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437
435화 결과 (2)
유현이가 오면 말을 전해 달라고 노아 씨에게 부탁한 뒤 소파에서 일어났다. 피스가 종종종 나를 따라왔다. 거실을 빠져나와 정원이 내려다보이는 발코니로 나갔다. 어둠 속에서 윤윤이 만들어 낸 도깨비불이 반짝거린다. 뭘 하는지 첨벙 물소리도 들려왔다.
“앉게.”
성현제가 흔들의자를 빼주었다. 그러고 보니 다리는 어쩌지. 그냥은 못 고칠 거고 수술 날짜 잡아야 하나. 내가 앉자 피스가 내 발치로 몸을 웅크렸다.
테라스 난간에 비스듬히 기대 선 성현제의 머리색이 달빛을 받아 유독 바래 보였다.
“성현제 씨도 꽤 막막하시겠죠.”
말없이 나를 바라보고만 있기에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할 말이라고 하면 역시 이거겠지. 악몽 던전 속에서 있었던 일들.
성현제도 머릿속이 복잡해졌을 것이다. 자신에 대해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되었으니까. 그것도 안 좋은 쪽으로.
“그래도 잘 생각해 보면요, 상황이 그리 나쁘진 않습니다. 초승달이 우리 세상에 직접적으로 개입하긴 힘들어졌으니까요.”
예전에야 초승달이 성현제를 슬쩍 빼돌리기 쉬웠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지금 우리 동네 주시하고 있는 초월자가 한둘이 아니잖습니까. 그것도 단순히 도와줘야 할 세계들 중 1이 아니라 초월자들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세상이 되었죠. 제가 말해 줬던가요? 지금 우리 세계 놓고 패륜아들이랑 효도중독자들이 회의 중이래요.”
초승달이 제아무리 잘났다고 해도 양 세력이 협상을 하고 나면 멋대로 날뛰긴 힘들지 싶었다. 조심해서 행동해야 하겠지. 무해의 왕처럼 성현제에게 관심 가질 초월자들이 많을 테니 들키지 않게 몸도 사려야 할 거고.
자칫하면 공들인 탑 무너지는 건 물론이요 빼앗길 수도 있으니까.
“그러니 시간은 번 셈이죠. 회귀 전에 비해 정보도 더 많고, 도와줄 초월자들도 있고. 성현제 씨가 한 천 년쯤 버텨내면 송 실장님이 초승달이 묶어 놓은 계약을 제거할 수도 있을 거고요.”
멸망을 무사히 막아 내고 초승달의 개입도 없다면. 그러면 언젠가 송태원이 성현제를 구해 줄 것이다. 그 긴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이 괴로울지라도 송 실장님은 절대 자신이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을 포기하지 못하겠지.
정작 송 실장님 스스로는… 간접적인 도움이야 받을 수 있겠지만 누군가가 구해 주는 건 불가능한 문제일 터였다. 그래도 회귀 전과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면 조금씩 바뀌어 가겠지. 어떤 쪽으로든 말이다.
“몸 상태는 어떻지.”
조용히 내 말을 듣고만 있던 성현제가 불쑥 물었다.
“네? 아 뭐, 괜찮은데요. 무해의 왕이 그러던데 오히려 좋아졌대요. 제 던전 보상 처리해 준 사람은 신입이 아니라 무해의 왕이었거든요. 던전 보스가 자기 권속이라 파편이 남아 있었다나.”
“다행이로군.”
“그렇죠. 마나각인도 안정화되었다 하고. 다리만 치료하면 됩니다.”
다친 다리를 가볍게 두드려 보였다. 피스가 끄응, 걱정스런 눈빛을 보내왔다. 괜찮아, 괜찮아.
“그래서 무슨 이야기를 하시려고요?”
방금 내가 한 말 말고 더 있나.
내가 납치되기 전까지는, 해외로 나간다느니 하고 있었다. 그 전에 회귀에 대해 밝히려고 했는데 이번 일로 다 알게 되었고. 작은 달과 초승달에 대한 정보도 많이 챙겼고.
이젠 딱히 남은 일 없는 거 같은데.
“신입이 결과 통보해 오기 전까진 세상 구하는 데만 신경 쓰면 될 거 같거든요. 전 계속 기승수 키우고, 각성센터 쪽도 참견해 주고. 성현제 씨는 해외로 갈 거랬고요.”
“이번 납치와 연관되어 있는 자들에 대해 조사하기 위해서라도 말이야.”
“배경이 복잡한 것 같습니까?”
“아무래도. 박하율도 원래는 중국 군부 소속이 아닌 모양이니.”
“맞아요. 누님 어쩌고 하던데 혹시 짚이는 거 있습니까?”
성현제가 천천히 고개 저었다.
“내가 가지는 넓게 뻗어두고 있지만 깊게 파고들기까지 한 나라는 몇 없다네. 아쉽게도 몸뚱이가 하나뿐이라. 3년이라는 시간 자체도 부족한 편이었지.”
하긴 3년이면 한 나라에 집중하기도 모자란 시간이었다. 그런데도 세계 각국에 발 뻗고 다녔다니. 대단하긴 대단하단 말이야. 중국만 해도 지금 이 시기면 타국의 정부도 자세한 정보를 캐내기 힘들 정도로 폐쇄되어 있었는데 이렇게 머물 곳까지 바로 딱 내어오고. 사람도 제법 여럿 심어져 있는 듯했다.
한국의 세성도 규모가 큰 편이지만 숨겨져 있는 것을 다 끌어내면 어마어마하지 않을까.
“혹시 에블린 씨 말고도 세성 소속 S급 헌터가 더 있어요?”
“소속이라기보다는 협력이지.”
“있긴 있다는 거구만. 누군데요? 몇 명이나 됩니까?”
“언젠가 소개시켜 주도록 하지.”
극비사항이라 이건가. 하기야 나라도 말 안 한다. 그래도 궁금하네. 어떤 사람들일까. S급 말고 A급도 여럿 있겠지.
“그럼 이제 한동안 보기 힘들겠네요. 아 혹시 정식으로 작별인사라도 하려고요?”
“한국에 안 들어올 생각은 아니네만.”
“그래도 두어 달에 한 번 수준 아닙니까.”
뭐 세성에는 전용기도 있으니 아무리 먼 나라라고 해봤자 한국 오는 데 하루도 채 안 걸리겠지만. 그래도 그쪽 나라 던전에도 들어갈 거고 이래저래 일도 칠 거고. 그러다 보면 한 달 금방이지.
얼굴 볼 일 정말 없어지겠다. 시원섭섭하네.
“송 실장님 고생 적당히 시키시고요. 벌써부터 안타깝네. 성현제 씨가 한국 헌터인 이상 안 끌려갈 수가 없잖아요.”
“즐거웠다고 하더군.”
“…예? 어, 설마 회귀 전의 송 실장님이요……?”
…스톡홀름 증후군 같은 건가.
“할 말이 있다면 들어주지.”
성현제가 뜬금없이 말했다. 여태까지 잘 듣고 있어 놓고선.
“이미 많이 말했습니다만.”
“하고 싶은 말이 그런 것뿐인가.”
“그런 거라니요. 중요한 이야기잖습니까.”
“나는 한유현이 한유진을 서투르게 대했다고 생각했네만.”
갑자기 유현이는 왜 끌어내냐.
“볼수록 그게 최선이었지 싶어.”
“뭐요, 동생이 저 멀리한 거 말입니까?”
“별다른 능력이 없는 회귀 전에도 지금처럼 뛰어다녔을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한숨이 다 나오는군.”
성현제가 진짜로 거하게 한숨을 내뱉었다. 얼굴까지 근심이 가득합니다, 티를 팍팍 낸다. 새삼스럽게 왜 저래.
“아니 저도 제 주제는 잘 아는데요.”
“스탯 F급으로 S급에게 이 악물고 덤벼드는 주제 말인가.”
…내가 라우치타스 잡는 거 보기라도 했나. 그땐 던전 속 내 스탯 받아서 E급이었는데. 그 전에 할 만하니까 덤볐지. 무사히 잘 잡기도 했고.
“말하지 않는다면 나도 말하지 않겠네.”
“…그러니까 대체 뭘 말입니까. 회귀한 것도 털어놓았는데.”
“끝까지 모르겠다면 그에 걸맞게 대접해 주는 수밖에.”
성현제가 어째서인지 약간 씁쓸한 듯이 말했다. 왜 혼자만 아는 소리를 하는 거냐.
“또 뭐가 문제인데요, 또 뭐가! 하여간 까다롭지!”
“억울하군. 내 곁의 두 사람이 배는 더 까다롭건만.”
송 실장님이야 인정하지만 내가 왜. 비교적 단순한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조금쯤은 눈을 붙여야지. 우유를 데워 줄까.”
“제가 앱니까. 말 돌리지 마시고요.”
“꿀을 약간 넣어서.”
맛있을 거 같긴 했다. 캐물어 봤자 순순히 입 열 사람도 아니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방 어디 있는데요?”
“침실로 가져다주지.”
“저도 애들 해주려고요. 송 실장님한테도요. 피스 너도 마실래?”
– 끼앙!
마석가루 토핑해 줄까. 아침 되면 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다들 잠깐이라도 푹 쉬게 해줘야지.
“예림아! 윤윤! 이제 그만 들어와!”
정원을 향해 소리치곤 몸을 돌렸다. 성현제가 부축해 주겠다는 듯 손을 내밀어 왔지만 사양했다. 회귀 전도 지금도 내 발로 충분히 걸어갈 수 있다고.
쟁반 가득 우유 컵을 얹어다 거실로 향했다. 그사이 통화를 마치고 돌아온 유현이가 얼른 다가와 내 쟁반을 받아들었다.
“별일은 없대?”
“응. 아직 박예림은 일본에, 나는 던전에 가 있는 것으로 되어 있으니 그 부분만 조심해 달랬어.”
“송 실장님도 입원 중이겠네. 실장님, 저랑 병실 같이 쓰실래요?”
내 말에 막 거실로 들어서던 송 실장님이 미간을 좁혔다.
“입원해야 할 정도입니까?”
아차. 송 실장님은 아직 내 다리 상태를 정확히 모르지.
“전체적으로 검진도 해볼까 싶어서요.”
“좋은 생각입니다. 다만 저는 귀국 후 바로 퇴원 예정입니다.”
“아쉽네요. 좀 더 쉬시지. 여기 우유 한잔 드세요.”
송 실장님에게, 그리고 노아와 예림이, 윤윤에게도 우유를 건넸다. 이제는 얌전히 쉬라는 말도 덧붙였다.
잠이 올까 싶었지만 침대에 누워 눈을 감자 금방 의식이 멀어져 갔다. 까맣게 먹혀들어 가는 그 기분마저 흐려지고.
“계절이 변할지 모르겠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계속 이대로라면 비닐하우스라도 만들어야 할지도. 그래도 네가 있으니 나무가 다 사라진대도 추울 일은 없겠다만.”
그 목소리를 들으며 유현이가 미소 짓고 있었다. 텅 빈 거리를 두 사람이 타박타박 걸어간다.
“벼농사까지는 힘들겠지. 쌀을 얼마나 오래 보관할 수 있더라? 몇 년 지나면 우리 밥도 못 먹어.”
웃으며 하는 말에 동생이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내가 한번 시도해 볼까?”
“됐네요. 다른 거 먹으면 돼, 다른 거. 채소는 그래도 키우기 쉬우니까. 그리고 닭. 마트에 유정란 팔 텐데 온도 맞춰 주면 부화하려나?”
“닭 키우게?”
“계란에 닭고기도 계속 얻을 수 있잖아. 맞다, 애완동물 가게 뒤져 보자. 조류원 없나? 관상용 닭 같은 거 팔 거 같은데. 알 품게 하면 될걸. 그 김에 갇혀 있는 동물들도 싹 풀어 주고.”
갇혀서 죽는 것보다야 밖에서 어떻게든 살길 찾는 게 낫지 않겠냐며 내가 말했다.
“애완용 토끼는 얼마나 자라지. 토끼도 괜찮은 가축이거든. 계절만 계속 바뀐다면 공원 같은 데 풀어놓고 겨울에만 신경 써 주면 되고.”
유현이가 진지하게 내 말을 귀담아들었다. 고개도 끄덕거린다.
“비둘기도 먹을 수 있어? 많이 있던데.”
“못 먹을 거야 없지. 이젠 환경이 더 깨끗해질 테니까. 원래도 던전 덕분에 예전보단 쓰레기가 줄었지만. 그래도 당분간은 있는 거 먹어야지! 잔뜩 있잖냐.”
꽤나 신나하는 목소리였다.
“먹고 싶은 거 있어? 어딜 털까.”
“난 뭐든 좋아. 형은?”
“나야 딱히 가리는 게 있냐. 역시 고기 구울까. 아, 너 미역국 못 먹었잖아. 내가 끓여 줄게.”
동생이 활짝 웃었다.
“정말 오랜만이다. 형이 밥해 주는 거.”
“기대는 하지 마라. 그동안 식생활이 단조로워서 예전보다 못해졌을지도 몰라.”
“난 이제 요리 잘해. 내가 도와줄게.”
“생일엔 나서는 거 아니야. 내일부터 해, 내일부터. 맛없다고만 하지 말고.”
“맛없을 리가 없잖아.”
내 바람이 만들어 낸 단순한 꿈일까. 아니면 혹시, 아직 나와 이어져 있는 한 줄기가 보여 주는 현실일까.
그냥 꿈일 가능성이 높기는 했다. 하지만, 보기 좋았다. 행복한 꿈이었다. 유현이는 그늘 한 점 없이 해맑은 얼굴이었다. 동생이 그러고 있으니까 보나 마나 나도 비슷한 표정일 것이다.
아침이 머잖았지만 조금이라도 더 길게 저 모습을, 풍경을…….
[허니!]조금 더.
[허니! 허니!]…잠 좀 자자. 시끄럽게 부르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허니! 눈 좀 떠 봐요!”
바로 코앞까지 다가와 쨍알거렸다. 아직 해 안 떴다고. 좋은 꿈 좀 더 꾸겠다는데 왜 방해냐. 이미 두 사람의 모습은 눈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젠장, 꿈 이어 꾸는 방법 구합니다.
“허어니! 결과가 나왔어요!”
“…뭐?”
눈을 번쩍 떴다. 내게 얼굴을 들이대고 있던 신입이 펄쩍 뛰었다. 길게 늘어진 귀도 덩달아 펄럭거린다. 저러니까 토끼 같기도 했다. 물론 강아지지만.
“결과라니!”
얼른 몸을 일으켰다. 웬 카페냐. 신입이 소맷자락을 흔들며 고개를 끄덕였다.
“협상 결과요!”
“어떻게 됐는데?”
긴장으로 입안이 메말랐다. 이렇게 빨리 결과가 나올 줄은 몰랐는데.
“우선 초월자들은 이전 그대로 허니 세상에 과도한 간섭을 하지 않기로 했어요!”
“다행이다…….”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일단 한고비는 넘겼구나.
“그럼 초승달도 채터박스도 직접 튀어나오진 못한다는 거지?”
“네. 지켜보는 눈길이 더 많아졌으니 예전 같은 돌발 행동도 하기 힘들 거예요. 대응도 더 빠를 거고요.”
“진짜? 잘했어! 고마워!”
그 난리만 안 쳐도 어디냐. 정말 한시름 놓았다. 하지만 좋은 소식만으로 끝나진 않을 것이다. 채터박스와 초승달이 순순히 우리를 포기할 리 없으니까.
“한 세상의 일은 그 세상의 사람들에게. 이게 오랜 규칙이긴 했거든요.”
“맞는 말이지. 완전 맞는 말이네!”
“하지만 우리가, 패륜아들이 이미 많이 개입을 했잖아요. 관련된 각성자도 여럿이고요. 그래서 채터박스 쪽, 효도중독자들도 같은 위치에 서기로 했어요.”
“응? 같은 위치라니?”
“허니 세상의 사람들로 허니들을 잡겠다는 거죠.”
…그건 또 뭔 소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