다듬어선 내게 건네주었다.
“저거 보세요.”
한 걸음, 두 걸음. 천천히 길드 건물로 다가갔다. 하지만 반투명한 막에 가로막혀 멈추고 말았다. 막 너머로 커다란 트리가 보였다. 건물 로비에, 전면 유리창 안쪽으로 세워져 반짝거리는 크리스마스트리가.
색색의 전구와 각종 장식들도 여기저기 달려있었다. 밖의 화단은 붉은 포인세티아로 가득하다. 화사하게 장식된 건물이 둥그런 막에 감싸졌다. 마치 스노 글로브 같았다.
뒤늦게 추위가 느껴졌다. 차가운 바람이 옷 사이로 스며들었다.
“제 동생 생일이, 크리스마스거든요.”
유현이는 광고 찍는 걸 싫어했다. 그래서 지하철에서부터, 어렴풋이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다른 곳에는 트리도 금빛 종도 눈송이 모형도 없었다. 평범한 일상 속의 거리였는데.
반투명한 막에 손을 얹었다. 로비 안에도 밖에도 아무도 없었다. 조용했다. 어쩌면 저 안은 크리스마스이브일지도 모른다. 아직 이른 저녁이지만, 슬슬 파티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올해는 둘이 같이 보낼 겁니다. 오랜만에, 둘이서만.”
“밖의 시간으로는 꽤 남았을 텐데. 그래도 올해는 보낼 수 있겠다만.”
“내년에도요. 그리고 내후년에도, 그 다음에도.”
“말은 잘하지.”
“여기에, 보스 몬스터가 있나 봅니다.”
다른 곳을 모두 처리하고 나면 마지막으로 보스 지역이 열리는 형식이다. 주위를 살펴보았다. 우리 둘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막혀있는 것을 보고 다른 장소로 먼저 간 걸까. 인벤토리에서 메모지를 꺼냈다.
“협회는 상대적으로 만만하고 여기서 제일 가까우니 세성길드 쪽으로 먼저 가겠습니다.”
세성길드로 간다는 메시지를 적어 막에 붙였다. 그런데…….
‘만약 성현제가 세성에 아직 있다면.’
그 성현제에게 나는, 아무 가치도 관심도 없는 F급 헌터일 것이다. 회귀 후 처음 만났을 때와도 비교할 수 없이 무감정하게 바라봐오겠지. 뒷목이 또 오싹해졌다. 진짜 싫다, 이 던전. 말 그대로 크리스마스의 악몽이네. 현재에 미래가 뒤섞였는데 이러다 과거까지 나오는 건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