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469
467화 좋은 사람도(3)
“이젠 애들한테 알려도 되지 않나?”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며 문현아가 말했다.
“아니면 송 실장이나. 형님이 순조롭게 차이더라도 등급 조사는 해 봐야 하니 말이야.”
헌터 등급을 낮춰 알리는 것은 사실 큰 문제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반대로 높은 척 속이는 것은 금기시되었다.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던전에 들어갔다가 스스로는 물론 팀원들까지 위험에 처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달랐다. 이미 여러 번 노려진 적 있는 스탯 F급과의 만남을 위한 방문이다. 사정이 있다더라도 최소한 송태원 혹은 기승수 사육소와 보호 계약을 맺은 S급 헌터에게는 알렸어야 했다.
“아직은 이르지.”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며 꼭대기 층으로 빠르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하긴 다른 사람은 몰라도 도련님은 칼부터 빼 들고 볼 테니. 형님이 실패할 수도 있고. 일 이야기만 잔뜩 하다가 돌아올지도 몰라.”
문현아가 키득거리며 엘리베이터 벽에 비스듬히 몸을 기댔다. 그리고 웃음을 뚝 그쳤다. 기계음을 가만히 듣다가 나직이 입을 연다.
“역시 한유현이 잘못된 거겠지. 과거로 돌아왔다는 거 말이야.”
“그 정도의 이유가 아니라면 현재를, 주위 사람들을 쉽게 포기할 성격이 아니지 않나.”
“그거 말고도. 가끔 필사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었거든. 지금은 좀 덜해졌지만. 뭐냐, 애 잃어 본 부모처럼.”
한유진은 각성한 지 고작 반년도 되지 않았음에도 헌터들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S급 헌터인 한유현을 지나치게 걱정했다. 아무리 어릴 때부터 돌봐 온 동생이라 해도, 자신보다 훨씬 강한데도. S급 헌터의 능력에 대해 모르는 것 또한 아님에도.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둘은 곧장 비상구 쪽으로 향했다. 손님도 직원도 없었기에 주위는 고요하기만 하였다.
“5년 후라고 했지. 지금의 나와는 별 관계없는 일이라도 궁금하긴 하지만 어떻게 물어보겠어.”
미간을 살짝 좁히며 문현아가 미리 받아 둔 열쇠로 비상구 문을 열었다. 어둑한 계단이 나타났다.
“형님은, 아직 불안한 면이 있잖아.”
계단을 단숨에 올랐다. 발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잠겨 있던 옥상으로 통하는 문이 열렸다. 이미 해가 저문 지 오래라 하늘이 시커멓게 어두웠다.
“정말로 중요한 것을 잃은 상처는 쉽게 회복되지 않아.”
설사 과거로 돌아왔다고 해도. 기억이, 경험이 남아 있는 한 전과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형님 같은 경우라면, 여차하면 자기 목숨 그냥 내던질걸. 두 번은 못 잃지. 버티기도 힘들 거고.”
입이 쓰다는 표정을 하며 문현아가 옥상 끝으로 걸음을 옮겼다. 한유진이 향한 테라스 정원이 비스듬하게 내려다보이는 장소였다. 높이 차이가 상당하다 보니 S급 헌터라 해도 대화 소리까지는 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한유진의 입 모양과 표정을 확인하는 것쯤은 어렵지 않았다.
라운지에서 테라스까지의 거리가 꽤 되는 데다가 느리게 걸어와서인지 이제야 한유진이 정원으로 나왔다. 긴장한 얼굴이 두 사람의 눈에 뚜렷하게 보였다. 주위를 조금 두리번거리면서 테라스 난간 앞에 멈추어 선다.
“키까지 정확히 기억하는 거 보면 많이 좋아했을 텐데.”
“겁먹은 것도 같군.”
“당연하잖아. 차라리 실연이 낫지. 적어도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은 그대로 남으니까. 오, 말한다. 아직 방송 이야기만 하네.”
문현아가 아래를 향해 허리를 약간 굽힌 순간이었다. 그녀의 몸이 돌연 크게 비틀리며,
턱!
치켜 들린 손이 무언가를 붙잡았다. 꽉 움켜쥔 손아귀에서 핏물이 희미하게 배어 나온다. 화살이었다.
“뭘까.”
문현아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화살이 날아온 방향은 반대쪽 건물이었다. 8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줄줄이 세워진 빌딩들을 차가운 시선이 빠르게 훑었다.
“요즘 저격이 유행인가. 나 없어도 되지? 아니면 아래쪽에 알려.”
문현아의 발끝이 옥상의 끄트머리를 밟았다. 그와 동시에 수색자의 사슬이 모습을 드러냈다. 평소와 달리 전류를 흡수하지 않은, 희미한 은색에 가까운 사슬이 길게 뻗어 나간다. 공중으로 뛰어오른 문현아가 탓, 사슬을 밟고서 다시금 높게 도약했다. 그녀의 몸이 순식간에 반대편 건물 위로 내려선다.
마치 신호라도 보내듯 희미한 살기가 느껴졌다. 문현아는 망설임 없이 기척이 느껴지는 방향을 향해 달렸다. 바로 뒤쪽의 빌딩으로, 그렇다 해도 10미터 이상의 간격을 단숨에 건너뛰며 긴 창을 빼어 들던 문현아가 우뚝 움직임을 멈추었다.
옆 건물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진 아래로 누군가가 서 있었다. 손에 활을 든 그대로로, 범행을 감출 생각은 전혀 없어 보였다. 안경알 너머의 눈매가 살짝 휘어지며 미소를 머금었다.
“…뭐야.”
문현아의 인상이 확 찌푸려졌다.
“네가 왜 여기 있어.”
“안녕하세요, 브레이커 길드장님.”
에블린 밀러가 태연하게 인사를 건넸다. 문현아가 쥐고 있던 화살을 던졌다. 콱! 에블린의 구두 앞코를 스치며 화살이 바닥에 박혔다. 화살 깃이 파르르 떨린다. 옅게 피 냄새가 났다.
“무슨 장난질이지. 설마 협회 테러범이라고 자수하는 건 아닐 테고.”
“제가 송태원 실장님의 팬으로 보였나요.”
여전히 보는 눈은 없군요, 나직한 목소리에 문현아의 표정이 더욱 험악해졌다.
“쇠와 화약 냄새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잖아요.”
“몰라.”
문현아가 냉랭하게 대꾸했다.
“네 말대로 보는 눈이 없어서. 어디까지가 진짜이고 가짜인지도 모르겠거든.”
“아직도 토라졌나요.”
“아니. 그냥 안 맞는 거야. 성향이. 나는 솔직한 애들이 좋아.”
문현아의 발이 뒤로 약간 끌리듯 물러났다.
“나는 당신 좋아해요.”
“개소리 말고.”
“좋아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죠. 문현아는. 그래서예요.”
“그래서 한 번 쏴 봤다고? 알았어. 난 간다.”
대화를 길게 끌어 봤자 이유를 알아내기는 힘들 것이다. 문현아는 미련 없이 몸을 돌리려고 했다. 그러나 에블린의 목소리가 그녀의 발목을 붙잡았다.
“뛰어오르면 떨어뜨리겠습니다.”
활시위에 하얀 손가락이 걸렸다. 화살은 없었다. 하지만 저 손 끝에 얼마나 빠르게 살이 놓일지 문현아는 잘 알고 있었다. 인벤토리의 이점을 살려 화살은 헌터의 손에 바로바로 쥐어진다. 에블린은 그보다 한층 빠르게, 활이 당겨지는 것과 화살이 쏘아지는 것의 시간 차가 거의 나질 않았다. 화살을 걸고 당기는 것이 아니라 당김과 동시에 걸리고 놓여 났다.
S급 헌터로서도 따라잡기 힘든 속도에, 스킬이 깃든 화살의 위력 또한 만만치 않았다. 비행 스킬이 없는 문현아로서는 체공 중에 화살을 피하기 쉽지 않았다.
“이유라도 말해.”
짜증스런 기색을 감추지 않으며 문현아가 말했다. 에블린이 어깨를 작게 으쓱했다.
“잠시 붙잡아 달라는 부탁을 받았을 뿐이랍니다.”
“부탁이라니, 누구- 설마 성현제?”
“또 누가 있을까요.”
“…무슨 속셈인 거야, 그 인간.”
문현아의 손이 제 머리칼을 거칠게 쓸어 올렸다. 에블린도 지금만큼은 문현아에게 동감한다는 눈빛을 했다.
“저도 궁금해요. 캔디박스를 열어 보더니 눈으로만 훑고는 다시 닫아 흔들고만 있으니까요. 평소라면 종류별로 하나씩 맛본 뒤 버려 뒀을 텐데.”
여러 종류가 들었다 해도 비슷비슷한 느낌이라면 도중에 손 놓기도 했을 것이다.
“스스로 사탕을 내어놓길 바라는 걸까요.”
“…알게 뭐야. 여기서 죽치고 있느니 그냥 걸어가고 만다.”
사납게 이를 드러내곤 문현아가 옥상 난간을 뛰어넘었다. 옆 건물로 건너뛰는 대신 그대로 아래로 떨어진다. 그리곤 이내 건물들 사이로 사라져 갔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오히려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기에 이렇게, 이렇게. 작게 숨을 삼켰다. 공포 저항 스킬을 다시 켰다. 떨리던 가슴은 가라앉았지만 복잡하게 뒤섞인 감정들은 그대로였다.
그래, 이렇게 될 수도 있지. 그렇잖아.
생각해 보면 여태까지 사람들만큼은 다 괜찮았다. 과거에 알고 지내던 사람들과는 다 잘되었다. 유현이야 말할 것도 없이 사이가 좋아졌다. 던전에서 함께했던 사람들도 전처럼 끈끈하진 않아도 좋은 관계로 다시 이어졌다. 내가 보답도 해 줄 수 있었고. 악연이었던 석시명과 김성한, 그 밖의 해연 사람들과도 이번에는 잘 지내고 있었다. 내게 해를 끼치고 위협해 온 자들은 회귀 전에도 틀어졌거나 안면 한번 없는 사이였다.
그러니까 이런 경우도 있겠지. 좋게 바뀔 수 있다면 나쁘게 바뀔 수도 있는 거다.
‘···애초에 내가, 일방적으로 좋아한 거였고.’
그리고 여전히 좋은 사람이고. 방송용으로 꾸며 낸 이미지였던 게 나았을지, 아니면 그게 다 사실이었던 게 나았을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말하고 싶었어요.”
어쩔 수 없이 시선이 아래로 떨어졌다. 속이 아팠다. 인벤토리에 아직 남아 있는 담배라도 꺼내어 물고 싶어졌다. 술 좀 더 마실걸.
아니, 이런 생각 할 때가 아니었다. 정리해야지. 결론은 났으니까.
박하율 때와 동일한 메시지가 떴다. 그렇다면 클로이 또한 박하율처럼 그 누님이라는 사람에게 도움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았다. 누님의 정체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일단은 사이비, 효도중독자와 별개의 세력인 듯했다.
‘중국으로 나를 납치해 갔지만 그 이상의 해는 입히지 않았었지.’
중국 군부와 거래라도 했던 걸까. 그러니까, 납치당하긴 했지만 아직 확실한 적이라고 판단하기는 일렀다. 채터박스의 세력이 아니라면 대화로 설득해 볼 여지는 남아 있었다. 세상이 망하는 걸 바라는 사람은 몇 없을 테니까.
“한유진 소장님.”
“···네.”
“말씀해 주셨으니 저도 솔직하게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반사적으로 주먹이 꽉 쥐어졌다. 어떻게 나올까. 회유하려 들려 할까. 아니면.
“저는 당신 같은 사람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예······?”
당황하며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어깨 위의 결이가 파드득 날개를 떨었다. 어, 나 싫단 소리야 많이 들었지만.
“몇 번 만나 보지도 못한 사람을 섣불리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지만, 좋게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 그래요?”
내가 뭐 잘못한 거라도 있었나? 대외적으로는 납치 좀 당하고··· 약해서? 하지만 그런 걸로 싫다고 할 사람이 아닌데.
“기승수 사육권을 두고 고작해야 애완동물용 몬스터를 요구하는 일은 제 가치관과 맞지 않습니다.”
클로이가 약간 차갑게 말했다. 그건, 그게···….
“사치를 무조건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단순한 재화도 아닌 유일한 힘을 개인적으로 가볍게 다루는 행동에는 거부감이 느껴집니다.”
…현아 씨가 송 실장님과 좀 비슷하다고 말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송실장님도 나를 좀 꺼려하기는 하셨지. 이유는 달랐지만.
“가볍게가 아니라, 필요해서였습니다.”
“골드 햄스터에게 특수한 능력이라도 있습니까?”
“···아뇨.”
그냥 애완동물이긴 했다. 도하민을 끌어들이기 위해서였지만, 그렇다 해도 클로이의 거부감은 여전하지 싶었다. 쉽게 생각한 게 맞긴 하지. 게다가 도하민의 능력에 대해 털어놓을 수도 없으니 변명해 봐야 아는 사람의 환심을 사려고, 나 될 것이다.
“그 점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습니다.”
불만스럽게 꼬리를 탁탁 치는 요정용을 품에 안아 달래며 말했다. 그래도 다른 이유가 아니라 다행이었다. 내가 클로이의 방송만 보고 그녀를 좋아했듯이 클로이도 내 행동의 일부만 보고 싫어질 수도 있는… 거고.
“솔직하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뭐어, 깔끔하게 차였다. 너무 깔끔해서 박하율 쪽 사람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알고 보면 성장 버프 줄 수 있는 사람이 열댓 명쯤 되고 이런 거 아니냐. 패륜아들이 양육자 자체도 엄청나게 드물다며 호들갑 떨어서 이런 능력 둘은 없는 줄 알았지.
그래도 등급을 숨긴 건 사실이니까. 그렇게까지 해서… 잠깐만.
“그런데, 왜 여기까지 오신 겁니까?”
나를 만나기 전부터 싫어했다면 말이 안 되잖아.
“골드 햄스터 생포 의뢰를 받아 주실 이유도 없으셨을 텐데요……?”
굳이 햄스터 잡는 것을 도와서, 굳이 길드원도 아닌데 등급을 속이고서 한국까지 오는 건 역시 이상했다. 다른 볼일이 있다면 그냥 따로 들어와도 될 일이었다. 스탯 F인 나를, 그 밖의 보호가 필요한 하급 각성자나 비각성자를 만나는 게 아니면 등급을 감추는 것도 별문제 되지 않으니까. 일본에서처럼 상품 걸고 결투하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왜 여기까지.
그때 유리문이 열렸다. 익숙한 얼굴이 안으로 들어섰다. 클로이가 옆으로 비켜서고, 성현제가 내 앞으로 다가왔다.
“…뭡니까.”
내 품안의 요정용이 경계하며 귀를 바싹 눕혔다.
“우선은 위로를 해 주어야 할까.”
“본론부터 말하시죠.”
어떻게 된 상황인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 둘이 아는 사이였습니까? 이전부터?”
“그렇지는 않아. 다만 클로이 헌터는 한유진 군이 아니라 나를 만나러 온 것이었다네.”
“…그쪽을요?”
“한유진 소장님과 관련 된 일이라면 세성 길드장에게 접촉하기 쉬워지니까요.”
클로이가 말했다. 그러니까, 그래서. 하지만, 그런. 그럼 대체 언제 만났고, 무슨 대화를 나눈 거지. 뒤로 물러서고 싶었지만 난간이었다. 여차하면 뛰어내릴 마음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