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468
466화 좋은 사람도 (2)
나를 대하는 번케이브 길드원들의 태도가 달라진 것만큼은 확실했다. 내 말에 좀 더 귀 기울이고 내 움직임에 좀 더 집중을 한다. 성현제가 말했듯이 사람은 별것 없는 상대에게는 관심을 잘 두지 않는다. 유명한 연예인과 평범한 행인이 길을 간다고 생각해 봐라. 후자에게 시선을 두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부정적인 쪽으로도 마찬가지다. 험악한 인상에 칼을 들고 있으면 다들 슬슬 피해갈 것이다. 모른 척하고 싶어 하면서도 계속해서 신경을 쓰겠지.
한유진은 F급이고 세계에서 유일한 스킬을 가지고 있지만 대외적으로는 S급들의 보호하에 놓인 채였다. 독립적인 시설이 아닌 주위 S급들의 말에 따르는 것이겠지, 하고 내가 아닌 각 길드에, 주로 해연 길드에 사육 의뢰가 들어오는 경우도 많았다.
사실 당연한 결과이기는 했다. 사자가 옆구리에 토끼 끼고 있는데 토끼에게 가서 시간 있으신가요, 제 일 좀 도와주실래요?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보통은 사자에게 먼저 물어보겠지. 그 토끼 좀 잠시 빌려주시겠어요?
‘그런데 성현제가 내게 양보를 했으니까.’
어라 싶을 것이다. 유현이와 예림이도 사육소를 안내하는 내내 내게 달라붙어 있긴 했지만 둘은 가족이니까. 예림이는 어리기도 하고. 게다가 둘 다 어디까지나 날 보호하려는 모습을 주로 보여 주었다.
하지만 성현제는 나를 앞세워 주었다. 가족도 아니고 단순한 계약 관계에 있는 세성 길드장이. 다시 말해 한유진은 그 세성 길드장이 대접해 줄 만한 위치에 있다, 라고 말해 주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결국 성현제 빨이긴 하다만.’
살짝 의기소침해지려는 마음을 밀어냈다. 그래도 여기까지 온 건 내가 열심히 구른 덕분이기도 하지 않냐고. 한 석 달 전이었어 봐라, 성현제가 이런 식으로 배려해 줬겠냐. 앞세우기는커녕 옆에 낀 채 내 토끼가 여러모로 재주가 많지, 할 말 있으면 나를 통하도록. 이딴 식으로 나섰겠지.
그러니 한 10퍼센트 정도는 내 힘이기도 한 거다. 맞잖아.
“A급으로의 성장은 확실하게 보장해 드릴 수 있으니 걱정 마십시오.”
미소를 띠며 제이슨에게 말했다.
“알음알음 알려져 번케이브 길드장님의 귀에도 이미 들어갔을 것이라 생각합니다만, 비각성자의 정보를 확인하는 스킬 말입니다.”
“아, 예. 사실 꽤 퍼진 이야기입니다.”
중국에까지 정보 팔아먹는 놈들이 있었으니 말이야. 각성센터 관련해서 헌터 협회에 알려 줬으니 비밀이 오래 지켜질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아마 지금쯤이면 각국 헌터 협회나 대형 길드 길드장은 웬만해선 다 알고 있을 것이다.
“그게 새끼 몬스터도 비각성자 취급을 하여 성장 가능 스탯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데리고 오신 몬스터는 A급 이상 성장이 확정적이더군요.”
“그렇습니까?”
“네. 덧붙여.”
물을 한 모금 마셨다. 대화하는 내내 성현제 쪽으론 시선을 두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에게 내가 잘하고 있는지 확인을 바라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면 헛일이니까. 아예 없다고 생각해야지.
“성체로의 성장 방법 또한 알 수 있습니다.”
“…예?”
의외의 말에 제이슨이 놀란 얼굴을 했다. 다른 길드원들도 일시에 나를 향해 시선을 집중했다. 식기 소리가 사라지고 짧은 침묵이 내려앉았다.
“물론 쉬운 조건은 아닙니다. 상급 몬스터라면 조건을 맞추기 위해 수년이 걸릴 수도 있지요. 그렇다 해도 방법이 생기는 겁니다.”
“…기승수 사육소를 통하지 않고서도, 상급 기승수를 얻을 수 있다. 라는 뜻입니까.”
“네. 첫 해외 손님이시니까 미리 살짝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조만간 기승수가 필요한 상급 헌터들을 대상으로 작은 모임이 열릴 예정입니다. 중국에서의 방송, 보셨겠지요.”
“그때 말씀하신 정보가…….”
“세계에서 단 한 명뿐인 기승수 사육사, 가 살짝 피곤하더라고요.”
그까짓 게 얼마나 별거라고, 하듯 가볍게 말을 이었다.
“한없이 기다리게들 하는 것도 미안하고. 해서 정보를 풀기로 하였습니다.”
몇몇 헌터가 마른침을 삼켰다. S급 헌터들도 기승수를 원하긴 하겠지만 A급 헌터들은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었다. 언제 자신의 순서가 돌아올지 알 수 없는 것이다. 전 세계 S급 헌터들 다 기승수 한 마리씩 데리고 가려면 못해도 몇 년 걸릴 테니까. 그러고도 수많은 경쟁자가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직접 키워낼 수 있는 방법이 있다니.
혹하지 않을 수가 있겠냐.
대형 길드장들도 욕심나는 건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무리 큰 길드라 해도 S급 헌터는 보통 한 명, 5년 후에도 두 자릿수 채운 곳이 없었다. 나머지는 다 A급인데 상급 기승수 한 마리씩 붙여 줄 수 있다면 전력이 확 상승하겠지.
“이것저것 준비가 필요한 만큼 일정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참석에 따로 조건이 필요합니까?”
“글쎄요. 하지만 초대장은 따로 한 장 보내 드리겠습니다. 소중한 고객이시니까요.”
“감사합니다.”
슬금슬금 떡밥 풀어 놓으면 알아서들 몰려들겠지. 내가 먼저 지정해 불러들이는 건 안 되지만 그쪽에서 스스로 오는 건 문제없다고 했으니.
‘그때도 성현제 달고 다닐 수는 없는데.’
또 성현제 쳐다볼 뻔했다. 그래도 중요한 정보가 있으니까 이걸 미끼로……. 저 인간은 그런 거 없어도 되잖아. 역시 부럽긴 더럽게 부러웠다. 몸뚱이 하나만 덜렁 던져 놓아도 언제 어디서든 나라 하나는 삼킬 인간 같으니라고. 처음부터 저랬을까. 그래서 초승달 눈에 들었나. 너무 잘나도 고생이긴 하네.
“많이 바쁘시다고 들었습니다.”
그사이 제이슨이 명우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그가 한국에 온 목적은 기승수 사육이지만 명우에게 관심이 없을 리가 만무했다. 예림이 SS급 무기 완성되면 완전 뒤집어지겠지. 발표할지 말지는 아직 고민 중이라지만.
“초대는 물론 방문도 모두 거절하셨다더군요.”
“해외 의뢰까지 받을 생각은 아직 없습니다. 이런 자리는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요.”
그, 그랬어? 명우가 나를 향해 시선을 옮겨왔다.
“한유진 소장님께서 초대해 주셨으니 나온 것이지요.”
사람들의 눈길이 다시 내게로 몰렸다. 조금 전과 달리 살짝 민망해졌다. 명우는 계속 좀 딱딱하고 냉랭한 태도를 유지했다. 오기 전에 뭐 안 좋은 일 있었나 싶… 기에는 괜찮았는데. 꿀 타래도 줬고.
이런저런 대화가 오가다가 노아에 대한 말도 나왔다.
“지금도 아크 길드장의 갑작스런 행적에 대해 의아해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듣자 하니 노아 씨에게 영입 제의도 많이 들어간 모양이었다. 아크 길드는 직접 공략보단 타 길드의 공략 보조 의뢰를 주로 받아왔다 보니 중대형 길드들은 다들 아쉬워하고 있다고도 말했다. 그냥 S급 길드면 라이벌 하나 사라진 셈 치겠지만 노아 씨는 특이했다나.
“앞으로도 계속 한국에 남아 있을 생각입니다.”
돌아가진 않을 거냐는 물음에 노아가 옅은 미소를 머금은 채 말했다.
“물론 상황이 변하지 않을 거라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후로 제가 어떠한 일을 하든, 저는 한유진 소장님 소속 헌터입니다.”
역시나 또 쑥스러워졌다. 솔직히 해준 것에 비해 너무 많이 받고 있는 거 같은데. 그나마 노아 씨가 빌딩 사람들과 잘 지내고 있으니 다행이지만. 반사적으로 옆으로 시선을 돌리다가 유현이와 눈이 마주쳤다. 동생이 눈을 휘며 소리 없이 웃었다. 다른 쪽에서 현아 씨와 작게 떠들고 있는 예림이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한유진 소장님은.”
제이슨이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단순한 기승수 사육사라 말할 수 없겠군요.”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그냥 미소 지었다.
너른 라운지에 후식용 다과뷔페가 차려져 있었다. 문현아가 술병 열 개를 하얀 테이블 위에 줄줄이 늘어놓았다.
“던전산 과실로 만들어진 특별한 와인입니다.”
그녀가 환하게 미소 지으며 인사하듯 팔을 올려보였다.
“상급 각성자도 약간이나마 취기를 느낄 수 있지요. 아, 송 실장님. 정식으로 허가받을 예정이니까 걱정 마세요. 덧붙여 브레이커 길드가 아닌, 개인적인 투자의 결과입니다.”
그사이 만들어졌구나. 던전 속 세계에서 가지고 나온 술을 바탕으로 연구한 모양이었다. 헌터용 술이라면 큰 수익을 얻을 수 있겠지만, 저건 아마 겉으로 보여 줄 미끼이지 싶었다. 브레이커 길드 후원자들이 침을 흘릴 만한 아이템을 문현아 개인의 투자로 만들었다, 하면.
‘흔들기 좋은 패가 되겠지.’
여러모로 다양하게 쓸 수도 있을 거고.
“한 소장님 모임에 제가 술을 협찬해 드리고 싶습니다만.”
“물론 환영이지요.”
홍보하기 딱 알맞은 자리다.
“예림이 넌 안 돼.”
와인 잔에 슬그머니 손을 대는 예림이를 얼른 말렸다. 예림이가 눈을 길쭉하게 만들며 투덜거렸다.
“어른 될 때까지 너무 많이 남았어요!”
“시간 금방 간단다.”
곧 공포 저항 꺼야 하는데 조금 마셔 둘까. 나한테도 통하나? 잔을 들자 유현이가 기다렸다는 듯이 와인 병을 기울여왔다.
“많이는 안 돼.”
“걱정 마라.”
어차피 와인은, 별로 좋아하지도… 윽.
“형님은 이거 마셔, 이거. 그건 쓸걸.”
문현아가 다른 라벨이 붙은 병을 가리켰다. 내 잔을 받아 든 유현이가 대신 마시고는 새 잔에 새로 따라 주었다. 이건 좀 달달하네.
“솔직히 길드장님이나 나나 정신연령은 비슷할 텐데. 소올직히 내가 더 많을지도 모르는데.”
예림이가 조그맣게 투덜거리며 딸기주스를 홀짝거렸다. 어느새 예림이 어깨로 옮겨 간 결이가 한 모금 받아 마시더니 꽤 마음에 들었는지 더 달라는 듯 앞발을 뻗었다.
‘슬슬 말하긴 해야 하는데.’
심란했다. 잔을 비우고 저쪽에 서 있는 클로이를 바라보았다.
“같이 가줄까?”
유현이가 작게 속삭여왔다. 동생 달고 고백하는 놈이 세상에 어딨냐. 뺨 맞을 소리를.
“괜찮아.”
“아니면 여기서 말해도 될 거 같은데. 꼭 따로 봐야 해?”
“유현아, 공개 고백은 하는 거 아니야.”
“안 돼?”
“이왕이면 분위기 괜찮은 곳에서 단둘이 하는 거지. 물론 그 전에 썸 좀 타다가. 무작정 좋아해, 하는 건… 내가 할 짓이긴 하지만… 그럼 안 되는 거란다.”
몇 번 만나고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교류하다가 해야 하는 건데. 결이에게 내게 오라고 손짓한 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발을 내디뎠다. 내가 클로이를 향해 다가가자 흥미 어린 시선들이 몰려들었다. 목 빨개질 거 같아.
“클로이 앨저 헌터.”
“네, 한유진 소장님.”
클로이가 옅게 눈웃음을 머금으며 나를 내려다보았다.
“잠시 시간을 내어주실 수 있을까요. 그러니까, 촬영 장비 개발사인 D&L 사에 다녀오셨지 않습니까.”
“유익한 경험이었죠. 방문 허가를 내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천만에요. 투자자로서 좋은 홍보의 기회인걸요.”
그만들 쳐다봐라. 일단은 일 이야기로 자리를 옮기자고 말했다. 유현이에 더해 송 실장님도 걱정스런 시선을 보내왔지만 막지는 않았다. 성현제와 문현아를 제외하고는 클로이를 A급 헌터로 알고 있으니까. 그리고 은혜에 더해 결이가 있으면 내가 잠시나마 S급 헌터의 능력을 가지게 된다는 것도.
“호텔 밖으로는 나가시면 안 됩니다.”
라운지를 나서기 직전 송 실장님이 충고해 왔다. 당연히 그럴 거라고 대답하며 성현제와 문현아를 잠깐 바라보았다. 둘이 가볍게 눈짓을 해왔다. 저 두 사람이면 설사 문제가 생긴다더라도 걱정할 필요 없겠지.
복도로 빠져나가며 공포 저항 스킬을 껐다. 동시에 가슴이 크게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피스 데리고 올걸. 아, 진짜 미친 짓 같아. 벌써부터 쪽팔려. 귀 끝이 화끈거렸다. 지금 내 표정 정말 웃기는 꼴일 거 같은데.
일 이야기다. 일 이야기부터 하다가 중간에 그냥 살짝. 심호흡을 하며 미리 정해 놓은 장소로 앞장서 갔다. 클로이가 나를 따라오며 말을 걸어왔다.
“생방송은 불가능한 게 아쉽더군요.”
“…네. 하지만 던전은, 일종의 다른 세상이라 할 수 있을 테니까요. 통신 연결이 되면 게이트를 통하지 않고서도 드나들 방법이 있다는 건데, 그럼 곤란하죠.”
유리문을 열고 테라스 정원으로 나갔다. 건물 사이에 자리 잡은 작은 야외 공간이었다. 아래에서는 볼 수 없지만 위쪽에서는 일부가 드러나 있다. 그 보이는 장소로 걸어갔다. 지금쯤 성현제와 문현아도 라운지를 나와 위쪽으로 올라갔을 것이다.
“상급 헌터인 클로이 씨가 하급 헌터와 비각성자를 위한 대피 요령 방송을 하신 것을, 감명 깊게 보았습니다.”
“저 외에도 여럿 있는걸요.”
“하지만 클로이 씨의 것만큼 공을 들인 영상은 없지요.”
“상급 헌터라서 촬영하기 좀 더 쉬웠을 뿐입니다.”
클로이가 겸손하게 말했다.
“던전 내부 촬영이 가능하다면 아무래도 상급 던전 위주가 되겠지요?”
슬쩍 물어보았다. 입안이 조금 메말랐다. 역시 피스를 데리고 왔어야 하는 건데.
“상급 던전 촬영도 하기야 하겠지만 그보다는 중하급 던전에 대해 조사 기록을 남기고 싶습니다. 사실 상급 던전에 비해 공략 정보가 부실한 편이기도 하지요. 하급 헌터들은 단순 공략만으로도 버겁고, 상급 헌터들은 너무 쉽게 클리어해 버리니까요.”
그랬다. 특히 하급 던전은 시간 들이기 아깝다는 이유로 몇 년 뒤에도 공략 정보가 자세히 만들어지는 경우가 별로 없었다. 하급 헌터나 고생하지 중급만 되어도 대충 쉽게 돌 수 있으니까.
“좋은, 의도네요.”
회귀 전이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았다. 고개를 들어 클로이를 똑바로 마주 바라보았다. 설렘이 아닌 두려움이 가슴에 깃들었지만, 겉으로 보기엔 마음을 전하기 무서워하는 것처럼 비칠 터였다.
“그래서 저는, 클로이 씨를 좋아합니다. 이런 말 하기 정말 이르고, 갑작스럽게 들리시겠지만. 제 입장상 언제 또 기회가 생길지도 몰라서요. 그러니 듣고 흘려 주세요. 사랑합니다, 클로이 씨. 존경하고 있어요.”
무심코 눈을 감았다가 떴다. 메시지 창이 떠올라 있었다.
[대상이 다른 유사한 스킬의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키워드 적용이 불가능합니다.]그래. 그렇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