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659
657화 농자천하지대본 (2)
리에트가 밭을 가는 동안 내천 건너 멀쩡한 나무를 가져와 우리도 원두막을 만들었다. 나무를 깎아 모양새를 잡은 뒤 시스템으로 완성하는 방식이었다. 신입이나 다른 초월자들은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온갖 물건을 불쑥불쑥 만들어 냈지만 나는 재료를 갖추고 초보자용 시스템 보조를 받아가면서도 쉽지 않았다.
그래도 그럭저럭 쓸 만한 정자가 완성되었다. 이거 좀 뿌듯하네.
“타이쿤 게임하는 거 같아요!”
“게임?”
“전 별로 못 해봤지만요. 컴퓨터는 당연히 없고 폰도 못 바꾸게 하고.”
물론 지금은 완전 최신형! 하고 예림이가 웃었다. 요즘 애들한테 폰이 얼마나 중요한데! 예림이가 먼저 목장갑을 끼고 유현이와 노아도 착용했다. 별다른 효과 없이 단순히 튼튼하기만 한 장갑이지만 왠지 껴야 할 거 같단 말이야.
‘성현제네는 어쩌고 있나.’
그쪽은 전룡화 스킬 같은 거 없으니 직접 갈아야 할 텐데. 창을 확인해 보자 촉촉하게 젖어든 땅 위를.
“야! 성현제!”
송 실장님이 멍에를 어깨에 걸쳐 맨 채 달리고 있었다. 멍에에 달린 쟁기를 잡고 있는 건 성현제 놈이었다.
“대체 무슨 짓이야! 송 실장님이 황소냐!”
엄청난 속도로 땅을 갈아엎는 힘이 황소 열 마리 이상 몫을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송 실장님은 사람이다. 성현제가 자신의 창 쪽을 돌아보며 여유롭게 미소 지었다. 이 인간 그새 밀짚모자도 썼어. 왜, 아예 몸빼바지도 입지 그랬냐. 왜 바지는 정장이야. 심지어 평범하게 쟁기 잡아 주는 것도 아니고 무슨 수상스키 타듯 삽에 올라탄 채였다.
“댁이 끌어, 댁이!”
[나는 비료 담당이라.]뻔뻔하게 말한 성현제가 쟁기 날에 나무뿌리가 걸리기 직전 전류를 흩뿌려 까맣게 태워 없앴다. 이어 제법 큼직한 돌도 박살이 났다. 덕분에 밭은 고르고 평탄히 갈리고 있었다. 저걸 보면 성현제가 쟁기를 다루는 게 맞긴 한데, 그래도!
[이랴, 이랴.]“야!”
[송 황소 씨, 한유진 씨가 걱정을 하는군.] […저는 괜찮습니다.]“아이고, 송 실장님! 어쩌다 저런 악덕 주인, 이 아니고 팀장을 만나셔서는!”
순식간에 밭의 끝까지 다다른 송 실장님이 방향을 바꾸기 위해 속도를 줄였다. 성현제 놈이 기다렸다는 듯 추임새를 넣는다.
[워어, 워.] […….]“야 이-!”
묵묵히 밭을 가는 송 실장님을 보자 대신 성현제 멱살 잡고 싶은 충동이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자리 바꿔, 자리! 못된 소 새끼니 목에 방울 달고 코뚜레도 꿰어 버리고!”
[내 엉덩이는 보시다시피 매끈하니 사양하지.]확 걷어차 주고 싶네요, 정말. 내 발만 삐끗하겠지만. 다른 세 명은 뭐 하나 싶어 확인해 보았다. 현아 씨와 마리, 사미르가 원두막 앞에 옹기종기 모여 씨앗을 분류하고 있었다. 아, 우리도 파종 준비해야지.
“보자, 이건 수박인가?”
얼른 쌓여 있는 씨앗들을 확인해 보았다. 자루에 붙어 있는 그림은 수박과 비슷했지만 그 아래 쓰인 이름은 달랐다.
[590B – 우롯재배기간 약 30일
성장온도 13~22℃
물 5~7일에 한 번
양분 부족 시 열매의 크기가 작아질 수 있음]
이어 메시지창이 나타났다.
[수확한 작물의 종류가 다양할수록 점수가 높아집니다!]30일이면 약 4시간이면 다 자라는구나. 주어진 총 시간은 16시간, 일주일이 한 시간. 즉 하루가 약 8분 조금이었다. 얜 그나마 물을 한 시간에 한 번만 주면 되네. 양분이야 넉넉할 테고.
[남은 시간: 15시간 37분] [기온: 17℃]온도와 시간도 이어서 나타났다. 다른 씨앗 자루들도 확인해 보았다.
“헐, 얘는 물을 3일에 한 번씩 줘야 하잖아. 물을 너무 많이 줘도 안 되고 적게 줘도 안 되고…….”
결국 여러 작물을 동시에 키우려면 비를 내리는 게 아닌 직접 퍼 날라야 한다는 뜻이었다.
“걱정 마세요, 아저씨. 제가 있잖아요!”
든든하기도 하지.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성장 온도도 제각각 달랐다. 더운 곳에서 자라는 작물이 있는가 하면 추운 곳에서 자라는 작물도 있었다.
“일단 최대한 비슷한 온도에서 자라는 작물을 모아야겠다.”
“형, 한쪽에는 온실을 만들어 보는 게 어때? 내가 불을 조절해 볼게.”
“작물이 다 자랄 때까지 보온해 줘야 하는데 괜찮겠어?”
“물론 문제없어.”
유현이가 당연하다는 듯 담담하게 대답했다. 불과 물을 다 가지다니, 우리가 이길 수밖에 없는 게임 아니냐! 키울 작물을 열심히 분류하는 사이 리에트가 땅을 다 뒤집어엎고 돌아왔다. 재투성이에 흙투성이까지 된 모습이었지만 멋있었다. 트랙터가 부럽지 않구나!
열기로 인해 마르고 푸석푸석해진 땅에 비를 뿌리기 위해 시스템을 조작했다.
[던전 환경과 연결합니다.]던전입니까. 역시 이거 시스템 관리자 육성 코스인 거 같은데. 연결이 되자마자 섬의 마력 움직임이 내게 확 밀려들어왔다.
“…윽.”
“형? 괜찮아?”
“시스템 마력 움직임이, 조금 낯설어서 그래.”
섬의 곳곳이 동시에, 직접적으로 느껴졌다. 마치 섬을 대상으로 선생님 스킬을 쓴 듯했다. 성현제는 어떻게 이걸 쉽게 다룬다냐. 등급과 경험의 차이가 크긴 하지만 말이야.
시스템의 보조를 따라 천천히 비구름을 만들어 냈다. 구름이 형성되는 감각에 기분이 이상해졌다. 스킬을 넘어선, 날씨를 조종하는 힘. 이러니 시스템을 관리하는 초월자들이 신이라도 된 것처럼 구는 거겠지.
‘던전에서만 쓸 수 있는 힘이라고 해도 말이야.’
자신들이 꾸며 놓은 온실 속에서 발버둥 치는 인간들이 우습게 보일 법했다.
투둑, 툭
이내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유현이가 팔을 들어 내 머리 위를 가리고 예림이가 떨어지는 빗물을 움직여 비켜나가게 했다.
“들어가자, 형.”
비 맞아서 좋을 건 없지. 얼른 만들어 놓은 정자로 올라가 앉았다. 처마 끝에 빗물이 뚝뚝 떨어지는 것이 제법 운치 있었다. 예림이도 노아도 정자에 들어왔지만 리에트는 밖에 그대로 서 있었다. 감기 걸릴 일 없는, 헉!
“야! 뭐 하는 짓이야!”
리에트가 돌연 상의를 벗어던졌다. 급히 옆에 앉은 유현이 눈을 가렸다. 예림이는 같은 여자고 노아는 누나니까 괜찮겠지.
“재에 흙도 묻었잖아~”
“저어기 냇가 가서 씻어! 안 보이는 곳에서! 벗지 마! 야! 창피하지도 않냐!”
“내가 왜?”
비를 한가득 맞으며 리에트가 까르르 웃었다.
“자기야, 약한 애들이나 부끄러워하는 거라고.”
“사회성의 차이겠지! S급 헌터라고 옷 막 벗고 다니진 않거든?”
“벗어도 부끄러워하진 않잖니. 보호하고 감출 필요 없이 당당하니까. 인간 사회에서 약한 위치에 있는 애들이 강자들보다 수치심을 더 잘 느끼더라. 흠을 잡히면 위험해지니까~ 몸을 사려서 더 도덕적이기도 하고.”
“…아니 그래도 말이야.”
강하다고 다 수치를 모르거나 비윤리적으로 변하는 건 아니지. 아니긴 하지만.
“…유현이 너도 딱히 부끄럽거나 한 적은 없지?”
“타인이 어떻게 생각하든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니까. 형과 관련되지 않았다면 내게 아무런 영향을 줄 수 없어.”
쪽팔리다, 라는 게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는 감정이긴 했다. 내가 유현이 붙잡고 아이구 내새끼, 하고 온갖 애정표현을 대낮 길거리에서 해도 유현이는 전혀 창피하지 않겠지. 만에 하나 누군가와 연애를 한다 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낯부끄러운 짓이 낯부끄럽다고 여겨지지 않을 테니까.
“성현제도 체면 관리는 하지만 다 벗은 모습을 몰래 찍힌다 해도 쪽팔려하진 않겠지.”
오히려 사진사의 실력을 평가하지 않을까. 도촬 능력은 제법이지만 예술적 가치는 바닥이로군. 피사체가 내가 아니었다면 말이야. 송 실장님도 자신이 의도하지 않은 한 아무렇지 않아 할 듯했다. 길거리에서 직접 벗는 거야 법적으로 문제되지만 사고로 벗겨진 건 당당하시지 않을까.
리에트는 보다시피고 황림이야 말할 것도 없고 시시오도 당당하겠지. 현아 씨도 길드장으로서의 위치가 문제지 부끄럽다, 쪽은 아닐 거고.
“혼자 알아서 잘 살 수 있으면 사회성이라는 것도 필요가 없으니까.”
“전 쪽팔릴 거 같은데요?”
“예림이 넌 S급 된 지 1년도 채 안 되었잖아. 학습효과도 크니까.”
“한유현이 그럭저럭 인간답게 사는 것처럼요? 아저씨 없었으면 어릴 적에 야생으로 돌아갔을지도 몰라요.”
아니 그 정도는… 그랬을지도.
“그리고 드래곤일 땐 아예 발가벗은 채인걸~ 파충류라 생식기가 드러나지 않을 뿐이지!”
리에트가 두 팔을 활짝 벌리며 발랄하게 소리쳤다. 노아가 창피하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비늘이 옷이라고 생각해 주세요.”
“무, 물론이죠, 노아 씨.”
괜히 저런 말 하니까 새삼 신경 쓰이잖냐, 리에트! 드래곤이 난태생 파충류라 정말 다행이었다.
이내 비가 그쳤다. 예림이와 노아가 골라 놓은 씨앗 자루를 챙겨 들었다. 밭이 큰 만큼 일일이 심기보단 뿌리고 살아남는 녀석들을 키우는 편이 나았다.
“혹시 농사 지어 보신 분?”
당연히 없겠거니 했는데 의외로 리에트가 손을 들었다.
“포도농장에서 일한 적 있어!”
“엥? 포도를 키웠다고? 네가?”
“응. 어릴 때부터 힘은 강했으니까. 바쁜 시기에는 나 찾는 사람들 많았어.”
그러고 보니 리에트와 노아 부모님은 언제까지 함께 살았던 것일까.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던전이 나타나기 몇 년은 더 전에 떠났지 싶었다. 결국 아직 어렸던 리에트가 가장 노릇을 하게 되었겠지.
“주로 수확만 해봤지만~”
무심코 노아 씨를 돌아보았다. 나와 마주쳐 오는 연회색 눈에 씁쓸한 미소가 맺혔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리에트가 한 짓은 학대지만 사람 간의 관계라는 건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았다. 정말 지독한 악인도 눈곱만큼 좋은 점이 있기도 하니까. 그러니 누가 봐도 당장 벗어나야 할 집에서 머뭇거리며 남아 있기도 하는 거겠지. 사실 피해자보고 왜 안 떠나냐고 답답해하기보단 가해자를 쫓아내는 게 맞는 건데 현실은 쉽지 않다.
‘그래도 노아 씨는 이제 선택할 수 있으니까.’
리에트도 나름 좀 변하긴 했고.
“참외랑 멜론은 이쪽 밭에 뿌릴게요!”
“응. 물 주는 시기가 비슷한 것끼리 모아야 편하니까.”
예림이와 노아가 씨앗을 들고 날아올랐다. 리에트는 옷도 좀 빨아야겠다며 내천 쪽으로 향하고 나는 유현이와 함께 씨앗 자루를 모아 한쪽 밭으로 갔다.
“비닐, 비닐…….”
자루를 비닐로 바꾸어 봅시다. 얇게 그리고 비치게. 헤매긴 했지만 그럭저럭 길고 긴 비닐이 만들어졌다. 시스템 너무 만능 아니냐. 다수의 초월자에 더해 세상을 창조하는 근원의 힘까지 빌려 쓴다니 이 정도쯤이야 쉬운 일이겠지만.
비닐하우스를 그럴듯하게 세우곤 유현이와 함께 열대성 작물 씨앗을 뿌렸다. 이어 유현이가 비닐하우스 군데군데 작은 불꽃을 만들어 놓았다. 내부 공기가 순식간에 후끈해졌다.
“이 정도면 잘 자라겠다~”
던전 속 나와 동생도 잘 먹고 잘 살고 있겠는걸. 종묘사 탈탈 털어서 온갖 농사 다 짓는 거 아니냐. 둘의 소식이 궁금해졌다. 연락할 방법이 없긴 하지만 그래도 귀띔 한번 없고.
“뭐 먹고 싶은 거 있냐? 작년엔 김장도 못 하고. 배추는 심었다만.”
“형 딸기 좋아하잖아. 딸기 비슷한 거 있던데 비닐하우스 하나 더 만들어서 심자.”
“좋아한다기보다는 그냥, 먹기 편하니까.”
과일 껍질 깎는 것도 은근 귀찮다. 한입에 들어가고 씨 골라낼 필요도 없고. 그래서 씨 없고 껍질 얇은 포도도 괜찮지.
씨도 다 심었고 이젠 물 잘 주고 기온 잘 맞춰 주면 된다, 라고 생각했는데.
“예림아, 13번, 14번 밭! 물!”
“악, 잠깐만요!”
예림이가 허둥지둥 물을 미세하게 만들어 흩뿌렸다. 그냥 물을 촤악 몰아치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자칫하면 떠내려갈 씨앗에 심었다기보단 던져 놓은 채로 틔운 싹이라는 것이었다. 물이 조금만 거세지면 쓸려 내려가는 것이다! 때문에 평소보다 더 섬세한 컨트롤이 필요했다.
“안개, 안개!”
나도 얼른 안개를 끌어냈다. 내천의 물기로 안개를 만들고 그걸 밭으로 끌어들인 후 온도를 올려 약하게 물이 뿌려지게 만들면 되는데.
[기온이 하강합니다!]“아아악! 유현아, 4번 밭이랑 5번 밭에 불꽃 아주 작게 부탁해!”
“응, 형.”
안개를 만들면 기온이 내려갔다. 예림이가 만들어 내는 물도 마찬가지였다. 물이 온기를 흡수해 버렸다. 덕분에 탄식 안개는 쓰지 못하고 직접 물방울을 조절해야만 했다.
“자기야, 여기 잡초 생겼어.”
“유진 씨, 여기도요!”
“부탁드려요!”
그리고 어디서 씨앗이 날아왔는지 잡초도 자라나기 시작했다.
[작물 101 건조합니다!] [작물 39 수분이 과다합니다!] [작물 91 기온이 낮습니다!]경고 메시지창이 쉴 새 없이 떴다. 알려 주는 건 고마운데 잠깐만, 잠깐만! 하루가 10분도 채 되지 않으니 작물이 말 그대로 매 시간 쑥쑥 자라나고 변해갔다. 고작 두 시간 만에 제법 길쭉해진 작물도 있었다.
그렇게 이리저리 뛰는 사이.
[작물 214 수확하세요!]“옥수수 다 자랐다!”
가장 먼저 옥수수가 3시간 만에 열매를 맺고 익었다. 이 동네 옥수수 우후죽순 뺨치게 잘 자라네. 노아가 바구니를 던졌다. 가볍게 받은 리에트가 옥수수를 따기 시작했다.
“이것 봐, 옥수수. 뼈다귀만 남았는데?”
“뭐?”
리에트가 옥수수 하나를 벗겨 들어 올려 보였다. 아니 쟤 왜 저렇게 말랐어? 알도 듬성듬성하고 상태가 영 좋지 못했다. 뭐지, 물이 적었나? 역시 화학비료와 농약이 있었어야 했나! 병이 들었단 메시지는 없었는데.
“상태 안 좋은 건 밭에 버려 둬! 태워서 양분으로 쓰게!”
“헐, 아저씨! 저기!”
예림이가 훌쩍 날아오르며 바다 쪽을 가리켰다. 뭐야, 뭔데!
[작물을 노리는 몬스터가 나타났습니다!]“…몬스터 잡아!”
왜 바다에 사는 놈들이 육지 작물을 노리고 난리냐! 유현이가 버들잎을 밟으며 해변 쪽으로 날 듯이 빠르게 달려갔다. 손에는 검 대신 도리깨를 쥔 채였다. 노아 씨 또한 낫을 들고 날아간다.
“스킬 조심하고! 불도 독도 안 돼요!”
휘익! 커다란 거북이 같은 몬스터를 향해 도리깨가 휘둘러졌다. 거북이 등이 단숨에 박살 나며 피가 튀어 오른다. …저거 거름으로 쓸 수 있으려나. 이어 낫이 물뱀의 목을 갈랐다. 물뱀들이 사납게 독니를 드러내며 노아를 향해 덤벼들었다. 낫을 휘두르며 노아가 꼬리를 꺼내 길게 늘어뜨렸다.
– 시익!
물뱀들이 꼬리를 줄줄이 물고 늘어진다. 독니로 독을 쏟아붓지만 독 저항 높은 노아에게는 당연히 통하지 않았다. 노아가 그대로 꼬리를 들어 올렸다가 강하게 내리쳤다. 퍽! 소리와 함께 꼬리에 달려 있던 뱀들이 일제히 납작하게 눌러진다.
[작물 6 건조합니다!]“헉, 예림아!”
구경할 틈이 없었다. 그 와중에도 작물은 자라고 물은 부족하고 기온은 오르내렸다. 사람 살려. 성현제네는 어쩌고 있나 궁금했지만 살펴볼 틈도 없었다. 이따금 번개 치는 소리가 들려오는 걸로 살아는 있구나, 싶을 뿐이었다.
“아저씨, 배추도 다 자란 거 같아요!”
“그, 그래!”
“근데 반 이상이 양상추만 해요!”
망했다. 애들이 왜 이렇게 자라질 못하냐. 또다시 기온 경고창이 떴다. 절로 한숨이 포옥 새어 나왔다.
‘그럴 만도 하지.’
물도 가끔 늦거나 과하지만 기온도 문제였다. 내가 조작 안 해도 조금씩 계속 변하고 구름 좀 많이 끼면 확확 떨어지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맞춰 줘야 하는데 시스템 다루는 게 서툴다 보니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었다.
물을 주고 감자를 캐며 섬의 작물들에 신경을 집중했다. 성장 중인 작물들의 여린 마나가 느껴졌다. 내가 관리하는 밭, 마치 내 키워드에 등록되어 선생님 스킬로 연결한 듯한 느낌.
‘…성장 버프 못 써주나.’
지금 이 공간은 내 소속이잖아. 그렇다면 내 스킬이 적용될 수도 있지 않을까. 비닐하우스 한 동을 돌아보았다. 딸기를 심은 곳이었다. 감자 바구니를 잠시 내려놓고 비닐하우스에 들어갔다. 후끈한 공기 속에서 무릎을 땅에 대며 딸기에게 속삭였다.
“얘들아, 나는 너희들을 사랑한단다. 무럭무럭 자라렴.”
딸기야, 자라라! 아이 러브 스트로베리! 난 진짜로 딸기 좋아해! 딸기 잎을 쓰다듬어 주고 뽀뽀도 해줬다. 비닐하우스 안이라 다행이지. 내가 뭐 하는지 밖에서 자세히는 안 보이겠지?
그리고 또다시 전쟁 같은 시간이 흐르고.
“…형, 딸기가 참외만 해.”
온도 조절을 위해 비닐하우스에 들어갔던 유현이가 조금 당황하며 내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