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423
421화 새끼 오리 (1)
들어가기 싫다. 피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더 시간을 끌고 싶었다. 하지만 밖에 오래 있어서 좋을 것도 없으니까. 유현이와 노아 씨는 아직 잠들어 있을까. 굳이 깨울 필요는 없을 거 같은데. 미뤄 봤자 결국은 마주해야 할 일이지만.
한숨을 삼키며 앞장서 걷고 있는 송 실장님의 등을 바라보았다. 고집스러운 뒷모습을 보니 또 생각나네. 다 된 밥이었는데 이대로 포기하기는 너무 아쉬웠다. 겨우 데리고 가겠다고 마음먹게 했는데!
“진짜 안 데리고 가실 거예요? 약속해 놓으시곤? 고작 성장한다는 것 때문에요?”
“유체와 성체는 그 가치가 다릅니다. 단순한 새끼 양이라면 저도 보호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상급 기승수는 제가 감당하기 힘듭니다.”
딱 잘라내는 목소리였다. 받아들이고는 싶지만 그게 문제라면 야.
“아까는 제가, 흠, 좀 감정적으로만 설득을 했습니다만 이번에는 기승수 사육소 소장으로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심적인 책임까지야 어쩔 수 없지만, 법적인 책임은 제가 확실하게 집니다. 저 애들 그렇게 쉽게 보내지 않아요. 그렇잖습니까, 세성 길드장님?”
“계약서가 두툼하기는 했지.”
전에 석시명과 사육 계약 조건을 의논할 때 기승수 대우에 대한 것도 정하였다. 그 뒤로 더욱 보충해서 더 길고 세밀해졌다. 캐릭터 저작권과 던전 수익 배분은 세성과의 계약에는 들어가지 않았지만 기승수 복지는 추가되어 있었다.
“까놓고 말해 기승수가 안전한 삶을 살아가는 건 아니잖습니까. 그나마 몬스터고, 보통 전투적인 성향을 보이기에 괜찮은 거지 억지로 싸우게 만들어야 했다면 저도 사육소까지 만들긴 힘들었을 겁니다. 군사용으로 동물을 쓰는 경우야 흔하지만 제 입장 되니까 또 다르더라고요.”
처음에야 별생각 없었다. 하지만 애들 키우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마음을 주게 되었다. 기승수, 몬스터보다는 사람이 우선이고 이 세상을 지키는 것이 우선이었지만 그래도 만약 피스나 블루가 던전에 들어가기 싫어했다면. 다른 몬스터들도 그러했다면 내가 버티지 못해서라도 사육소는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소록이는 좀 걱정되지만.
“그래서 기승수 사육 계약도 대충하지 않습니다. 그냥 막 보냈다가 애들 막 굴리면 안 되잖아요. 계약서에 노동 조건과 사육환경, 부상 및 사망 시 페널티에 주기적인 검사 등등 전부 들어가 있습니다. 봐주는 거 없어요. 저 제 동생도 피스 홀대한다고 혼낸 적 있습니다.”
지금도 유현이보다야 소영 씨의 태도가 훨씬 마음에 들지만 피스가 유현이와 의외로 잘 맞아서 다행이지. 뭐랄까, 만약 유현이가 소영 씨처럼 물고 빨면 오히려 싫어할 것 같았다.
“지금은 제가 멀쩡히 살아 있으니까 송 실장님과도 제대로 계약서 작성할 겁니다. 협회나 기타 떨거지가 건드릴 것 같아 걱정되신다면, 보증인 잔뜩 세워요. 해연에 성현제 씨?”
“물론 해드려야지.”
“그리고 명우한테도 부탁할게요. 현아 씨도 받아 주실걸요. 송 실장님이 해주실 일은 딱 한 가지입니다.”
송태원이 호텔 입구에서 우뚝 멈추어, 나를 돌아보았다.
“파트너로서 마지막까지 아껴 주세요.”
“한유진 씨.”
“송이만이 아니라 다른 기승수들도 다른 헌터들도, 모두 언젠가 이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잖아요, 우리는. 하급 헌터는 더 위험한 삶이라 유언장 써두는 사람 많았어요.”
“…각성자관리실 헌터들에게도 권유하고 있습니다.”
“표정 보니까 송 실장님께선 안 쓰셨군요.”
“…….”
“이참에 같이 쓰실래요?”
“…예?”
“쓸 마음이 들었거든요.”
회귀 전에는 그렇게 위태로웠지만 결국 쓰지 않았다. 회귀 후에도 써두어야 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계속 미뤄두었다.
“성현제 씨는 어떻습니까. 유언장 없으면 우리 팀에 끼워 드릴게요.”
“그러고 보니 무의식중에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군.”
성현제가 고개를 약간 기울이며 말했다. 자신이 죽음을 맞이할 수 없다는 사실을 느끼고 있었던 것일까.
“이번에는 써 볼까. 아마도 처음이겠지.”
“친애하는 파트너 한유진의 앞으로 세성 길드를 넘기겠다, 는 어떻습니까. 요즘 핫한 유언 문구인데.”
“한유진 군이 나보다 오래 살겠다는 포부를 밝히니 들어주고 싶어지는군.”
“…아니 그건 좀 힘들 거 같은데요. 제가 환갑잔치 할 때도 성현제 씨 얼굴은 지금 그대로 매끈할 듯해서.”
한 이십 년만 지나도 내가 연상으로 보이지 싶었다. 그때가 되면 신체나이로 호칭 정하자고 해볼까. 형이라고 불러 보시죠.
“아무튼 송태원 씨. 데리고 가세요. 게다가요, 저는 송 실장님을 믿고 있지만 만약 송이 홀대하면 계약대로 바로 빼앗아 버릴 겁니다.”
그걸 노리고 일부러 새끼 양을 소홀히 대할 사람은 아니다. 송태원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우선은, 나가게 되면. 귀국한 후에─”
“데리고 가시겠다고요?”
“절차라는 것도 있지 않습니까.”
“이번엔 무르기 없기예요! 성현제 씨, 똑똑히 들으셨죠?”
“확실하게 들었다네.”
겨우겨우 성공했다. 그리고 유언장도 써야지. 이제는 새끼 양 때문에라도 써야 할 것이다.
“뭐 하냐, 네 녀석들.”
그때 호텔 문이 열리며 어린 혼돈이 고개를 내밀었다.
“당장 들어와.”
우리는 얼른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 성현제가 나를 내려놓고 실레키아의 날개를 제대로 걸쳐 입었다. 상체는 알몸이다시피 해서 코트를 바로 입으려니 좀 민망하긴 했지만.
“별일 없으셨죠?”
“첫째 녀석 심장 떨어질 뻔한 거 빼고는.”
아… 유현이가 들려 온 데다가, 몰골이 말이 아니었을 테니까. 나 같아도 기겁했다. 그게 나지만.
“전 유현이와 같이 있습니까? 예림이와 윤윤은요?”
“나갔다.”
“…예?”
잠깐만, 뭐?
“나, 나가다니, 둘이서요?!”
“둘째도 그렇고 너희들도 엉망일 거라며 옷 더 가지고 오겠다고 나갔어.”
“말리셨어야죠! 밤인데! 이젠 초승달도 없잖아요!”
아니 애들이 왜 겁이 없어! 해 지면 나가지 말랬잖아!
“아직은 별문제 없을 거다. 그리고 그 둘이 네 녀석보다야 자기 몸 잘 지키겠지.”
어린 혼돈이 뚱하게 말했다. 예림이와 윤윤이 S급이긴 한데, 그래도 말이야!
“옷이야 아침에 가져와도 되고… 예림이 이 녀석 진짜! 아, 혹시 그거 온 거 아닐까요? 헌터 스프링. 지금은 그렇게 안 부르나?”
Spring. 봄이자 용수철이란 뜻을 가진 스프링은 주로 1년 차 상급 헌터에게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정확히는 별 고생 없이 수월하게 던전 공략해 온 이들에게서 종종 보이는 모습이다.
“예림이가, 헌터로서는 순탄히 성장하기는 했잖아요. 원래도 당찼는데 지금은 더욱 자신감 넘치기도 하고요. 공략 실패를 한 적 없고 팀원을 잃어 본 적 없는 상급 헌터들은 던전을 가볍게 생각해 버리기 쉽거든요.”
주의력이 떨어지고 공략에 임하는 태도도 느슨해진다. 따스한 봄볕을 받듯 느슨히 풀어지고 용수철처럼 멋대로 툭툭 돌발 행동을 해버리고. 그러다 결국 크게 사고가 나버리는 것이다.
“무슨 말인지 알겠군. 이르긴 하지만 가능성이 없지는 않아.”
성현제가 고개를 끄덕이고 송태원이 표정을 살짝 굳혔다.
“주의를 해둘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만, 보통은 귀담아듣지 않습니다.”
“그렇죠. 그게 문제죠.”
“애들은 원래 사고 치며 크는 거다.”
“어르신!”
던전에서는 목숨이 오갑니다만!
“그런 건 당해 봐야 실감하는 법이고.”
“너무 스파르타식 아닙니까! 그리고 고생 안 하고, 덜하고 성장할 수도 있는 거죠. 꼭 힘들어야 하나. 예림이 이미 고생 많이 하기도 했거든요!”
진짜 애 맡겨도 되는 거냐. 좀 불안해지네.
걱정은 되었지만 지금 예림이와 윤윤을 찾으러 나설 수는 없었다. 둘이 같이 나갔고 순간이동, 공간이동 스킬을 가지고 있으니 주의사항을 어긴 건 아니지만…….
“달은 저물었지만 드래곤은 이미 잠들었으니 오늘 밤에는 깨어나지 않을 거라 하더라.”
혼돈이 로비를 가로질러 가며 말했다.
“달빛이 완전히 사라지면 악몽이 돌아다닐 테니 나갈 생각 하지 말고.”
“문 지키고 있으라는 거 말이죠?”
아직은 달빛이 조금 남아 있었지만, 애들 대체 언제 오냐.
“드래곤만 아니면 호텔을 침입하지는 못해.”
문지기는 있어야 하겠지만 아침까지 안전하게 쉴 수 있다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전 유현이와 노아 씨 깨우고 올게요. 두 분은 애들 오기 전까지 씻고 있으세요.”
엘리베이터를 타고 객실 층으로 올라갔다. 부드러운 카펫이 깔린 복도로 들어서자 가슴이 다 두근거렸다. 보자, 이쪽 방이 노아 씨고 저쪽 방이……. 마음 같아선 노아 씨부터 깨우고 싶었지만, 어려운 일 먼저 끝내 버리는 게 낫겠지.
크게 숨을 들이쉬곤 객실 문을 열었다. 일반실이라 그리 넓지 않은 방에 침대와 그 위에 누워 있는 동생과,
“왔냐.”
살기등등하게 나를 노려보는 내가 있었다.
“제정신이었다며.”
“아니, 그걸 제정신이라고 하기엔 좀…….”
콱! 내 귓가를 스친 단검이 벽에 박혔다. 하하. 지금 은혜도 저 녀석이 가지고 있는데.
“빌어먹을 새끼가 무슨 짓을 했기에 S급 던전도 쉽게 공략하던 한유현을 저 꼴로 만들어 놔.”
“…죄송합니다.”
“시발, 저 정도로 피투성이 된 거 한 번도 본 적 없거든?”
“제가 죽일 놈이지요. 근데 TV는, 아니다.”
상태 안 좋으면 방송 검열했겠지만, 유현이가 던전 공략으로 크게 다칠 일은 딱히 없었을 것이다. …이거 혹시 회귀하고 애 더 많이 다치게 된 거 아니냐. 역시 내가 잘못했네.
회귀 전의 내가 의자에서 일어나 저벅저벅 큰 걸음으로 다가왔다. 단숨에 내 멱살을 휘어잡더니 눈살을 확 찌푸린다.
“이건 또 뭐야. 실레키아?”
“상의가 홀랑 타버려서. 어, 랭킹전 때 성현제 실레키아 안 쓰기로도 했어.”
“그건 잘했네. 이번에도 실종되지 않는다면 말이야.”
성현제는 사라지고 유현이는 국외로 나가질 않아서 그 다음 랭킹전 1위는 성현제에게 압도적으로 밟혔던 놈이 차지했었다. 그래서 여전히 성현제가 1위나 다름없다고들 했었고. 그리고 그 랭킹전 1위는 그런 소리 듣는 것에 열 받아서 과거 예선전에서 성현제와 가장 대등하게 싸웠던 유현이에게 승부 내자고 덤볐다가 깨졌다.
덕분에 해연 길드장에 한해서 무조건 한국에서 경기 진행한다는 특별 룰이라도 만들자는 말이 나왔지. 실제로 내가 회귀하기 전 마지막 랭킹전에서는 유현이에게 최대한 배려를 해줘서 4위까지 올라갔었다.
“첫 랭킹전 열 받았었지.”
“1회는 나라별로 예선전 치렀었잖아. 예선 통과도 못 했단 소리 듣고, 젠장.”
각 나라에서 예선전 치러서 S급 보유 수대로 한 명에서 최대 세 명. 그리고 한국은 한 명만 본선에 진출했다. 그게 성현제였고, 어쨌든 예선 탈락이라고 해연 길드장이 까였지.
그 후로는 나라별이 아니라 강자들을 적당히 나눈 뒤 섞어서 뽑기였다. 2회 차 때 성현제는 1회 랭킹전 압도적 1위여서 바로 8강전으로 올라갔고 유현이는 전승 1기권패로 32위에 그쳤다. 32강 때 상대의 나라에서 경기를 진행하기로 결정된 탓이었다. 이때도 성현제가 1위 했고.
“우리 걱정해서 해외에 못 나간 거였으니까, 이번에는 다 쓸어버릴걸.”
“혹시 모르니까 그놈의 사슬도 빼돌려 봐.”
“아예 출전 못 하게 가둬 놓으라 하지 그러냐.”
“1회는 그래도 되지 뭐. 경력 차이가 있잖아. 불공평하다고.”
“그건 그래.”
내 말이 맞다. 심지어 성현제의 실질적 경력은 수백 년을 가볍게 넘어설지도 몰랐다. 역시 불공평하잖아. 은퇴하고 심판해야 할 경력 아니냐. 하지만 무슨 수로 잡아 가두지. 경기 직전에 송 실장님이 퇴직하고 세성에 들어갈 생각이 있대요! 하면 따라오지 않을까. 아니면 유현이 대신 나랑 한판 뜹시다! 초승달 힘 재현 가능! 하고 끌어내거나.
“그래도 꼴 보기 싫으니 벗어.”
“옙.”
내가 유현이 갈아입히려고 가지고 온 거라며 애들이 덤으로 챙겨 왔던 셔츠를 내밀었다. 엄청 크네.
“한 대 패버리고 싶기는 한데, 지금 유현이 깨울 거냐.”
“응.”
“너 패봐야 유현이만 걱정하겠지. 망할 놈.”
못마땅하게 인상을 찌푸린 내가 예림이와 윤윤이 오면 옷을 받아 오겠다며 밖으로 나갔다. 문이 닫히고 간접조명만 켜진 침실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침대로 다가가자 검붉은 얼룩들이 눈에 들어왔다. 상처는 치료했지만 흔적들은 그대로였다.
“유현아.”
손을 뻗는 순간,
탁!
붉은 도마뱀이 튀어나와 작은 앞발로 내 손끝을 후려쳤다. 그리곤 화가 났다는 듯 폴짝폴짝 뛴다.
“미안, 린아.”
이리 와서 말하라고 손을 내밀었지만 이린은 홱 돌아서서 사라져 버렸다. 많이 삐졌나 보다. 다시 유현이에게 손을 대고 어깨를 살짝 흔들었다.
“형 왔어.”
역시 이 정도로는 깨어날 기색이 없었다. 내 스킬이니까 내가 조금이나마 거둘 수 있지 않을까. 마나각인의 힘을 빌려 유현이의 몸으로부터 천천히 자장자장 스킬의 흔적을 탐색했다. 쉽지는 않았지만 스킬의 흔적을 약간 빼내는 데 성공하고.
한유현의 눈이 번쩍 뜨였다. 흐릿하던 초점이 빠르게 나를 향해 고정되었다. 그 직후.
풀썩!
내 몸이 침대 위로 내리눌러졌다. 유현이의 손이 내 목을 단단히 움켜쥐고 이린이 다시 나타나 내 어깨위로 내려왔다.
– 삼키자, 유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