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399
397화 일몰 (1)
– 형! 형! 형! 유현이 혼내 줘요!
이린이 내 어깨로 폴짝 뛰어 달라붙으며 크게 외쳤다. 덕분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근데 갑자기 왜……?
– 유현이가 위험한 짓 했어요!
“응? 위험한 짓이라니.”
– 유현이 근원을 끌어내서 써버렸다고요!
조그만 도마뱀이 팔짝팔짝 뛰며 왁왁거렸다. 그러니까.
“린아, 진정하고 차분히 설명해 봐. 근원이라고?”
– 불이요! 아직은 그러면 안 되는데! 이제 겨우 조금 느끼기 시작한 걸 그렇게 막 꺼내면! 제대로 다루지 못해서 회수를 못 한다고요!
역시 잘 못 알아듣겠다. 그러니까, 근원이 불이라는 건. 유현이가 가지고 있는 근원의 힘을 말하는 건가? 태생 S급은 여느 인간들보다 근원의 힘을 많이 지녔다고 했었지. 유현이의 경우 그 근원의 속성이 불이고.
“파란색 불을, 말하는 거야?”
그때 약간 불안한 듯 눈치를 살피고 있던 내가 말했다.
“파란색 불? 검푸른 거?”
“아니. 완전히 푸른색이었어. 반투명할 정도로 맑았고.”
완전한 청염. 그것이 유현이가 지닌 본성의 불이라는 건가. 나를 바라보고 있던 나의 시선이 아래로 떨어졌다. 마른 입술이 잘근 깨물렸다.
“원래라면 나는 정해진 구역 밖으로 나올 수 없었는데.”
“뭐? 어, 구역 보스 몬스터였다고? 네가?”
나더러 네가라고 하니 묘하게 들리네.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를 가두고 있던 막을, 유현이가 없애 줬어.”
그 푸른색 불길로. 내 말에 놀란 눈으로 유현이를 돌아보았다. 구역 보스를 가둔 막이라면, 시스템의 영역이며 던전의 일부였다. 그것을 유현이가 부쉈다는 뜻이었다.
여태까지 초월자가 아니고서는 던전에 손댈 수 없었는데 그 일부나마 파괴해 버렸다니. 그게, 가능해? 각성한 지 몇 년 되지도 않았는데?
“아니 대체, 어떻게…….”
– 진정한 불은 무엇이든지 태울 수 있으니까요! 린이도 잘은 몰랐었는데, 불이 푸르게 변한 게요, 유현이가 자기 근원을 받아들이기 시작해서였어요!
이린이 자랑스럽게 목을 쭉 뻗으며 말했다.
– 진짜 불은 막을 수 없어요. 방어 스킬이든 화염 저항이든 전부 다요! 그 깜장 칼도 녹일 수 있어요!
“어, 화염 저항도 안 통하면 유현이도 위험한 거 아니야?”
– 유현이는 유현이잖아요. 형의 그 파란색 새도 먹어 버릴 수 있는데.
“그건 안 돼! 절대 안 된다, 린아, 유현아.”
L급 아이템도 당해낼 수 없다니, 사기다. 아니, 근원의 힘 자체라서일까. 애초에 던전도 아이템도 근원의 힘에서 나온다고 할 수 있으니까 가능하지 싶지만, 그래도 사기잖아. 방어가 불가능한 공격이라니.
“그런데 위험한 짓이라는 건 뭐야? 그 힘을 쓰는 게 위험한 일이라는 건가?”
– 맞아요, 형! 보통은 자기 본질의 힘을 끌어내는 거 자체가 불가능하거든요! 우리 정령처럼 태어날 때부터 속성 자체가 아니면 안 돼요. 자기 힘을 아주 오래 능숙하게 쓰다 보면 근원의 힘도 느낄 수 있는데, 그러고도 다시 천천히 오래 익숙해져야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다고요!
“그런데 유현이는 너무 일렀고?”
– 네! 게다가요, 유현이는 계속 누르고 있었잖아요. 자기 자신을 부정해 오다가 겨우 받아들이기 시작한 건데!
다시 말해 이제 겨우 걸음마, 아니 혼자 설까 말까 하는데 대뜸 뛰어 버렸다는 소리인 모양이었다. 그러다간 넘어져서 다치지.
– 그래서 근원의 불을 끌어내어 사용하면 다시 거두질 못한다고요! 흩어져 사라져요!
“…그럼 어떻게 되는 건데?”
– 자신의 일부가 소멸하는 거니까, 유현이 수명이 줄어들어요!
“뭐?!”
나도 놀랐지만 또 다른 나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버렸다. 무심코 한 발 뒤로 물러서기까지 하는 내 모습에 유현이가 변명하듯 말했다.
“상관없어, 그런 건.”
“뭐가 상관없어!”
“상관없다니! 애초에 내가, 나와선 안 되는 거였는데!”
“정말이야, 형.”
동생 놈이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나는 아마도 형보다 훨씬 오래 살 수 있겠지. 그러니까 상관없어. 내 진짜 수명은 형과 같을 테니까.”
“유현아!”
“한유현!”
나와 내가 동시에 동생을 탓했다. 인상을 잔뜩 찌푸렸지만, 동생 녀석은 오히려 즐거워 보이기까지 했다.
“형은 싫어하겠지만 이것만큼은 양보 못 해.”
“아니, 그래도! 린아, 얼마나 줄어든 건데?”
– 린이도 잘 몰라요. 아마 일주일에서 많으면 일 년이요!
“일 년? 진짜?!”
– 네! 유현이 만 년 살 거 구천구백구십구 년밖에 못 살게 되는 거라고요!
…만 년 중에 일 년이라고 하니까, 아니 물론 단 하루라도 내 동생 수명 날아가는 일은 벌어져서는 안 되지만, 그래도 뭔가 맥이 빠졌다. 태생 S급, 원맥자가 오래 산다는 거야 알고 있었지만 만 년이라니.
“정말로 만 년이야? 수명이 그렇게까지 길다곤 안 했던 거 같은데.”
– 린이 계약자잖아요. 그 정도는 돼야죠!
그냥 이린의 희망사항일 뿐인 건가.
– 그러니까 형도 오래 살아야 해요! 형은 얼마나 더 살 거예요?
“어… 백 년 채우도록 노력은 해보겠지만 아마 안 될─”
– 안 돼요, 형! 그럼 유현이도 빨리 죽잖아요! 오래 살도록 노력해요!
안 된다고 해도 말이야. 백 년만 더 살아도 내 나이가 백삼십, 아니 백이십오 세다. 그 정도면 기네스북에 오를 나이라고. 그보다 더 사는 게 노력으로 되겠냐.
“음, 유현이가 마음을 고쳐먹고 오래 살게 만드는 건 어떨까.”
– 무슨 말이에요, 형.
이린이 정색하며 눈을 가늘게 떴다.
– 형이 없는데 유현이가 어떻게 살아요.
“아니, 살 수도 있지.”
– 못 살아요. 좋아하는 사람이 사라졌잖아요. 제일 소중하고 유일하게 사랑하는 존재가요.
“새로 생길 수도 있─”
– 그건 유현이가 아니에요! 형만 바라보는 불이 아니었으면 린이 깨어나지도 않았어!
이린이 빼액 소리쳤다. 얼씨구. 화가 잔뜩 난 듯 꼬리를 탁탁 치며 씩씩거린다.
“린이 너 유현이 좋아한다며. 근데 고작 그걸로 유현이가 아니라고까지 하냐.”
– 하지만 린이는, 불의 정령인걸요! 최초고 제일 강하고 제일 순수한 불이니까!
“야, 그럼 유현이가 나보다 더, 아님 나만큼이라도 다른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떠나기라도 할 거야?”
– …….
이린이 입을 꾹 다물었다. 이 녀석 봐라. 진짜 계약 파기하고 떠나려고? 이린이 볼을 잔뜩 부풀리더니 또 크게 소리쳤다.
– 유현이가 유현이가 아닌데! 유현이가 그럴 리 없는데 형은 왜 그래요! 너무해! 유현이가 안 그럴 거니까 린이가 유현이랑 계약한 건데! 유현아아아! 형이 자꾸 널 의심해!
이린이 빼애애앵 울면서 유현이 손 위로 폴짝 넘어갔다. 당연하게도 내게서 떨어지자마자 말소리가 뚝 끊겼다. 입만 벙긋벙긋하더니 다시 어쩔 수 없다는 듯 내 팔에 달라붙어 또 너무하다며 빼앵거리기 시작했다.
“나도 그런 나는 싫어. 기분 나쁘고.”
유현이가 내 팔에서 이린을 떼어내며 말했다. 바동거리던 불도마뱀이 유현이의 손등 위로 스며들었다.
“내가 아니겠지. 그런 건. 어쩔 수 없어, 형.”
동생이 나와 나를 바라보았다. 가늘게 미소 띤 두 눈이 붉은 기를 머금은 듯했다.
“물론 형이 바라는 대로 있을 수는 있어. 참는 거야 익숙하니까. 하지만 이제는, 나는 내가 싫지 않아. 형이 나를 받아 줬으니까, 조금 더 욕심이 생겼어.”
예전에 유현이는 불의 성질을 가진 자신이 싫다고 했었다. 계속 억누르기만 하던 녀석이. 어떤 대답을 해줘야 하나 생각을 고르는데, 멍하게 유현이를 바라보고 있는 내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구나. 이때의 나는.
“…유현아.”
던전 속의 내가 입을 열었다.
“뭐가 어떻게, 얼마나 변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나는 만약 네가 예전 그대로, 우리가 같이 살 때처럼 웃고 있었다면. 행복해 보였다면. 그럼 그냥, 조용히 물러나려고 노력했을지도 몰라. 미련은 잔뜩 남았겠지만 그래도.”
…만약에 유현이가, 그런 얼굴이 아니었다면.
“하지만 넌, 그러지 않았으니까. 넌 진짜 잘 웃었는데. 풍족하다곤 절대 말 못 할 형편이었지만 행복해 보였다고. 별거 아닌 일에도 즐거워했고.”
동생이 집을 막 떠났을 때가 떠올랐다. 내 동생이 완전히 변해 버린 것처럼 느껴졌었다. S급 각성자고 앞으로 잘 나갈 거라고 말들 해도, 걱정밖에 되질 않았었다. 던전과 몬스터의 위험도 위험이지만 그렇잖아. 애가 저런 얼굴인데.
“그런데 지금은 예전처럼 보여. 행복한 거 같아. 그러니까, 그거면 되는 거 아닐까. 나는 지금 하는 이야기를 잘 모르겠지만 네가 뭐 어떻든 간에 말이야, 행복하다면 된 거잖아. 세상은 다양한 기준을 들이대긴 하지만 말이야,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이겠어. 남의 인생 대신 살아 줄 것도 아니고, 자기 자신이 제일 중요하지.”
내가 다시 시선을 아래로 떨구었다.
“…다들 입 모아 잘못되었다고 하면, 그런 것처럼 느껴지긴 하다만 말이다. 근데 보통은 아무 생각 없이 던지는 말들이더라고. 아무튼 나는, 지금의 네가 훨씬 좋아 보여.”
너도 그렇지 않냐는 듯 내가 나를 바라봐 왔다. 그야, 당연한 소리였다.
“내 말이 맞지 뭐. 그래도 유현이 너, 수명이 설사 만 년이 아니라 십만 년, 백만 년이라도 함부로 쓰는 건 안 돼. 말이 좋아서 일 년 깎인다는 거지 결국 몸이 상한다는 소리잖아. 게다가 린이 말대로라면 안전하게 쓸 수 있게 될 힘이기도 하고.”
“응, 알았어. 조심할게.”
“물론 위험할 땐 망설이지 마. 일단 살고 봐야지.”
죽으면 남은 수명이 무슨 소용이겠냐. 뒷목을 조금 긁적이며 나를 바라보았다. 역시 기분 이상하다.
“음, 저기. 혹시 몇 살이야?”
“…스물아홉.”
서른은 아니구나. 내가 들고 있는 상자를 힐끔 쳐다보았다. 내 생일 케이크는 아닌 듯하고, 크리스마스거나 이브인 시점인 걸까.
아무래도 이곳은 사람, 몬스터마다 구역마다 시간이 조금씩 다른 듯했다. 크리스마스 장식이 된 곳은 해연 길드뿐이기도 했으니. 만약 던전 전체가 크리스마스 기간이라면 세성 길드 건물에 리본 장식 하나 없었을 리 만무했다. 성현제도 성현제지만 소영 씨가 길드장 대리였잖아. 파티도 했을걸.
성현제가 말한 시간대도 그러했다. 똑같이 송 실장님 사망 1년 반이 넘었다면 눈앞의 나는 서른 살이었을 것이다.
“세성 길드장이라고 알지?”
“어. 실종되었잖아.”
“혹시 세성 길드장이 엽서 보내온 적 있냐?”
내가 나를 미친 놈 쳐다보듯 바라봐왔다. 응, 역시 기억에 없구나. 심지어 동생까지 내게 무슨 소리 하냐는 눈길을 던졌다.
“이때는 만난 적 없다며.”
“어, 어. 내 기억으론 그렇거든. 근데 저어기, 몬스터로 나온 성현제가 나랑 만난 적이 있다네.”
“역시 형 때문에 폐쇄된 거였군.”
유현이의 목소리가 서늘하게 낮아졌다.
“왜 혼자서, 그것도 해연도 아닌 세성 길드로 간 거야.”
“아니, 해연 먼저 갔지! 당연히! 그런데 아무도 없어서 메시지 남기고 세성 길드 쪽으로 간 거라고. 진짜야! 그리고 혼자도 아니었고. 혼돈 어르신과 같이 갔었는데 돌아가셔서. 그 돌아가신 게 아니라 밖으로 나간 거라고 해야 하나.”
보기로는 돌아가신 것 같았지만. 유현이에게 던전에 들어온 후의 일들을 대략 설명해 주었다. 성현제의 기억 부분은 빼고.
“그래서 폐쇄되었는데 이게 공략된 걸로 치는 건지는 모르겠어.”
“해연 길드는 최종으로 열리고, 형이 있던 곳은 내가 부쉈으니 이제 확인된 공략 구역은 헌터 협회뿐인가. SS급 헌터가 있었다고?”
“어. 아마도 그 헌터가 보스이지 싶더라.”
“다른 구역도 있을까? 관련 있는 곳으로 갔다면 박예림 헌터는, 어디지.”
“그게, 그러니까…….”
예림이 길드가, 분명 알고 있었는데.
“물보라 길드야. 동묘 근처.”
내가 말했다. 아, 그랬지.
“동묘구나. 그리고 송 실장님은 각관실이 아닐까 싶더라. 현충원은 이 근처니까 세성 길드 무너지는 꼴 보고 오지 않았을 리 없잖아.”
하지만 윤윤은 물론이요 노아와 성현제는 어디로 갔을지 짐작 가는 곳이 없었다. 특히 성현제는 세성 길드가 아니라면 어디에 떨어진 걸까.
“유현이 넌 짐작 가는 곳 없지? 세성 길드장이 갈 만한 곳.”
“응, 전혀. 형이 더 잘 알잖아. 세성 길드장 안전 가옥도 안다면서.”
“거긴 아닐 거 같은데. 전에 갔던 호텔 종종 쓴다던데 거긴가? 아니면 즐겨 찾는 식당이나 바? 설마 송 실장님 집인가. 아니면 주로 갇혔던 특별 격리실이나 각성자 관리실일 수도 있겠다. 근신용 사택도 확인해 볼까.”
“…왜 그렇게 잘 알아?”
“송 실장님과 소영 씨와 이야기하다 보니까 말이다.”
당사자가 알려 준 것도 있지만 그 두 사람, 특히 소영 씨 입에서 나온 게 많았지. 어쨌든 지금은 목적지가 확실한 동묘부터 가는 게 나을 듯했다. 동묘로 가려면…….
[곧 해가 집니다!]그때 시스템 메시지창이 나타났다.
[주의! 일몰 후 드래곤이 풀려납니다!]이건 또 뭔 소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