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592
590화 한유진 (2)
“한유현!”
앞에 서 있는 동생을, 한유진이 간절하게 바라보았다. 유현이의 표정은 냉정했다. 나까지 몸이 굳어 버릴 정도로 차가웠다. 이제는 낯설기 그지없지만, 예전에는 익숙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던 서늘한 눈빛.
한유진이 마른침을 삼켰다. 동생을 불러 놓고도 차마 말을 못 하다가 겨우 입을 떼었다.
“한, 번만. 내가, 그래도… 너한테 이렇게, 신세 지려고 한 적은, 없었잖아…….”
헛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가 여태껏 끼친 피해가 얼마인데, 하고 중얼거렸다. 한유진이 이를 악물었다. 나도 괜히 분해졌다.
“그냥, 해연 소속 힐러만, 한 번…….”
“왜 그래야 하지.”
나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한유진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힐러 지원?”
한유현이 한 걸음 한유진에게로 다가갔다. 무감정하게 가라앉은 눈이 한유진을 향하였다.
“그딴 걸 해 줄 줄 알아?”
“그, 그건…….”
추웠었다. 실내였음에도.
“차라리 잘됐어.”
심장이 덜컥거렸다. 지금도 그랬다. 저때는, 아예 부서지는 편이 더 편했을 것이다.
“이제 던전에 간다고 나댈 일도 없을 테니.”
“유, 유현아…….”
한유진의 시선이 힘없이 아래로 떨어졌다. 입술이 꽉 깨물린다. 두 눈동자가 마구 흔들리고 있었다.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화들짝 소리쳤다.
“자막, 자막 넣어! 사정상 어쩔 수 없는 일이었으며 한유현 헌터의 진심은 아닙니다! 빨리!”
“왜? 어차피―.”
“얼른! 당장!”
내가 재촉하는 사이 한유진을 내려다보던 유현이의 얼굴이 흐려졌다. 그늘진 얼굴 위로 뚜렷한 슬픔이 맺힌다. 내리떠진 눈동자가 괴롭게 흔들렸다. 누가 보아도 힘들어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챌 수 있을 정도로, 짙은 감정이었다.
지금 저기서 유현이가 속에 맺힌 감정을 드러낼 리 없었다. 어떻게 된 거냐고 묻기도 전에 루가 폐야가 입을 열었다.
“저건 한유진이 본 게 아니야. 볼 수도 없었지.”
그 말대로 한유진은 고개를 떨어뜨리고 있었다. 내가 저 때 볼 수 있었던 것은 동생의 발끝뿐이었다.
“기억이라는 건 조금씩 변형되기 마련이니까. 그리고 넌 네 동생의 기억도 일부 보았잖아. 그래서 저렇게 나타나진 거야. 원래는 너만 괴롭고, 슬프고, 분했던 기억이.”
“…유현이도.”
함께 슬퍼하고 있었다. 분명 그랬을 테니까. 유현이가 몸을 돌렸다. 냉정하게만 느껴졌던 등이 슬퍼 보였다.
“…제발 조용히 살아. 동생 발목 잡지 말고.”
단호하고 차가운 말이었었다. 하지만 지금은, 유현이의 목소리가 흔들리고 있었다. 내 기억과 내가 본 유현이의 기억이 뒤섞여서 동생의 마음이 드러났다.
한유진이 밖으로 끌려 나간다. 문이 닫히고, 내가 볼 수 없었던 한유현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유현이의 입술 사이에서 가는 숨이 새어 나왔다. 어두운 숲에서 길을 잃어버린 것처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표정이었다.
“…미안해, 형.”
간신히 그 말만 내뱉었다. 그보다 더 많은 말이 수년간 쌓여 있었을 것임에도 꾹꾹 내리누르기만 할 뿐 토할 수조차 없었다. 그랬었다. 끝까지 눈물 한 방울 안 보인 내 동생은.
“슬퍼?”
“…모르겠어. 가슴은 아픈데, 그런데 슬픈 것만은 아니야.”
비틀비틀 걸어가는 한유진의 모습이 보였다. 보통은 불쌍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지금의 나는 그렇게까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운이 나빠서, 상황이 나빠서였을 뿐이었다. 나와 동생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변함이 없었다.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 그대로. 마지막까지.
“저때는 정말 죽을 것처럼 외로웠었는데.”
그래도 어쩌면, 혹시나 하는 생각을 품었었다. 하급 헌터나마 자리를 잡았고, 한 명 몫은 충분히 해내 가고 있었으니까. 그러니까, 최소한 괜찮냐는 한 마디 정도는 들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끼이익, 집 문이 열렸다. 입원한 탓에 생활감도 흐려진 집은 더욱 쓸쓸해 보였다.
“…안 되는 걸까.”
한유진이 작게 중얼거렸다.
“예전처럼은, 역시…….”
신발을 벗고 들어가서는 불도 켜지 않고 아무렇게나 주저앉았다. 이제 그만 포기해야 하나. 그 모습을 바라보며, 웃음이 조금 새어 나왔다. 무해의 왕이 내 머리를 툭툭 두들겼다.
“인간들 보편적으로 웃긴 장면은 아니지 않아?”
“아니, 그게. 생각해 보면 저 때가 제일 막막했어. 그냥 다 끝난 것 같았거든. 발버둥 칠 힘조차 없었지.”
세상이 멸망한다고 해도 마지막의 마지막에 욕 한 마디라도 지껄일 것이다. 하지만 저때는 그럴 기력조차 없었다. 더 뭘 어떻게 할까. 방법도 없고 능력도 없이 그저 막막했다.
“다 끝난 줄 알았는데, 그런데 아니었잖아. 사실은 반대였지. 게다가 말이야.”
그것을 몰랐던 한유진도, 다시 움직였다. 슬픔과 외로움에 파묻혀 질식사할 것처럼 괴로워하면서도 그래도 살아가려 하였다. 심지어 저 상황에서도 헌터로 남았다. 포기하지 않았다.
“넌 진짜 오래 살 거다. 원래 너 같은 놈 명줄이 제일 길어.”
도하민이 한유진을 째려보며 투덜거렸다.
“그래서 밀수품 중에 내 다리 고칠 만한 거 없냐?”
“그런 건 뒷거래가 더 비싸. 게다가 요새 상급 이상 포션은 돈 있어도 구하기 힘들다고. 갈수록 던전도 늘어나고 난이도도 높아지니까 상급 헌터들이 눈에 불을 켜고 싹쓸이하거든. 상급 힐러는 말할 것도 없고. 힐러들 죽겠단 소리 하루 이틀 일이 아니야”
“…하지만 정식 루트로는 아예 불가능하다고.”
저쯤에는 우선순위가 상급 헌터 그리고 당장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위급 상황이었다. 그냥 생활이 어려운 정도의 부상을 입은 하급 헌터가 치료받고 싶은데요, 하고 신청하면 은퇴를 권합니다, 라는 대답이 돌아 올 뿐이었다.
“아니면 던전에서 운 좋게 득템 하는 수밖에 없지. 자기가 얻은 아이템은 자기가 써도 되니까. 중급 던전에도 아주 가끔 나오긴 하잖아. 국내 던전 기록 보여 주랴?”
“어. 그거라도 줘.”
“그 다리로는 정식 팀원으로 들어가긴 힘들 거다. 경력발로 짐꾼 정도는 할 수 있겠지만.”
“시도는 해 봐야지. 하급 던전에선 나온 적 없어?”
“국내는 없고, 해외 기록은 있긴 한데 헛소문이라고도 하더라.”
헛소문이 아니라면 특별하게 공략을 성공한 것이었겠지. 나도 회귀 후 E급 던전에서 상급 포션을 얻었으니까. 도하민이 내 눈치를 살피면서 목소리를 잔뜩 낮추었다.
“해연이면―.”
“닥쳐.”
도하민이 어깨를 으쓱했다. 한유진은 다시 살아갔다. 그리고―.
“어?”
눈앞의 장면이 갑자기 크게 흔들렸다. 마치 고장 난 TV 같았다. 루가 폐야도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말했다.
“역시 먹혔네.”
“뭐?”
내 머리를 양손으로 움켜잡으며 루가 폐야가 말을 이었다.
“월식의 힘이 어설퍼서 듬성듬성하긴 하지만.”
“…내 기억 말이야?”
“응. 월식과 관련된 건 거의 사라졌어.”
중국 악몽 던전에서 지워졌다고 듣긴 들었다. 나야 기억이 없으니 잘은 모르지만. 궁금하기는 해도.
“그냥 넘기, 악!”
스르륵, 루가 폐야의 촉수들이 내 얼굴과 목덜미로 기어들었다. 절로 소름이 우수수 돋아났다.
“또 뭘 하려고!”
원래도 촉수류는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지만 해파리 때문에 세 배쯤 더 싫어졌다.
“착하지, 하나도 안 아파요~.”
“야, 야! 잠깐만!”
“너도 궁금하잖아, 가만히 있어. 근데 피부가 더 말랑해진 거 같다? 어디까지 변한 거야? 촉수도 생겼어?”
“몰라!”
일부러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 중인 걸 묻지 마라. 촉수야 전에도 달아 본 적 있으니 그렇다 쳐도, 그 외엔… 생각하지 말자. 별 느낌은 안 드는 것 같으니까 모르는 척하자. 아직은 멀쩡한 것 같다고.
“아, 네, 네.”
한유진이 툴툴대듯 말했다. 사라진 기억의 일부가 조각조각 부서진 채 나타났다.
“앞으론 이런 일 없을 겁니다. 진짜예요. 그냥 포션 운반만 해 주면 된다기에 온 거였는데, 해외 상급 헌터들이 엮였을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기억은 안 나지만 저거 백 퍼센트 거짓말이다. 아마 최상급 포션을 빼돌리려고 밀거래에 끼어든 것이 아니었을까. 그런데 이게 지워진 기억이라면, 대화하는 상대는.
“그러니 해연에는 알리지 말아 주세요, 네?”
“알려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송태원이 말했다. 한유진이 눈을 조금 크게 떴다.
“어, 예?”
“한유진 헌터의 문제이니 해연 길드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당연한 소리였다. 하지만 내게는 당연하지 않았다. 한유진이 일을 치면 해연 길드장의 형이, 해연 길드장의 체면이 운운에서 해연 길드가 책임져야 하지 않느냐는 소리로까지 번져 나가기 일쑤였기에. 한유진이 우물쭈물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 렇죠.”
“상급 아이템의 밀반출은 중범죄입니다. 하지만 상급 헌터 주도의 범죄에 하급 헌터 또는 비각성자가 엮였을 경우 그 역할과 기여도에 따라 강제적인―.”
송태원의 목소리가 흐릿하게 지워졌다. 이어 그의 모습까지 완전히 사라진다. 저런 경우에 하급 헌터는 죄를 묻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시키는 대로 따르지 않으면 목숨이 위험해질 수도 있으니까. 오히려 증거를 없애기 위한 표적이 되기 쉬워, 협회나 각관실의 보호를 받게 되기도 하였다.
“…상급 아이템 밀수.”
어렴풋이 기억이 났다. 밀수야 흔한 범죄였지만 해외 S급 헌터도 엮인 대형 사건이 하나 있긴 있었던 거 같은데. 하지만 내 기억으로는 나와는 아무 관련 없는 일이었다. 송 실장님과는 저 때부터 알게 되었던 걸까? 성현제는? 그리고 예림이는.
“저는 송태원 실장님 좋아해요.”
목소리만 들려왔다. 중간중간 뚝뚝 끊긴 채로.
“그렇잖아요. 아니에요?”
“그냥 한유진이죠. 송태원 실장님 눈에는.”
“저랑 친하지도 않은데 처음부터 해연 떼 놓고 봐 주는 사람은―.”
“좋은 사람 맞아요. 진짜로.”
좋은 사람이 맞다. 송 실장님을 알게 된다면, 그를 좋아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범죄자 빼고. 아니지, 송 실장님에게 체포당한 범죄자 중에서도 팬이 꽤 있지 않을까.
“으으응, 잘 안 되네~ 남은 파편을 끌어모아도 제대로 이어지는 게 거의 없어.”
무해의 왕이 투덜거리는 사이에도 조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하민 아저씨가 소개해 준다고는, 했는데요.”
“저도 한유진 헌터와 같은 나이입니다.”
어, 잠깐만. 동갑? 누가……? 목소리는 낯설지만 설마 저거, 아니겠지. 아무리 그래도 양심이 있지.
“몰라, 젠장! 그래도 내 동생인 걸 어쩌라고요!”
“전 소올직히 해연 길드장이 제일 잘생기긴 한 거 같아요. 얼굴만.”
“그 가게는 두부조림이 맛있습니다.”
“내가 잘못한 건가?”
“크리스마스엔 아무 데도 안 가요.”
짤막짤막한 목소리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별 내용 없는 잡담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래도 반가웠다. 그리고 한유진은 다시 혼자 서 있었다.
“추운 건 딱 질색인데. 다리 쑤시단 말이야.”
한숨을 내쉬면서 주먹으로 무릎을 가볍게 두드린다. 다리는 여전히 절었고 별다른 희망도 없었다. 상승하는 던전 난이도와 함께 헌터계 분위기도 팍팍해져 갔다. 도하민이 내게 헌터들 많이 모이는 곳은 피하라고 충고해 줄 정도였다. 화풀이 대상이 되기 십상이었으니까.
한유진이 걸어갔다. 기억에 없는 이들도, 기억에 있는 이들도 한유진을 스치고 지나갔다. 계속해서 혼자 남게 되어도 어찌어찌 버텨 냈다.
“아, 감사합니다.”
따뜻한 커피가 담긴 종이컵이 한유진에게 내밀어졌다. 미소 지으며 꾸벅 고개도 숙인다. 상처투성이였지만 웃을 일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한유진은 그렇게 살았다. 보통의 사람들이 그렇듯이.
“…형.”
그러다가.
“괜찮아?”
한유현이 한유진을 감쌌다.
-크르르르르.
용의 목울림 사이로 검붉은 불꽃과 피비린내가 뒤섞였다. 동생은 미소 짓고 있었다. 나는, 내 얼굴은 엉망이었다. 담담하게 대꾸했었던 거 같은데, 아니었다.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정말로 저랬을까. 유현이에게 널 걱정하고 있다고 표정으로나마 말해 주었을까. 어릴 때와 똑같이, 동생을 사랑하고 있었다고.
한유진이 쓰러지는 한유현을 끌어안았다. 울 것 같은 얼굴이었다.
“…괜찮아, 형은.”
내가 대신 중얼거렸다. 내 기억이잖아, 제발 괜찮다고 해.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해. 진짜가 아니라도, 그래도. 하지만 한유진은 말하지 못했다. 이런 식의 자기만족은 용납할 수 없다는 듯이 바라 마지않는 단 한 마디조차 내뱉지 않았다.
주위가 어두워졌다. 막을 내리듯이 까맣게 물든다. 뜨거운 무언가를 삼킨 듯 목구멍이 아팠다.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묶여 있지 않았더라면 분명 참지 못하고 뛰어들었을 것이다.
그렇게.
[그리고 한유진은 어찌저찌 운 좋게 5년 전 과거로 돌아가게 되었답니다~☆]자막이 떴다. 까만 화면에 자막이. 영상은 없고 자막만……. 발랄한 자막에 어이가 없어 꽉 막혔던 숨이 토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