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568
566화 뒤쪽의 목적 (2)
그들의 세상은 좁고도 넓었다. 근원에게 배제된 패륜아들을 위한 공간은 고작해야 작은 나라 정도의 크기였다. 그 공간은 다시 다섯 개로 나뉘었다.
존재하는 근원은 모두 다섯. 그에 따라 각 근원을 담당하는 다섯 개의 구역. 하지만 첫 번째 근원은 어린 혼돈이 홀로 맞서고 있기에 첫 번째 구역은 아무도 머물지 않은 채 창고 정도로 이용되고 있었다.
신입에게 배정된 구역은 마지막, 다섯 번째였다. 각 구역의 휴게실, 관리실 등의 공용 공간을 제외한 나머지 공간은 패륜아들에게 주어졌다. 각자가 가질 수 있는 공간은 그럭저럭 너른 집 정도의 크기였다. 한 세계를, 행성을 쥐로 흔들던 초월자들에게는 초라하기 그지없는 수준이었지만 주인의 능력에 따라 공간은 끝없이 확장되곤 했다.
신입은 최근에 자신의 집을 한유진의 집과 비슷하게 꾸몄다. 너른 정원이 있는 주택. 정원에는 크리스마스트리를 세우고 하얗게 눈이 내리게 하였다. 거실에 소파와 테이블을 두고 커다란 TV도 설치했다. 침실과 주방, 서재, 욕실. 모두 평범해 보였지만 가장 안쪽 방은 달랐다.
가장 안쪽 방에는 수많은 작은 탑이 세워져 있었다. 바닥에도, 벽에도, 천장에도. 그 하나하나가 신입이 확장한 유사 던전 공간이었다.
그중에서도 노란색 꽃과 파란색 구름이 피어난 탑은 요즘 신입이 가장 오래 머무는 곳이었다.
“첫째 저 녀석은 제 몫부터 챙겨야 해.”
어린 혼돈이 못마땅하게 혀를 쯧쯧 찼다. 그의 앞에는 커다란 스크린이 둥둥 떠 있었다. 폭포가 흐르는 기암절벽, 무성한 숲과는 어울리지 않는 반투명한 스크린에서 영상이 재생되었다. 채널 채터박스.
“하지만 허니 편이 늘어나는 거잖아요.”
신입이 늘어진 귀를 들썩거리며 말했다.
“저런 건 보통 좋은 일이라고요. 세상을 지키는 데 가장 큰 걸림돌 중 하나가 내분이거든요! 저희가 아무리 노력해도 꼭 자기 이득을 먼저 챙기는 사람들이 나와요!”
심지어 확실하게 구해질 것이라 생각한 세상이 결국 근원에게 삼켜지고 만 적도 있었다. 그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마법사가 그를 질투한 무리들의 함정에 빠져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었다. 마법사를 따르던 이들은 함정을 만든 이들을 공격했고 길고 긴 싸움 동안 관리되지 못한 미궁이 줄줄이 터져 나가며 세상은 멸망하고 말았다.
“허니 동네 말로 다 된 밥에 재 뿌리기라니까요! 아무리 우리가 자세한 이야기는 해주기 힘들다고 해도 말이에요. 몬스터라는 확실한 적이 있는데! 그런데도 걸핏하면 자기들끼리 싸워요. 아니면 반대로 몇몇 강한 사람에게 다 떠넘겨 버리기도 하고요. …제 고향에서처럼요.”
신입이 느리게 눈을 깜박였다. 만약 그의 곁에 다른 누군가가 있었더라면. 소중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이 존재하였더라면. 그럼 초승달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끝까지 지키려 했었을까.
이미 끝나 버린 이야기였지만 만약에,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욕심이 있으니까 말이다. 다양한 욕심 중에서 보통 가장 우선시되는 것은 자기 자신을 위한 욕구지. 살아가면서 더없이 소중한 것이 생겨날 수도 있겠지만, 그 전에 내가 있어야만 한다.”
“하지만 자기 욕심 챙기다가 세상 망하면 자기도 죽는 거잖아요.”
“농사 지을 종자까지 죄다 뱃속에 밀어 넣는 멍청이야 어딜 가도 있으니. 스스로를 챙기는 욕심 자체가 잘못된 건 아니라는 뜻이다. 오히려 필요하고 당연한 욕심이야. 세상에 온갖 좋은 것이 다 있어도 내가 없으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토끼 너도.”
혼돈의 붉은 눈이 신입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신입의 귀가 쫑긋 떨렸다. 어린 혼돈은 신입의 과거를 자세히 모를 것임에도, 마치 네가 너 자신을 먼저 챙겼더라면 네 세상은 아직 무사하였을 것이라 말하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세상 그 무엇보다 자기 자신이 가장 중하다. 이 모든 세상은 결국 내가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들이니.”
“…자기 자신을 소중히 여기라고 말들은 하지만요.”
“이건 위로도 뭣도 아닌 단순한 사실이야. 스스로를 아끼고 사랑하든 개똥밭에 굴리든 변하지 않는 진실이다.”
세상 가장 위에 있든 가장 아래에 있든.
[더 많은 헌터의 우승을 위해 자신의 우승을 포기한 한유진 헌터! 다시 한번 보실까요.]그때 스크린에서 광장을 벗어나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한유진의 모습이 비춰졌다. 담담하게 말하던 어린 혼돈이 미간을 확 찌푸렸다.
“하여간 첫째 저 녀석은! 저놈은 버릇부터가 잘못되어 있어. 보나마나 어릴 때부터 저 꼴이었을 거다.”
“타고났다고요?”
“타고나긴 뭘 타고나.”
“왜요, 원래부터 착한 사람들 있잖아요. 다른 사람을 위해 노력하고, 훌륭하다고 칭송받는. 심지어 목숨을 걸기도 하고요.”
신입이 혼돈의 눈치를 살살 살피며 말했다. 신입 또한 많은 사람을 위해 희생했다. 덕분에 많은 이가 풍요롭게 살았었다.
“정말로 해야 하겠다는, 그런 결심이 서는 때가 있다.”
TV 채널을 돌리며 어린 혼돈이 말을 이었다.
“등 떠밀려서도 아니고, 어쩔 수 없어서도 아닌. 그런 순간이 있어. 그 순간에는 희생이라는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 그저 해야 할 일을 할 뿐인 것이지. 타인을 돕기 이전에, 자기 자신이 원하는 일을.”
“…허니도 그런 것일 수도 있죠.”
신입은 분명, 아니었지만. 그저 시키는 대로 따랐을 뿐이었지만.
“이번에는 그래도 둘째가 챙겨 줬고, 제 몫 받아먹긴 했다만. 첫째는.”
채널을 돌려도 채터박스의 파티가 화제였다. 온 세상이 떠들어대고 있었다.
“가끔 보면 스스로를 챙기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어린 혼돈이 입을 다물었다. 신입이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튼 저 광대 놈은 괜찮은 거냐. 저런 쪽은 잘 모른다만 첫째네 세계에 너무 깊이 파고드는 듯한데.”
“괜찮아요. 당연히 철저히 제약을 뒀거든요!”
신입이 자신 있게 설명했다.
“허니 세상에 알려지는 이름은 ‘채터박스’예요. 초월자 기 오스 사누스가 아니라요. 채터박스는 초월자에서 분리된 존재임을 확실히 해두고 허니 세상에 들어간 거라 기 오스 사누스의 영향은 전혀 없죠! 아예 신분증이 다른 셈이에요. 사진도 다르고 이름도 다르고 생년월일과 사는 곳도 다른. 그러니 채터박스의 신분증을 들고 초월자로서 허니 세상에 들어가진 못하죠!”
채터박스가 아무리 유명해진다 해도 초월자인 미로의 마법사와는 관계가 없다. 걱정 마시라며 장담하는 신입을 어린 혼돈이 조금 미심쩍게 바라보았다.
“문제없다니 다행이다만.”
“혼돈 님도 이번 기회에 배워 보시─”
“채팅인가는 아직 못 하는 거냐.”
“단순한 구경을 넘어서 간섭까지 하는 건 힘들다니까요. 채터박스처럼 허니 세상 계약자를 구해야 해요. 그리고 협의도 거치고, 초월자와 관계없는 새 신분도 만들고.”
신입이 이것도 해야 하고 저것도 해야 한다며 줄줄이 말을 늘어놓았다. 어린 혼돈은 안 들리는 척했다.
딸랑.
“대장장이 씨!”
어디선가 종소리가 울리고 신입이 반색하며 허공에서 문을 열었다. 뻥 뚫린 문구멍 너머로 대장간의 모습이 들여다보였다. 유명우가 신입의 공간으로 자연스럽게 넘어왔다.
“안녕하십니까, 어르신.”
혼돈에게 먼저 공손히 인사한 유명우가 신입에게도 고개를 꾸벅 숙였다. 신입이 활짝 웃으며 손뼉을 쳤다.
“차를 줄까요? 과자는요? 촉수는 어때요? 제가 특별히 신경 써서 골라 봤어요! 세 번째 세계의 이끼바위가 최근에 꽤 괜찮은 촉수제작 공식을 만들어 냈거든요. 별로 안 징그러워요! 아마도? 허니가 좋아하는 향이나 색을 넣어 보는 건 어때요? 아니면 식물형처럼 만들어 보는 거예요! 통계적으로 허니 세상 사람들은 식물 줄기에는 큰 거부감이 없더라고요! 먹기도 많이 먹고요. 칡이나 고구마나 포도!”
“연사 가능하도록 탄창에 마나를 분리 저장하는 게 까다롭더군요. 같은 성질의 마나는 기본적으로 뭉치려는 성향이 강하잖아요.”
유명우는 신입의 말을 적당히 흘려들으며 권총을 꺼내 보였다.
“다과는 괜찮습니다.”
“아, 연사는 원래 어려워요. 총알 아이템을 따로 만든다면 모를까, 순수한 마력탄은 대장장이 씨 말대로 섞여 버리니까요. 허니 총도 S급이지만 마력탄 분리 장전은 적용되지 않았을 걸요? 더 큰 무기로 공간을 멀찍이 떨어뜨려 놓는 것부터 시작하세요! 그리고 나무 선배 촉수 샘플로 가져다 보여 드릴까요?”
“사양하겠습니다. 식물형 몬스터의 마석으로 싹을 틔워내는 연습은 계속 하고 있는데 쉽지 않더군요.”
“그래도 공간 구성 기초를 다지는 데에는 그만한 게 없어요. 마석의 마나회로를 단 한 가닥도 놓치지 말고 잘 따라가 보세요. 그리고 허니 말이에요! 이번에 폭탄 많이 터뜨렸는데 대장장이 씨 것도 있어요?”
유명우가 고개를 저었다.
“이번에 사용한 것은 일본에서 얻어 온 일반 폭탄일 겁니다.”
“다행이네요! 조심해야 해요. 던전에서 나오는 현대식 무기 성능이 너무 좋아지면 허니 세상에서 반발이 클 가능성이 높거든요. 무기 판매하는 사람들 세력이 크다고요. 그러니 꼭! 몬스터 대상으로만 효과가 크도록 만들어 주세요.”
“걱정 마세요. 전차나 전투기는 아직 만들 엄두도 못 내고 총기도 대형화기류는 상급 헌터의 마력이 아니고선 현대무기보단 못하니까요.”
게다가 소형 총기는 비던전산보다 훨씬 비싸다. 그러니 헌터가 아닌 FF급 각성자도 던전 브레이크 대비용으로 한 자루 정도는 챙겨둘 수 있겠지만 평소에는 여전히 평범한 총기류를 사용할 것이다.
신입과 유명우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길 얼마쯤, 어린 혼돈이 불쑥 말했다.
“아까부터 뭐가 자꾸 팔락거리고 있다만.”
“아 그거요…….”
신입이 귀찮아하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채터박스의 게임 하나가 끝났잖아요. 그래서 부르는 걸 거예요. 별일 없었는데도.”
황금대장간과 연결된 문구멍이 다시금 생겨났다. 아직 유명우의 능력으로는 신입의 도움 없이 이곳에 머물 수 없었다.
“금방 갔다 올게요!”
유명우를 돌려보내고 어린 혼돈을 위한 다과상을 만들어 준 뒤 신입이 공간을 떠나갔다. 자신의 집으로 나와서는 공용 공간 쪽으로 훌쩍 이동했다. 금속성 금빛 둥근 샘 위로 꽃봉오리 같은 의자가 떠다니는 사이로 사슴과 나무가 신입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슴이 손을 뻗어 자신의 반쯤 회복된 뿔을 매만졌다.
“쪽팔려서 방 밖으로 나오지도 못했다니까. 내 뿔은 감출 수도 없는데 흉하게 밑동만 남기다니, 너무했다고.”
힘의 근원이자 가장 큰 자랑거리인 뿔을 숨기면 고유한 권능을 쓰지 못하게 된다. 사슴이 가진 제약이었다. 그러면서도 천 년에 한두 번쯤은 내기로 제 뿔을 걸어대는 사슴이었다. 변화 없이 무료한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몇 안 되는 자극이기 때문이었다.
“선배님들, 왜 부르셨어요? 별일 없었잖아요.”
신입이 팔랑, 꽃잎 같은 옷자락을 펼치며 꽃봉오리 속에 파묻히듯 앉았다.
“오히려 계획대로, 잘 진행되고 있지요…….”
“맞아.”
나무가 만족스럽게 미소를 머금었다. 마른 가지 같은 손끝이 느릿이 까딱거린다.
“채터박스가 저런 식으로 게임을 해줄 줄이야. 덕분에 허니에게 호감을 가지는 S급 각성자들이 늘어나고 있지. 거기에 채터박스는, 분명 마지막에 허니와 허니의 소중한 사람들을 해치려 들 것이고. 완벽해!”
“그때 우리가 방법을 알려 준다는 결말이지. 그럼 허니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테고.”
사슴도 연신 자신의 뿔을 매만지면서 말을 거들었다. 나무가 의자와 함께 빙그르 떠다니는 신입을 올려다보았다.
“신입 널 부른 건 게임 중에 키워드 적용한 사람이 있었나 싶어서야.”
“안 보셨어요?”
“일일이 지켜볼 필요까진 없었으니까. 너도 안 봤어?”
“당연히 봤어요! 재밌었는걸요!”
신입의 말에 나무와 사슴이 비슷한 표정을 지었다.
“역시 어리긴 어리다니까. 우리 막내, 우쭈쭈.”
나무의 말에 신입이 발끈했다.
“진짜예요, 한번 보세요!”
“그 비슷한 걸 수백, 수천 번이나 봐왔는걸. 신탁을 내려 각성자들이 그런 식으로 경쟁하게끔 만들기도 했었지.”
“하지만…….”
다른데. 신입은 두 초월자를 바라보았다. 그들에게는 이번 게임도 그저 반복되는 흔한 이벤트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신입에게는 아는 사람이 있었다. 관심이 가고, 호감이 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감정을 이입하고 응원을 하고 초조해하며 같이 기뻐하기도 했었다.
“아직 좋을 때지 뭐. 아무튼 신입아, 한두 명 정도는 더 늘어나지 않았어?”
“…아뇨. 이번 게임은 모습이 감춰진 채였거든요. 키워드를 적용하긴 힘들었을 거예요.”
“그래? 다음번에 허니를 만나면 적당히 재촉해 줘. 최소한 50명은 채워 놓아야 하니까. 많을수록 더 좋고.”
신입의 두 눈이 데구르 굴렀다.
“제 작업은, 시간 맞춰서 끝날 거 같지 않은데요.”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 채터박스가 잘만 해준다면. 만약을 대비해서 대장장이는 잘 챙겨 놓고. 이미 대장간과 연결도 해놓았댔지?”
신입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유명우는 자신의 사람들을, 세계를 버리지 않을 것이다. 여기 있는 이들과는 다르게.
“생각보다 더 빨리 끝날 수도 있겠어.”
“그럼 백 년쯤 푹 자야지. 내 뿔이 전보다 더 완벽하게 완성될 수 있도록!”
“뿔에 집착하니까 네가 짐승 꼴을 벗어나질 못하는 거야.”
“이런 집착이라도 없으면 지루해서 어떻게 살겠어? 단순 반복 작업이잖아.”
나무와 사슴이 사라져갔다. 단순 반복 작업. 홀로 남은 신입이 작게 중얼거리다가 고개를 빼어 금빛 샘을 내려다보았다. 신입의 얼굴이 흐릿하게 비치다 후두둑 떨어지는 꽃잎들 사이로 파묻혔다.
‘우리가 하는 일은 옳은 일이야.’
세계를 구하는 일이다. 그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지만.
수면 위로 동그란 파문이 수없이 일어났다가 흩어 사라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