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513
511화 개싸움 (2)
“이건 생각 못 했네.”
나직한 중얼거림과 함께 총이 쏘아졌다.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 듯 한유현이 울타리 뒤로 몸을 숨긴다. 퍽, 울타리에 탄환이 박힘과 동시에 한유현의 손이 불쑥 튀어나왔다. 2미터 가까이 되는 울타리의 끝을 잡고는 날듯이 가볍게 몸을 당겨 올린다. 순식간에 울타리를 넘어 착지한 한유현이 곧장 바닥을 굴렀다. 탕! 총성과 함께 그가 있던 자리의 흙이 튀어 오른다.
재장전. 수동이라 해도 극히 짧은 그 틈 사이 한유현은 주위 지형을 빠르게 파악했다. 망루 주위는 장애물 없이 휑했지만 조금 떨어진 곳에는 창고와 우물이 있었다. 창고를 향해 뛰어가는 한유현을 향해 또다시 총알이 날아들었다.
철컥, 볼트가 당겨지고 탄피가 튀어 올랐다. 지금 그가 들고 있는 소총에 장전 가능한 탄환은 한 번에 여섯 발. 마지막 한 발이 우물에 박히고 총을 내던진 한유진이 옆에 세워 놓은 새로운 소총을 집어 들었다. 그 잠깐 사이,
텅-!
또다시 돌이 날아들었다. 거리가 훨씬 가까워진 탓인지 망루의 기둥을 거의 반쯤 파고들었다. 두어 번의 돌팔매질이면 허술한 망루를 무너뜨리기 충분해 보였다. 한유진은 여섯 발 꽉 들어찬 소총을 창고를 향해 겨누었다. 한유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침묵이 짧게 흐르고.
콰득!
어느새 창고 안쪽으로 들어간 한유현이 검으로 문짝을 도려냈다. 제법 두꺼운 나무문을 방패 삼아 그가 다시 망루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망루까지의 거리는 멀지 않았지만, 사방이 확 트여 있었다. 움직이는 사격장 표지가 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한유진이 거리낌 없이 방아쇠를 당기고 타앙! 총성이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문을 꿰뚫은 탄환이 한유현의 어깨를 스치고 바닥에 박힌다. 이어진 두 번째 탄환은 정확히 머리를 노렸으나,
캉!
문을 뚫느라 약해진 총알이 머리를 비스듬히 가린 군림자의 검에 맞고 튕겨 나갔다. 여섯 발을 전부 쏴 버린 한유진이 소총 대신 권총을 집어 들며 망루 지붕 아래로 길게 늘어진 줄을 휘감아 잡았다. 그 사이 한유현이 망루 바로 아래에 도착했다.
여기저기 구멍이 난 문짝이 위로 높게 던져지고, 그 그늘 아래에서 한유현이 검을 한껏 뒤로 당겼다. 그리곤 그대로.
콰과각!
망루의 기둥을 향해 힘껏 휘둘렀다. 검은 칼날이 나무 기둥을 크게 파고들고 반대편으로 튀어나와 반원을 그린다. 그대로 빙글, 위치를 이동하며 그 옆의 기둥 또한 잘라냈다. 네 개의 기둥 중 두 개의 기둥이 부러졌다. 그와 동시에 한유진이 줄을 잡은 채 망루에서 뛰어내렸다.
끼이이익─
한유진의 무게까지 실리자 망루가 나무 어긋나는 소리와 함께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그대로 줄에 매달린 채 망루의 기둥을 디디며 한유진이 아래의 한유현을 향해 총을 겨누었다. 한유현 또한 가만히 있지 않았다. 이 정도 거리라면 투석기를 쓸 필요도 없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치고, 탄환과 단검이 동시에 쏘아졌다.
한유진이 기둥을 박차며 뛰어올랐다. 한유현이 기둥 뒤로 몸을 피했다. 콰득, 한유진이 있던 자리에 단검이 박히고 퍽, 한유현이 있던 자리가 총탄에 파헤쳐진다. 그사이 끼익끼익 망루는 계속해서 천천히 기울어져 갔다. 줄을 당기며 몸을 휙, 솟구친 한유진이 기둥을 밟고 지붕 위로 올라섰다. 목표를 보지도 않고 견제 사격을 하며 재빠르게 탄창을 갈아 끼웠다.
무너지는 망루 아래서 한유현은 검을 단단히 움켜쥔 채 먹이를 노리는 맹수처럼 숨을 죽였다. 그의 눈은 언뜻언뜻 보이는 한유진을 놓치지 않고 따라잡고 있었다.
이대로 망루가 완전히 쓰러지는 즉시 달려든다. 한유진은 소총에서 권총으로 바꿔 들었다. 송태원의 설명에 의하면 상대적으로 위력이 작을 터였다. 급소만 피한다면 한두 발 정도는 감수할 수 있었다.
한유현의 발끝이 지이익, 흙바닥을 짓밟았다. 뚜두둑, 기둥이 완전히 부러지는 소리가 들려오고 지붕 모서리가 바닥에 닿는 순간.
탓!
한유현이 몸을 숨긴 기둥에서 벗어나 힘껏 땅을 박찼다. 그와 동시에 한유진이 동생을 향해 탄띠를 던졌다. 한유현의 눈에 일순 의아함이 맺혔다. 둔기로 쓸 수 있는 총도 아니고 총알이 늘어진 띠는 대체 왜. 심지어 이대로 빼앗기면 곤란해지기도 할 터였다.
이해는 가지 않았지만 한유진이 괜한 행동을 할 리 없었다. 직감적으로 탄띠를 피하려는 그때, 한유진이 한유현이 아닌 탄띠를 향해 총을 쏘았다.
탕, 소리 직후 정확히 탄띠에 명중하고.
타다다닥!
요란한 소리와 함께 탄띠가 폭발했다! 안에 든 화약이 줄지어 터져 나가고 열기가 치솟는 것에 한유현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지만 이미 늦은 후였다.
“…윽.”
얼굴은 물론 탄띠를 피하기 위해 주시하고 있던 눈이 화끈거렸다. 원래라면 저것보다 몇 배는 강한 화기에도 가려움조차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비각성자의 육체는 버틸 수 없었다. 그나마 각성 전부터 마나를 미미하게 품고, 본성이 불이었기에 심각한 화상을 입는 것까진 면했지만 시력은 일순 상실하고 말았다.
타앙─!
눈을 감은 채 뒤로 물러나는 한유현의 다리에 총알이 박혔다. 불에 덴 듯한 통증과 함께 무릎이 풀썩 구부러져 땅에 닿는다. 바닥을 짚고 옆으로 몸을 피하기 무섭게 이번에는 총알이 어깨를 강하게 두들겼다. 원래 가슴, 심장이 있던 자리였다. 순식간에 배어나온 피가 옷을 물들인다.
“총알이 조금 불안정하거든. 명우가 던전산 화약에는 아직 익숙지 않아서.”
충격을 받으면 줄줄이 터져 버리니 조심하라고 했다며 한유진이 설명해 주었다. 철컥거리며 탄환을 채우는 소리가 들려온다.
“대놓고 폭탄이었음 멀리 피했을 텐데 말이야.”
탄띠니까 소극적으로 굴었을 것이다. 탄띠를 얻는다면 나뒹구는 소총에 쓸 수도 있었다.
한유현이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아직 시야가 흐릿했다. 저만치 쓰러진 망루 앞에 선 형의 모습이 뭉개진 유화처럼 얼룩져 보였다. 그런 동생을 한유진이 조금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통증은 그대로 느껴지니 미안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빠르게 끝내는 편이 낫다. 그렇게 생각하고 총을 겨누었지만.
“…….”
무력하게 쓰러진 동생의 모습에 손가락이 쉽게 움직여지질 않았다. 전투 도중은 괜찮았다. 하지만 일방적인 상황이 되자, 목 안쪽이 메말라 갔다.
‘…그러고 보니.’
공포 저항 스킬도 없지. 한유진은 이를 악물었다. 새삼스럽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동생이 떠올랐다.
“…형.”
한유현이 입을 열었다. 들고 있던 검을 밀어내듯 치우고 여전히 흐릿한 한유진을 올려다보았다.
“형이 잘 안 보여.”
“…어? 아, 미안.”
한유진이 무심코 사과하며 한 발 앞으로 내디뎠다. 당황하면서도 그의 눈이 냉정히 한유현을 살폈다. 어깨에 한 방, 다리에 한 방. 시력은 아직 회복하지 못한 상태. 스킬이 없는 비각성자이니 지금이라면 충분히 한유현을 제압 가능했다.
예비용 단검도 사용했고 와이어도 없다. 군림자의 검 역시 멀찍이 떨어뜨려 놓았다. 한유진이 조심스럽게 동생에게 다가갔다.
“잘했어.”
동생의 앞에 서서 한유진이 말했다.
“속수무책일 거라 생각했는데, 거기서 투석구를 만들어 쓸 줄이야.”
“송 실장님이 알려 준 거였어.”
한유현이 약간 시무룩하게 말했다.
“비각성자 간의 전투는 몰라도 된다고 생각했어.”
“그게 보통이지. 만약 던전이 없어지고 각성자도 사라진다고 해도, 그때는 네가 싸울 일 자체가 없어질 테니까.”
지금도 전장에 나서기에는 어리게만 느껴졌다. 한유현이 눈을 깜박였다. 생리적인 눈물이 고여 있다가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한유진이 마른침을 삼켰다. 진짜 죽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머뭇거리며 당겨져 있지 않은 권총 공이치기를 엄지 끝으로 매만지는 순간.
탁!
한유현이 멀쩡한 다리에 힘을 주며 뛰어올랐다. 덤벼들 것을 예상 못 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총을 쏠 시간은 없었다. 한유진이 무릎을 꺾으며 자신을 덮치는 한유현의 복부를 올려 찼다. 꽉 다물린 잇새로 희미한 신음성이 새어 나왔다. 동시에 총을 빼앗기지 않도록 멀리 내던진 한유진의 두 손이 한유현의 멀쩡한 팔을 움켜잡았다.
힘의 차이는 확실하다. 하지만 두 팔로 한 팔을 막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동생의 팔을 강하게 끌어당겨 그대로 땅으로 쓰러뜨리려는 한유진을 향해, 한유현이 입을 벌렸다.
콰득!
“큭!”
아슬아슬하게 목을 빗나가 형의 어깨를 꽉 깨문 한유현이 균형을 잡지 못한 채 그대로 뒤로 쓰러졌다. 한유진 또한 뒤엉켜 앞으로 넘어졌다.
“야, 너!”
살점이 떨어져 나가라 이를 박은 채 떨어질 줄을 모른다. 조금 전 시무룩했던 것도 역시 연기였구나. 한유진은 한유현을 밀어내려 하며 팔꿈치로 동생의 다친 팔을 내리찍었다. 한유현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지만, 여전히 꼼짝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멀쩡한 다리와 팔로 땅을 박차며 위치를 반대로 바꾸려 들었다.
이대로 밑에 깔리면 낭패다. 체격 차이 때문에 쉽게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었다. 한유진은 한유현의 다리를, 상처를 연신 걷어차며 허리를 더듬거려 단검을 뽑았다. 그리곤 그대로 한유현의 멀쩡한 팔에 박아 넣었다.
한유진을 깨문 잇새에서 열 오른 숨이 비집고 나온다.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는 다친 팔로 한유진의 팔을 긁듯이 붙잡은 한유현이 결국 입을 떼었다. 한유현의 입술이 한유진의 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크게 숨을 몰아쉰 한유진이 몸을 일으키며 동생 또한 부축해 앉혀 주었다.
“끈질기기는.”
다리와 두 팔의 부상에도 불구하고 한유현이 웃었다. 눈을 몇 번 깜박이자 형의 모습이 좀 더 뚜렷하게 비쳤다.
“형이 무른 거야.”
“아니, 바로 쏘려고 했는데. 공포 저항이 없다 보니 가슴이 좀 덜컥해서.”
“안고 싶어.”
힘없이 들어 올리는 팔에 한유진이 머뭇거렸다.
“…또 물려고.”
“권총 들면 되잖아?”
홀스터에 한 자루 더 있다. 쉽게 빼내지 못하도록 뒤쪽으로 단단히 잠가 찬 총을 한유진이 꺼내 들었다. 한유현이 약하게 떨리는 손으로 총부리를 자신의 심장에 겨누었다.
“자.”
아무렇지 않은 동생의 얼굴에 한유진의 입술이 조금 삐뚤어졌다.
“진짜가 아니라고 해도 너무 태연하잖아.”
“형이니까.”
한유현이 팔을 벌리고 한유진이 무릎을 바닥에 대며 몸을 가까이했다. 힘없는 팔이 한유진의 몸을 걸쳐 기대듯 안았다. 두 사람의 몸이 바싹 붙으며 총구가 한유현의 옷을, 피부를 꾹 눌렀다.
“진짜라고 해도 난 좋았을 거야.”
“…야.”
“아니다, 그것보다는 역시.”
“…반대가 더 좋았을 거라고?”
한유현이 배시시 웃었다. 한유진의 손에 마지막을 맞이하는 것도 괜찮겠지만, 그보다는 역시 삼키는 쪽이 더 그의 성질이었다. 인간의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평생을 흉내 내며 살아왔지만 본성을 없애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것이 사라지면 결국 한유현은 한유현이 아니게 될 것이다. 배우고 따라 하며 변한 척할 수는 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즐거웠어.”
한유현이 어리광부리듯 한유진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다.
“다음에 또 놀아 줘.”
“물론, 그래.”
“그리고 형, 만약 많이 힘들면.”
“괜찮아.”
한유진이 웃으며 말했다.
“당연히 형이 이길 테니까. 넌 아쉽겠지만.”
한유진의 말에 한유현이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형의 안전이다. 한유진이 싫어한다더라도 직접 송태원과 성현제를 제물로 바치고 싶었다. 그렇지만, 동시에 한유진을 믿고도 있었기에. 한유현은 이것으로 납득했다.
“그래도 기회가 있으면 또 똑같이 행동할 거야.”
“뭐… 나도 그렇긴 하지.”
만약 동생의 안전이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일이라면. 결국 한유진의 선택은 하나뿐이었다.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한유진이 방아쇠를 당겼다. 한유진의 눈이 반사적으로 질끈 감김과 동시에.
탕!
총성이 울렸다. 반동으로 한유진의 몸이 들썩이고, 눈을 떴을 때 동생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다.
“…기분 이상하네.”
무사히 잘 있겠지만. 한유진은 숨을 크게 내쉬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탕! 총성을 들으며 성현제는 느슨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의 시선은 숲 쪽을 향하고 있었다. 십중팔구, 그를 향해 달려드는 것은 송태원일 것이었다.
‘구경을 못 하는 건 아쉽지만.’
형제싸움을 보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았지만 지금은 이쪽에 더 집중해야만 했다. 그리고 잠시 후, 수풀이 크게 흔들리며.
휘익─!
맹렬한 속도로 돌이 날아들었다. 돌팔매질이라. 성현제는 재빠르게 굴뚝 뒤로 몸을 피했다. 이어 퍽, 소리가 나자마자 다시 몸을 드러내며 돌이 날아온 방향을 향해 총을 겨누었다. 동시에 수풀에서 커다란 것이.
쿠르릉
굴러 나왔다. 바위였다. 움직임을 보자마자 쏘아진 총알이 정확하게 바위를 두들기고 직후 송태원이 울타리를 향해 무시무시한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