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522
520화 채널 (1)
눈을 비벼 봤지만 착각도 환각도 아니었다. 유현이와 예림이도 놀란 표정이었다. 결이가 아빠다! 하고 소리쳤다. 말소리는 나오지 않은 채 내가 동생을 향해 웃었다. 총성이 울리고 화면이 전환되었다.
무릎 꿇은 유현이와 그 앞에 선 나. 다시 빠르게 장면이 바뀌며 유현이가 내 어깨를 물었다. 내가 반격하며 단검을 동생의 팔에 박아 넣는 모습도 고스란히 나왔다. 무심코 헉 소리가 샜다. 미친, 진짜 이게 무슨…….
그리고 유현이가 내 총을 자신의 가슴에 가져다대며 웃는다. 여전히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입의 움직임도 교묘하게 편집해 보이지 않았다. 다시 총성이 들린 뒤 이번에는.
“…헐.”
성현제와 송태원이 나타났다. 송태원이 2층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기 무섭게 총알이 날아들었다. 이어 송태원이 무너진 벽 너머로 잔해와 함께 뛰어내리고, 성현제가 쏜 총알을 와이어 감은 팔뚝으로 막아 낸 송태원이 무섭게 달려들었다. 동시에 소총을 돌리며 미소 짓는 성현제가 클로즈업되었다.
아니 저기요, 이게 무슨 일이야. TV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거칠어진 숨을 내뱉으며 송태원이 성현제에게 무작정 덤벼들었다. 둘이 뒤엉켜 바닥을 구른다. 세상에! 아쉽게도 또 중간에 뚝 끊기곤, 송태원의 목을 팔로 휘감은 성현제가 단검을 들어 올렸다. 이 부분은 나도 직접 봤었다. 앞부분은 송 실장님 상대할 준비 하느라 제대로 못 봤는데.
그리고 다시 내가, 으아악!
‘잠깐, 잠깐! 잠깐만!’
내가 성현제에게 총을 겨누었다. 턱 아래에 들이댔다가 위로 올려 입을 꾹 누른다. 아 진짜 못 보겠다, 하면서도 눈은 TV에 고정된 채였다. 성현제가 총을 물고 화면이 암전되며 총성만 울려 퍼졌다.
이다음은, 안 돼! 화들짝 정신을 차리며 리모컨을 찾는 나를 유현이가 붙잡았다. 예림이는 어느새 휴대폰으로 영상을 녹화 중이었다.
“형, 잠깐만.”
유현이가 TV를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빗속에서 흙투성이가 된 내가 보였다.
“이거, 이거 우리 집에만 나오는 거야? 여기만 나오는 거겠지?!”
“아닌 거 같아요. 문자랑 톡 장난 아니게 오는데요. 한유현 폰도 번쩍거리고 있잖아요.”
휴가라고 무음 설정해 놨다. 떨리는 손으로 내 폰을 꺼내들었다. 역시나 문자와 부재중 전화가 한가득이었다. 그사이 TV 속의 내가 단검을 휘두르다가 걷어차였다. 말 그대로 개싸움을 하다가, 송태원 위에 올라탄 내가 엉망이 된 얼굴로 키득키득 웃는다.
그, 완전 맛이 간 거 같아……. 내가 저랬었나……. 그리곤 비틀거리며 권총을 가지고 와선, 마지막 총성.
새까맣게 물든 화면이 약간 밝아졌다. 그 가운데로 누군가가 서 있었다. 검은 연미복, 하얀 가면, 꽃으로 장식된 베일. 채터박스. 그가 화면 너머의 시청자들을 향해 공손히 인사하고.
[CH. CHATTERBOX]정중앙에 하얗게 로고가 나타났다가 빙그르 사라졌다. 이게… 무슨. 다시 원래 나오던 방송이 송출되었다.
“채널 채터박스, 맞죠? 채터박스가 방송국이라도 차린 거예요?”
“박예림, 영상 보내 줘.”
“공손하게 부탁하셔야지.”
“다른 곳에서도 나왔다면 더 선명하게 촬영된 것이 있겠지.”
“쳇. 자, 보냈어.”
– 이모, 결이도요!
그러는 사이 방송이 중단되며 속보가 떴다. 방금 나온 방송에 대한 뉴스였다.
[…각성자관리실, 세성 길드, 해연 길드, 도담 사육소 모두 현재 상황을 파악 중이라고 전해왔습니다.]“아니, 우선은─ 형, 어떻게 할까.”
석시명의 전화를 받은 유현이가 말하다 말고 내게 물었다. 내 폰으로는 경훈이 형이 계속 전화를 걸어오고 있었다. 머릿속이 뒤죽박죽이었지만 일단 전화를 받았다.
“모임이요, 모임. 일본 모임에서의 모의전 같은 거라고, 일단…….”
“아저씨! 방송 내보냈다는 사람 떴어요! 진짠진 모르겠지만.”
인터넷 서핑을 하던 예림이가 소리쳤다. 석시명과 서경훈도 정보를 받은 모양이었다. 통화로는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폰을 손에 든 채로 얼른 방으로 들어가 잠옷을 갈아입었다.
“경훈이 형, 잠깐만. 세성 전화 좀 받을게.”
옷을 껴입으며 전화를 끊었다가 아차 싶었다. 형 소릴 해버렸어……. 당황할 틈도 없이 성현제의 전화를 받았다.
“성현제 씨, 보셨죠?!”
[물론이지. 날 끼워 주지 않은 것이 원망스러워질 정도더군.]“농담 마시고요, 누군지 알아냈습니까?”
“…전, 전 세계요? 진짜, 전 세계에…….”
한국이 아니라, 모든 나라에 죄다 방송되었다니……. 말문이 다 막혔다.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일은 아니나 당당하게 이름까지 건 이상 채터박스의 소행이라 봐야겠지.]“아무튼, 일단, 어, 사육소 쪽으로 오실 수 있습니까?”
[송태원 실장과 함께 가겠네.]거실로 가자 유현이와 예림이도 옷을 갈아입고 나와 있었다.
“진짜 난리예요, 아저씨!”
“난리… 날 만하지. 전 세계에 갑자기 방송된 것도 그렇고, 내용도…….”
…집 밖으로 나가기가 싫어졌다. 전체 영상을 봤다면 모를까 슬로우 모션 넣고 뚝뚝 자른 편집 때문에 비각성자 상태라는 것도 알아채기 힘든 수준이고, 그런데 S급 세 명을 F급이…….
“…쪽팔려 죽겠다.”
“왜, 형 진짜 멋있었어.”
“맞아요, 아저씨. 아저씨가 주인공 같았는데요. 다 잡았고요!”
– 맞아, 아빠가 최고야!
“마음 같아선 평생 집에 처박혀 있고 싶다…….”
“그건 좋아.”
그나마 아직 S급 랭킹전이 생기기 전이라 다행이었다. 유현이와 송 실장님은 물론 성현제도 지금은 해외에까지 영향력이 크진 않으니까. 회귀 전에 비해서는 말이다. 헌터계야 어느 나라든 뒤집혔겠지만.
방구석에 이불 뒤집어쓰고 웅크리고 싶은 마음은 태산 같았지만 울며 겨자 먹기로 유현이, 예림이와 함께 집을 나섰다. 미니 포털 앞을 지키는 헌터가 우리를 보고 무척이나 할 말이 많은 표정을 지었다. 사육소 내 방음보안 철저한 응접실로 향하는 동안에도 우리 셋의 폰은 계속해서 울렸다.
“소장님!”
응접실 앞에 먼저 도착해 있던 경훈이 형이 나를 보고 외쳤다. 형도 상당히 당황한 듯했다.
“곧 세성 길드장님과 송태원 실장님이 오실 거예요. 주위에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게 해주세요. 문의가 들어오면 회의 중이라고 해두고요.”
“예, 알겠습니다.”
응접실로 들어서며 노아의 전화를 받았다.
“별일 아니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요.”
[유진 씨, 그거─] [주님! 진짜 죽여 주─] [앉으세요, 하민 형. 민의 형도.]노아의 싸늘한 말에 도하민과 김민의가 넵, 대답하곤 조용해졌다.
[거기서의 일이죠?]노아 씨도 초대장 내기에 참가했던 덕에 바로 눈치챈 모양이었다.
“네. 일단은 비밀로 해주세요. 명우는 못 봤나 봐요?”
[대장간에 들어가셨나 봐요. 저한테도 연락이 없었습니다. 우선 빌딩 내 외부인들을 내보낼까요?]“그렇게 해주면 감사하죠. 부탁할게요.”
평소에는 어리고 귀엽게 보이는 노아 씨지만 막상 일이 닥치면 든든했다. 역시 길드장 경력이 어딜 안 가지. 이어 문자를 몇 개나 보내온 문현아에게 전화했다.
[형님! 화끈하더라!]“…창피해 죽겠거든요.”
[왜, 섹시하던데.]뭐, 무슨, 뭐가… 아니 S급들 두고 왜 나한테……. 문현아가 목소리를 확 낮추며 말을 이었다.
[사육소야? 나도 갈까.]“네, 응접실에 있습니다.”
[무슨 속셈인지는 모르겠지만 풀린 영상 자체는 크게 해 될 거 없을 듯하니 너무 걱정하진 마. 어떤 면에서는 득이 될 수도 있어.]그야 그랬지만, 달가운 일은 결코 아니었다. 공포 저항이 없었더라면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허둥거리기만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급한 연락들을 끝내고 소파에 앉았다. 유현이도 석시명과의 통화를 마치며 내 옆에 자리했다. 예림이는 계속 폰으로 이것저것 살펴보고 있었다.
“애들이 엄청 물어보는데… 해외에서도 난리래요. 와, 촬영 영상 조회 수 좀 봐. 계속 내리는데 계속 올라온대요. 잠깐 사이에도 조회 수가…….”
나도 더 참지 못하고 다시 폰을 켜서 포털 사이트에 들어갔다. 눈에 띄는 기사 글을 눌러 보았다. S급을 때려눕힌 F급? 이라니 이놈의 기사 제목들은 여전하구나. 그나마 기사 내용 자체는 속보라선지 간략하게 나온 정보로만 작성되어 있었지만.
– 짜고쳤네
└ ㄹㅇ말이되냐 저게
└ 사육소장 웃긴다 왜저러지
└ 멍청한소리하고 앉았네 s급들이 뭐가모자라서 짜고쳐
– 한유진 일부러 방송한거 맞음 s급들 사이에낀 f급이잖아 보나마나 열등감쩔었겠지 그래서 저지랄한거고ㅋㅋㅋㅋ
└ 그래봤자 f급인데ㅋㅋㅋㅋㅋㅋㅋ
└ 저렇게 연기해주면 f급이 s급되나 주제를 알자
└ ㅂㅅ같음
– ㅅㅂ개열받네 s급들 놓아줘라
– 한유진 지가뭐라고 s급들을 저런취급하냐
– 여기 사육소장한테 열폭한 ㅂㅅ들 많다
└ 방구석여포들 주렁주렁 매달림ㅋㅋㅋ
└ 사육소 알바냐
└ 응 사육소 복지개꿀
– 나라망신이다
└ 자기소개네
– 특수스킬이니해도 솔직히 f급이랑 s급은 급이 다르지. 한유진 s급이랑 어울리는거 못봐주겠음. 왜자꾸 나대고ㅈㄹ
└꼴불견임
이런 소리 나올 거라고 예상은 했다. 그래도 맥이 탁 풀렸다. 나는 많이 변했는데 이런 사람들은 그대로구나.
“신경 쓰지 마, 형.”
유현이가 내 폰을 빼앗아가며 말했다.
“맞아요, 아저씨. 그런 데선 그냥 다 욕먹어요. 저랑 한유현은 물론이고 세성길드장도 마찬가지라니까요. 심지어 공무원 아저씨도 욕하는 사람 많다던데.”
“…송 실장님한테까지는 너무했다. 고소하기도 힘드실 텐데.”
아예 할 생각 자체를 안 하시겠지.
“그리고 좋아하는 사람이 훨씬 더 많아요! 댓글 같은 건 분위기 따라 달라서요, 여긴 욕하는 사람 두들겨 맞고 있다고요.”
예림이가 폰을 보여 주며 말했다.
“제 친구들도 아저씨 다시 봤다고 그러는데요.”
“고맙다. 걱정 마, 나도 알고 있으니까. 아까 기사에서도 내 편 들어주는 사람들 있었고.”
내가 자기들에게 뭐 피해 준 거 하나 없는데도 대뜸 욕하는 사람들 흔하지. 나는 그 사람들을 알지도 못하는데 말이다.
“해연에서 사육소 측과 함께 정리 들어갈 거야.”
“응. 대체 왜들 그러는지 모르겠다니까.”
불만 있으면 차라리 찾아와라. 아니면 아예 모르게끔 하든가. 티를 낼 거면 화끈하게 덤벼들면 되잖아. 그럼 나도 던전에다 묻어 버리겠지만.
그때 석시명이 들어왔다. 그도 상당히 당황한 눈치였다.
“그러니까, 일본에서 촬영된 영상이라는 겁니까?”
“네. 전부 비각성 상태였고요. 물론 합의된 상황이었습니다.”
“…일단은 엮인 분들이 더 있는 만큼 해연에서 단독 처리하기는 힘듭니다. 지금 세성 길드장님과 각성자관리실 실장님, 두 분이 오시는 중이라고 하셨지요.”
“브레이커 길드장님께서도요. 길드장 간의 이야기인 만큼 잠시 자리를 비켜 주실 수 있을까요.”
석시명이 짧게 한숨을 내뱉었다.
“물러나 있겠습니다만, 갈수록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 늘어나는 듯합니다.”
그는 아직 모르는 게 많으니까 혼란스러울 법했다. 이렇게 된 이상 어느 정도 설명을 해주긴 해야 할 텐데.
얼마 지나지 않아 세성 길드장과 송태원 실장이 도착했다는 연락이 들어왔다. 세성이야 가까운 편이고 송 실장님은 헌터협회에라도 가 계셨던 걸까. 이내 문이 열리고 두 사람이 나타났다.
“편집을 너무 많이 했더군.”
성현제가 안으로 들어서기 무섭게 아쉬워했다.
“재연해 줄 생각은 없나.”
“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고 앉으시죠. 브레이커 길드장님도 곧 오실 겁니다.”
성현제는 좋은 구경 했다는 표정이었지만 송태원의 얼굴에는 그림자가 짙었다. 분명 헌터협회는 물론 위에서도 난리 났었겠지. 채터박스 놈 진짜 무슨 속셈인 거냐.
석시명이 가져다준 노트북을 켰다. 방송을 자기가 했다는 단체들이 이제 열을 넘어가고 있었다. 성현제가 자신의 휴대폰으로 들어온 자료를 우리에게 보여 주었다.
“방송 탈취 자체는 역시 현대의 기술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네.”
“애초에 영상을 입수할 수 있었던 존재도 채터박스뿐일 테니까요. 신입에게 가서 확인하는 게 빠르겠지만, 그 전에 어떻게 처리하죠.”
일단 대응을 하고 던전에 가야 한다. 이대로 놓아뒀다간 별별 헛소문이 다 퍼지겠지.
“섣불리 입장을 발표하기보다는 영상을 쥐고 있는 쪽의 반응을 기다리는 편이 낫겠지. 충분히 관심을 집중시켰으니 곧 움직일 가능성이 클 것이고.”
“…그냥 심술궂은 해프닝으로 끝날 리는 없겠지요.”
설마 정말로 방송사라도 차릴 생각인 건가. 이런 식으로 대놓고 개입하면 안 되는 거 아니었어? 이내 문현아도 사육소에 도착했다.
“다들 TV 앞에 앉았는지 거리가 휑하더라. 폰으로 보기엔 눈에 안 차는 영상이긴 하지.”
각자 전해오는 정보를 모아 보면서 이십여 분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안녕하세요, 채널 채터박스입니다.]동영상 사이트에 새로운 영상이 떴다. 실시간 방송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