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638
636화 테러 반대 모임 (1)
높고 둥근 천장은 화려한 그림들로 가득했다. 벽이며 기둥이며 문이며 황금색 장식으로 가득해 빛이 들 때마다 반짝반짝 눈을 어지럽힌다. 그 호화로움을 앞에 두고도 몇 없는 관광객들은 자꾸만 다른 곳으로 시선을 팔았다. 커다란 그림 앞에 선 소녀와 아이. 특히 그중 한 명은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그 소년이었다.
“베르사유는 꼭 한번 와보고 싶었는데.”
박예림이 부루퉁한 얼굴로 말했다.
“그치만 이런 식은 아니었다고.”
“맞아, 고모.”
그 옆에 선 한결도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만 떼어 놓고. 아빠가 너무했어.”
한유진은 예언가 무리를 쫓는 이번 일에서 박예림과 한결을 빼놓기로 결정했다. 둘 다 너무 어리다는 이유에서였다. 박예림은 던전 공략도 하는 S급 헌터였지만 그래도 이번 상대는 순수한 인간이었다. 채터박스의 파티 때처럼 양측의 목숨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나도 사람 해치는 건 싫긴 하지만 그쪽에서 먼저 덤벼든 거잖아? 정당방위라고.”
아프리카에서 이미 몇 번이나 싸웠는데요, 하는 박예림의 주장에도 한유진은 단호했다. 인간은 몬스터와 다르게 표정도 정확히 알아볼 수 있으며 말도 통한다. 그런 의사소통이 가능한 상대의 마지막 순간을 바로 앞에서 보는 것은 물론이요, 직접 만들어 내는 것은 어른이라 하더라도 피하는 편이 좋다며 박예림을 말렸다.
“…정말로 죽이거나 한 적은 없긴 했지만.”
중국에서 물에 휩쓸려간 사람 중 몇은 살아남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 직접, 바로 앞에서 누군가를 죽인 적은 없었다. 부상자나 시체는 봤었지만. 박예림은 시체는 별 느낌 안 들었는데, 하고 작게 중얼거렸다. 잘 모르는 사람들이라서였을까.
“그래도 과보호야. 내가 아저씨보다 강한데.”
“결이는 안 다치니까 괜찮아.”
“에이, 그건 아니지.”
박예림이 고개를 돌려 옆에 선 아이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결이 넌 너무 어린 게 맞아. 게다가 이젠 몬스터도 아니게 되었잖아? 어린아이는 가면 안 되는 건 맞다고.”
“…하지만.”
한결이 불만스럽게 볼을 부풀렸다. 새끼 몬스터와 어린아이는 다르다. 둘 다 보호받아야 할 아이라 해도 아직은 사회적으로 달리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이제는 아빠를 쉽게 따라다녀선 안 된다는 말에 한결은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표정을 지었었다.
“안전이 보장된 채터박스 파티만 해도 안 좋은 소리 할 사람들 분명 있댔잖아. 진짜 위험한 곳까지 따라갔다간 아저씨 아동학대로 잡혀갈지도 몰라.”
“우우웅…….”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한 채 한결이 입을 꾹 다문 채 우물거렸다. 고양이로 변하면 안 되냐고 했더니 동물보호 협회도 만만찮다는 말을 들었었다.
“결이도 은신 스킬 가지고 싶어.”
“나도 은신 스킬은 가지고 싶더라. 그 전에 난 S급이고 열여섯 살인데.”
“고모도 결이만큼은 아니지만 어린 건 맞잖아. 고모 보호자도 아빠니까 고모도 조심해야 해.”
한결이 푸욱 한숨을 내쉬었다.
“몰래 따라가고 싶어도 아빠한테 피해가 간댔잖아. 그러면 안 되니까. 결이는 아빠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
“그야 그렇지만, 결아.”
박예림이 걸음을 옮겨가며 말했다. 복도로 나가는 두 사람의 뒤를 보호자로 동행한 마르셀이 조금 떨어져서 따라갔다.
“결이 넌 아직 그런 거 너무 신경 안 써도 된다고 생각해. 고모가 보기에 결이 넌 생각이 너무 많아!”
“하지만 어려도 잘못은 하면 안 되는 거야, 고모.”
“아저씨가 하지 마, 라고 한 건 안 하면 좋지. 근데 이것도 안 될 거야, 저것도 아빠가 싫어할 거야 미리 많이 생각하고 고민하는 건 아닌 거 같아. 그건, 음, 별로 좋진 않았어.”
타고나길 밝고 거침없는 성격이라 해도 홀로 설 수 없는 아이는 어른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다. 설사 잘못된 행동이 아니더라도, 당연히 반발해야 할 부당한 일을 당하더라도 어른의 보호에 기대어야만 하는 아이는 입을 다물고 숙여야 했다.
“고모도 처음엔 그랬다?”
박예림이 웃음기를 띠고 허리를 숙여 한결에게 속삭였다.
“아저씨가 잘해 주긴 했어도 어쨌든 남이잖아. 내가 S급이 아니었음 이렇게 지내긴 힘들겠지 싶고. 아무 능력 없고 도움도 안 되고 귀찮게만 굴면, 아저씨도 못 참고 싫은 티 내지 않을까 했었어. 사실 그게 보통이니까.”
“…결이는.”
빛을 머금은 금색 눈이 빠르게 깜박깜박거렸다.
“결이도 평범하게 태어난 건 아니니까. 아빠가 결이를 좋아해 줬으면 싶었어.”
“응.”
“그래서 노력했어.”
“근데, 안 그래도 돼.”
계단 너머로 넓게 탁 트인 정원이 보였다. 겨울이라 푸르름은 잃었지만 잘 정돈된 모양새는 구경할 만했다. 박예림이 계단을 단숨에 폴짝 뛰어내리며 외쳤다.
“우리가 베르사유를 폭삭 무너뜨린다 해도 아저씨는 잘 해결해 줄 거야! 그리고 잔소리를 듣고, 그걸로 끝이겠지.”
평소처럼 집에 가서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들고 일어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아침 식탁에 앉고. 한결이 종종종 계단을 내려갔다.
“그래도 그러면 안 돼, 고모.”
“당연히 안 하지. 고모도 아저씨 고생하는 건 싫어. 그냥 무슨 일이 있든, 앞으로 무슨 일이 있든.”
박예림의 눈이 약간 찡그려졌다. 불안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 이 삶이 일순간에 완전히 무너져 내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곁의 누군가가 영영 사라지는 일이 또다시 벌어질 수도 있었다.
박예림이 말을 멈추었다. 옆으로 다가온 한결을 와락 끌어안았다.
“고모는 결이를 사랑해!”
“응, 결이도 고모를 사랑해.”
한결도 짧은 두 팔을 잔뜩 뻗어 박예림을 마주 안았다.
“아저씨가 결이를 사랑하는 것도 변하지 않을 거야. 그건 확실해!”
“으응.”
“하지만 두고 간 건 너무했어. 최소한 두 살은 더 먹어야 한다니.”
인적 드문 정원의 작동을 멈춘 분수대로 간 박예림이 물을 위로 확 솟구쳐 올렸다. 물줄기가 하트를 그렸다가 꽃과 별과 새로 변하며 차르르 비처럼 쏟아져 내린다.
“같이 다니는 게 더 안전할지도 모르잖아. 물론 난 강하지만. 파리에서 걔들이 날뛰긴 힘들다지만. 파리엔 상주하는 S급도 많다지만!”
유럽 헌터 연합이 있어 여차하면 영국이나 주위 다른 나라에서도 도와주러 온다며 결이와 함께 파리 관광을 하고 있으라고 했다. 프랑스 헌터 협회 파리 지부에서도 걱정 말라며 안전을 보장했었다.
“아저씨 얼굴! 은 안 닮았다. 그럼 피스!”
– 삐약삐약삐약!
분수대 가장자리에 올라앉은 삐약이가 박수를 치듯 날개를 파닥거렸다. 어? 하고 박예림과 한결이 삐약이를 바라보았다.
“삐약아?”
– 삐약.
– 시익.
“고모, 벨라레도 있어!”
삐약이는 아랑곳없이 둥실 떠올라 분수대의 장식을 구경했다. 한 바퀴 빙글 돌고는 다시 벨라레에게 돌아가 무어라 삐약거린다.
“삐약이 너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거야? 설마 관광 왔어?”
– 삐약삐.
“아저씨가 멋대로 돌아다니지 말랬잖아.”
– 뺙.
하얀 새끼새가 반박하듯 뺙 소리치고는 붉은 보석뱀의 머리 위에 올라앉았다. 그리고 이내 둘의 모습이 사라졌다. 박예림이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반항기인가. 역시 삐약이 쟤 보통이 아닌 거 같아.”
“…맞아, 고모.”
한결이 삐약이가 사라진 자리를 빤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삐약이 이상해.”
루가 폐야가 죽은 그때, 삐약이가 나타났었다. 다른 S급들은 물론 초월자도 쉽게 간섭할 수 없는 공간에. 그리고 눈이 내리는 나무 아래로 한유진을 이끌어갔었다. 무해의 왕의 마석을 삼킨 덕이라 해도 놀라운 능력이었다. 그때의 일을 멋대로 말할 순 없었기에 한결은 설명 대신 심각하게 팔짱을 꼈다.
“있잖아, 고모. 혹시 삐약이도 바깥과 관련 있는 거 아닐까?”
“으으음. 하지만 삐약이가 아저씨랑 하루이틀 같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초장거리 공간이동이야 윤윤도 할 수 있으니까.”
설마 저 동글동글한 새끼 새가. 박예림이 표정을 풀며 끄덕거렸다.
“게다가 삐약이는… 소올직히 그렇게 똑똑한 것도 아니잖니. 차라리 피스가 더 가능성 있을걸? 걔 삐약이보다 최소 다섯 배는 더 똑똑하잖아. 가끔 보면 사람 뺨친다니까.”
“으응.”
답답해하던 한결이 요정용으로 변해 박예림의 어깨에 올라앉았다.
– 삐약이가, 아빠한테 나쁘게 한 적은 없지만.
“멋대로 돌아다니는 게 문제지. 베르사유는 어떻게 알고 온 거람. TV에서 봤나?”
한결이 자신의 꼬리 끝을 만지작거렸다. 박예림의 말대로 단순히 놀러 다니는 것 같긴 했다. 지금까지도 아무 문제 없었다.
‘…삐약이도 아빨 좋아하니까.’
괜찮겠지. 그 하얗던 겨울나무의 풍경이 떠올라 한결은 꼬리를 꼭 끌어안았다.
헌터계는 물론 전 세계를 통틀어 최고의 보물창고! 최소 S급에서 SS급 이상 장비도 다수 잠들어 있을 특수금고!
그리고 그 보물고를 상속받은 행운아 도담 소장 한유진.
세성 길드장의 숨겨진 아들?! 의 뒤를 이어 새롭게 등장한 뉴스에 세상이 또다시 떠들썩해졌다. 채터박스가 자신의 사망 시 파티 우승자에게 전 재산을 물려주겠다고 유언장을 남겼다는 사실이 공표되며 그의 자산이 사람들의 입을 오르내리게 되었다.
십수 개의 부동산과 현금도 눈을 휘둥그레지게 만들었지만 그보다 더 주목받은 것은 헌터용 장비들이었다. 주인이 아니면 열수도, 부술 수도 없는 특수금고에 가득 찬 장비와 아이템. 이미 파티 중 소개된 능력만 보더라도 보통이 아닐 그것들을.
[파티 참가자분들께 금화 보유수와 시청률에 따라 상품으로 드릴 예정입니다.]한유진은 채터박스가 약속했던 대로 참가자들에게 나누어 주겠다 발표했다.
[물론 우승자인 제 몫이 가장 크겠지요. 하지만 저는 스탯 F급으로 등급 높은 장비를 그다지 필요로 하진 않습니다. 비율증가 S급보다 정수증가 B급이 더 나은 형편이거든요. 그래서 제 주위 사람들을 먼저 챙기고, 남은 제 몫 또한 걸맞은 헌터분들께 가게 될 예정입니다.]거저 주겠다고 까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돈으로도 구하기 힘든 것이 S급, SS급 장비였다. 상급 헌터라면 누구든 귀가 솔깃해질 그 상황에서.
[다만 금고를 열기 위해 뉴욕으로 곧장 갈 수는 없는 상황입니다. 아프리카에서부터 어느 테러단체가 저를 노리고 있습니다. 아쉽게도 금고는 이동이 불가능하다고 하고요.]방해꾼이 나타났다.
[테러단체에 의해 이미 공항이 파괴되었습니다. 더 이상의 민간피해를 막기 위해 유럽 헌터들과 연합해 테러단체를 뿌리 뽑고자 합니다.]도움의 손길은 언제든지 환영한다는 그 말에 뿔뿔이 흩어졌던 파티 참가자들이 다시금 모여들기 시작했다. 특히 한유진과의 관계가 나쁘지 않았고 금화를 다수 소지한 헌터들은 프랑스를 향해 당장에 짐을 쌌다. 파티 참가자는 아니지만 떡고물을 노리는 헌터들도 몇몇 끼어들었다.
짧고 경사까지 있는 활주로에 작은 비행기가 내려앉았다. 하늘 위로 헬리콥터가 빙글빙글 맴도는 모습도 보인다. 조그만 산악 공항을 기다려 이용하기 힘들어 착륙 대신 뛰어내리는 헌터들도 더러 있었다.
“S급들이 이렇게 자주 모이게 될 줄이야.”
막 공항에 내려선 S급 헌터가 보스턴백을 대충 둘러메며 중얼거렸다. 공항 한쪽에서 금색 날개를 펼친 미청년이 수 미터 정도 떠오른 채 확성기를 들고 있었다.
[오른쪽 길을 따라가 주세요! 유럽 헌터연합 직원이 접수를 받고 있습니다! 사적인 전투는 금지되어 있습니다!]접수대로 향하는 길 입구에는 누가 봐도 공직자구나 싶은 남자가 묵묵히 서 있었다. 동상처럼 미동 하나 없었지만 시선은 공항의 움직임을 주의 깊게 살핀다. 목에는 유럽 헌터연합 임시 명찰이 걸려 있었다. 동일한 명찰을 단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안 된다는 소리를 외쳐대었다.
“SF는?”
“아까 저쪽에서 봤는데.”
누군가가 말하며 기웃거렸지만 한유진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보호받고도 있겠지만 대부분이 상급 헌터다 보니 가려져 버리는 탓도 컸다.
“한결이라는 애 진짜 친척일까.”
“성이 다르다잖아.”
“그래도 너무 닮았는데.”
몇몇의 손에는 따끈따끈한 잡지가 들려 있었다. 표지 사진은 한유진과 한결이었다. 상급 헌터들도 사람이라 소문 좋아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사실 세성 길드장 숨겨진 애가 열 명쯤 있어도 이상할 건 없지.”
“난 아예 없을 거 같던데. 그런 타입이 철저하잖아.”
“결혼 버라이어티는 언제 방영하는 거지? 테러 때문에 밀렸나?”
“나도 그거 기다리고 있었는데. 세성 길드장은 여기 없는 것 같은데, 혹시 촬영 중인가?”
헌터들이 하나둘 접수를 마쳤다. 사상자 발생 시 보상 없음, 대 테러전 외의 민간 피해는 각자 책임져야 한다는 냉정한 조항이었지만 머뭇거리는 사람은 없었다. 던전 공략시와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먼 길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
접수가 끝나자 방송 덕에 익숙해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화염 뿔사자가 날개를 펼쳐 가볍게 날아오르고 그 위에 탄 한유진이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