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620
618화 우리 결혼합니다 (1)
“야! 한유진!”
프랑스 헌터협회 리옹 지부로 가자 반가운 얼굴이 튀어나왔다. 도하민이 무척이나 억울한 눈빛으로 유현이를 힐끔힐끔 소심하게 노려보며 내게 다가왔다.
“네 동생이 날 미국에 버려두고 갔다고!”
“응? 무슨 헛소리야. 네 나이가 몇인데 고작 미국에서 집도 못 찾아가냐.”
“야! 아니 기껏 도와달라고 사람을 불러 놓곤 갑자기 사라졌다니까! 나는 호의로 너 찾으러 미국까지 갔는데!”
“호의는 무슨, 일이지. 그간 너한테 들어간 돈이 얼만데.”
돈 이야기에 도하민이 입을 꾹 다물었다. 그놈의 햄스터 제대로 대접해 줘야 한다면서 추가 사육비 요구한 게 한두 번도, 한두 푼도 아니었다.
“…어쨌든 무사하니 다행이네. 그동안 네 동생 더럽게 살벌했어. 내 수명이 반년은 줄었을 거다!”
“고작 반년 가지고 유세는.”
“뭐? 한유진 넌 진짜 그때나 지금이나 성질머리…….”
도하민이 말을 하다 말고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등급이 낮아 자기가 본 회귀 전 기억은 까맣게 잊었지만 그래도 흔적 정도는 남은 모양이었다.
“근데 네가 미국까지 올 필요는 없었잖아?”
“어, 그게.”
목소리를 확 낮추며 도하민이 내게 속삭였다.
“금동이 돌보다가 새로운 스킬을 얻었거든.”
“새 스킬?”
“응. 금동이가 그래도 D급 보스몬스터였다 보니 내 힘이 좀 딸려서 레벨도 올리고 금동이 산책도 시킬 겸 해연 헌터들 따라 던전에 몇 번 갔었어. 그러다가 얼마 전에 쥐의 친구라는 스킬을 얻었지.”
…뭐냐 그게. 햄스터 사랑이 지극하면 얻을 수 있는 스킬인 건가.
“내 특성과 엮여서, 일종의 정보계야.”
“정보?”
“쥐과 생물로부터 정보를 얻을 수 있지. 범위도 넓어. 몬스터만이 아니라, 평범한 쥐한테서도.”
도하민이 으쓱거리며 씨익 웃었다. 아니, 잠깐만. 쥐라면.
“꽤 유용하겠는데?”
“그렇지?”
“바퀴벌레보단 못하겠지만.”
“…야. 쥐만 해도 징그럽거든?”
“네가 할 소리냐.”
“햄스터와 쥐는 달라! 아무튼 대상이 쥐인 만큼 그렇게까지 명확한 정보는 아니야. 하지만 사람 찾기에는 좋지. 냄새도 잘 맡고 도시 곳곳엘 돌아다니니까. 프랑스에도 쥐 많다더라. 요리하는 쥐도 있잖아. 걘 좀 귀여워.”
“바퀴벌레였으면 더욱 완벽했을 텐데.”
“…줘도 가지기 싫다.”
바퀴벌레면 진짜 안 가는 곳이 없을 테니까. 상상만으로도 징그럽긴 하지만. 새 스킬 얻은 거 축하한다고 말해 주곤 유현이를 돌아보았다.
“유현아, 그래도 사람을 고용했으면 해고 통보는 해줬어야지.”
“미안해, 형. 비밀리에 움직이느라 연락할 수 없었어. 별문제 없을 거라고도 생각했고. 아프리카보다는 미국이 안전하잖아. 아마도.”
“하기야 다 큰 어른이 휴대폰 빵빵 터지는 대도시에서 미아가 되겠냐. 도담이나 해연에 전화 한 통 하면 끝인데. 야, 그런 사정이었단다.”
“받은 게 있으니 참는다.”
하민이 놈이 입을 삐죽거렸다. 쟤도 회귀 전에 비하면 성격 많이 순해지긴 했어. 그땐 고생 많이 했는지 훨씬 까칠했었는데.
“다들 잘 있지? 조용히 움직이려다 보니 연락도 제대로 못 해서.”
“어, 그렇지 뭐.”
대답이 어째 시원치 못했다.
“무슨 일 있어?”
“아니, 그냥. 대장장이님께서 감기 몸살에 걸렸어. 좀 심하게.”
“뭐? 대체 어쩌다가! 대장간은 춥지도 않을 텐데 또 무리해서 그런 거 아니냐? 나한테는 몸 챙기라고 잔소리하면서…….”
“네 소식만 묻고는 자기 볼일만 보고 다시 사라져서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많이 안 좋아 보였어?”
“상당히 피곤해 보이긴 했어.”
“유현이 넌 뭐 들은 거 없고?”
“대장간에 갔었어.”
유현이가 내가 실종된 직후 있었던 일을 말해주었다. 신입을 만나러 던전에 들어갔다가 명우의 대장간으로 이동되었고 거기서 신입과 황림을 만났다고.
“그땐 움직이지 못할 정도였던 거 같은데, 나중에 연락 와서는 형한테 굳이 말할 필요 없다고도 했어.”
“그래도 그렇지, 그걸 여태까지 말 안 했냐…….”
신입에 황림이라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또 저번 중국 던전 때처럼 날 도와주려다가 그런 거 같았다. 진작 알았으면 어르신에게 여쭤봤을 텐데. 다행히 움직일 수 있을 만큼 회복된 모양이지만……. 대장간에 들어가 버리면 어떻게 연락할 방법도 없고, 괜찮아야 할 텐데.
“아무튼 이제 집에 돌아가는 거냐? 금동이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어, 그게.”
그 전에 성현제 결혼식장을 찾아가야 하는데 정확한 장소를 알 수가 없었다. 하민이 녀석에게 부탁하려고 해도 범위가 너무 넓었다. 대략적인 지역이라도 알아내야 할 텐데 청첩장 진짜 안 보내주나.
우리에게 접근하지 못하고 멀리서 눈치만 살피고 있는 협회 직원을 돌아보았다. 그가 붙임성 있는 미소를 지어 보인다.
“괜찮으시다면 이동하시겠습니까?”
“네. 그러지요.”
협회 직원을 따라 안쪽으로 들어갔다. 리옹 지부는 그리 크진 않았지만 여기저기서 희미하게 마나가 느껴지는 것이 던전 부산물을 상당량 사용해 지은 모양이었다.
‘진짜 조금씩 돌아오고 있네.’
마나각인의 감각이 어제보다 더 강해졌다.
“제가 프랑스에 있다는 사실을 밝히면 곤란해지지 않을까요?”
“아프리카와 달리 유럽에서는 쉽게 날뛸 수 없을 테니 걱정 마십시오. 무엇보다도 한 소장님께서 유럽으로 넘어오신 사실이 알려진다면 공항과 비행기 테러는 멈추지 않겠습니까.”
프랑스를 포함한 이 근처 나라들은 면적 대비 공항이 훨씬 많으니까. 유럽 헌터들을 피해 그걸 다 잡기란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유럽 헌터 연합은 미국과 맞먹을 정도로 소속 S급 헌터가 많기도 했다. 개인주의적인 S급 헌터라 해도 자신이 속한 영역에서 날뛰는 건 가만히 두고 보지 않겠지.
“무엇보다 그 테러범 무리들은 유럽에서도 골칫거리였습니다. 이참에 한국과 협력하여 정리할 수 있다면 환영이지요. 이쪽입니다.”
협회 직원이 문을 열었다. 안에는 기자 몇과 역시나 협회 소속으로 보이는 기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독일 헌터 협회 소속 프리츠 바일입니다.”
중년 남자에 이어.
“영국 헌터 협회 소속 마리사 무어입니다.”
중년 여성이 내게 인사를 건네왔다.
“안녕하세요, 도담 사육소 소장 한유진입니다.”
다른 나라 협회 분들 모아 놓고 인사하려니 조금 쑥스러워졌다. 해연 길드장인 유현이가 보좌라도 하듯 내 뒤쪽에 서서 더 민망했다. 역시 이런 건 적성에 영 안 맞아. 막 회귀했을 땐 절대 안 나서려고 했었는데.
“이쪽은 해연 길드장 한유현입니다. 아시다시피 제 동생이죠.”
그리고 그 옆은 그냥 카페 주인장. 나도 주인이긴 한데, 거의 도하민 차지가 되긴 했지. 유현이가 정중하게 목례했다.
이어 기자들이 내 사진과 영상을 촬영하고 간단하게 인터뷰를 했다.
“아마도 마지막에 공간이동이 잘못된 모양입니다. 그래도 아프리카에 떨어질 줄은 꿈에도 몰랐지요.”
부상을 입어 어느 마음씨 좋은 사람의 집에서 회복하느라 연락이 늦어졌다고 대충 둘러댔다. 외진 곳이라 날 알아보는 사람도 없었고 전화도 불가능했다고.
“궁금하신 것들은 차후 도담 사육소로 돌아 간 뒤 정식으로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실종된 사이 기쁜 소식이 있었더군요.”
혹시 이 중에서는 정보를 아는 사람이 없을까.
“친애하는 세성 길드장님께서 결혼을 하신다는데 제 위치를 파악하지 못해서인가 아직 청첩장을 받질 못했습니다. 꼭 참석하고 싶으니 연락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누구든 소식을 알려 준다면 정말 고마울 거라고 슬쩍 덧붙였다. 성의 표시야 당연히 하겠다는 투로.
기자들이 빠져나가고 소식이 알려져 예림이 일행이 프랑스로 올 때까지 협회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방해만 없으면 늦어도 내일쯤엔 이곳에 도착하지 싶었다.
“세성 길드장 소식 아시는 분은 없으시죠?”
협회 직원들에게도 물어보았다. 하지만 역시 결혼 소식을 들어는 보았다, 이상은 모르는 듯했다.
“제 딸도 곧 결혼을 한답니다.”
가방 속의 서류를 정리하며 마리사가 말했다.
“그래요? 축하드립니다.”
“결혼식 준비를 알아서 하겠다더니 쉽지가 않은 모양이에요. 결국 제가 거들어 주게 되었죠.”
“쉬운 일은 아니니까요. 챙겨야 할 것도 많고. 영국은 어떤지 모르겠지만요.”
마리사가 살짝 주름진 눈을 휘며 부드럽게 미소했다. 입 모양을 보니 한국어로 말하는 듯한데 상당히 유창했다.
“얼마 남지 않았는데 한 소장님께서도 참석하시겠어요? 예비 신랑이 무척 기뻐할 겁니다.”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결혼 축하드린다고 전해 주세요.”
기뻐할 거라니, 예비 신랑이 내 팬이기라도 하나. 회귀 기억은 지워지고 채터박스의 존재감은 흐려졌다지만 파티의 기억은 그대로니 아직 내 인기도 나름, 흠흠, 많겠지.
협회 직원이 가까운 호텔로 우리를 안내해 주었다. 도하민은 관광이나 하겠다며 밖으로 나갔다. 아직 예림이 쪽으로부터 연락은 오지 않았다. 전화 또한 불가능했다. 대신 도담과 해연에 연락해 상황을 알려 주었다.
[삐약이와 벨라레가 종종 사라지는 것 외에는 아무 문제 없습니다. 소록이가 제법 많이 자랐고요, 송이도 조금 더 커졌습니다.]경훈이 형이 사육소에는 별문제 없다며 몸 조심히 돌아오라 말했다. 삐약이 녀석 벨라레는 데리고 가지 말랬더니 말 안 듣지.
“자꾸 자리를 비우게 되어서 죄송하네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며칠 남았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요. 아무래도 금방 돌아오시긴 힘드시겠죠?]“그게, 그럴 것 같아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성현제는 왜 하필 결혼을 1월 1일에 하겠다는 거야. 자기 의지는 아니겠지만. …만약 성현제가 1월 1일로 정한 거라면 등짝 한 번은 때려 줘야지.
커다란 쿠션을 받치고 침대에 길게 기대 누워 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렸다. 유현이는 일인용 소파에 앉아 군림자의 검을 꺼내 살펴보고 있었다. 검날을 향해 내리뜬 눈이 자못 심각했다.
“신경 쓰여?”
“…응?”
“회귀전의, 너 말이야.”
유현이가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약간 기울였다.
“…아무래도, 조금.”
“역시 그렇구나. 그게 보통이긴 하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 야, 나도 중국 던전에서 난리도 아니었잖아. 멱살 잡고 무기 뽑아들고~”
“내가 그때 너무 무신경했던 거 같아. 미안해, 형.”
“아냐, 결과적으론 뭐, 나쁘진 않았는걸.”
지금도 얄밉긴 하지만 그보단 잘 살았으면 싶었다. 잘 살고 있겠지. 역시 짜증은 나네. 그 녀석은 왜 이렇게 밉상이지.
“다른 무엇보다도…….”
유현이가 다시 새카만 검을 향해 시선을 떨어뜨렸다.
“형은 회귀 전의 나도 나만큼 좋아했겠지.”
“그야, 너잖아. 유현이 너니까.”
심장이 철렁 떨리는 것을 애써 감추었다.
“그게 역시, 거슬려. 다른 사람이라면 아무래도 상관없어. 이젠 형이 항상 내게로 돌아올 거라고 믿고 있으니까. 하지만 같은 나라면.”
“…그러니까 너잖냐. 같은 사람이야.”
“응.”
유현이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 쪽은 돌아보지 않은 채로. 어느새 내 주먹이 꽉 힘주어 쥐어져 있었다. 목이 바싹 타들어가는 듯했다. 언젠가는 말해야겠지. 하지만 그 애는 죽었고, 나는, 결국은 보내 줘야 할 것이다. 지금 내 곁에 있는 동생과는 다르게.
그러니 괜찮을 것이다.
“우리도 이따가 밖에 구경 나가 볼까? 예쁜 건물 많더라. 아까 협회 직원이 그러던데 여기가 프랑스에서도 미식의 도시로 유명하대. 같이 맛있는 것도 먹고.”
“응, 그러자.”
대답은 꼬박꼬박 잘 하지만 역시 평소보다 기운 빠진 모양새였다. 아이고, 어쩌냐. 관광 하면서 잘 달래 줘야겠다.
TV를 헌터전문 채널에 맞춰 놓고 손바닥을 펼쳐 보았다. 희미한 상처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꼬마야, 나와 볼 수 있어?”
어떻게 나오게 하는 거지. 디아르마는 자기 맘대로 불러들이고 들여보내던데. 어떻게 마력을 집중하자 상처에서 약한 열기가 느껴지더니.
– 퓨익!
베이지색 반지르르한 털의 조그만 마수가 톡 튀어나왔다. 침대 위를 폴짝폴짝 뛰던 꼬마가 유현이를 보고 꼬리를 바싹 세웠다.
– 뀩! 삑!
자기를 씻긴 것을 항의하듯 뒷발을 탕탕 치더니 그걸로 분이 다 풀렸다는 듯 귀 한쪽을 앞발로 붙잡아 다듬기 시작한다. 애가 꽤 단순하구나. 원래도 성격 좋고 단순한 편이긴 했지.
“이리 와 봐. 아빠한테 와 봐.”
꼬마가 내 앞으로 폴짝폴짝 다가왔다. 귀엽긴 참 귀여워.
“아빠가 부르기 전엔 멋대로 나오면 안 돼요. 알겠어? 혼자 돌아다니면 안 돼. 이불 먹지 말고. 먹는 거 아니야.”
말을 알아듣긴 하는 걸까.
“안에 있으면 심심해? 안에서 밖이 느껴져?”
“아니!”
어린애로 홱, 변해서는 꼬마가 대답했다. 유현이가 이쪽을, 꼬마를 바라봐왔다. 몬스터에게는 영 신경 안 쓰더니 나 어릴 적과 닮아서 그런가?
“계속 자.”
“잔다고?”
“형이랑 꿈에서 놀아.”
아마 정신계 같은 곳을 말하는 모양이었다. 거기서 흑룡이 인간으로 변하는 방법을 가르쳐준 걸까. 계속 같이 놀아서 많이 친해 보였구나.
“형도 나가지 말랬어. 아빠가 불러서 나왔어.”
그렇게 말하곤 변해 있는 게 힘들었는지 다시 새끼 몬스터 모습으로 돌아간다. 흑룡이 동생을 잘 챙겨 줘서 다행이었다. 이름을 지어 주면 결이처럼 독립적이게 될 테니 역시 한국에 돌아가서 짓는 게 낫겠지. 지금은 애들 맡길 곳도 마땅찮으니까.
룸서비스를 시켜서 마석 가루를 뿌려 꼬마에게 주었다. 이것저것 가리는 거 없이 다 잘 먹었지만 역시 과자류를 제일 좋아하는 듯했다. 너무 많이 먹으면 안 된다고 하자 꼬리를 탁탁 내리쳤다. 불만을 표하는 것치곤 말은 잘 들었지만.
[세성 길드장 결혼 상대, 영국인으로 밝혀져.]그때 곧 개장 예정이라는 프랑스 각성 센터를 소개하는 방송 아래로 속보 자막이 떴다. 응? 영국인? 이어 화면까지 바뀌었다. 성현제가 잘나긴 했지만 한국도 아닌 프랑스 방송에서까지 속보로 내보내냐. 상대가 영국인이라서인가? 그보다 대체 누구…….
“…어?”
TV 속에 화사한 금발의 여성이 나타났다. 저 사람, 분명.
‘그, 박하율네 누님?’
초대장 속 영상에서 본 바로 그 여자였다. 뭐야, 파티 파트너로 같이 가자느니 하더니 결혼 상대가 저 사람이었어? 대체 언제 눈 맞은 거지? 설마 진짜 연애결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