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443
441화 밤산책
탄내가 자욱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냄새일 뿐이건만 진득한 덩어리가 되어 전신을 휘감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한때는 주위 빼곡이 들어차 있던 군의 건물과 시설들은 이제 그 흔적밖에 남지 않았다. 무너져 내린 콘크리트 더미와 흩어진 유리조각. 그을린 타이어가 밑동만 남은 기둥 옆에 나뒹굴었다.
기이익, 우그러진 철판을 뼈가 드러난 손이 밀어낸다. 한때는 상급 헌터였던 시체가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살아 있는 사람은 이미 남아 있지 않았다. 죽은 자들은 끊임없이 부활하고 있었다.
그러나.
파지직!
튀어 오른 전류가 막 일어난 시체를 휘감았다. 폭탄이라도 맞은 듯 산산조각 난 몸뚱이가 느리게 꿈틀거렸다. 전보다 재생 속도가 확실하게 느려졌다.
부활하는 힘에도 한계가 있었다.
“A급도 이 정도인가.”
시체를 향해 관찰자의 냉정한 시선을 두며 성현제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언데드의 부활 능력은 본체의 스탯치에 따라 달라졌다. 하급 헌터는 서너 번쯤 박살 내는 것으로 끝이었다. 중급은 적어도 열 번 이상, 많게는 오십 회 가까이 산산조각을 내야 했다.
그리고 A급 이상은 영원히 되살아나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끈질겼다. 마지막으로 S급은.
– 끄르르륵.
옷만 너덜너덜해졌을 뿐 생전과 거의 변함없이 재생한 시체가 방패를 들어 올렸다. 무표정하고 창백한 얼굴이 알 수 없는 그륵거림을 뱉어 놓았다. 하지만 움직임만큼은 재빨랐다. 전략은 없었지만 전투본능은 남은 채로 스킬까지 사용하며 이곳의 유일한 생자(生者)를 향해 덤벼든다.
핏물이 굳어 가는 구둣발이 널려 있는 철근을 차올렸다. 빙글, 공중에서 맴을 도는 쇠막대에 금빛 전류가 타고 흐르고 그대로 터엉, 시체를 향해 강하게 걷어찼다. 화살처럼 날아간 철근이 언데드의 다리를 꿰뚫었다. 이어 시간 차 거의 없이 두 번째 철근이 남은 다리도 마저 꿰뚫고는,
콰르릉!
두 쇠막대를 피뢰침 삼아 번개가 내리쳤다. 시커멓게 타들어 간 몸뚱이가 풀썩 쓰러지고 빠르게 재생하기 시작했다. 그 위로 연이어 빛이 폭발했다. 쉬지 않고 날뛰는 전류가 잠깐 사이에 수십, 수백 번의 공격을 가한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두 눈을 뜨고 보는 것조차 힘들 날카로운 빛이 단 하나의 목표를 집중적으로 물어뜯었다.
적어도 수천 번. 어쩌면 만 번 이상의 죽음.
난폭한 빛이 가라앉고 시체라기보단 잔해에 가까운 흔적이 희미하게 꿈틀거렸다. 아직 재생력이 남아 있는 듯했지만 몸을 다시 일으킬 정도는 아니었다.
성현제는 걸음을 옮겨 시체 앞으로 다가갔다. 간신히 형체를 갖춘 손가락뼈가 그의 구두코를 툭, 두드리고 기이익 긁어내렸다.
“말이 통한다면 감상을 듣고 싶군.”
자아가 남아 있다면, 강제적으로 부여받은 불멸에 대해. 하지만 이것은 그저 움직이는 덩어리일 뿐이었다.
‘초승달로부터 벗어난다고 해도.’
그날 새벽, 어린 혼돈이 말했다.
‘네 존재 자체는 그대로일 거다.’
쌓여 온 것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이미 성현제라는 존재를 이루고 있는 일부였다.
‘조금 떼어낼 수는 있겠지. 네 곁의 두 녀석이 한 일이기도 했고. 하지만 그것도 한계는 있어.’
쌓인 것들 또한 그였다. 뒤섞인 물과 같으니 과도하게 퍼낸다면 결국 현재의 성현제에게도 영향이 갈 수밖에 없었다. 넘치지 않게 약간 덜어낸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손실은 있었다.
‘그러니 너는 계속 살아가야 하겠지. 초월자들과 달리 한 세상에 머무르겠다면, 지금까지보다 더욱 깊은 무료감에 빠질 각오를 해야 할 거다.’
주위 모든 것을 먼저 흘려보내고, 다시 찾아 온 것들 또한 스쳐 지나가고, 텅 빈 황무지에 홀로 서야 할 날이 오게 될 것이다. 싹이 돋고 숲이 만들어지고 흐르는 물 너머 새로이 찾아오는 무언가가 생긴다 해도 또다시 먼저 사라지는 생.
초월자들이 서로만 어울리며 관리하는 세상의 존재들과 거리감을 두는 것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였다. 책 속의 등장인물 정도가 아닌, 바로 곁에서 어울리는 친구가 된다면 수없이 이어질 이별을 버티기 힘들어지기 때문이었다.
‘넌 오래 버틸 녀석이니 더 괴로워지겠지. 벽을 세우거나 아예 놓아 버린다면 편하겠지만 말이다.’
그런 식으로 스스로를 보호하려 들 성미는 못 되었다. 어쩌면 욕심일지도 몰랐다. 스스로에 대한 그 무엇도 포기하지 않으려 드는, 엄격함에 가까운 자기애와 같은. 장점은 물론 약점 또한 그 자신이니.
사각사각, 뼈가 바닥을 긁었다. A급 몇이 비척거리며 다가오다가 금빛 사슬에 쓸려 나갔다.
한유진은 오래 살지 못할 것이다. 보통 사람만큼 수명을 늘린다 하더라도 백 년이 채 못 된다. 그 마지막을 지켜보고 정리를 하고 몇 가지가 성현제의 손에 남을 것이다.
‘빌려주는 거니까 멀쩡하게 가지고 돌아와요. 괜히 엉뚱한 데로 갈 생각 하지 마시고.’
성현제의 시선이 흑적색 코트 자락에 잠깐 닿았다. 이것 또한 남게 되는 몇 가지에 들어가겠지. 자기 거라고 입으로는 말하고 있어도 결국 한유진은 돌려주게 될 것이다. 어쩌면 웃으면서.
자신을 잊지 말아 달라고 할까, 혹은 잊어 달라고 할까.
송태원은 훨씬 더 오랜 시간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랜 시간을 버틸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백 년, 길어야 이백 년. 그 즈음을 살고 늙어가는 것이 그에겐 행복한 일일 터였다.
천 년 이상의 긴 시간을 살아가는 송태원의 모습은 잘 상상이 가질 않았다. 대신 누군가를 위한 마지막 모습은 몇 번이라도 겪은 듯 선명했다.
“쓸쓸하겠군.”
즐거운 때는 영원하지 않기에 더욱 가치 있는 것이겠지만.
‘그 둘을 잡으려 들지 않길 바라마.’
새벽빛이 밝아오기 직전, 어린 혼돈이 마지막으로 말했다. 포기하기 힘들 것이라고. 그러니 계약서는 끝까지 잘 가지고 있으라고.
성현제는 움직임이 거의 멈춘 뼈 무더기 옆을 스쳐 지나갔다. 하늘의 달이 거의 기울었다. 긴 시간 계속해서 되살아나는 언데드들을 향해 아낌없이 힘을 퍼부었음에도 아직 몸이 가벼웠다.
쌓여 있는 것들의 일부를 끌어낸 덕분이었다.
형태화된 스킬은 아니었다. 단순한 힘의 덩어리 자체는 미미하게나마 움직이는 것이 가능했다. 물론 자칫하다간 컨트롤을 벗어나 버릴 가능성이 있었기에 어린 혼돈이 단단히 주의를 주었었다.
잠깐 미쳐 날뛰더라도 괜찮은 곳에서만 시도해 보라고.
‘너는 새로운 능력을 가질 때가 아니야. 몇 년이고 소화에 매달릴 판이지.’
아주 천천히, 조금씩. 어린 혼돈이 확인해 본 바로는 성현제의 스스로에 대한 제어력은 무척 뛰어난 편이었다. 그러니 쌓여 있는 힘들을 조심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은 시도해 볼 만하다 하였다. 단, 스킬을 끌어내는 짓은 자아가 흔들릴 위험성 때문에 금지당했다. 어디까지나 뭉쳐진 힘의 덩어리 자체만 건드려야 했다.
그리고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아직은 능력자체가 상승하기보다는 내구력이 강해진 정도였지만.
슬슬 돌아갈까. 성현제는 휑한 주위를 돌아보았다. 그리곤 살짝, 곤란한 듯 눈썹 끝을 올렸다.
‘…비행이나 순간이동 스킬 정도는 끌어내고 싶어지는군.’
남아 있는 게 없으니 걸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가 제아무리 다재다능하다더라도 타고 녹아내린 고철을 자동차나 헬기로 만들어 내는 건 불가능했다. 심지어 무림맹이 준 통신기도 언데드 헌터의 광역 스킬의 영향으로 파손되어 버렸다.
물론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기는 했지만 수 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곳이었다. 하는 수 없이 방향을 잡고 걸음을 옮기려는 그때.
타다다다다─
헬리콥터의 날갯소리가 들려왔다. 성현제는 움직임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피아 구분은 가지 않았지만 헬기가 무사해야 했기에 얌전히 착륙하기를 기다렸다. 그의 위치를 확인한 헬기가 수십 미터 떨어진 곳에 내려섰다.
‘S급 헌터가 둘.’
상대가 기세를 감추지 않았기에 먼 거리에서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었다. 그 외 상급 헌터도 있는 모양이었다.
아쉽게도 헬기에서는 S급 헌터들 중 한 명만이 내려섰다. 성현제는 헬기 탈취를 일단 포기했다. S급 헌터를 제압하면서 헬리콥터를 부수지 않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오늘만큼은 피곤한 공무원 씨도 깜짝 놀랄 정도로 얌전한 승객이 되어 줄 수 있네만.”
상대가 군부든 다른 세력이든. 헬기의 서치라이트 속에 두 사람이 성현제 쪽으로 걸어왔다. 한 명은 S급 헌터였고 다른 한 명은 잘해야 중급 이하로 느껴졌다. 또한 둘 다 어두운 로브 차림을 하고 있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세성 길드장님.”
둘 중 작은 쪽이 입을 열었다. 제법 맑은 남자 목소리에, 영어였다. 로브의 모자 아래로 드러난 눈동자 색도 초록빛이 돌았다. 중국 군부는 확실히 아닌 듯했다.
“면담 비용은 헬기로 대신하지. 목적은 짧고 명확하게 부탁하네. 꽤 피곤한 처지라서.”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비싸다고는 못 하겠군요.”
남자가 작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당신은 이미 아신다고 들었습니다. 세상 밖의 존재를요.”
“빠르군.”
한유진의 말을 들었을 때 접근해 오는 자가 있을 것이라 예상은 했었다. 계약은 끊어졌지만 성현제는 이미 한 번 패륜아 측과 손을 잡았던 적이 있었다. 이미 한 번의 연결이 있었으니 상대적으로 간섭하기도 쉬울 것이었다.
그렇다 해도 고작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 예상보다 빠른 움직임이었다.
“저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남자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던전이 이 세상에 나타난 것은 모두 신의 뜻입니다.”
“종교 권유는 사절하지. 생각해 보니 산책하기 나쁘지 않은 날씨야.”
느긋이 걸어가는 게 썩 괜찮은 선택지로 여겨졌다. 던전의 생성과 몬스터가 쏟아져 나오는 현상을 신의 뜻이라 주장하는 무리가 예전부터 있었다. 성현제 또한 해외에서 몇 번 마주친 적이 있었으며, 광신자는 상대하지 않는 게 낫다로 결론을 내렸다.
미련 없이 돌아서는 그를 향해 남자가 말했다.
“저는 미래를 볼 수 있습니다.”
“…세상에.”
광신자에 예언가라니. 성현제의 취향과는 좀 많이 어긋나는 부류였다.
“정확하게 떠오르기 시작한 것은 한 달 전부터였죠. 제가 떠올리는 미래는 대부분 정확했습니다. 단 한 군데, 한국을 제외하고는요.”
그의 말을 귓등으로 흘리고 걸어가려던 성현제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미래가 아니라.
‘…회귀 전의 기억인가.’
그렇다면 한국만 달라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한유진의 영향으로.
“내게는 더더욱 쓸모가 없겠군. 알다시피 한국인이라.”
“하지만 세성 길드장님은 해외 활동이 더 잦으시지 않습니까. 또한.”
남자가 목소리를 낮추었다.
“세상 밖의 존재께서 일주일 전, 제게 직접 연락해 오셨습니다.”
“신이 말인가. 대단하군.”
“아닙니다. 그분은 신을 모시고 있으며, 신의 의지가 바로 던전의 발현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들의 믿음이 옳다고 대답해 주셨습니다.”
일주일 전이라면 초월자들의 협상이 끝나기 전이었다. 그렇다면 무해의 왕과 함께 이미 이 세계에 개입 중이었던 채터박스일 가능성이 높았다.
성현제는 천천히 몸을 돌려 남자를 바라보았다. 여기서 처리하는 편이 나을까. 그의 기색을 눈치챘는지 남자가 재빠르게 말했다.
“지금은 서로 해를 끼쳐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연락을 받지 않으셨습니까.”
“해외여행 금지는 당했지만. 어기면 어떻게 될지 궁금해. 나름 호기심이 많은 편이라.”
남자 옆에 서 있던 S급 헌터가 무기를 꺼내 들었다. 하얀 날의 검이 희미한 빛을 발했다.
“저는 세성 길드장님께 제안을 드리려고 온 것입니다. 신을 반대하는 자들은 당신에게 아무것도 주지 못할 겁니다. 하지만 신을 모시는 분들은 다릅니다.”
“너무 뻔한 소리라 벌써부터 지루해지는데.”
“바라는 것이 있지 않으십니까. 당신도 사람인 이상.”
바라는 것이라면. 성현제의 눈이 가늘게 휘었다.
“아쉽게도 내 곁의 둘은 고집이 강해서. 이상한 종교 권유를 대가로 받아 온 것이라면 둘 다 거절할 거라네. 미쳤냐는 소리도 들을 수 있겠군.”
멱살까지도 충분히 잡히고 남을 것이다. 송태원이 어이없는 표정은 구경할 만하겠지만.
“…예?”
“나는 요즘 잘 살고 있으니 다른 사람을 찾아보도록.”
성현제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빛이 퍼져 나갔다. 날카롭게 치솟는 전격에 S급 헌터가 기다렸다는 듯 대응했다. 칼날에 하얀 안개가 서리며 전격을 마치 얼리듯 굳혀 버린다. 이어 검의 끝이 성현제를 향해 날아들었다. 살짝 고개가 꺾이고 스걱, 매끄럽던 뺨에 긴 선이 그어졌다.
그 직후.
콰과광!
헬리콥터가 터져 나갔다. 연이어지는 폭음 사이로 금빛 사슬이 주인 곁으로 날아들었다.
“좋은 밤산책 되시길.”
과장되게 허리를 굽혀 인사해 보인 성현제가 마지막으로 살상력 없는 전류를 드넓게 퍼뜨렸다. 그리곤 몸을 돌려 저벅저벅 걸어 나간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남자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조금도 들어 주질 않는군요. 인사가 목적이기는 했습니다만.”
어쩔 수 없다면서도 아쉬워하는 그의 뒤쪽으로 난감해하는 외침이 들려왔다.
“통신기가 전부 고장 났습니다!”
“…네?”
그들 또한 전부 걸어가야만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