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521
519화 잘 챙겨 갑니다 (2)
헬리콥터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날아올랐다. 대다수의 S급 헌터는 만족해하며 발길을 돌렸다. 이래저래 많이 뜯긴 사람들도 있었지만 평균을 낸다면 실보다 득이 더 클 것이었다. 기승수 사육 정보에 스태미너 포션 우선 거래권에 총화기 관련 정보까지.
그것을 제외하더라도 각국의 S급 헌터들이 모인 자리다. 물밑에서 오간 것이 제법 많았겠지. 그래서인지 곧장 떠나지 않고 섬에 미적거리고 남은 헌터도 제법 많았다.
“한국 오면 잘해 줄게, 생각해 봐!”
예림이가 아이슬란드 출신 A급 헌터를 향해 손을 흔들며 외쳤다. 예림이보다 두 살 많은 열일곱 살짜리 헌터였다. 십대 헌터는 몇 없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방어계에 냉기 저항 쪽 특화 스킬을 지니고 있었다나. 예림이의 스킬로부터 팀원들을 보호해 줄 수 있으니 탐낼 만한 인재였다.
둘이 꽤 잘 맞는 듯도 했고. 언어적 문제가 있긴 했지만 예림이에겐 이제 통역 아이템이 생겼고 팀원들 중에선 영어 잘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중하급 헌터와 달리 상급 헌터는 귀한 상급 아이템 수급과 특성에 맞는 팀을 찾기 위해 외국 헌터들과 교류하는 경우가 잦았기 때문이었다. 세계 공용어야 아직은 영어고. 예림이가 정말로 세계 공용어를 한국어로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 글은 아이템이 안 통하니까.
예림이 외에도 영입 관련 이야기를 나누는 헌터들이 더러 있었다. 그중에서 제일 화제가 된 것은 S급 길드 간의 합병이었다. 두 S급 헌터가 SS급 거대 거북이 전투 때 임시로 팀을 맺었다가 생각 이상으로 잘 맞아서 모임 기간 동안 어울린 끝에 길드를 합치기로 한 것이었다.
‘회귀하기 직전에는 저런 길드들이 꽤 많았었지.’
하지만 이 시점에서는 아마 최초일 것이다. 아직 S급 몬스터 정도만 나오니 S급들이 힘을 합쳐 싸울 일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S급 헌터들은 서로 경쟁자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고.
그런데 조금 더 빨리 변화가 찾아왔다.
‘그 외에도… 이번 모임 이후로 달라지는 것들이 많겠지.’
이왕이면 중하급 헌터와 보조계에 대한 생각도 좀 바뀐다면 좋을 텐데. 몇몇 소수라도 다르게 생각하긴 하겠지. 특히 나한테 총 맞고 폭탄 맞고 욕하다가 맞고 구른 몇몇은. 이 가는 놈들이야 당장은 좋은 영향을 주진 못하겠지만, 헌터 취급도 안 하고 무시하는 것보다야 낫다.
– 꺄아웅.
내가 앉아 있는 자리 밑에 엎드려 있던 피스가 길게 기지개를 켰다. 그리곤 데굴 몸을 굴려 내 발을 베개 삼아 머리를 기대온다. 앞발로 바짓단을 툭툭 건드리는 피스에게 땅콩 모양의 장난감을 꺼내주었다. 피스는 장난감을 그리 좋아하진 않았지만 가끔 심심풀이 삼아 씹기는 했다.
“나는 마지막까지 형의 곁에 있을 수 있으면, 그걸로 괜찮아.”
나와 함께 야외 테이블에 앉아 있던 유현이가 돌연 나직이 말했다. 잠시 멍해졌다가 억지로 미소를 띠었다.
“야, 뭘 그런 식으로 말하고 그래. 별일 없을 거야.”
“응. 하지만 형, 만약 일이 잘못되더라도 최소한 내게 있어선 잘못된 게 아니야.”
“으음, 가족이라고 무조건 감싸거나 하면 안 되는 건데.”
“그냥 사실이야. 형이 없었다면 내겐 이 세상도 세상 밖의 것들도 아무래도 상관없었을 테니까. 그러니 나는 괜찮아.”
동생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햇살이 좋은 늦은 아침이라 나무그늘 사이로 빛무리가 반짝반짝 스며들고 있었다. 유현이의 뺨과 셔츠 위로도 그림자와 햇빛이 점점이 맺혀서, 바람결에 따라 느릿이 움직이곤 했다.
겨울이 머잖은 늦가을이라 날 자체는 싸늘했지만 그렇기에 더욱 볕이 따스하게 느껴졌다.
“…다 잘될 거야. 신경 써 줘서 고맙다. 티 많이 났냐?”
“아니, 많이 나진 않아. 다만 형 어제 잠을 설쳤잖아. 거의 새벽까지 못 자지 않았어?”
“생각이 많아져서 말이다.”
“형이 모두를 책임질 필요는 없어.”
“응. 그렇지.”
하지만 나는 여전히 아무것도 잃고 싶지 않았다. 회귀 전에는 계속 잃기만 했으니까, 이번에는 좀 더 고집을 부릴 수도 있잖아.
“어디 선량한 신 같은 거 없나. 싹 다 해결해 주고 이제 안심하고 평화롭게 사세요, 해줬으면 좋겠네.”
그리고 행복하게 잘 먹고 잘 살았습니다. 뭐, 신이라는 게 진짜 있다고 해도 우리 편이란 법은 없겠지만. 인간이 아니라 닭을 사랑하는 신이어 봐라, 인류를 멸종시키지 않을까. 좁은 곳에 갇혀서 고작 두 달도 못 살고 온갖 요리로 만들어지니.
갑자기 내 신세가 썩 나쁘지 않게 느껴졌다.
그때 유현이가 눈을 미미하게 찌푸렸다. 동생의 시선을 따라가자 우리 쪽으로 다가오는 사람이 보였다. 클로이 앨저였다.
‘…박하율 스킬은 해제했으니 급한 불은 껐는데.’
아직 저쪽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다가가도 괜찮겠습니까.”
클로이가 정중하게 물어왔다. 유현이가 아닌 나를 향해서. 그녀 또한 내게 주도권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 모양이었다. 괜찮다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스킬 해제를 확인한 당일 모두 풀어 주었습니다.”
“예, 전해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금하고 있던 클로이 측 헌터들은 놓아주었다. 썩 마음에 드는 결과는 아니었지만 초대장 하나 받았고 스킬도 풀었으니 최저선은 채운 셈이었다. 클로이가 조금 머뭇거리며 말을 이었다.
“한유진 소장님에게 붙잡히지 않았던 헌터들 중, 일부가 실종되었습니다. 혹시 아시는 바가 있으십니까?”
“저희는 그때 이후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모임 준비만으로도 바빠서요.”
다만 성현제가 떠오르기는 했다. 나를 건드린 것도 있지만 이상한 초대장을 보낸 것도 거슬리게 느껴졌겠지. 그러니 집에 기어들어온 벌레를 짓누르는 감각으로, 처리하지 않았을까. 클로이가 짧게 숨을 내뱉었다.
“저는 곧장 미국으로 돌아갈 예정입니다.”
“세성 길드장님께서 섭섭하게 대하시던가요?”
“솔직하게 말씀드려 무섭습니다.”
“그래도 그냥 사람이에요.”
“한유진 소장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이 더 위험하게 느껴집니다. 결국 세성 길드장과 틀어지셨다 할 수도 없겠지요.”
“그렇게 느껴졌습니까?”
“정말로 틀어졌다면 다투는 것조차 하지 못할 겁니다.”
클로이가 질린 기색으로 말했다. 성현제 씨 대체 뭘 하셨기에 클로이 씨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겁니까.
“아니, 애초에 틀어진다는 일 자체가… 상대의 존재를 인정해야만 나오는 행동이겠지요.”
따지고 보면 그렇긴 한데.
“저는 확실히 한유진 소장님을 잘못 판단하였습니다. F급이라는 등급이 가져다주는 선입견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보통 그렇긴 하지요, 라는 말은 삼켜두었다. 대신 미소 지어 보였다. 클로이는 잠시간 나를 바라보다가 몸을 돌렸다. 사과 같은 건 없었다. 누군가를 희생시켜서라도 더 많은 사람을 구하는 것이 옳다는,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는 것이겠지.
“적보단 아군에 가깝겠지만, 그렇다고 믿을 수는 없는 상대쯤 될까.”
유현이를 돌아보며 말했다.
“명확히 나뉘는 것보다는 그런 경우가 세상엔 더 많겠지만.”
그냥 내 편 네 편 딱 나눠지면 편할 텐데.
클로이가 우리와 이야기를 하고 자리를 떠나자 다른 헌터들도 슬금슬금 눈치를 살펴왔다. 하지만 쉽게 접근해 오지는 못했다. 문득 나 혼자 있었어도 이랬을까 싶어졌다. 아마 예전보다야 편히, 다시 말해 막 대할 순 없겠지.
“아저씨~ 저 소영 언니랑 리에트 언니랑 같이 한 바퀴 돌고 올게요!”
SS급 몬스터 말고도 수중에 모여든 몬스터들이 아직 꽤 많다며 예림이가 쓸고 오겠다고 말했다. 잘 갔다 오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손님들이 반쯤 떠나갔을 때 성현제도 모습을 드러냈다. 언제 등급이 떨어졌었냐는 듯 멀쩡한 얼굴을 보자 그에게는 얼마 뜯어내지 못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백사장 모래를 푹푹 퍼내 줬어야 했는데, 아깝다. 보호비라도 받을걸.
정오에 가까워진 햇살은 여전히 좋아서 성현제 머리통도 반짝거렸다. 반짝반짝거리면서 성현제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헌터들의 시선도 우르르 몰려들었다. 헬기장 앞에서 헌터들이 떠나는 것을 지켜보던 송태원도 우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한유진 소장님, 즐거운 모임이었습니다.”
“취향 참 특이하기도 하셔라. 아무튼 즐기셨다니 감사합니다.”
성현제 이번 모임에서 머리에 와인 부어지고 칼이 뺨을 스치고 납치 미수에 머리에 총 맞고 객실에 묶여 있지 않았던가. 이러다 세성 길드장님 취향은 와인 샤워래, 라는 소문이라도 나면 어쩌려고. 최고급 와인으로 욕조를 채우는 건 어울리는 것도 같지만.
“저는 먼저 돌아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한국에서 뵙지요.”
평범한 인사말을 남기고 성현제가 돌아섰다. 이게 보통인 건데 성현제가 멀쩡하게 구니 오히려 서먹해졌다. 이상한 짓 하는 데에 길들어져 버렸어.
손님들이 거의 다 섬을 떠나고 우리도 섬에서 나와 집에 돌아갈 채비를 했다.
“송 실장님, 한 번만 눈감아 주세요. 네?”
“안 됩니다. 유명우 헌터, 향후 해외 출입 시 각성자관리실 또는 헌터협회 소속 헌터와 반드시 동행해야 합니다.”
그 말에 명우가 조금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황금 대장간에 반입했던 무기는 이것뿐입니까?”
“더 없어요. 그치, 명우야?”
“이스무아르가 녹인 고철은 두어 덩이 있습니다.”
시시오로부터 받은 무기들이 문제였다. 나중에 쓸 일이 있을 수도 있고 분해해 보면 던전용 무기 제작에도 도움이 될지도 몰랐다. 하지만 법적으로 심각하게 걸리는 일이었다.
“무기 밀수는 안 됩니다. 다른 물품들 또한 밀수는 안 됩니다.”
“앞으론 안 할게요. 절대로요! 한국에서 쓸 생각은 없었는걸요.”
“자칫하면 심각한 국제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특히 유명우 헌터의 대장간은 인벤토리와 달리 일반 물품도…….”
말하다 말고 송태원이 나를 진지하게 바라보았다.
“한유진 씨.”
“네에.”
“한유진 씨.”
“…서랍 드나드는 횟수 한정되어 있는데.”
하는 수 없이 서랍에 들어가서 소형 지프를 가지고 나왔다. 지프차에는 짐이 가득 실려 있었다. 대부분이 각종 최신식 무기였다. 송태원이 깊게 한숨을 내뱉었다.
“…차도 가지고 들어갈 수 있는 겁니까.”
“더 큰 건 힘들고요, 이게 다예요. 진짜로.”
맹세합니다, 라는 내 말에 송 실장님이 의심스러운 시선을 보내왔지만 더 이상 뭘 어쩌겠어. 아깝다, 다른 데선 군수품 구하기 힘든데.
“밀수는 안 됩니다. 군용품은 더더욱 안 됩니다. 한국에서 반입한 물품 또한 해외에서는 가급적 꺼내지 마십시오. 부탁드리겠습니다.”
“조심할게요. 걱정 마시라니까요.”
“그 밖의 범법사항이 있다면 자진 신고 바랍니다.”
“이젠 더 없어요.”
아마도. 없다고 치자. 몇 가지 사항을 더 캐물은 송태원이 이번에는 문현아에게로 다가갔다. 현아 씨가 질색하며 피하려고 했지만 송 실장님은 그녀의 뒤를 끈질기게 따라붙으며 와인 거래에 대한 상세 내역을 요구했다.
“없어! 진짜야! 딱 선보고한 만큼만 거래했다니까?”
“문현아 헌터.”
“아 좀 봐주라!”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송 실장님이 과로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송 실장님 아니면 대체 누가 S급 헌터를 저렇게 추궁할 수 있겠어. 그래서 해외엔 눈감고 넘어가는 S급 헌터 범죄가 많다지.
“내가 법 없이도 사는 사람인데, 이 부분은 살짝 감춰야 한다니까. 나중에 전부 신고하고 벌금 낸다! 진짜로!”
“벌금을 내겠다는 마음으로 범죄를 저질러서는 안 됩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송 실장님도 융통성이 아예 없진 않았다. 애초에 법 자체도 특별법 어쩌구 하면서 S급 헌터들 편의는 최대한 봐주는 편이니까. 결국 송 실장님에게만 먼저 정확한 내역을 제출하는 것으로 합의했다.
저것도 송 실장님이 그만큼 신뢰가 가는 사람이기에 가능한 일이겠지. 역시 대단하시다니까.
“시시오 씨, 정말 신세 많이 졌습니다.”
나를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봐오는 시시오에게 마주 웃어 보였다. 진짜 도움이 많이 되었지. 얼른 키워드 효과 떨어져서 이상한 소리만 안 했으면 좋겠는데.
“역시 나의… 한 소장님이다 싶었어. 그 많은 S급 헌터들에게 주눅 들기는커녕 가볍게 다루기까지 하다니.”
“뭘요. 덕분에 많이 챙겨 갑니다.”
“이제 다시 한동안 만날 수 없겠군.”
시시오가 아련한 눈망울을 했다. 아니, 그… 음.
“전화할게요.”
얼른 빨리 그냥 친한 사이 정도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번처럼 서로 좋은 거래를 믿고 할 수 있는 사이 말이다. 시시오도 꽤 이득 봤지. 무엇보다 바다에 득시글한 몬스터들을 정리해 주었으니까.
앞으로도 친하게 지내야지. …이상한 관계로 말고, 평범한 관계로 말이야.
* * *
“집이다!”
예림이가 크게 외쳤다.
“역시 집이 좋긴 좋아요! 아, 마르 데리러 가야 하는데. 삐약이랑 벨라레랑 호랑이도 같이 데리고 올까요?”
“그래 주면 고맙고.”
현관에 딱 들어서자마자 노곤노곤해졌다. 나도 집이 좋긴 좋구나. 한 며칠 푹 쉬었으면 싶었다. 하지만 처리해야 할 게 쌓여 있어서… 딱 내일 하루만 쉬자.
“내가 짐 정리할게. 형은 쉬고 있어.”
“고맙다, 부탁해.”
피스와 함께 비실비실 거실로 가 소파에 늘어졌다. 씻어야 하는데. 피스도 씻겨야지.
“피스야아.”
– 끼앙.
“가서 씻자.”
– 끼우응.
피스를 데리고 욕실로 들어가 씻고 나오자 삐약이가 둥실 날아와 반겨 주었다. 벨라레도 쉬잇 인사하듯 머리를 까닥이고 호랑이도 컁컁대며 빙글빙글 돌았다.
“삐약이 너 또 몰래 나간 건 아니지?”
– 삐약!
“호랑아, 피스한테 너무 달라붙지 마. 너도 젖는다. 피스야, 털 말리자.”
“혼자 말릴 수 있다니까.”
짐에서 빨랫감을 꺼내 세탁실에 두고 나온 유현이가 피스를 들어 올렸다. 피스가 나직이 그르렁거렸다.
“오늘은 형 피곤해.”
– 크흥.
유현이가 피스를 던지듯 내려놓고 피스가 몸을 부르르 떨더니 열기를 피어 올렸다. 그리곤 이내 보송보송해졌다.
“아이고, 피스 착하다.”
– 꺄앙!
이미 시간이 꽤 늦었기에 다들 빠르게 정리를 끝내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은 셋 다 휴가를 냈다. 느지막이 일어나 늦은 아침을 먹고 한가롭게 TV를 보며 과일로 입가심을 하는데.
“…어?”
TV 화면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그리곤 다시 밝아지면서.
“뭐야, 저게!”
내 모습이 나타났다. TV 속의 내가 유현이에게 총을 겨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