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61
61화 준비 끝 (1)
석시명이 보낸 헌터가 나를 안내해 간 곳은 방음과 보안이 철저한 회의실이었다. 저번 사육소 일로 갔던 곳과는 다른, 약간 더 작지만 사용감은 더 짙은 장소였다.
여기서 주로 길드 일을 의논하는 것일까. 유현이 자리는 어디지. 조금 머뭇거리다가 따로 뚝 떨어져 있는 의자에 앉았다.
내가 먼저 앉길 기다린 석시명이 맞은편에 자리했다. 바라봐오는 눈길이 소름 돋게 따스했다.
“음, 의외의 주제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각성센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각성센터 말입니까?”
정말로 의외라는 듯 석시명이 눈을 가늘게 떴다.
“네. 이제 발표까지 석 달쯤 남았으려나요. 지금쯤 내부 설비 공사에 한창이겠지요. 혹시 알고 계신다면, 각성센터 시설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듣고 싶은데요.”
물론 모르는 건 아니다. TV에서 얼마나 많이, 자세히 반복 설명을 해줬는데. 내 말에 석시명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각성센터의 핵심은 A급 아이템, 환상미로입니다. 상대에게 실제와 다름없는 환상을 보여 주는 정신계 아이템이죠. 다만 정신계 아이템이나 스킬류가 흔히 그렇듯 정신력 스탯이 조금만 높아도 통하지 않아서 E급 수준만 되어도 괴리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렇지만 비각성자 대상이라면, 안전하게 실감나는 위협을 주어 각성시킬 수가 있지요.”
각성센터의 각성 방법은 단순했다. 몬스터에게 공격당하는 환상을 보여 주고 각성시켰다. 정신적인 타격을 받는 경우가 아주 없지는 않았지만, 비교적 안전하고 확실한 방법이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대부분이 전투 스킬, 혹은 전투 보조 스킬을 가지고 각성했다. 몬스터로부터 살아남기 위한 각성이니까.
“1인당 각성에 걸리는 시간은 평균 17분 이내로, 정신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30분의 시간 제한이 있습니다. 현재 협회가 보유한 환상미로는 총 다섯 개로 개당 한 번에 서른 명까지 환상을 적용시킬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럼 대략 삼십 분에 백오십 명이 각성하게 되겠군요.”
“백 퍼센트 각성은 아니니 실제로는 조금 더 적겠지만 초기에는 하루 천 명씩, 반년 내로 삼천 명까지 각성 인원을 늘릴 계획이라더군요.”
하루 천 명이라고만 쳐도 열흘이면 만 명, 한 달이면 삼만 명이었다. 미래의 비율 그대로라면 그 이만 명 중 백 분의 일, 이백 명이 헌터 자격을 얻게 된다.
심지어 초기 천 명도 한 이틀 갔었나? 사람들 성화에 순식간에 삼천 명, 사천 명까지로 늘어났었지. 휴일에도 쉬지 않았다. 당시 뉴스 헤드라인, 각성센터 개장 첫 달 각성자 수 10만 명 돌파!
한 달 만에 무려 천 명의 신인 헌터이 쏟아져 나왔다는 뜻이었다. 그 난리의 중심에 서 있었던 당사자로서 무심코 미간이 찌푸려질 수밖에 없었다.
“너무 많다고 생각하시진 않습니까? 지금도 던전은 충분히 안전하게 관리되고 있는데 말입니다.”
내 말에 석시명이 조금 머뭇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우려는 없잖아 있습니다. 신인 헌터들이 갑자기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꼴이 될 테니까요.”
“맞아요. 새로 헌터 자격증을 얻는 사람이 매달 수백 명씩 되겠죠. 그중 대부분은 하급 헌터일 거고, 그 수백의 사람들이 던전에 몰려 들어간다는 겁니다.”
어중간한 능력치를 가지고 헌터를 포기한다면 차라리 다행이다. 하나 그렇지 않을 경우가 문제였다. 특히나 각성센터 초기 헌터는 포기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주위에서도 다들 부추겨 대고 TV에서도 성공만 남았다며 떠들어 대니까.
“교육의 질은 당연히 떨어질 것이고 하급 아이템 물량도 부족하게 되겠지요.”
각성센터 각성은 등록 보조금도 안 나오고 기초 프로그램도 유료였다. 그나마 처음에는 전과 같이 일주일 합숙 프로그램이었는데 얼마 못 지나 삼 일, 마지막에는 하루로 줄어들었다.
“네. 한유진 씨의 말대로,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게 될 겁니다.”
하지만, 하고 석시명이 말을 이었다.
“사람들은 각성자가 되고 싶어 합니다. 누구나 다 쉽게 각성자가 될 수 있다, 이런 유혹을 거부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 없겠지요.”
분명 그랬다. 각성센터 앞에 몇 날 며칠 밤새우는 줄이 끊이지 않은 것만 보아도, 모두가 매력적으로 느낄 만한 이야기다.
심지어 나도 가장 먼저 각성센터로 달려갔었고.
“그런 꿈의 시설을 어중간하게 제한해 버린다면 수많은 사람이 불만을 품게 될 겁니다. 물론 안전을 위해서는 하루 백 명 안팎이 적정 수입니다. 그 정도면 신규 헌터가 달에 서른 명 정도 생겨나는 셈일 테니 안정적으로 관리 가능하겠지요. 하지만 최대 삼천 명까지 각성 가능한 시설을 반도 아닌 삼십 분의 일로 제한해 버린다면, 치솟았던 지지율이 바닥을 치고 말 겁니다.”
지지율이라니. 정치 문제였나.
“연관된 사람들이 많은가 봐요. 주로 정치 쪽으로요.”
“아무래도 그렇지요.”
석시명이 씁쓸하게 웃었다.
“애초에 하루 백 명만 가능합니다, 라고 속일 수도 없습니다. 환상미로 아이템의 효과를 아는 헌터가 이미 많으니까요. 게다가 각성센터에서 제한을 둔다 하더라도 각성 방법이 세간에 밝혀지면, 틀림없이 사설 각성센터가 생겨날 겁니다. C급 이상 정신계 아이템 및 스킬은 협회에서 관리하기로 정해져 있다지만 그걸 모두가 착실히 지킬 리 없지요. 결국 준비 안 된 하급 헌터가 쏟아져 나오는 건, 현실적으로 막기 힘듭니다.”
“하지만 그 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치게 되면, 사회적인 파장이 클 텐데요. 거대 길드들도 엮여 들어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실제로 그랬고.
“네, 압니다. 그래서, 흠흠.”
우리 둘밖에 없는데도 석시명이 목소리를 확 낮추었다.
“MKC를 희생양으로 내세우게 될 겁니다.”
“희생양이요?”
“예. 다른 거대 길드들을 대신해서 맞아 줄 길드가 필요하니까요. 저번 납치 사건을 빌미 삼아 등 떠밀 예정입니다.”
어… 음. 석시명 씨, 그거 원래라면 해연 길드가 떠맡게 되었던 거 같은데요.
해연을 포함해서 좀 큰 길드 셋인가가 대표로 두들겨 맞았었지. 길드들이 쉬운 던전을 독차지했다, 운 좋게 유리한 자리 잡아 놓고 후발주자들에 대한 지원이 없었다, 이 길드들이 하급 헌터들 등쳐먹은 것 좀 봐라 등등 정부와 협회가 아니라 몇몇 길드 잘못인 걸로 몰아붙이고 기타 자극적인 기사들 쏟아냈었다.
나도 처맞느라 바빠서 내 일 말고는 정확히는 기억 안 나지만.
MKC 정도면 훌륭한 샌드백이 되긴 하겠군.
“그리고 선거 문제가 아니더라도 각성센터에서 많은 각성자를 배출해 내는 건 필요한 일입니다.”
석시명이 조금 떨떠름해하면서도 확고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던전이 안전하게 관리되고 있다고 하지만 그게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한유진 씨도 아시다시피 상급 헌터의 비율은 극히 낮습니다. 그 낮은 비율 속에서 충분한 수의 상급 헌터를 만들어 내려면, 그 과정에서 수많은 하급 헌터가 생겨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도 희생이 너무 커서는 안 되지 않을까요.”
“최대한 줄이도록 노력할 예정입니다. 잠시 혼란스러워진다더라도, 머잖아 안정화될 것이고요.”
그래, 뭐. 처음 일 년 정도만 난리 나고 안정되어 가긴 했지. 상급, 중급 헌터의 수가 대폭 늘어나면서 던전 산업은 더더욱 발전했고.
무심코 한숨이 새어 나왔다.
역시 단순히 그렇게 일 진행하시면 위험해요~ 정도로는 통하지 않는구나. 하긴 관련자들이 바보도 아니고 리스크는 충분히 예상하고 있을 것이었다.
“한유진 씨, 걱정하시는 부분은 충분히 알겠지만─”
“사람들이 알아서 각성센터에 발길 끊게 만들고, 각성센터보다 더 빠르게 상급 각성자를 찾아내 주면. 그럼 문제없겠군요.”
“…예?”
석시명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당혹감이 어렸던 그의 얼굴이, 빠르게 밝아져갔다.
“혹시, 뭔가 새로운 방법을 가지고 계신 겁니까?”
“예, 그러니까…….”
말을 하려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이거 밝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유현이 녀석이 또 난리칠 거 같은데.
“제 동생, 해연 길드장도 알아야 할 듯합니다만.”
“아, 예! 마침 길드 내에 계십니다.”
“제가 연락해 보죠.”
유현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한 번, 제대로 울리기도 전에 냉큼 받는다.
[무슨 일이야, 형? 석 팀장과 함께 있다고 들었는데.]…그건 또 언제 들었냐. 내 일거수일투족 죄다 보고라도 들어가고 있는 건가. 설마.
“바쁘냐? 중요한 이야기가 있는데.”
[아냐, 안 바빠. 기승수용 장비를 확인하고 있었어. 바로 갈게.]얼마 지나지 않아 유현이가 회의실로 들어섰다. 내 동생이지만 훤칠하게 잘생기기는 했어. 박하율과는 또 다른 타입의 미남이라고 할까. 박하율도 잘생겼지만 걔는 좀 여리하고, 유현이는 선이 더 굵으면서도 화려한 느낌이지.
키도 더 크고. 몸도 더 좋고.
“형.”
동생 녀석이 나를 보고 방긋 웃었다.
“응, 유현아. 다름이 아니라 각성센터 말인데.”
마주 웃어 주며 석시명과 나눈 이야기를 간략하게 말해 주었다. 자기도 알고 있는 내용이라며 고개를 끄덕이며 듣던 동생의 표정이,
“안 돼.”
싹 굳어졌다.
“아직 본론 꺼내기 전이다만.”
“아무튼 안 돼.”
유현이가 저렇게까지 정색하자 석시명이 안달 나는 듯 발끝을 까닥거렸다. 궁금해 죽겠지만 길드장 눈치 보여서 차마 말 못 한다는 표정이다.
“네가 걱정하는 이유는 잘 알고 있어. 하지만 유현아, 형은 말해야겠다.”
“형!”
동생 녀석이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얼굴만 보면 당장에 내 뒷덜미 붙잡고 끌어낼 것만 같았다. …진짜 끌어내는 건 아니겠지. 그리고 감금 라이프라거나.
“흥분하지 말고 앉아.”
“하지만!”
“길드장님, 이야기라도 들어 보면 안 되겠습니까? 지금 이곳에서 들은 내용을 발설할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 맹세하겠습니다.”
석시명이 슬쩍 끼어들며 말했다. 유현이가 고민하면서 나와 석시명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쉽게 말하라고 할 것 같지 않아, 그냥 대뜸 털어놓았다.
“특수 각성센터를 만들 생각입니다.”
“특수 각성센터요?”
“형, 진짜!”
“앉으라니까.”
동생 녀석이 나를 노려보다가, 결국 다시 자리에 앉았다. 입 꾹 다무는 게 토라진 모양이었다.
“말 그대로 특수 스킬을 가진 각성자 전문 각성센터입니다. 협회의 각성센터는 아직은 전투 관련 각성만 가능하니까요.”
“…그게 가능합니까?”
“네. 제 스킬로 비각성자의 각성 가능 스탯과 최적화 초기 스킬을 알 수 있습니다. 최적화 초기 스킬만 알면 맞춰서 각성시키는 게 그리 어렵지 않죠.”
“…대체 왜, 형이.”
유현이가 신음처럼 투덜거렸다. 나도 원래는 약속대로 밝힐 생각 없었는데, 상황이라는 게 말이다.
“그러니까…….”
석시명이 멍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비각성자의 각성 예상 능력치를, 허, 그걸, 혹시 제한 없이 알 수 있는 겁니까?”
“물론 제한 없이, F급부터 S급 이상까지도요. 다만 스킬은 이름만 보고 효과를 짐작해야 하지만요.”
“그런, 그런.”
석시명의 표정이 차분해졌다. 숨을 크게 들이마신 그가, 아, 하고 말했다.
“박예림 헌터도 그 스킬로 발견하신 겁니까?”
“스킬 얻기 전의 우연이라고 해두죠. 제 신뢰를 위해. 사실 S급 헌터의 발견은 우연이나 마찬가지긴 하지 않습니까.”
“예, 예. 물론 그러시겠지요. 그럼 그 특수 각성센터로 일반 각성센터를 향하는 발걸음을 막으시겠다는 것입니까.”
“네. 방법은 간단합니다. 특수 각성센터는 받을 수 있는 인원을 하루 100명 정도로 해두는 거죠. 그에 덧붙여서, 전투 특화인 일반 각성센터에서 각성해 버리면 원래 적성인 특수 스킬을 얻을 수 없다고 알리는 겁니다.”
물론 하기에 따라 10레벨 스킬로 얻을 가능성은 있었다. 하나 당연히 쉽지 않은 일이다. 레벨을 올리려면 던전을 돌아야 하고, 자연히 전투 능력에만 치중하게 될 테니까. 그래서 보통은 10레벨 스킬도 전투 관련을 얻게 되었다.
“아직 각성센터 개장까지 시간이 충분히 남았으니 그 전에 특수 스킬 각성자를 모을 생각입니다. 이왕이면 스탯은 낮고 특수 스킬은 높은 사람이면 좋겠지요. 대부분의 각성자는 F급이다. 이 사람들도 일반 각성을 했다면 평범한 F급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적성에 맞는 특수 스킬을 각성하여, C급, B급이 되었다. 이런 스토리입니다.”
일반 각성센터요? 당신의 숨겨진 재능을 파묻어 버리는 짓입니다! 어쩌면 B급, 혹은 A급, 그리고 그 이상도! F급 헌터였던 이 SS급 스킬 소유 대장장이를 보세요. 각성자, 물론 되고 싶으시겠지요. 하지만 섣부른 선택으로 세계적으로 추앙받을 SS급 특수 스킬을 영원히 잃어버리게 될 수도 있습니다!
뭐 이런 식이다.
“그렇군요!”
석시명이 박수를 짝짝 쳤다. 어째서인지 내 말에 예상보다 훨씬 더 감명 받은 모양이었다.
“각성 인원수가 적은 만큼 인내심이 부족한 사람들도 생기겠지만, 자료가 쌓이고 체계가 잡히면 특수 각성센터 수용 인원도 늘릴 것이라 발표할 예정입니다. 저는 빠르게 스킬만 확인하고 나머지는 다른 사람들이 상담해 주는 식으로요. 그럼 좀 더 오래들 기다릴 수 있겠지요.”
상태창 확인이야 십 초 이내로 끝난다. 전산화하여 데이터 입력 후 스킬 분석 및 상담은 다른 사람들이 맡아 주는 방식으로 한다면 한 시간에 백 명 이상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어차피 상담 필요한 특수 스킬은 백에 한두 명 정도나 있을 테니.
“일단 초기에 몰리는 것만 막는다면 앞으로도 그리 과열되진 않을 겁니다. 그리고 협회 각성센터 인원은 계속 천 명으로 제한해 두고요. 법정공휴일 다 지키고 5시 칼퇴들 하라고 하세요. 아니, 아예 10to4하고 점심시간 두 시간쯤 주죠.”
꿀직장이네.
“결국 전투계만이 아닌, 다양한 적성을 지닌 각성자들이 다수 탄생하게 된다 이 말씀이지요.”
“예, 그렇게 되겠지요.”
“아, 다만 그렇게 하려면 협회에도 무언가 하나쯤 던져 줘야 할 겁니다.”
“협회에요?”
“네. 헌터 협회 쪽에, 속이 시커먼 인간들이 꽤 많이 꼬여들었거든요. 초기와는 달리 물이 좀 상했지요.”
석시명이 혀를 쯧쯧 차며 말했다.
“음, 유동 인구 많은 곳에 자리 펴고 앉아 있죠 뭐. 상급 헌터 찾아준다고 하고요. 일반 각성센터로 가면 사라질 수도 있는 특수 스킬도 건질 수 있습니다. 저만 봐도 얼마나 구미 당깁니까. 이 정도면 충분하고도 남을 것 같은데요.”
마수 사육 스킬. 실제로는 없긴 하지만 이런 거 하나 더 나오면 신규 S급 뺨친다. 명우는 또 어떤가.
우르르 대충 각성시켜 허무하게 사라질 F급들 중에 엄청난 보석이 숨겨져 있을 수도 있다. 그걸 내가 사서 고생해 가며 찾아주겠다는 거다.
“정부와 협회 머리가 제대로 박혀 있다면 되레 특수 각성센터 먼저 방문하세요, 하고 공익광고 해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건 그렇습니다.”
석시명은 기분 좋게 웃었고 유현이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뱉었다.
“아, 그리고 앞으로 기승수 키워 주는 대가 중 하나로 하급 헌터 후원을 포함시킬 생각입니다. 국내는 물론 해외도요.”
“한유진 씨께서는 정말…….”
석시명이 살짝 감동 어린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쑥스러워지긴 했지만 뭐, 이번만큼은 나도 진짜 좋은 일 하는 거 맞으니까.
그래, 조금만 더 고생하자.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 일, 안 할 이유 없잖아.
* * *
각성센터 관련해서는 석시명이 헌터 협회 측에 말을 전달해 주기로 하였다. 해연과는 이야기가 끝났고, 세성과 브레이커, 한신 쪽에도 연락을 해야겠지.
MKC는 그냥 망해라.
마음의 걸림돌 하나 치워내고 편안한 잠자리에 들려는데,
“나도 맞팔해 줘, 대장!”
도깨비가 툭 튀어나왔다.
“이건 선물!”
쾌활한 목소리와 함께 내밀어 온 것은 웬 동물 인형이었다. 붉은색 털에 여우와 비슷하게 생겼고 금색 뿔이 달린… 피스?
“그건 30cm 일반판이고 내 건 50cm 한정판이지!”
일반판이고 한정판이고 이게 대체 뭐야. 텍을 보면 일본에서 사 온 거 같은데.
“이거 설마…….”
“피스 인형! 귀엽지?”
“귀엽긴 한데, 이걸 왜 일본에서 사 와? 멋대로 인형을 만들어 팔다니, 이래도 되나?”
“화염 뿔사자 새끼 인형이라고 하고 팔던데, 눈 가리고 아웅이지 뭐~”
몬스터 인형이라고 우기면 할 말 없긴 하지만, 일본 놈들 진짜… 이러다 삐약이 인형도 만들어 팔겠다.
맞팔 해달라는 도깨비의 조름에 녀석의 SNS 계정에 들어갔다. 첫 화면에 곰돌이ㅍ 인형 탈 쓰고 찍은 사진이 보였다.
“…디O니 랜드?”
“유니O셜 스튜O오까진 못 갔어!”
어쩐지 늦는다 싶더니 알차게 관광하고 왔구나.
“재밌게 놀다 온 모양이네.”
“응! 물론 일도 열심히 했지!”
도깨비가 태블릿을 내밀었다. SNS만 보면 노는 중에 틈틈이 일한 거 같다만. 그래도 확인해 보니 자료는 꽉꽉 채워 놓았다. 조사한 던전 숫자도 제법 많네. 그래, 할 일 잘하고 잘 놀면 좋지, 뭐.
“저게 삐약이구나! 찹쌀떡!”
– 삐약!
“마석 병이랑 연애하는 먹보 찹쌀떡! 짠, 이거 봐라!”
– 삐약삐약삐약삐약!!
응? 삐약이가 갑자기 왜 난리를… 태블릿으로부터 눈을 떼고 고개를 돌리자 삐약이에게 조각낸 마석을 내밀고 있는 도깨비가 보였다. 그 마석의 색이 은빛이다. A급 마석.
“야, 잠깐만!”
– 삑!!
내 목소리를 듣자마자 삐약이가 다급하게 마석 조각을 집어삼키려 들었다. 저 먹보가! 탈 나면 어쩌려고!
“주지 마!”
“왜? 잘 먹는데. 혹시 대장 찹쌀떡 굶기는 거 아냐?”
– 삐약!
삐약이가 대답하듯 울며 남은 마석까지 마저 받아먹고 말았다. 저놈 저게. 얼른 삐약이를 들어 올려 살펴보았다. 상태창도 변함없고 겉으로도 멀쩡해 보이니 다행이긴 한데.
“넌 F급짜리가 A급 마석을 막 주워 먹냐. 그러다 탈 나면 어쩌려고.”
– 삐약!
“삐약이 아니야. 불만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널 걱정해서 조절하는 거라고. 응? 몬스터 생태에 대해 제대로 알려진 바도 없으니 가능한 조심해야지. 마땅한 치료 방법도 모르는데.”
– 뺙!
역시 조금도 못 알아듣는구나. 그래, 애한테 뭘 바라겠냐.
“도깨비 너도 A급 마석을 막 뿌리고 다니면 안 되지. 남의 마수한테 먹을 거 함부로 줘도 안 되고. 먼저 물어보고 허락받은 뒤에 줘야 하는 거야. 알겠어? 삐약이가 아니라 다른 몬스터나 애완동물이나 아이들 상대로도 마찬가지고.”
“우리 할머니처럼 말하네.”
할머니? 웬 할머니. 설마 이놈 키워드 적용되면 할아버지에 이어 할머니 돼야 하는 건가.
어쨌든 이걸로 석하얀을 낚을 준비가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