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408
406화 목표 (1)
도로는 텅 비어 있었다. 송태원은 길게 뻗은 12차선 도로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순신 장군, 세종대왕 동상과 저 멀리 우뚝 서 있는 광화문이 그의 눈에 비쳤다.
해 질 녘의 익숙한 거리. 순간적으로 한국에 돌아온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착각을 하기엔 거리가 너무도 조용했다. 길 가는 행인은 물론이요, 시위하는 사람조차 하나 없었다. 항상 걸려 있던 빨간 글씨의 상급 각성자 특별대우를 철회하라! 라는 현수막도 보이지 않았다.
송태원은 가만히 침묵에 잠긴 거리를 바라보았다.
마치 멸망해 버린 직후의 세상 같았다. 인간만이 깨끗이 사라져 버린 세계.
그런 곳에 그 혼자 남겨져 있었다.
‘…크리스마스의 악몽.’
시스템 메시지가 이곳이 던전이라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송태원은 차분하게 상황을 정리했다. 현재의 던전은 한국의 서울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간판의 글자는 대부분 지워졌지만, 건물은 물론 가로수, 가로등, 버스 정류장 등의 시설은 그대로였다.
송태원은 길을 건너 커피숍의 내부를 들여다보았다. 가게의 불은 꺼진 채였지만 진열대 속에 음료며 베이커리들은 그대로 놓여 있었다. 이런 식의 던전은 난생처음이었다. 보고받은 적조차 단 한 번도 없었다.
송태원의 손이 닫혀 있는 문손잡이를 움켜잡았다. 그대로 힘을 주어 우드득, 문을 뜯어내곤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이어 진열대 속의 치즈케이크 조각을 집어 들었다. 냉장 기능이 있는 진열대엔 아직 냉기가 남아 있었다.
치즈케이크를 살펴보던 그의 머릿속에 문득 한유진이 떠올랐다. 이어 성현제 또한 당연하다는 듯이 따라붙었다. 송태원은 치즈케이크의 끝을 조심스럽게 베어 물었다. 독은 없었다. 맛 또한 평범했다.
이런 단 케이크류는 그다지 즐기지 않았다. 가끔 동료의 생일 케이크가 책상에 올라와 있는 정도였다. 대부분은 생크림, 또는 모카였다. 치즈, 티라미수, 레드벨벳, 그 밖의 송태원이 기억하고 있는 단것들의 출처는 대부분 한유진과 성현제였다.
어쨌든 이곳의 물건은 현실의 것과 같았다. 송태원은 케이크를 내려놓고 컵을 들었다. 던전 내의 물품이라면 인벤토리에 들어가는 것이 맞겠지만.
[오류! 인벤토리에 넣을 수 없습니다!]오류 메시지가 떴다. 송태원은 컵을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파삭, 얇은 비스킷처럼 유리가 산산조각 나 바닥에 떨어졌다. 평범한 강도, 평범한 파편.
송태원은 카페를 나서서 길을 따라 걸어갔다. 모든 것이 그대로로, 오직 사람만 없었다. 던전 안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자로 잰 듯 정확한 보폭의 규칙적인 걸음걸이가 조금씩 느려졌다.
“…….”
무심코 길고 가느다란 숨이 입술 사이에서 새어 나왔다.
송태원은 마지막에 남아야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의 자리는 마지막이 되기 전에 누군가를 지키고 사라지는 것이었다. 이렇게 아무것도 없는 세상에서 혼자 남게 된 풍경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이것은 송태원이 생각지도 않으려 했던, 실패의 그림이었다.
보호해야 할 대상이 사라지고, 막아야 할 대상 또한 사라진다면. 남은 것은 과연 무엇인가.
“……!”
그때, 미미한 기척이 그의 감각에 걸려들었다. 회색빛 무생물이 아닌 살아 움직이는 무언가였다. 일행이라면 다행이었고 몬스터라도 괜찮았다. 송태원은 상념을 버리고 다시 신중히 걸음을 옮겨갔다.
등급을 알 수 없는 비정상적인 던전이다. 어떤 상황이 일어날지 모른다. 송태원은 와이어를 꺼내 손을 넘어 팔뚝까지 휘감고 투척용 단검을 다른 쪽 손에 들었다. 근접전 위주인 그의 스킬은 아쉽게도 정보수집 활동에는 적합지 않았다. 뛰어난 신체능력을 활용해서 최대한 조용히 움직이는 것이 최선이었다.
광화문이 가까워지고 정부서울청사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기척은 바로 그곳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각성자관리실이 자리 잡은 곳에서.
세상에 각성자가 나타나고 각성자관리실이 신설되며 그 소재지에 대한 논의도 꽤 길어졌었다. 세종으로 가야 한다는 말도 나왔지만, 결국엔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서울청사에 들어가게 되었다.
갑작스럽게 생긴 기관에 눈칫밥도 꽤나 먹었었다. 지금도 종종 꺼림칙한 시선을 받고 있었다. 업무 준비도 제대로 되어 있질 않아 초기에는 헌터 협회로 출근하다시피 하기도 했었다. 그 밖의 난관도 여럿 있었지만, 그럼에도 각성자관리실은 점차 자리를 잡아갔다.
특히나 각관실 소속 헌터들은 팀원임과 동시에 대부분 송태원의 제자라고도 할 수 있었다. 부족한 여건 속에 끝까지 남아 준 사람들을 한 명이라도 잃지 않기 위해서. 송태원은 없는 시간을 빼어 그들을 훈련시켰다.
지급되는 장비 또한 가능한 각관실 헌터들에게 몰아주었다. S급 헌터는 웬만해서는 목숨이 위험해질 일이 없다. 자신의 스킬 특성상 장비 부족이 큰 흠도 되지 않았다. 그러니 부족한 인력이 더 줄어들지 않도록 챙기는 편이 효율적이다.
희생도 아니고 배려도 아니었다. 송태원의 입장에서 단지 그것이 더 낫고 옳을 뿐이었다.
지난 3년간. 머잖아 4년간. 각성자관리실은 그렇게 키워 온 곳이었다.
“오늘은 조용하네.”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긴장감 하나 없이 가벼운 어조였다. 송태원의 몸이 반사적으로 굵은 가로수 뒤로 감추어졌다.
“세성 길드장 사라진 뒤론 대체로 그랬잖아. 강소영 헌터도 많이 점잖아졌고. 이젠 완전 길드장 같더라.”
“마지막으로 딱지 뗀 게 반년도 더 됐지, 아마.”
송태원은 숨을 거의 멈추듯 줄인 채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 각관실의 헌터들이, 낯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세성 길드장이 사라지고 강소영이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한 듯했다. 송태원으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이었다.
송태원은 고개를 약간 빼어 주위를 살폈다. 원래라면 청원경찰이 서 있어야 할 입구는 텅 비어 있었다. 주차장 또한 차량 한 대 없다. 활짝 열린 철제문 너머로 두 각관실 헌터는 커피가 든 종이컵을 든 채 한가히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주위의 풍경에 조금의 수상쩍음도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세성 길드장이 그냥 일찌감치 해외로 완전히 옮겨가 버렸으면 좋았을 텐데.”
“국적도 바꾸고 말이야.”
“그 소리 걸렸다간 평생 먹을 욕 다 먹는다.”
“어차피 이젠 없잖아. 그 인간 국적 그대로 뒀으면 해외 나가 봤자 고생만 더 하셨겠지.”
“그건 그래. 국내에 있다고 뻥쳤을 때 몰래 쫓아가서 수습하느라, 진짜. 어휴.”
“각관실 실장 업무 소홀히 한다고 언론에 까이기도 했잖아. 새삼 짜증 나네. 자리 비우고 싶어서 비운 줄 아나.”
헌터가 투덜거리며 남은 커피를 단숨에 들이켰다. 그의 손아귀에서 종이컵이 구겨졌다.
“담배 땡긴다.”
“몰래 피워, 몰래. 공직자가 비싼 헌터용 담배 피운다고 기사 뜬다.”
“더러워서 때려치지 진짜. 내가 능력이 없어서 여기 있는 줄 아나.”
“근데 못 나가잖아, 새꺄.”
“지금이라도 나가면 오라는 길드 천진데 나갈 수가 없네!”
두 사람이 낄낄거렸다. 그러다 뚝, 웃음소리가 멈추었다. 짧은 정적이 흘렀다.
“이번 주말에 성묘라도 갈까.”
“세성 길드장한테 딱 하나 고마운 게 그거야. 가까워서 자주 찾아갈 수 있잖아.”
“…병 주고 약 주냐. 아니지, 죽여 놓고 보상금 주는 거지.”
송태원의 몸이 굳어졌다.
“입조심해. 확실한 건 아니야.”
“뭘 이제 와서. 걸리는 게 없으면 사라질 리도 없잖아. 솔직히 실장님이, 던전에서 사망했다는 게 말이 되냐고. 어? 별거 아닌 S급들도 아직 공략 중 사망자는 없는데, 어떻게.”
깊게 생각하려 들지 않아도, 송태원의 머리는 쉽게 이야기의 앞뒤를 맞춰 나갔다.
송태원은 죽었다. 공식적으로는 던전 공략 중 사망하였으나 성현제의 손에 살해당했다는 의혹이 있다. 성현제는 송태원의 묘지를 서울 내에 만들어 주고, 실종되었다.
놀라우면서도 놀랍지 않은 내용이었다.
언젠가는 성현제의 손에 죽게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은 한 적 있었다. 하지만 자신을 살해한 것 때문에 성현제가 사라졌다는 말은 예상치 못했다.
당연히 변함없이, 송태원이라는 존재가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행동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는데.
‘…아니, 애초에 이건.’
던전이 보여 주는 거짓된 미래일 뿐이었다. 공략자들과 연관이 있다고 했으니, 송태원의 기억을 바탕으로 만들어 낸 환상이지 싶었다. 어쩌면 그 자신의 바람도 약간이나마 섞여든 환상.
성현제의 손에 의해, 아마도 그를 막으려다 사망했다는 바람직한 미래.
송태원은 나뭇가지 사이로 비치는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던전에 대한 정보는 늘어났으나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는 그로서도 당장 감이 잡히질 않았다. 일반적인 던전 공략은 던전 속의 몬스터를 해치우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한가하지, 너네들.”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벼운 발소리가 다가옴과 동시에 송태원의 등이 약간 뻣뻣해졌다. 느껴지는 등급이 낮지 않다. 순간 새로 온 각성자관리실 실장인가 했지만, 저 목소리 또한 익숙했다. 그가 알고 있는 시점에서는 분명 B급이었던 헌터였다. B급이지만 유독 뛰어나 오래지 않아 A급으로 성장 가능하지 않을까 예상했던, 백연준.
하지만 지금은 S급에 가깝게 느껴졌다.
“지금 여기서- 누구냐!”
백연준이 돌연 날카롭게 소리쳤다. 그의 외침과 동시에 짧은 쌍날도가 원을 그리며 가로수를 향해 날아들었다. 카가각, 칼날이 회전하며 굵직한 나무둥치를 단번에 잘라낸다. 튀어 오르는 나뭇조각과 함께 가로수가 우지끈 옆으로 쓰러졌다. 이파리가 우수수 흩날린다.
‘역시, 몬스터인가.’
칼날이 나무에 닿기도 전에 물러선 송태원이 씁쓸하게 속으로 중얼거렸다. 원래의 백연준이라면, 아니, 어떤 각관실 헌터도 도심에서 저렇게 성급한 행동을 하진 않을 것이다. 몬스터가 비각성자를 공격하는 위급한 상황이 아니고서야 무기부터 날릴 리 없었다.
“시, 실장님?”
공격을 피하느라 모습이 드러난 송태원을 보고 헌터들이 눈을 크게 치떴다. 죽은 사람이 나타났다. 하지만 놀람은 잠깐, 이내 그들의 얼굴 위로 짙은 적의가 떠올랐다.
“젠장, 어떤 새끼가!”
“몬스터냐? 차라리 몬스터라고 해!”
“나는.”
몬스터가 아니다. 이곳은 던전이며 너희들이 몬스터다. 그 말은 송태원의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송태원이 머뭇거리는 사이, 헌터들이 일제히 무기를 꺼내 들었다.
“몬스터면 잡아야 하고, 몬스터가 아니면 더더욱 잡아야지! 시발!”
“감히 그 얼굴로, 여길 나타나?! 무슨 목적이냐!”
울분에 찬 목소리가 외쳤다. 송태원은 이를 악물었다. 저들은 몬스터다. 던전을 공략해서 밖으로 나가야 하는 한, 싸우고 해치울 수밖에 없었다.
‘단순한 정신계 스킬이다.’
그렇게 생각하려 했다. 하지만 송태원은 S급, 그중에서도 육체적인 감각이 예민하게 뛰어난 헌터였다. 차라리 둔했다면 스스로를 속이기 더 쉬웠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모든 감각이 눈앞의 사람들을 진짜로 느끼고 있었다.
“진아!”
“네!”
보조계 헌터가 재빨리 뒤로 물러나며 백연준에게 스킬을 썼다. 그 전에 보조계를 잡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송태원은 곧장 움직이질 못했다. 발이 보도블록에 달라붙기라도 한 듯 떼어지질 않았다.
“넌 들어가서 상황 알리고 대피시켜! 만만찮을 거 같다!”
나머지 한 명이 즉각 몸을 돌렸다. 몬스터다. 몬스터가 동료를 부르려고 하고 있었다. 막아야 했다.
송태원의 주먹에 힘이 들어가고 거의 습관적으로 다리 근육이 한껏 당겨졌다. 그의 몸이 쏘아진 화살처럼 앞으로 튕겨 나갔다.
“위험해!”
백연준이 짧은 창을 던졌다. 콰득! 와이어에 감긴 팔뚝이 창날을 튕겨내고, 송태원은 일말의 흔들림 없이 그대로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던 헌터 앞에 다다랐다. 그의 발끝이 놀란 얼굴을 한 헌터의 다리를 찍어 내렸다.
“커억!”
우드득, 다리뼈가 부러졌다. 아래로 훅 꺼지는 몸을, 머리를 송태원의 손이 움켜잡았다. 다른 쪽 손에 들린 단검의 날이 단숨에 살과 뼈를 훑는다.
기계적일 정도로 정확하고 효율적으로, 몬스터의 숨통을 끊어 놓았다.
“성후야!”
비통한 외침이 송태원의 귀에 내리꽂혔다. 확장된 동공이 송태원의 눈과 마주쳤다. 튀어 오른 피로, 가슴이 붉게 축축했다.
“미, 미친! 진아, 더 물러서! 당장 다 나와!!”
익숙한 얼굴이 하나 둘 셋, 주차장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송태원은 무심코 뺨에까지 튄 핏자국을 손등으로 닦아냈다. 하지만 손은 더욱 피범벅이라, 붉은 자국은 더 크게 번질 뿐이었다.
“시발, 무슨 일이야!”
“뭐야, 모, 몬스터인가?!”
“대놓고 사람을 죽이는데, 그럼 헌터겠냐! 조심해! 타인의 모습을 흉내 낼 수 있는 보스급 괴물인 모양이다!”
괴물이라. 저들에게는 분명 그러할 것이었다. 송태원은 변명 한마디 없이 묵묵히 전투태세를 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