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47
47화 가끔은 강해짐 (2)
김우재는 초조하게 걸음을 옮겼다.
‘서민성 이 새끼, 왜 연락이 없어.’
20분에 한 번씩 문제없다는 신호를 주기로 되어 있었다. 하나 오 분 전에 왔어야 할 신호가 오질 않았다.
설마 벌써 들키기라도 한 걸까.
‘젠장, 주인의 증표는 받아내야 하는데.’
김우재가 굳이 한유진을 깨워 겁박한 것은 다름 아닌 화염 뿔사자 새끼의 테이밍 아이템, 주인의 증표 때문이었다. 한유진의 인벤토리에 증표가 든 채로 배를 타면 더는 손댈 수 없었다. 하지만 미리 빼돌려 놓으면 증표로도 한몫 단단히 뜯어낼 수가 있었다.
무려 S급 던전 보스 몬스터의 새끼다. 그냥 이대로 함께 넘겨도 추가금은 받을 수 있겠지만 테이밍의 증표를 빼내면 훨씬 더 비싼 가격에 따로 팔 수가 있었다. 모른 척 눈감기에는 그 가치가 너무 컸다.
‘시간이 없다는 건 숨기고 한 시간쯤 더 저주에 걸리게 내버려 둔다고 협박하면…….’
순순히 내놓지 않을까. 기세등등하게 굴긴 했으나 한유진은 던전 경험도 거의 없는 일반인이나 마찬가지였다. 처음 겪는 저주에 혼이 빠져 있을 것임이 분명했다.
쾅!
“좋은 시간 보냈나!”
김우재는 일부러 기세 좋게 외치며 문을 활짝 열었다. 벽 쪽으로 붙어 웅크려 쓰러져 있는 한유진의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소리를 들었을 것임에도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기절도 못 하는 저주일 텐데. 움찔할 기력까지 완전히 빠져 버린 건가.
김우재는 별생각 없이 한유진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곤 발끝으로 웅크린 등을 툭 찼다.
“깨어나 있는 거 알고—”
휘릭!
그때 돌연, 어둠을 가르며 검은 촉수가 튀어나왔다.
“윽!”
김우재의 발목을 휘감은 촉수가 독을 흘려내기 시작했다. 양말을 녹이며 피부로 스며드는 독에 김우재가 기겁하며 힘껏 다리를 뒤로 당겼다.
뚝!
B급 헌터의 힘을 이기지 못한 촉수가 끊기고 김우재가 비틀거렸다. 급히 뒤를 돌아보는 그의 눈에 촉수를 흔드는 거대 파충류의 모습이 들이박혔다.
“분명 목줄 걸이가—!”
– 꾸우으으!
시커먼 몸뚱이를 들썩이며 크레케가 김우재를 향해 달려들었다. 목줄과 연결되어 있던 쇠사슬이 저만치 나뒹굴고 있었다.
독 기운이 훅 끼쳐오고 김우재가 인벤토리에서 허둥지둥 방패를 꺼내 든 순간.
콰득!
“크악!”
김우재의 발목에 칼이 박혔다. 정확히 독으로 약해진 부분이었다. 동시에 크레케가 방패에 제 몸을 쾅, 부딪친다.
“크윽!”
김우재가 뒤로 주륵 밀려나며 쓰러졌다. 연이어 촉수가 날아드는 것을 본 그가 몸을 일으키는 대신 재빠르게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예상치 못한 급습이었지만 그래도 경험 많은 B급 헌터다. 빠른 상황 판단으로 거리를 벌린 김우재가 발목에 포션을 뿌리며 일어섰다.
“씨발 것들이!”
김우재가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쳤다.
한유진이 움직이는 것은 눈치챘다. 하지만 인벤토리를 봉인당한 공격 스킬 전무의 스탯 F급이 덤벼들 것이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래 봤자 C급 던전 몬스터 따위가!”
제법 큰 피해를 입긴 했으나 고작해야 C급과 스탯 F급의 조합이다. 설사 다리 하나가 잘려 나갔다 해도 질 일은 없다.
김우재의 손에 대검이 꺼내 들렸다. 날카로운 검날을 앞으로 세운 그가 스킬을 발동시켰다.
휘리릭, 독기를 품은 촉수 수 가닥이 김우재를 향해 날아들었다. 그러나 크게 휘둘린 대검 아래 후두둑, 맥없이 잘려 나가고 말았다.
이어 김우재가 몬스터를 향해 크게 도약했다. 그대로 뚝 떨어진 칼날이 두꺼운 검은 가죽을 단숨에 갈라낸다.
– 끄우으.
맥없는 신음과 함께 검은 파충류의 몸뚱이가 축 늘어졌다. 김우재는 분노에 찬 숨을 토해 내며 멍하니 앉아 있는 한유진을 돌아보았다.
“빌어먹을!”
김우재가 으르렁거리며 검을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손에 무기까지 들고 있으면 성질을 참지 못한 채 저 새끼를 난도질해 놓고 말 것만 같았다.
“젠장, 이 새끼! 테이밍된 새끼 몬스터를 성장만 시킬 수 있다고—”
귀한 상품이라 해도 목숨만 붙어 있으면 된다. 사지를 부러뜨려 놓겠노라고 소리치는 바로 그때,
“커헉!”
전신을 두들기는 지독한 고통과 함께 김우재의 몸뚱이가 앞으로 고꾸라졌다.
* * *
– 끄우으.
깜둥이가 단말마의 경련을 일으킨다.
혹시나 하는 기대가 있었지만, 역시 이렇게 되고 말았다.
그리고 이내.
[칭호 ‘완벽한 양육자’의 효과가 발휘됩니다.양육자 부가 스킬 – 마지막 보은
몬스터 ‘깜둥이’의 스킬과 능력치가 두 배의 효율로 전이됩니다.
지속 시간 – 168:00]
스킬 적용을 알리는 메시지창이 떴다. 연이어.
[마지막 보은(L) 스킬 효과가 두 배가 됩니다.]라우치타스의 천적 스킬 적용 메시지창 또한 나타났다. 그것을 제대로 읽기도 전에, 깜둥이의 기억이 전해져 왔다.
예전에 가지고 있던 마지막 보답과 동일하게 나와 관련된 기억들이다.
고작 30분도 채 못 되는, 짧디짧은 기억.
깜둥이는 나를 무서워했으며, 호기심을 느꼈고, 처음 먹어 보는 C급 마석 가루에 기뻐했다.
녀석은 사랑한다고 말해 주는 내 목소리를 마음에 들어 했다. 손길이 따스하다고 생각했다. 김우재를 이길 수 없다고 본능적으로 느꼈지만, 나를 지키고 싶어 했다.
마지막까지 나를 걱정했다.
정말이지, 못 쓰는 게 나은 스킬이었다.
“…미안하다, 깜둥아.”
의미 없는 사과를 중얼이며 상태창을 열었다. 확연히 오른 스탯에 더해 새로 생긴 스킬들이 눈에 들어왔다.
“젠장, 이 새끼! 테이밍된 새끼 몬스터를 성장만 시킬 수 있다고—”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린 김우재를 향해 가시 덫을 썼다.
“커헉!”
숨이 막히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쓰러진 놈이 벌벌 경련한다.
가시 덫(D). 상대를 구속하고 고통을 주는 저주 스킬. 다만 정신력 스탯 등급이 스킬 등급보다 두 단계 높을 경우 통하지 않았다.
원래는 B급인 김우재에겐 소용없을 스킬이지만 지금은 두 배에 또 두 배 버프를 받아 B급 스킬 수준은 될 터였다.
‘전이된 기억량이 너무 적어서 적응하는 데 좀 걸리겠군.’
상대에게 나에 대한 기억이 많을수록 전이받은 스탯과 스킬의 적응이 빨랐다. 그래서 유현이의 경우엔 당사자나 마찬가지일 정도로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그나마 스킬 효과 두 배가 있어서 삼십 분짜리치고는 정보가 꽤 많이 건너온 것 같은데.
상태창을 닫고 길게 늘어진 검은 몸뚱이로 시선을 옮겼다.
“…역시 이 스킬은 별로야.”
한숨을 삼키며 깜둥이에게로 다가갔다. 손바닥에 닿는 살가죽이 기분 탓인지 더욱 차갑게 느껴졌다.
그나마 정신력 스탯 두 배 버프 덕분에 견딜 만한 스킬이었는데, 두 배에 두 배 더 받고도 영 기분이 꿀꿀했다.
‘우리 깜둥이… 정신력 스탯이 많이 낮은 편이었구나.’
그래도 마지막 보은은 7일 지속이라 다행이지, 마지막 보답은 1시간이면 효과 끝이었다. 덕분에 며칠을 술독에 빠져 산 적도 있었다.
한숨을 깊게 삼키고 몸을 일으켰다. 고개를 돌리자 뻣뻣하게 굳은 채 경련을 일으키는 김우재가 보였다. 내가 다가가자 눈알을 굴려 노려봐오는 꼴이 아직 살 만한가 보다.
“널 살려 둘 이유는 딱히 없는 듯하지?”
무엇보다도 마지막 보은 스킬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라도 입을 막아야 했다. 계약서를 써서 입 다물게 만들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까지 할 필요 있을까.
“아, 발목 아파라.”
스탯이 오른 덕분인지 못 걸을 정도는 아니지만 아프긴 아프다. 투덜거리며 다시 상태창을 열어 깜둥이로부터 받은 스킬을 확인해 보았다.
[가시 덫(D) – 상대를 마비시켜 고통을 가하는 저주지속 시간 1시간] [끈적이는 독(C) – 피부에서 스며 나오는 강력한 독] [벽에 붙은 도마뱀(D) – 주위의 환경에 동화되어 모습을 감춤] [할퀴기(D) – 강력한 발톱 공격] [늘어나는 촉수(C) – 독을 품고 늘어나는 촉수
최대 길이 1미터] [약자의 예감(C) – 자신보다 강한 상대를 감지]
피부 독 할퀴기 촉수…. 앞의 둘은 그렇다 쳐도 촉수는 쓸 수 있는 건가. 원래는 등에 난 촉수를 늘려 휘두르는 스킬이었다.
내 몸에도 늘어나는 부위가 없는 건 아니지만, 음. 최대 길이 1미터면 네 배니까 4미터, 음.
…궁금했다.
‘…조금만 써 볼까.’
그냥 살짝만. 늘어나는 촉수.
“…으.”
스킬을 쓰자 손목에서 촉수가 고개를 들었다. 피부색과는 다른 시커먼 빛을 띠고 있어 마치 기생충이라도 달라붙은 것 같았다.
4미터나 늘어나는 독촉수면 유용하긴 하겠지만 쓰기에는 생리적인 거부감이 들었다.
‘스킬 중 가장 강력한 것이라면 역시 끈적이는 독이겠군.’
네 배 버프 받은 C급 독이다. 어지간한 A급이라도 막아 내기 힘들 것이다. 독 저항과 관련된 장비가 없다면 S급까지도 중독시킬 수 있지 않을까. 물론 S급은 물론 A급만 되어도 독과 저주 저항 템은 기본이겠지만.
“김우재 씨, 우리 애 찾으러 갔다 올 테니 여기 얌전히 있으세요.”
당장 죽일까 했지만 혹시 피스를 찾지 못할 것을 대비해 살려 두기로 했다. 제 말로 웬만한 사람은 30분이면 뭐든 다 할 정도가 된다니까 네 배짜리면 B급이라 해도 고분고분해지겠지.
놈의 몸을 뒤져 인벤토리 봉인 팔찌의 열쇠를 찾아냈다. 내 손목의 팔찌를 벗긴 뒤 놈의 손목에 채웠다. 이어 놈의 장갑을 벗겨 내 손에 꼈다. 지문 남기고 다니면 귀찮아질 테니까.
“그럼 즐거운 시간 되시길.”
인사를 던져 주고 밖으로 나와 문을 잠갔다.
이 건물 안에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 약자의 예감이 강한 상대만 감지된다는 것이 아쉬웠다. 원래는 반경 거리가 얼마 안 되지만 지금은 제법 넓었다. 난데없이 A급 이상과 마주쳐 당황할 일은 없다는 뜻이었다.
이런 곳에 A급이 있을 린 없겠지만.
‘A급이라 해도 벽에 붙은 도마뱀을 쓰고 독으로 급습하면 상대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지금 내 스탯은 레벨 50기준으로 A급과 B급 사이 정도였다. B급은 껌이지만 A급은 좀 까다로웠다. 그래도 스킬이 꽤나 좋아서…….
콰직!
“에고.”
내 손에 잡힌 문고리가 우지직 뜯겼다. 힘 조절이 아직 서툴다 보니 말이야. 빨리 적응되어야 하는데, 이러다가 스탯 늘어난 거 들통나겠다.
‘앞으로 7일이나 숨겨야 하다니.’
그나마 해연에는 상태창 감정사가 없다는 게 다행이었다. 납치 후유증 핑계로 일주일간 방에 틀어박혀 있을까. 벽에 붙은 도마뱀을 약하게 써서 존재감을 흐릿하게 만들면 큰 탈은 없을 듯한데.
하루 정도로 하지 기간이 너무 기니 이것도 문제였다.
‘들키면 뭐라고 변명하지.’
지나가던 헌터가 구해 주고 엄청난 버프를 걸어 줬다~ 고 하면 지나가던 개도 안 믿겠지. 마땅한 변명거리가 없었다. 그냥 착각이야 오해입니다 나 약하다고! 우기는 수밖에.
‘찾았다.’
피스는 아니고, 모여 있는 사람들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약자의 예감 스킬이 조용한 걸 보니 전부 B급 이하인 모양이었다.
숨을 죽인 채 벽에 붙은 도마뱀 스킬을 사용했다.
원래는 보호색을 띠는 정도의 효과밖에 없는 스킬이다. 하나 네 배의 효과가 지닌 지금은 웬만해서는 나를 발견하지 못할 것이었다.
만나는 족족 죄다 죽일 게 아니라면 들켜선 안 되지. 죽여도 뭐, 솔직히 정당방위지만.
인기척이 느껴진 곳을 향해 조용히 다가갔다. 다행히 문이 반쯤 열린 채였다.
“진짜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겠지?”
문 너머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기억에 있는 목소리였다.
‘나한테 걷어차인 D급이군.’
문틈을 들여다보자 단련실에서 봤던 네 사람이 모두 모여 있었다. C급 한 명만 보이지 않았다.
길게 끌 것 없이 바로 가시 덫을 사용했다.
“억!”
“무슨— 끄억!”
놈들이 도미노처럼 줄줄이 넘어졌다. 스탯이 낮아서인지 벌벌 떨다 못해 이내 눈을 까뒤집는다.
‘공격 스킬 있으니까 좋긴 정말 좋다.’
내 L급 스킬 딱 하나만이라도 공격형이나 방어형으로 바꿔 줬으면.
혹여 날 볼세라 바닥에 늘어진 몸뚱이들을 슬쩍슬쩍 뒤집어 가며 방 안을 살폈다. 한쪽 벽에 모니터들이 다닥다닥 붙어 감시카메라로부터 전해지는 영상을 띄우고 있었다.
입구와 계단, 복도 일부 외엔 감시카메라가 없는 모양이었다. 선을 전부 뽑은 뒤 벽에 걸려 있던 열쇠 뭉치를 들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지하를 벗어나 1층으로 올라가자 드디어 피스가 갇혀 있는 우리가 보였다.
‘피스야!’
누가 들을세라 소리치진 못하고 주위를 살피며 우리로 다가갔다. 붉은색 털로 뒤덮인 몸뚱이가 규칙적으로 오르내리고 있었다. 다친 덴 없는 듯하고,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모양이었다.
‘파수꾼의 열매에 후유증은 없었지.’
더럽게 비싼 그 가루는 주로 몬스터를 포획할 때 사용하는 것이었다. C급 이하에게만 효과가 있어서 던전 공략용으로 쓰기엔 수지타산이 맞지 않기 때문이었다. 물론 사람에게도 통해서 몬스터 포획을 돕는 일을 하다가 나까지 잠들어 버린 적도 있었다.
‘우리 열쇠는 여기 없는 모양이로군.’
같이 놓아두는 게 이상하긴 하지. 가지고 온 열쇠 중에서도 맞는 게 없었다. 우리를 못 부술 건 없지만 힘 조절이 안 될까 봐 걱정이었다. 독으로 녹이기에도 좀 그렇고. 무방비하게 잠들어 있는 피스가 다칠 수도 있으니 열쇠를 찾아오는 편이 낫겠지.
“조금만 더 기다려.”
금방 올게.
조그만 열쇠 하나 찾는다고 여길 다 뒤질 수는 없었다. 지하로 다시 내려가서 쓰러져 있는 놈들 붙잡고 물을까 하다가 일단 위층으로 올라갔다. 혹시 모를 불안의 싹은 제거해 두는 편이 낫다.
다행히 건물은 2층짜리로, 2층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은 하나뿐이었다. 아마도 마지막 남은 C급일 터였다.
‘거대 길드 산하치곤 수가 적은데.’
이번 일에 가담한 사람은 일부인 모양이었다. 하기야 보안 문제에 더해 한국을 완전히 떠나야 할 테니 믿을 수 있는 최소 인원만 모았을 것이다.
‘B급이 길드장일 거고 C급은 부길드장쯤 되겠군.’
부길드장이라면 열쇠의 행방도 알고 있겠지.
망설일 것 없이 닫혀 있는 문을 발로 쾅, 걷어찼다. 문짝이 잔뜩 우그러지며 속 시원하게 내동댕이쳐졌다.
“누, 누구냐!”
누구긴.
“댁이 납치한 피해자 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