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545
543화 델로우즈(1)
쿵!
호텔에 울리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잠에서 깼다. 쓸데없이 넓은 침대를 허우적거리며 빠져나와 슬리퍼를 신자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파티 참석자 간에 작은 다툼이 있었습니다.]헌터들끼리 싸웠지만 별문제 없이 끝났으니 걱정 말라는 방송이었다. S급들을 한곳에 모아 놓았는데 아무 일 없는 게 더 신기하지. 우리도 다 같이 처음 던전에 갔을 때 싸움박질하려 했었었는데. 노아 씨는 예림이랑 만나자마자 싸웠고, 유현이랑도 만나자마자 싸우기도 했었다.
“그래도 우리 애들은 흐아암, 양반이지.”
연신 하품을 하며 슬리퍼를 끌고 욕실로 향했다.
‘방송 끄는 거 깜박했다간 큰일 날지도.’
오늘 10시 이후론 계속 켜 놓을 수 있으니까 정신 놓고 있다간 방송 불가 내용이 나가 버릴 것이다. 알아서 막아 주려나? 그래도 혹시 모르니 자기 전엔 꼭 꺼야지. 아침에 일어나서 멍하게 샤워라도 한다면… 으, 끔찍해라.
씻고 나서 거울을 보며 잠시 고민에 빠졌다. 화장을… 해야 하나. 내가 직접 해 본 적은 없는데. 그래도 어젯밤에는 예림이가 챙겨 준 팩을 했다.
‘피부는 깨끗하긴 한데.’
유현이와 예림이는 화장 같은 거 안 해도 괜찮았지만 난 방송 나갈 때마다 해서……. 심지어 오늘부터는 다른 참석자들과 경쟁하는 개인 방송이었다. 일단 커버 살짝 해 준다는 선크림을 바르고, 예림이가 준 립밤을 들고 잠시간 노려보았다. 요샌 남녀노소 입술이 건조하면 다 쓴다고는 하던데. 날도 추워졌고, 어디까지나 입술 건강을 위해서다.
[뉴욕 헌터 협회 건물 앞에 시위대가 모여 있습니다.]욕실을 나와 TV를 틀자 ‘헌터 아웃!’ 피켓을 높게 든 사람들이 나왔다. 백인들의 파티라는 말도 들렸다. 이내 장면이 바뀌며.
“으.”
나와 채터박스가 나왔다. 그러니까 차를 같이 타고 왔던 그때의 동영상이. 아니, 왜 저걸 주구장창 틀어 대냐. 며칠 안 되긴 했는데… 그래도 말이야. 채널을 바꾸자 미국 드라마 같은 게 나왔다. 이 시간이면 정규 방송은 아닐 거고.
[내일이 결승전인데 쿼터백이 각성을 하다니!!]등장인물이 절규했다. 저런, 다른 채널에서는 어린이 대상으로 던전 브레이크 교육을 하고 있었다.
[안녕, 무서운 몬스터야! 넌 뭘 좋아하니?] [난 시끄럽게 소리치는 아이들을 좋아해! 못된 아이 냄새도 아주 잘 맡지!]휴대폰에 들어온 메시지와 메일도 확인했다. 밤사이 별다른 일은 없었던 모양이었다. 하민이 놈 금동이 사진 좀 그만 보내라. 확 차단해 버릴까 보다.
다른 S급 헌터들은 자유롭게 움직였지만 채터박스의 보호가 필요한 나는 일정에 따라야만 했다. 아침 식사 시간은 오전 7시부터 9시, 룸서비스 가능. 객실에 머무는 것보다는 조금이라도 외부 상황을 살피는 편이 낫기에 식당으로 향했다.
[ㅇㅇ, 지금 내려가.]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며 동생에게 답장했다. 잠시 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안녕, 내 사랑.”
…왜 바깥에는 닫기 버튼이 없는 거지. 엘리베이터가 한 대도 아니니 다른 걸 타고 가자고 하고 못 본 척 무시했다. 황림 놈이 발을 내밀어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을 막았다. 멀쩡한 버튼 놔두고 왜 저래.
“SF의 S는 SE-”
“죽고 싶지 진짜? 여기 나 혼자 온 줄 아냐. 그리고 엘리베이터는 공용이다. 호텔 전세 낸 거 아니면 발 치워.”
“곁으로 오라는 거구나.”
“꺼지라는 거랍니다.”
황림이 스윽 밖으로 나와 내 앞에 섰다. 주제에 단정한 정장 차림을 하고 있었다. 능글거리는 헛소리가 아니었으면 못 알아봤을 정도로 마지막 모습과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네가 왜 여기서 튀어나와?”
“미안, 전화 안 받았다고 삐졌구나. 입술 예쁘네, 뭐 발랐어?”
대답 대신 반대쪽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아니, 누르려고 했다. 내 손이 버튼에 닫기 직전 황림이 손목을 낚아채 내 몸을 자신 쪽으로 빙글 돌렸다. 경비원!
“여기 변태가 침입했어요!”
“나 상처받는다.”
“구이 반 냉동 반으로 허드슨 강에 내던져지기 전에 꺼지시지. 여긴 대체 왜 온 거냐.”
“아르바이트야.”
“장사 망했구나. 축하한다. 서빙? 청소?”
“요즘 최고 대세인 F급님의 경호.”
황림 놈이 한쪽 눈을 깜빡하며 말했다. 방금 뭐라고···….
“채널 채터박스에서 구인 중이더라고.”
“······.”
“농담이었는데.”
더럽게 소름 끼치는 농담이었다. 이 새끼랑 24시간 붙어 다니느니 내가 강에 뛰어들고 만다. 황림 놈이 내 손목을 놓고 명함을 꺼내 들었다.
“여기 우리 거래처 중 하나야. 요 근처에 내 맨션 있는데 놀러 올래?”
“···됐고, 인형술사는.”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보고 싶지 않은 얼굴이었지만 그래도 마주쳤으니 확인할 건 확인해야지.
“아직 간섭해 오기 힘든 모양이더라. 너무 싫은 표정 짓지 마, 나도 금방 갈 거야. 자, 이거.”
황림이 새로운 명함을 내게 건넸다. 인벤토리에도 들어가는 거라면서.
“···뭔데.”
“진이 너한테 건 큰손들 모임.”
“뭐?”
“도~ 박~”
그··· 뭐? 아니, 그러니까.
“이런 파티에 내기 도박이 빠질 리 없잖아. 판 좀 벌이느라 바빴어.”
“···야, 이 개새끼야.”
“배당률 장난 아니고 묵직한 것도 걸려 있거든. 그러니 샤오진, 네 편이야.”
황림이 고개를 숙여 왔다. 그리고 속삭였다.
“자기 돈 걸린 것보다 확실한 같은 편은 없지.”
자본주의 세상이잖아. 그 속삭임을 들으며 명함을 내려다보았다. 전화번호 외엔 아무것도 없이 깨끗했다.
“던전 안에서의 일이야 어쩌지 못하지만 밖의 일은 부려 먹어.”
“그러다 망하면.”
“그땐 신경 쓸 필요 없어지잖아?”
황림의 눈이 가느스름한 미소를 머금었다. …이놈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지. 찝찝해하면서도 일단 명함을 챙겨 넣었다.
“내 편이 생기면 그 반대편인 적도 생길 텐데. 돈 걸리면 무섭다고.”
“괜찮아. 이쪽에서 해결 가능한 수준이라. 참고로 승률 제일 높은 헌터는 제우스 씨지.”
그럴 거라 생각은 했지만 살짝 빈정 상했다.
“제우스… 그, 혹시 내 동생… 파이어 어쩌고는 아니겠지……?”
떨리는 심정으로 물었다. 유현이는 봐줘라, 미국인들아!
“그 명칭 쓰고 있는 미국 헌터 이미 있어. 파이어맨, 파이어 소드, 플레임 윙, 샐러맨더 등등. S급은 물론이고 A, B급도 별명 가지는 경우가 많거든. 그리고 해연 길드장은 아직 해외 인지도는 낮은 편이니까.”
S급 결투 방송 덕분에 오히려 예림이가 더 유명하다고 했다. 유현이도 S급 많이 잡긴 했지만 싸우는 모습이 방송을 탄 적은 없었다. 성현제 또한 일반인들 사이에서가 아니라 미국 헌터들이 저렇게 부른다고 했다. …스킬 속성 때문이 아니라 바람둥이 이미지라 제우스인 거 아니냐.
“아무튼 도와주겠다면······.”
도움 받을 부분이 분명 있긴 있었다. 그렇잖아도 황림 놈에게 부탁하려고 했던 것이.
“파티 참석한 헌터들 정보. 최대한 많이.”
“부탁하실 줄 알고 있었지요.”
황림이 씨익 웃으며 USB 메모리를 내 손에 쥐어 주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정확하고 자세한 정보랍니다, dear.”
“···진짜?”
“단순 도박만이 아니라, S급 헌터 콧대 꺾어 놓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그러니 진이 혼자만 봐야 해요.”
그 말을 들으니 찝찝해졌다. OPEC 쪽인 건 아니겠지. 거기 악질 많다던데.
“헌터계에 악영향 줄 생각은 없다만.”
“이 파티가 열린 것만으로도 그 반대야. 벌써부터 난리도 아니잖아? 그래서 속 앓는 사람 많지. 심지어 미국 S급이 우승이라도 하면 완전히 끝이거든.”
하긴 그랬다간 완전히 미국의 영웅취급을 받으며 S급 헌터의 위상이 하늘을 뚫을 것이다. 미국 S급 헌터가 전 세계 최고! 하면서. 하지만 동양의, 한국의 스탯 F급이 S급들을 누른다면 지금 이 분위기를 엎진 못해도 숨구멍 정도는 생길 것이었다.
날 도와주려 할 만하네.
“…뭔가 많이 엮였구나.”
“세상이 원래 그렇지. 작은- 앗, 튀어야겠다!”
황림이 화들짝 몸을 피하기가 무섭게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그와 동시에.
콰가각!
시커먼 뱀 같은 것이 황림이 서 있던 바닥을 가르며 단숨에 뻗어 나간다. 이어 콰앙! 요란한 굉음과 함께 호텔 벽에 구멍이 났다. 구멍 옆으로 비켜 선 황림이 목덜미를 타고 흐르는 피를 손등으로 대충 닦아 냈다. 엘리베이터에서 나온 유현이가 서늘한 표정으로 군림자의 검을 거두었다. 피스가 내 앞을 막아서고 예림이가 나를 살펴보았다.
-크르르.
“아저씨, 괜찮아요?”
“어, 응.”
“진이 동생은 언제 봐도 살벌하다니까~. 아, 목 따가워.”
그럼 안녕, 하고 황림이 부서진 벽 너머로 몸을 날렸다. 쫓아가려는 유현이를 얼른 말렸다.
“나한테 정보 주려고 온 거야!”
조금도 해 끼치지 않았다는 말에 유현이가 한숨을 내쉬었다.
“형은, 형한테만 너무 허술해.”
“···아니, 근데 진짜로 저 새, 녀석은 적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니까. 지금은 말이야. 그래도 엘리베이터 안 부수고 잘 참았네.”
“섣불리 기척을 내면 형을 데리고 도망칠 수도 있으니까.”
“나한테 무슨 일 생기면 채터박스 책임이니 너무 걱정하지 마. 기분 풀자, 응?”
아침 먹으러 가자, 하며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식당은 한산했다. 나야 호텔을 벗어나기 힘들지만 다른 헌터들은 아니었다. 굳이 호텔에서 아침을 해결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었다. 나도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다면 뉴요커··· 들은 아침에 뭐 먹지. 근처에 유명한 거 있나. 커피와 신문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송 실장님은?”
“좀 피곤해서 방에서 룸서비스 드시겠대요. 호텔 밖으로 나갈 거면 반드시 연락 달라고 하셨어요.”
예림이가 어젯밤에 회의가 좀 길어졌다면서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송실장님이 고생 많으셨던 모양이구나. 한식도 있기에 그걸로 주문하고 시간을 확인했다. 오전 8시를 조금 넘겼다. 10시까지 두 시간.
‘10시 되자마자 바로 시작하는 건가?’
설명을 더 해 줘야 하는 거 아니냐. 제법 그럴듯하게 나온 아침을 먹고 있는데 헌터 하나가 잡지를 들고 다가왔다. 또 내 사진이 표지였다.
“S급 독환을-”
[아침 식사는 오전 9시에 끝납니다.]돌연 메시지창이 떴다.
[파티의 손님 여러분께서는 오전 10시까지 거버너스 섬으로 이동해 주십시오.]“거버너스 섬?”
“맨해튼 남쪽의 작은 섬이다. 원래는 관광지였지만 현재는 던전 브레이크 시 몬스터를 유인하는 장소로 사용되고 있지.”
아마도 미국인일 헌터가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몰려나온 몬스터를 빠르게 처리하지 못할 시 도심지에서 먼 곳으로 유도하기도 했다. 자칫했다간 욕먹기 딱 좋은 짓이라 대도시에서는 몬스터 유인장소를 미리 한 군데 이상 지정해 놓았다. 그런 장소에 심지어 섬이라면 S급들이 사고 좀 쳐도 괜찮다는 뜻이었다.
그럼 이번에는 던전 내가 아닌 건가. 메시지는 팔찌를 통해 보낸 거지 싶고.
[1위에게 알립니다.]그때 내게만 다시 메시지창이 나타났다.
[가장 빠르게 달리는 1위를 잡아 거버너스 섬에 도착한 참가자에게는 보상이 주어집니다. 이 메시지는 오전 9시 정각에 모든 참가자에게 전해집니다.]…뭐?
[1위가 잡히지 않고 무사히 거버너스 섬에 도착할 시 1위에게 보상이 주어집니다.]자리에서 일어났다. 채터박스 이 망할 놈이.
“형?”
“화장실 좀 갔다 올게. 오전 10시까지라고 했으니 바로 출발해야겠다.”
9시까지 10여 분. 최대한 태연하게 화장실을 찾아갔다. 유현이나 예림이가 보상을 받도록 해도 된다. 하지만 그렇게 쉬운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을뿐더러.
‘다른 헌터들이 가만히 있지 않겠지.’
자칫하다간 내 꼴도 말이 아니게 되고 도시도 엉망이 되고 말 것이다. 채터박스가 뭘 노리는지는 모르겠지만 도시에서 S급 헌터들이 날뛰는 일은 피해야 했다. 화장실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었다.
‘은신스킬만으로는 아슬아슬하지.’
재킷의 버프를 받는다고 해도 S급의 눈을 완전히 속이긴 힘들었다. 특히 성현제가 문제였다. 그 인간 분명 날 봐주려 들진 않을 테니까. 오히려 내 위치를 밝히고 난장판 되는 걸 즐길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니까.
[흰 꼬리 델로우즈(A)]아이템을 모두 착용하고 스킬을 사용했다.
“어? 고양이다.”
식당을 나온 박예림이 복도를 종종종 빠르게 걸어가는 고양이를 보고 중얼거렸다. 꼬리 끝이 하얀 고양이였다.
“아저씨 늦네. 그 섬까지 얼마나 걸리지? 한 시간이나 남았으니 아저씨랑 같이 구경하다가 가자.”
그때 박예림과 한유현, 피스의 눈앞으로 메시지창이 떴다.
[가장 빠르게 달리는 1위를 잡아 거버너스 섬에 도착한 참가자에게는 보상이 주어집니다.]1위, 보상. 한유현이 화장실을 향해 달려가고 박예림이 소리쳤다.
“아저씨! 나는 못 들어가는데!”
박예림이 발을 동동 구르는 사이 한유현이 밖으로 나왔다.
“없어.”
“뭐? 그사이에 누가 납치라도 한 거야?”
“그럴 리- 피스는.”
“여기, 어?”
피스도 사라지고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