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527
525화 출사표 (1)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나와 같이 가기로 했잖아!”
유현이가 내 어깨를 붙잡아 자신 쪽으로 돌려세웠다.
“아저씨, 혼자라뇨! 파티에 아저씨 빼곤 다 S급 아니면 A급일 텐데!”
예림이도 당황하며 외쳤다. 성현제는 참견하지 않았지만 대신 요란한 소리와 함께 근처의 몬스터들이 순식간에 마른 잿더미로 변했다.
“나를 위해서야.”
눈빛에 날까지 세우는 동생을 올려다보며 차분히 말했다.
“유현이 너나, 다른 S급들과 함께 가면 결국 난 덤이 될 뿐이야. 내가 아무리 활약을 한다 해도 사람들은 S급을 먼저 보게 되겠지. 유현아, 태양 옆에서는 별도 달도 빛나지 못해.”
“나한테는, 형만이 빛나고 있는데.”
“고맙다.”
유현이가 어쩔 줄 몰라 하며 입술을 몇 번씩이나 달싹거렸다. 뭔가 방법을 떠올리려 애쓰는 모양이었다. 그러다 결국 어깨를 축 늘어뜨린다.
“내가 같이 갈 수 있는 방법은… 없겠지…….”
“응. 아무래도.”
유현이 방송은 아예 끄고 없는 척을 한다더라도 동생이 보이지 않으면 또 말이 나오고 말 것이다. 상대방의 반응을 보고 눈치채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혹 은신 스킬을 구해 완전히 모습을 감추더라도, 만에 하나 내가 위험해지면 유현이가 얼마나 참아낼 수 있을까.
“아직 파티가 어떤 식일지는 모르니까 잘하면 도중에 합류할 수도 있을 거야.”
“할아버지가 말씀하신 것처럼 요리대회 같은 거면 좋을 텐데요.”
예림이가 시무룩하게 말했다. 리에트가 가장 먼저 탈락하겠구만.
“둘 다 너무 걱정하지 마. 최악이라고 해봐야 1차전에서 탈락하고 방송 보며 너희들 응원하는 것밖에 더 되겠냐.”
“채터박스를 믿을 수 없잖아요. 분명 아저씨한테 해 끼치려고 들 텐데!”
“그래서 철저하게 계약서 작성할 예정이야. 대리인 보내 주기로도 했고.”
그렇게 해도 완벽한 대비는 아니겠지만, 어느 정도 안심은 할 수 있을 것이다. 불만스러워하는 애들을 달래면서 성현제를 돌아보았다.
“웬일로 조용하시네요.”
“상대방을 존중하는 일이 생각보다 어렵다는 사실을 되새기고 있는 중이라네.”
“잘 참고 계시는군요. 앞으로도 부탁드리겠습니다.”
내 주위 사람들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날 보호하려 들 수 있다. 결국 우리가 패배하고 세상을 지키지 못한다더라도 나는 종말의 마지막 날까지 아무것도 모른 채 일상을 보내고 있겠지.
내가 예전 그대로였으면 정말로 그랬을 거고. 바뀌어야지. 이번에는 다른 결말을 맞이해야지. 아니, 엔딩 같은 건 필요 없다. 그냥 계속 잘 살아가야지.
“만약을 대비해서 예림이 너도 요리 좀 배워 두는 게 어때?”
“라면스프 몇 개 챙겨 가면 돼요.”
천재다.
“만약 주어지는 재료만으로 만드세요, 라고 하면 그럼 숨도 못 쉬겠네요 하고 우겨. 요리하다 보면 주위 공기와 공기 중 수분이나 먼지도 들어갈 거 아니냐. 예림이 네가 달고 온 먼지 들어가는 거나 들고 온 라면스프 들어가는 거나 똑같지.”
“네, 아저씨.”
“모든 규칙에는 빈틈이 있는 법이야.”
“춤은 배워 놓을까요? 아저씨도 파티 댄스 같은 건 모르죠?”
“운동회 때 포크댄스는 춰 봤는데.”
“전 꼭두각시요. 어릴 때라 잘 기억도 안 나지만요.”
지금도 어리다만. 유치원 때였을까? 초1? 귀여웠겠다. 예림이는 기분이 풀렸지만 다른 둘은 내 결정이 여전히 탐탁잖은 듯했다. 특히 유현이는 표정이 많이 어두웠다.
“빨리 나가는 게 좋겠죠. 제가 먼저 가서 쓸어버릴게요.”
예림이가 훌쩍 날아오르며 말했다. 그리곤 이내 순간이동 해가며 저만치 멀리 사라져 갔다. 예림이가 떠나기 무섭게 유현이가 꾹 다물고 있던 입을 열었다.
“약속해.”
“응?”
“고집부리지 않겠다고.”
“…무슨 소리냐.”
“형은 쉽게 포기하지 않잖아. 신체에 후유증이 남지 않고 원한다면 언제든지 떠날 수 있다, 라고 했지만, 원한다면이 문제야.”
“그거야…….”
“설사 고문을 당하더라도 참으면 그뿐이라는 뜻이잖아. 그리고 형은 끝까지 버티려 들겠지.”
유현이 말대로였다. 조금만 위험하다 싶으면 바로 벗어날 수 있는 규칙이다. 하지만 동시에 위험을 얼마든지 감수할 수도 있는 규칙이었다.
“한유진 군은 고집스러우니.”
성현제도 한마디 거들었다. 예림이와 달리 둘이 계속 불만스러운 기색 풀풀 풍기고 있었던 게 그 이유인 모양이었다. 나 혼자 두면 말릴 수도 없을 테니까.
“나도 미련하게 버틸 생각은 없는데…….”
“형.”
“알았어, 알았어. 대신 유현이 너도 괜히 버티지 말고.”
“형이 안전을 중시하겠다면 나도 그럴게. 원한다면 형이 나가자마자 바로 따라갈 수도 있어.”
“그럴 필요까진 없다만, 조심하마.”
약속하겠다 했지만 유현이는 영 믿는 눈빛이 아니었다. 성현제도 마찬가지였다.
“좀 믿어 줘라. 언제는 나 믿는다며.”
“형이 하는 일은 믿어. 하지만 형이 스스로를 제대로 챙길 거라고는 생각지 않아. 그건 평소에도 마찬가지야.”
그, 그렇긴 했지. 그래도 요새는 많이 나아졌는데.
“어… 아무튼 따로 가게 되면, 유현이 넌 역시 노아 씨가 좋겠지?”
“혼자 가서 형과 합류할 거야.”
“아니, 초대장 아깝잖냐. 넉넉하게 얻긴 했지만, 언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고. 피스라도 데리고 가. 성현제 씨는 송 실장님과 얘기해 보셨어요?”
“선약이 있지 않나. 답변을 기다리는 중이라네.”
“네? 언제… 설마 결이요? 애 괴롭히지 마시라니까!”
게다가 방송이면 결이는 말도 제대로 못 할 텐데. 음성 제거하면 되긴 하지만.
예림이가 빠르게 몬스터들을 쓸어 준 덕분에 금방 밖으로 나왔다. 셋 다 다시 쿠키를 먹었다.
“코트값 청구할 겁니다.”
성현제를 멀쩡한 쪽 주머니에 넣고 유현이를 두 손으로 받쳐 들었다.
“기분 풀자, 응?”
작은 채로 토라지니 더 귀엽네. 어릴 때 생각나서 볼에 뽀뽀라도 해주고 싶어졌다. 이 나이 먹고는 좀 그렇지만.
“한유현 일부러 저러는 거 같은데요.”
“내가 약속을 어기긴 했잖냐. 착하지, 유현아. 형아 보자.”
“…아저씨.”
“그게, 작으니까 어려진 거 같아서.”
“제대로 보세요. 비율은 그대로라고요!”
“예림이 너도 그렇고.”
“…부끄러워질 정도니까 그렇게 보지 마세요! 저 열다섯 살인데!”
예림이가 홱 몸을 돌리며 외쳤다. 그래, 그래. 다 컸지.
대기하고 있던 차를 타고 사육소로 향했다. 기자들이 접근해 오긴 했으나 뒷좌석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곤 순순히 물러났다.
“브레이커 길드장님께서 조금 전 인터뷰를 하셨습니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석시명이 말했다.
“이번 파티의 주최자가 한유진 소장님께 가장 먼저 연락을 해왔으며, 한유진 소장님의 주선으로 한국 S급 헌터들 대부분이 초대장을 얻게 되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반응은요?”
“나쁘진 않습니다.”
“그리고 세성 길드에서 사육소로 여러 차례 연락이 왔었습니다.”
석시명의 약간 뒤쪽에 견습처럼 서 있던 경훈이 형이 말했다. 석시명이 안 가고 뭐 하냐는 표정으로 성현제를 쳐다보았다. 성현제가 손을 뻗어 내 어깨를 가볍게 토닥였다.
“그럼 한유진 소장님, 부디 무리하지 않으시길 바라며,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네, 조심해서 들어가십시오. 무언가 중요한 소식을 들으시거든 제게도 전해 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물론 그래야지요.”
성현제가 정중한 미소와 함께 돌아서서 나갔다. 예림이가 아저씨들 그러니까 어색하다며 작게 중얼거렸다. 왜, 평범하잖아.
“현재 각국의 여러 방송사가 채널 채터박스와 접촉하려 애쓰고 있습니다. 중계권 때문이지요.”
“시청률이 보장되어 있으니까요. 미국 ABC는요? 그쪽에서 영상을 받았다면서요.”
“단순히 영상만 전해 받았을 뿐이라며 말을 아끼고 있습니다. 인터넷 방송을 하지 않을까 하는 말도 있고요.”
“채터박스, 예언가 측의 새로운 소식은 없습니까?”
“예. 그리고 해연과 도담에서도 얼굴을 내비치긴 해야 할 듯싶습니다.”
석시명이 그간의 자료를 정리해 유현이와 내게 건네주었다. 예림이는 석시명의 시선을 슬쩍 피하며 뒤로 물러났다.
“여기도 보리차 있어요?”
“현미차도 있어. 유현이 넌 바로 인터뷰해도 상관없지?”
“응. 브레이커 길드장이 먼저 나서 줬으니 형이 초대장을 뺏은 게 아니라는 사실에 못 박아 두는 게 좋을 것 같아.”
“세성에서도 아마 협조해 줄 거야.”
“길드장님께서 사육소에 계시다는 사실은 알려져 있으니… 사육소 빌딩 쪽에 자리를 마련하겠습니다. 호의적인 기자들 우선으로 미리 연락해 두었습니다.”
석시명이 휴대폰을 들어 전화를 걸며 나를 바라보았다.
“한 소장님께선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저는… 내일 기자회견을 열도록 하죠.”
간단한 인터뷰 말고. 내 말에 유현이와 석시명, 서경훈이 동시에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기자들을 거르지 않으면 공격적인 질문이 많을 거야.”
“그렇다고 거르면 또 그걸로 트집 잡을걸.”
“혹시 정말로… 파티에 참석하실 생각이십니까?”
석시명이 설마, 하는 얼굴로 물었다. 경훈이 형도 당혹스런 기색이었다.
“네. 안전은 보장되어 있으니까요.”
서경훈과 석시명 모두 할 말을 잃은 듯했다. 상황을 잘 모르는 두 사람에게는 어이없이 느껴지는 소리겠지. 나 혼자 따로 참가한다는 말은 일단 미뤄 두자. 미친놈 취급당할라.
“그다지… 좋은 선택은 아닌 듯합니다만.”
“맞습니다. 소장님께서는 전투계가 아니시지 않습니까.”
“파티니까 꼭 싸우란 법은 없죠.”
“…예선전에 참가도 하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석시명이 그 꼴로 구른 게 바로 오늘 방송까지 탔는데 무슨 헛소리냐는 말을 곱게 둘러 했다. 그건 사실 내가 제안한 싸움판이었는데.
“우선 하루 지켜보고요, 기자회견 해서 반응이 영 아니다 싶으면 자숙하겠습니다~ 하면 그만이죠.”
어차피 이번 일이 망하면 난 대외적으로 나서기 힘들어진다. 지금까지 그런 척했던 것처럼 얌전히 보살핌 받는 F급이 되어야겠지. 채터박스 파티에 소중한 사람들 보내 놓고 TV 너머로 손가락 빨며 구경이나 하는.
속이 조금 갑갑해졌다. 유현이가 손을 뻗어 내 손을 잡아 주었다. 예림이도 얼른 다가와 반대쪽 손을 붙잡았다. 걱정스러워하면서도 석시명과 서경훈은 내가 원하는 대로 준비해 주겠다 대답했다.
“오늘은 일찍 자야겠다.”
“팩 해줄까요?”
“바르는 건 싫어. 특히 저번에 그 시커먼 거 랑이가 깜짝 놀랐다니까.”
“냄새 때문에 피스도 싫어했죠.”
유현이가 인터뷰를 하기 위해 자리를 떠났다. 받은 자료를 살펴보며 기다리는 사이 예림이가 집으로 가 피스와 결이와 삐약이를 데리고 왔다.
– 끼우응.
“자요, 아저씨. 피스 안고 결이도 안고 삐약이는 머리에 올리고.”
– 삐약.
결이가 내 뺨에 붙어서 아빠, 하고 작게 속삭였다. 무릎 위의 피스가 내 손가락을 핥았다. 삐약이가 피스 위로 굴러떨어지듯 내려와 다시 데구르 굴렀다. 귀여워. 그러고 보니 최근엔 SNS 업데이트를 못 했구나. 지금 올리면 이상하게 보이겠지.
“피스야, 폭신해라~”
– 끼앙!
그러면 안 되지만, 그래도 아주 만약에 일이 틀어진다더라도. 그래도 최악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는 내 곁에 계속 남아 줄 이가 많으니까.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이다. 얼마든지.
최대한 아무 생각 않고 편히 있으려 했다. 그럼에도 하루는 길었으며 밤은 더더욱 길었다. 이번만큼은 명우가 신경 써서 챙겨 준 음식도 잘 넘어가질 않았다. 걱정시키고 싶진 않았지만 몸이 영 비협조적이었다.
“아무 던전에나?”
“응. 하지만 네가 꼭 가야 할 필요는 없어.”
내가 밥을 제대로 못 먹자 죽이라도 끓여 주겠다고 하며 명우가 말했다.
“던전 속 세계를 만들어 내는 것에는, 관심이 꽤 있긴 해.”
“그래도 엄청 힘들었다면서?”
“지금 내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일이었으니까. 그래도 가르쳐 주겠다는데 거절할 생각은 없어.”
명우의 얼굴 위로 기대감 같은 것이 살짝 어렸다.
“나는 작동하는 게 좋아. 다양한 움직임이 나타나는 것들 말이야. 그 움직임의 결과가 다양할수록 더 좋고.”
명우가 무기 외의 아이템 만드는 걸 더 좋아하는 데엔 그런 이유도 있는 걸까. 무기는 주로 상대를 살상하기 위해 쓰이니까. 단순하다면 단순했다.
“네가 좋다면 다행이지만 무리하진 마라.”
“유진이 너야말로. 난 오히려 예전보다 더 건강해졌다고.”
명우가 눈살을 약간 찌푸리고 내 어깨가 절로 움츠러들었다. 과로하는 건 똑같은데 왜 나만 이러냐. 억울했다.
회견 장소는 사육소도 해연도 아닌 헌터 협회에 마련되었다. 중립적인 분위기를 내기 위해서였다. 협회로 가는 길도 노아와 서경훈이 함께했다. 다른 사람들은 협회에 먼저 가 있고 나는 두 사람과 함께 시간 맞추어 주차장에 내려섰다. 협회 직원들이 미리 막아 주어 다행히 접근해 오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카메라는 여기저기서 열심히 나를 담아댔다.
렌즈를 향해 미소 지어 보이곤 건물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로비에 나와 있는 송태원의 모습이 보였다.
“안녕하세요, 송 실장님.”
그가 나를 향해 마주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했다. 송 실장님도 희미하게나마 걱정이 어린 눈빛을 하고 있었다.
“위쪽에 허가는 났습니까?”
“아직 대답이 돌아오진 않았지만 참석할 수 있을 듯합니다.”
안 그래도 귀한 S급 헌터 너무 묶어 두는 거 아니냔 소리가 있으니까. 한국이 안정적인 지금 보상이 크다는 파티 참석까지 막기는 힘들겠지. 회귀 전 랭킹전 불참으로도 불만이 많았었다. 그때야 한국이 지금처럼 안전하진 않았기에 무마할 수 있었지만.
“한유진 씨는…….”
“괜찮아요.”
걱정 마시라며 대기실로 들어섰다. 반가운 얼굴들이 가득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 혼자 문을 열고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