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575
573화 꿈 속의 꿈 (1)
문을 통해 너른 휴게실에 도착한 피스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익숙한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코끝을 움찔거려도 낯선 냄새만 가득했다. 파티 도우미 직원들 중 애완동물 관련 경력이 있는 두엇이 조심스럽게 피스에게로 다가갔다. 몬스터에 기승수라고 해도 지금은 파티의 참가자이자 손님이었다. 그렇기에 직원들의 행동은 정중했다.
“1등으로 경기를 끝내셨습니다.”
– 그릉.
“혹시 필요하신 게… 있으실까요?”
피스의 고개가 갸웃 기울어졌다. 직원들이 난감해하며 다시 상냥하게 말을 걸었다.
“마실 것과 먹을 것을 준비해 드릴 수 있습니다.”
“…못 알아듣는, 들으시는 것 같은데.”
“음… 아, 맞아. 밥! 밥이요.”
직원이 한국어로 뚜렷하게 밥, 하고 말했다. 그 말에 피스가 고개를 홱 돌렸다. 싫다는 기색이 뚜렷한 움직임에 직원이 알겠습니다, 대답했다.
“팀원인 한유현 헌터께서도 이쪽으로 오실 겁니다.”
– 그르르.
“일행인 한유진 헌터께서도요.”
피스가 꼬리를 살랑 흔들었다. 직원이 재빠르게 큼직한 방석을 가져다주었다.
“한유진 헌터께서 오실 때까지 여기서 편히 기다려 주세요.”
– 끼웅.
화염뿔사자는 얌전히 방석 위로 올라가 엎드렸다. 자리를 떠날 생각이 없어 보이는 모습에 직원들이 안심했다. 한국 헌터들이 모두 자리를 비운 상황에서 피스가 일행을 찾겠다고 나서기라도 했다간 곤란해지기 때문이었다.
잠시 뒤 피스에게 패배한 헌터가 투덜거리며 나타났다. 직원들이 조금 긴장하며 재빠르게 휴게실에 대해 안내해 주었다. 얼마쯤 시간이 지나고, 한유현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유현과 피스의 시선이 일순 마주쳤다가 이내 방향을 틀었다. 둘이 동시에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한유진을 찾았다. 피스는 심드렁하게 다시 앞다리 사이로 머리를 내리고 한유현은 직원에게 물었다.
“한유진 헌터는 오지 않았습니까?”
“네, 한유현 헌터께서 두 번째로 경기를 끝내셨습니다.”
한유현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곤 근처 의자에 앉았다. 이어 리에트도 나타났다.
“경찰청장, 다음엔 제대로 붙어 보자~”
한유현은 대답하지도 눈길을 주지도 않았다. 깨끗이 무시당했지만 리에트는 아무렇지 않게 출출해졌다며 음식이 차려진 테이블로 향했다. 두 사람에게 무관심이란 당연한 일이었다. 본래 무리생활을 할 필요 없는 존재들이기에 흥미 없는 일에 예의상 반응해 줄 필요 또한 없었다. 상대가 반응이 없는 것에도 관심 없구나 납득할 뿐 아쉬워하지도 않았다. 인간사회에 섞여 살고 있기에 사회적인 인간 상대로는 어느 정도 신경을 써주기는 하였지만, 그뿐이었다.
다시 시간이 흐르고 헌터들이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 그, 끼앙!
요정용이 나타났다. 무어라 말을 하려던 한결이가 급히 피스처럼 울었다. 말을 못 하는 척하면서 한유진을 찾듯이 두리번거리다가 한유현을 한번 쳐다보고는 피스에게로 가 옆구리를 차지한다.
“더러워진 건 그대로네. 여기 욕실은 어디 있습니까?”
상대와의 전투로 인한 상처 외에는 회복되지 않기에 그대로 흙투성이인 문현아가 미간을 조금 찌푸린 채 직원에게 물었다. 분위기만 보면 그녀가 패배한 것 같았다. 문현아는 주위를 대충 살피곤 바로 씻으러 자리를 떠나갔다. 신발 바닥만 조금 더러워진 채 나타난 에블린은 옅은 미소를 머금은 채 와인을 따라 마셨다. 문현아의 협찬 품이었다.
“언니! 이겼어요? 이겼지요?!”
강소영이 통통 뛰는 듯한 걸음걸이로 리에트에게 다가갔다.
“아니, 졌어~”
“어? 진짜요? 혹시 저희 길드장님, 은 없고. 아, 해연 길드장님?”
“맞아!”
“재밌었겠다!”
저도 보고 싶다며 강소영이 아쉬워했다.
“전 노아 씨와 싸웠어요! 그런데 안 보이네요?”
“승자는 문을 통해 직접 나와야 합니다. 곧장 나올 시엔 패자보다 빠르지만 그렇지 않을 시엔 더 늦어질 수도 있습니다.”
직원이 설명해 주었다. 리에트가 강소영에게 설탕에 절인 체리를 주며 흥미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노아가 싸우려고 했어?”
“처음에는 머뭇거렸지만요. 사실 저 혼자선 상대가 안 되잖아요! 그래서 싸움 시작하는 데 더 오래 걸렸어요. 자꾸 기권하시는 게 어떠시겠냐면서 피하기만 해서요. 시작하고는 금방 끝났죠!”
“친한 사람한텐 무르다니까~”
리에트의 말에 강소영이 꺄악 소리를 질렀다.
“진짜요? 역시! 한국에 그런 말 있잖아요. 열 번 찍어서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 앗, 노아 씨!”
막 휴게실에 도착한 노아가 흠칫하며 강소영을 바라보았다. 조금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고마워요!”
“…예? 그, 제가 이겼습니다만.”
“노아야, 체리 먹을래?”
“아뇨, 괜찮습니다.”
“사랑해요!”
“…네.”
“나 너한테 관심 있어!”
“예.”
“내 동생 말고 노아한테!”
리에트가 싱글거리며 외쳤다. 노아가 눈을 깜박였다.
“생각해 보니까 난 내 동생 말고는 잘 모르고 있었어. 그래서 알아볼까 해. 내가 궁금해서.”
“…마음대로 하세요.”
노아는 성의 없이 대답하곤 몸을 돌렸다. 정확히는 별 기대가 없었다. 리에트의 태도가 조금 바뀌었다고 해서 새삼스럽게 기대하기에는 포기한 시간이 너무 길었다. 누나가 달라진 것 자체는 나쁘지 않았지만 딱 그 정도의 감상이었다.
한유진은 아직 보이지 않았다. 박예림도 없었고 한유현뿐이었다. 적당한 곳에 앉아 기다려야겠다고 생각하던 노아가 한유현에게 다가갔다. 한유현의 표정에서 희미한 불안감을 읽어냈기 때문이었다.
“무슨 일 있습니까?”
한유현이 노아를 힐끔 올려다보았다.
“아직 형이 나오질 않았습니다.”
“그야, 시간이 오래 걸릴 수도 있을 테니까요.”
“남은 사람이 몇 없습니다.”
“반 넘게…….”
노아의 목소리가 끊어졌다. 남은 헌터들은 많았다. 하지만 한유현이 의미하는 남은 사람은, 한유진이 아는 사람들이었다. 일행과 맞붙게 되었다면 괜찮다. 하지만 그 외의 헌터라면. 불운하게도 한유진에게 악의를 품은 헌터라면.
한유현은 물론 노아 또한 한유진의 고집스러운 면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쉽게 기권할 리 없을 것이다. 그리고 기권을 하지 않는다면. 상대가 빠르게 끝내 준다면 차라리 다행이었지만 이미 시간은 상당히 지난 후였다.
불안감 속에 에블린의 팀원인 바네사가 나타나고 송태원 또한 겉옷을 벗은 채로 휴게실로 나왔다. 한유현의 안색이 조금 더 흐려졌다. 노아가 송태원에게 다가가 물었다.
“혹시 유진 씨와 만나셨나요?”
“아닙니다. 예전에 마주쳤던 헌터와─”
송태원이 재빠르게 휴게실에 모인 사람들을 살펴보았다. 노아가 문현아 헌터도 이미 왔다고 말해 주자 송태원의 얼굴에도 걱정이 약간 어렸다.
헌터들의 수가 점점 늘어나고 하나둘 밖으로 나가기도 하였다. 열 명도 채 남지 않았을 즈음에 성현제가 나타났다. 자신에게로 몰려드는 시선에 성현제가 의아해하다가 이런, 작게 중얼거렸다.
“한유진 군이 아직인가 보군.”
“예. 성현제 헌터도 아니었습니까.”
송태원의 물음에 성현제가 짧게 고개 저었다.
“나는─”
“아, 져버렸다!”
박예림의 등장에 한유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가 근처의 직원에게 물었다.
“남은 헌터 명단을 주십시오.”
“예? 그건, 확인해 봐야 하겠지만 안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헌터 개인 정보는 계약상…….”
“왜 그래? 한유, 아저씨! 아저씨 아직 안 나왔어?”
한유현 옆에 한유진이 없다. 박예림이 당황하며 두리번거렸다. 한결이 박예림에게로 다가가 그녀의 어깨 위에 앉아 속삭였다.
– 결이 일찍 나왔는데, 아빠 없었어…….
박예림의 표정도 심각해졌다. 까득 이를 갈며 사납게 눈꼬리를 치켜올렸다.
“누군지 몰라도, 아저씨한테 무슨 일 생겼단 봐.”
남은 헌터들도 휴게실로 나오고 한 손도 다 못 채울 만큼 줄어들었을 때. 드디어 한유진이 나타났다. 겉보기에는 멀쩡했다.
“형!”
한유현이 곧장 한유진에게로 다가가 그를 꼼꼼하게 살폈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도 내리꽂혔다. 한유진이 당황해하며 입을 열었다.
“나 그냥, 기권했어.”
“왜 이렇게 오래 걸린 거야. 다친 곳은 없어 보이지만…….”
“다친 거 다 치료해 주던데? 아저씨, 진짜 괜찮아요?”
“옷이 멀쩡해.”
한유진의 뒤쪽으로 돌아가 확인하며 한유현이 말했다. 채터박스는 상대와의 전투로 인한 상처만 치료해 줄 뿐 옷은 복구해 주지 않았다. 한유진은 대체로 멀쩡했다.
“너무 깨끗하군.”
“전투의 흔적이 없습니다.”
성현제의 말에 송태원이 동의했다. 한유진이 시선을 슬쩍 아래로 내렸다. 다른 사람들과는 눈을 마주치지 않고 다리에 뺨을 대어오는 피스를 바라보았다.
“기권했다니까요. 저야 몸으론 상대가 안 되니까 말로 해결해 보려다가……. 우리 피스, 괜찮아? 헌터가 갑자기 덤비거나 하진 않았어?”
– 끼앙!
한유진이 피스를 안아들었다. 여전히 피스에게만 눈길을 둔 채 부드러운 털을 어루만졌다.
“난 괜찮아. 아예 안 다친 건 아닌데, 큰 상처는 없었어. 채터박스에게 물어봐도 돼. 멀쩡해.”
한유현은 한유진이 자신을 보지 못한다는 것을 눈치챘다. 하지만 침묵했다. 박예림은 한유진이 자신과 한유현의 싸움에 대해서도, 상대에 대해서도 묻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침묵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 또한, 입을 다물었다.
짧은 침묵이 내려앉았다.
피스는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괜찮아.”
다행히 목소리가 떨리거나 하진 않았다. 멀쩡하게 보일 것 같았다.
“…형, 들어가서 쉬자.”
“아니야, 괜찮아.”
티가 났나. 하지만 멀쩡하게 서 있는데.
“어, 아저씨. 뭐 드실래요?”
“괜찮아, 예림아.”
지금은 배고프지 않았다.
“모든 대결이 끝났습니다. 순위에 따른 수상이 있겠습니다.”
직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는 방송 없이 빠르게 진행하며 수상자 외엔 참석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였다.
“기승수는 대리인을 보내도 됩니까?”
유현이가 직원에게 물었다. 피스가 순위 내에 든 모양이었다.
“확인해 보겠습니다.”
“아니야, 유현아. 같이 가자. 유현이 너도 순위권이지?”
“…응.”
“그럼 더더욱 가야지. 어쨌든 상 받는 건데.”
걸음을 옮겼다. 간소하게 치른다더니 장소도 그리 넓지 않았다. 채터박스도 없었다. 의자에 앉아 피스를 내려놓았다. 피스가 1위였다.
“형님?”
문현아가 괜찮으냐고 물어왔다. 괜찮다고 대답했다. 2위인 유현이가 피스와 함께 상을 받으러 나갔다.
“부상은─”
“부상 대신 특혜를 바랍니다. 피스 또한 저와 같은 것을 원할 겁니다.”
“예?”
“한유진 헌터와 같은 숙소를 쓰게 해주십시오. 가족이고, 무엇보다 피스가 아빠와 떨어져 있는 것을 불안해합니다.”
유현이가 말했다. 부상이 아까웠지만, 그러지 말라는 말이 입안에서만 맴돌았다. 수상 담당자가 당황하더니 잠시 기다려 달라고 하고는 옆으로 물러나 전화를 걸었다. 짧은 통화가 끝나고 담당자가 대답했다.
“이번은 가벼운 덤과 같은 이벤트였습니다. 그러니 부상의 변경도 가능은 합니다만 부상 자체가 크지 않고 파티 규칙을 어기는 것이니만큼 다른 팀과의 숙소 공유는 하루만 허용합니다.”
“알겠습니다.”
유현이와 피스가 금화를 받고 내 곁으로 돌아왔다. 유현이가 피스를 내 무릎 위로 올려 주었다.
“…아깝게.”
“작은 상이라니까 A급 정도였겠지. 그보단 형이랑 같이 있고 싶어. 피스도 그럴걸.”
피스를 쓰다듬었다. 3위는 별다른 친분 없는 헌터였다. 결이가 4위였고 현아 씨는 5위였다.
“아저씨, 저 세성 길드장이랑 붙었어요!”
“어? 정말?”
“네! 졌지만요.”
예림이가 활짝 웃고 있었다.
“예림이 넌 아직 어리니까, 괜찮아.”
“얼마 안 남았다니까요. 그게요.”
예림이가 내게 귓속말했다.
“전 기권하기로 해서 세성 아저씨가 저 죽일 생각은 없었거든요. 근데 막판에 실수했다니까요!”
“어, 예림이 네가 너무 잘 싸워서, 겠지?”
“그렇죠! 제가 보기엔 길어야 일 년이에요.”
내 입이 미소를 머금었다. 웃을 수 있었다.
“응, 우리 예림이가 최고지.”
“형, 나도 이겼어. 리에트 헌터와 싸워서.”
“그래? 대단하네. 만만찮았을 텐데.”
“그리고 이거 봐 봐. 피스는 방송했었나 봐.”
유현이가 휴대폰을 내밀어왔다. 영상 속의 피스가 헌터 앞에서 갸웃, 머리를 기울인다.
“아니 왜 남의 집 애를 허락도 없이 만지려 들…….”
저런. 헌터 머리가 아그작 씹혔다.
“자업자득이네. 잘했어, 피스야.”
– 꺄웅!
– 아빠! 결이도 이겼어! …결이가 귀엽다고 기권했어.
결이도 내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 그게, 뺨에 뽀뽀해 주면 기권해 주겠다고 해서. 고민했는데, 그래도 이기는 게 더 좋을 거 같아서.
“괜찮아, 결아. 잘했어. 귀여운 것도 능력이야.”
숨을 길게 내쉬었다. 나도 모르게 긴장하고 있던 몸이 조금 풀어졌다. 고개를 슬쩍 돌려보았다. 나와 눈이 마주친 노아 씨가 웃어 보였다. 성현제와는 시선을 마주치지 못했다. 송태원도 마찬가지였다.
둘 다 이상한 걸 느꼈을 것이다. 캐물어 오면 지금은 제대로 대답할 자신이 없었다.
“형, 방으로 들어갈까? 간단하게 룸서비스 시켜 먹고 일찍 자자.”
“…그래.”
아직 시간이 이른 것 같았지만, 뭔가 더 해야 할 것 같았지만 아무것도 떠오르질 않았다. 다른 일정이 있다는 말도 없었으니 하루 정도는 쉬어도 되겠지.
간단하게 밥을 먹고 그냥 늘어져 있었다. 동생이 계속 곁을 지켜 주었다. 예림이가 도중에 방문해서는 입욕제와 간식거리를 주고 갔다. 반신욕 꼭 하라고 해서 시킨 대로 했다. 입욕제는 예림이가 고른 듯했지만 과자는 성현제가 산 듯했다. 예림이 취향이 아니었다.
씻고 누워 있다가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 커다란 손이 다가왔다. 반사적으로 막으려고 하였다.
“혼낼 생각 없다.”
쯧, 혀를 차곤 어린 혼돈이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