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634
632화 아이들 (1)
“세성 길드장님과 그 아드님은 동행하지 않으셨습니까?”
가까운 프랑스 헌터 협회에 들어서고 제일 먼저 들은 질문이었다. 심지어 우리를 바라보는 직원들의 눈빛 대부분이 비슷한 호기심을 띠고 있었다. 적당히 얼버무리고 방음 잘되는 협회 회의실을 빌려 상황을 살펴보니 가관도 아니었다.
처음엔 그래도 세성 길드장을 닮은 각성자 소년, 정도로 시작했던 기사가 시간이 갈수록 선을 슬금슬금 넘더니 날이 밝을 무렵에는 숨겨진 세성 길드장의 아들! 모친은 누구? 신규 귀족, 상급 헌터계의 왕자님! 각성 능력치도 유전인가? 말 그대로 골든 블러드 등등 성현제가 결이의 부친이라고 아예 확정 짓고 있었다.
왜 친척이라고는 생각지 않는 거지. 성현제 나이 대에 애가 있으면 딱 결이만 할 거라서 그런 건가. 겉으로나 그렇지 실제론 태어난 지 일 년도 채 안 되었는데.
“결이가 싫은 일 할 필요는 없어.”
물론 결이가, 그리고 성현제가 괜찮다면 세성 길드장의 아들로 인정받는 게 가장 쉽고 안전한 방법이었다. 결이가 사람으로서 이 사회에 녹아들기에는.
인간의 모습을 가지고 말이 통하고 지적 능력도 뛰어나지만 그래도 결이는 요정용종, 몬스터였다. 인종만 달라도 거리껴 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흔한데 종족이 다르다면 배척받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렇다고 결이의 정체를 영원히 숨기고 인간인 척하는 것도 쉽지는 않았다. 만에 하나 뒤늦게 들킨다면 그간의 시간들이 한 번에 몰려들어 거센 비난을 받게 될 테니까. 하지만 성현제의 아들이라고 하면 결이가 마수라는 사실을 발각될 확률이 거의 없어진다. 설사 누가 확실한 증거를 들이댄다 한들 뭐 어쩔까, 사회적으로 확실히 자리 잡은 똑 닮은 애 아빠가 자기 아들이라 하는데. 유전자 검사는 특수 스킬을 지닌 탓이라 우기면 그만이고.
“사실 지금 이대로도 아무 문제 없어.”
그러니 세성 길드 상속 이전에 결이의 안전과 평화로운 삶을 위해 무척이나 끌리는 방법이었지만, 어디까지나 결이가 원할 때의 일이었다. 성현제의 동의도 필요하긴 하겠지만 지금까지의 태도를 보면 딱히 거절할 것 같진 않고. …그래도 확실하게 도장 찍기 전에는 물어봐야겠지만.
“결아.”
내 부름에 결이가 눈치껏 소년의 모습으로 변했다. 시선을 낮추어 결이와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결이는 아빠처럼 살고 싶은 거지? 삼촌이나 고모나, 그리고 다른 사람들처럼.”
여태껏 요정용의 모습으로 말도 못하는 척을 착하게 해주었지만 나와 함께 직접 앞장서서 여러 가지 일을 하는 결이는 분명히 즐겁고 행복해 보였다.
“요정용이 아닌 여느 아이들로서.”
“…응.”
결이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결이는 아빠를 도와주려고 태어난 거지만.”
“아니야, 결아. 태어나는 것은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야. 물론 아빠가 그런 생각을 하기는 했었어. 그렇지만 어떤 이유로 태어났든 결이의 삶은 결이 거야. 그건 세상 누구라도 마찬가지야.”
누구도 남의 삶을 대신 살아 줄 수도, 살아 달라 할 수도 없다. 설사 타인을 대신해서 타인의 목표를 이어 간다더라도 결국 그것은 그 사람이 한 일이며 그 사람의 삶이다.
“그러니 잘 들어. 만약 성현제의 도움을 받는다면 보다 쉽게 자리 잡을 수 있을 거야.”
결이에게 세성 길드로 가는 것에 따른 이득을 차분히 설명해 주었다. 가만히 듣던 결이가 불쑥 물었다.
“아빠도 편하겠지?”
“아빠 생각은 잠시 하지 말자. 결이가 원하는 대로, 결이 마음을 잘 살펴보렴.”
“…결이는.”
작은 목소리가 머뭇거리며 이어졌다.
“아빠가, 결이 아빠가 아니게 되는 건, 쫌 싫은 거 같아.”
“아빠는 계속 결이 아빠지만, 대외적으로는 말하기 힘들어지겠지.”
그건 어쩔 수 없었다.
“만약에 결이가 아빠 아들로 남게 되면, 어떻게 돼?”
“아빠가 결이를 입양할 거야. 성현제와 먼저 합의해야겠지만 지금 소문을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은 채 결이가 성현제의 친척이라는 소문을 뒤로 낼 생각이야.”
공식적으로 결이는 성현제의 친척이다, 인간이다라고 발표해 버리는 것은 후에 독이 되어 돌아올 수 있었다. 이종족을 거짓말로 인간인 척한 셈이 되어 버리니까. 하지만 물밑으로 흘러나온 소문을 사람들이 멋대로 믿는 것은 우리 잘못이 아니다. 그렇다 해도 반발이 없지는 않겠지만 적극적으로 속이는 것보다야 나을 터였다.
“정확히는 아빠가 키운다고 하고 법적인 절차는 결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미룰 예정이야. 그렇게 해도 별문제 없을 테니까.”
애가 한국 출신은 아닌데 여러 가지 사정 상 당장 국적 밝히거나 한국 국적 취득하기는 힘들어요, 하고 대충 얼버무려도 넘어가 줄 것이다. 만에 하나 안 된다면 그거 받아 주는 나라로 짐 싸들고 가버리면 그만이니까. 상급 각성자면 그런 문제야 원래부터 잘 봐주기도 했고.
“그리고 유치원을 만들고, 필요하다면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까지도. 이왕 하는 거 각성자 아이들 위주로 만들어 볼 생각이야.”
앞으로도 세상이 지속되고 각성자도 계속 존재한다면. 그럼 조금 특별한 아이들도 계속 태어날 것이다. 유현이나 리에트 같은 경우도. 뿐만 아니라 지금도 사고로 인해 어린 나이에 각성하여 제대로 된 교육이나 돌봄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다고 들었다. 컨트롤하기 힘든 나이에 어른보다 훨씬 강한 어린애는 웬만큼 좋은 부모라 해도 감당하기 어려우니까. 각국의 헌터 협회가 그런 아이들을 도와주고 있다곤 해도 아직 체계적인 보호시설은 없었다.
“나중에 만약 결이가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져도 최대한 문제가 적도록. 그리고 결이 동생들도 다닐 수 있도록.”
이미 익숙해진 사회의 일원으로 쉽게 받아질 수 있도록. 너무 과보호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결이가, 그리고 다른 두 아이가 마수로 태어난 것은 그 아이들의 잘못이 아니다. 나쁜 습관이나 잘못된 행동 등은 가르쳐 고쳐야겠지만 그저 타고났을 뿐인 점을 노력하여 극복하게 만들 필요는 없다.
국적이나 인종, 다양한 주위환경, 장애 등을 극복하여 나아가는 사람들은 분명 대단하지만, 가장 바람직한 것은 자신이 선택할 수 없었던 부분을 개개인이 애써 극복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닐까. 특히나 아이들이라면.
물론 그런 사회를,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개인이 노력하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이지만 다행히 내게는 그럴 능력이 있었다. 마침 한 재산 넉넉히 받기도 했고.
“…아빠가 힘들지 않을까.”
“아니야. 그리고 동생들도 있잖아. 단지 성현제의 도움을 받으면 결이가 더 안전하고 편해지는 것뿐이야.”
결이가 다시 고개를 끄덕이고는 나를 똑바로 마주보며 대답했다.
“그럼 아빠, 결이는 아빠랑 동생들이랑 있고 싶어.”
“그래, 그러자.”
유치원부터 하나 만들어야겠다. 결이를 여섯 살이나 일곱 살이라고 해 둘까. 방송 나간 모습은 그보다 조금 더 나이가 많아 보이긴 했지만 척 봐도 서양인인 거 같으니까. 아빠로 의심받는 성현제 덩치만 생각해 봐도 한국 애들에 비해 더 클 만했다. 흑룡은 결이와 동갑으로 하고 꼬마는 다섯 살쯤?
몸을 일으키며 송 실장님을 바라보았다.
“눈감아 주실 거죠?”
“아동을 보호하는 일에 반대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리고.”
송 실장님의 시선이 결이를 향하였다.
“솔직하게 어린아이라고 생각합니다.”
“송 실장님도 물론 사람이고요. 제 동생도, 성현제와 리에트도. 다른 S급들도.”
사람답게 살면 사람이지 뭐. 우선 반테스 씨에게 연락했다. 그에게 도움을 요청하자 흔쾌히 들어주었다. 성현제에게도 대신 연락해 주겠지. 일단 결이와 성현제가 부자 관계냐는 것은 애매하게 부정하고 둘이 친척관계라는 정보를 흘려 두기로 했다.
“아동 각성자 대상 교육시설을 만들 계획이라는 걸 밝히면 내가 결이를 맡는 것도 영 이상하진 않을 테니까. 성현제와는 다시 친한 척해야겠네.”
어쩔 수 없다. 가까운 사이여야 성현제 친척 아이를 맡는 게 자연스러울 테니까. 게다가 성현제에게 잘나가는 S급이 피붙이를 버렸다는 의혹이 붙게 만드는 건 미안하잖아. 그러다가 내가 정이 많이 들어 버렸다며 입양 의사를 넌지시 비치는 식으로 천천히 진행하면 될 것이다.
“아저씨, 다른 한 명은 어떤 아이인지 물어봐도 돼요? 이번에도 아저씨 닮았어요? 아니면 설마 또 세성 아저씨? 혹은 다른 누군가?”
“어, 응. 그게…….”
조금 곤란한 표정으로 유현이를 돌아보았다.
“유현이 닮은 애, 라고 할까.”
“헐, 진짜요?!”
“응. 그건 좀 곤란하긴 하겠네…….”
꼬마야 내 애라고 해도 되지만 유현이는 이제 겨우 스물, 아니 스물한 살인데.
“유현이 네가 이상한 오해를 받을 수도 있겠다.”
“난 괜찮아.”
“아니야, 흑룡도 그냥 내 애라고 하면 되지 뭐. 삼촌 닮는 경우도 있다잖아.”
완전 할아버지네! 할머니네! 하는 일도 흔하고. 형제라서 다행이었다. 흑룡 머리칼을 꼬마랑 똑같이 염색해 버릴까. 그럼 엄마가 같구나 생각할 테고. 예림이가 짠하게 나를 바라봐왔다.
“아저씨, 그랬다간 진짜 장가 다 가게 될걸요.”
“…일치감치 포기했다. 애들 있으면 됐지.”
꼭 결혼을 통해서 가정을 이룰 필요는 없잖아.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지.
“근데 세성 아저씨에 이어 아저씨랑 한유현이라니, 혹시 현아 언니나 송 아저씨 닮은 애도 있어요?”
“무슨 소리야, 없어. 아직은.”
“아직은요?”
“뭐랄까, 세상 일이 어떻게 될 지 알 수 없으니…….”
진짜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냐. 유현이가 불만스러운 시선을 내게 보내왔다.
“…형.”
“물론 가능한 없어! 현아 씨와 송 실장님께도 죄송한 일이고. 성현제는 재미있어 했고 유현이 너야 내 동생이니 넘길 수 있지만 두 사람은 아니잖아.”
멀쩡한 청춘 혼삿길 막을 일 있냐. 그보다 꼬마가 벌써부터 걱정이었다. 셋 다 노아 씨나 리에트처럼 몬스터화하는 스킬을 가지고 있다고 할 예정이지만 꼬마는 인간화를 오래 유지하질 못해서……. 일단 꼬마를 불러 보았다. 동그란 털뭉치가 테이블 위로 톡 튀어나왔다.
– 뀨욱.
두리번거리던 꼬마가 노아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리곤 쪼르르 테이블을 가로지르며 다가간다. 노아 씨가 조금 당황하며 나를 돌아보았다.
– 퓨익!
“유진 씨, 이 애가… 제게 뭔가 원하는 것 같은데요.”
“노아 씨가 반짝거려서 그래요. 꼬마야, 이리 와.”
“여기 초콜릿 있어! 고모한테 와!”
“오, 오빠도! 여기!”
결이가 어색하게 외쳤다. 오빠 소리도 곧 익숙해지겠지. 노아의 머리칼을 입에 넣어보고 싶다는 듯 몸을 길게 쭉 늘이던 꼬마가 다시 빙글 돌아 이쪽으로 뛰어왔다. 내미는 두 개의 초콜릿을 입으로 물고 두 손으로 받는다.
“너무 많이 주면 안 돼.”
두 개도 많다. 금방 초콜릿 하나를 먹고 두 개째를 갉작이는 꼬마를 안아들었다. 파란 눈이 나를 마주 바라봐왔다.
“꼬마야, 인간으로 오래 변할 수 있어?”
“응?”
꼬마가 어린애 모습으로 변하며 내 어깨에 매달려왔다. 꼬마를 처음 보는 노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정말로 유진 씨와 닮았네요.”
“그렇죠? 꼬마 넌 아빠랑 있는 게 좋다고 했지?”
“응.”
주위를 다시 두리번거리던 꼬마가 팔을 뻗어 내 목을 감아 안기며 비밀 이야기를 하듯 귀에 작게 속삭여왔다.
“나 안 예뻐. 다 무서워했어.”
…예전의 기억인 모양이었다. 가능한 적게 남았기를 바랐는데, 생각보다 많이 기억하고 있는 듯했다.
“얼굴 막 이렇게 찌푸리고.”
“아니야, 예뻐.”
“형은 예쁘다 했어.”
꼬마가 까르르 웃으며 소곤거렸다.
“아빠가 처음 좋아해 줬어. 그래서 나도 아빠 좋아해.”
…그저 그 잠깐만으로 돌아오는 순수한 애정이 호수처럼 맑고 깊었다. 그래서 숨이 꽉 막히는 듯했다.
“아빠도 꼬마 널 좋아해.”
“반짝거리고 예쁜 것도 좋아.”
“꼬마도 예쁘고 반짝거려.”
그래서 예전과 다르게 밝은 빛깔을 띠게 된 걸까. 주위에서 싫어했으니까. 그것도 그저 인간의 시선일 뿐이었는데.
“이렇게 변해 있는 거 힘들어?”
“피곤해.”
“얼마나 오래 있을 수 있는데? 꼬마가 너무 힘들지 않을 정도로.”
“형이 아빠가 이름 주면, 더 쉽다고 했어.”
이름을 받으면 능력적으로도 성장하게 되는 모양이었다. 꼬마가 힘들어, 하고 다시 새끼 마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하품을 짝 하고는 내 손 안으로 사라진다. 손바닥을 잠시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상황 파악을 위해 던전에 들렀다가 헌터들을 불러 모으죠.”
이번에는 신입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는데. 그때로부터 시간이 꽤 지났으니 뭔가 정보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빨리 정리하고 2월 되기 전에 집에 돌아가야죠.”
“2월이면 아저씨 생일에 설도 있잖아요. 선물 준비해야 하는데!”
“결이도 아빠 선물!”
“괜찮아, 적당히 케이크에 초나 꽂으면 돼.”
그렇게 말하면서도 솔직히 살짝 기대되긴 했다. 무엇보다도 동생과, 여럿이 함께 보내는 생일은 오랜만이니까.
자잘한 볼일을 보고 던전으로 향했다. 중앙에 철지난 거대한 크리스마스트리가 솟은 하얀색 너른 방에서.
[허니!]반가운 배구공이 통통 튀어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