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411
409화 밤이 되었습니다 (1)
“다들 늦지 않게, 헉, 송 실장님!”
호텔 입구로 나가다 말고 우뚝 멈춰서고 말았다. 송 실장님 몰골이 저게 뭐야! 온몸이 피투성이에 언뜻 봐도 피곤에 절은 안색이었다. 그에 비해 노아 씨는 젖기만 했을 뿐 멀쩡해 보였다. 표정도 환하게 밝았다.
“아저씨! 다 찾아왔어요!”
“대장 김서바아아앙! 나 엄청 무서웠어어!”
예림이가 자랑스럽게 소리치고 윤윤이 잔뜩 울상을 지으며 나에게 달라붙어왔다. 송 실장님 때문인가. 그래도 용케 참고 데리고 왔구나.
“잘했어, 잘했어.”
“그 녀석 편하더라.”
어린 혼돈이 말했다. 어르신은 또 언제 오셨대.
“유진 씨, 무사하셔서 다행이에요.”
“노아 씨도요. 근데 무슨 좋은 일 있었어요?”
내 말에 노아가 볼을 살짝 실룩거렸다. 입술 위로 미소가 사르르 맺히기까지 했다. 뭔가 있구나.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노아가 방긋 웃으며 말했다. 그보다 송 실장님은, 어쩌냐.
“음, 아무래도 갈아입을 옷이 필요할 것 같은데요. 다른 사람들도 그렇고요.”
그래도 단순히 물에 젖은 거라면 말리면 되겠지만 송 실장님 옷은 회복이 불가능했다. 심지어 군데군데 찢어지기까지 하였다.
“저요! 제가 얼른 가서 구해 올게요.”
“나도, 나도! 보물찾기 좋아!”
예림이와 윤윤이 지치지도 않는지 또 나가겠다며 손을 번쩍 들었다. 아직 시간이 좀 남았으니 갔다 와도 되겠지만.
“송 실장님 사이즈 옷은 찾기 힘들 거 같은데.”
유현이와 성현제도 기성복은 잘 안 맞지만, 송 실장님은 그 둘보다 더욱 심각할 듯했다. 일반적인 매장에는 분명 없을 텐데.
“…아마도 제 집에 옷이 있을 겁니다.”
송태원이 피곤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 맞다.
“그렇겠네요. 그럼 예림아, 윤윤. 옷 좀 챙겨 와 줘. 속옷도 필요하겠죠?”
“그… 예.”
“신경 쓰지 마세요! 저 아저씨 속옷도 봤어요!”
“예림아! 아니, 난 빨래도 따로 했는데!”
일부러 세탁기도 세 대 놓았는데 언제 본 거냐. 나와 유현이용, 예림이용, 그리고 몬스터들용이었다. 건조도 따로 했는데.
“또 필요한 거 있어요?”
“아니, 음. 내 옷도 있으면 좋고. 노아 씨도 갈아입을래요?”
“전 괜찮아요. 젖었을 뿐이니까요.”
“천사님도 같이 가자!”
윤윤이 노아의 팔을 잡아끌며 말했다. 천사님? 노아 씨가 좀 천사처럼 생기긴 했지. 비행이 가능하니 노아 씨도 같이 가도 될 테고, 애들끼리 보내는 것보다 나을 것이다. 노아 씨도 어린 편이긴 하지만 일단은 성인이니까.
예림이와 윤윤, 노아가 송태원으로부터 집 주소를 받아선 다녀오겠다며 호텔을 나섰다. 어쨌든 다들 무사해서 한시름 놓았다.
“자자, 위로 올라가죠.”
송 실장님에게 가 팔을 잡고 끌었다. 당연히 끌려오진 않고 묵직한 시선이 나를 내려다봐왔다.
“다리는, 치료하지 않았습니까.”
“아, 이거요? 그게, 평범한 상처가 아니라서요.”
던전에 들어오기 전 다친 상처라고 생각하는 걸까.
“그보다 가요. 얼른 씻으셔야죠.”
“한유진 군 말대로 씻는 게 좋겠어.”
성현제도 로비로 나와 내 말을 거들었다. 송 실장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진 모르겠지만, 조금쯤은 짐작이 갔다. 이 던전의 몬스터는, 송 실장님을 피로 뒤덮은 상대는, 모두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웬일로 둘째가 안 보이냐.”
어린 혼돈이 식당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녁 준비 중이에요. 그게.”
“아, 그랬지.”
혼돈이 고개를 끄덕이곤 식당으로 걸음을 옮겨갔다. 내가 하나 더 있다는 걸 아는 모양이었다.
“성현제 씨, 엘리베이터 잡아 주세요.”
“스위트룸으로 갈까.”
“그런덴 다 높잖아요. 가까운 곳으로 가죠. 욕조는 다 있을 테니까.”
이왕이면 뜨거운 물에 푹 담그는 편이 좋겠지. 입욕제 없나.
“욕조 크기가 다를 텐데.”
“그래요?”
회귀 전에는 좋은 호텔 갈 일이 없었고 회귀 후에는 비싼 방에만 묵어서 말이야. 극과 극이다.
“일반 방은 작을까요?”
“괜찮습니다.”
“아무래도 작지. 아마 무릎을 많이 굽혀야 할 거야.”
가정집 일반 욕조 크기를 생각한다면… 음, 작겠네.
“그럼 욕조 제일 큰 곳으로 가죠.”
“괜찮습니다.”
“아예 사우나로 가는 건 어떻겠나.”
“물 안 채워져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그럼 한참 걸려요.”
엘리베이터에 올라타며 송 실장님에게 주의사항을 설명해 주었다. 커튼 걷지 말고 누가 와도 문 열어 주지 말고 옥상에 올라가지 말고 등등.
“욕조 넓네. 물 받아 드릴 테니 옷 벗으세요. 온도는 어느 정도로 할까요?”
“S급이지 않나. 뜨겁게 하게. 그래야 몸이 조금이라도 풀리겠지.”
수도꼭지를 홱, 온수 쪽으로 끝까지 돌려 틀었다. 물이 콸콸 욕조를 채우기 시작했다. 송 실장님은 어디로 갔을까. 설마 자기 자신과 마주친 건 아니겠지. 그리고, 어디까지 알게 되셨을까.
“혼자 벗을 수 있습니다.”
짧은 한숨과 함께 송태원이 욕실로 들어왔다. 아직 상의만 벗은 채였다. 피가 옷깃 아래까지 스며들어, 피부에도 약하게 얼룩이 졌다. 그리고 정말.
와, 정말. 우와……. 진짜, 거참, 와아.
“제가 알아서 씻겠습니다.”
“아, 예. 그럼 뭐냐, 옷 오면 욕실 앞에 놓아둘게요.”
“감사합니다.”
욕실 밖으로 나와서 문을 닫았다. 그제야 아차 싶었다. 송 실장님에게 회귀한 거 말하려고 했는데.
“너무 대놓고 좋아하는 거 아닌가.”
“아니 제가 뭘요.”
성현제가 가만히 나를 바라보았다. 왜, 왜.
“…부러워서 그래요, 부러워서. 그냥 예술작품 감상하는 그런 기분이기도 하고요.”
“예술작품이라면─”
“아 댁 잘생긴 거 안다고. 네네, 루브르 박물관에 세워 놓으면 아무도 살아 있는 사람이라고 눈치 못 챌 정도겠네. 제 이름으로 기증해 드릴 테니 뽁뽁이 둘둘 휘감고 포장박스에 들어가 계십쇼.”
성현제는 보내 버리고 유현이는 집에 잘 모셔 놔야지.
“뽁뽁이?”
모르냐. 애들 옷 가지고 오는지 보라며 성현제를 객실 밖으로 쫓아냈다. 그사이 욕조가 다 찼는지 물소리가 멈추었다. 욕실 문 앞으로 다가가 똑똑 두드렸다.
“송 실장님, 욕조 안에 계시죠?”
“…예. 들어오지는 마십시오.”
너무 빤히 쳐다봤나. 하는 수 없이 욕실 문에 등을 기대고 섰다가, 주르륵 미끄러져 앉았다. 한쪽 다리에 힘이 덜 들어가다 보니 무게를 더 많이 지는 멀쩡한 다리도 조금 아파왔다. 운동 부족이야.
“누군가를, 보셨어요?”
“예.”
“아마도 미래였겠죠. 그리고, 송 실장님은.”
“죽었다고 했습니다.”
담담한 목소리였다. 송 실장님은 아직 이 던전의 사람들이 실제 미래이자 과거라는 사실을 모르실 테니까. 아니면 자신의 죽음이, 아무렇지 않았던 것일까.
송태원은, 뭐랄까. 필요하다면 자기 목숨도 주저 없이 버릴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 필요는 당연하게도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닐 터였다.
“맞아요. 세성 길드장과 관련 있다는 것도 들으셨어요?”
“네. 세성 길드장이 저를 죽였다는 의혹이 있다고 했습니다.”
참방, 물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나온 거 같진 않고 자세를 바꾼 걸까.
“각성자 관리실이었습니다.”
송태원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이곳의 몬스터는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젠장. 무심코 이가 악물어졌다. 하필이면. 다들 자신과 연관 있는 곳으로 갔으니 예상 못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말씀 안 하셔도 괜찮아요.”
“저는 괜찮습니다.”
“헛소리 마시고요. 안 괜찮을 거 뻔하니까요.”
괜찮다는 소리를 못 하게 해야 해. 괜찮긴 뭐가 괜찮아.
‘지금 말을, 해도 되나.’
손을 올려 머리를 긁적였다. 던전 속의 사람들이 단순한 몬스터라고 생각해도 워낙 진짜와 비슷하니 심란할 것이다. 그런데 그게 사실은 회귀 전의 정보라는, 진짜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는 말을 듣는다면.
송 실장님은 더 힘들어하지 않을까.
하지만 이런 상황까지 왔는데 계속 숨길 수도 없었다.
“제가 송 실장님께 말씀드려야 할 게 있어요.”
“말씀 안 하셔도 괜찮습니다.”
우리가 무슨 괜찮습니다 앵무새냐.
“제가 아니라 송 실장님이 걱정되어서 그래요.”
“그럼 말씀해 주십시오.”
“스스로를 좀 더 아껴 보시는 건 어떨까요. 멈칫도 안 하시네.”
“저는─”
“한 번만 더 괜찮단 소리 해보세요. 문 열고 들어가서 등짝 두들길 겁니다. 그럼 제 손목이 부러지겠죠.”
짧은 침묵이 내려앉았다. 지금 당장 이 던전을 빠져나갈 수 있다면, 그럼 한국에 돌아가서 이야기해도 된다. 송 실장님이 각관실로 돌아가서 멀쩡한 사람들을 만난 후에 말이다.
하지만 아직 던전은 공략되지 않았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니, 미리 알려 드리는 게 나을 듯했다.
“이 던전은, 실제 있었던 일입니다.”
나직이 말을 이었다.
“미래면서도 과거이기도 해요. 그러니까 저는, 사실은 서른 살이었습니다. 서른 살의 한유진이 5년이라는 시간을 되돌렸어요. 그 되돌려진 5년의 흔적이 바로 이곳입니다.”
다시 조용해졌다. 송 실장님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면서도 알고 싶지 않았다.
“저는 죽었었습니까.”
“네. 자세한 건 잘 몰라요. 그때의 전 평범한 F급 헌터였거든요.”
“문현아 헌터가 한유진 씨에 대해 잘 모르고 있긴 했습니다.”
“현아 씨를 만났어요?”
“예. 한유진 씨가 동생과 사이가 나쁘다고 알고 있더군요.”
“그때는 그랬어요. 다들 그렇게 알고 있었죠.”
회귀 전의 현아 씨라니, 나도 만나 보고 싶었다.
“세성 길드장이 한유진 씨에게 엽서를 보냈다고도 했습니다.”
“아, 진짜요? 정말이었나 보네.”
농담인지 진짜인지 구분이 잘 안 갔었는데. 보냈구나.
“그리고 저와 문현아 헌터가 약혼했었다고 말했습니다.”
“예?!”
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려다가 다리가 아파서 천천히 일어났다. 약혼? 진짜?
“현아 씨와 실장님이, 세상에!”
난 까맣게 몰랐는데! 이럴 수가! 비밀리에 결혼 약속을 한 거였을까? 그럼 내가 모를 법도 했다. 와, 두 사람이, 세상에. 잘 어울리지 않을까 싶긴 했지만, 진짜 사귀었던 거야?
“그, 그럼 혹시 지금도 현아 씨에게 마음이 있으세요? 현아 씨가 좋은 분이시긴 하죠. 멋있고 든든하고 믿음직스럽고. 아니 그래도 진짜로, 대체 언제 그렇게 되었대요? 고백은 누가 했고요?”
가슴이 콩닥거렸다. 진짜야? 진짜 두 사람이, 진짜로? 하지만 송 실장님은… 일찍 떠나 버리셨다. 현아 씨…….
“세성 길드장은 에블린 헌터와 결혼했고 해연 길드장이 강소영 헌터와─”
“…네?”
응? 뭐? 아니 잠깐만.
“성현제 결혼한 적 없는데요!”
문을 벌컥 열어젖히며 소리쳤다. 우리 유현이도 연애 같은 거 한 적 없었다. 내가 기억을 봤는데 모를 리가 있겠냐! 성현제야 몰래 한 번 갔다 왔다고 해도 믿을 만한 나이긴 하지만, 상대가 에블린이라니! 강소영도 마찬가지야, 소영 씨용 아니면 관심 없다고!
“유현이도 찬바람 쌩쌩, 윽!”
바닥에 흥건한 물에 발이 미끌렸다. 평소라면 넘어질 일 없는데 균형이 안 맞다 보니.
“한유진 씨!”
물소리가 첨벙, 크게 나고 콰드득 욕조의 일부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송태원의 손이 넘어지는 나를 덥석 붙잡아 지탱해 주었다.
“감사합니다, 만 설마 농담하신 거예요?”
송 실장님의 농담이라니. 녹음해 뒀어야 했는데.
“문현아 헌터가 한 말입니다. 그리고 한유진 씨는.”
무겁게 가라앉은 눈이 나를 내려다보았다.
“거짓말을 하는 반응이 아니군요.”
“아…….”
거짓과 진실을 섞어서 나를 떠본 거였구나. 욕조에서 쏟아져 내린 물에 발이 뜨끈해졌다. 더운 공기를 깊게 들이마셨다.
“현아 씨는 여전하셨나 봐요.”
송 실장님이 생각해 낸 이야기일 리는 없고, 현아 씨가 농담한 것이었겠지.
“예. 브레이커 길드는 사라졌고 한국을 떠났다고 말했지만 그래도 여전했습니다. 해외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이라고 하더군요.”
갑자기 현아 씨가 보고 싶어졌다. 나는 브레이커 길드장 또한 실패했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문현아는 그대로였다.
송태원이 말을 이었다.
“담배를요? 그런 스킬도 얻으셨구나.”
소영 씨도 참. 유현이가 그땐 많이 냉랭하긴 했겠지만 말이야.
송태원은 자신이 겪은 일을 차분히 말해 주었다. 담담한 듯했지만, 이야기의 대부분은 문현아와 엮여 있었다. 아마도 그녀가 나타나 주지 않았더라면 각관실에서의 일을 이렇게 쉽게 털어놓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문현아 헌터는 제게 일행과 함께 오라고 했습니다.”
“여기 사람들 등급은 실제보다 한 단계 더 높은 모양이더라고요. 그럼 현아 씨는 각관실에 있는 거예요?”
“…아닙니다. 그때─”
송태원의 목소리가 뚝 끊겼다. 동시에 전신에 소름이 좌악 돋았다. 공포 저항 스킬이 분명 켜져 있음에도 가슴이 칼로 베인 듯 섬뜩해졌다. 대체 이게.
콰앙!
무언가가 욕조 너머의 유리벽을 두들겼다. 쳐져 있던 커튼이 크게 흔들렸다. 헉, 숨을 들이키며 송 실장님의 팔을 끌어안듯 붙잡았다.
“뭐, 뭐죠…….”
“…달빛이.”
송태원 또한 긴장 어린 표정으로 나를 감쌌다. 그의 시선이 미미하게 흔들리고 있는 커튼을 향하였다.
“은색 사슬로 변해 저를 공격해 왔습니다. 문현아 헌터는 그것을 막다가 사라졌습니다.”
달빛. 설마 초승달이?
“이 호텔에는 들어오지 못하는 모양입니다.”
“…네, 그런 것 같네요.”
초월자 상대라서인가 아직도 심장이 크게 두근거렸다. 젠장, 이게 대체 무슨 난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