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608
606화 결혼 성수기 (4)
“중동?”
문현아가 박예림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한유현 또한 힐끗 쳐다보았지만 사진 속에 한유진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곤 이내 관심을 잃었다.
“여기, 세성 아저씨가 엄청 다정하게 바라보고 있는 이 언니요. 20대 맞죠? 그리고 이 꼬부랑 글 아랍어 같은데, 맞죠?”
“어, 맞는 거 같다. 나도 아랍어는 전혀 몰라서. 옷도 그쪽 옷 같은데.”
“아저씨랑 함께 있는 건 아니었네요……. 그래도 세성 아저씨라도 소식을 알게 되어서 다행이에요.”
“성현제야 걱정할 필요가 없지. 근데 성현제 확실한가. 어딘가 조금 다른 듯도─”
– 꺄앙!
그때 피스가 갑자기 풀쩍 뛰어올랐다. 날개를 꺼내 박예림 주위를 빙글 돌고는 그녀가 들고 있는 휴대폰을 향해 덤벼든다.
“악, 피스야! 폰 부서져!”
– 끄우웅, 끼앙!
피스의 앞발이 폰을 툭툭 치고 뺨을 액정에 문지르기도 했다. 박예림이 당혹해하며 한유현을 돌아보았다.
“한유현! 피스가 이상해졌어!”
한유현이 손을 뻗어 피스를 휴대폰에서 떼어냈다. 액정 너머의 사진을 재차 자세히 확인한 그가 입을 열었다.
“형이야.”
– 끼야앙!
“뭐?”
박예림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곤 더욱 커진 눈으로 외쳤다.
“아저씨 진짜 여자 됐어?! 이 언니가 아저씨라고? 완전 다른데!”
“…진짜야, 도련님? 형님이 정말로?”
문현아 또한 놀람을 금치 못하며 휴대폰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어, 그래도 형님 멋지게 바뀌긴 했네. 키도 커지고… 건강해 보이고.”
“그, 그쵸? 아저, 언니…가 다친 곳 없이 무사하면 됐죠. 아 잘됐다! 다행이다!”
당황한 두 사람을 바라보던 한유현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 여자 말고 고양이 말입니다.”
“…고양이? 형님이?”
“우선 피스가 반응했습니다. 이 사진 속에 형이 있다는 뜻이겠죠. 그리고 사진 속의 세성 길드장은 당사자 혹은 요정용일 겁니다.”
“아, 맞아. 결이일 수도 있겠다!”
박예림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머리색이 분홍색은 아니지만 은색으로 보여. 그럼 결이 맞을까? 언니는 어때요?”
“나도 은색으로 보이네.”
성현제의 머리카락은 바랜 색상이라는 것 외엔 보는 사람마다 다르게 느껴졌다. 그러니 사진 속의 성현제는 요정용일 가능성이 높았다.
“세성 길드장의 시선은 여자가 아닌 고양이를 향하고 있습니다. 그가 이렇게 관심을 보이는 상대는 형과 송 실장님 외엔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 요정용이라면 형뿐일 테고요.”
“하긴 그렇지.”
문현아 또한 작게 끄덕거렸다.
“성현제가 다른 사람을 보며 이런 얼굴을 할 리 없을 테니. 송 실장은 여기 있으니 남은 건 형님일 수밖에.”
“마지막으로 형은 고양잇과 마수로 변한 적이 있습니다. 피스처럼 소형화가 가능할 수도 있겠죠.”
“그래, 그랬었지. 도련님 관찰력 좋은데.”
“아저씨 한정이에요, 아저씨 한정. 다른 사람은 쳐다도, 아! 그때 그 고양이!”
박예림이 테이블을 탕 내리치며 말했다.
“호텔에서! 아저씨 사라지고 고양이 지나갔었어요! 맞네, 그 고양이! 생긴 게 똑같아. 아저씨가 고양이로 변해서 빠져나간 거였구나!”
“그때 피스도 같이 사라졌었지. 그래서 사진 속의 형을 알아본 거였어.”
“아저씨가 확실하다면, 세성 아저씨도 세성 아저씨가 아니라 결이겠다. 마지막에 둘이 같이 있었고 아저씨가 결이를 혼자 둘 리 없잖아.”
“일단 형님은 찾은 건가. 예림아, SNS 주소 좀 보내줘. 정확히 어딘지 찾아봐 달라고 하게.”
“해연으로도 보내.”
해연과 브레이커 길드로부터 이내 답변이 왔다. 장소는 북아프리카, 사진 속의 여성은 S급 헌터 이사벨라 빈트 라시드.
“공주님이요? 우와─ 공주님이 S급으로 각성했다니!”
“정확히는 왕가에서 입양한 걸걸. 저 동네는 나도 잘은 모르지만 S급 헌터는 대부분 왕족으로 취급된다고 했어. 뭐라더라, 알라께서 내리신 축복이니 선택받은 고귀한 존재라나 뭐라나.”
“그럼 저도 중동 가면 공주 되는 거예요?”
“개종하면.”
브레이커 길드에서 보내온 자료를 확인하며 문현아가 말했다.
“하지만 추천은 못 해. S급이라 해도 여자가 무기 들고 몬스터 사냥하는 걸 좋지 않게 보는 시선이 많거든. 그런 관념이 심한 지역은 하급 여성 각성자는 있어도 여성 헌터는 없다고 하더라. 중급 이상이야 자기들도 살아야 하니 눈 슬쩍 감겠지만.”
“그게 뭐래요, 치사하게.”
“일단은… 세성 길드장과의 합류 목적으로 방문 요청 넣는 게 낫겠지. 무턱대고 달려들면 의심할 테니 차분하게 가자고, 도련님. 노아와 리에트는 바로 건너갈 수 있으니 연락, 노아에게만 우선 해두고.”
박예림이 보내준 고양이만 남기고 잘라낸 사진을 들여다보며 한유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형이 고양이로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은 최대한 감추는 편이 좋을 겁니다.”
“아저씨 여태까지 우리한테도 감추다니! 역시 살쾡이 세트 효과인 걸까? 그럴 줄 알았어. 아, 근데 그럼 세성 아저씨는 결혼 소식은 뭐지? 다른 사람과 결혼하는 거야? 진짜로? 찾아봐야 하는 거 아니야?”
“비서 팀에서 적당히 축의금 보내겠지. 형과 관련만 없으면 돼.”
고양이 사진을 확대해 혹 다친 곳은 없는지 유심히 살피면서 한유현이 말했다. 성현제가 누구와 결혼하든 그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다른 누구라 해도 마찬가지였다. 정략혼이라면 그에 따른 영향력 정도나 신경 쓰면 그만이다.
“그래도 가보긴 해야 하잖아. 아는 사람인데.”
“형의 결혼식이 아니라면 단순한 타인의 일일 뿐이야.”
딱 잘라 대답한 한유현이 다시 말을 덧붙었다.
“박예림 너와 피스는 제외하고.”
“응? 나도?”
“형이랑 약속했으니까.”
“당연히 그렇겠지. 한유현인데.”
잘 알고 있다면서도 박예림의 얼굴엔 미소가 머금어져 있었다. 약속했다고 해도 한유진이 없는 자리에서도 꼬박꼬박 챙기는 모습이 뭐랄까, 기특했기 때문이었다. 평범한 다른 사람이 저런 소리를 했다면 무슨 헛소리냐며 타박했겠지만 한유현의 특이성에 대해서는 박예림도 그럭저럭 익숙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언니는 결혼식 갈 거죠?”
“가봐야지. 형님도 갈 테니 어차피 도련님도 따라오게 되어 있어.”
“결혼식 진짜 어릴 때만 가봐서 처음이나 마찬가진데. 흰 옷 입으면 안 된다는 건 알고 있어요.”
한유진의 행방과 안전을 알게 되자 마음을 놓은 박예림이 즐겁게 떠들었다.
“아저씨 빨리 만져, 만나 보고 싶다! 크리스마스 선물 고민하고 있었는데 캣 타워 사드려야겠어요.”
“나는 강아지 파긴 하지만 고양이도 귀엽지.”
“언니 집에 강아지 있댔죠?”
“엄마 집에. 위압감 완전히 없애야 다가오지 아니면 숨어 버려. 이젠 소록이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아쉽긴 하다니까.”
“어, 기사 새로 떴다. 세성 길드장의 피앙세는 사우디 이사벨라 공주!”
얼마 지나지 않아 상황을 파악한 기자들이 기사를 줄줄이 올리기 시작했다. 단순한 추측을 담은 기사에서부터 앞으로의 동향을 예측하는 글도 있었다.
“S급 헌터 성현제, 왕자 등극. 세성 길드장의 이중 국적 논란. 사우디 S급 왕족, 품위유지비 월 백억! 헐, 한유현! 나 연봉 올려 줘!”
“이사벨라 공주 올해로 스물둘이란다. 나이 차이가 얼마냐. 띠동갑을 훌쩍 넘네. 이 결혼 반대다.”
“스물한 살이죠. 결이가 한 살이니까. 결아, 고모도 이 결혼 반대야!”
“어이구, 진짜 안 되겠다. 송 실장! 봤지?”
식당 안으로 들어서던 송태원이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문현아가 킬킬 웃으며 그에게 다가가 어깨에 팔을 걸쳤다.
“성현제 결혼해 버리면 시원섭섭하시겠어. 상대가 공주님이시란다.”
“요정용 아닙니까.”
“어? 눈치챘네.”
“제가 평소 봐온 머리색과 달랐습니다. 서 있는 자세 또한 이질감이 있었습니다.”
“사진만 보고 그걸 다 아세요?”
“신체 부분에 힘을 주는 정도와 방향, 습관 등은 사람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꾸며내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성현제 헌터가 자신을 직접 드러내는 사진을 촬영, 업로드하며 굳이 평소와 다른 움직임을 취할 이유는 없을 겁니다. 또한 상대방과 사이좋은 모습을 보이려 한다면 이렇게 시선만 둘 리 없겠지요.”
“하긴 그 인간치고는 어색해. 역시 송 실장님이네. 성현제에 대해서 아주 잘 알아.”
송태원이 대답 대신 짧은 한숨을 흘렸다. 그로서도 이렇게까지 잘 알고 싶지는 않았다. 송태원은 빠르게 S급 헌터들의 얼굴과 분위기를 살피곤 다시 입을 열었다.
“한국 각성자관리실 실장으로서 실종되었던 자국의 S급 헌터의 상태와 상황을 확인하겠다는 명목으로 방문 허가를 받았습니다. 세성 길드 측에서 전용기를 내어주었으니 곧장 공항으로 가시면 됩니다. 그리고… 역시 한유진 헌터도 요정용과 함께 있는 겁니까.”
박예림은 물론이요 한유현의 표정 또한 한결 가벼워졌다. 한유진의 행방을 찾았다는 뜻이었다. 박예림이 와, 입을 벌렸다.
“어떻게 그렇게 잘 아세요? 맞아요, 이… 송 실장님에겐 말해도 되죠? 이 고양이가 아저씨예요!”
송태원의 시선이 박예림이 들어 올린 휴대폰 화면에 못 박혔다. 이사벨라의 품에 안긴 검은 고양이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송태원의 눈썹 끝이 움찔, 미미하게 올라갔다.
“…한유진 헌터에 대해서는 가급적 숨기는 편이 좋을 테니, 저 외의 분들께서는 조용히 움직이기를 권합니다. 한 번에 아프리카로 이동한다면 틀림없이 의심받겠지요.”
“저는 가야 합니다.”
“저도요!”
“예림이와 도련님은 몰래 송 실장과 동행하고, 난 따로 출발할게. 나야 형님 안 찾고 세성 길드장 만나러 간다 해도 이상할 거 없으니까. 결혼식 참석한다고 할까?”
한유현과 박예림, 피스가 위장을 해야겠다며 먼저 식당을 나섰다. 한결 조용해진 공기 속에서 송태원이 문현아를 바라보았다.
“그럼 진짜 성현제 헌터는.”
“나도 모르지. 이렇게까지 소식이 없는 게… 슬슬 조금 걱정되긴 하네. 결이가 자기인 척 결혼 소식까지 냈는데 조용할 인간이 아니잖아?”
“…예.”
송태원의 미간 사이가 깊어졌다. 걱정할 만한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역시 무언가 꺼림칙했다.
유리천장 너머로 햇빛이 비쳐 들어오는 실내 정원에는 누구도 쉽게 접근하질 못했다. 마리는 겹겹의 풍성한 미니드레스를 입고 긴 머리칼을 화려하게 틀어 올렸다. 굽이진 금발이 양 귀 아래로 덩굴처럼 넘쳐흐르고 손에는 예쁜 도자기 티 포트를 들었다.
“1월 1일이라고 해도 식장은 따뜻한 곳으로 할 거예요. 꽃을 아주 많이 장식해야죠.”
찻잔에 차가 따라졌다. 그것을 바라보는 금색 눈은 졸린 듯 반쯤 감겨 있었다. 실제로 성현제는 선잠에 취한 채였다. 동시에 갈증이 났다. 팔다리는 무거웠으며 전신이 두꺼운 베일로 뒤덮인 듯 감각이 둔했다.
무수한 달빛이 그의 몸을 엮어, 한 걸음 한 걸음 움직일 때마다 은색 방울이 잘랑이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울려 퍼지는 소리.
“이 차 맛있는데.”
찻잔을 성현제 쪽으로 밀어 놓고 마리가 입술을 삐죽거렸다. 그를 붙잡은 자는 그녀였으나, 쉽게 손댈 수는 없었다. 우리에 갇혀 사슬에 묶인 사자라 해도 그 발톱과 송곳니는 변함없이 날카로웠다. 닿는 곳까지 손을 뻗는다면 물리고 만다. 실제로 요 며칠 사이 여럿이 피를 보았다.
마치 인형처럼 움직임이 없던 남자의 손이 순식간에 상급 헌터의 목을 부러뜨려 놓았다. 마리 또한 돌연 휘몰아친 사슬에 손끝을 다치기도 했다.
“이래서야 결혼 전까지 제대로 된 데이트를 할 수 없다고요.”
마리의 투덜거림에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금색 눈은 그사이 완전히 감기고 햇살이 그 위를 하얗게 비추었다. 나무그늘이 빛바랜 머리칼 위로 드문드문 얼룩진다. 멀리서 바라본다면 고요하고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하얀 벽에 걸린 오래된 유채화 한 점처럼.
“마리 님!”
그때 누군가가 정원의 경계선 밖에서 소리쳤다. 마리가 뾰로통하게 그를 돌아보았다.
“아이 참, 방해하지 말랬잖아요. 나 데이트 중이야.”
“그게, 세성 길드장의 약혼녀에 대한 기사가 났습니다!”
마리가 어깨를 펴며 턱을 살짝 치켜올렸다.
“잘 감추라고 했을 텐데, 벌써요? 반응은 어때요? 잘 어울린다고들 하죠?”
“…사우디의 이사벨라 공주라고.”
“네?”
마리의 모습이 사라졌다. 순식간에 남자의 앞에 나타난 그녀가 휴대폰을 빼앗아 확인했다. 초록색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가 이내 울상을 짓는다.
“이러면 안 되는데!”
그녀의 결혼식에는 오점이 있어선 안 되었다. 단 두 명, 그 둘 외의 관계가 비집고 들어온다면 일을 망쳐 버리고 만다.
“날짜도 얼마 안 남았다고요! 어떻게 된 일인지 빨리 알아봐요, 어서요!”
아, 속상해. 발을 동동 구른 마리가 테이블 쪽을 돌아보았다. 어느새 다시 눈을 뜬 성현제가 고개를 약간 돌려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여전히 잠에 취한 금안이 살짝 미소를 머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