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451
449화 선물
가루. 아니 씨앗이라고 해야 할 그것의 수는 당연히 많았다. 반면에 송 실장님은 다수를 상대하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전 괜찮으니 가서 송 실장님─.”
내 입이 합 다물려졌다. 잠깐만, 은혜가 있으니까 웬만한 공격에는 끄떡없지만, 저건.
“촉수형 몬스터로군. 어떤 원리지.”
“유현아! 예림아아!”
너희들이 필요해! 송이를 성현제 머리 위에 던져 올리곤 나도 성현제 어깨에 매달렸다.
– 매애애.
“내려오지 마, 얌전히 있어! 저거, 저거, 전(電)속성 저항도 있는데!”
지금만큼은 성현제 키가 큰 게 천만다행이었다. 성현제의 어깨에 걸치듯 내 몸을 완전히 끌어 올렸다.
“괜찮다더니.”
“안 괜찮아요, 촉수는! 소용이 없잖습니까, 소용이. 촉수형이랑 사람 삼키는 부정형 몬스터는!”
은혜가 가진 것은 방어막이 아니라 피해무효화 아이템이다. 즉, 얼굴을 감싸거나 입이나 기타 구멍으로 들어오는 건 막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숨을 못 쉬면 당연히 죽는다. 하니 그런류의 몬스터라면 상급은 물론이요, 중급이 아니라 하급이라도 위험했다. 이어링이 있으면 중급까진 어떻게 막아지겠지만.
“한유진 군의 약점은 촉수와 슬라임이었군.”
“촉수는 최근 들어 더 싫어졌습니다!”
그사이 검은색 키틴질에 뒤덮인 촉수가 완전히 자라났다. 마치 말미잘처럼 바닥에 붙어서 가닥가닥 줄기를 흔들어댄다.
“외양은 동물형에 가깝지만 실제론 식물로 B급에서 A급 사이인 켄트니시입니다. 뿌리를 지닌 식물인 만큼 이동성은 낮지만 가끔 튀어 오릅니다. 전(電)속성 저항 최소 B급이라 성현제 씨 스킬은 안 쓰는 게 나을 거예요.”
휴대폰을 꺼내 단축 번호를 누르며 말했다. 그 혼자 있다면 모를까, 도심 한가운데다. 퍼져 나가는 전류의 특성상 지금 여기서 촉수 식물을 태워 버릴 만큼의 전격을 퍼붓는다면 피해가 만만찮을 것이었다. 반면에 저것들은 이동 능력이 떨어지니 대피령 내리고 천천히 처리하는 편이 나았다.
[형.]“유현아, 들었어? 바로 와 줘.”
[응, 가고 있어. 안 그래도 전화하려 했는데, 형은 괜찮아?]“당연히 괜찮지.”
역시 해연에 가장 먼저 연락이 들어간 모양이었다. 헌터 협회에서 제일 가까운 S급 길드니까. 상황을 간략히, 빠르게 설명해 주고 통화를 끊었다.
“얼굴 긁힌 거 심해 보여요?”
“피도 맺혔네만.”
“…음, 그 정도는 괜찮겠죠.”
카디건을 얼른 꺼내 입으며 말했다. 유현이에게 저격이 있었다는 거야 당연히 말해 줘야 하지만, 팔을 다친 것까진 몰라도 괜찮을 텐데. 치료도 했고. 성현제의 손에 창처럼 길고 늘씬한 월도가 들렸다.
“S급?”
“A급.”
“세성 길드장님께서 A급 무기도 들고 다니십니까.”
“가지치기하기에 좋더군.”
다른 사람이었으면 농담이겠거니 할 텐데 성현제라 헷갈렸다. A급 무기를 나뭇가지 자르는 용으로 쓰는 짓도 충분히 해 버릴 거 같단 말이야.
“잔디도 깎고 말이죠.”
“혹시 우리가 동거 중이었나?”
“샴푸 동났으니 집에 올 때 사 오십쇼.”
휘익, 월도의 날이 둥글게 공기를 갈랐다. 와글와글 모여 있는 촉수 식물은 여기에만 서른 마리가 넘게 보였다.
“가루 양에 비해서는 적군.”
“일종의 포자인데 전부 성장하지는 못해요. 먼저 자라난 놈이 주위 다른 포자를 흡수해서 더욱 빨리 자라나죠.”
“상대해 본 적이 있나?”
“TV요, TV.”
내가 제일 좋아하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보다 저 켄트니시, 원래는 이렇게 빨리 나타나지 않았을 텐데. 심지어 포자를 구해다 뿌리다니. 역시 초월자, 패륜아 측과 관련이 있는 걸까. 휴전 기간이라며. 반칙 아니냐 이거!
“일단 이동하죠. 특성을 모르고 헛수고들 하고 있을 테니까요.”
헌터 협회에 전화를 걸려 했지만 계속 대기 중이었다. 이 난리가 났으니 당연히 전화가 폭주했겠지.
“꽉 붙잡게.”
성현제가 상체를 약간 낮추며 말했다. 양해를 구하고 그에게 선생님 스킬을 썼다. 그대로 밖으로 나가나 싶었는데, 월도를 쥔 팔에 힘이 들어갔다. 구둣발이 강하게 바닥을 디디며 부웅, 크게 휘둘린 월도가 비스듬하게 땅을 파고들었다.
쿠르릉-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한 흔들림과 함께 월도가 박힌 부분의 앞쪽으로 금이 쩌저저적 퍼지기 시작했다. 이어 무기를 따라 전류가 타고 흘러 땅속으로 기어 들어갔다.
직후,
콰아앙!
요란한 폭발음과 함께 흙더미가 치솟았다. 촉수 식물들 또한 맥없이 허공으로 내동댕이쳐졌다. 그것들을 향해 금빛 사슬이 날아갔다. 차르르륵, 금속성 소리와 함께 촉수들을 휘감아 묶어 버린다.
성현제의 손에서 월도가 사라지고 대신 사슬의 끝이 붙들렸다. 채찍을 휘두르듯, 그가 사슬을 가볍게 휘둘러 묶여 있던 촉수덩이들을 협회 주차장 쪽으로 내던졌다. 뿌리에 흙덩이를 매단 채 촉수들이 담 너머로 사라져갔다.
“남은 건 없겠지.”
“그런 것 같아요.”
“송태원 실장님 자녀분 놀이터가 불타 버려선 안 되니 말이야.”
이미 엉망입니다만. 그래도 홀라당 타 버리는 것보다야 빨리 보수가 가능하겠지. 송이 놀이터에서 촉수를 죄다 치워 버린 성현제가 쩍쩍 갈라지고 파헤쳐진 땅을 박찼다. 순식간에 주위 풍경이 바뀌고 헌터 협회의 너른 주차장이 나타났다.
“으윽.”
시커먼 촉수들로 가득 찬 주차장을 보자 욕지기가 일 것 같았다. 촉수에 휘감겨 우그러진 차들이 여기저기 굴러다니고 헌터들이 급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 메애!
성현제가 착지하는 반동을 버티지 못한 송이가 데굴, 아래로 떨어졌다. 수색자의 사슬이 새끼 양을 낚아채 달랑 들어 올렸다.
“송 실장님! 여기 있는 게 답니까?”
뻗어오는 촉수를 견제하며 바리케이드를 치는 것을 돕고 있던 송태원이 우리를 돌아보았다.
“예. 밖에까지 퍼지진 않았습니다.”
“재생력이 뛰어나서 일반적인 공격은 별 소용이 없어요! 한참을 자르고 잘라야 겨우 죽거든요. 곧 해연 길드장이 도착할 테니 밖으로 튀어 나가지 않도록 막기만 하면 됩니다!”
중상급이라는 등급에 비해 그리 위협적이진 않은 몬스터였다. 촉수로 감아 조이는 것 외엔 변변한 공격 스킬도 없었다. 다만 질기고 빠르게 재생하고 번식력이 좋아서 골치지. 열기와 냉기에 약하니 상급 광역 스킬을 지닌 헌터라면 쉽게 처리 가능했다.
내 외침에 촉수를 공격하던 헌터들이 바깥쪽으로 물러났다. 주차장 가득한 몬스터들을 가운데 두고 포위한 채 방어 위주로 태세를 바꾸었다. 성현제 또한 다시 월도를 꺼내 들고 외곽의 뻗어오는 촉수 정도만 잘라 냈다.
“익숙해 보이기는 하네요. 진짜 잔디 직접 깎아요? 우리 집 정원도 슬슬 관리 좀 해야 하는데.”
“부업을 제안하는 건가. 조건만 맞으면 가 드리지.”
“파트너 할인은 없습니까.”
“대신 리뷰는 만점으로 부탁하네.”
“헐, 천하의 세성 길드에서 대가성 리뷰를 요구하다니. 포털 사이트 첫 화면마다 대문짝만하게 박히고 싶습니까? 검색어 1위 막 찍고.”
“이미 단골손님이네만.”
잘나셨어, 정말. 시답잖은 소리를 하는 사이 하늘 저편에서 붉은색 점이 빠르게 가까워져 왔다. 피스를 본 헌터들이 일제히 뒤로 물러났다. 날개를 길게 펼친 화염 뿔사자가 공중에서 멈추었다. 그 높디높은 곳에서 유현이가 가볍게 뛰어내렸다.
푸른 버들잎은 쓰지 않았다. 천둥새의 예장이 나부끼며 불길이 화악 피어올랐다. 유현이를 중심으로 새빨간 불꽃이 회오리처럼 휘몰아치며 검게, 그리고 검푸르게 물이 든다. 뜨거운 불길을 너르게 두른 채 그대로,
콰아앙-!
촉수 무리의 한 가운데 떨어졌다. 폭탄이 터진 듯 단숨에 불꽃과 함께 열기가 퍼져 나갔다. 눈에 비치는 것이라곤 짙게 검푸른 화염뿐이었다. 불길은 정확하게 촉수만을 삼키며 높게 치솟았다. 보이지 않는 벽에 갇히기라도 한 듯 섬세한 제어력이었다.
타다다닥, 촉수가 이리저리 튀며 순식간에 타들어 간다. 시커먼 재를 사방에 남기고서 불이 화악, 줄어들었다. 주차장과 불운한 차들만 녹아 버렸을 뿐 그 밖의 피해는 전혀 없었다. 주인의 의지에 따라 사그라지는 화염 사이로 동생의 모습이 드러났다.
“기다려, 유현아!”
유현이가 나를 돌아보았다. 뺨의 상처를 발견했는지 눈살을 확 찌푸린다. 그리고 이내, 타고 남은 재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금은 S급 이상 피해무효화를 지닌 수준이니 괜히 힘 뺄 필요 없어!”
재가 한곳으로 모여들며 둥글게 뭉쳐진다. 유현이가 뒤로 물러나며 내 쪽으로 다가왔다.
“다쳤어?”
“아니, 그냥 긁힌 거야. 조금. 어떻게 된 거냐면─.”
“옷은.”
“어, 송이 야외 놀이터에 나와 있으려니 조금 춥더라고.”
내 대답을 들은 유현이가 성현제를 바라보았다. 성현제가 말없이 미소만 지었다. 그러자 이내 송 실장님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아니, 아니.
“누가 총을 쐈는데 빗나갔어! 스쳤을 뿐이야.”
“…총?”
그사이 잿더미가 변하기 시작했다. 땅에 뿌리를 박고 길고 검은 한 줄기만이 높게 뻗어 나간다. 사오 미터쯤 자라난 줄기 끝에 둥근 열매 같은 것이 맺혔다.
“곧 터질 테니 준비해.”
내 말에 유현이가 검은 줄기 쪽으로 몸을 틀었다.
“포자만 깔끔하게 태워 버리면 돼.”
켄트니시는 군체가 전부 죽어 버리면 번식을 시도한다. 이때는 S급 헌터라 해도 공격이 거의 먹혀들지 않았다. 하지만 열매가 터진 직후, 포자 상태에서는 쉽게 태워 버릴 수 있었다. 바람을 타고 날아가 버리면 곤란하겠지만, 유현이의 능력이라면 아주 작은 가루 한 톨도 놓치지 않고 전부 없애 버릴 수 있을 것이다.
유현이의 몸 주위를 가느다란 불길이 헤엄치듯 빙글빙글 맴돌았다. 열매가 사람 몸집의 두세 배쯤 됨 직하게 커지고, 잔뜩 부풀어 올랐다. 그리고 이내.
툭-
터지며 포자가… 포자가…….
“형, 꽃 다음에 열매지?”
“어? 어, 그게.”
보통은 그런데, 저건 꽃은 안 폈는데? 열매가 아닌 꽃망울이 터지며 분홍빛 꽃잎이 와르르 쏟아져 나왔다. 지름이 수 미터쯤 됨직한 거대한 분홍 꽃이었다. 겹겹의 잎이 무척이나 화려하고 조금 아름답게까지 느껴졌다.
…이상하네.
“저는 비각성자입니다!”
그때 돌연 누군가가 소리쳤다. 나는 물론 다른 헌터들까지 외침이 들려 온 곳을 돌아보았다. 바리케이드 너머로 중년 남자가 서 있었다. 겁먹은 얼굴의 그가 다시 외쳤다.
“말을 전하기만 하면 살려 주겠다고 해서, 공격하지 마세요!”
남자가 양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누군가에게 협박받은 건가?
“한유진 사육소 소장님에게 분홍색 꽃을 좋아한다고 들어 준비했습니다.”
아니야!
“가벼운 인사이며 소장님께 드리는 선물이니 안심하세요. 안전합니다.”
안전? 누군지 몰라도 미친놈 아니냐. 유현이 주위의 불길이 화살처럼 쏘아졌다. 거대한 꽃을 휘감고는 단숨에 불태워 없애 버린다.
“기한이 끝난 후 다시 뵙도록 하겠습니다.”
…역시 채터박스와 관련이 있는 놈인 모양이었다. 이게 인사라고? 그보다 저놈들은 기어들어 와서 이 난리 쳐도 되고 우리는 안 되는 거냐. 불공평하잖아!
“송태원 실장님, 팬이에요.”
남자가 입을 다물었다. 쏟아지는 시선 속에서 그가 당황하며 말을 덧붙였다.
“마지막 것도, 전하라고 한 말입니다.”
모두의 눈길이 이번에는 송 실장님을 향했다. 송 실장님은 그냥 피곤한 얼굴이었다.
“…우선, 정리를 시작하지요.”
송 실장님이 짧게 한숨을 삼키며 말했다.
뒤처리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우선 몬스터의 등장은 없는 것으로 쳤다. 던전이 안정화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몬스터가 나타났다고 해서 좋을 건 없었기 때문이었다. 대신 던전 아이템 중에 이상한 것이 있었다 정도로 발표하기로 했다.
마침 헌터 마켓이 있는 협회였고, 마지막에 나타난 것이 무해한 거대 꽃이었기에 적당히 얼버무리기는 어렵지 않았다. 거대한 꽃을 피워 내는 씨앗 아이템 정도로 말이다.
“위쪽으로는 헌터를 향한 테러 집단에 의한 짓이라고 보고되었습니다.”
회의실로 들어 온 송 실장님이 말했다. 그의 손에 웬 꽃다발이 들려 있었다. 분홍색은 아니고 붉은색과 하얀색 꽃이었다.
“처음 터진 폭탄은 물론 한유진 소장님을 스친 탄환 또한 던전 아이템이 아니었습니다. 현대 무기로 테러를 가하는 반(反)헌터 집단은 해외에 다수 존재합니다.”
“한국에는 한참 뒤에나 들어왔지만요.”
이곳에는 내가 회귀한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뿐이었기에 편하게 말했다.
“그리 강하지도 않았고요. 물론 피해는 꽤 있었지만 오늘처럼 몬스터를 이용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한국을 떠난 적 없는 나로서는 낯설기 그지없는 상황이었다. 헌터 협회나 거대 길드를 주로 건드렸기에 나야 마주칠 일도 없었지. 거대 길드야 개미가 따끔하게 무는 수준 정도였고. 귀찮다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말을 전달해 온 그 사람은요?”
“평범한 비각성자였습니다. 가족을 인질로 붙잡혔다고 하더군요.”
협박범에 대한 정보는 얻을 수 없었다고 말하며 송 실장님이 들고 있던 꽃다발을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제게 온 겁니다.”
저런. 성현제 같은 사람이 하나 더 붙어 버리신 건가. 성현제를 슬쩍 쳐다보자 그가 어깨를 으쓱했다. 십중팔구 외국인일 텐데 이거 결국 세성 길드장님 쫓아다니다 붙은 스토커인 거 아니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