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528
526화 출사표 (2)
등 뒤로 문이 닫히고 길게 뻗은 복도가 눈에 들어왔다. 입구까지 가면 협회 헌터들이 지키고 있겠지만 이곳은 보안을 위해 아무도 없었다. 문 하나를 두고 그 안쪽으로는 유현이와 예림이, 그리고 나에게 호의적인 사람이 여럿이었지만 어쩐지 홀로 남아 버린 기분이 들었다.
한 걸음, 천천히 발을 떼었다. 지금이라도 몸을 돌리고 문을 연다면 혼자 나아가지 않아도 된다. 내가 주저앉더라도 감싸 줄 사람들이었다.
‘…보호받는 선택지도 사실 그리 나쁘진 않아.’
대중에겐 끝까지 S급의 보호가 필요한 F급으로 남겠지만 나에게 소중한 이들이야 이미 한유진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내 주위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으로 만족해도 되긴 된다.
물론 그렇게 되면 나는 어디까지나 뒤로 물러나 있을 수밖에 없어진다. 예전 그대로 S급들이 주도적으로 나서고 한유진은 얌전히 보호받으며 그에 따르는 모습이 될 것이다. 일본 모임에서의 이미지도 결국 오래가지 못하고 흐려지고 말겠지.
내가 나서지 않아도 다들 잘해 낼지도 모른다. 애초에 나보다 능력이 뛰어난 S급들이기도 하니까. F급은 F급답게.
‘그건 역시 기분 더럽지.’
모퉁이를 돌아서자 협회의 헌터들이 보였다. 회견장으로 통하는 문은 닫혀 있었다. 여전히 머릿속에 생각이 많았다. 이런 예상 저런 예상들이 마구잡이로 떠올랐지만, 사실.
그 모든 것이 사실은 변명거리였다. 물론 억지 핑계는 아니었다. 상급 헌터들에게 야, 나 너희들이랑 대등하게 설 자격 있어, 를 새겨 주고 일반인들의 지지까지 얻으면 이득이야 당연히 있었다. 멀리 본다면 중하급 헌터들에게도 좋은 반환점이 될 것이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문 앞에 서서 손잡이를 내려다보았다.
내가 이렇게까지 나서는 가장 큰 이유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었다.
내가 그러고 싶어서. 내가 인정받고 싶어서. 지금도 다들 걱정하고 있지만, 나만 물러서면 내 가족이, 소중한 이들이 안심할 수 있겠지만. 그런데도 이번만큼은 조금쯤 이기적으로 굴고 싶었다.
내가 유현이 옆에, S급들 옆에 나란히, 당당히 서도 된다는 인정을 받고 싶었다. 모두가 그 모습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기를 바랐다. 욕심이라고 여기면서도, 그래도.
이러는 거 실수는 아닐까, 괜한 짓은 아닐까, 후회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부정적인 감정들 속에서도 손을 뻗었다. 나를 위해서. 그때.
[형.]목소리가 들려왔다. 급히 고개를 돌렸지만 주위에는 협회 헌터들 외엔 없었다. 잠을 제대로 못 잤더니 환청까지 들리는 건가. 그래도 고작 하룬데 몸이 많이 허해졌나.
– 삐약!
이번엔 삐약이 소리까지─
– 삐약삐약.
정수리가 묵직해졌다. 따스한 온기덩어리가 내 머리 위에서 파닥거린다.
“삐약아!”
아니 이 녀석이 또 공간이동 해서 온 거냐.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를 일이기에 협회에 미리 보고는 해두었지만 남의 눈에 띄어서 좋을 건 없건만.
“죄송하지만 삐약이 좀 대기실에 데려다주시겠어요? 박예림 헌터에게 맡겨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협회 헌터들 중 하나가 그러겠노라며 삐약이를 받아들었다. 덕분에 긴장은 좀 풀렸다. 한결 가벼워진 기분으로 문을 열었다. 빽빽하게 들어차 있는 기자들에게 미소 지어 보이며 단상으로 올라갔다.
원래 상급 헌터, 특히 S급 헌터 관련 회견은 보통 헌터들에게 호의적인 기자 위주로 출입시키곤 했다. 상급 헌터 이미지관리 작업의 일환이었다. 물론 그중에서도 자극적인 기사를 내보내는 경우가 없지는 않았지만 그럴 경우 이후 회견에 참석 불가능, 상급 헌터 인터뷰 사절 등의 불이익이 주어지는 만큼 알아서 몸을 사리곤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제한을 최소화했다. 그랬더니 안면 있는 기자들도 몇 보였다.
‘김승준은 있는데 박해신은 없네.’
하기야 유현이와의 관계 외엔 평범한 F급인 날 굳이 쫓아다니며 괴롭힌 놈들이 급 높을 린 없으니까. 제한이 낮아졌다곤 해도 이런 자리의 경쟁률은 당연히 높았을 것이다. 이전 자리들도 물론 그랬고. 덕분에 그동안은 마주칠 일이 없었지. 강약약강이라고 지금의 나는 쉽게 건드릴 수 있는 상대도 아니었다.
오늘은 어떨까.
간단한 인사말을 건네고 마련된 자리에 앉았다. 의자를 끌어당겨 자세를 편히 잡는데 내 쪽으로 흘러내린 하얀 테이블보 끝자락에 적혀 있는 글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무리하진 마 형. 괜찮아.] [♡아저씨 힘내세요!♡]언제 이런 걸 적어놓았대. 왜 둘이 일찍 출발했나 싶더니. 예림이가 하트를 그려 놓은 걸 보고 뒤늦게 따라 했는지 유현이가 쓴 글 밑에도 하트가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예림이가 메시지 주위를 별로 장식하고, 유현이가 또 별을 그렸겠지. 안 봐도 훤했다.
왜 자꾸 따라 하냐고 투덜거리는 예림이와 눈썹 하나 까딱 않고 못 들은 척하는 유현이의 모습이 눈앞에 절로 그려져, 무심코 새어나오려는 웃음을 꾹 참았다.
“한유진 소장님께서 파티의 초대장을 가장 먼저 습득하셨다는 말이 사실입니까?”
무난한 질문부터 들어왔다.
“국내에서는, 맞습니다.”
클로이의 것을 빼앗기는 했다만 말이다.
“브레이커 길드장님께서 한유진 소장님의 도움으로 초대장을 얻었다 발표하였는데요. 타 S급 길드장들 또한 한유진 소장님의 도움을 받았다고 들었습니다만.”
“원래 한국은, 정확히는 동아시아의 헌터들은 초대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이것도 사실이다. 채터박스 놈 인종차별자래요. 애초에 지구인이 아니지만.
“때문에 제가 개인적으로 채터박스 씨에게 연락하여 초대장을 얻어냈습니다.”
“한유진 소장에게 초대장을 빼앗겼다고 주장하는 외국 S급 헌터가 있습니다.”
얼씨구, 어느 놈이냐. 그것도 비도덕적인 방법이었다며 기자가 날을 세워 질문을 던져왔다. 나는 놀랍다는 듯이 눈을 살짝 크게 떠보였다.
“정확히 어떤 방법이었다고 말하였습니까?”
“자세히 밝히지는 않았으나 틀림없는 함정이라 하였습니다.”
“아… 그렇군요. S급 헌터가 함정에 빠져 인벤토리에 넣을 수도 있는 초대장을 빼앗겼다, 라.”
곤란해하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제가 자세한 정황을 지금 이 자리에서 털어놓아도 괜찮을지 걱정이 되는군요. 그분의 명예를 위해서 이번 질문은 넘어가겠습니다.”
기자들 몇이 대답해 달라며 말해왔다. 스탯 F급이 S급에게 초대장을 강탈한 사연이 궁금하겠지. 기자들을 바라보며 저는 괜찮은데… 하고 말꼬리를 살짝 흐려 주었다. 계속 답변 요구해서 그 S급 헌터가 쪽팔리다 못해 보복을 가하려 들면 어쩌려고, 라는 기색이 전해졌는지 이내 입들을 다문다.
문현아의 호의적인 인터뷰 덕분인지 채터박스의 파티가 알려진 직후보다 반응은 확실히 누그러져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진 못하였다.
“현재 채터박스의 초대장을 얻은 한국 S급 헌터들은 일곱 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신의 박민규 길드장과 해연의 김성한 헌터에게 초대장을 양보할 생각은 없으십니까? 준S급이라 하나 김민의 헌터도 있지요. 또한 A급 헌터들은 그보다 훨씬 더 많습니다.”
축약해 F급이 왜 끼어드냐는 소리였다. 그래도 잘 둘러 친절하게 말해 주네. 회귀 전이었으면 F급이 S급들 파티에 참가할 능력이나 되냐고 직구로 찔러왔을 텐데.
“해연의 김성한 헌터님께선 파티 참가를 사양하셨습니다. 한국이 안정화되었다고 하나 모든 S급 헌터가 자리를 비울 수는 없는 일이니까요. 한신 길드장님께는 제가 직접 연락드릴 예정입니다.”
“그럼 물러나시겠다는 겁니까?”
뭐래.
“초대장의 여분이 있습니다. 다만 S급 헌터가 두 명 정도는 한국에 남아 주는 편이 안전하다고 생각합니다.”
여태까지 들은 한신 길드장의 성향을 생각해 볼 때 거절할 가능성이 높았다. 내가 언급했는데 혹 불참으로 욕먹으면 미안하니까 미리 방패를 쳐주었다.
“김민의 헌터님께선 그 특수성 때문에 역시나 참가를 사양하셨고요.”
“그렇다 해도 한유진 소장님보다는 낫지 않습니까.”
S급은 물론 A급, 하다못해 B급들조차. 내게 집중된 시선들 모두가 그에 동의하고 있을 것이다. 카메라 너머의, TV를 시청하고 있을 사람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무례한 질문이라 생각하는 소수도 있긴 하겠지만 사실은 사실이니까.
“저보다 더 나은 헌터가 있다면.”
카메라를 향해 미소 지어 보였다.
“양보해 드리겠습니다.”
“결국 참가하지 않으시겠다는 말씀이시군요.”
“해연의 헌터를 우선시할 생각이십니까?”
“아니요. 양도 조건은 간단합니다.”
조건이라는 말에 기자들이 귀를 기울여왔다. 그들에게 대답해 주었다.
“S급 헌터로부터 파티 초대장을 빼앗을 수 있는 헌터.”
서로서로 질문할 기회를 노리고 있던 기자들이 일순 잠잠해졌다.
“S급 헌터들과 싸워 이길 수 있는 헌터. 혹은, 그런 척하게 시키는 것이 가능한 헌터.”
조작된 영상이라고들 했지. 말로는 쉬운 그 조작, 할 수 있는 사람 있다면 나와 봐라.
“저보다 나은 것도 아닙니다. 저만큼 할 수 있기만 해도 얼마든지 양보해 드리지요.”
내가 자격이 없다면, 좋다. 그럼 나만 한 사람을 데리고 와라. 너희들이 말하는 흔해빠진 F급보다 더 잘난 사람을.
하지만 이걸 어쩌나. 한국에서 그나마 조건에 맞는 사람들은 이미 다 내 편인걸. 그 극소수의 몇 명을 제외하고는 없다. 없다고.
“…하지만, 한유진 소장님께서는 S급 헌터들의 도움을 받지 않으셨습니까.”
“해외 S급 헌터는 제 함정에 빠졌다 하지 않았습니까? 가서 물어보세요, 제가 S급 헌터의 덕을 보았는지. 그리고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받아도 됩니다. 무슨 방법을 쓰든 제가 말한 세 가지 조건 중 하나를 충족하는 사람이라면 기꺼이 초대장을 넘겨드리겠습니다.”
물론 한국인 중에서. 외국인에게 넘길 바엔 내가 가는 편이 낫다고들 생각할 테고.
기자들이 당황스러워하는 기색들이 확연하게 느껴졌다. 내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내가 부족하니까 다른 사람에게 초대장을 넘기라는 여론이 생겨났다. 그러니 나보다 잘난 사람, 최소한 나만큼 능력 되는 사람에게 넘기겠다고 했다.
맞는 말이잖아. 나보다 못한 헌터에게 넘길 이유는 전혀 없지.
“그럼 채터박스의 파티에 직접 참가하시겠다는 말씀입니까?”
“조건에 부합하는 사람이 없다면, 당연히 제가 참가하겠습니다. 그리고.”
숨을 짧게 들이마셨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저에게는 참가할 자격이 있습니다.”
몰려드는 시선들을 똑바로 마주보았다. 그렇잖아. 내가 직접 얻은 초대장이다. 파티 자체도 내가 마련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나 말고 또 누가. 설사 성현제와 비교한다고 해도 당연히 내가 우선이었다.
채터박스조차도 나를 주인공으로 생각하고 있을 것인데.
그래, 내가 주인공이다.
“스탯이 F급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이미 결과를 냈습니다. 또한 앞으로도 좋은 결과를 낼 자신이 있습니다.”
조금 치사하지만 나는 끝까지 버틸 확률이 높았다. 그야 내가 초반 탈락해서 집에 돌아가는 것을 채터박스가 반길 리 없으니까. 편법을 살짝 써서라도 도와주려 들겠지. 그럼 나는 그거 받아먹고 F급이지만 S급을 밟았답니다, 하하하. 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최소한 패자부활전 같은 기회는 주지 않을까. 반대로 아 못 해먹겠네 그냥 집에 갈래요, 하고 무언가 뜯어먹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럴 만한 위치를 나는 이미 만들어 놓았다.
“자신감이 과하신 것 아닙니까. 혹 S급 헌터들을, 특히 동생분인 해연 길드장님을 믿고 계신 것이라면─”
“덧붙여 파티 참석은 저 혼자 합니다.”
2인 1팀이라는 정보는 이미 외국에서 흘러나와 퍼질 만큼 퍼진 뒤였다. 내 말에 기자들이 또다시 당황해했다.
“1인 초대장을 특별히 얻어 놓기도 하였습니다.”
내 목의 표식. 채터박스는 나라면 초대장 없이도 환영한다고 하였다. 즉, 1인 초대장을 가진 셈이었다.
“갑자기 이렇게 나서시는 이유가 뭡니까?”
회귀 전에 안면 있는 기자가 질문을 던져왔다.
“여태까지의 한유진 소장님은 스탯 F급에 맞게 행동해 오지 않으셨습니까. S급 헌터들의 보호를 받기로 계약까지 하셨고요. 그런데 왜 갑자기 태도를 바꾸신 겁니까.”
수상쩍다는 눈빛들이었다. 내가 지금까지 대외적으로 보인 모습과는 완전히 다르긴 했다.
“말씀대로, 저는 스탯 F급. 엄밀하게는 비각성자와 다름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지금 이곳에 있는, 그리고 TV를 보는 대부분의 사람과 같은.
“처음 던전에 들어갔을 때에는 무척이나 두려웠었지요. 며칠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하면서 떨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그랬었다. 나는 정말로 평범한 F급이었으니까. 심지어 부상자도 있었던 공략이었다. 몬스터가 몰려들고 괴성과 비명과 짙은 피비린내가 퍼져 나가고. 경력자가 여럿 있어 실패할 확률은 거의 없는 공략이었지만 그럼에도 충격적이었다.
괜히 하급 헌터의 상당수가 첫 공략 후 헌터 일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무서웠기에 오히려 더 포기할 수가 없었다. 동생도 같은 일을 하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여러분께서도 아시다시피, 여러 가지 일이 있었습니다.”
알려진 것만 해도 많았다.
“바뀌었지요, 당연히. 변하지 않을 수가 없었지요.”
고작해야 반년 정도가 아니다. 각성하고, 5년이다.
“특히 가장 최근에는 무척이나 힘들었습니다. 저 혼자 상급 헌터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쳤어야 했지요. 밝히지는 않았지만 심각한 부상을 입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목숨을 지켰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건강검진이 혹시 그 부상 때문이었냐는 질문이 들어왔다.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저는 분명 약합니다. 스탯상으로는요. 그러나 저는 이 자리에 있습니다. 제 스탯이 F급이기에 쉽게 노려졌지요. 훔치면 얌전히 들려가는 의지 없는 귀중품 정도로 여겨졌을 겁니다.”
아무도 내 반항은 고려하지 않았다. 그걸 유용하게 써먹기도 했다. 이후로도 그럴 수도 있겠지만, 채터박스는 나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했으며 그것을 자신의 추종자들에게 전해주었을 것이다. 황림 또한 마찬가지다. 클로이도, 그리고 일본 모임에 참석했던 몇몇 헌터도.
“그러니 보여 드리려고 합니다. F급도 밟으면 꿈틀하다 못해 물기도 한다는 사실을요. F급도 변할 수 있습니다. 아니, 성장할 수 있습니다.”
F급이기에 욕을 먹었다. 동시에 F급이기에 동질감을 얻을 수도 있다. 평범한 사람이 천재들과 겨루는 거, 그리고 성과를 얻는 거. 누구나 다 좋아하잖아.
“S급들 사이에서 버텨내는 F급. 좋은 기회이지 않습니까. 제 스탯은 분명 F지만 능력이 S급에 견줄 수 있다면 자연히 더 안전해지겠지요. 적어도 S급을 납치시도 하는 케이스는 여태껏 없었으니 말입니다.”
A급만 되어도 당사자는 웬만해선 안전하지. 가족이나 지인이 걱정되어 정보를 보호할 뿐이다.
“반대로 변변치 못한 결과가 나온다면 더 위험해지는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계속 얌전히 보호받아야겠지요. 전과 다름없이 말입니다. 다시 말해 제게는 손해 갈 일이 없는 도전입니다.”
더 위험해질 일 따윈 없다. 이미 F잖아. 바닥. 바닥의 유일한 장점은 올라갈 길만 남아 있다는 것이지.
“자신의 등급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사실은 잘 압니다. 특히 하급일수록 계단은 더욱 가파르고 험하기만 하지요.”
이 세상 누구보다도 더, 뼈저리게 알고 있다.
“하지만 오를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반드시 올라야 한다는 것 또한 아니다. 나는, 우리는 그저 보통일 뿐이다. 다만 길이 아예 없는 것과 올라간 누군가가 있는 것은 전혀 다르니까. 바늘귀보다 작다 하더라도 가능성은 존재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니 열심히 발버둥 쳐 보겠습니다.”
내 개인적인 욕심이 크지만 나쁠 건 없잖아. 응원 부탁드린다며 시원하게 미소 지었다. 이런저런 이유 그냥 다 잘라내도 S급들 사이의 F급, 재밌잖아. S급들만 드글거리는 것보다야 예외가 하나 끼는 게 더 볼만하지. 물론 잘 버텨 준다면 말이다.
파티에 대한 질문이 몇 가지 더 오갔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한유진의 참석은 더 트집 잡지 못했다. 조건 맞으면 넘겨준다고까지 했으니까.
이렇게 해도 역시 불만은 나올 것이다. 내가 망하길 바라는 사람들도 여럿이겠지. 그렇지만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회견장을 나섰다.
적어도 이번에는, 기회는 얻었다.
“형!”
대기실로 돌아가자 문 앞에까지 나와 있던 유현이가 나를 맞이했다. 동시에 잠이 쏟아졌다. 유현이가 나를 받쳐 주고, 예림이와 현아 씨, 노아 씨, 성현제가 무어라 말을 해왔지만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그냥 그대로 잠들었다.
그래도 괜찮았으니까. 이 속에서는 무방비하게 편히 잠들어도 나를 지켜 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