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515
513화 개싸움 (4)
화약과 불의 냄새가 서로 뒤섞였다. 비슷한 매캐함이 코끝을 찌른다. 한유진은 송태원과 성현제를 천천히 번갈아 바라보았다. 성현제가 입안에 고여 있던 피를 뱉어냈다.
“생각보다 빨리 끝났군.”
“총 들었으니까요. 제 동생이 아직 어리기도 하고. 그러는 성현제 씨는 좋은 무기 내버려 두고 뭐 하시는 겁니까? 구경하자니 참 가관이던데.”
당연히 처음부터 보진 못했다. 하지만 성현제가 쉽게 총을 잃을 것 같진 않았다. 그저 그러고 싶어서 저 꼴 나도록 뒤엉킨 것이겠지.
“매정하기도 하지, 구경만 하다니.”
“신나셨던데 뭘.”
한유진이 들고 있던 권총을 뚝 꺾었다. 탄피가 후두둑 발치로 떨어져 내린다.
“어쨌든 성현제 씨, 살아남으셨네요.”
둔탁한 금속성 빛을 띤 탄환이 딱 하나, 권총 안으로 밀어 넣어졌다. 그리곤 철컥 총을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렸다.
“축하드립니다.”
성현제를 향해 총구를 겨누며 한유진이 말했다.
“이러고 있자니 꼭 인질극 하는 거 같네. 송 실장님은 정말 안 어울리시긴 하지만요.”
성현제의 팔에 목을 휘감긴 그대로 송태원이 한유진을 바라보았다.
“저랑 위치를 바꾸는 게 더 자연스러워 보이겠지만, 아시다시피 세상이란 게 그렇잖아요. 딱 맞게 맞물리는 톱니바퀴는 거의 없다는 거. 비틀린 대로 대충 끼워 맞춰 끼익끼익 돌아가죠.”
철저하게 계산되어 생산하는 공산품조차 불량이 나오는 판에 제각기 다른 온갖 것들이 어떻게 완벽히 맞추어질까.
“송 실장님.”
부르는 목소리가 서늘했다. 똑바로 시선을 마주쳐오는 눈동자 역시 뚜렷하게 노기가 깃들어 있었다. 화낼 만하다. 송태원은 속으로 생각했다. 타인을 위한다고 해도 동의가 없다면 결국 독선일 뿐이었다. 심지어 상대가 상처 입을 줄 알면서 하는 행동이야 더더욱 변명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송 실장님이 졌습니다.”
“…예.”
“두 분의 일은 끝났어요. 그러니 이제 제 차례입니다.”
권총 끝이 까딱 움직였다. 성현제는 순순히 팔을 풀어 주었다. 놓여났음에도 송태원은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섰다. 아직 출혈이 멎지 않은 어깨의 상처도 돌보지 않았다. 마치 얼마든지 화풀이하라는 듯, 과녁용 허수아비처럼 움직임이 없었다.
그 모습에 한유진의 눈썹이 조금 꿈틀거렸다.
“어깨는, 혹시 물린 건가.”
한유진에게로 다가가며 성현제가 물었다.
“동생 관리를 잘해야겠군.”
“걱정 마시죠, 남 물기 전에 제가 먼저 날려 버릴 테니까. 물론 물릴 짓 한 새끼를.”
한유진 또한 성현제에게 한 발 다가붙었다. 그리곤 그대로 총구를 성현제의 턱 아래에 들이댔다.
“이제 퇴장하셔야죠.”
“모범적인 관람객이 될 것이라 자신하네만.”
“공짜 관객은 거절합니다.”
“지갑을 두고 왔는데.”
“돈 없으면 안 봐야지 무슨 변명이야.”
“관계자석도 없는 건가.”
“어… 그쪽 이름이… 성… 모 씨? 어디서 본 거 같긴 한데.”
누구더라, 하며 총부리가 턱선을 타고 올라갔다.
“이제 조용히.”
입술을 가볍게 누르며 한유진이 말했다.
“댁 머리를 두 번이나 날리게 될 줄은 정말 몰랐네요.”
“영광이군.”
한유진은 자신을 내려다보는 금안과 시선을 마주했다. 즐거워 보이는 게 짜증 나면서도 안심되었다. 머리채 잡고 흙바닥을 굴러도 자기가 즐거우면 뭐 된 거지.
“보지 않아도 돼.”
“어린애 아닙니다.”
“어른도 아껴 줘야지. 좋은 것을 보고, 좋은 말을 듣고.”
“성현제 씨를 내다 버리라는 뜻이군요.”
“보기엔 좋지 않나.”
“아, 네네. 말 많아 정말.”
미소 지은 성현제가 입을 벌렸다. 고개를 약간 틀며 총구를 가볍게 문다. 한유진이 눈을 깜박했다가 감았다. 방아쇠가 당겨지고 총성이 울렸다. 눈을 떴을 때 성현제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다.
한유진이 송태원을 돌아보았다. 송태원은 여전히 꿈쩍도 않고 서 있었다. 둘만 남았으니 한유진을 충분히 제압할 수 있을 것임에도 그저 조용히 숨만 내뱉었다.
“송태원 씨.”
한유진이 총을 내던졌다.
“덤벼.”
“…….”
송태원의 눈이 흠칫 커졌다가 다시 묵직히 가라앉았다.
“제가 졌습니다.”
무방비하게 걸어와 목을 조른다 하더라도 아무런 반항을 하지 않겠다는, 그런 태도에 한유진의 눈빛이 더욱 차가워졌다.
“그건 성현제 씨와의 일이라 했습니다. 지금은 제가! 열 받아서 시비 거는 겁니다.”
“네, 화내는 게 당연합니다.”
“그럼 덤비라고.”
송태원이 머뭇거리며 한유진을 바라보았다. 일반적인 기준으로는 결코 작다고 할 수 없었으나 그와 비교한다면 어쩔 수 없이 작았다. 키 차이도 상당했을뿐더러 체격은 견주는 게 무색할 정도였다.
한쪽 팔을 제대로 쓸 수 없는 상태라 해도 승부는 불 보듯 뻔했다. 거리가 좁혀지는 순간 끝난다. 송태원으로서는 무의미한 고집으로 느껴졌지만, 한유진이 원한다면 받아 줄 수밖에 없었다.
“…총을 드십시오.”
“싫습니다. 총이랑 활 빼곤 다 쓸 테니 걱정 마시고요.”
“…그렇다면 저는 맨손으로 상대하겠습니다.”
한유진의 입술 끝이 사납게 올라갔다.
“끝까지 오만하시네.”
“맨손이라 하더라도 제가 유리합니다.”
“여기 들어오기 전에도 그렇게 생각하셨겠지요.”
한유진이 단검을 빼들어 빙그르 돌리며 말했다.
“분명히 제가 질 것이라고.”
“…….”
“네, 제가 약하다는 거 잘 압니다. 누구든 그쪽에다 판돈을 걸겠지요. 그러니 제대로 싸워 보자고.”
“…한유진 씨.”
“송태원 씨.”
쿠르릉, 흐린 하늘 위로 노성이 울렸다. 툭, 투둑. 한두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하는 빗방울 사이로 두 사람이 입을 꽉 다물었다. 치이익, 꺼져가는 불꽃이 비를 맞고 몸부림쳤다.
침묵이 흐르고, 먼저 움직인 쪽은 한유진이었다. 근접전이 불리하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한쪽 발을 뒤로 뺀 한유진이 몸을 홱 돌려 달리기 시작했다. 멈칫한 송태원 또한 그의 뒤를 쫓았다.
차라리 빠르게 붙잡아 끝낸다. 처음에는 조금 망설였지만 그렇게 생각한 송태원이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체격이 크다면 겉으로 보기엔 둔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단련된 체구라면 오히려 더 강한 힘으로 더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다. 보폭의 차이 또한 컸다.
송태원이 마음먹자 두 사람의 거리는 순식간에 좁혀져 갔다. 한유진이 잽싸게 건물 벽을 따라 모서리를 꺾어져 들어갔다. 송태원 또한 코너를 돌아서는 순간.
쿵!
위쪽에 매달려 있던 장식장이 떨어져 내렸다. 송태원이 장애물을 피하느라 멈칫한 사이 한유진의 모습이 사라졌다. 먹구름으로 가득 찬 하늘이 더욱 어둑해지고 빗줄기가 굵어져갔다. 콰르릉! 다시금 번개가 쳤다.
‘…대비를 했겠지.’
이 주변을 모두 파악하고 지금과 같은 함정도 설치해 놓았을 것이다. 날이 점점 흐려지는 것 또한 계산 내에 있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완전히 어두워지고 비가 내리기를 기다려 움직이기 시작한 게 아닐까.
빗물이 송태원의 굳은 얼굴을, 너른 어깨를 두들겼다. 피와 섞여 팔을 따라 묽게 흘러내렸다. 젖어드는 얼굴을 큰 손이 쓸어내렸다. 그렇다 해도 근거리 무기로만 상대하겠다면 한유진은 여전히 불리했다.
분명 그러했는데도, 이상하게도 자신이 이길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송태원은 차분히 주위를 살피며 걸음을 옮겨갔다. 빗소리가 강해지고 노성까지 겹치면서 한유진의 기척이 완전히 사라졌다. 그래도 낮이라 주위의 흔적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송태원의 시선이 흙바닥을 훑으며 움직였다. 땅이 젖으면 발자국이 남게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지금도.
희미하게나마 흔적이 남아 있었다. 한유진이 향한 방향을 확인한 송태원이 신중하게 발을 내디뎠다. 그의 머릿속에서 한유진의 예상 공격 수단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조금 전처럼 최대한 지형을 이용할 것이다. 머리 위와 발밑을 조심해야 한다. 한유진의 근력상 무거운 물건을 던지는 것은 불가능했다. 기껏해야 떨어뜨리는 게 고작일 터였다. 투석구를 만들 수도 있겠지만 지금 한유진의 태도로는 총과 활이 아니더라도 원거리 무기를 쓸 것 같지는 않았다.
그는 직접 부딪치길 원하고 있었다.
“…후우.”
송태원이 크게 숨을 뱉었다. 응급조치조차 하지 않은 상처 때문일까, 어깨에서부터 열이 번지는 것 같았다.
빠르게 젖어드는 땅 덕분에 한유진이 남긴 흔적은 점점 더 뚜렷해져 갔다. 발자국을 쫓아가자 무너진 망루가 눈에 들어왔다. 그 가운데 삐죽 솟아난 기둥 끝에 진분홍 털실이 묶여 있었다. 그리고 그 털실들은.
“…….”
사방으로 쳐져 있었다. 마치 커다란 거미집 같았다. 송태원은 조심스럽게 그쪽으로 다가갔다. 작은 광장 중앙의 망루 잔해를 중심으로 주위의 집과 창고, 우물, 울타리 등과 엮어 상당히 넓은 범위를 털실로 가득 채워 놓았다.
송태원은 가장 바깥의 털실에 손을 뻗다가 도로 거두었다. 누가 봐도 함정이었다.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최대한 건드리지 않는 편이 좋을 듯했다.
송태원은 낮게 쳐진 털실을 넘어 안쪽으로 들어갔다. 세 번째 털실을 피해 고개를 숙이자, 털실 너머로 교묘하게 숨겨진 와이어가 보였다. 아마도 이 와이어가 진짜인 듯했다. 섣부르게 건드린다면 무언가 작동하지 않을까.
돌을 던져 빠르게 처리해 버릴 수도 있지만 맨손으로 상대하겠다고 했다. 송태원은 꿋꿋하게 털실을 피해 움직였다. 도중에 한유진이 나타나 함정을 작동시키지 않을까 경계를 늦추지 않았지만, 빗소리만 계속해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리고 가슴께에 오는 마지막 털실을 상체를 숙여 피해 나온 그때.
퉁! 소리와 함께 분홍색 점이 빠르게 송태원을 향해 달려들었다. 경사로를 타고 순식간에 속도를 올린 자전거였다. 반사적으로 피하려던 송태원이 흠칫 발을 멈추었다. 옆은 벽이고 뒤는 털실 함정이었다.
설마. 일부러 털실을 피하기 쉬운 방향을 만들어 이쪽으로 유도한 것이었나. 그런 생각이 떠오르기 무섭게 자전거가 코앞까지 다다랐다. 송태원은 피하는 대신 자전거를 맞받아 잡기 위해 두 다리를 굽혀 몸을 지탱했다. 그와 동시에.
스릉.
한유진이 자전거 뒤쪽에 매달아 놓았던 검을 뽑아들었다. 한유현이 떨어뜨리고 간 군림자의 검이었다. 시커먼 검이 자전거 속도가 주는 힘을 더해 휘둘러지고 송태원이 급히 상체를 낮추었다. 부웅- 송태원의 머리 위를 칼날이 스친 직후.
쾅!
자전거가 그대로 송태원을 들이받았다. 일순 균형이 무너진 상태의 송태원이 잔뜩 가속된 충돌을 버티지 못하고 뒤로 밀려났다. 투두둑, 털실들이 뜯겨지며 송태원의 몸을 휘감았다. 자전거가 쓰러지기 직전, 뛰어내린 한유진이 바닥을 한 바퀴 구르곤 벌떡 일어난다. 그리곤 털실들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우수수 잘려나간 털실들이 팽팽히 당겨져 있던 반동으로 송태원을 향해 쏟아졌다. 이어 묶어 둔 와이어를 풀어낸 한유진이 재빠르게 그 끝을 잡고 휙 휘둘렀다.
“그 털실이요, 생각보다 튼튼해요.”
날이 있는 무기로 자르기는 어렵지 않았지만 힘주어 당기면 웬만해선 끄떡도 하지 않았다. 그 털실들을 휘감은 위로 와이어를 감아 고정시켰다. 물론 한유진의 힘으로 와이어를 계속 붙잡고 버틸 순 없었기에 다시 건물과 연결된 기둥에 와이어를 묶었다.
한유진은 장검을 든 채 송태원에게로 다가갔다. 몸은 일으켰으나 송태원의 상체는, 멀쩡한 팔은 묶여 있는 상태였다. 송태원이 묵묵히 자신에게로 다가오는 한유진을 바라보았다. 다리는 움직일 수 있다. 하지만 장검에 비해 리치가 짧았다.
비는 계속해서 내리고 젖은 털실의 색이 더욱 짙게 물들었다. 거의 붉은색으로 보일 정도였다.
“여기서 찌르면.”
한유진이 검을 겨누며 말했다.
“만족할까요.”
우리 둘 다. 그 순간 송태원이 움직였다. 그의 발끝이 땅을 긁으며 돌을 차올린다. 날아간 돌이 정확하게 한유진의 손등을 두들겼다. 간신히 검을 놓지는 않았지만 자세가 흐트러진 그 순간, 송태원이 바닥에 드러누우며 다리를 뻗었다.
퍼억! 전신을 이용해 좁힌 간격에 한유진이 걷어차였다. 뒤로 데굴 구른 한유진이 진흙이 튄 얼굴로 웃었다. 그래야지.
송태원이 떨어진 검을 발끝으로 세운다. 한유진이 벌떡 일어나 덤벼들었지만 그보다 먼저 털실이 잘려 나가고 와이어도 느슨해졌다. 한유진의 주먹질을 피한 송태원이 멀쩡한 손을 뻗었다. 간신히 목을 잡히는 것은 면했지만 한유진의 어깨가 꽉 붙들렸다.
“윽.”
비각성자임에도 무시무시한 손아귀의 힘에 신음성을 흘리면서 한유진 또한 송태원의 어깨를 움켜잡았다. 정확히 상처가 있는 곳을, 손가락을 세워 사정없이 후벼 판다. 제아무리 통증에 강하더라도 그것까지 견디긴 힘들었다.
퍽!
한유진의 어깨를 놓으며 송태원이 그를 걷어찼다. 한유진의 몸이 가볍게 날아가 바닥을 뒹굴었다. 쿨럭이며 가슴을 잡고 간신히 일어나 송태원을 노려보았다.
“좀 약한데요.”
다시 기침을 하며 한유진이 입꼬리를 올렸다.
“죽일 생각으로 차야지.”
와이어를 완전히 풀어내며 송태원이, 이번에는 망설임 없이 한유진을 향해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