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643
641화 임시 시스템 관리자 (4)
“무슨, 어떻게 된 거예요?!”
분명 멀쩡했었는데. 두 눈도 두 팔도 멀쩡히 잘 달려 있었는데. 당황스럽고도 어이가 없었다. 아니 왜, 어쩌다가. 설마 상태가 안 좋아서 다른 헌터에게 공격이라도 당했던 걸까. 역시 송 실장님께 함께 가달라고 부탁했어야 했나. 힘이 약해졌으면 얌전히 한국에 돌아갔어야지 멀쩡한 길드 놔두고 어딜 혼자 돌아다니다가 저 꼴이 되었어!
“얼마나 다친 건데요? 힐러는요? 잘린 팔 재생까진 못 하겠대요? 마침 이 동네에 성녀님 계시니까─”
“오랜만이군.”
나직한 목소리가 울렸다. 나름 오랜만인 건 맞았다. 고작 보름도 채 지나지 않았지만, 아무튼. 하지만 성현제의 목소리는 그보다 훨씬 깊었다. 그에게 다가가던 내 발걸음이 무심코 멈추었다. 몇 주 정도가 아닌 일 년 이상의 시간. 그것이 발 앞에 움푹, 깊게 골짜기로 나타난 듯한 감각이었다.
눈을 깜박였다. 익숙한 얼굴을 새삼스럽게 들여다보았다. 바랜 머리카락 금색 눈동자.
“…성현제 씨?”
“아직 적응이 되질 않아서.”
성현제가 옅게 미소 지었다. 그의 눈이 감기고 다시 천천히 뜨인다. 탁하게 빛을 잃었던 눈동자에 해의 테두리 같은 황금색이 깃들었다. 팔 또한 신기루처럼 멀쩡히 돌아왔다. 성현제가 되찾은 팔을 들어 가볍게 주먹을 쥐었다 폈다.
“이 몸에, 말이지.”
성현제는 눈도 팔도 잃지 않았다. 그리고 성현제는 눈과 팔을 잃었었다.
“당신.”
입안이 바싹 메말랐다.
“누구야.”
“보시다시피.”
“몸을.”
적응되지 않았다. 한쪽 눈과 팔이 없었다.
“빼앗은 것처럼, 말하고 있는데.”
“결과적으로는 비슷할까.”
그가 희미한 미소를 띤 그대로 말을 이었다.
“회귀 전의 흔적. 나는 실체화된 그것을 가지려고 했었지. 정보와 송태원이 남긴 그림자. 사라지게 내버려두기에는 아까운 것들이니.”
…성현제가 회귀 전의 자신의 흔적을 찾으러 갔었던 건가. 그런 것이 남아 있었어? 흔적이 남았다고 해도 대체 어떻게 실체화시켜서는 이렇게.
“그리고는.”
잃었던 손끝이 턱 근처를, 입가를 느릿이 매만진다.
“내가 표면에 남았다, 라고 해두지.”
“…그게 무슨 소리야.”
“시간의 흐름 사이에 남은 찌꺼기라 해도 성현제이니 말이야. 어느 쪽이 먹히고 어느 쪽이 남을지는, 운에 따른 결과라 해야 할까. 그리하여 이렇게 되었어. 혹은.”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되었다네. 이편이 익숙할까.”
점차 가늘어지던 인내심이 단숨에 뚝 끊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머리보다 먼저 몸이 움직였다. 발이 내디뎌지고 바닥을 박차고 뛰어가 손을 내미는 것까지, 마치 남 일처럼 멀게 느껴졌다. 멱살을 붙잡으려던 손끝이 허공을 휘저었다. 동시에 배에 강한 충격이 와 닿았다.
퍽!
소리와 함께 몸이 뒤로 내팽개쳐졌다. 은혜 덕분에 조금 아릿한 정도였지만 반사적인 기침이 콜록 튀어나왔다. 바닥을 길게 미끄러지다가 멈췄다. 곧장 일어나려는 내 뒷목에 강한 힘이 가해졌다. 두 손을 짚은 것으로는 버티지 못하고 팔꿈치가 구부러졌다. 거의 바닥에 엎어진 채 눈을 깜박였다. 반질한 구두코가 눈에 들어왔다. 한쪽만이. 다른 한쪽 발이 내 뒷목을 밟아 누르고 있으리라는 사실이 너무도 쉽게 짐작되었다.
“많이 무르고.”
내 몸뚱이 한참 위에서 건조한 목소리가 떨어져 내렸다.
“퍽이나 다정했던 모양이로군. 구를 만큼 구른 한유진 씨가 앞뒤 없이 덤벼들 정도면.”
…그래, 그 말대로. 회귀 전의 나는 절대 S급에게, 상급 헌터에게 무턱대고 덤벼들지 않았을 것이다. 심지어 맨손으로는. 무기를 쥐고 조용히 틈을 보아 긁힌 잇자국이라도 내고자 하였겠지. 지금도 다른 상급 헌터 상대였다면 달랐을 것이다.
“누구 씨와는.”
손을 쥐었다 폈다.
“나름 파트너라서.”
하지만 그쪽은 아니지. 쾅! 내 손바닥 위에서 폭탄이 터졌다. 강한 압력이 열기와 함께 치솟는다. 눈앞이 화끈 뜨거워진다. 뒷목을 누르던 힘이 사라지고 내 몸뚱이가 다시 한번 떠올랐다가 아래로 떨어진다. 이번에는 미리 대비하고 있었기에 사뿐히 착지했다. 그와 동시에 연막탄을 터뜨리고, 옆으로 몸을 날렸다.
쇄액!
무언가가 공기를 갈랐다. 번득이는 금속의 빛이 시야에 언뜻 비쳐들었다. 은신 스킬을 쓰고 바닥을 미끄러졌다. S급 헌터라도 쉽게 찾지 못할 것이지만.
파지직-
미약한 전류가 느껴졌다. 주위의 공간을 모조리 장악하며 모든 움직임을 섬세하게 파악하는 전기의 장막. 모습을 완벽하게 감춘다더라도 사방을 모두 건드리는 손길까지는 피할 수 없었다. 이내 내 앞으로.
탁.
구두굽이 바닥을 울렸다. 그물 속의 물고기를 건지듯 너무도 쉽게 내 옷깃을 잡아당겨 든다. 폭발로 인해 흐트러진 머리칼이 매끄러운 이마 위로 흔들렸다.
“망할 자식.”
두 놈 다. 어차피 같은 놈이긴 하지만, 아무튼. 발을 들어 놈을 걷어찼다. 물론 꿈쩍도 하질 않았다. 열이 올랐던 머릿속이 조금쯤 식었다. 하지만 속은 여전히 뒤틀렸다. 대체 지금 이게 무슨 꼴이야.
“먹혔다고? 그게 말이냐?”
재차 발길질을 했다. 옷을 더럽히던 발이 붙잡혔다. 몸을 뒤틀다가 델로우즈 스킬을 썼다. 확 줄어든 신체는 쉽게 손을 벗어나고 순식간에 거리를 벌리곤 다시 인간으로 돌아갔다.
“빌어먹을 인간이, 진짜!”
아무 생각 없이 저 꼴 되지는 않았겠지. 그래서 더 짜증이 났다. 대책이 있을지도 모르고, 어쩌면 날 믿어 주는 것일 수도 있었다. 침착하게, 차분하게 정리해 보자면 나쁜 상황은 아니었다. 회귀 전 정보를 꺼내 온 것이나 마찬가지에다 무슨 수를 썼는지 효도중독자 쪽 대리인도 된 모양이니.
얻는 것은 많았다. 그리고 저 망할 인간은 내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리라 여겼을 것이다. 내가 여태껏 잘해 왔으니까. 나는 절대 포기하지도 않을 테니…….
“개새끼야!”
그래, 포기 안 한다고 했지! 망할 놈! 몇 번이나 붙잡고 늘어졌지. 그래서냐? 어? 그래서야? 그래서 자기 몸뚱이 막 내던졌어? 상대가 자기 자신이라고 해도 쉽게 질 인간이 아닌데 일부러 내준 거 아니냐고! 성현제를 향해 삿대질을 했다. 성현제의 눈썹이 힐끗 올라갔다.
“너 내가 어떻게든 원래대로 돌려놓는다! 되돌려 놓고 죽여 버리겠어!”
어차피 못 죽는다니까 머리 한 번쯤은 날려도 되겠지. 이미 날려먹은 적 있긴 하다만. 성현제가 어깨를 으쓱했다.
“회귀 후의 나는 의외로 미움 받는 건가.”
“너도 마찬가지야, 너도!”
뭘 남 일처럼 말하고 지랄이야.
“이 망할 개새끼2! 아니 1인가 아무튼 멍멍이에게 미안한 새끼야! 너─”
할 수만 있다면 멱살을 틀어쥐고 싶었다. 저 뻔뻔한 얼굴에 주먹이라도 찔러 넣고 싶었다.
“네놈이 내 기억 지웠다며! 제멋대로!”
그때의 나도 나였다면, 그걸 원했을 리 없었다. 절대로.
“그 이후로는 한유진의 이야기가 아니야.”
“또 그 소리! 어차피 그쪽도 기억이 온전치는 않다면서!”
“내 몸에 약탈의 힘을 여러모로 사용해 본 결과였지. 한창 시험할 때는 상당히 뒤섞여 있었지만 지금은 잃었던 것도 대부분 되찾았어.”
악몽 던전에서 만난 성현제보다 지금의 성현제가 좀 더 나이를 먹은 모양이었다. 아마도 회귀 직전의 시점이 아닐까.
“한유진이 감당해야 할 일도 아니었지.”
“그건 내가 정해.”
두 개 다 멀쩡한 금색 눈을 마주 노려보았다.
“괴로웠을지도 모르지. 송 실장님과 그쪽과 내가 무슨 사이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난 두 사람을… 분명 좋아했을 테니까.”
그랬을 거다. 성현제는 몰라도 송 실장님은 확실했다. 내가 좋아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니까. 그리고 성현제도, 재수 없다고 하면서도 정 정도는 들었겠지.
“어쩌면 내 책임이… 있었을지도 모르고. 그럼 정말 많이 힘들었을 테지만, 그래도 난 버텼을 거야. 아파 죽어도 살았을 거고 살아갔을 거고. 그리고 그 빌어먹을 엽서에 답장을 해줬겠지.”
기억도 안 나는 망할 엽서. 인벤토리에서 단검 하나를 대충 꺼내 내던졌다. 성현제는 어깨만 아주 살짝 틀어 가볍게 피해 버렸다.
“내 일은 내가 결정해! 그러니 네놈이 다섯 배쯤은 더 재수 없어!”
둘 다 재수 없어도 날 조금이나마 믿어 주는 놈이 그나마 덜 재수 없지. 저놈은 나를 제 입맛대로 다룰 수 있다고 생각할 터였다. 회귀 직후의 성현제가 그랬던 것처럼. 날 보호하려고 기억을 지운 것일 수도 있지. 회귀 후 보호자 제안을 해왔던 것처럼. 하지만 난 필요 없다.
“더럽게 잘나신 양치기 씨.”
말을 내뱉다가 흠칫 입을 다물었다. 양치기하면, 거짓말쟁이 이야기로 유명하지 않았나. 순간 저거 진짜 회귀 전 성현제가 맞나 의심이 들었다. 태도는 분명 지금의 성현제와 달랐지만… 얼마든지 연기할 수 있는 인간이잖아.
‘…워낙 속 모를 인간이다 보니 이런 상황에도 헷갈리네.’
어쨌든 저 몸은 현재 성현제 맞다니까 어떻게든 원래대로 돌려놓으면 그만이다.
“그래서 댁이 왜 여기 있는 겁니까.”
“화풀이는 끝났나.”
“끝내려면 날밤 새우고도 모자랄 거라. 효도중독자가 그쪽을 대리자로 받아들이려 하진 않았을 텐데요. 일단 우리 편이었고.”
내 의문에 성현제가 한쪽 눈을 감았다. 뭐 어쩌라고.
“계약 파기에 따른 대가를 없애는 방법은 보통 두 가지가 있지.”
“하나는 계약보다 더 강한 힘으로 해주. 그리고 다른 하나는…….”
“계약의 내용을 다시 이행하는 것.”
성현제가 감았던 눈을 떴다. 온전한 두 눈, 두 팔.
“지금의 나는 무사히 해주한 모양이지만 회귀 전의 나는 그것이 불가능했어. 신체에 주어지는 영향을 어느 정도 감소시키는 것이 고작이었지. 그리고 내가 표면에 있는 한, 계약은 그대로 이어지고.”
“계약을 복구한 겁니까.”
현재의 성현제가 디아르마, 효도중독자와 한 계약은 깨끗이 사라졌다. 하지만 회귀 전의 성현제에게는 남아 있었다.
“계약은 디아르마와 했지만, 다른 효도중독자에게 자동으로 넘어가는 종류였던 모양이군요.”
“영리하군.”
“개새끼 칭찬하는 눈빛인데.”
“그럴 리가.”
효도중독자와의 계약도 이어져 있고 상황도 많이 달라졌고. 그에 더해 성현제가 어떻게 입을 잘 털었겠지. 현재의 자신과는 실상은 다른 사람이라고 말했을까.
“제가 보낸 메시지는 어떻게 된 겁니까.”
“두 번째였겠지.”
성현제 놈이 입꼬리를 올렸다.
“한유현 다음으로.”
“…그랬긴 한데. 일단 댁이 강하긴 하니까.”
“공평하게 동시에 시작했기에.”
“일부러였구나! 이 치사한 놈아!”
성현제는 내게 받은 메시지에 일부러 대답을 하지 않고 시간을 끌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
“날 붙잡아 둔 채 송 실장님과 현아 씨에게 메시지를 보냈겠지.”
부적합이 이미 선택된 사람들이라서였던 건가. 반면에 성현제는 선택되지는 않았었고.
“대리자는 애초에 부적합 떠야 하는 거 아니냐고! 완전 사기네!”
성현제가 손을 들어 올려 허공을 툭툭 눌렀다. 그리곤.
[한유진 님! 성현제의 편이 되어 주세요~☆ 친애하는 파트너가 당신을 선택했습니다! 파트너의 손을 잡아 주세요, 한유진 씨!(≧□≦)/]내 앞에 메시지가 떴다. 야 이! …근데 메시지 꼴이 왜 이래. 설마 내 메시지도 이 꼴이었냐. 유현이한테 사랑하는 형이~ 라거나 시시오… 생각하지 말자.
“그래도 황림을 데리고 갈 줄이야.”
“황림?”
성현제가 금시초문이라는 듯 되물었다. 뭐야, 그럼 그놈은 왜 부적합 뜬 거지? 인간 자체가 여러모로 부적합스러운 놈이긴 하지만. 다른 초월자, 인형술사와 계약관계라서인가? 숨을 길게 내쉬며 눈에 힘을 주어 성현제를 쳐다보았다.
무슨 꿍꿍이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도, 그래도가 뭐야 젠장 슬쩍 힌트라도 주고 사라질 것이지 진짜 원래대로 돌아오면 두고 봐라 절대 가만 안 둔다. 전부 다, 몇 배로 받아 낼 줄 알라고.
[임시 시스템 관리자님]그때 메시지가 나타났다.
[지금부터 시스템 적응을 위한 연습 게임을 시작합니다.]연습 게임?
[선택한 각성자 중 한 명을 불러와 주세요!]한 명이라면 당연히 유현- 잠깐만. 어떻게 부르는 건데.
[등록 각성자 공간이동 시스템 작동 방법]다행히 매뉴얼이 나타났다. 그러니까 우선 지역 지정하고 대상자의 위치를 탐색, 탐색…….
[지도를 따라 시스템의 마력을 끌어들여 집중하세요!]나타난 지도의 화살표를 따라 주어지는 시스템의 마력을 붙잡아 당겨 어떻게든 따라갔다. 마나각인 없는 F급은 엄두도 못 낼 작업이었다. 초월자들은 이런 도우미 없이 조작하는 거겠지.
“유현이다! 거기, 거기!”
“한유진 씨.”
“어? 송 실장님!”
송태원이 먼저 성현제 앞에 나타났다. 그가 나와 성현제를 번갈아 바라보며 눈가를 조금 찌푸렸다. 성현제로부터 뭔가 이상한 낌새는 느꼈지만 확신은 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리고 이내.
“형!”
유현이가 내 앞으로 이동되었다. 동생의 눈이 나를 재빠르게 살폈다.
“괜찮아?”
“보다시피, 음, 그냥 조금 굴렀어. 크게 다치진 않았단다.”
의심스런 시선이 던져져왔다. 하나가 아니라 두 개가. 송 실장님, 저 진짜 멀쩡해요.
“어떻게 된 거야? 형 소속은 또 뭐고.”
“설명하자면 조금 긴데…….”
특히 저놈의 성현제를 뭐라고 설명한다냐. 말을 고르는데 메시지가 다시금 나타나고.
“…명우야?”
익숙한 얼굴이 또다시 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