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622
620화 우리 결혼합니다 (3)
“함께해서 더러웠고 두 번 다신 만나지 말자!”
두 눈 밑에 시커멓게 그늘이 낀 석 달 열흘 구른 거지꼴로 도하민이 소리쳤다. 실제로 구른 건 딱 이틀이었지만.
“방 빼게?”
“…아이 참, 당연히 농담이죠. 더도 덜도 말고 앞으로 딱 백 년만 두 지붕 두 건물 아래서 서로 거리 두며 삽시다, 주님. 건물주와 세입자의 사회적 적정거리 최소 천 미터. 법에도 나와 있대요.”
결국 안 보고 살자는 건 똑같지 않냐. 사육소와 빌딩 거리 오백 미터도 채 안 될 텐데 역시 쫓겨나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래도 고생했으니까.
“수고 많았어. 이왕이면 관광 좀 하고—”
“됐거든? 갈 거다. 여기 남아서 뭐 좋은 꼴 보겠다고!”
도하민이 재빠르게 뒷걸음질 쳤다. 눈치 빠르긴. 뭐, 필요하면 다시 부르면 되니까 일단은 보내 줘야지. 상냥하고 다정한 눈빛을 보내주자 도하민이 몸서리쳤다.
“사육소 경비 처리할 테니까 1등석 타고 가. 맛있는 것도 사먹고.”
“당연히 그럴 거거든?”
“그래, 그래.”
마음 같아선 공항까지 배웅해 주고 싶었지만 내가 얼굴 드러내 놓고 공항으로 가는 건 아직 위험했다. 아프리카를 벗어난 뒤 초화운 무리들의 소식은 끊겼지만 언제 다시 지랄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도하민을 보낸 후 프랑스 헌터 협회에 협조를 구했다. 세성 길드장 결혼식 깽판 치러 갑니다, 라고는 당연히 말 못 하고.
“테러범 무리의 근거지 중 한 곳을 발견했습니다. 말이 새어 나가지 않도록 한국 헌터들만 조용히 습격할 예정입니다. 다행히 인적이 없는 곳이더군요.”
라고 적당히 둘러댔다. 사실 틀린 소리도 아니었다. 우릴 쫓아다닌 무리가 이사벨라와 사미르도 목표로 하고 있었으니 십중팔구 마리 씨와 연관되지 않았을까. 그러니 그 나물에 그 밥인 셈이다.
위치가 스위스 국경과 그리 멀지 않아 만일을 대비해 스위스 헌터 협회에도 연락해 두었다. 알프스 산맥 어딘가가 터져 나가더라도 너무 놀라지 마시고 던전 브레이크 대피령을 내려 주세요. 일 났을 때 던전 터졌어요, 는 만능 핑계지.
그렇게 밑작업을 해놓고 다음 차례는.
“결혼식은 역시 블랙 앤 화이트지.”
하객 룩이었다. 친애하는 파트너 씨 결혼식이니 번듯하게 차려입고 가야지.
“세성 길드장은 역시 하얀색 정장일까? 검은색보다는 말이야, 밝은 색을 입었을 거 같은데.”
“저도 그럴 거 같아요. 소영 언니도 동의한대요.”
예림이가 폰 자판을 열심히 누르며 말했다.
“축의금은 대신 전해 달라는데요? 에블린 언니 몫도요. 어쨌든 안 보내면 귀찮아질 거 같다면서요.”
“현아 씨도 부탁하더라. 정략혼이든 납치혼이든 주긴 줘야 뒤끝이 없다고.”
봉투는 준비했다만 얼마 넣어야 하는 거지. 내 평생 축의금으로 오만 원 이상 내본 적이 없는데. 각성 전에는 형편도 안 좋고 나이도 어렸고 각성 후에는 남의 결혼식장 갈 일이 없어서. 오만 원도 컸지. 스물 전에는 그냥 밥이나 먹고 가라고들 하셨었다.
“…오십?”
“에이, 그래도 세성 길드장인데요.”
“역시 오백은 넣어야 하나.”
내 다리에 딱 붙어서 그르렁거리는 피스를 내려다보았다. 애 밥값이 한 끼 천만 원인데. …그럼 오천? 아니 애초에 성현제쯤 되면 축의금 금액은 신경 안 쓰지 않냐. 정성이 중요한 거긴 한데…….
“…쓸 땐 써야지. 화끈하게 십억 부어 준다!”
내 말에 예림이가 짝짝 박수를 쳤다. 물론 현금 말고, 현물로. 제대로 대접해 드립니다.
“자, 그럼 다 함께 옷 보러 갑시다. 드레스코드는 말씀드렸다시피 블랙 또는 화이트. 송 실장님, 시선 피하지 마세요. 같이 가셔야지.”
“사양하겠습니다.”
“이것도 일이에요, 일. 납치된 한국 헌터를 구하기 위해 잠입해야 하는 상황에 복장을 제대로 갖추지 않으면 안 되죠. 이 동네엔 사이즈 큰 양복도 많대요. 던전 부산물 섞은 헌터용 정장도 쉽게 구할 수 있답니다.”
양복 원산지가 유럽 아니냐. …아닌가? 대충 맞겠지. 신사의 나라 하면 영국이라 그러고.
“심지어 노아 씨가 잘 아는 가게도 있대요.”
“맞춤 위주지만 상급 헌터들은 급히 정장이 필요한 경우가 잦기에 다양한 사이즈의 기성복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송 실장님께 맞는 옷도 있을 거예요.”
자주 찢어 먹을 테니까. 그렇다잖냐면서 송 실장님에게 다가가 살갑게 붙으며 속삭였다.
“제대로 차려입지 않으면 새신랑이 두고두고 일백 번 우려먹고 또 우려먹을걸요?”
“…….”
“내가 미처 챙겨 주질 못하여 친애해 마지않는 송태원 실장님께서 내 결혼식에 그 꼴로 오신 것이겠지, 하면서 하루에 한 벌씩 맞춤 정장 보내오고.”
“………….”
“색깔별로. 자택에도 배달하고. 계속 거절하면 정성이 부족하냐면서 직접 옷 지어올 인간이죠. 아, 혹시 세성 길드장님의 수제품을 원하—”
“알겠습니다.”
송 실장님이 나직하게 말했다. 이참에 튼튼하고 비싼 걸로 골라야지! 원 플러스 원 상품 없나.
“유현아! 넌 검은색이 좋으냐 흰색이 좋으냐.”
“어차피 예장 걸칠 거야.”
“그래도 형이 보고 싶은데.”
“그럼 형이 골라 줘.”
유현이 녀석 미소는 짓고 있었지만 정말 관심 없어 보이는 기색이었다. 이틀 전보다는 나아졌지만 역시나 신경이 다른데 팔려 있는 듯했다. 대체 이유가 뭔지 살살 달래 물어봐도 괜찮다고만 하고.
‘…채터박스 일 때문에 일시적인 거라면 다행이지만.’
얼른 성현제 챙겨다 집에 돌아가서 동생 옆에 끼고 다독여 줘야지. 사육소 애들도 보고 싶어졌다. 잘 있다고는 했지만 벌써 한 달이나 떠나 있었잖아.
“아저씨, 저 말이에요.”
노아 씨의 단골집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예림이가 내게 머뭇거리며 말해왔다.
“세성 아저씨 구하고 나면 벨라랑 잠깐 같이 있을까 싶어요.”
“…뭐? 이사벨라 씨와?”
“별건 아니고요, 그냥 던전 몇 개 공략하고 덤으로 왕자님도 빼내고요.”
왕자님 구출이 덤이니. 그 전에 해외에 머무르겠다는 소리잖아. 심지어 거리도 상당히 멀었다.
“예림아, 넌 이제 겨우 열다섯 살이잖니.”
“곧 열여섯이에요.”
“그래도 너무 어려.”
“지금까지랑 별 차이도 없잖아요? 저 혼자도 아니고, 어른이랑 같이 다니는 건데요. 오래 있을 것도 아니고요.”
따지고 보면 그건 그랬다. 하지만 이사벨라는 아직 잘 알지도 못하는 사이인 데다가 솔직히 그렇게까지 믿음직스럽다고는……. 현아 씨였다면 별다른 고민 없이 우리 애 잘 부탁드립니다, 하고 꾸벅 고개 숙였겠지만.
“그리고 그냥 내버려 두기도 그렇잖아요.”
“그건 그래. 우리 일에 휘말린 거나 다름없으니까.”
계약이야 좋은 해주 아이템 있다면서 쉽게 풀어줄 수도 있었는데. 우선 성현제 빼오고 나서 다시 이야기하기로 했다. 사미르를 찾기만 한다면 해주해 주면 그만이니까. 가족 문제는, 거기까지는 일단 자유만 찾으면 알아서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러니저러니 해도 S급이니.
3층짜리 건물 전체를 차지하고 있는 양복점에 도착하자 인상 좋은 중년 남자가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안녕하세요, 가베르 씨.”
“나이트 루히르! 오랜만입니다!”
…나이트? 가베르 씨가 반짝거리는 눈으로 우리를 휙 살펴보았다.
“약간의 수선만 거치면 완벽하게 몸에 맞을 겁니다. 디디! 따라와라!”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말하곤 가베르가 위층으로 올라갔다. 설마 그 잠깐 사이에 우리 사이즈를 확인한 건가? 관련 스킬이라도 가지고 있는 거 아니냐. 그보다.
“나이트요?”
예림이가 호기심 가득한 시선으로 노아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노아가 한쪽에 마련된 응접실로 우리를 안내하며 태연하게 말했다.
“유럽 일부에서는 던전을 공략하는 각성자를 기사라고도 부르곤 합니다. 영국에서는 S급 헌터에게 실제 작위도 주어지지요. A급 이하 헌터도 공로에 따라 작위가 하사됩니다.”
“헐, 그럼 저도 여기선 나이트… 박은 좀 이상하잖아.”
“써, 경을 붙여도 돼요.”
“…그것도 별로예요.”
“아니면 슈발리에…….”
“망했어요!”
예림이가 투덜거렸다. 한국 성에는 좀 안 어울리긴 해. 그래도 박예림 경은 괜찮지 않나. 유현이도 여기선 기사인 거겠네. 송 실장님은 진짜 잘 어울릴 거 같은데.
“한국도 뭐 만들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이 동넨 왕족도 되고 작위도 준다는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입니다.”
하기야 그런 거 준다고 해서 다 좋은 건 아니겠지만. 사미르만 봐도 반강제로 묶여 있는 듯하고. 그래도 작위는 좀 아쉬웠다.
가베르가 이내 직원들과 함께 정장을 들고 내려왔다. 미리 말해 둔 대로 흰색과 검은색의 예복들이었다.
“전 검은 거 입을래요. 이거 괜찮은 거 같다.”
“송 실장님, 흰 거! 하얀 거!”
“저는 검은—”
“하얀 거! 하얀색! 화이트!”
두 번은 없을 기회였다. 송 실장님에게 새하얀 색에 금색 자수가 놓인 예복을 안겨 주었다. 송 실장님의 몸이 움찔 굳었다. 잘 어울릴 거 같은데, 한 번만요. 결국 송 실장님이 내가 준 옷을 들고 탈의실로 들어갔다.
“노아 씨도 하얀색이 딱이긴 한데, 이번엔 검정으로 갈까요? 유현아, 이거랑 이거. 둘 다 입어 보자. 가베르 씨, 혹시 아동용 예복도 있을까요? 키가 이 정도고 평범한 어린아이 체형인데 약간 날씬한 편이에요. 그리고 피스 나비넥타이도 부탁드립니다.”
결이도 준비해 줘야지. 얌전히 내 어깨에 올라앉아 있던 결이가 가슴을 쭉 폈다.
“아저씨, 어때요?”
제일 먼저 옷을 갈아입고 나온 예림이가 공중에서 빙그르 돌아 보였다. 검은색 연미복 끝자락이 팔랑팔랑 꼬리처럼 흔들린다. 날렵한 자태가 말 그대로 제비였다.
“최고야! 진짜 잘 어울려!”
예전 성현제 생일 때보다 눈에 띄게 컸구나. 키는 물론이고 체격도 조금 더 좋아진 것 같았다. 이어 송 실장님이 밖으로 나왔다.
“…와.”
“우와, 송 실장님 완전 달라 보여요. 평소엔 공무원 아저씨였는데!”
공무원의 정석이 옷 한 벌로 새신랑처럼 변했다. 성현제 대신 신부 옆에 서도 되겠다.
“송 실장님… 너무 잘 어울리신다. 평소에도 좀 이렇게 입고 다니시지! 이것 봐요, 얼굴이 확 살잖아. 역시 옷이 밝아야 인상도 밝아지고!”
“…검은색이.”
“에이, 엄청 잘 어울리시는데요! 이대로 가요, 이대로! 어휴, 멋지다! 완벽하다!”
가베르 씨도 내 말에 동의하며 송 실장님의 몸을 이리저리 살피며 시침핀을 찔러댔다. 그사이 유현이도 밖으로 나왔다. 검은색에 정교한 은색 자수가 놓인 정장을 입고서. 세상에나. 절로 입이 딱 벌어졌다. 동생 정장 차림이야 많이 봤지만 작정하고 화려한 예복은 또 다르구나.
“…내 동생, 너무너무 멋지다.”
“뭐, 잘 어울리긴 하네요, 뭐. 얼굴이 열일했다.”
“괜찮아?”
“당연히 괜찮지! 어휴, 작위 같은 거 없어도 귀족 뺨치겠네. 이러고 남의 식장 들어가면 자동으로 결혼식 망하겠다, 야.”
누구 동생인지 정말 잘생겼다. 이걸 사진으로 남겨야 하는데, 결혼식 참석 전에 단체 사진이라도 찍을까? 나는 살짝 빠지고. 마지막으로 노아 씨가 유독 새카만 정장 차림으로 탈의실을 나섰다. 다른 사람과 달리 장식 거의 없는 매끈한 예복인데도.
“오올, 노아 오빠 완전 왕자님.”
“그러게 왕자님이네, 왕자님이야.”
빛이 났다. 오히려 그냥 검은 옷이라 더욱 머리칼이며 얼굴이며 눈동자며 반짝거렸다. 세상에, 잘생기기도 했지. 소영 씨가 아쉬워서 땅을 치겠네. 리에트한테 사진 한 장 보내 줘야 하는 거 아니냐.
“이건 아저씨 옷!”
가베르와 직원들이 옷을 더 가지러 간 사이 예림이가 나비넥타이를 들고서 말했다. 응?
“피스 넥타이 아니니?”
“아뇨, 아저씨 거예요.”
“…예림아?”
“검은 고양이에겐 역시 새빨간 나비넥타이죠!”
“예림아!”
어쩐지 잠잠하다 했더니! 얼른 그 스킬은 고양이가 아닌 델로우즈라는 초월자 변신용이며 위급할 때 피신용일 뿐 절대 평소에는 쓸 생각이 없다고 변명했지만 예림이는 죄다 귓등으로 흘리며 파란색은 어때요? 하고 웃었다.
“세성 아저씨도 보고 싶어 할 거예요.”
“아니, 예림아.”
“공무원 아저씨도 보고 싶댔어요.”
“그런 적 없습니다.”
“아저씨를 만져 보고 싶어 했어요.”
“아닙니다.”
“노아 오빠도 진짜진짜 만져 보고 싶댔어요.”
“…그렇게까지는 아니에요.”
“일주일에 딱 하루만. 아저씨, 제가 캣타워도 사드릴게요.”
“…예림아, 아저씨 사람이다.”
“형, 입어 봐.”
설마 유현이 너마저도! 속으로 펄쩍 뛰며 돌아보자 다행히 동생 손에는 멀쩡한 정장이 들려 있었다. 나도 입긴 입어야지. …근데 좀 창피하네. 괜히 차려입고 가자고 했나 봐. 이 사이에 내가 끼어야 하다니…….
“난 옷 입어도 뭐, 그냥 그런데. 가면이라도 쓸까 보다.”
“아저씨, 나비넥타이만 하면 아저씨가 제일 돋보일 거예요!”
예림아, 부디 포기해 주렴. 그리고 피스가 더 귀여워. 결이도 귀엽고. 검은색 셋 흰색 하나라 나와 결이는 흰색으로 했다. 피스는 금색 나비넥타이로 골랐다.
결혼식 바로 전날, 황림이 부탁한 일을 마치고 우리가 묵고 있는 호텔로 왔다.
“나도 구경하고 싶은데 아쉽네. 그래서 단체로 결혼식을 할 거라고? 역시 대담해.”
“무슨 미친 소리야. 그보다 초화운은 대체 어떻게 된 건데. 네가 데리고 있는 거 아니었어?”
“원래 개 키우다 보면 가끔 집 나가기도 하고 그런 거잖아. 전단지 붙여 놓을게.”
이런 애완동물 키울 자격도 없는 놈이. 애초에 사람이긴 하지만. 사람 같잖은 사람이라고 해둘까.
하늘에 노을이 드리우고 해가 질 무렵, 10억치 축의금을 챙겨들고 식장을 향해 출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