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596
594화 파티 끝 (3)
“요정용은 내 소유 몬스터다!”
채터박스가 허튼짓할세라 재빨리 외쳤다. 결이가 내 어깨 위에 내려앉으며 목을 한껏 끌어안아왔다.
“9분.”
다행히 채터박스는 갑자기 나타난 몬스터에게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내가 무슨 짓을 하든 소용없을 거라고 자신하는 듯했다. 은혜를 꺼내 손목에 찼다.
“너, 여기 어떻게 온 거야?”
무해의 왕이 몸을 숙여 결이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결이가 날개를 파르르 떨었다.
“방금 그 공간이동, 초월자의 힘은 아닌 것 같았는데.”
결이는 대답 대신 나를 올려다보았다. 초월자의 힘이 아닌 듯하다니, 그 말이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지금은 딴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결아, 도와줘.”
– …응, 아빠.
금색 눈이 깜박였다. 내 몸에 무리가 갈까 봐 걱정하는 눈치였지만 결이는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더더욱 무사히 살아 돌아가야지.
“…윽.”
요정용의 마력이 나를 감싸고, 둔해졌던 마나 각인이 다시금 선명하게 감각을 끌어올린다. 내 몸에 깃들었던 무해의 왕의 힘을, 그 흔적을 빠르게 더듬어 갔다.
끝없이 펼쳐진 안개. 안개를 이루는 미세한 물방울 하나하나가 모두 기억이었다. 사람들의 기억이 안개 속에 흘러들어 오고 연결되었다. 그리고 그 기억들을.
[삼켜.]루가 폐야의 목소리가 내 머릿속에 울렸다.
[우리의 양분은 기억. 기억을 흡수하여 힘을 얻게 되지. 내가 종속시켰던 네 세계의 인간을 기억하니?]최석원. 무해의 왕과 계약했던 S급 헌터. 최석원은 안개를 퍼뜨려 사람들을 기억을 삼키고 SS급의 몬스터로 변했었다. 절반의 수명까지 내어주고 SSS급까지 성장했다가, 내 함정에 빠져 인형 기사의 손에 죽었다.
그때는 고작해야 나라 하나는커녕, 동네 한 곳만 삼켰었다. 하지만 지금은 전 세계에 연결되어 있다. 그 기억들을 전부 먹어치운다면.
[충고컨대 너무 욕심내지 마렴.]루가 폐야가 웃음기 띤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네가 삼킬 수 있는 기억은 너로부터 비롯된 것들뿐이야. 그 모든 기억을 빼앗는다면 너도 무사하긴 힘들단다~] [뭐? 그게 무슨 소리지?] [기억은 상대적인 것이야. 하늘을 보고 흐르는 구름과 반짝이는 햇빛을 기억하고, 강을 보고 뛰어오르는 물고기와 날갯짓하는 새를 기억하지. 대부분의 기억은 내가 누군가를, 무언가를 접하여 탄생해. 온전히 ‘나’뿐인 기억은 거의 없어.]세상에 퍼져 있는 수를 헤아릴 수 없는 기억들이 느껴졌다. 모두 나를 담고 있었지만, 그 기억은 내 것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잊힌다는 것은 그 존재의 완전한 소멸을 의미하기도 해. 물론 평소에는 몇몇 사람이 널 잊는다고 해서 네게 직접적인 타격이 가는 건 아니야. 하지만 의도적으로 지워내는 건 달라.]촉수가 달린 손가락이 내 뺨을 쿡 찔렀다.
[수많은 사람이 일순, 동시에 널 잊어버리게 되면, 네 존재 자체가 이 세계에서 지워져 버릴 수도 있어.]…어째서인지 순간, 내 안위가 아닌 스물다섯 살의 유현이가 떠올랐다. 루가 폐야가 그렇게 굳을 거 없다면서 웃었다.
[어차피 네 능력으론 내가 보여 준 한유진의 기억 이상은 삼키기 힘들겠지만~ 혹시나 싶어 말해 두는 거야.] [네가 보여 준 것만─ 잠깐만.]그걸 삼킨다는 소리는. 채터박스가 6분, 하고 말했다.
[그럼 내가 회귀한 사실도 사람들이 다 잊어버리게 된다는 소리야? 회귀 전의 내 모습도?] [등급이 낮은 사람들은~ 상급 각성자쯤 된다면 다 지워지진 않을 거야. 넌 존재가치는 S급보다 훨씬 높지만 스탯은 너무 낮아! 그러니 등급이나 존재가치가 높은 사람들 기억은 다 흡수하기 힘들어. 그들은 드문드문, 혹은 완벽하게 기억하게 되겠지.]그래도 천만다행이었다. 상급 헌터들의 기억은 남는다니까 꽤 골치 아파지긴 하겠지만, 이것만 해도 어디냐.
[여기서 무사히 살아나간다 해도 어떻게 수습하나 걱정이었는데 한숨 돌리겠네.] [하지만 감정은 남아.] […응?] [몸에 깃들었던, 너를 보고 느꼈던 감정. 기억이 완전히 사라져도 어떤 사람은 한유진을 동정키도 하며 어떤 사람은 이유 모를 분노를 느끼기도 하겠지. 누군가 회귀에 대해 주장한다면 더 쉽게 믿기도 할 거야. 반대로 더 강하게 거부할 수도 있지.]기억이란 그런 거야. 스치듯 지나가도 그 흔적을 남기지. 루가 폐야가 노래하듯 흥얼거렸다.
[기억을 지워 버린다 해도, 그 전으로 완벽히 돌아갈 수는 없어. 이미 달라져 버렸으니까.]분명 앞으로,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4분.”
채터박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기억들이 내게 밀려들었다. 모두 같은 것을 보았다. 하지만 받아들인 기억은 전부 달랐다. 회귀 전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사람도 있었으며, 회귀 후의 이야기에 더 관심을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내 이야기지만 다른 사람이 더 선명하게 남은 기억 또한 느껴졌다. 유현이의 죽음에 슬퍼하고 예림이의 활약에 기뻐한다. 피스에게 푹 빠진 사람도 있었다. 본 것을 믿지 못하고 파티의 연장선, 만들어진 쇼 정도로 받아들인 기억도 많았다.
[이것 봐, 내가 완전 악당처럼 보여.]한유진이 비열한 표정으로 한유현을 부려먹고 있었다. 회귀 전의 헛소리들이 떠오르는 기억에 웃음이 조금 나왔다. 직접적으로 다 보여 줘도 끝까지 이렇게 믿으려 하는 사람도 있구나.
[…저게 진짜 나야?]반면에 툭 가볍게 치면 바로 쓰러질 것처럼 연약한 한유진도 보였다. 같은 사람인가 의심갈 정도로 다르게 변한 외모들도 많았다. 끝없이 쏟아지는 기억들에 머리가 아파왔다. 무해의 왕이 내 어깨를 두드렸다.
[전부 볼 순 없어. 넌 밥 먹으면서 쌀알 하나하나 분해하고 살피니?]그건 당연히 아니지. 떠올린 밥 한술의 안쪽에 있는 알알은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삼킨다. 기억을 확인하는 것을 멈추고 물을 들이켜듯 그대로 받아들였다.
“2분.”
결이가 내 어깨를 꽉 붙들었다. 기억의 안개가 쌓여간다. 무해의 왕, 루가 폐야가 휘둘렀던 힘. 위협적으로 전신을 조여오던 채터박스의 존재감이 옅어졌다. 여전히 나보다는 강하다. 그러나 못 해볼 정도는 아니라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호랑이 앞의 토끼에서 표범 정도는 된 것 같았다.
“1분.”
채터박스의 입술이 뚜렷한 곡선을 그린다. 마치 익어가는 열매를 앞에 둔 듯 나를 바라보았다.
“이건 또, 뭘까요.”
느끼고 있을 것이다. 내게 무해의 왕과 비슷한 힘이 모이고 있다는 것을. 채터박스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나의 안개.”
뭐래.
“처음부터 끝까지 개소리시지. 여기에 네 건 없어!”
남은 1분이 완전히 소모되기 전, 채터박스를 향해 뛰어들었다. 희게 퍼져나간 안개가 나를 따라 움직이고 채터박스의 다리를 휘감는다. 짜증 나는 얼굴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퍽, 소리가 났다면 좋겠지만 놈은 가볍게 피해 버렸다. 그와 동시에.
쇄액!
검붉은 줄들이 날아들었다. 내가 아닌 채터박스를 노리고서.
“무해의 왕의, 지팡이.”
채터박스가 만족스런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크르릉, 몬스터들이 줄에 맞서 덤벼들었다가 산산조각 나 사라진다. 주인이 바뀐 지팡이가 내 손에 쥐어졌다.
“거절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스스로 안개를 받아들였군요.”
“멍청아, 이건 내 힘이야.”
“안개의 힘입니다.”
“내가 쌓아 온 내 기억이다.”
채터박스가 선심 쓰듯 던져 준 힘이 아니다. 한유진이 하나하나 쌓아 올린 기억의 결과물이었다. 하지만 채터박스 놈은 들은 척도 하질 않았다. 흡족해하며 나를 살펴볼 뿐이었다. 그 태도에 아직 여유가 흘러넘쳤다. 나 또한 알고 있었다. 여전히 채터박스가 더 유리하다는 사실을.
[…최석원은 그 정도 기억으로 SSS급까지 되었는데, 나 정도면 L급은 가볍게 넘겨야 하는 거 아니냐.] [기본 스탯이 낮잖아. 그리고 걘 내게 종속되고 수명도 바쳤다고~]그놈의 스탯. 긴장감을 늦추지 않은 채 채터박스를 주시했다. 놈은 여전히 나를 죽일 생각은 없을 터였다.
“결아, 꼭 붙잡고 있어야 해.”
– 응, 아빠.
지팡이를 내 옆에 띄우고 군림자의 검을 꺼내들─
화르륵!
“앗!”
검집에서 검날이 살짝 빠져나오기가 무섭게 불길이 안개와 부딪쳤다. 당황하며 검을 다시 인벤토리에 넣었다.
[속성이 안 맞잖니. 안개는 일단 물 쪽이야. 그래도 너무 까칠하긴 하네. 걔 성격 좀 나쁜가 봐?]흑룡 성격이 좋아 보이진 않았지. 대신 인벤토리에 있던 다른 A급 검을 꺼내 들었다. 채터박스는 아직 빈손이었다. 미로의 마법사, 라고 했으니 근접전에 약할까. 하지만 모를─
“이제 정말로.”
“……!”
채터박스가 내 앞에 뚝 떨어지듯 나타났다. 공간이동? 뒤로 뛰어 피하려는 순간, 마력 감각과 전투예지가 경고를 해왔다. 급히 발의 방향을 돌리며 앞으로 몸을 숙였다. 내 목이 있던 곳에 흰 장갑을 낀 손이 불쑥 나타났다. 허공을 잡아챈 손길이 다시금 사라진다. 앞으로 한 바퀴 굴러 거리를 벌리며 안개를 주위로 가득 끌어들었다.
안개 너머로 장신의 사내가 흐릿하게 모습을 나타냈다. 공간이동이 특기긴 했지. 성현제의 전투예지도 공간이동에는 약했다. 예측과 이동의 시간차가 극히 적었기에 반격을 할 틈이 없었다. 기껏해야 아슬아슬하게 피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채터박스 약점 같은 거 몰라?] [저건 내가 알던 채터박스가 아닌걸. 그건 다 버렸다잖아.]루가 폐야의 말대로 과거의 채터박스는 제물로써 사라졌다. 그럼 지금 마법사도 아닌 건가? 채터박스, 파티 주최자.
“외양만 손보면 되겠군요.”
채터박스의 손이 가볍게 흔들렸다. 바람이 일었다. 안개를 헤집으며 수십 개의 칼날처럼 날카롭게 쏟아져 내린다.
카강! 캉!
검을 휘둘러 바람을 쳐냈다. 바람이 스치는 것만으로 땅이 파헤쳐지고 나무가 갈라진다. 바위의 표면이 드드득 갈려나가는 광경에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내 피부를 벗겨내려는 건가.
“팩 이상은 할 생각 없거든!”
이래 봬도 피부는 깨끗한 편이라! 내 쪽으로 쓰러지는 나무줄기를 강하게 걷어찼다. 공중을 날아간 나무가 채터박스의 앞에서 산산조각 난다. 흩어지는 나무 파편들 사이로 뛰어들었다. 검붉은 줄이 어지럽게 얽히며 채터박스를 묶으려 했으나 그의 모습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텅 빈 자리에 내려서며 재빠르게 주위를 살폈다. 저만치 공간이동한 놈이 하얀색 드레스를 펼쳐 들었다.
“서랍 속의 인테리어가 궁금하군요.”
젠장, 공간이동 완전 사기잖아. 게다가 무해의 왕의 힘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감이 오질 않았다. 몸뚱이는 강화시켰는데, 기억을 전투에 응용할 방법이 있나. 루가 폐야의 환영이라도 만들어 봐?
[그걸 왜 그렇게 써?]루가 폐야가 지팡이를 가리키며 의아해했다.
[…모조품이라 공간이동은 못 해.]전에 루가 폐야가 썼을 때처럼 공간이동 시킬 수 있다면 유용하겠지만.
[공간이동이 아니야. 붉은 안개나무의 잎가지는 내가 키워 낸 기억의 나무지. 가지 하나하나가 모두 기억으로, 기억의 재생이라고.]뭔 소리냐. 공간이동처럼 보였었는데, 아니라고?
쿠르릉, 땅이 흔들렸다. 불길한 느낌에 급히 공중으로 뛰어올라 발아래에 안개를 짙게 모았다. 안개를 디딤돌 삼아 달려 나가기 무섭게 땅이 아래로 푹 꺼지며 둥근 공간이 나타났다. 우우웅, 모터 소리를 내며 검은 구멍이 주위의 흙과 안개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내 안개!
[가지는 원래 그곳에 있었어. 그 과거의 기억을 되살려 내는 거지!]“뭐?”
폭탄을 꺼내 구멍에 던졌다. 쾅! 폭발과 함께 빨려 들어가던 안개가 멈칫했다. 지팡이에 늘어진 금속성 줄을 전부 구멍을 향해 쏘아 보냈다. 캉, 캉캉! 요란한 소리가 연속적으로 울리며 둥근 공간이 조금씩 갈라지다가 와장창, 부서졌다.
– 아빠!
겨우 한숨 돌리나 싶은 그때, 뒷목이 선득해졌다. 내 바로 뒤에 나타난 채터박스가 팔을 잡아채려 한다. 발아래의 안개를 없애 그대로 아래로 뚝 떨어져 놈의 손길을 피했다.
“설명, 좀!”
[종속은 시켜도 제자는 들인 적 없는데~]“제자는 무슨─”
[싫어?]“선생님!”
바닥을 데구르 구르며 외쳤다. 파바박, 내가 있던 자리마다 날카로운 쇳조각이 들어박혔다. 수술용 메스와 비슷하게 생긴 것들이었다.
[공간이동이 아니라 나타나는 거야. 테이블 위에 사과가 있었어. 그 사과를 먹어 버렸지만, 사과가 테이블에 있었던 기억은 그대로잖아. 그 기억을 다시 끌어내는 거지. 현실로.]“근접전을 좋아하는 듯하더군요.”
다시 내 앞에 나타난 채터박스가 춤이라도 신청하듯 손을 뻗어왔다. 그 손을 잡는 대신 칼을 휘둘렀다. 채터박스의 손바닥이 뒤집히고 손등이 칼날을 퉁, 강하게 쳐낸다. 반동으로 비틀거리는 나를 향해 다른 쪽 손을 뻗어온다. 결이가 으르렁거리고 무릎 꿇듯 몸을 낮추어 손길을 피했다. 한 손으로 땅을 짚으며 채터박스의 다리를 향해 발길질을 날렸지만 역시나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기억, 의.”
현실화. 체인질링의 능력이 생각났다. 전에 결이가 자기 힘은 무해의 왕의 능력을 증폭시켜 주는 셈이기에 상성이 나쁘다고도 했었지. 다시 말해 지금의 내게도 도움이 된다는 뜻이었다.
“사람들의 시선을 통해 힘을 얻는 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채터박스가 두 팔을 벌렸다. 지금 이 광경은 여전히 전 세계에 비춰지고 있었다. 채터박스의 주위로 하얀 빛무리가 나타난다. 뭘 하려─
퍽!
“큭!”
돌연 등에 강한 충격이 느껴졌다. 몸을 빙글 돌리며 물러서는 내 눈에 채터박스의 모습이 비춰졌다. 잠깐만, 저기도 있는데?
“하나도 징글징글하다고!”
“한 개체가 수많은 공간에 동시에 나타난다. 방송의 특징 중 한 가지지요.”
검을 휘둘렀다. 다행히 채터박스의 영상은 쉽게 갈라지고 흐려져 사라졌다. 본체에 비해 훨씬 약했다. 문제는 본체만 감지될 뿐 복사본, 그러니까 방송 영상은 움직임이 느껴지질 않았다.
“또 무엇이 있을까요. 무대의 전환?”
철퍽, 딛고 있던 땅이 늪지대가 되었다. 발을 빼기도 전에 다시 바뀌며 금속성 바닥이 되었다. 내 두 다리가 그대로 박힌 채로. 미친.
“방송 채널의 주인, 파티 주최자로서의 경력은 짧기에 아직 미숙한 부분이 있습니다.”
자기 능력을 잘 모른다는 건가. 카가강! 검과 지팡이의 줄로 금속 바닥을 파헤쳤다.
[내가 너와 싸웠을 때는, 내 힘의 특성상 불리할 수밖에 없었어. 난 이 세계에 제대로 발 디딘 적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넌 이곳에서 싸웠잖아?]네 기억을 되살려 내. 루가 폐야가 말했다. 여기 있던, 기억. 채터박스의 영상들이 나타났다. 흘러넘치는 안개들 사이로.
파지직!
강력한 빛이 튀었다. 그래 봤자 S급의 전류였지만, 빛이 튐과 동시에 기억을 다시 재생시켰다. 계속해서, 내 힘이 닿는 데까지, 수십 번을. 체인질링의 증폭 효과까지 더해 겹쳐지고 겹쳐지는 빛에 채터박스조차 눈을 감았다. 영상들이 산산조각 나며 사라진다. 지팡이를 향해 손을 뻗었다.
[기억은 모든 곳에 있어. 그 지팡이의 줄은 기억 그 자체라고 했지?]그러니까. 수십 개의 줄이 사라졌다. 그리고 나타났다. 채터박스가 공간이동 했지만.
찌이익!
그곳에도 기억은 있었다. 채터박스의 옷자락이 길게 찢어졌다. 이어.
차르륵-.
수십 개의 금빛 사슬이 사방에 퍼져 채터박스의 공간이동을 막으며.
콰아앙!
원래 수십 개였던, 이제는 천 개에 가까워진 폭탄이 단번에 터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