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505
503화 씨앗 (1)
“동생님 여전히 거치시네.”
“예림아, 주위에 다른 사람 보여?”
“아뇨, 없어요. 망볼까요?”
예림이가 거침없이 대답했다. 어휴, 이런 거 가르치면 안 되는데. 보는 사람이 없다는 말에 유현이의 손이 까딱 움직였다. 새카만 검 끝이 황림의 목젖을 짓누르고, 피가 옅게 배어난다.
“선량한 장사꾼에게 너무하잖아.”
황림이 우는 소리를 하며 공격 의사가 없다는 뜻으로 두 손을 펼쳐 들어 보였다.
“너무하다니, 아저씨가 중국에서 얼마나 고생했는데요!”
“그건 더 억울한데, 작은 수룡님. 진아, 말 좀 해줘. 우리 진짜 좋았잖아.”
그러면서 한쪽 눈을 깜박한다. 좋았긴 뭐가 좋아. 저놈은 나한테 별짓 안 하긴 했는데.
“말만 해, 형.”
유현이가 황림으로부터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나직이 말했다.
“최대한 조용히 처리할 테니까. 소리가 조금 커져도 주위를 배회하던 몬스터가 기어들어온 거라고 하면 돼.”
“살려 줘, 진아.”
“같은 S급 주제에 왜 약한 소리야? 당당해지시죠, 잡상인 씨.”
“그야 우리 진이 동생님이 만만치 않아서지. 헬기에서 내리자마자 수장당하는 줄 알았다니까.”
장난 아니었다는 말에 기분이 살짝 좋아졌다. 그래도 상인답게 보는 눈은 있네.
“말은 잘해. 수장당해도 혀는 동동 뜨겠네.”
“상인의 미덕이지.”
“그렇다고 해서 봐줄 생각은 없습니다. 목적을 말하고 가진 거 다 내놔. 인벤토리 탈탈 잘 털면 살려는 드리지.”
“그냥 죽이면 안 돼?”
유현이가 불만스럽게 말했다.
“나도 저놈이 좋은 건 아닌데, 꿍꿍이는 알아야 할 거 아니냐. 진짜 담배만 팔러 왔을 린 없으니.”
날강도가 따로 없네, 하며 황림 놈이 인벤토리가 아니라 제 바지주머니를 뒤적거렸다. 그리고는 쑤욱 기다란 것을 빼냈다. 물론 주머니에서 나온 건 아니고 인벤토리에서 꺼낸 걸 마술이라도 부리는 척하는 것이었다.
“지금은 이런 것밖에 없네.”
“그게 뭔데.”
“마른 늪 외뿔 흑소 뿔이라고 갈아 먹으면 정력에 좋아.”
“하다하다 약장사까지 하냐.”
“없어서 못 파는 건데. 말이 정력제지 정확히는 건강식품이지. 특히 허약체질 개선에 뛰어나다고. 비각성자들에게도 잘 먹혀.”
효과 여럿 봤다는 말에 유현이 눈썹이 희미하게 움찔거렸다. 유현아, 원래 약장수들은 말라비틀어진 도라지도 만병통치약이라고 혀를 놀린단다.
“그래서 왜 이 지랄인 건데요.”
“도담 사육소장님께 조용한 면담을 요청합니다. 단둘이.”
“개소리 거절합니다.”
“진아, 나도 상처받는다고. 이래 봬도 여린 가슴을 지녔는데.”
“칼로 찔러도 튕겨내겠구만 무슨.”
자연스럽게 황림 놈의 가슴으로 시선이 갔다. S급이랍시고 이놈도 더럽게 몸 좋았다. 부러워라. 그리고 솔직히 이 자식도 잘생기긴 했지. 묘하게 중국에서보다 지금이 더 번드르르 해진 느낌이었다. 제대해서 그런가. 제대보단 부대에 불 싸지르고 탈영했다는 쪽이 맞겠지만.
“…그러고 보니 군부는 어떻게 됐어요? 대충 온건파 쪽이 우세하단 소식은 들었는데.”
“물갈이되고 헌터를 군에 몰아넣는 건 좀 아니지 않냐는 측이 힘을 얻긴 했지. 애초에 군부 소속 헌터도 몇 남지 않아서~ 무림맹과 1차 협상도 잘 치렀고.”
그건 잘됐네.
“내가 이제 와서 진이 널 왜 건드리겠어. 딱 용건과 정보만 넘길 거라니까.”
황림 놈이 쓸데없이 애교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안 어울려. 하지만 정보라는 말에 귀가 조금 솔깃해지긴 했다. 저놈 저거 박하율네에 대해 아는 게 있을 텐데.
“그래도 둘만 있는 건 좀. 유현이와 예림이 중 한 명이라도 동행하면 안 됩니까.”
“한쪽은 너무 어리고 한쪽은 너무 살벌해서. 그럼 공무원 씨는 어때?”
“예? 송 실장님이요?”
“공적으론 확실하게 믿음 가는 사람이라니까. 그래서 이상한 S급 소리도 듣지만.”
이상하다니. 아무튼 송 실장님이라면 나도 물론 믿을 수 있었다. 아직 식당에 계시려나. 황림이 먼저 몸을 돌리고 유현이가 못마땅해하면서도 검을 집어넣었다.
“아저씬 역시 튼튼한 몸에 약한 거 같아요.”
“…응?”
복도를 따라 걸어가는데 예림이가 작게 속삭였다.
“갑자기 무슨 소리야.”
“현아 언니도 그러던데요. 아저씨가 이따금 빤히 쳐다봐 오는데 백이면 백 팔뚝이라서 기분은 나쁘지 않다고.”
“뭐, 내가, 언제……!”
아니, 그게, 그러니까─!
“다들 S급인데 눈치 못 챌 리 없잖아요. 몰래 봐도 알 텐데.”
“그, 아니, 그…….”
“형은 내 몸도 좋아해.”
동생이 자랑스럽게 말했고 나는 더더욱 쪽팔려졌다.
“그냥, 부러우니까……!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불가능할 거고, 대리만족 같은 거지…….”
“아니야, 형도….”
유현이가 머뭇거렸다. 선의의 거짓말을 할지 솔직하게 달래 줘야 할지 망설여지는 모양이었다.
“조금은, 나아질 수 있을 테니까.”
“맞아요, 다르긴 했잖아요.”
악몽 던전 속에서 본 나를 말하는 거겠지. 걔가 나보다야 나았지만 그래도 내 눈에 찰 정도는 아니었다. 나도 키가 한 이십… 아니 십 센티라도 더 컸으면. 내 양옆의 유현이와 예림이를 흘끔 쳐다보았다.
유현이는 늦어도 일 년 내로 190찍을 듯했다. 예림이도 처음 만났을 때보다 더 커서, 머잖아 나를 추월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반면에 나는… 응, 역시 안 돼. 앞서 걸어가고 있는 황림 놈 등빨을 보자 더 슬퍼졌다.
‘그래도 초월자들은 의외로 평범한 체격이 많았지.’
디아르마도 인간 형태는 몸 좋단 생각이 안 들었고 무해의 왕은 물론 채터박스도 진짜 모습이 아니라 해도 비썩 말랐었다. 신입도 그렇고, 인어여왕은 위압적인 모습이긴 했지. 아, 그 켄타우로스던가 그놈도. 그리고 어르신도 어른일 땐 딱 벌어진 등판이었다.
대충 반반 정도인가. 헛생각하는 사이 식당에 다다랐다. 점심시간이 지났기에 사람은 몇 없었다. 송 실장님도 슬슬 자리를 옮길 생각이었는지 식당을 나서다가 우리를 보고 멈춰 섰다.
“송태원 헌터.”
반갑게 다가오는 황림의 모습에 송태원의 표정이 희미하게 굳어졌다. 반기지 않는 티가 팍팍 나건만 황림은 아무렇지 않게 송태원의 어깨를 손으로 가볍게 두드렸다.
“잠시 시간 좀 내주겠습니까. 우리 진이랑 단둘이 좋은 시간을 보내고 싶은데 참관인이 꼭 있어야 한다네요.”
황림의 말에 송태원이 탓하는 듯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니 그게요.
“중요한 이야기가 있다고 해서요.”
“그래도 저를 찾아와 주셔서 다행입니다.”
송 실장님이 한숨을 약간 섞어 말했다.
“부디 앞으로도 혼자 나서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당연히 그래야죠, 걱정 마세요.”
우리 셋은, 결이를 포함해 넷은 건물을 벗어나 아예 별채 쪽으로 갔다. 조용하고 너른 응접실에 들어서자 송태원은 한쪽에 우뚝 멈추어 섰다. 응접실 구석구석을 쉽게 살필 수 있는 위치였다.
“박하율 쪽에 대해선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소파에 앉자마자 대뜸 물었다. 황림 또한 내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
“어떻게 알게 된 사이고요.”
“원래 박하율은 한유진을 노리고 건드린 거였어. 내가 아니라 군부가.”
“네? 저요?”
“걔가 이상하게 사육소장에게 집착했잖아. 마침 그즈음 MKC에게 접촉하고도 있었지.”
그리고 박하율의 소속사도 중국과 연관이 있었다고 했다. 던전과 각성자 출몰 이후로 줄어들었지만, 한국 연예계가 중국 시장에 적극적으로 뛰어들던 시절이 있었기에.
“한유진 소장님과 절친한 사이가 될 거다, 하고 자신 있게 떠들기도 했다더라고.”
박하율 그 녀석… 비밀을 지키긴 했다만 입이 완전히 무겁진 않았구나. 그래서 뭔가 있나 싶어 중국에 일 때문에 가는 김에 찔러봤었다고 하였다. 그러다 각성을 했고.
“스탯은 높은 편이었지만 스킬은 별 쓸모없었지. 힘만 좀 강할 뿐 전투도 제대로 못 하고.”
“그때 그 누님인가가 구해 간 겁니까?”
“정확히는 도깨비왕 때문에 특수 스킬을 가졌다는 헌터를 군부에서 초청했어. 그 헌터 측이 박하율을 보조로 삼았지. 얼굴이 반반해서다~ 라는 소문과 함께.”
박하율은 그렇게 그 헌터 쪽을 따라 미국으로 갔다가 새로운 스킬을 얻어 군부에 협력하는 형태로 중국에 돌아왔다고 하였다. 그러고 나서 나를 납치했고.
“초청했다는 헌터는 누굽니까.”
“그건 비밀.”
황림이 손가락을 들어 제 입술에 가져다 댔다.
“계약상의 문제라.”
“다른 것도 계약 운운하며 입 다물려고. 저주해제 아이템 써드려요?”
“그럼 내 신뢰가 바닥 치잖아.”
“태어날 때부터 마이너스 찍었을 신뢰도 아닙니까.”
내 말에 황림이 억울해했다. 그리곤 내 쪽으로 상체를 약간 숙였다. …전에는 이정도로 잘생기진 않았던 거 같은데.
“한유진.”
“…뭐요.”
“내게 다 털어놓아 봐.”
…뭐라는 거야, 갑자기. 황림 놈이 서글서글한 웃음을 머금었다.
“나는 너를 많이 걱정하고 있다고. 그간 힘든 일 많았지? 이래봬도 S급이고 발도 넓어서 도와줄 수 있어.”
아니 진짜 왜, 갑자기. 속이 조금 싱숭생숭해졌다. 황림이 몸을 일으켜 테이블을 돌아 내 옆자리에 앉았다. 팔을 들어 내 어깨를 감싸듯 걸친다. 밀려난 결이가 파다닥 불만스럽게 날개를 흔들며 무릎 위로 내려갔다.
“대충은 알고 있거든. 밖의 존재들 말이야.”
“…그래요?”
“골치 아프겠지. 심지어 초대장 뿌리고 다니는 놈이 너랑 가깝다며? 좋은 의도로 네게 접근한 건 맞아?”
“그게…….”
“한유진 씨.”
송태원이 어느새 소파 옆까지 다가와 있었다. 무겁게 가라앉은 검은 눈이 나를, 황림을 내려다본다.
“지금 한유진 씨의 상태가 조금 이상합니다.”
“네?”
“황림 헌터의 스킬을 떠올려 보십시오.”
스킬… 이라고 해도 유현이로부터 들은 남의 스킬을, 잠깐만. 급히 공포 저항 스킬을 껐다. 동시에 등줄기를 따라 소름이 오소소 돋아났다. 시발, 미친!
“당장 떨어져!”
황림과 다정하게 붙어 있는 내 모습에 기겁하며 그를 밀어내려 했다. 황림 놈이 꿈쩍도 하지 않으며 오히려 나를 반쯤 끌어안다시피 하였다. 직후 송태원의 몸에 힘이 들어갔다.
“박하율의 스킬! 젠장, 너 여기 와서 접촉했구나!”
“너무 질색하지 마, 진아. 조금 전까지만 해도 새끼 양처럼 얌전했는데.”
“한유진 씨를 놓아주십시오.”
“공무원 씨도 눈치 한번 빠르지.”
황림의 팔이 내 상체를 단단히 붙들었다. 결이가 안절부절못하며 황림의 팔을 잡아당기고 할퀴었다. 물론 긁힌 자국 하나 나지 않았다.
“황림 헌터.”
“해치겠다는 것도 아닌데, 너무 무섭게 노려보시네. 제가 미운털이라도 박힌 모양입니다.”
“당연히 저는 당신을 경계합니다. 이미 한번 비각성자에 준하는 스탯을 지닌 한국인을 납치하지 않았습니까.”
송태원의 표정은 여느 때보다 훨씬 차갑게 굳어 있었다. S급 헌터가 F급을 납치해 해를 입혔다. 송 실장님으로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심각한 범죄로 느껴질 것이다.
“한유진 씨를 풀어 주지 않겠다면 무력을 행사하겠습니다.”
“진아, 어쩌냐. 넌 인질로써 가치가 별로 없는 모양이다. 동생님이 더 나았을까?”
“유현이었음 이미 네놈 머리통이 저만치서 굴러다니고 있었을 거다!”
시발, 팔뚝이 무슨 통나무냐! 내가 헛되이 발버둥 칠수록 송태원 주위의 공기가 더욱 싸늘해져 갔다. 은혜 켜놨으니 그냥 이 새끼 두들겨 패도 됩니다! 라는 눈빛을 보내는데.
“월식, 이었지.”
황림이 송태원을 올려다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달을 삼키기 위해 만들어진 그림자.”
내 움직임이 멈추었다. 송태원 또한 뻣뻣이 굳어졌다. 그걸, 어떻게.
“황림, 너!”
“나도 알고 있다고 했잖아.”
그렇다고 해도, 송태원에 대해서는 초월자들조차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기껏해야 직접 대면한 초승달과 어린 혼돈 정도나 눈치챘을까. 무해의 왕은 이미 죽었고. 그런데 어떻게.
“설마, 초승달과 접촉한 거냐!”
“그쪽은 아니야. 들어는 봤지만.”
젠장, 이놈 대체 뭐야. 굳어 있던 송태원이 이를 악물었다. 그 속이 어떨는지 쉽게 짐작이 가질 않았다.
“한유진 씨를, 풀어 주십시오.”
“딱딱하네. 궁금할 텐데, 자기 자신에 대해.”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
송태원이 한쪽 발을 앞으로 디뎠다. 더는 참지 않겠다는 기색에 황림이 혀를 쯧 찼다. 그리곤 인벤토리에서 무언가를 꺼내었다. 그와 동시에.
“……!”
“송 실장님!”
송태원의 두 다리가 힘없이 구부러졌다. 그대로 무너지며 털썩, 무릎 꿇는다.
“뭐 하는 짓이야!”
“그냥 잠깐 무력화시켰을 뿐이니 너무 날뛰지 마. 괜찮아.”
“괜찮긴, 무슨!”
공포 저항까지 끄고 있는 터라 심장이 마구 두근거렸다. 전신이 오싹해지고 입안이 바싹 마른다. 결이가 어쩔 줄 몰라 하며 연신 나와 송태원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하지만 아직, 결이의 도움을 받아선 안 된다.
‘대체 뭐지.’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아내야만 했다. 침착하려 애쓰며 마른침을 몇 번 삼켰다.
“정말로, 송 실장님에겐 해가 없는 거겠지?”
“물론이지. 그럼 이제 우리 둘이서 오붓한 대화를 나눠 볼까.”
간신히 완전히 쓰러지지 않고 버티고 있는 송 실장님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들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