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678
676화 옛 사람들 (3)
밤하늘은 어두웠다. 별처럼 반짝이던 눈동자들은 모두 사라졌다. 달빛에 휩쓸려 떨어지거나 멀리 몸을 피했다. 모든 것이 겁에 질려 숨죽여 움츠린 것만 같았다. 이런 꼴을 만들어 놓고서.
“세계마다 문화마다 제각기 다르다고 해도. 그래도 사랑한다면 상대를 소중히 여기며 아끼는 게 아닙니까. 사랑을 말하면서 해치고 싶어 하는 경우도… 있기는 있죠.”
유현이만 봐도 그렇다. 내 상식 밖의 욕구였지만 그것이 불의 타고난 성질이라 하니 애정표현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정말로 좋아한다면 자신의 마음을 일방적으로 요구해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유현이와 나는 대화를 나누고 서로 조금씩 양보하기로 하였다. 나와 동생은 많이 다르지만 그럼에도 서로 좋아해서 함께 있고 싶었으니까.
“일방적으로 사랑한다고 주장하는 게, 무슨 사랑이에요.”
속이 이상하리만치 먹먹했다. 차라리 무시당하면 말이 안 통하는구나 포기할 텐데 초승달은 지금 이 순간에도 내 목소리에 다정히 귀 기울이고 있었다. 좋아하는 이의 무관심이 단순한 갈증이라면 초승달의 존재는 소금물을 삼키는 목마름이었다.
“이유는 없단다. 그저 사랑스럽게 느껴질 뿐이니.”
“몇몇은 죽고 나머지는 모두 도망쳤습니다만!”
“그 모든 모습이. 가장 고귀한 곳에 빛을 휘감고 올라선 자도 가장 낮은 곳으로 더없이 비참하게 추락한 자도, 모두 같은 사랑스러움으로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드니.”
초승달의 시선이 어린 혼돈을, 그리고 다시 나를 향하였다.
“내 앞의 두 사람 또한 동등하게 사랑스럽다. 그러니 유진아, 나는 바라지 않는다. 너희가 그 어떤 행동을 하여도 생각을 하여도 언제나 항상. 그 어떤 조건 하나 없이.”
혼돈의 손이 내 어깨를 붙잡아 주었다.
“…조건 없는 사랑이라니, 멋진 말이기는 하네요.”
상식적인 수준이라면 말이다. 하지만 이건 너무나 극단적이었다. 그 어떤 모습도 전부 받아들인다.
“결국은 상대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소리 아닙니까. 지금 제가 여기서 죽어 버려도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만… 보겠지.”
무어라 말하기 힘든 메슥거림이 덮쳐들었다. 기분 나쁘다. 어린 혼돈이 혀를 쯧 차며 나를 뒤로 끌어당겼다.
“이해하려 들지 말랬더니. 스치는 바람이라 생각해라.”
“아니잖아요! 바람은 눈도 입도 없습니다!”
“너 또한 바라지 않으면 괜찮게 느껴질 거다. 나를 향한 변하지 않는 애정이 하나 생긴 셈이니. 그래서 많은 이들이 초승달을 좋아하는 것이고. 다만 바라게 된다면.”
“미치고 팔딱 뛸 노릇이겠죠.”
깊게 심호흡했다. 내가 좋아하고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이 생기면 그 애정을 잃고 싶지 않아하는 게 보통이다. 그래서 상대에게 잘해 주려 하고 상대가 좋아할 만한, 좀 더 나은 사람이 되려 하기도 한다.
하지만 초승달의 애정은 내가 무슨 짓을 하든 그대로였다. 어떻게 보면 안정적이고 편안하게 느껴질 것이다. 항상 내 편이며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변함없는 고향집처럼.
“예, 뭐. 그렇다고 칩시다. 하지만 바라는 게 없다면 아무것도 해서도 안 되는 거 아닙니까. 사람들이 그냥 좋을 대로 살게 내버려 두시죠.”
“그래. 살아간다면. 삶이 반복되는 한 죽음마저도 달가우나.”
초승달이 고개를 들어 올렸다. 밤하늘의 눈이 멀고 먼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근원은 모든 존재의 끝이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삼켜지길 원하지 않는단다.”
“…그것이 당신의 바람입니까.”
“변하지 않아도 된다. 변하여도 된다. 선한 이도 악한 이도 뛰어난 이도 모자란 이도 그 모두를 사랑한다. 그러니 그대로, 삼켜지지 않고 존재하기를 바란다.”
초승달의 시선이 다시금 내게로 내려왔다.
“내 사랑이 원하는 단 한 가지.”
우리들의 존재 그 자체. 몇몇이 죽는다더라도 사람들은 살아간다. 탄생은 계속되고 죽음 또한 그러했다. 수많은 세상들 중 한둘이 사라진다더라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세상 모두가 삼켜진다면 죽음도 삶도 이어지지 못한다.
그렇기에 초승달은 시스템 제작을 도왔으며 더 많은 초월자들을 만들어 냈으며 더 안전한 근원을 새로이 키워내려 하였다.
크게 본다면 그것이 옳다. 초승달의 행동은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 대한 호의며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다. 정말 개 같지만 그랬다.
“…하지만 나도 살아야 해서.”
앞으로 발을 내딛었다. 어린 혼돈의 손이 내 어깨에서 떨어져 나가고 초승달이 가까워졌다. 당장 멱살이라도 틀어잡을 듯 다가가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쪽이 우리를 희생시키려 든다면 그 이유 따윈 알 바 없습니다. 끝까지 싸울 거고 버틸 거고 어떻게 해서든 살아남을 테니까.”
가장 사랑스러운 달의 머리를 쳐내서라도. 초승달이 웃었다.
“응. 귀엽구나.”
“뭐-!”
순식간에 와락 끌어안기고 말았다. 아니 잠깐만! 야!
“그렇게 살아가렴. 내 사랑.”
“이, 이것 좀 놔요!”
돌부처 뺨치게 말이 안 통한다는 건 잘 알겠으니까! 초승달이 나를 다정하게 감싸 다독였다. 깨끗하게 빨아 햇볕에 잘 말린 바스락거리는 거위 털 이불에 푹 파묻힌 것 같았다.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은 눈이 스르르 감기는 그런 포근함에 무심코 전신의 힘을 빼다가 화들짝 몸을 굳혔다. 왜 달 주제에 햇볕 느낌도 나고 그러냐!
“그쪽 적입니다, 적! 방금 전엔 죄다 죽여 놓고선!”
“지금의 내게는 아니지. 그러나 이 순간 내 목을 조르려 한다더라도-.”
“아, 네! 사랑한다고요!”
잘 알겠다며 초승달의 품을 빠져나왔다. 숲에서 처음 만났을 때처럼 그녀가 미소 지었다. 정말 미친 것 같았다. 어린 혼돈 쪽으로 뒷걸음질 쳤다.
“…쓸데없이 살갑게 굴지 마시죠. 제 말은 왜 들어준 겁니까. 머리카락도 그렇고. 아무래도 상관없다면서.”
“들어주지 않을 이유도 없다. 머리카락은, 지금껏 너만이 말을 했었단다. 누군가가 자신은 푸른색을 좋아하는데 왜 분홍머리냐 묻는다면 바꾸어 주겠지.”
“분홍색 안 좋아합니다.”
“솔직하지 못한 점도 귀여워.”
어린아이처럼 맑게 웃으며 초승달이 빙그르 몸을 돌렸다. 은빛 섞인 분홍색 머리카락이 연기처럼 흔들린다. 밤하늘 저편에서 희미한 빛이 반짝였다. 가까이 다가오지는 못하고 염탐을 하는 모양이었다. 잘랑잘랑, 방울 소리가 경고하듯 울렸다. 초승달의 발끝이 달빛을 가볍게 디디며 등불처럼 한들한들 밤하늘로 떠올랐다.
“…그냥 절 싫어하는 편이 나을 거 같아요.”
“대체로 그렇지. 하지만 세상사 정확히 나누어지는 것은 별로 없다. 선한 이도 가끔은 미친 짓을 하고 미친 놈도 가끔은 선한 일을 하는 것처럼.”
“어르신은 어쩌다 시스템 제작자들을 돕게 된 겁니까?”
돌아서며 물었다. 꽤 친해 보이기는 했지. 하지만 짐이 너무 무겁잖아. 결국은 혼자 남게 되기도 했고.
“뭔가 열심히 해보겠다잖느냐.”
“예?”
“살 만큼 살고도 남은 녀석들이 어린애처럼 신나게 새로운 걸 밀고 나가는데 어쩌겠어. 그것도 애들한테 좋은 거라는데.”
“꼭 휩쓸린 것처럼 말씀하시네.”
“원래 열정적으로 하고자 하는 놈들이 세상 이끌어 나가는 법이다. 망하든 성공하든 무언가 변하긴 변할 테니까.”
그건 그렇지만.
“어르신은 뭐 하고 싶으신 거 없으세요?”
“이미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산다만.”
아 예. 어린 혼돈을 빤히 올려다보았다. 흔들림 없는 그 모습이 부러웠다.
“…나란 놈은 늙을 만큼 늙어서 어쩌다 이런 애를 키우게 된 건지.”
“예?”
“노망났나.”
“멀쩡하신데요! 지금보다 더 점잖아지셨죠.”
지금에 비하면 말이다. 혼돈이 내 뒷덜미를 잡아 짤짤 흔들었다. 입도 험하고 손도 험하시네! 삐약이가 재미있어 보였는지 혼돈 머리 위에서 폴짝폴짝 뛰었다.
“그리고 전 혼자, 윽, 알아서 컸고요. 제 동생이랑 동생처럼 아끼는 애 선생님 노릇, 은 해주고 계십니다만!”
“네가 달라붙어서 그런 거겠지.”
족집게시네.
“대체 뭘 어떻게 했기에 요 조그만 녀석이-.”
혼돈이 말을 하다 말고 고개를 돌렸다. 희뿌연 빛줄기 하나가 느릿이 맴돌며 내게로 다가왔다.
[늦지 않게 왔구나.]목소리가 머릿속에 직접적으로 들려왔다. 어린 혼돈이 나를 내려놓으며 빛줄기를 바라보았다.
“털뭉치?”
[치트키는 없지만 잠시 이쪽으로 오겠어?]도와주려나 보다! 얼른 고개를 끄덕이자 빛줄기가 나를 감쌌다. 그리고 이내 하얀 공간이 나타났다. 털뭉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그의 더듬이와 비슷한 길고 긴 끈들이 사방을 느리게 휘감아 돌고 있었다.
“털뭉치 씨?”
[아니야! 나는 들꽃이라고. 어딜 보나 꽃이잖아! 여전히 무례해!]…어딜 봐도 꽃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드넓은 우주 어딘가엔가 털뭉치 모양에 더듬이를 달고서 통통 튀어 다니는 꽃이 있을 수도 있겠지.
[시스템은 거의 완성되었어. 우리는 시스템 속에 완전히 잠들게 되고 내가 남겨 놓은 이 의식 조각도 머잖아 사라지겠지. 작은 인간아, 치트키와 비슷한 것을 만들 수는 있지만 이곳에서의 일은 소용이 없을 거야.]“아마도요.”
시그마는 그 세계를 벗어났지만 그렇다고 해서 성현제가 자유로워지진 않았다. 별개의 존재가 되었을 뿐이다. 시스템 또한 시그마처럼 가상을 벗어나 현실화된다더라도 기존의 시스템과 합쳐지는 것이 아닌 새로운 시스템이 하나 더 생겨나게 되겠지.
애초에 시스템이라는 어마어마한 법칙을 현실화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겠지만.
[하지만 법칙을, 시스템을 속이려는 시도는 해볼 수 있겠지.]털뭉, 아니 들꽃이 발랄하게 말했다. 가볍게 튀어 오르는 그의 모습이 눈앞에 보이는 듯했다.
[지금이면 아마 가능할 거야. 그러니까, 네가 시스템 제작에 참여를 하는 거지!]“…네? 제작에요?”
[그런 것처럼 느끼도록. 이곳의 시스템도 네가 아는 시스템도 아직은 동일한 법칙이야. 그러니 지금 여기서 제작 보조자가 된다면 밖의 시스템도 너를 제작 보조자로 여기게 되겠지. 자, 손을 내밀어.]…그게 진짜 되는 건가. 조금 떨떠름하게 손을 내밀며 물었다.
“감사하긴 한데 이런 식으로 도와주셔도 괜찮은 겁니까? 저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시잖아요.”
내가 미래에 대해 조금 말하긴 했다지만 너무 쉽게 믿어 주는 거 아니냐. 그냥 초월자도 아니고 시스템 제작자가 이래도 돼? 무작정 받아들이기도 껄끄러웠다. 빛줄기가 내 손목을 휘감고 들꽃이 대답했다.
[어린 혼돈을 바라보던 네 눈빛. 그것 때문이야.]“…제 눈빛이요?”
[그래. 너는 그이에게 분명한 호감을 지닌 채 걱정하며 안타까워하고 있었어. 먼 미래에 그이와 가까운 사이겠지.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도 익숙해 보였어. 작은 인간아.]들꽃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떨렸다.
[그이는 행복하니?]그렇노라 곧장 대답할 수는 없었다. 그간 내가 봐온 혼돈을 떠올려 보았다. 타인이 느끼는 감정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단정 짓기는 힘들 테지만.
“이 나이 먹고 어린애들 돌봐야 하게 생겼다며 투덜거리긴 하시지만요. 그래도 제 눈에는 즐거워 보였습니다. 무엇보다도요, 하고 싶은 일만 하시는 분이잖아요.”
[맞아. 그래.]웃음기를 띤 목소리였다. 눈도 코도 입도 보이지 않는 털뭉치였지만 분명 활짝 웃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좋았어. 나는 미래예지종은 아니지만 어렴풋하게나마 알 수 있어. 그이는 긴 시간 홀로 남게 될 거야. 황혼의 끝에서 일말의 흔들림 없이.]“…예. 그랬었습니다.”
왜 혼돈이 시스템 관리자들을, 패륜아들을 떠나 첫 번째 세계에 홀로 남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초월자들조차 그에 대한 기억이 전설처럼 흐려질 정도로 긴 시간을.
“요새는 신입이라고 어린 초월자도 같이 있어요. 잘 지내는 모양이더라고요.”
[어떤 아이지?]“강아지같이 털이 복슬복슬하고 작고 귀여워요.”
[그렇구나. 그랬어. 다행이야.]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희미하게 꽃향기가 났다.
[시스템 제작자로서는 해선 안 되는 일이지만. 나는 그이를 좋아해. 작은 인간아, 나는 시스템 중추에 녹아들어 영원히 깨어날 수 없단다. 그러니 욕심을 부릴 거야.]발치에서 하늘색 작고 보송보송한 꽃들이 피었다. 즐거운 듯 기쁜 듯 하늘하늘 흔들린다.
[한 가지만 약속해 줘. 너 또한 그이의 행복을 바라겠노라고. 최우선으로 해주길 요구하는 건 아니야. 그저 그이의 행복을 원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곁에 있어 주길 바라는 거란다.]“약속하지 않아도 저는 어르신을 좋아합니다. 그러니 당연히 약속하겠습니다.”
내가 떠난 후에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곁에 단 한 명이라도 그를 좋아하는 사람이 머물기를. 들꽃의 마음을 내 것처럼 이해할 수 있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며 바라고 있으니까. 다만 유현이에 한해서는 그런 마음을 접어야 했지만.
[그이도 분명 널 귀여워하고 있겠지. 어때?]“툭하면 잔소리시죠. 몸뚱이 좀 챙기라고.”
[나더러 잔소리쟁이라 툴툴대더니!]“시스템 다루는 건 여전히 약하세요. 지금과 별 차이가 없다니까요.”
한숨 같은 바람결이 귓가를 스쳤다.
[자, 네가 지금의 시스템에 영향을 주는 건 아무 의미가 없어. 하지만 지금의 시스템이 네게 영향을 준다면 미래의 시스템도 벌어지지 않았던 과거를 실제의 과거로 받아들일 거야. 속이는 거지.]이미 지나간 과거의 기억의 A를 내가 한 대 팬다고 해서 현재의 A에게 멍이 생기는 건 아니다. 하지만 과거의 A에게 내가 한 대 맞는다면 현재의 내게 멍이 생기게 된다. 나는 현재에 존재하고 있으니까. 그렇게 생긴 멍을 가지고 A에게 네가 팬 거잖아, 뺨에 남은 지문 검사해 볼까? 하고 주장하는 셈이었다.
[네가 원래의 자리로 돌아간다면 지금의 영향 또한 전부 사라질 가능성도 있기는 해. 그렇지만 너는 틀림없이 이곳에 존재하고 있잖아? 네가 겪은 일을 완벽히 없었던 일로 처리하는 건 힘들어. 시간을 되돌려도 그 영향은 분명히 남아 있듯이.]“분명히, 그렇죠.”
[설명하자면 무척 길어지겠지만 시간이 없으니까. 내가 이끄는 대로 마력을 움직여. 그래. 혼돈보다 네가 더 나은 것 같은데?]바윗덩이보다 낫다는 소리 아닙니까. 내 마력이 시스템에 접근하고 시스템의 마력이 연결을 위해 내게 스며들었다.
[아주 간단한 보조야. 하지만 초기 시스템 제작의 흔적이 네게 남게 되겠지. 이래서는 안 되는 건데, 난 영원히 잠들 거고 이미 한 번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그러니 이번에는 해봐야지.]원래의 들꽃은 어린 혼돈을 걱정하면서도 조용히 잠들었을 것이다.
[시스템이 너를 초기 제작자 보조로 인식한다더라도 별다른 소용은 없을 수도 있어. 네 시간대에는 이미 많은 것이 달라졌을 테니까.]“그래도 해봐야죠. 안 하는 것보단 나을 겁니다.”
[맞아. 해야지. 작은 인간아, 만나서 반가웠어. 그이에게 안부 전해 줘!]들꽃의 목소리가 흐릿해지다가 이내 사라졌다. 눈을 깜박이자 흰 공간 대신 어린 혼돈과 삐약이가 나타났다.
“털뭉치 녀석이 또 무슨 잔소리를 했냐.”
고개를 갸웃 기울이는 혼돈의 모습에 어쩐지 웃음이 새어 나왔다.
“어르신도 나이 더 드시면 만만치 않아지십니다.”
“뭐?”
삐약이가 폴짝 내게로 날아오고 삐약이, 혹은 그 뒤의 누군가가 이곳에서의 일이 끝났다고 말하듯 공간이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