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582
580화 재료 손질 (2)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제각각 느낌은 달랐지만 대부분이 무슨 헛소리냐는 시선을 보내왔다.
“말씀 참 이상하게 하시네.”
채터박스 대신 내가 말을 이었다.
“보상이란 건, 이런 거죠.”
촤르르륵-!
내 발 앞에 인벤토리에서 꺼낸 금화들이 쌓였다. 제법 많은 양이었다. 그 위로 장비 몇 개가 떨어져 굴렀다. 발끝으로 그것을 가볍게 툭툭 건드렸다. 금화가 잘랑잘랑 소리를 낸다.
“규칙 1. 한유진을 잡으면 그가 가진 금화와 채터박스표 아이템의 소유권을 넘겨받게 된다. 여기서 잡는다의 의미는 사망입니다. 물론 실제로 죽지는 않습니다.”
기다란 끈을 꺼내 들었다. 뱀처럼 부드럽게 흘러내려 금화와 장비를 휘감은 끈이 그것들을 그대로 들어 올려 내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시선들이 금화 더미를 따라 아래위로 움직인다.
“규칙 2. 한유진 외의 다른 헌터는 잡는다 해도 금화를 빼앗을 수 없다.”
타박타박, 무대를 가로질러 걸어갔다.
“규칙 3. 한유진은 다른 헌터를 잡아 그 헌터의 금화를 빼앗을 수 있다. 그리고 한유진이 빼앗은 금화 또한 한유진을 잡은 헌터가 가지게 된다.”
테이블 위에 놓은 상자 옆에 우뚝 멈추어 섰다.
“설명을 보충해 드리자면, 곧장 저를 잡는 것보다는 제가 금화를 최대한 많이 모으도록 만든 뒤 잡는 편이 훨씬 이득이라는 뜻이지요.”
잘만 한다면 모든 헌터의 금화를 빼앗을 수도 있다. 한 방에.
“마지막, 규칙 4. 한유진의 승리 조건은 지금 뽑는 숫자만큼의 헌터를 잡는 것. 숫자는 공개하지 않아도 된다.”
켜 놓은 채팅창에 열심히 글들이 올라왔다.
└ 완전 눈치싸움
└ 바로 잡기는 아깝지만 남이 잡으면 더아깝고
└ 금화 모으게 하다가 ㅎㅇㅈ이 승리해버릴수도 있지
└ 팀만들어서 갈라먹기로하고 sf사로잡아서 헌터들 죽이게 도와주는게 제일일듯
└ 한유진 숫자 잘숨겨야겠다
└ 또 유진이 입엄청 털겠네ㅋㅋㅋㅋㅋㅋㅋㅋㅋ
헌터들이 서로를 슬쩍슬쩍 살피기 시작했다. 단숨에 날 죽이고 보려는 헌터는 몇 없을 것이다. 있다 해도 다른 헌터들이 막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니 정석대로 간다면, 내가 죽여야 하는 숫자를 교묘하게 잘 숨기고 속인 뒤 다른 헌터들에게 협조하는 척 승리 조건을 달성하는 것이겠지만.
“그럼 뽑겠습니다.”
상자의 구멍 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안에 있는 제비 중 하나를 꺼내 들었다. 몇몇이 목을 빼며 이쪽을 기웃거린다. 종이를 펼치자 숫자 9가 적혀있었다. 모여 있는 헌터들을 향해 미소 짓고는.
“아홉 명.”
종이를 돌려 보였다. 짧게 침묵이 내려앉고 여기저기서 술렁거림이 들려왔다.
“뭐야.”
“왜 저래?”
└ 유진아!!!!!입!!!!
└ ㅎㅇㅈ□□□□□???
└ 벌써포기? 아니면 심리전???
당혹감 가득한 공기 속에서 종이를 구겨 바닥에 내던졌다.
“고작 아홉 명이라니, 너무 시시하지 않습니까. 여기서 예외 규칙 하나 더.”
상자 모서리를 잡고 기울였다. 퉁, 상자가 굴러떨어지며 제비 종이들이 우르르 쏟아져 내린다.
“한유진은 자신이 뽑은 숫자보다 더 큰 숫자를 선택할 수 있다.”
많을수록 불리하니까.
└ 심리전 맞네 저럼 최소 9명까진 잡게할테니
└ 그래도 더불리하지 않나? 안전빵으로 9명에서 끊을수도 있잖아
└ 아예안밝히는게 훨씬 낫지
물론 그렇다. 쪼그리고 앉아 쏟아진 종이를 뒤적거리다가 손 탁 털고 일어났다. 그리고 말했다.
“최대치.”
또다시 조용해졌다. 빠르게 올라가던 채팅창도 순간 느려졌다. 두 팔을 가볍게 벌려 보이며 다시 말했다.
“여러분 전부를 잡겠습니다.”
짝! 박수를 쳤다. 분위기가 확 뒤바뀌는 것이 느껴졌다.
└ 미친?
└ 저게 가능해?????????
└ 잠깐만 더유리하지 않나? 헌터들이 한유진을 공격할이유가 없어지잖아
└ 헐 그러네? 마지막한명 남을때까지 ㅎㅇㅈ도와주는게 나을듯 어차피 f급이고
글쎄, 어떨까. 편한 방법이기는 하겠지. 하지만 그래서야 채터박스가 내건 조건을 달성할 수 없었다.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내가 옆으로 비켜서고 채터박스가 앞으로 나섰다.
“마지막 일정인 만큼 개인 방송은 반드시 켜주셔야 하며 모자이크 기능 또한 지원하지 않습니다. 음소거와 스킬 비공개는 가능합니다만 시청자에 한해서이며 전투 대상에게는 원래대로 들리고 보이게 됩니다. 방송을 원치 않는 상황의 경우 기권해 주십시오. 다만 전투 중 기권의 경우 패널티로 금화를 잃게 됩니다.”
그의 뒤쪽 스크린에 진열장이 줄줄이 늘어선 화면이 나타났다.
“마지막 일정을 마친 후, 보유하신 금화는 원하시는 아이템으로 교환하실 수 있습니다. 종합 성적과 금화 보유 개수를 합산한 성적 순서로 차례가 돌아가게 됩니다.”
다시 말해 금화를 지켜내더라도 수가 적으면 별거 못 건진다는 뜻이었다. 채터박스가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머금어 보였다.
“파티 기념품과 부상은 따로 준비가 되어 있으니 마지막까지 즐겨 주시기를 바라겠습니다.”
그리고 몸이 이동되는 느낌과 함께 주위 풍경이 바뀌었다. 어딘지 모를 숲속. 직후 내 앞에 지도 같은 것이 나타났다.
[종합 성적 1위 특별 혜택]이라는 명목하의, 각 헌터들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표시해 주는 지도였다. 상당히 너른 지역에 다양한 색의 점들이 넓게 퍼져─
점 하나가 바로 코앞에 있다. 그것을 확인하자마자 몸을 날렸다.
핑!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작게 들려오고 밧줄이 내 바로 옆의 나무를 휘감는다. 바닥을 한 바퀴 구르며 바위 뒤쪽으로 몸을 피했다.
“너무 빨리 발견해 버렸네.”
밧줄을 회수하며 헌터가 조금 곤란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재빠르게 총을 꺼내 들었지만 신경도 쓰지 않는 눈치였다.
“바로 잡기는 아깝고.”
내가 공격해 봤자 얼마든지 막을 수 있다는 듯 여유로운 태도였다. 오히려 다른 S급 헌터가 난입하지는 않을까, 주위를 더 경계하고 있었다. 내가 아무리 활약했다 하더라도 한계는 있으니까. 심지어 거리도 수 미터쯤 떨어져 있으니 더더욱 방심할 만했다. 스탯 F급이 아무리 빠르게 공격을 가하더라도 거리가 있는 한 S급을 따라잡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도망칠 생각은 하지 마.”
몸을 움직이려 하자 헌터가 나직하게 경고했다. 그리곤 폰을 꺼내어 어디론가 연락하려고 시도해 본다.
“역시 안 되나. 팀으로 움직이는 게 유리한데.”
그사이 총구에 작은 구슬을 끼워 넣었다. 가운데 미세한 구멍이 뚫린, 명우에게 부탁해 만들어 달라고 한 아이템이었다. 구슬이 총구에 완전히 달라붙고, 천천히 마력을 집중했다.
하얀 살쾡이 총의 최대 위력은 S급. 하지만 같은 S급이라면 이 정도 거리에서 마탄을 피하기가 어렵지 않았다. 직격당한다더라도 방어를 제때 한다면 치명상까지는 아니었다.
주위를 살피며 다른 S급 헌터와 연락할 방도를 궁리하는 헌터를 바라보며 뒷목으로부터 퍼져나가는 감각을 더욱 끌어올렸다.
마나각인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도록 보조해 드리겠습니다, 라고 나를 찾아온 채터박스가 말했었다. 그때 내 몸에 부담이 가지 않도록, 대신 과부하를 감당해 줄 아이템을 받았다. 1회성은 아니지만 사용량은 정해져 있는 아이템이었다. …그래도 이런 감각이 아무 영향을 주지 않을 가능성은 낮을 것 같았지만.
‘또 혼나려나.’
명우가 분명 눈치채겠지. 그리고 어르신도. 하지만 지금 이 방법을 가르쳐 준 것은 어린 혼돈이었다. 물론 아직은 제대로 쓰기 이르다, 라고 했었지만.
‘마나와 마력의 양이 적다고 해도 사용하기에 따라 효율은 얼마든지 높일 수 있다.’
S급의 마력탄을 압축시키고 또 압축시켰다. 구슬의 조그만 구멍에 맞추어서. 이어 S급 헌터를, 그의 전신을 이루는 마력을 바라보았다.
‘마력을 지닌 물체는 자신의 마력으로 몸을 보호한다. 하지만 신체 마력이 끊임없이 움직이는 생명체는 약한 부분이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너는 아직 찾아내기 힘들겠지만, 라면서도 어린 혼돈은 내게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마나각인을 다루게 된다면 흉내라도 낼 수 있을 거라고.
머리, 아니다. 목, 역시 아니다. 일반적인 급소는 급소인 만큼 오히려 철저히 보호되고 있었다. 물결처럼 흔들리는 마력의 움직임이 희미하게나마 느껴진다. 유독 그 흐름이 끊기는 일점이 천천히 이동했다. 어깨, 왼쪽, 중간쯤. 급소 근처로는 다가가지 않은 채, 오른쪽 어깨로 움직이는 그 순간.
핏!
방아쇠를 당겼다.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의 가느다란 마탄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쏘아졌다. 헌터가 이상을 느끼고 피하려 했지만 그보다 빠르게.
“……!”
마탄이 오른쪽 어깨를 파고들었다. 몸을 보호하는 마력이 순식간에 흐트러지고, 헌터의 한쪽 팔이 완전히 떨어져 나간다. 그가 크게 비틀거린다. 전신의 마력이 죄다 요동치는 것이 보였다. 지금이라면 나도 뚫을 수 있다.
땅을 박찼다. 있는 힘껏 헌터를 향해 뛰어들며 총에 다시 마력을 보충했다. 고작해야 E급쯤 될까. 하지만 그 약한 마탄이.
“커억!”
S급 헌터의 목을 꿰뚫었다. 마력의 보호가 잔뜩 흔들려 약해진 몸뚱이에, 심지어 그 틈새까지 노린다면. S급의 육체는 마력으로 보호받지 못해도 강한 편이었지만 강철은 아니었다.
“뭐, 그래 봤자 F급으론 안 되겠지만.”
헌터의 모습이 사라지고 금화들이 짤랑짤랑 바닥에 흩어졌다. 얼른 마나각인의 효과를 줄였다. 온갖 소리로 가득하던 세상이 일순 조용해진 듯한 느낌이었다.
‘…이거 진짜 멀쩡하게 쓸 수 있는 건가.’
적어도 F급 몸뚱이로는 불가능할 거 같은데. 새삼 무모한 짓 했다 싶어졌다. 채팅창을 열어 보고 싶어졌지만 꾹 참고 금화를 챙겼다. 다들 대단하다고 해주겠지만.
‘채터박스가, 도와준 거라.’
내가 가지고 있던 각인이며 아이템이 대부분이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도 아닌 채터박스 덕분이다. 칭찬하는 말을 보기엔 아무래도 찝찝했다.
헌터들의 위치를 확인하며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명단 중 한 명을 지우고 근처에서 움직이는 헌터들을 살펴보았다.
‘발레리 루셀. 이 헌터가 분명.’
파일의 이름을 클릭하자 발레리 루셀에 대한 상세 정보가 나타났다. 세성에서 받은 정보에 더해 황림이 소개해 준 그쪽에서 준 정보를 합친 것이었다. 정보 확인을 끝낸 뒤 아이템을 착용했다. 살쾡이 세트. 그리고.
[흰 꼬리 델로우즈(A)]이번에는 어린 모습으로. 스킬 숨기기 기능을 쓰긴 했지만 어떻게 비춰지려나. 설마 나도 거북이가 된 건 아니겠지. 조그만 고양이로 변해 발레리 헌터에게로 다가갔다. 일부러 수풀을 부스럭거리며 발레리 앞으로 폴짝 뛰어나갔다.
“어?”
– 냐아.
고양이예요, 고양이입니다. 그쪽이 엄청나게 좋아한다는 바로 그 고양이! 발레리 루셀, 동물애호가. 특히 좋아하는 동물은 고양이. 그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나를 내려다보았다.
“…몬스터인가?”
고양이의 움직임을 머릿속으로 떠올리며 발레리에게로 다가갔다. 그의 발치를 빙글 돌며 발라당 바닥에 드러누웠다.
– 애앵.
발레리가 뻣뻣하게 굳었다. 대부분의 동물은 인간보다 예민해서 중급 헌터만 되어도 본능적으로 무서워했다. S급이면 기척을 최대한, 필사적으로 감춘다 해도 초면에 친근감 있게 달라붙는 일은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했다.
S급 기세를 계속 감추고 살 수도 없기에 발레리도 키우던 고양이 다섯 마리를 눈물을 머금고 동생 집으로 보냈다고 하였다. 자주 방문은 하는 모양이지만 같이 사는 건 불가능했는데.
“아, 안녕.”
발레리가 커다란 덩치를 조심스럽게 쭈그렸다.
“고양이 형, 몬스터? 이렇게까지 고양이랑 똑같은 몬스터는 본 적 없는데. 아니, 몬스터라도 S급은 싫어하니까…….”
하급 몬스터를 테이밍해도 애완동물처럼 살가워지진 않는다며 발레리가 한숨을 내쉬었다. 좀 미안해지네. 상급 몬스터가 오히려 더 대범해서 애교스러운 경우가 있긴 하다지. 피스는 으르렁거렸었지만. 그가 나를 향해 아주 천천히 손을 뻗었다. 손이 닿아도 도망치지 않자 환하게 웃는다.
“내 천사, 굿 보이. 데리고 나가도 되나? 아이템 대신에, 금화 주고.”
발레리가 나를 안아들자마자 그의 어깨 위로 올라탔다. 그러거나 말거나 허허 웃고만 있었다. 음, 다음에 상급 몬스터 의뢰해오면 우선적으로 받아 줄게요. 입안에 머금고 있던 알약을 깨물었다. 피부에 스며들게 하여 효과를 발휘하는 무색무취의 SS급 독. 혓바닥에 독액을 잔뜩 묻힌 채로 발레리의 목덜미를 길게 핥았다.
“…어.”
발레리가 이상함을 느꼈을 때는 이미 늦었다. 그의 몸이 뻣뻣하게 마비되었다. 독 저항 아이템이 있는지 목숨까지 빼앗기지는 않았지만, 움직이지는 못한다. 나를 아쉬움 가득한 채 바라보는 시선을 피해 그의 뒤쪽으로 내려서서 다시 인간으로 돌아갔다.
‘고양이 몬스터든 겁 없는 대담한 고양이든 만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총을 쏘았다. 발레리의 모습이 사라지고 한 움큼의 금화가 남았다.
“두 명.”
아직 한참 남았다. 하지만, 지도 창의 점은 두 개가 사라졌다. 가급적 내가 죽이도록 유도하려 하겠지만 헌터들 사이의 다툼이 없을 리 만무했다.
‘자기들끼리 다 죽이기 전에 내가 잡아야지.’
채터박스가 준 아이템들을 꺼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