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444
442화 귀국 (1)
무림맹에선 우리에게 따로 떨어진 별채를 통으로 내어주었다. 배려는 고마웠지만 바로 뒤쪽에 온천이 있는데도, 아니면 온천이 있어서 난방에 신경을 안 쓴 건지 객실이 으슬으슬했다. 사실 입식이라는 것부터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적어도 침실에는 신발 벗고 들어가야지. 우리 집 현관에는 물티슈도 상비해 놓고 애들 산책하고 들어올 때 발 꼭꼭 닦는데. 워터리스 세정제도 있다.
‘온돌이 최고지.’
바닥 난방 얼마나 좋냐. 아니면 전기장판이라도. 역시 빨리 집에 가고 싶어졌다. 군부에 잡혀 있을 때도 숙소가 영 별로였다고. 던전 속 호텔은 괜찮았지만. 그나마 유현이가 있어서 춥게 자진 않았다. 아니었으면 감기에 걸렸을지도.
“이런 차는 처음이라서, 제대로 끓인 건지 모르겠어.”
우리 일행 외엔 사람도 전부 물린 채라 유현이가 차를 직접 내어왔다. 담으로 감싸인 후원의 돌 의자는 이린이 붙어서 따뜻하게 데워 주었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하늘은 희미한 붉은빛과 보랏빛이 뒤섞여 있었다.
“고맙다.”
“몸에 좋은 거래.”
맛은 없겠구만. 어젯밤 동생이 호연 선생님에게 한약재에 대해 진지하게 상담하고 있는 모습에 절로 입안이 써졌다. 심지어 저 어르신 약 달이는 스킬도 있는데 스킬 쓰면 맛은 더 없어진다고 했다.
‘최적화 스킬이 다섯 개나 있었지.’
심지어 SS급도 있었다. 다섯 개 중 A급짜리 하나는 얻지 못했지만, 스킬만 보면 S급 힐러라 해도 좋을 정도였다.
– 형, 의자 뜨겁진 않죠?
이린이 내 손등 위로 올라오며 물었다. 호텔에서의 일이 미안한 건지 내 눈치를 살피는 기색이었다.
“그래, 딱 좋아.”
– 더 필요한 거 있어요?
“아냐, 괜찮아. 린아.”
– 네!
“네가 항상 유현이 편 들어주는 건 고마워. 그래도 조금쯤은 차분해졌으면 싶다.”
린이가 빙그르 몸을 돌려 머리를 내 소매 안으로 숨기며 꼬리를 탁탁쳤다.
– 형이 유현이 속상하게 안 하면 린이도 그럴 일 없는데요…….
“아무리 사이가 좋아도 말이야, 가끔은 다툴 수도 있는 거야. 그러면서 서로 맞춰 가는 거고. 린이 너도 곧 형이 될 텐데 좀 더 어른스러워져야지.”
형인지 누나인지 언니인지 오빠인지는 모르겠지만. 형이라는 말에 이린이 다시 머리를 내밀며 팔짝 뛰었다.
– 물의 정령은 린이랑 아무 관계 아니야!
“린이 동생인데 그러면 안 돼.”
– 싫은데! 형! 불이랑 물이라고요! 당연한 거예요!
“유현이랑 예림이도 사이좋잖아.”
– …….
이린이 입을 딱 다물며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왜, 나름 좋잖냐.
“예림이가 나 빼고 유현이랑 제일 친하잖아. 아니야?”
– 안 친해! 아아주 조금 괜찮은 거거든요! 그리고 형 빼면 피스가 첫 번째고 박예림은 두 번째예요!
저 말이 사실인지 아니면 피스는 화 속성이니까 첫 번째로 해주는 건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예림이랑 친하긴 하다는 거지. 피스까지 포함하면 친구가 둘이나 되네.
“피스도 유현이랑 친하지?”
– 끄우응.
내 무릎 위에 웅크리고 있던 피스가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피스에다가, 따지고 보면 린이도 친구라고 할 수 있잖아. 심지어 린이는 말도 통한다. 이 정도면 평범한 친구지.
“세성 길드장은 언제 돌아오는 거지. 온천 한번 더 들어갈까. 일본에서도 괜찮았는데 날 싸늘해지니까 노천탕이 좋긴 좋더라. 나올 때 추운 거 빼고.”
“옥상정원에 하나 만들까?”
“담이 높으니 지붕 씌우면 안 보이긴 할 텐데……. 보고.”
개인 노천탕이라니, 좀 사치스럽지 않나. 어차피 우리 집은 온천물도 아니고.
“호연 선생님과 무사히 계약하면 전 MKC 힐러는 브레이커 쪽으로 밀어줄까 싶은데, 어때? 아니면 무소속이 나을까.”
유현이가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브레이커가 나을 것 같아. 길드 소속이 아니면 사실상 협회 소속이 되겠지. 각성자 관리실로 가는 건 괜찮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없으니.”
“그건 그렇지. 각관실은 일단 몸값 감당부터가 안 될 테고.”
공직에 A급 힐러 있으면 좋긴 좋은데, 봉사정신 투철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가려 하질 않을 것이다. 차라리 사람이 아니라 같은 능력을 지닌 아이템이라면 국비 넣기가 쉽겠지. 하지만 사람이면 공직자가 월급을~ 운운 백 퍼센트 나올 테니까. 세금 받아먹으면서 왜 치료 안 해주냐! 소리 하는 사람도 널릴 거고.
하늘이 점점 더 밝아오며 노아 씨도 밖으로 나왔다. 예림이는 조금 더 늦게 기지개를 펴며 아침 뭐 먹냐고 물어왔다.
“매운 거 먹고 싶어요!”
“아침부터? 속 버린다.”
“위장도 S급이라 괜찮아요~”
호연 선생님은 무림맹이 구출한 가족을 만나러 한발 먼저 출발했다. 딸 부부도 한국으로 함께 갈 예정이었다. A급 힐러의 가족이니 입국은 물론 이민 허가도 바로 날 거고.
아침을 먹고 우리도 슬슬 가봐야 하나 싶을 때가 되어서야 드디어 성현제가 도착했다.
“왜 이렇게 늦었습니까?”
대체 얼마나 쓸어버렸기에 탄내가 아직도, 잠깐만.
“얼굴은 왜 그래요!”
성현제의 뺨에 희미한 상처 자국이 남아 있었다. 별거 아닌 상처였지만 그 속에 담긴 뜻은 아주 많이 별거였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급히 다가가며 물었다. 군부 헌터들과 싸우다 보면 다칠 수도 있긴 하지. 그러나 성현제가 다른 곳도 아니고 얼굴을 쉽게 내어줄 리가 없었다. 심지어 아직 회복이 되질 않았다.
“포션 쓴 거예요? 치료 안 했어도 얕은 상처면 금방 회복하잖아요.”
성현제가 주위의 무림맹 사람들을 둘러보곤 나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소리 차단 아이템을 썼다. 입술도 거의 움직이지 않으며 그가 대답했다.
“일종의 정지시키는 스킬이라네.”
“정지요?”
“굳혀 버린다고 해야 하나. 상대의 스킬만이 아니라 상처에도 적용이 되는 모양이더군. 상처의 상태를 고정시키는 능력이라 포션도 통하지 않아.”
“그럼 흉터가 남는 겁니까?”
아니 왜 하필 얼굴에. 제일 봐줄 만한 곳인데.
“천천히 풀리고는 있어. 해독 아이템과 해주 아이템을 번갈아 써보았는데, 저주 쪽이었다네.”
등급이 높은지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았다고 했다.
“칼로 베는 것을 굳힌다, 라는 조건형이지 싶더군.”
“거참 편한 조건이네요. 보통은 까다로운데.”
조건이나 대가가 없는 저주는 효과가 약한 편이었다. 라우치타스, 저주독룡종처럼 아예 종족 자체의 특성을 타고난 게 아니라면 전투 중 공격형으로는 쓰기 어려운 게 저주 스킬이었다. 그래서 상호 동의하는 계약서 형태로 주로 쓰이는 것이고.
손을 뻗어 성현제의 뺨에 난 상처를 감쌌다. 그러자 옅게 남아 있던 상흔이 완전히 사라진다.
“얼굴만 다친 거면, 일부러 확인해 보려고 대준 겁니까? 왜 하필 얼굴이에요.”
“머리를 노린 건 내가 아니네만.”
“그래서 누굽니까.”
성현제가 이렇게 나올 정도라면. 무심코 미간이 찌푸려졌다.
“…채터박스 쪽이에요?”
“정확히는 던전 출몰을 신의 뜻이라 생각하는 자들에게, 채터박스가 손을 뻗은 모양이더군.”
“아, 그…….”
걔들. 갑자기 세상에 던전이 나타나고 몬스터가 튀어나오며 각성자라는 이능력자가 생겨난 것을, 신의 힘이라고 생각하는 자들이 당연히 존재했다. 한국에는 그래도 좀 적은 편이었지만 해외에는 심각한 부류들도 더러 있었다.
“어느 쪽인데요. 채터박스 말을 들을 정도라면 종말 쪽입니까?”
“던전을 막는 것이 신의 뜻을 어긴다 믿고 있는 자들이지.”
“어휴…….”
절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하긴 써먹기 딱 좋겠네요. 세상 멸망하는 게 옳다고 생각하는 인간들이니. 하지만 제 기억으론 그리 힘이 있진 않았을 텐데요. 테러는 잦았다지만.”
던전 공략을 반대하는 입장이다 보니 소속 헌터 중 S급은 한 명도 없었고 대부분 하급이었다. 그렇다 해도 해외에서는 총화기를 쓰다 보니 피해는 큰 편이었다.
“목숨을 아끼질 않으니 상당히 피곤했었다네.”
몇 번 마주친 적이 있다며 성현제가 성가셔하는 기색을 대놓고 드러냈다.
“S급 헌터라 해도 일상생활은 비각성자와 큰 차이가 없으니.”
호텔에 쫓아와서 폭탄 터뜨리고 식당에 뛰어들어 기관총 난사해 대면 귀찮을 수밖에 없다며 그가 말했다.
“썩 마음에 들었던 카페였건만.”
시한폭탄을 설치해 두었다고 했다.
“북미와 유럽 쪽에서 활발하다가 최근에는 남미까지 퍼졌다고 보고받았었지.”
“한국에는 회귀 직전까지도 별일 없긴 했어요.”
헌터 길드들이 뿌리 뽑으려고 몇 번 시도했으나 불가능했다고 성현제가 설명해 주었다. 무엇보다 비각성자도 많다는 게 문제였다. 심지어 비각성자가 쏜 총에 중급 이상 각성자가 피해를 입을 일 없으니 물질적 배상만 하고 풀려나 버린 경우도 더러 있었다.
“상대가 죽거나 다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인지한 행동을 살인미수라 볼 수 없다는 판례였지.”
“…틀린 말은 아닌데 억울하네요.”
그렇다 보니 성현제로서도 꽤 곤란했던 모양이었다.
“귀찮았어.”
“인도와 이집트로 간 건 그 때문입니까.”
“그리고 이제는 S급 헌터도 존재하지.”
무심코 성현제의 뺨을, 사라진 상처가 있었던 곳을 바라보았다.
“일단은 두 명.”
“…더 많을 수도 있겠군요.”
“예언자와 함께 왔었네.”
“네? 예언자요? 정말 사이비답긴 합니다만.”
“한국의 미래는 볼 수 없는 예언자.”
그 말을 듣자마자 이해했다. 내 입매가 약간 뻣뻣해졌다.
“회귀 전의, 기억입니까.”
“약 한 달 전부터 떠오르기 시작했다더군.”
“한 달이면, 채터박스가 아니라 무해의 왕이 개입했을 수도 있겠군요.”
이럴 줄 알았으면 우리 세상에 무슨 짓 해놓았는지 자세히 물어볼걸. 물론 채터박스의 짓일 수도 있었다. 무해의 왕과 함께 행동했으니까.
“…예언자라면 당연히 중요한 위치일 거고, 호위로 따라온 S급 헌터가 그들 중에선 가장 강할 확률이 높겠네요. 어땠습니까.”
“제약만 없었더라면 그 자리에서 처리했을 거라네.”
성현제가 당연하다는 듯 가볍게 말했다. 잘나셨어 정말. 역시 우리 쪽이 너무 유리한데, 이걸 채터박스가 모를 리 없었다. 무언가 방법을 찾아내려 하겠지.
성현제에게 그 사이비 종교에 대한 정보를 부탁했다. 채터박스의 개입으로 많이 변한 듯하지만 그래도 최대한 알아 둬야지.
“밀러 헌터가 그쪽에 대해 상당히 잘 알고 있더군.”
“에블린 씨가요?”
“지긋지긋하게 부딪쳤으니까.”
저런.
아무튼 성현제도 돌아왔겠다 귀국하기 위해 산을 내려왔다. 물론 공항으로 향하기 전에 챙겨야 할 게 있었다.
“자자, 걱정들 마시고요~”
군부의 아이템 창고 역할을 맡았던 헌터 다섯 명이 불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들을 향해 동그랗고 납작한 유리판을 들어 보였다.
“1회용 S급 이하 해주 아이템입니다.”
F급짜리 1회용 조명 아이템이다. 단돈 10포인트, 효과시간 1시간, 수면 등으로나 쓸 만한 광량. 야외에서 텐트 치고 노숙할 때 켜 놓으면 좋습니다. 우리 세상에는 아직 없는 아이템이라 가짜라는 것을 눈치채진 못할 것이다.
“움직이지 마시고요, 제가 신호 보내면 아이템 꺼내십시오.”
“정말로… 괜찮은 겁니까?”
“물론이죠! 믿고 맡기시라니까. 잠깐의 두려움만 버리면 자유를 되찾는 겁니다! 해주 아이템 귀해요, 두 번은 오기 힘든 기회! 이번 기회 놓치면 성녀님 찾아가야 합니다~”
괜찮다고 달래며 헌터를 등 뒤에서 꽉 끌어안았다. 반짝이기 시작한 조명 아이템을 보고 헌터가 인벤토리에서 아이템을 꺼내기 시작했다. 팔찌 하나가 그의 손에 들렸다. 당연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당사자는 물론 주위 다른 헌터들의 표정도 확 밝아졌다.
그리고 내 얼굴도. 자자, 얼른 다 꺼냅시다.
각종 아이템들이 우르르 쏟아지고 헌터가 홀가분하게 물러섰다. 성공 사례를 본 두 번째 헌터가 거리낌 없이 내 앞으로 다가왔다.
“잘 부탁드립니다!”
“네, 네. 남기면 안 되는 거 잊지 마시고요.”
물론 계약서 따로 썼다. 또다시 아이템이 쌓이고 세 번째, 네 번째, 마지막 다섯 번째 헌터까지 해주 작업을 마쳤다. 50포인트어치 조명 아이템이 챙강챙강 깨져 나갔다.
‘내 입꼬리, 진정해라.’
한가득 쌓인 아이템을 바라보자 절로 입술 끝이 올라갔다. 보고만 있어도 배가 부르네.
“손대지 마요. 인벤토리에 집어넣을 생각 하지 마시고 물러들 나십쇼.”
무림맹에 떼 주기 좀 아까워졌다. 그래도 나한테 우선권이 있으니까. 인벤토리 사용 금지 계약을 한 무림맹 감정사와 함께 아이템을 정리했다.
“S급 19개, A급 57개 B급 3개입니다.”
아쉽게도 SS급은 없었지만 S급 무기만 무려 6개나 되었다. 아이 좋아라.
“일단 도검은 전부 제가 가지고 가겠습니다. 세 개네요. S급 와이어도 드릴 분이 계셔서. 둘 중 하나는 세성 길드장님 거고, 창은 뭐, 남겨 드리죠.”
좀 아깝긴 하지만 약속했으니까. 대신 가치 높은 무기를 주는 만큼 나머지 S급 아이템은 내가 더 가지고 가기로 했다.
그렇게 나누고 나자 내 손에 떨어진 S급 아이템은 전부 12개였다. 우리 예림이 모자란 장비 다 갖출 수 있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