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562
560화 안 되는 게 어딨어 (4)
– 크르르르르.
치켜 들리는 괴수의 머리에 태양이 가려졌다. 온갖 강력한 몬스터들을 상대해 온 헌터들이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S급 던전을 드나드는 헌터들이었지만 아직은 S급 이상의 몬스터와 마주칠 일이 거의 없었다. 심지어 저 몬스터는 일본에서 나타난 SS급 몬스터들과도 비교가 불가능했다.
저 하얀 괴수에 비한다면 SS급 몬스터가 중급은커녕 하급으로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이게…….”
누군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하지만 희미한 목소리가 조금 새다 말았다. 무기를 쥔 자들의 손에 힘이 꽈득 들어갔다. 이를 사리무는 소리도 들려왔다. 공기가 긴장으로 팽팽해지다 못해 날이 섰지만, 아무도 먼저 나서진 못했다.
각성 후, 이토록 스스로가 나약하게 느껴진 적이 또 있었을까.
던전이, 각성자가 나타난 지 고작 4년째였지만 여기 있는 헌터들은 자신의 강함에 이미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상태였다. 그런데 한순간 무력함이 덮쳐들었다.
더 강한 헌터에게 무참히 패배한다 해도 그래도 같은 헌터요, 인간이다. 하지만 저것은 완전히 달랐다. 똑같은 뱀, 큰 뱀 앞의 작은 뱀이 아니라 아예 보잘것없는 생쥐가 되어 버린 기분이었다. 이빨을 들이댄다 해도 단단한 비늘에 긁힌 자국 하나 낼 수 없는.
그 무거운 공기 속에서 성현제는 채팅창을 들여다보았다.
└ 도담아빠 진화했다!!!!!!!
└ 헌터토토 개박살나는 소리가 돌비 서라운드로 들린다
└ ㅝ임 뭐임??? 보스몹 나온거야??????
└ 한소장이야 한유진 변신함ㅋㅋㅋㅋㅋㅋㅋㅋ
└ 헌터들 왜 다 쫄았어? 몬스터치곤 그냥 왕고양이같은데ㅋㅋㅋ
└ 다른방 가서 반응봨ㅋㅋㅋㅋㅋㅋㅋ유진이라고 말하는거 다 필터링당해서 다들 답답해 죽어가ㅋㅋㅋㅋㅋㅋ
└ 노예방 최고
초월자의 위압감을 느끼지 못하는 시청자들은 태연하게 글을 쓰고 있었다. 델로우즈. 성현제의 머릿속에 일본 던전에서의 초월자가 떠올랐다.
– …아빠야? 진짜 아빠 맞아?
후다닥 성현제의 어깨에 숨듯이 달라붙은 한결이 말했다. 타인의 공격을 받지 않는 요정용이었지만 초월자 상대로는 달랐다. 격이 더 높은 상대 앞에서는 요정용종의 특성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한유진 군 외에 또 누가 있을까.”
성현제는 무심코 힘이 들어간 손을 천천히 펼쳤다. 온몸을 저릿하게 두들기는 기세에 웃음이 나올 것만 같았다.
└ 한유진 스탯 그대로다!!!!!!!!!!!!!!!!
└ ㅋㅋㅋㅋㅋ뭐야 개판이 아니라 고양이판이넼ㅋㅋㅋㅋㅋㅋ
└ ㄹㅇ종이호랑이
아쉽게도 여기서 끝이었지만. 한유진의 스탯은 여전히 F급이며 노예는 공격을 할 수 없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이미 자리를 박찼을 것이다.
└ 한소장님 공동 우승하게 만들거라고 전해달래요.
└ 다끌고갈 필요있나 난 에블린 의견에 동의함
└ 같이 잘될수 있음 힘합치는게 좋지 트롤러는 짜증나지만
– 아빠 도와줘야 해, 아빠!
한결이 성현제의 어깨를 양 앞발로 파닥파닥 두들겼다.
– 나는 말 못 하는데! 저기, 있잖아, 저기…….
“잘 안 들리는군.”
– 결이는, 이제 말 못 하니까……!
요정용이 분해하면서 성현제의 옷자락을 잡아 비틀었다. 커다란 금색 눈이 살짝 젖어들었다. 도와주려고 한 거였는데 오히려 방해해 버리고, 정작 도움이 필요할 때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성현제가 손가락 끝으로 한결의 머리를 톡톡 두드리듯 쓰다듬었다.
“내게 부탁은 할 수 있지.”
– …도와줄 거야?
“왜 나를 악당으로 생각하는 것일까.”
이렇게나 친절하건만. 아쉬워하는 척하며 성현제가 화단의 작은 돌을 주워들었다. 그리곤 손가락 끝으로 탁, 튕겼다. 자그마한 돌멩이가 문현아의 손등을 정확하게 두들겼다. 문현아가 흠칫 성현제를 돌아보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치고 성현제가 눈웃음을 머금으며 손짓했다. 자신의 헐렁한 신발을 가리키고 하트를 만들어 보인다. 정보 차단으로 몬스터를 가리키는 것까지는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문현아는 눈치챘다. 일본 던전에서 지금과 비슷한 기운을 느껴 본 적 있다는 사실이, 퍼뜩 떠올랐다. 사슬을 막아내던 핫핑크 털실. 화장실 간다며 사라진 한유진.
“…시간이 없어!”
문현아가 크게 소리쳤다. 헌터들이 화들짝 그녀를 바라보았다.
“몬스터는 아직 움직이지 않고 있다! 우리를 보지 못했을 리 없는데도! 무언가 제약이 있는 거겠지. 그사이에 준비해야 해!”
“준비? 차라리 도망치는 게 낫지 않나.”
“젠장, 그냥 자산가끼리 승리하게 두라고!”
도둑들 중 몇이 금방이라도 달아날 듯 슬며시 뒤로 물러난다. 자산가들의 얼굴 가득 불만이 어렸다. 지금이라도 자기들끼리 게임을 끝낼 수 있다는 자산가들의 말에 경찰들의 기세 또한 흉흉해졌다.
그때 노예가 입을 열었다.
“노예의 공동 우승조건, 몬스터 등장 후 한 시간 이상 생존.”
목소리는 앳되고 가늘었지만 이상하리만치 묵직하게 느껴졌다. 문현아가 재빠르게 말했다.
“무법자는 세성 길드장이 아니다! 그런데도 세성 길드장이 여태껏 얌전했지, 그럴 인간이 아닌데도!”
“헉! 그럼 진짜 노예가 저희 길드장님이에요? 어쩌다가! …으.”
강소영이 맞장구를 치고 그렇잖아도 노예로부터 떨어져 있던 에블린이 조금 더 거리를 벌렸다. 헌터들이 놀란 눈으로 노예를 바라보았다. 성현제는 미소 지어 답하곤 제 발로 광장 중앙으로 걸어 들어갔다.
노예의 말이 거짓인지 사실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급박한 상황에 세성 길드장이라는 위치는 크게 다가왔다. 게다가 저 조건이 사실이라면 노예 중 하나가 우승을 포기하고 한유진의 편을 들며 분란을 일으킬 만한 말을 한 것도 이해가 되었다. 몬스터가 나타날 때까지 시간을 끌어야 했으니.
사람들이 흔들리는 틈을 놓치지 않고.
“에블린!”
문현아가 외쳤다. 그녀의 부름에 에블린이 눈을 깜박했다.
“끝까지 이름은 부르지 않을 줄 알았는데. 자산가 분들, 금화 꺼내세요. 여기 있는 모든 경찰과 도둑을 고용합시다.”
혼자서는 안 된다. 최대한 많은 수가 뭉쳐야한다. 개인적인 성향이 강하다 해도 던전을 드나들며 싸워 나가는 헌터들이다. 전투에 있어 자신들의 불리함이 확실시된 이상, 움직임은 빨랐다. 자산가들이 탈락을 면할 금화만을 남기고 신속히 도둑과 경찰을 고용했다. 금빛 동전이 반짝반짝 빛을 뿌리며 여기저기로 허공을 가로지른다. 동시에 먼저 광장으로 들어 간 에블린이 자산가들에게 들어올 수 있도록 허가를 해주었다.
“반격만 가능한 자산가는 후열, 노예 앞으로! 피격 후 성향에 따라 움직일 것! 경찰은 전열, 도둑은 분산, 은신을 활용해 보조! 리에트, 강소영 헌터!”
“OK, OK~”
문현아의 부름에 리에트가 앞으로 나서며 다시 전룡화했다. 순백의 몬스터에 비하면 자그마한 거북이가 광장 앞을 막아섰다. 강소영이 리에트의 꼬리 위로 뛰어올라 등껍질을 타고 달렸다. 순식간에 거북이 머리 위에 안착해서는 창을 꺼내 들었다.
“준비됐습니다!”
“방어계 헌터, 거북이 등 위로!”
– 용이라니까~
“자산가 중 방어계는 노예 뒤쪽으로!”
헌터들이 각자 자리를 잡았다. 단 한 번도 다른 S급과 손 맞춰 본 적 없는 자들이 대다수였다. 그럼에도 경력은 경력인지라 생각보다 많이 어색하지는 않았다. 막상 전투에 돌입하면 마구 어긋나 버릴 가능성이 컸지만, 그래도.
└ s급들이 협력하는 진귀한 광경
└ 울 현느님이 멱살잡고 공동우승하게 해준다는데 말이 마나!!
└ 어떻게든 되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준비가 모두 끝났다.
[자산가가 노예를 지키기 시작했습니다!] [남은 시간 1:00:00]모두의 눈앞에 메시지 창이 나타났다. 한 시간. 이대로 버티기만 하면 공동 우승이 가능했다.
– 크르륵.
긴장감 어린 시선들 속에서 새하얀 몬스터가 이를 드러냈다. 불만스럽게 꼬리를 휙, 젓더니 몬스터의 입 앞에 빛이 모인다. 이글거리는 열기가 커다랗게 뭉쳐지고 그대로.
콰과과광!!
빌딩을 향해 쏘아졌다. 연기가 치솟고 매캐하게 타는 냄새와 함께 반파당한 빌딩이 우지직, 무너져 내렸다. 쏟아지는 유리창들이 챙강챙강 요란한 소리를 울렸다. 몬스터는 S급 헌터가 전력을 다해야 할 공격을 퍼붓고도 아무렇지 않게 귀를 쫑긋 움직였다. 마치 재채기라도 한번 한 듯한 태도였다. 그것을 본 헌터들이 무심코 마른침을 삼켰다.
“어? 여기 다 모여 있었네요? 저 몬스터는 뭐예요?”
그때 활달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리에트 머리 위의 강소영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예림아? 송 실장님! 두 사람은 그대로네요?”
박예림이 반갑게 손을 흔들고 송태원이 고개를 약간 숙여 인사했다.
– 캬아아아아!
‘아아아악, 내 발바닥! 손바닥! 아니, 지금은 발바닥!’
나무가 발바닥을 찔렀다. 바위며 자동차도 찔러댔다. 마치 쏟아 놓은 블록장난감을 밟은 듯했다. 그나마 은혜가 있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더라면 네발이 온통 피투성이가 되어 버렸을 것이다. 지금도 긁히긴 많이 긁혔다.
몸을 길게 펴며 최대한 평탄한 땅을 밟으려 애썼다.
‘스탯은 F급 그대로니 거대 몸뚱이 가누기가 힘들구나…….’
진짜 초월자 델로우즈라면 차나 나무는 물론이요 빌딩까지 와그작 밟아 무너뜨렸겠지. 하지만 나는 덩치만 클 뿐이었다. 그러니 아무 헌터나 와서 툭 치면 바로 픽 쓰러지겠지만.
‘델로우즈로 완벽하게 변신 가능.’
최소한 겉으로 만큼은 초월자로 느껴질 것이다. 감히 덤벼들 엄두도 내지 못할 그 막강한 존재감으로.
└ ㅎㅇㅈ 뭐야?정체가 마수였음???
└ 아닠ㅋㅋㅋ마수아빠 진짜 마수나빠냐곸ㅋㅋㅋㅋ이제보니 피스 친아빠일수도 있겠어
└ 한유진 히어로냐고ㅠㅜㅋㅋㅋㅋ호다닥 변신함ㅋㅋㅋㅋ
└ └○┐상상도 못한 정체..!!!!
– 크르르르르.
뭐야, 말이 안 나와. 스킬 정보가 노출될 수도 있다는 메시지 창에 오케이 했더니 시청자들도 델로우즈의 모습을 그대로 보고 있는 모양이었다. 위압감이야 느껴지지 않겠지만.
– 캬르륵, 크륵.
└ 어 자막뜬다
방송으로는 내 말이 자막으로 나가는 모양이었다.
└ 무슨 상황인지 이해되는 사람? 난 모르겠지만 ㅎㅇㅈ다해벅어라
└뭐야 ㅎㅇㅈF급 아니었어..?
[여러분, 이 스킬은 일명 종이 호랑이로 지금 제 스탯은 F급 그대로입니다! 발바닥 엄청 아파요! 아, 누가 이런 데다 오토바이 버려 놨어.]└ 한소장이욬ㅋㅋㅋㅋㅋㅋㅋ
└ 한유진 왕 크니까 왕 귀엽다!!
└ 짱 센 유진이가 울부지져따
└ 거대 흰고양이!!!! 고양이가 세상을 지배한다!!!!!!
[고양이가 아니라 무척이나 위험한 마수입니다. 진짜로요.]초월자라고. 하지만 채팅창은 고양이로 가득 찼다. 델로우즈가 고양이였긴 하지만 용 잡아먹고 초월자로 성장했다고! 그냥 고양이가 아니야! 애초에 아이템 이름도 살쾡이인데.
└ 이거봐 조별과제가 이래서 적폐인거야 멀쩡한 사람도 고양이가 돼버렸잖아
└ 한유진 분양 받습니다 연락 주세요
└ 헉 유진이 이 상태면 피스랑 대화 가능??? 빨리빨리 피스 어딨어 고영유진이랑 피스랑 야옹거리는거 봐야 해ㅠㅠㅠㅜㅜㅜㅠㅜ
아니, 저 지금 크르릉거리고 있는데요. 야옹거린 적 없다고.
[여러분.]채팅창을 바라보며 말했다.
[노예에게는 정보차단이 되지 않습니다.]그리고 성현제에게는 아직 말할 기회가 남아 있었다.
[전해 주세요, 제가 공동 우승을 원하고 있다는 사실을.]성현제가 먼저 말하고 결이에게 기회가 남은 거였다면 더 좋았을 텐데. 하지만 설마 여기서 망치려고 들까. 우리는 같은 배를 타고 있다. 성현제라면 헌터들의 이미지 관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나보다 더 잘 알고도 있을 것이고.
└ ㄴㅇ채팅창 복작복작해ㅋㅋㅋㅋㅋ
└ 원래 뭉치는데는 공공의 적이 최고긴함 s급들은 뭉칠필요가 없을만큼 강하니까 문제였지
그 말 그대로다. 혼자서 할 만한데 보상까지 걸려있다? 당연히 뭐 하러 협력하나,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 근데 이러면 한소장은 공동 우승 못하는거 아냐?
└ 막판에 못끼어드나 화장실 다녀왔습니다~ 하고
└ 저 아직 포기 안했습니다 한유진 할 수 있다 내 10만원을 지켜줘!!!
음, 한 십 분쯤 남기고서 슬쩍 갈 수도 있긴 하겠지만. 무시무시한 몬스터가 나타나고 다들 힘 합치는 가운데 빠져 있던 사람이 뒤늦게 콩고물 주워 먹으려 든다면… 반발하는 자들이 나올 것이다. 다 끝난 후에 사실은 제가! 한다고 해도 말이야. 막판에 망칠 수는 없지. 애초에 도중 참가가 가능한 건지도 알 수 없고.
[자산가가 노예를 지키기 시작했습니다!] [남은 시간 1:00:00]그때 메시지 창이 나타났다. 다행히 무사히 뭉쳤구나. 한 시간이나 버텨야 하니 간간이 위협도 해주는 게 좋을 텐데 내 스탯이…….
“형.”
– …크릉?
유현이 목소리가 들려왔다. 광장의 사람들의 반대쪽, 내 몸에 가려져 그들이 볼 수 없는 방향에서. 근데 어디 있지.
“여기야.”
내 귀 근처를 만지는 손길이 느껴졌다. 고개를 약간 틀자 동생의 모습이 보였다.
– 캬응.
“뭐 하는 거야, 혼자 떨어져 나와선.”
유현이가 눈썹을 조금 기울이며 말했다. 이어 피스도 다가와 내 옆구리 털에 푹 파묻혀 얼굴을 비볐다.
“노예 지키는 건 시작되었는데 왜 형만 여기 있어.”
동생이 불만스럽게 말했다.
“말이 다르잖아. 가서 막을까?”
아니, 야. 잠깐만. 말을 못 하니 답답하네. 다행이 유현이는 광장으로 향하는 대신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형이 뭘 하려는 건지는 알겠지만…….”
역시 내 동생이다! 무심코 혀를 내밀어 핥으려다가 멈췄다. 나는 고양이도 개도 아니라고.
“받은 게 있으니까 협력할게.”
못마땅해하면서도 유현이가 내 입 쪽으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