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466
464화 팬입니다! (4)
“차일 거라니까요.”
여태껏 돌봐 온 몬스터들의 특성을 노트북으로 정리하며 말했다. 노트북 옆에 앉아서 성현제를 노려보고 있던 한결이가 아빠가 왜 차여, 하고 투덜거렸다.
– 아빠가 좋아하는 사람이면 나도 좋아.
“그렇구나, 결아. 아빠는 사실 성현제도 나름 좋아하고 있단다.”
– 저거 빼고. 아빠한테 위험한 거 빼고.
결이가 성현제를 유독 싫어하는 건 몇 번 위협을 받은 탓도 있지 싶었다. 던전 터졌을 때 갈라 보느니 소리 했었고 크루즈에서도 손대려 했으니 말이다.
“여기가 소장님 업무실 되는 거야?”
문현아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여기는 사육소 1층의 비어 있던 방 중 하나였다.
“사육소장실이 필요하다고 해서요. 여태까진 그냥 집에서 일했는데 이젠 직원도 생겼으니까요.”
나도 슬슬 제대로 출퇴근해야지. 너무 불규칙적으로 살긴 했어. 일단은 책상과 테이블, 소파 정도만 가져다 놓았다. 아직 명패 하나 없었다. 그러고 보니 명함도 새로 뽑아야겠네.
“아무튼 전 딱 고백만 할 겁니다.”
“어떻게 그게 돼. 클로이가 오케이 할 수도 있잖아?”
“그럴 거 같아요? 다른 의도 없이 순수하게 말입니다.”
문현아가 뒷머리를 긁적였다.
“형님이 귀엽긴 한데.”
소파에 풀썩 주저앉으며 그녀가 말을 이었다.
“클로이에게 매력적으로 비치느냐고 묻는다면 솔직히 긍정적인 답변은 나오기 힘들지.”
“당연하죠. 사실상 저 혼자 일방적으로 아는 사이인걸요. 첫눈에 마음에 들었다, 라고 하기도 힘들 거고요. 첫인상은 이러니저러니 해도 외모인데 저는 여러모로 불리하잖습니까.”
혼자 나서도 힘들 판에 유현이에 성현제에 송태원까지 화려한 병풍을 둘렀다. 내 얼굴이 눈에 들어오기나 하겠냐. 그러니 거절당하는 게 맞았다. 다른 속셈이 없다면.
“근데 꽤 냉정하게 말한다? 어제는 어쩔 줄을 몰라 하더니 하룻밤 사이에 마음이 식은 거야?”
“여전히 클로이 씨를 좋아는 합니다. 계속 좋아할 수 있었으면 싶고요.”
클로이는 까맣게 모르겠지만 내가 힘들 때 그녀의 프로그램이 많은 위로가 되어 주었었다. 나 외의 여러 사람도 도움을 받았겠지. 비록 회귀로 인해 그 일들도 모두 사라져 버렸지만 나는 아직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수상쩍은데.”
현아 씨도 슬슬 내 태도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낀 모양이었다.
“한유진 군의 첫사랑을 응원하는 의미에서.”
성현제가 다가와 책상에 걸터앉았다. 그리곤 USB 메모리를 내밀어왔다. 결이가 당장이라도 성현제의 손을 물 듯 이를 드러냈다. 진정하렴.
“첫사랑 아니라니까요. 첫사랑한테는 옛날에 차였습니다.”
노트북에 USB를 꽂았다. 안에 담긴 것은 클로이 앨저에 대한 자료였다.
“빠르네요.”
며칠 뒤에 연락드리겠다고 했는데 고작 하루 만에 정보를 가지고 왔다. 자료에는 신상명세는 물론 최근의 행적까지 자세히 적혀 있었다. 그것을 천천히 읽어 내리곤,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내용 자체에는 의심스러운 부분이 없었다. 다만.
‘1cm.’
회귀 전보다 키가 더 크다. 작은 차이였으나 문제는 지금 시점의 클로이는 내가 알고 있는 클로이보다 레벨이 더 낮을 거라는 사실이었다. 그것을 감안하자면 차이는 조금 더 나겠지. 약 2cm 정도.
‘…역시 스탯 등급이 올라갔다고 보는 편이 맞겠지.’
혹은 신체에 영향을 주는 스킬을 얻었거나. 사실 그럴 수도 있는 일이었다. 등급, 오를 수도 있지. 스킬, 얻을 수도 있지. 나도 변했으며 내 주위도 변하였으니 다른 사람들도 그러지 말란 법은 없었다.
하나 변화라는 것은 그리 쉬운 일도 아니었다. 만약 내게 기억이 없었더라면. 스킬도 그대로에 단순히 회귀만 하였다면. 과연 회귀 전에 비해 얼마나 변하였을까. 아무런 간섭도 없이 변하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한유진 군.”
성현제가 비스듬히 상체를 숙여왔다.
“기억과는 다른 부분이 있는 모양이로군.”
“…네.”
“뭐야, 둘이서만 아는 이야기를 하고.”
문현아가 나도 좀 알자며 투덜거렸다. 자세히 설명하자면 회귀 전 이야기도 해야 하는데. 손으로 세수하듯 얼굴을 문지르며 머리칼을 쓸어 올렸다.
“확실한 건 아닙니다.”
무거운 마음으로 말을 이었다.
“클로이 헌터가 박하율과, 혹은 얼마 전 협회에 테러를 한 자와 연관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클로이가?”
“예. 그러니까 확인을 위해서, 제가 차여야 한다는 겁니다.”
문현아가 느슨하게 팔짱을 꼈다. 내게 뻗어오는 성현제의 손을 결이가 꼬리로 찰싹 쳤다.
“너무 실망하지는 말게. 사람은 겉으로 보이는 것만으로는 알 수 없지.”
“확실한 거 아니거든요.”
“잠깐만, 그래서 형님이 클로이를 좋아하는 척했다는 거야?”
“…척 아니에요. 이성으로서 말고 사람 대 사람으로선 좋아한 거 맞습니다. 팬이라고요, 진짜로.”
“하긴 연기는 아닌 거 같았어. 근데 꿍꿍이가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고백을 할 거라니. 좀 이상한 방법 아닌가.”
“다들 제가 클로이 씨를 그런 쪽으로 좋아한다고 생각하니까, 상황에 맞춘 겁니다.”
키워드 이야기는 할 수 없었다. 키워드가 막히면 박하율 쪽. 막히지 않으면서 나와 사귀자거나 기타 다른 수작을 한다면 중독자 쪽. 둘 다 아니라면, 조금은 안심할 수 있을까. 그렇다 해도 등급에 대해 캐묻긴 해야겠지만.
“클로이 씨가, 제 조건만 보고 사귀자고 할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안 그래요?”
“내가 알기로는 아니지. 클로이는 뭐랄까, 송 실장과 조금 닮았어.”
“송 실장님과요?”
“전에 내가 특이하다 그랬잖아. 물론 그 정도로 자기 자신을 억누르는 건 아니고, 상급 헌터치고는 공공의 이익을 중시하는 편이라고 할까. 횡포 부리는 헌터들을 싫어하는 편이기도 해.”
“…좋은 사람이네요.”
“왜, 그쪽 동네에도 차별은 꽤 있잖아. 옛날에 비해 덜해졌다곤 해도 말이야. 미국의 영웅은 하얀색뿐, 이라는 말도 있지.”
전부까진 아니었지만 미국에서 유명하고 인기 많은 헌터의 대다수가 백인이긴 했다. 능력이 비슷하거나 조금 떨어져도 더 우대받는 문제에 대해 말이 나온 적도 있었고.
“그래서 윤리관도 꽤 딱딱한 편이라 한 소장님 납치하고 저격한 놈들과 한통속일 거 같진 않은데, 으음. 성현제 말대로 사람 속은 알 수 없으니. 겉과 속이 완전 다른 인간도 많거든.”
“브레이커 길드장님도 당한 적이 있었지. 그러니까─”
“입 다물어라, 성현제. 확 꿰매 버리기 전에.”
문현아가 미간을 확 일그러뜨리며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현아 씨도 사기당한 적 있는 걸까.
“그냥 제 오해일 수도 있어요.”
“아무튼 형님이 깔끔하게 거절당하면 별 속셈 없을 거라 이거지?”
“일단은요. 저를 노리고 있다면 놓치기 아까운 기회긴 하잖아요.”
효도중독자 쪽과는 휴전 기간, 이라고 해도 단순히 접촉하는 건 양쪽 모두 괜찮다고 했으니. 나와 가까워지는 걸 마다할 리가 없었다.
“함정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제 행동이 꽤 자연스러웠을 것도 같고요.”
“나도 속았을 정도니까 그건 장담해.”
“진짜긴 하다니까요.”
그리고 이렇게 떠들썩하게 좋아한다며, 고백한다며 여기저기서 찔러들고 나는 열심히 부정하는 걸 보면 다 같이 짜고 일부러 저러는 거네, 라고 생각하긴 힘들 것이다. 실제로 내가 한 일은 고백할까 한마디 꺼낸 것뿐이고.
“소문도 많이 퍼진 거 같고요.”
“응. 우리 길드에도 싹 다 퍼졌어.”
“소영이가 부케를 받고 싶다더군.”
“아, 리에트가 늦기 전에 한번 건드려 볼까 하더라. 몸조심해. 밤에 문단속 잘하고.”
뭔 소립니까, 그게. 그래도 애인 있는 사람은 손 안 댄다는 건가. 그런 거 신경 안 쓸 줄 알았는데 의외네.
“…저는 그렇다 쳐도 클로이 씨에게 진짜 미안하네요. 괜한 오해였으면 머리 박고 사과해야겠어요.”
“형님이 꾸며낸 행동은 아니었다며. 그리고 스탯 F에 더 어리니까 괜찮아. 클로이가 하급 헌터였거나 성별이 반대라면 입 다물고 조용히 시켜야겠지만.”
지금 상황은 가벼운 해프닝 정도로 넘어갈 수 있다며 문현아가 손사래를 쳤다. 클로이도 재밌어할 거라며.
“다른 사람들에게는 비밀로 해주세요. 유현이와 예림이는 물론이고 송 실장님에게도요.”
유현이와 예림이는 사실을 알고 나면 바로 티 나겠지. 송 실장님도 연기를 잘하시는 편은 아니고.
“걱정하지 마. 그래서 어느 호텔? 오케스트라 불러 줄까?”
고백하는 건 고백하는 거니까, 라며 현아 씨가 여전히 신나했다.
“예, 예. 클로이 씨도 현아 씨 성격 알고 있을 테니까 마음대로 하세요. 저는 두 분에게 실컷 휘둘리다가 등 떠밀려 고백하겠습니다.”
그리고, 이건 밝히기 좀 망설여지지만 대비는 해둬야 하니까.
“클로이 씨의 능력치가 알려진 것보다 높은 듯합니다. A급이 아니라 S급일 수도 있어요.”
“뭐?”
문현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성현제도 거기까지는 짐작하지 못한 듯했다.
“A급인 클로이 앨저에 비해 현재의 클로이 앨저의 신장이 약 2cm가량 큽니다.”
“그래서 자료를 보고 확신한 것이었군.”
“무슨 소리야, 그게?”
“원래 클로이 앨저는 5년 후에도 지금보다 1cm 더 작았었거든요.”
“…5년 후?”
“제가 사실 5년 후의 미래에서 왔어요.”
“한유진 군의 말이 사실이라네.”
성현제가 거들어 주었다. 문현아가 등을 굽히며 턱을 괸 채 우리를 빤히 쳐다보았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뭐, 좋아. 별일 다 있다 싶지만 던전 생기고 진짜 별별일 다 있었으니 뭐. 딴 세상도 갔다 온 판에 시간여행 정도야. 결론은 형님이 5년 치 미래를 알고 있다는 거 아니냐.”
“많이 바뀌었지만요. 원래 전 몬스터를 키우지 못했거든요. 사육소도 없었죠. S급 기승수는 5년 후까지도 존재하지 않았고요.”
“지금이 훨씬 낫네! 그거면 됐지.”
굽어졌던 등이 쫙 펴지며 문현아가 소파 등받이에 몸을 푹 묻었다.
“혹시 나한테 충고해 줄 건?”
“없습니다. 언론플레이 조심하라는 것 정도요? 제가 왜 그 일을 알고 있었겠어요.”
“으음, 알았어.”
그리곤 더 자세히 물어오지도 않았다. 아카테스에서도 느꼈지만 현아 씨는 현재에 가장 충실했다. 자신이 겪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 그러니 사라진 미래에 대해서는 별 미련이 없겠지. 회귀 전 브레이커 길드가 무너진 후에도 여전히 자신의 길을 걸어갔을 테고. 그건 지금 현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A급일 때와는 신체의 변화가 크다, 그래서 수상쩍다. 걔들 A급을 S급으로 만들어 줄 수도 있는 건가? S급도 SS급 가능하고?”
“그건 힘들걸요. 그리고 저도 김성한 헌터 S급으로 성장시켜 준 적 있잖아요.”
“아, 그랬지.”
“성장 조건을 알아냈기 때문이었지만 그것 자체도 쉽지 않습니다. 조건도 까다로웠고요.”
덧붙여 내가 회귀한 날짜도 가르쳐 주었다. 준비 멋지게 해주겠노라 말하며 문현아가 먼저 자리를 떠났다. 결이가 너도 빨리 가라며 성현제를 째려보았다.
“고백할 때 주위 사람은 물릴 건가.”
“네. 아직 스킬이 풀리지 않았으니 만약을 대비해 공포 저항은 꺼둘 겁니다. 그편이 더 실감 나겠지요.”
박하율과 관계가 있다면 날 조종하려 들 수도 있으니까. 공포 저항 없이 좋아하는 S급에게 고백하기라니, 내 꼴 정말 우스워 보이지 않을까. 이건 차이지 않는 게 이상한 수준이다. 조오금 슬퍼지기도 했다. 나도 말이야, 평범하게 연애해 보고 싶은 마음이 아주 없는 건 아닌데.
“진짜 만에 하나 사귀자고 하더라도 내가 포기할 거라니까.”
그래도 예림이는 진정하고 아저씨 훌훌 털어 버리세요, 미리 힘내세요 했지만 유현이는 내가 거절당할 거라고 생각하기가 힘든 모양이었다. 조건만 보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말이야.
“너도 내 상황 잘 알면서 그러냐.”
“…응.”
“언제는 내가 결혼하면 비켜 줄 거라고 하더니.”
“진짜요? 한유현이 진짜 그랬어요?”
예림이가 믿을 수 없다며 유현이와 나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때는 형만 행복하면, 괜찮다고 생각했으니까.”
“지금은 그러기 싫고?”
“…응.”
유현이가 미안해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억지로 참는 것보다야 낫다.
“그리고 잘 모르는 사람이잖아. 나도 무조건 반대하는 건 아니야.”
“아저씨, 저거 순도 백 퍼센트 거짓말이에요.”
“믿을 만한 사람이라면 괜찮다고 생각해.”
“있긴 하냐, 그런 사람. 길드장님 기준 통과하려면 기껏해야 피스 정도?”
“그래, 피스면 괜찮아.”
나와 예림이가 동시에 유현이를 빤히 쳐다보았다. 어, 진심인 거 같은데.
“와… 한유현.”
“유현아, 최소한 종족적 차이는 생각해야지.”
물론 나도 피스를 믿고는 있다만 말이다. 게다가 내가 키웠는데.
“피스 정도라면 말이야. 형을 절대 해치지 않을 테니까.”
“그래, 그래.”
말하는 사이에 차가 호텔에 다다랐다. 차일 생각 하고 하는 고백이지만 가슴이 살짝 두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