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512
510화 개싸움 (1)
“아쉽게도 볼트액션식밖에 없습니다.”
탄피의 배출과 장전을 수동으로 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즉, 연사가 자동보다 느릴 수밖에 없었다. 권총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총기들은 명우가 만들어 준 인벤토리에 들어가는 장비들뿐이었다.
그나마 총탄도 겸용하는 거라 다행이지, 살쾡이 총처럼 마력만 쓰는 거였으면 총기 모형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시시오 씨에게 이것저것 잔뜩 받아 뒀지만 가지고 올 틈이 없었으니까요.”
최신식 기관총도 있었는데. 한국에서는 엄두도 못 냈던 군용품을 시시오는 쉽게 턱턱 내어 주었다. 우리 세상 현대 무기야 인벤토리에 들어가질 않으니 따로 잘 보관해 놓았는데, 아쉬워라. 그걸 다 들고 왔더라면 바로 경기 끝이지.
“홀스터와 탄띠도 여분은 없습니다. 벨트 같은 거라도 쓰세요.”
정 안되면 주머니에라도 넣어야지. 그나마 와이어나 끈 종류는 넉넉했다. 빨래 바구니를 가운데 놓고 쓸 만한 아이템을 챙겨 담았다. 내게 받은 권총을 챙긴 성현제가 활을 등에 멨다.
“저쪽에도 활 정도는 있을 거라네. 송태원 씨의 솜씨가 제법이지.”
“유현이도 보조용으로 가지고는 있는데 꺼내 놨을 가능성은 낮아요. 주 무기라면 모를까 보조는 인벤토리에 넣어 두는 게 보통이니까요.”
인벤토리가 있는데 부러 몸을 무겁게 할 필요는 없다. 인벤토리에서 꺼내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 간단한 건 미리 장비해 두기도 하지만 활은 거추장스럽지.
“밖이 탁 트여 있다면 쉽게 끝날 겁니다. 하지만 만약 숨을 곳이 많은 환경이라면 순식간에 뒤집어질 수도 있습니다.”
비각성자가 된다고 해도 신체 조건의 차이는 그대로였다. 성현제라면 모를까 나는 접근전이 되는 순간 매우 불리해질 것이다. 송 실장님은 물론이고 유현이도 나보다 훨씬 힘이 세니까. 거기에 송 실장님은 경찰 출신이라 비각성자로서의 전투도 익숙할 터였다.
반면에 우리 유현이는, 미필이지. 애가 아직 어려서. 게다가 태권도 학원도 한 번 못 보내 줬다.
“만약을 대비해 내가 송태원을, 한유진 군이 동생을 상대하는 편이 낫겠군.”
“네. 뭣보다 댁이 유현이에게 총을 겨눴다간 저도 무심코 그쪽 뒤통수 날려 버릴 것 같거든요.”
머리보다 몸이 먼저 움직일 거라 어쩔 수 없다. 허리는 물론 허벅지와 발목에도 무기를 찼다. 은혜도 변형해 숨겨 두었다.
[00:00]10분이 지나고 타이머가 사라지며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모든 각성자가 비각성자화 됩니다.]동시에 몸이… 음. 큰 변화는 없구나. 약간 더 무거워지기는 했다. 성현제가 가볍게 팔을 움직였다.
“내 파트너께서 평소에 고생이 많으셨군.”
“저도 각성자는 각성자거든요?”
…비각성 상태의 성현제보다 힘이 딸릴 것 같긴 하지만. 장비 갖추면 내가 더 강할 텐데. 이어 또 다른 메시지가 나타났다.
[현재의 육신은 더미이며 원래의 육신은 더미와 연결된 아공간에 안전히 잠들어 있습니다. 더미의 사망 시 팀원의 의식 또한 잠들게 되며 더미는 각 팀의 대기실로 옮겨집니다. 시합 종료 후 더미와 원래의 육신이 교체되어 깨어나게 됩니다.]일본의 던전과 비슷했다. 진짜 몸이 아니기에 사망한다 해도 문제는 없었다. 고통은 느껴지겠지만.
[시합의 승리 조건은 마지막 생존자입니다. 한 시간 동안 양 팀의 접촉이 없을 경우 더 소극적으로 움직인 팀에 페널티가 주어집니다.]한 시간이라니. 좁은 공간은 아닌 모양이었다. 아쉬워하는 것도 잠시, 한쪽 벽이 드르륵 소리를 내며 열렸다. 시원한 공기가 훅 밀려들어 오고 물에 젖은 풀 냄새가 코끝을 찌른다.
숲, 아니 밀림에 가까웠다. 그 사이로 좁은 길이 나 있는 것이 보였다.
[소지한 아이템들 또한 모두 더미로 교체되었습니다. 숲 가운데 마을이 자리 잡고 있으며 마을을 중심으로 반경 10km 이내로만 움직일 수 있습니다. 행운을 빕니다.]마을이 있다면 무조건 먼저 도착하는 게 유리했다. 혹시나 싶어 자전거도 챙겨 오길 잘했다. 짐이 담긴 빨래 바구니를 자전거 앞쪽에 와이어로 묶고는 성현제를 돌아보았다.
“야, 타!”
성현제는 냉큼 자전거 뒤쪽에 올라탔고 나는 쪽팔려졌다. 아니 그냥 무심코 말이야. 성현제밖에 없어서 다행이었다. 유현이는… 여기 있어도 못 알아들었으려나.
“…지금은 일반인이니까 떨어지지 않게 잘 잡아요.”
“네에.”
“소름 돋는 소리 하지 말고요.”
힘차게 페달을 밟았다. 애들이랑 같이 놀아 줄 때 종종 타곤 했기에 조금 거친 길에서도 쉽게 속도를 올릴 수 있었다. 비각성자가 된 이상 사람이 달리는 속도보다야 자전거가 훨씬 빨랐다. 게다가 성현제가 준 자전거는 성능도 상당히 좋았다. 약간씩 덜컹이면서도 우리는 빠르게 숲을 가로질러 갔다.
“아무 소리도 안 들리죠?”
“식물 외의 살아 있는 생명체는 없는 모양이로군.”
새소리도, 벌레 소리도 하나 없었다. 바람에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것이 고작이었다.
“즉, 일정 크기 이상 움직임이 있다면 무조건 두 사람일 거라는 거죠. 뭐가 움직인다 싶으면 쏘고 봅시다.”
접근전은 불리하니 부상이라도 입혀 놔야 한다. 마을은 좀 트여 있어야 할 텐데. 지금의 환경은 몸을 숨기기 너무 좋았다. 싹 다 불 지르기에는 젖어 있는 나무도 많았고.
그리 오래지 않아 마을이 나타났다. 나무 울타리에 집이 다섯 채 있고 망루가 세워진 작은 마을이었다. 생각보다 훨씬 작았지만 그래도 나쁘진 않았다. 복작복작한 도시라면 숲과 다름없이 숨을 곳이 너무 많았을 테니.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자전거에서 내려서며 빨래 바구니를 들어 올렸다.
“들고 다닐 수 있는 무기에는 한계가 있으니 숨겨 두도록 하죠. 단, 탄환은 전부 소지한 채로요.”
총알이 없으면 총기는 단순한 둔기에 지나지 않는다. 설사 유현이나 송 실장님이 먼저 찾아낸다 하더라도 안전한 것이다. 언제 두 사람이 도착할지 모르니 빠르게 준비를 마치고 망루로 올라갔다.
성현제는 유일한 2층 집으로 향했다. 그가 2층 창문으로 몸을 빼내어 날 듯이 가볍게 지붕으로 올라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비각성자인데도 몸놀림이 장난 아니네. 아무 능력치도 없어 거추장스럽기만 한 코트는 벗고 대신 주머니가 여럿 달린 조끼를 셔츠 위에 걸치고 있었다. 저 조끼도 원래는 아이템이었겠지.
길게 솟은 굴뚝에 몸을 기댄 성현제가 내 쪽을 올려다보았다. 손은 왜 흔들어.
‘이참에 등짝이라도 좀 때릴걸.’
지금은 내 손도 아플 텐데. 장전 된 총을 숲 쪽으로 겨누며 사방을 찬찬히 살폈다. 아직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페널티를 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두 사람은 분명 마을 쪽으로 올 것이다.
나와 성현제의 모습은 훤히 보이겠지만 공격할 마땅한 수단은 없을 터였다. 진짜 운 좋게 활을 꺼내 놓았다고 해도 화살까진 아니지. 심지어 유현이는 화살통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활이 주 무기가 아닌 이상 인벤토리에서 꺼내 쓰면 되니까. 송 실장님도 비슷하지 싶었다.
그렇게 조용히 숲을 주시하기를 잠시.
‘저건.’
나뭇잎 사이로 시커먼 것이 언뜻 눈에 들어왔다. 천둥새의 예장. 곧장 총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탕!
요란한 소리와 함께 나뭇가지가 후두둑 꺾여 나간다. 검은 것이 휙 방향을 돌린다. 재빨리 볼트를 당겨 조준하고 재차 총을 쏘았다. 총격이 울린 직후.
텅!
“윽!”
무언가가 망루의 기둥을 두들겼다. 내가 난간 아래로 몸을 숙이기 무섭게 또다시 텅, 소리가 울리고 나무 기둥이 움푹 팼다. 잠깐만, 뭐야!
* * *
송태원의 표정이 일순 굳었다. 메시지가 연달아 떠오르며 눈앞을 막고 있던 벽이 사라진다. 전신이 묵직해지는 것을 느끼며 송태원이 새파랗게 펼쳐진 숲을 바라보았다.
“비각성자화되었다고 해도, 한유진 씨는―”
“총.”
한유현이 말했다.
“형은 총을 지니고 있습니다.”
“…마력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닙니까.”
“S급은 그렇습니다만 하급은 다릅니다. 일반적인 총으로도 사용이 가능합니다.”
“그럼…….”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비각성자화 그리고 총기. 단순히 비각성자만 되었다면 여전히 승산은 두 사람에게 있었다. 한유진은 별다른 힘이 못 될 테니 사실상 이대일 싸움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여기에 총이 얹힌다면 말이 달랐다.
“인벤토리도 열리지 않습니다.”
한유현이 활을 꺼내려고 시도해 보며 말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원거리 무기는, 없군요.”
두 명 다 활을 미리 꺼내 둘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한유현이 숲을 바라보며 눈을 깜박였다. 전투를 앞두고 이 정도로 난감함을 느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형은 정말…….”
상황에 맞지 않는 미소가 한유현의 얼굴 위로 떠올랐다. 머릿속이 꽉 묶인 듯 막막했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들떴다. 한유진은 빠르게 준비를 마치고 그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반면에 송태원의 얼굴에는 그늘이 짙게 드리워졌다. 각성자 간의 전투 대신 던전이 나타나기 전, 일반적인 전투가 그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방탄조끼조차 없는 맨몸. 지닌 무기는 모두 근거리. 반면에 상대는 총을 가지고 있었다.
“우선 마을로―”
“자전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유현이 말했다. 첩첩산중이었다. 죽어라 뛰어 봤자 비각성자의 발로는 자전거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꺼내지 않았을 가능성은… 없겠지요.”
송태원이 한숨을 약간 섞어 중얼거렸다. 한유진은 지금의 이 상황을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환경의 불리함은 각오했다. 그래도 단순한 전투라면 한유진에게 질 리 없다고 자신했었다. 심지어 한유진은 아무런 대비 없이 갑작스럽게 내기를 제안해 왔었다.
그런데도 이렇게.
“그렇다면… 마을에 먼저 도착해 대비를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근접전은 여전히 불리하니 저격을 위해 높은 곳에 자리 잡겠지요.”
“뒤늦게 숲에서 나와 접근해야 한다면, 노출된 순간 비각성자의 몸으로는 총격을 완전히 피하기 힘들 듯합니다만. 맞습니까?”
총기에 익숙지 않은 한유현이 물었다. 평범한 총격전은 TV로만 접해 본 그다. 그마저도 흥미는 없었기에 한유진의 옆에서 스치듯 본 게 전부였다.
“혹시 오토매틱, 그러니까 자동식입니까?”
“예?”
“소총의 경우 이렇게 볼트가 있는데…….”
송태원이 나뭇가지를 꺾어 흙바닥 위에 그림을 그려 설명했다. 한유현이 수동일 거라고 자신이 본 총기들에 대해 말해 주었다.
“자동이 아니라면 다음 탄을 수동으로 장전해야 하기에 연사는 느릴 겁니다. 조준경도 없으니 명중률도 비교적 낮겠지요.”
그래도 운에 맡겨야만 할 것이다. 숲을 빠져나가 한유진과 성현제가 있는 곳에 다다르기까지의 거리가 중요했지만, 둘은 접근이 쉽지 않은 장소에서 버틸 게 분명했다. 마을이 작다고 해도 최소 수 분 이상. 그 정도면 한두 발 이상 맞히고도 남을 것이다.
송태원의 주먹이 꽉 쥐였다. 여기서 포기해도 괜찮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슬금슬금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그는. 아직은. 초조함이 깃든 눈이 주위를 살폈다. 그 시선에 돌멩이 하나가 들어왔다.
“…슬링.”
투석구. 원시적이지만 위력은 만만찮은 원거리 무기다. 송태원은 서둘러 셔츠를 벗었다.
“돌을 모아 주십시오.”
“돌을요?”
“주먹 정도 크기에 럭비공 형태가 가장 좋습니다만 둥글어도 됩니다. 줄에 돌을 담아 휘둘러 던지는 무기입니다.”
과거에는 실제 전투 무기로도 썼으며 사정거리도 상당했다. 송태원과 한유현의 힘이라면 더욱 효과가 좋을 것이다. 한유현이 돌을 찾아 숲을 뒤지고 송태원이 셔츠를 찢고 꼬아 줄을 만들었다.
몇 번 연습하지 않아 둘 다 목표를 정확히 명중했다. 특히 한유현의 투석은 날카롭기 그지없었다. 한 시간의 제한 시간이 지나기 전에 두 사람은 마을로 향했다. 길을 따라 걷되 위에서 보이지 않도록 가쪽으로 붙어 빠르게 움직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무성한 나무들 사이로 마을이 나타났다. 한유현이 예장을 벗어 들고 송태원이 눈치 빠르게 나뭇가지를 칼로 쳐 내고 덩굴로 엮어 허수아비를 만들었다.
“망루에 형이, 저쪽 2층 집 지붕에 세성 길드장이 있습니다.”
“제가 성현제 헌터를 맡겠습니다.”
스킬이 사라진 지금은 전보다 피지컬 차이가 중요했다. 송태원이 성현제를 붙잡고 있는 사이 한유현이 한유진을 제압하는 편이 나았다. 송태원이 먼저 조용히, 숲을 벗어나지 않고 빙 둘러 성현제 쪽으로 접근해 갔다. 한유현은 예장을 뒤집어쓴 허수아비에 와이어를 묶었다. 전보다 낮아진 시력임에도 한유진의 모습이 똑똑히 눈에 들어왔다.
이쪽이 불리하다는 사실은 여전했다. 하지만 한유현은 그마저도 달게 느끼며 와이어를 길게 늘어뜨리고 옆으로 이동했다. 허수아비와 적당히 거리를 벌린 뒤, 와이어를 교묘하게 당겨 살짝 노출되게 만들었다. 그 직후.
탕!
총성이 울려 퍼졌다. 한유현의 입꼬리가 참지 못하고 올라갔다. 자신의 옷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한유진은 거침없이 총을 쏘았다. 한쪽 손으로 와이어를 당겨 시선을 끌며, 한유현의 다른 쪽 손이 투석구를 휘둘렀다. 어깨와 팔에 힘을 잔뜩 넣으며 부웅- 공기를 사납게 가른 투석구가 돌을 쏘아 낸다.
이어 텅! 돌이 망루를 두들기고 한유진이 몸을 숙였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한유현이 숲을 빠져나가 내달렸다. 망루를 향해 힘껏 달리면서도 돌을 던지는 것도 잊지 않았다. 또다시 텅, 망루에 돌이 부딪쳤다.
기둥에 금이 가고 망루가 끼익 소리를 낸다. 하지만 한유진도 피하고만 있진 않았다. 두 번째 돌이 망루와 충돌하기 무섭게 다시 몸을 일으키며 한유현의 위치를 파악했다. 한유진의 입술 끝 또한 스윽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