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657
655화 세 번째 팀
“무슨 일입니까!”
한결의 비명소리에 객실 앞을 지키고 있던 헌터가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한결이 얼른 쿠션으로 무언가를 내리치듯 덮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벌레. 바퀴벌레가 있는 거 같아서요!”
“그런. 방을 옮겨 드릴까요?”
“괜찮아요. 결이가 잘못 본 거 같아요.”
헌터가 객실을 둘러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필요한 것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말씀하십시오.”
“네, 고맙습니다.”
한결이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헌터가 밖으로 나가자마자 방글방글 웃던 아이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인상을 최대한 험악하게 구긴 한결이 쿠션을 들어 올렸다. 그 아래에서.
“꽤나 거칠군.”
납작하게 눌려졌던 성현제가 몸을 일으켰다. 휴대폰보다 조금 더 큰 정도일까, 미니미니 쿠키라도 먹은 듯 작아진 채였다.
“뭐야, 왜 여기 있어?”
한결이 사납게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성현제는 구겨진 옷을 가볍게 털어 펴며 열심히 인상을 쓰고는 있지만 여전히 귀엽기만 한 소년을 올려다보았다.
“성한-”
“한결.”
퍽! 쿠션이 다시금 성현제를 덮쳤다.
“한결이야, 한결이.”
진짜 벌레라도 잡듯 재차 쿠션을 휘두른 한결이 단호하게 말했다.
“한 번만 더 그렇게 부르면 창문 열고 비둘기 떼한테 던져 줘 버릴 줄 알아.”
“한유진 군이 슬퍼할 텐데.”
“아빤 왜 이딴 걸 좋아하는 거지? 결이는 항상 아빠 편이지만 이것만큼은 이해가 안 돼. 삼촌이랑 노아 삼촌이랑 현아 이모도 있는데. 송이 아빠 아저씨도 있고. 그러니까 이거 하나쯤은 없어도 되잖아.”
“이래 봬도 꽤 유니크하다고 생각하네만.”
“흐응. 흥!”
웃기지 말라는 듯 한결이 턱 끝을 치켜들었다. 그러곤 거만하게 굴려고 노력하며 말했다.
“목적을 말해. 자꾸 엉뚱한 소리만 하면 내다버리겠어.”
“우선은 소리 차단 아이템을 꺼내게.”
“소리 차단?”
“한결 군의 가방 안에 있을 거야.”
한결이 뚱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순순히 인벤토리에서 노란색 어린이용 가방을 꺼냈다. 그 안에 든 소리 차단 아이템은 예전에 성현제가 넣어 놓은 것이었다.
“…아빠한테 무슨 일 있어?”
아이템을 사용한 한결이 진지하게 말했다. 성현제가 아무 이유 없이 여기까지 왔을 리는 없었다. 꺼리는 상대라고 해도 그보다 한유진을 걱정하는 마음이 당연히 더 컸다.
“보다시피 내게 무슨 일이 있었지.”
“그건 결이랑 상관없어.”
“한결 군은 환상의 현실화 능력을 지녔으며 그것은 스스로에게도 적용되고 있다네. 지금처럼 소년의 모습으로 변하는 것 또한 그 능력의 일부지. 미숙하여 자신과 관련이 깊어야만 현실화가 가능한 모양이지만.”
“…결이도 알고 있거든?”
“덕분에 내가 이렇게나마 형체를 갖출 수 있었어.”
한결의 동그란 눈이 깜박거렸다. 잘 이해가 가질 않은 탓이었다. 성현제가 테이블 위를 굴러다니던 구슬을 손으로 짚었다.
“‘성현제의 조각’의 인간화. 한결 군에게 항시 머물러 있는 힘으로 그 곁에 있는 동일한 조각인 내게도 영향을 미친, 한결-”
한결이 뒷걸음질을 쳤다. 소년이 구슬로부터 멀어지자 성현제의 목소리가 뚝 끊어지고 그의 모습 또한 사라졌다. 동그란 금안이 이리저리 찡그려진다.
“그럼 결이 없으면 못 나타나는 구나?”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팔짱을 턱 낀 채 구슬을 노려보던 한결이 다시 테이블로 다가갔다. 이내 조그만 성현제가 다시 나타났다.
“한결 군의 기본 형태가 소형인 데다가 내게 주어지는 힘은 일종의 덤과 같아서 이렇게 작은 모습 이상은 불가능하지만.”
“왜 그런 꼴로 결이한테 온 건데? 아빠는?”
“지금쯤 나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지 않을까. 조금 섭섭해질 것 같군.”
“…무슨 헛소린지 모르겠어.”
성현제가 한결의 말을 못 들은 척 아쉬움 어린 한숨을 포옥 내쉬었다. 한결이 다시 쿠션을 들어 올렸다.
“바퀴벌레 약 가지고 온다?”
“내 몸 안에는 또 다른 내가- 윽!”
“그만 좀 나와! 너무 많잖아! 지긋지긋해!”
성현제가 또 있다는 말에 한결이 악 소리치며 쿠션을 휘둘렀다. 쿠션을 아슬아슬하게 피하는 성현제의 모습에 한결이 더욱 분해했다.
“한결 군 또한 그중 하나가 아닌가.”
“아니야! 결이는 아빠 아들이야! 설명이나 해!”
“회귀 전의 내 흔적에게 몸의 권한을 넘겨주었지.”
“또 아빠만 고생시키려고!”
“디아르마와의 계약을 부활시키고 초월자들과 예언가의 나에 대한 경계를 줄이며 송태원 실장에게 약탈의 연구 결과를 전달할 수 있는 기회였어. 나 또한 내 속에 쌓인 것들을 느긋하게 살펴볼 수 있게 되었지. 바깥에 누군가를 대신 세워야만 안으로 깊게 들어갈 수 있으니 말이야.”
쿠션을 휘두르던 한결의 손이 움찔 멈추었다. 뭐가 뭔지 정확히 알아들은 건 아니었지만 아무튼 얻는 게 많은 것처럼 들려왔다.
“…결이한테는 왜 왔는데.”
“해야 할 일도 확인해 봐야 할 것도 있어서라네. 한결 군이 너무 어린 것이 조금 걸리기는 하지만.”
“결이는 이제 오빠인걸.”
한결이 두 어깨를 쭉 펴며 말했다.
“원래도 어리다고는 할 수 없다고.”
“그사이 동생이 생긴 건가?”
“귀여운 동생이야. 게다가 한 명 더 있다고 했어.”
자랑이 담긴 말에 성현제가 목을 살짝 기울였다.
“단순한 몬스터는 아닌 듯한데.”
“응. 결이랑 비슷해. 별이는 아직 인간 모습으로 오래 있는 건 힘든 거 같지만. 아마 결이랑은 다르게 몬스터 마석만 들어가서인가 봐.”
한결은 초월자인 디아르마의 마석에 성현제의 조각 또한 들어갔다. 실상 몬스터라고 하기에는 거리가 먼 바탕을 지닌 셈이었다. 한설 또한 초월자에 가까우며 지성을 지닌 드래곤을 바탕으로 한유현의 피를 흡수했다. 반면에 한별은 몬스터의 마석만으로 태어난 마수였다.
“…역시 한유진 군은.”
성현제의 중얼거림에 한결이 뭐냐는 듯 눈을 찡그렸다.
“왜? 또 뭔데?”
“몬스터와 사람의 차이는 언어와 문화라네. 둘 모두 근원으로부터 비롯되었지만 몬스터는 짐승에 가깝지. 인간과 맞먹는 지능을 지니고 있는 개체는 있지만 언어를 가지고 문명을 만들어 낸 몬스터는 없었어.”
상급 몬스터의 지능은 결코 낮지 않았다. 인간 이상으로 영리한 전투를 보이는 몬스터 또한 있었다. 그러나 아직 말을 하는 몬스터는 발견된 적이 없었다. 통역 아이템 또한 몬스터의 울음소리를 번역하지는 못했다.
“지성체를 구분하는 기준 또한 아마도 그것이겠지. 그리고 온전하며 독립적인 지성체를 자연스러운 생식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탄생시키는 초월자에게도 어려운 일일 것으로 추정된다네. 디아르마가 만들어 낸 가장 강한 몬스터, 저주독룡종의 왕 라우치타스도 지성체는 아니었으니.”
“아빠는, 특성이 그거니까.”
한결이 무심코 마른침을 삼키며 말했다.
“그리고 명우 아저씨가 만든 은혜도 가끔 말한대.”
“은혜 또한 초월자의 마석이었다고 들었네만. 그러나 방금 한결 군이 말한, 별이라고 했던가.”
“…별이 만든 마석 중 하나는 명우 아저씨가 준 거랬는데, 초월자였나 보지!”
“대부분의 초월자들은 자신의 세상과 종족을 잃었어.”
그 일족의 마지막. 대부분이 그러했다.
“초월자급이 되지 못한 종족의 마석을 보관하고 있는 이들도 여럿이겠지. 그것이 아니더라도, 탐낼 수밖에 없는 힘이야.”
그 어떤 창조의 능력을 지닌 초월자들보다도 근원에 가깝다 할 수 있는 능력.
성현제는 결혼식 날의 밤을 떠올렸다. 초승달은 한유진의 몸에 깃들었었다. 그녀는 과연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했을까. 혹 또 다른 가능성을 발견하고 순순히 물러난 것은 아니었을까.
“확실하지도 않는 말 하지 마.”
한결의 눈이 차갑게 어두워졌다.
“바탕이 되는 마석이 중요한 건 맞잖아. 별이 마석이 단순한 몬스터였는지 마석을 가지게 된 사람이었는진 알 수 없어.”
“몬스터 또한 긴 시간 성장한다면 지성체가 될 수도 있겠지. 피스는 머잖아 말 정도는 하지 싶더군.”
“피스는 휴대폰도 쓰는걸.”
“그렇다 해도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네.”
“…그건 그래. 아빠한테 어떻게 연락하지.”
전화도 안 받는데, 하고 한결이 울상을 지었다.
“한유진 군이 쉽게 말을 하고 다닐 리는 없겠지만. 그럼 일단은, 아이템 중에 목걸이가 있나?”
성현제가 구슬에 손을 대며 말했다. 전류가 가볍게 튀고 구슬이 쩌저적 갈라졌다.
“스킬 쓸 수 있는 거야?”
“약간은.”
구슬 안에서 금빛을 띤 응집된 마력이 흘러나왔다. 한결이 인벤토리에서 목걸이 하나를 꺼냈다. 한유진이 명우에게 부탁해 만든 미아방지 목걸이였다.
“이거면 돼?”
“유명우 헌터의 솜씨인가.”
동그란 금속 펜던트에 전화번호와 이름이 적혀 있었다. 결이가 똑똑하긴 하지만 혹시 모르니까, 하며 챙겨 준 것이었다. 성현제가 자신의 마력, 파편을 펜던트에 밀어 넣었다. 한결이 조금 꺼림칙해하며 목걸이를 목에 걸었다.
“휴대폰을 빌려주게.”
“…뭐 할 건데?”
“통화.”
“다른 거 보지 마.”
성현제의 손이 휴대폰 화면을 눌러 연락처 목록으로 들어갔다. 아빠, 삼촌, 고모, 피스 등의 이름들이 보였다. 그중 그거를 눌려 이름을 바꾸려는 행동에 한결이 성현제를 옆으로 밀어내려 했다.
“안 돼!”
“이제는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니거든?”
“나는 한결 군을 좋아해.”
“난 안 좋아해.”
딱 잘라 말한 한결이 성현제의 눈치를 살짝 살폈다. 그래도 먼저 좋아한다고 말해 주니 양심이 조금 아팠다.
“…통화해, 빨리.”
세성 길드로 전화한 성현제가 어디론가로 연락해 주길 부탁했다. 그리고 얼마쯤 지나.
“안녕, 진이 아드님!”
황림이 호텔에 도착했다. 객실에 들어선 황림이 질색하는 한결에게 인사하곤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세성 길드장님이 불렀다고 들었는데. 귀여운 왕자님, 아빠2는 어디 있니?”
“결이 아빠는 한 명뿐이야!”
“왕자님, 아니어도 맞다고 우겨야 한다니까? 그럼 합법적으로 세성이 왕자님 거 되는 거야. 진이도 좋아 할걸?”
“그, 그래도 아니야.”
한결이 부루퉁하게 말했다.
“그리고 당장 받는 것도 아니잖아.”
“하긴 세성 길드장은 오래오래 살겠지. 아니면 그 전에 세상이 폭삭 망해서 의미가 없어지거나. 나도 슬슬 멸망 대비를 해야 하는데 키우던 강아지는 집 나가고 계약 때문에 구경꾼 노릇조차 못하게 되었고.”
“인형술사와의 계약 말인가.”
중얼중얼 거리던 황림이 깜짝 놀랐다는 듯이 한결을 돌아보았다. 어느새 한결의 어깨 위에 조그만 성현제가 앉아 있었다.
“오, 이런. 두 사람이 정말 똑같군요. 존재감 자체가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뒤섞였습니다만?”
“진짜 내 몸이 아니니까. 덧붙여 강아지는 내가 임시보호 하고 있다네.”
“조심하시죠. 중성화 전이라 살짝 사나우니까. 특히 진이한테 입질이 심하답니다.”
한결이 강아지? 하고 갸웃거렸다. 성현제가 황림을 향해 입술을 가볍게 두드려 보였다.
“예, 점잖아지도록 노력해 보지요. 이래 봬도 어린아이들은 보호하자는 주의라.”
“한결 군 혼자 돌아다니게 할 수는 없으니 잠시간 보호자 노릇을 부탁하지.”
“다른 사람도 많은데 왜? 저 아저씨 위험한 거 아니야?”
“저건 중립 소속이라네. 최소한 패륜아도, 효도중독자도 아니지.”
황림의 계약자는 양측에 속하지 않는 초월자, 인형술사였다. 그러니 누군가 몰래 손을 뻗어 놓았을지도 모르는 다른 헌터들에 비해 오히려 안전했다.
“정보 또한 확실히 차단되어 있는 듯하고.”
“시스템 관리자가 단독 행동하는 중립 초월자를 막아 버렸답니다. 덕분에 저도 예외 처리 되었지요. 진이라면 분명 날 선택해 줬을 텐데.”
“그럼 한결 군, 짐을 챙기게나.”
“멋대로시네. 받아들이겠다는 말은 안 했습니다만~”
“이런 기회를 놓칠 생각도 없지 않나. 수고비 정도는 챙겨 주도록 하지.”
한결이 혼란스러운 눈동자를 데굴 굴렸다. 이대로 성현제의 말에 따라 황림과 함께 행동해도 괜찮은 걸까. 하지만 혼자 가만히 있기는 싫었다. 한결은 가방을 메고 앞장서서 객실을 나섰다.
* * *
“…와.”
난장판이었다. 그리 넓지 않은 집이 그사이 리모델링 공사라도 한 듯 사방이 뻥뻥 뚫려 있었다. 유현이 방도 욕실도 시원하게 문과 벽을 없애 버려 거실과 연결되어 버렸다. 준 원룸이구만. 주방을 가득 채운 거대한 용의 머리가 나를 향해 씨익 송곳니를 드러낸다.
“죄송해요, 유진 씨!”
노아 씨가 나를 향해 머리를 꾸벅 숙였다. 아니, 노아 씨 잘못은 당연히 없겠지요.
-밖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궁금했어!
리에트가 즐겁게 소리치고 예림이가 딴청을 피웠다. 예림이 너도 궁금했구나. 호기심이 많을 나이이긴 하지.
“형.”
내 방 앞을 수문장처럼 지키고 서 있던 유현이가 배시시 미소 지었다.
“형 방은 무사해. 아무도 못 들어갔어.”
“그, 그래. 고맙다.”
“한유현 진짜 살벌했어요. 리에트 언니가 포기했을 정도였다니까요.”
“…그래서 리에트 몸은 어떻게 된 거라냐.”
-벽이 죽어라 안 부서져서 전룡화 해 봤더니 내 몸에 맞게 늘어났어!
아, 예. 우리 팀 이대로 괜찮은 걸까. 설마 우리 팀의 희망이 시시오인 건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