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400
398화 일몰 (2)
“봤어?”
동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얼른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내내 주홍빛이던 하늘의 끝자락이 조금 더 짙어진 것이 보였다.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다. 해가 완전히 지기까지 얼마나 남았을까.
“드래곤이 나타나면, 어쩌라고. 잡으란 거냐?”
[☆허니를 위한 간략한 밤의 던전 매뉴얼★]새롭게 메시지창이 나타났다. 신입이 만든 거라면 기대가 되진 않았지만 확인은 해보았다.
[1. 악몽은 해가 지면 더욱 강해집니다.2. 일몰 후 외출은 권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나가야 할 경우 순간이동 또는 공간이동이 가능한 공략자와 동행해 주세요.
3. 일몰 후 혼자 외출한 사람이 돌아왔을 시 문을 열어 주기 전 회귀 후에 대한 질문을 하세요.
4. 강남의 호텔은 안전합니다.
5. 호텔에는 숙박객도 방문객도 없습니다. 직원 또한 없습니다.
6. 옥상으로 올라가지 마세요. 달과 너무 가까워집니다.
7. 마찬가지로 비행 스킬을 쓰지 마세요.
8. 정문에 보초를 두 명 이상 세워 두세요. 누군가 문을 열려고 한다면 열지 못하게 붙잡고만 있으면 됩니다.
9. 창문은 모두 닫고 가능하면 커튼도 치세요.
10. 날이 밝을 때까지 호텔에서 편히 쉬시면 조식은 서비스입니다!]
뭔가 길었지만, 결론은 강남에 있는 호텔에 처박혀서 날이 밝을 때까지 기다리라는 소리였다. 밤이 되면 악몽이 더 강해진다니. 지금도 SS급인데 SSS급이라도 된다는 건가?
“해가 완전히 질 때까지 얼마나 남았지? 강남으로 가야 해. 유현이 너한테도 메시지창 떴어?”
“강남 호텔로 가서 날이 밝을 때까지 대기하세요. 이렇게.”
그럼 다른 사람들에게도 메시지는 도착했지 싶었다. 하지만 신입이 실수했을 수도 있고 자세한 주의사항까진 전해지지 않았으니까. 인벤토리에서 폭탄을 꺼내 들었다.
“만약에 헌터들이 몰려들면.”
“내가 처리할게.”
동생이 가볍게 대답했다. 길에 있는 헌터의 등급은 낮으니까 괜찮을 것이다. 구역 내의 헌터들 중 구역을 벗어날 수 있는 일반 몬스터는 S급 이하일 테고.
“자.”
유현이에게 폭탄을 건넸다. 그것을 받아 든 유현이가 폭탄을 하늘을 향해 높게 던졌다. 적당한 높이가 되었다 싶을 때 스위치를 눌렀다.
콰아앙!
요란한 소리와 함께 불꽃이 터져 나갔다. 빌딩의 창문이 와장창 깨지며 유리 조각들이 비처럼 쏟아져 내린다. 유현이가 얼른 나와 나를 양팔로 감쌌다.
“난 은혜 있어.”
“그래도 자잘한 상처는 못 막아 주잖아.”
유현이가 바닥에 구를 때 생긴 뺨의 생채기를 바라보며 눈썹을 찌푸렸다.
“강남 쪽으로 이동하면서 일정 거리마다 터뜨리자.”
폭탄 터지는 거 보면 나라는 걸 눈치채겠지. 그런데, 음.
“하필 우리가 둘 다 다리를 다쳐서.”
“너는 왜? 그땐 멀쩡했잖아.”
내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그러게 말이야.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어.”
“포션은.”
“어, 지금은 쓸 수 없어서.”
전체적인 몸 상태는 나보다 오히려 29살의 내가 더 낫지 않을까. 오래 던전을 다녀서 체력도 더 좋을 테고 키도… 야악간 더 크고. 나도 더 클 거지만. 왜 안 크지. 불량한 식생활이나 잦은 과음 문제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마력적으로 골병든 나보다야 멀쩡할 것이다.
“내가 두 명 다 들 수 있어.”
유현이가 말했다. 한 팔에 하나씩 끼고 갈 셈이냐.
“그러다 헌터들과 마주치면 어쩌려고. 차 안 가지고 왔지?”
“소리도 크고 불편하니까.”
“그렇긴 하지. 역시─”
“저쪽에 한 대 세워져 있었어.”
내가 손을 들어 방향을 가리키며 말했다. 같은 사람이다 보니 긴말할 필요가 없네. 곧장 오토바이를 끌어냈다. 사방이 막힌 자동차보다야 역시 오토바이가 좋지.
“넌 헬멧 써. 그 케이크는…….”
손에서 놓을 줄 모르는 걸 보니까 입안이 씁쓸해졌다.
“같이 산 거야? 가게 문 안 열었을 텐데.”
“돈은 두고 나왔어.”
유현이가 들어 주겠다 하는 것도 괜찮다며 거절했을 모양새가 눈에 선했다. 그래도 케이크 살 여유도 있고. 이때의 나라면 꽤나 날이 서 있었을 텐데, 유현이가 많이 잘해 줬나 보다.
“그런데… 너 말이야. 일단 나기는 하다만 좀 이상해진 거 같다.”
“어?”
무슨 소린가 했는데 회귀 전 내가 내 옷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니까 핫핑크 색의… 오해다!
“아니 이건, 따뜻해서! 내 취향이 아니라 아이템이야, 아이템! 인벤토리에도 들어가고, 그냥 보온 옵션이 좋은데 던전 밖은 겨울이 아니라서 좀 춥더라고, 그래서!”
“단순 보온 장비는 흔하잖아. 그런데 굳이 그런 색으로 맞춰서 가지고 다닌… 다고? 인벤토리에 굳이 넣어서?”
“야, 이땐 아직 흔하진 않았거든. 그리고 뭐냐, 이게 세성 길드장이 짜준 건데.”
내 눈초리가 더더욱 이상해졌다.
“사정이 있어, 사정이! 세성 길드장 생일 선물로 핫핑크 털실을 퍼부어 줬거든. 아니 그냥 엿 먹으라고 한 짓인데! 내 정신은 멀쩡하니 표정 좀 풀어라.”
나는 나를 정신 나간 놈 대하듯 쳐다보고 있고 동생은 그런 우리를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유현아, 뭐가 그렇게 좋으냐. 만족스럽게 사냥 끝내고 늘어진 맹수 같은 얼굴이다.
“나도 멀쩡하게 산 건 아니다만 회귀하고 상태가 더 나빠진 거 같은데.”
“아, 아니거든? 빨리 타기나 해.”
내가 내 뒤에 타더니 또 한 소리 했다.
“각성한 지 얼마나 된 거냐. 이때 내가 이렇게 말랐던가?”
“그러는 너는 얼마나 건강하다고!”
“팔뚝도 말랑하잖아.”
“뭐가! 이 정도면 보통이지! 없는 소리를 막 지어내내. 옷만 잡아, 옷만!”
아니 솔직히 현대사회의 보편적인 비각성자 대비 몸 좋은 편이거든! 배도 납작하고, 뭐 선명한 식스팩 같은 것까진 못 바라지만 나름 근육 만들어져 있는데? 양심 없게 4년이나 더 던전 공략 다닌 몸뚱이랑 비교하냐.
내가 진짜 나가면 반드시 운동한다!
“형은 간식 줄이고 운동하긴 해야 해.”
“해! 할 거야!”
“안 하는구나, 역시. 간식은 또 뭐야.”
“형이 단걸 좋아하잖아.”
“안 좋아하는데? 나이 들었다고 입맛도 바뀐 건가. 회귀 언제 했다고?”
“환갑 넘어서 했다, 왜! 나도 안 좋아해. 그냥 있으니까 먹는 거지.”
나조차도 내 편을 안 들어주는 세상이라니. 투덜거리며 시동을 걸었다. 유현이가 이린을 회귀 전 내 어깨로 보냈다. 강남 쪽으로 방향을 잡고 오토바이를 몰아갔다. 길에 돌아다니는 헌터는 드문 듯했지만, 이제는 폭발을 보고 몰려들 테니 속도는 적당히 올렸다. 빠른 반응을 위해 유현이에게 선생님 스킬도 걸어 두었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가지 못해 헌터들이 튀어나왔다.
“뭐─”
카가각, 연검화한 군림자의 검이 나를, 우리를 보고 놀란 헌터를 향해 휘둘러졌다. 채찍처럼 크게 원을 그리며 단숨에 헌터 무리를 쓰러뜨린다. 헌터들을 둥글게 훑은 연검이 멈추지 않고 그 기세 그대로 이번에는 아스팔트 바닥을 반원을 그리며 두들겼다.
콰드득!
튀어 오른 아스팔트 조각들이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재차 검이 공기를 갈랐다. 강하게 얻어맞은 검은 파편들이 다가오는 또 다른 헌터들을 향해 수십 개의 암기처럼 날아든다.
“윽!”
“해, 해연─”
파편으로 접근을 막아 시간을 끈 유현이가 곧장 헌터 무리 사이로 파고들었다. 검이 한 번 휘둘릴 때마다 헌터들이 우르르 쓰러져 갔다. 지형지물을 날리거나 불길의 창을 던져 견제하며 동시에 빠르게 이동해 적들을 쓸어버린다.
오토바이의 속도를 늦출 필요도 없이 깔끔하고 스피디한 사냥이었다. 각기 다른 무리를 향한 견제와 공격을 함께 하다 보니 우리 근처로 다가올 수 있는 놈들도 없었다.
“유현이가 몬스터를 상대하는 걸 직접 보는 건 오늘이 처음인데.”
내가 작게 말했다.
“대단하긴 대단해.”
“당연하지. 저 검 내가 사준 거다.”
“진짜?”
“옷도, 안의 중국옷 말고 로브도 내가 뜯어다 준 거야.”
“랭킹전에서 본 기억 있어. 일본 헌터였지.”
“응. 시시오라고, 뭐 나름 친해.”
비록 그 인간이 나를, 나를, 아니 생각하지도 말자. 만약 이것까지 들켰다간 진짜 미친놈 취급받겠구만. 나도 내 인생, 우리 인생 이 꼴 만들 생각은 없었다고.
얼마쯤 가서 폭탄을 하나 더 터뜨렸다. 다들 거리가 좀 되는지 아직 나타난 사람은 없었다.
“송 실장님도 개인적으로 만난 기억이 없다는 거지?”
“어. F급이니 당연하잖아.”
헌터 담당 공직자라 해도 S급에 관리실 실장이다. 그러니 송태원이 F급 헌터의 일에 직접 나설 리는 없었지만, 정말로 그랬을까. 다시 생각해 보면 살짝 의심이 들었다. S급 헌터, 그것도 빠르게 성장해 간 대형 길드의 길드장의 친형에 그 때문에 상급 헌터와도 드물게나마 엮인 적도 있었다.
내가 각성하기 전이라면 모를까 각성 후에는 어느 정도 주의해야 할 인물 취급당하지 않았을까.
‘일단 성현제와 송 실장님 관련 기억은 송 실장님 사망 시점부터 없어진 게 확실한 것 같고. 성현제가 보냈다는 엽서도, 아예 인식을 못 한 듯한데.’
유현이가 내게 선물하기 위해 준비한 시계가 떠올랐다. 인벤토리에 시계가 들어 있음에도 인식조차 하지 못했지. 그런 것과 비슷한 상황인가? 내 뒤의 나를 힐끔 돌아보았다. 지금의 내가 회귀 전 성현제와 만난다면, 혹시 제대로 인식 못 하게 되는 걸까. 현재의 성현제는 어떻지.
“그런데 그, 매뉴얼에.”
내가 머뭇거리며 말을 이었다.
“나는, 호텔에 들어가면 안 되는 게 아닐까. 밤이 되면 악몽이 더 강해진다는 말이, 이 던전의 몬스터를 뜻하는 걸 테고.”
“S급이나 하다못해 A급쯤 되면 곤란하겠지만 우리야 강해져 봤자잖아. 그래 봐야 중급이나 되겠냐.”
“그건, 그래. 템 빼면 너보다야 내가 더 강하겠지만.”
얼씨구.
“어차피 같은 사람인데 도토리 키 재기 하냐. 그리고 경력은 내가 더 많아.”
“진짜 납작하기만 하고 복근은─”
“만지지 마! 이 새끼야!”
그래, 너 잘났다. 아니 어차피 나잖아! 그때 이린이 검은 패딩 사이에서 기어 나와 내 어깨로 옮겨오며 말했다.
– 진짜 달라요, 형!
“리, 린아?”
– 이 형은 배에 이렇게 모양 잡혀 있는데. 물론 유현이보단 훨씬 못하지만요! 유현이는 훨씬 더 선명하고 단단하고 옆구리까지 이렇게!
“…알았다고, 진짜.”
S급들이야 S급이니까 하고 넘겼는데 나랑 비교하니까 서러워졌다. 회귀 전의 내가 이 도마뱀 옷 속에도 들어가냐며 질색했다.
그러는 사이에도 유현이는 몰려드는 헌터들을 회오리처럼 쓸어버리고 있었다. 헌터들이 픽픽 날려가는 꼴이 진짜 딱 폭풍 속의 낙엽이었다.
“아저씨!”
그때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림이였다. 그 옆으로 윤윤의 모습도 보였다. 어? 도깨비는 던전에 못 들어오는 거 아니었나.
“어? 아저씨가 두 명! 한 명은 던전 속 아저씨예요?”
“그래, 예림아. 인사해. 스물아홉 살짜리 나다.”
“안녕하세요!”
“안녕! 더 묵은 대장 김서방!”
예림이가 나타나자마자 유현이가 마지막 남은 헌터를 발로 걷어차고 내 쪽으로 다가왔다. 오토바이를 일단 멈추었다.
“아저씨, 키 더 컸네요? 패딩 때문인가 몸집도 더 좋아 보이고요.”
쬐끔 차이나는 건데. 오토바이 타고 있어서 진짜 쬐끔인데 눈썰미도 좋다. 회귀 전의 내가 예림이를 보고 조금 어설프게 웃어 보였다.
“음, 안녕.”
“전 박예림이고 해연 길드 소속 S급 헌터예요.”
“해연? S급이야? 대단하네.”
“난 윤윤이고 도깨비 대왕님이야! 나도 대단하지?”
“응, 대단해.”
먼저 합류한 게 이 둘이라서 다행이었다. 예림이는 회귀에 대해 알고 있고 윤윤은 내가 셋이든 넷이든 상관없는 모양이니까. 성현제야 눈치가 빠르니 알아서 잘 대처하겠지만 노아 씨와 송 실장님이 문제네. 노아 씨는 잘 설명해 주면 괜찮겠지? 송 실장님은… 몬스터긴 한데, 설마 대놓고 몬스터 취급하시진 않겠지. 약자에겐 친절하지만 또 칼 같기도 한 분이시라.
“어, 헌터들이다. 한유, 길드장님 안 가요?”
“네 차례야.”
“이런다니까요. 내가 반드시 해연 먹는다. 소영 언니보다 빨리 먹는다.”
투덜거리면서도 예림이가 순간이동으로 헌터 무리에게 다가갔다. 몬스터긴 하지만 사람과 다름없어서 예림이에게 맡기긴 좀, 싶었는데 짙은 안개가 퍼져 나가며 깔끔하게 얼려 버리기만 했다. 잠시 발을 묶는 정도겠지만 그거면 충분했다.
다시 강남을 향해 오토바이를 출발시켰다. 예림이는 주위를 경계하며 낮게 비행하고 유현이는 우리 옆에 바싹 붙어 지켰다. 반면에 윤윤은.
“우와, 이거 봐! 이 아이스크림 새로운 맛 나왔어! 앗, 뭐지? 뭐지? 디○니 로고인데 처음 보는 캐릭터 인형이다!”
공간이동으로 눈에 띄는 상점들을 들락거리고 있었다.
“책은 글이 하나도 없네. 휴대폰도 안 켜져.”
회귀 전 정보가 더러 실체화되어 있었지만 차단된 것도 많았다. 정상적인 던전이라면 저런 상품들도 남아 있지 않겠지. 그래도 별게 다 있… 아.
“윤윤, 혹시 물감 같은 게 있는지 봐줘.”
“응!”
윤윤이 이내 물감을 한가득 안고 나타났다. 색도 하나만 골라 왔다. 초록색 좋아하나.
“예림아, 소화전 터트려서 물감 섞어서.”
“메시지 남길까요?”
“응. 강남 호텔이, 아니다. 강남역 1번 출구로. 높게 커다랗게 만들어 줘. 추우니 빨리 안 녹을 거야.”
호텔로 헌터들까지 불러 모으면 귀찮지. 이내 퍼엉, 물이 높게 치솟았다. 초록색 물감들을 잔뜩 뿌려 넣은 물이 하늘 높이 올라가 단단하게 굳어지기 시작했다. 쩌저적, 대량의 물이 얼어붙는 소리와 함께 메시지를 받치는 기둥까지 기다랗게 세워졌다.
저 정도면 한참 떨어진 곳에서도 선명하게 보이겠지. 다들 S급 시력이니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