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632
630화 알프스 (2)
“가까운 식당으로 안내하세요. 그리고 산 아래에서 대기하세요.”
마리가 당연하다는 듯 명령했다. 그녀의 말에 사미르가 곤란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나도 그러고는 싶지만, 레이디. 곁에서 보호하라는 명령을 받았답니다.”
“좀 이상하네요?”
차에 타려던 마리가 사미르 앞으로 성큼 다가가 고개를 치켜들었다. 까치발까지 들며 그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며 마리가 말을 이었다.
“어머니 스킬에 걸리진 않은 거예요?”
“당장은 조건이 안 된다고 하시더군요. 대신 다른 계약을 맺었습니다. 일을 적당히 거들어 주면 도움을 주겠다, 정도로.”
“그래서 따라오겠다고요?”
“내 처지도 꽤 곤란해서.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양해를 구해야 하는 상대는 한 명 더 있지.”
사미르가 한숨을 삼키며 성현제를 돌아보았다. 약간의 흥미를 담은 금안이 짙은 남색의 눈과 마주쳤다.
“어떤 스킬인가.”
앞뒤 설명 없는 짧은 물음이었지만 목소리에 담긴 의도는 명확했다. 그의 호기심을 제대로 채워 주어야만 동행을 허가받을 수 있다. 사막 하나를 다 넘어가지도 못했는데 더 큰 사막이 기다리고 있는 기분이었다. 사미르가 두 손을 펼쳐 보이며 대답했다.
“당연히 자세히 듣진 못했습니다. 계약의 제약 또한 있습니다.”
“나도 말 못 해요. 그래도 어머니인걸.”
자신에게 불똥이 튈세라 마리가 재빠르게 말했다.
“그렇다면—”
단호히 잘라 내지기 직전.
“세성 길드장님, 아드님이 있습니까?”
사미르가 대뜸 말을 던졌다. 그의 말에 마리가 깜짝 놀라며 눈을 크게 떴다.
“아들이라니, 성현제 님?!”
마리의 두 손이 꽉 주먹 쥐어지며 초록색 눈동자가 분노를 담아 성현제를 노려보았다.
“사기 결혼이었어요? 이 사기꾼! 호색한! 양심불량!”
“그 전에 납치 강제 결혼이었네만.”
“말은 해주셨어야죠! 난 조금도 모르고 있었는데, 까맣게 속았어! 동화 속 왕자님은 결혼 전엔 아들도 딸도 없어요!”
결혼식을 망친 게 정말 다행이었다면서 마리가 발을 탕탕 굴렀다.
“납치는 괜찮아요! 흔한 일이니까요. 보통은 공주님이 납치되긴 하지만 원래 세상은 변하는 법이니까요! 그래서 어떤 아이예요?”
화가 가라앉고 나자 궁금해졌는지 마리가 물었다. 세성 길드장은 왕자 결격 사유가 생겨 버렸지만 그 아들이라면 현대판 왕자라기에 충분했다. 아빠를 닮았다면 외모도 완벽할 테고.
“성격은 아빠 닮으면 안 되는데. 몇 살이에요? 성현제 님 아들이면 십대 후반일 수도 있겠다.”
“내 아들로 목표를 바꾸는 건가.”
“요샌 연하가 유행이랬으니까 괜찮을 거 같아요. 일단 만나 보고요.”
결혼식장을 떠나 구두를 벗어던지고 드레스자락을 찢었지만 왕자님과의 결혼 자체를 버리지는 못했다. 그것이 마리가 아는 세상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지금은 자신이 직접 고르고 더 고민하고 망설일 테지만.
마리의 말에 성현제가 고심하는 척을 했다.
“일단은, 그 애가 날 부모로 받아들이진 않고 있다네.”
“정말요? 여태까지 숨긴 게 그 탓이에요? 나 출생의 비밀 좋아해요. 공주님한테 주로 붙는 설정이긴 하지만요.”
“마리 양이 이미 만나 본 적도 있고.”
“네?”
“결혼식장에서 말이야.”
결혼식장. 마리가 눈을 깜박거리며 기억을 되새겼다. 결혼식장.
“…설마. 하지만 그 앤 요정용이잖아요!”
분명 성현제와 닮은 아이가 있긴 있었다. 처음엔 깜짝 놀랐지만 그 아이는 이내 요정용으로 변했다.
“몬스터였는데!”
“종족 차별은 좋지 않아.”
“…결혼, 그러니까 그, 아기를 가지는 일을 한 상대가 드래곤이었어요? 음, 혹시 그 블랙 드래곤? 리에트 헌터?”
“리에트 헌터에게 제의는 받은 적 있었지. 그때 공주님은 한유진 군이었다네.”
“무슨 이상한 소리를 하시는 건지 모르겠어요! 아, 그러고 보니 방송에서 한유진 님이 요정용 아빠라고 했던 거 같았는데……. 그럼 셋이…….”
마리가 말을 하다 말고 손으로 자기 입을 가리듯 막았다. 그러다 아예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곤 사미르의 등 뒤로 돌아가 숨어 버렸다.
“난 그런 거 몰라요! 아무것도 몰라요!”
“아이들이 들으면 안 되는 이야기 같은 건 없었으니 걱정 말게. 선정성은 전연령에 폭력성만 15세 정도 될까. 편집을 잘 해준다면 12세 시청까지도 가능하겠군.”
“…전연령으로도 아기가 태어나요?”
“상황에 따라서는. 그런 세상이지 않나.”
평범한 유성 생식은 아니었나 보다. 아이템이나 스킬로 인한 것인 걸까. 조금 진정한 마리가 고개를 배꼼 내밀며 사미르의 등을 두드렸다.
“그쪽이 갑자기 이상한 소리를 한 탓이잖아요.”
“역시 남의 집 종살이는 쉽지 않네. 이미 떠들썩한 이야기예요, 아가씨.”
사미르가 휴대폰을 꺼내 기사를 열어 보였다. 세성 길드장의 숨겨진 아들? 과 같은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들이 수두룩했다.
“어젯밤 방송에 나온 소년 때문이죠.”
“이렇게 보니까 정말 많이 닮았다.”
성현제와 기사의 사진 속 한결을 번갈아 바라보며 마리가 속닥거렸다.
“이만한 아이가 있고도 남을 나이에, S급 헌터의 자식으로 추정되는 소년이 특수능력을 가진 각성자라는 사실에도 불타오르고 있습니다.”
“상급 각성자의 후손 또한 상급 각성자일 것인가, 는 인기 많은 주제 중 하나지.”
성현제가 남 일인 것처럼 말했다.
“요정용이 세성 길드장님과 똑같이 변하는 것을 보고 미심쩍기는 했었습니다.”
“그것 때문에 결혼식이 엉망이 될 뻔했잖아요.”
“그것?”
“참, 성현제 님은 아직 모르시죠. 이 왕자의 사촌 여동생 이사벨라 공주가 성현제 님의 결혼 상대라는 헛소문이 났었거든요! 요정용이 성현제 님으로 변해서 같이 사진을 찍었어요. 아주 다정하게요.”
“그때 벨라는 한유진 헌터와 혼약을 맺으려 했었고.”
“진짜요?”
“그리고 세성 길드장님으로 변한 요정용이 벨라에게 청혼을 했었죠.”
“어머나 하느님!”
꽤나 난장판이었다. 성현제가 자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것을 보고 사미르가 속으로 안심했다. 역시 한유진과 한결에 대한 정보에는 흥미를 가지는 모양이었다.
“점심때이니 일단 식당으로 가시면서 이야기하죠. 이게 그때의 사진입니다. 그리고 이 고양이가 한유진 헌터고요.”
“고양이요? 고양이로 변했어요? 한유진 님도 꽤 동화적인 분인 거 같아요!”
“검은 고양이로군. 몬스터로 변하는 것을 보고 이런 스킬도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채터박스의 방송에서는 스킬 숨기기 옵션을 썼기에 방송을 챙겨 본 마리도 까맣게 몰랐었다.
“채터박스 방송 종료 며칠 후 한유진 헌터를 아프리카에서 찾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바로 찾아가 안전을 확보했었지요. 스탯은 F급이라 조금 방심했더니 이내 눈앞에서 사라졌습니다.”
“고양이로 변한 거군요! 맞죠?”
“한유진 군을 상대로 방심해서는 안 되지. 내 손에서도 빠져나간 적이 있다네.”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하며 성현제와 마리가 순순히 차에 탔다.
밤사이 눈이 내렸다. 한결 차가워진 공기 속에 알프스의 풍경이 드넓게 펼쳐졌다. 피어오르는 구름이 설산을 휘감아 돌아 하늘과 지상이 한데 어우러지며 시선이 닿는 모든 곳이 희고 또 희었다. 바람을 따라 슬금슬금 기어가는 운해를 바라보며 마리가 턱을 괴고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벌써 며칠째예요!”
테라스 테이블에 노트북을 놓고 앉은 성현제가 지도에 표시를 했다. 역시 드넓은 산의 어딘지도 모를 한 곳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그래도 지도의 상당 부분이 지워져 있었다.
“생각보다 쉽지 않군. 일단은 나이니 최대한 범위를 좁혀 보기는 했네만, 내가 모르는 5년 사이에 지형이 바뀌었을 가능성도 있으니.”
“5년 만에요?”
“인공적으로 말이야.”
성현제는 한유진과 처음 갔던 던전의 몬스터를 떠올렸다. 그 거대한 두꺼비가 던전 브레이크로 튀어나왔다면 작은 산 하나쯤은 가볍게 먹어치웠을 것이다.
“한유진 군에게 물어보고도 싶지만.”
성현제의 눈이 테이블에 놓인 휴대폰을 향하였다. 그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쯤이면 문자 정도는 올 줄 알았는데.”
“먼저 전화해서 물어보시면 되죠.”
“송태원 실장도 아무 연락이 없고. 쓸쓸하군.”
“친구 없으세요? 없어 보이시긴 해요. 가까이하기 어려운 분이시잖아요. 지금은 좀 친절하시긴 해도요.”
성현제가 변덕스럽다는 소문 정도는 들었다. 마리가 또다시 입을 삐죽거렸다. 저러다 또 홱 예전처럼 차갑게 변해 버리면 상처받긴 할 것이다. 그래서 소문이 나쁜 거였을까.
“길드원분은 직접 찾아오기도 했잖아요.”
“그리고 날 믿고 연락은 먼저 하질 않지. 연락하길 무서워하는 이들도 있고. 평범하게 전화해 주는 사람은 한유진 군밖에 없다네.”
“그쪽은 나름 바쁜 모양입니다.”
사미르가 양손에 쟁반을 들고 테라스로 나왔다. 음료와 샌드위치, 치즈, 샐러드와 뢰스티가 테이블 위에 차려졌다. 마리가 냉큼 샌드위치를 입에 물었다. 성현제는 음식에는 손대지 않고 커피 잔을 들었다.
“설마 정말로 뉴욕에 가서야 부르는 건 아니겠지.”
“뉴욕이요?”
성현제는 대답 없이 노트북 화면에 띄워 진 위성사진을 빙그르 돌렸다. 인적이 드문 곳. 혹은.
“강제적으로 인적이 드물어진 곳.”
S급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 난 지역 근처일 가능성이 가장 높았다. 던전은 겹쳐 발생하지 않는다. 인구 밀도가 높은 곳이라 해도 가능한 일정 간격을 띄우고 나타났다. 지도 위 점점이 박힌 던전 위치 위로 선이 그어졌다.
“산책은 이 정도면 충분하지.”
그동안 알프스를 돌아다니며 파악한 공기 중 마나의 상태. 세성에서 보내온 스위스 던전 정보. 석하얀 팀에서 협조해 준 아직 미완성인 던전 생성 법칙. 한 모금 마시고 손대지 않은 커피가 식어 갔다. 마리와 사미르가 풍경을 감상하며 아침 식사를 끝냈다.
“수영장엔 한 번도 못 가봤거든요.”
“이 호텔 인피니티 풀 괜찮아 보였어.”
“수영복 없는데.”
“아무도 없으니 옷 입고 들어가도 괜찮아요.”
“미안하지만 그리 긴 시간은 줄 수 없겠군.”
지도의 한 곳에 원을 그려 표시하며 성현제가 말했다.
“이번이 마지막 등산이 될 거라네. 나 혼자 가는 것도 괜찮겠지만.”
“싫어요. 여기까지 따라왔는데. 딱 한 시간만 놀다 올게요.”
마리가 사미르를 끌고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 테라스에 홀로 남은 성현제가 고개를 돌려 구름 사이로 솟아난 산을 바라보았다.
콰득!
금빛 사슬의 일부가 절벽을 파고들었다. 이어 콱, 콰드득, 십수 개의 짧은 사슬이 곳곳에 들이박혔다. 마치 발파 작업을 하듯 일정한 거리를 두고 박힌 사슬 위로.
콰르릉!
번개가 내리쳤다. 눈이 아플 정도의 빛과 함께 돌이 부서지고 절벽 전체에 금이 쩌저적 갔다. 우르르 흙과 돌이 산사태라도 난 것처럼 쏟아져 내린다. 울컥 솟아오른 흙먼지가 다 가라앉기도 전에 다시 사슬들이 날아갔다. 쾅, 콰릉! 요란한 소리와 함께 산의 일부가 또다시 무너지고 그 속이 드러난다.
“진짜 여기예요?”
마리가 두 손으로 귀를 막고 소리쳤다. S급이라 해도 덮쳐드는 흙먼지를 다 피할 수는 없었기에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였다. 마지막으로 한번 더 산을 파헤친 성현제가 뒤로 훌쩍 물러섰다.
“이곳이었어.”
희미하게 비틀린 마나가 느껴졌다. 먼지가 가라앉고 성현제가 절벽의 잔해 위로 올라섰다. 감각을 최대한 끌어올려도 파악하기 힘든 옅은 흔적이었다. 기대에 미치지 않는 그 흔적에 성현제의 눈썹이 약간 올라갔다.
“쉽지 않겠군.”
그의 능력으로는 이곳에서 무언가 얻어내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흔적을 최대한 복구하고 그대로 복제해 신입이나 어린 혼돈에게 보여 주어야 할까. 고민하는 그의 곁으로 마리가 다가갔다.
“내가 도와줄까요?”
“…스킬인가?”
뜬금없는 마리의 말에 성현제가 되물었다. 마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께선 숨기라고 하셨지만요. 내가 성현제 님을 납치한 건 사실이니까, 그 대신이에요.”
“그렇군. 확실히 의식만으로는 초승달을 불러들이기 힘들었을 테니.”
“성현제 님 혼자 다 알아차리고 말씀하시는 거 좀 재수 없어요. 제 스킬은, 음, 이곳에 존재하지 않지만 분명 있는 것을 끌어오는 힘이에요. 동화책의 마지막 페이지.”
결말이 빠진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을 현실화시키는 능력. 초승달을 불러들일 모든 준비를 갖추고 실현되기 힘든 그 마지막 결과물의 완성을 보조하는, 일종의 의식 스킬이었다. 초승달이 한유진의 몸에 보다 수월히 깃들 수 있었던 것도 마리가 억지로라도 결혼식을 끝내기 위해 스킬을 사용한 덕이었다. 마리는 자신의 몸으로 불러들이려 한 것이었지만.
“마리 양은 요정용종과 비슷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일지도.”
“그래요? 그럼 더 잘 맞, 이 아니라. 너무 어렸다고요!”
마리가 스킬을 펼쳤다. 그녀의 마력이 넘쳐흐르고 희미하게 남은 과거이자 미래의 흔적을 이끌어 낸다. 누군가가 남겨 놓은 흔적이 그것을 찾아온 사람에게 이어지도록, 마지막 연결 고리가 찰칵 엮이고.
성현제는 낯선 공간에 서 있었다. 그의 앞에 그와 똑같은 얼굴이 보였다. 다만 한쪽 눈을 잃은 채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