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603
601화 여기가 어딘지 (1)
주섬주섬 자물쇠 푸는 소리에 이어 문이 열렸다. 아무런 대비 없는 어설픔이 느껴지는 행동에 설마 싶었지만.
‘…이런.’
안으로 들어온 사람은 평범한 남자였다. 비각성자는 아니었지만 F급에 차림새도 평범했다. 미국도, 우리 동네도 아닌 듯하고, 아랍계? 하지만 미국에는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살고 있으니 미국인일 수도 있었다.
어쨌든 지금까지의 납치범들과는 좀 다른 타입이었다. 정확히는 회귀 후의, 말이다.
‘회귀 전에야 하급 헌터들이 혹시나 싶어서 접근해 오기도 했지만.’
지금은 막 회귀 했을 때의 중급 외엔 S급들 위주였지. 납치범에도 나름 급이 있다, 라고 해봤자 납치범이다만. 아무튼 어쩐지 경비도 하나 없고 감시카메라 달랑 하나뿐이더라 했더니.
“포션, 포션.”
침대로 다가온 남자가 나를 향해 포션을 내밀었다. 병 모양새가 각국의 헌터 협회에서 관리하는 정식 포션은 아니었다. 하급 표시가 붙은 밀매품. 그것도 인벤토리에 들어가지 않는 일반 병에 담긴 포션이었다. 던전 부산물 제작 병은 은근히 비싸니까.
“포션, 노.”
보아하니 통역 아이템도 없는 듯하고, 고개를 저어 의사를 표했다. 영어 알아들을까? 밀매품을 쓰려면 간단한 영어는 필수에 가깝긴 한데.
“노, 포션! 음, 덴져!”
문제는 나도 영어는 잘 못 한다는 것이었다. 성현제가 뜯어낸 통역 아이템은 다시 주워다 인벤토리에 넣어 놨는데. 꺼낼 수도 없거니와 꺼내면 또 빼앗기겠지.
“포션, 힐링!”
남자가 재차 포션을 내밀며 말했다. 아니, 위험하다니까 나한테는. 그리고 내 인벤토리에 더 좋은 포션 많아.
“드래곤! 아이 원트 페어리 드래곤! 힐링 드래곤! 드래곤 스킬 큐어 미!”
일단 결이를 찾기 위해 나는 내 드래곤이 필요하다고 말해 보았다. 다행히 내 말을 그럭저럭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플리즈 드래곤을 외치며 몇 번 기침을 해보이자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곤 밖으로 나갔다. 문을 닫기는 했지만 잠그지는 않는 게 역시 어설프다.
잠시 뒤 남자가 상자 하나를 들고 나타났다. 안에서 파닥파닥 날갯짓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아이고, 결아!
“드래곤.”
“예스! 베리 땡큐! 유 굿 가이! 박스 오픈 플리즈!”
상자가 열리고 안에서 은빛 도는 요정용이 파라락 날아올랐다. 씩씩대던 결이가 나를 보곤 분홍빛으로 변했다.
– 아!
빠, 는 입모양만으로 외치곤 단숨에 내게 날아들었다. 남자를 향해 미소 지어 보이자 남자도 이를 하얗게 드러내며 웃는다. 결이를 쓰다듬어주고 싶은데 팔이 묶였으니 원. 혹시 팔 좀 풀어주지 않으려나 싶어 들어 보이자 남자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이것까진 안 된다는 거구만.
“어… 마이 암 페인. 백! 체스트 쪽 플리즈.”
앞으로 돌려라도 달라고는 뭐라고 말하냐. 조금만 풀어달라고 해보았지만 남자는 거절했다.
“힐링 드래곤. 오케이.”
그리곤 결이를 손짓하더니 문을 잠그고 가 버렸다. 결이가 내 얼굴 가까이로 다가붙으며 속삭였다.
– 아빠, 괜찮아? 이거 피잖아!
“괜찮아. 살다 보면 피도 가끔 토하고 그러는 거야. 원래 속에 고이는 게 더 위험해. 결이 넌 괜찮아? 나쁜 사람들이 괴롭히거나 하진 않았어?”
– 도망 못 치게 가둬만 놓았어. 아빠, 여기 날씨 따뜻해. 그리고 처음 듣는 말을 사용해.
“어떤 말?”
– …알라?
아랍인가. 물론 미국은 이하생략이니 미국일수도 있지만. 미국이었으면 좋겠다. 캘리포니아 한 번쯤 가보고 싶었어.
– 그래도 다른 세상은 아니니까, 아빠.
결이가 나를 엄하게 바라봐왔다.
– 이번엔 가만히 있어! 삼촌이 구하러 올 거야.
“아니, 하지만.”
– 저 사람들이 아빠를 해치진 않을 거잖아. 그러니까 그냥 있어도 돼. 결이도 안 도와줄 거야.
가늘게 떠지는 황금색 눈이 제법 단호했다. 성현제랑 비슷하다고 하면 화내겠지. 그보다 결이만 되찾으면 묶인 거 가볍게 풀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빠 팔 아픈데.”
– 팔 아픈 건 고치기 쉬워. 괜찮아.
딱 잘라 말하면서도 결이가 앞발로 내 팔을 주물거렸다. 나 혼자서는 묶인 걸 풀 수가 없는데. 얌전히 있는다고 해도 아이템은 찾아야 한다고. 특히 은혜는.
‘이어링 외엔 내게 귀속된 것들이라 아직 보관하고 있겠지.’
다른 사람에게는 무용지물이었다. 고개를 들어 닫힌 문 쪽을 바라보았다. 벽지 없는 흙벽에 바닥도 그냥 땅에 가까웠다. 갑자기 툭 떨어진 요즈음 참 유명한 F급 헌터를 발견했습니다~ 좋게 돌봐주고 집에 연락하게 해줄 사람도 있겠지만 불행히도 그건 아닌 듯하고.
‘몸값 정도는 내어줄 수 있는데.’
척 봐도 넉넉한 형편은 아닌 듯했다. 그러니 설득만 잘 하면 말로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일단은 다시 누군가 들어오길 기다려야겠구만.
“음, 결아. 아무래도 네 동생들이 생긴 것 같아.”
아빠가 같으니까 동생이라고 볼 수 있겠지. 내 팔을 주물거리던 결이가 움직임을 딱 멈췄다. 금색 눈이 깜박, 나를 돌아보았다.
– 있는 거, 알고는 있었는데. 그냥 마수 아니야?
“흑룡이야 원래 마수라기보다는 용종족? 같은 거였거든. 처음부터 말도 했고, 또 유현이 피도 들어갔으니. 그런데 깜둥이, 꼬마도 말 잘 하더라고. 흑룡이 인간 모습으로 변하는 것도 가르쳐 줬나 봐.”
꼬마는 나도 의외였다. 잘해야 평범한 상급 몬스터쯤 될 줄 알았는데. 흑룡의 영향을 받아서일까.
“그래서… 아마 정식으로 이름을 지어 주면 결이 너처럼 독립적인 존재가 될 것 같은데.”
– 지금은 안 돼.
결이가 정색했다.
– 아빠 혼자서 지어주면 안 돼. 삼촌이나 고모랑 같이 지어.
“…나도 그럴 생각이긴 하다만 결이 네 이름은 내가 지었잖아.”
대답 대신 요정용의 날개가 파르르 떨렸다.
– 결이 이름은, 좋아하지만. 아무튼 안 돼. …그런데 아빠.
결이가 조금 머뭇거리며 제 꼬리를 앞발로 잡아 만지작거렸다.
– 아빤 그 애들은 안 싫어하지?
“응? 당연히 안 싫어하지.”
– 결이는, 싫어했잖아. 삼촌을 죽인 초월자의 마석에서, 결이가 태어났으니까.
“…아니야.”
팔이 묶여 결이를 안아 줄 수도 쓰다듬어 줄 수도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내가 디아르마를 싫어한 건 사실이지만, 그건 결이 너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 마석을 조합해 마수를 만들어 낸 것도, 그렇게 태어난 마수를 이용하려 한 것도 나였으니까. 결이 네겐 아무런 책임도 잘못도 없어. 그냥, 아빠가 미안해.”
– 아빠 잘못도 아니야. 만약, 아빠를 해친 사람한테서 태어났다고 하면 결이도 분명 그 앨 싫어할 테니까. …싫을 수밖에 없잖아. 아무 잘못 없다고 해도.
결이의 귀가 시무룩하게 쳐졌다. 지금까지도 계속 신경 쓰고 있었구나. …당연하겠지. 어떻게 쉽게 잊고 넘길 수가 있을까.
“결이 말대로 잘못된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마음은 쉽게 바뀌질 않아. 사람의 마음이 그래. 하지만 결아, 아빠는 너를 직접 본 그 순간부터 단 한 번도 결이를 싫어한 적이 없어. 결이는 결이지 그 나쁜 드래곤과는 완전히 달랐거든.”
– …응. 결이는 결이야.
“만약에, 아주 만약에 디아르마의 모습이 결이에게 남아 있었더라면. 그럼 그래선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결이를 조금쯤 꺼렸을지도 몰라.”
고민하다가 솔직하게 말했다. 이미 결이도 알고 있는 일을 좋게 감추기만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결국은 결이 그 자체를 보고 좋아하게 되었겠지. 선입견 같은 건 금방 사라지고 지금과 똑같이 결이를 사랑했을 거야.”
– …결이도 알아. 그랬을 거라고 생각해.
안다면서도 결이가 조금 울먹이며 머리를 내 팔에 꾹 누르듯 묻었다. 시작이 어찌 되었든 지금과 같을 거라고 알고는 있었다 해도, 말로 직접 듣는 것과는 다르다. 말을, 대화를 해야지, 역시.
– 처음엔 쪼금 무서웠어. 그래서 아빠한테 이름을 바로 달라고 하지 않았어. 원래는 태어나자마자 받는 게 보통인데, 이름이 생기면 아빠한테서 떨어지게 되니까. 그러니까 아빠 먼저 도와줘서, 결이가 쓸모 있다고 생각하면 이름을 받아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어.
“…네가 아무런 힘이 없는 평범한 아이라고 해도, 결이 널 버리진 않아. 절대로.”
– 응. 근데 바로 지어 주지 않아서 다행인 거 같아. 그땐 아빠 혼자였잖아.
이 녀석이. 그래도 기분이 풀렸는지 결이가 방글방글 웃으며 내 뺨에 자기 뺨을 문질렀다.
– 솔직히 동생들이 부러워. 하지만 잘해 줄 거야. 동생들도 아빠를 많이 좋아하겠지. 결이도 좋아해 줬으면 좋겠다.
“어, 으응.”
꼬마는 괜찮을 거 같은데 흑룡이 살짝 걱정되었다. 둘이 싸우는 건 아니겠지.
“흑룡은, 예전 기억도 있는 거 같아서 날 그렇게 많이 따르진 않을 거야. 아마.”
– 그래도 아빠니까 좋아할 거야!
“…아빠라고 다 좋아하는 건, 아니라서.”
– 그치만 아빠는 좋은 아빠인걸.
결이가 눈을 반짝거렸다. 그게 말이다… 첫 만남에서 보호자 자격 없다는 소리를 들었단다. 그나마 유현이 영향이 있어서 그 정도였지 아니었으면 보호자 취급 자체를 안 했겠지.
“결아, 아쉽게도 세상에는 아빠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아. 다들 아빠를 좋아하는 건 아니란다.”
– 결이도 알아. 아빠랑 싸운 사람들도 많잖아. 싸우지도 않았는데 싫어하는 사람들은 이상하지만.
“그러게나 말이다.”
뭐 피해 입은 거 하나 없으면서도 남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나도 왜 그런 건지 모르겠다.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 흠흠. 일단 난 들킨 건 없으니까. 솔직히 대부분 정당방위였고.
비록 갇히고 묶인 채였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결이와 한가한 시간을 보냈다. 채터박스가 죽은 것은 확실하니 바깥일도 크게 걱정되진 않았다. 초월자가 간섭한 것만 아니라면 다들 위험한 일 없을 테니까. 오히려 날 걱정하고 있겠지.
– 이건 절대 비밀인데, 결이 인간일 때 얼굴은 마음에 들어.
“진짜? 세성 길드장 싫어해서 닮은 것도 싫은 줄 알았는데.”
– 그러니까 그거만 없어지면 돼! 완전히 결이 거 되는 거야. 닮았다는 소리도 안 듣겠지.
결이가 코끝을 치켜들며 말했다. 명답이다. 성현제 어릴 적 얼굴이 귀엽기는 하니까.
– 그리고, 그… 결이에게 아주 조금 영향을 미친 사람이 이번에, 도와주긴 했어.
그거라는 소리를 빙빙 돌려가며 결이가 말했다. 성현제 말이겠지.
– 공간이동 말이야.
“…뭐? 그걸 성현제가 했다고? 어떻게?”
– 아마, 옛날에 가지고 있었던 스킬일 거야. 그래서 아플지도 모르는데.
가슴이 철렁했다. 결이가 와줘서 살았긴 했지만 과거의 성현제가 가졌던 스킬이라니. 망할, 그 인간 무사한 거 맞아?
– 결이는 인정하긴 싫지만 일단 같은 존재였을 때가 있었으니까. 그래서 다른 공간에서도 결이를 아빠한테로 옮겨 줄 수 있었을 거야. 할아버지랑 어떻게 연락해서, 도움도 받은 거 같아.
“그럼 혹시 채터박스 목에 나타났던 검도?”
결이가 머리를 저었다.
– 그건 할아버지 검이었을걸? 삼촌 검이랑 반응했잖아. 왜 채터박스 목에서 나타난 건지는 결이도 모르겠지만.
마치 누군가 미리 목에 꽂아 놓았던 것 같았다. 그 검이 채터박스를 무력하게 만들어 주지 않았더라면 놈을 완전히 죽이긴 힘들었겠지. 아무튼 속이 답답해졌다. 도와주는 건 고맙지만 자기 몸도 챙겨야지!
– 그러니까 아빠. 그… 성현제, 한테는 미안하지만 가까이 가지 마. 절대로.
“응? 왜?”
– 상태가 많이 안 좋으면, 본능적으로 아빠를 삼키려 들지도 몰라.
결이는 진지하게 말했지만 무슨 소리인지 전혀 짐작 가질 않았다. 혹시 성현제한테 아프면 사람 잡아먹는 식인 습성 같은 거라도 있는 건가.
“성현제가 왜 아빠를 잡아먹으려고 할 거라는 거야?”
– 그런 게 있어! 아무튼 위험하니까 멀리서, 삼촌이랑 고모랑 이모랑 옆집 아저씨랑 공무원 아저씨랑 다 있을 때 괜찮냐고 물어봐. 아빤 절대 그냥은 못 지나칠 테니까.
흑룡도 모르는 편이 낫다느니 하더니, 왜 다들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거지. 말은 못 해주지만 약속 하라는 결이의 조름에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성현제 몸조리 잘하고 있겠지. 뭐, 소영 씨에 에블린 씨도 있으니 길드장 알아서 잘 챙겨 주… 줄까? 그래, 송 실장님이 계시니까 대충 버려두지는 않을 거라고 믿는다. 유현이가 너무 날뛰면 안 될 텐데. 유현아, 형 무사하단다. 예림아, 유현이랑 사이좋게 지내렴.
시간이 얼마쯤 지났을까, 다시 누군가가 문을 열었다. 이번에는 한 명이 아니었다. 아까 봤던 남자를 포함해 두 명이 더 들어왔다. 그중 한 명이 내게 다가와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그리곤 무어라 말을 하고.
[나는 당신을 습득했습니다.]휴대폰이 기계음으로 된 한국어를 내뱉었다. 야, 요즘 번역기 좋네.
[너는 나를 따른다.]아닌가, 안 좋나.
[나는 팔고 있다. 일어나십시오.]“이 상태론 일어나기 힘들어.”
[용이 도망갑니까?]“노. 팔로우 미. 맞나? 앤드 헬프 미.”
[일어나.]“아 헬프 미! 혼자 못 일어난다고.”
그들 중 하나가 나를 부축해 일으켜 주었다. 결이가 내 어깨에 착 달라붙듯 앉았다.
[저를 따라오세요.]분명 저렇게 공손히 말했을 리 없는데 기분이 묘했다. 복도를 따라 얼마쯤 걸어가다가 방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흰 두건 같은 걸 쓴 사람들이 있었다. 헉, 설마 여기 진짜 사우디 뭐 그런 곳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