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693
691화 이 세계의 결말 (2)
승리를 확실시하기 위해서는 시장 자리까지 올라야 한다. 미랑글룬의 시장은 성과에 더해 시민들의 지지로 정해졌다. 다행히 지금 시장은 꽤 오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기에 은퇴할 의사가 있다고 하였다.
“전쟁 같은 건 질색이라서 말이오. 벨론드 시가 일단은 물러났지만 또 언제 공격해 올지 알 수 없으니…….”
“바로 내일 다시 선전 포고 한다 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준비를 철저히 했더군요.”
그러니 나한테 넘기고 푹 쉬세요. 물론 시장이 넘기겠소이다, 해도 하루아침에 뚝딱 일이 진행되긴 힘들었다. 일반 시민들의 지지야 하늘을 뚫고 바다를 가를 수준이었지만 다른 의원들이나 세력가 중에는 갑작스럽게 등장한 젊은 놈이 너무 성장하는 걸 꺼림칙하게 여기는 이들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안녕하세요, 마랑 회장님. 말씀은 많이 들었습니다.”
시장과 의원들을 부추겨 전쟁을 막은 것을 기념하는 연회를 열고 유력가들을 초대했다. 이번에는 마음을 다지고 제대로 차려입었다. 은혜도 오랜만에 실력을 마음껏 발휘했다. 물론 거울은 보지 않았다. 인생이란.
“3의원님, 예전부터 존경하고 있었답니다. 앞으로 많은 지도 편달 부탁드려요.”
“행정관님의 패션 센스는 소문보다 훨씬 뛰어나시군요! 이번 칼럼, 무척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아닙니다. 저는 아직 젊다 못해 어리니 인생을 앞서 나가는 분들의 말씀을 귀담아 들어야지요.”
“사실 잘 해낼 수 있을지 걱정도 큽니다. 의지할 분이 계셨으면 싶어요.”
“괜찮으시다면 조언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이제 막 의회에 발 들인지라 모르는 것이 많습니다.”
“조용히 따로 약속을 잡고 싶으시다고요? 저야 물론 환영입니다.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당신이 이끌어 주셔야 해요, 를 여기저기 소곤소곤 열심히 말하고 다녔다. 경계할 만큼 놀라운 업적을 이루었지만 동시에 너무 어리다. 잘하면 적당히 구슬려 뒤에서 조종할 수 있겠는데? 라는 생각을 심어 주기 쉬운 것이었다.
나이에 더해 내 외모도 한몫했는지 풍선인형들은 도와주시겠습니까, 라는 찌름에 금방 넘어왔다. 원래 잘생기면 좀 더 믿음이 가고 그렇잖아. 외모로 편견을 가져선 안 되지만 사람은 시각에 많이 의지하는 생물이라.
“한유진 님! 아니, 1의원님~!”
하늘색과 연분홍이 섞인 화사한 파스텔 톤 드레스 차림의 마리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 옆으로 사미르도 보였다. 사미르 씨 옷 예쁘네요.
“안녕하세요, 마리 쉐프님.”
성현제 대신 식당을 맡은 마리는 여전히 잘나가고 있었다. 마리가 생글생글 웃으며 내 앞으로 폴짝폴짝 뛰어왔다. 묵직한 드레스 자락이 가볍게 흔들리는 것에 풍선인형들이 감탄했다.
“저랑도 춤춰요!”
“죄송합니다만 제가 여기 춤은 배우질 못해서요.”
“괜찮아요. 사미르 님도 그랬는걸요.”
사미르가 나를 향해 웃으며 손을 살짝 흔들어 보였다. 보나마나 마리에게 한참을 끌려 다닌 모양이었다.
“그럼 조금만…….”
“저만 따라오세요. 살살 해 드릴게요.”
그리곤 마리가 나를 번쩍 들어 올렸다. 잠깐만! 보좌관으로서 나와 동행한 유현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얼른 괜찮다고 손을 저어 보였, 돌지 마! 사람들이 우리를 향해, 정확히는 마리를 향해 박수 쳤다.
“중요한 게임 중이라는 건 아는데요.”
마리가 작게 말하며 나를 가볍게 내려놓았다.
“그래도 너무 즐거워요! 완전히 다른 세상에서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 보는 거잖아요.”
빙그르르, 발레라도 하듯 빠른 회전에 마리의 드레스 자락이 만개한 꽃처럼 활짝 펼쳐진다.
“이러다가 쾅, 큰일이 터져 버릴지도 모르지만요. 그래도 즐거운 건 즐거운 거니까요.”
환하게 웃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부럽기도 했다. 확실히 즐기려면 얼마든지 재밌게 할 수 있는 게임이었다. 가상 현실 인생 게임이잖아. 얼마나 재밌겠어. 걸려 있는 것만 없다면 이상한 결과가 나와도 으아악 소리치고 끝냈을 테니까.
“역시 철없긴 하죠?”
“뭐 어때요. 마리 씨는 그래도 돼요.”
“한유진 님은 친절해요!”
“감사, 악!”
던지지 마, 던지지 마! 이 동네 춤 왜 이래! 마리가 나를 완벽하게 다시 받아 내려 주었다. 비틀거리는 나를 유현이가 얼른 수거했다. 화, 활달한 거 좋지. 아이고. 사미르 씨 파이팅.
“으아아, 오늘 성현제 주사위 6만 안 뜨면 되는데.”
조용한 발코니로 나가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하늘이 어둑어둑해진 시각이었지만 오늘의 주사위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내 시장직은 내일 아침 의회에서 결정 난다. 종일 열심히 돌아다닌 보람이 있어 별문제 없이 미랑글룬 시장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여기 온 지 얼마나 지났지. 당신도 할 수 있다, 2.5톤 용달로 시작하는 시장 되기.
“피곤해 보여.”
유현이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집에서 맛있는 거 먹으며 쉬고 있으라고 했다. 연회석에 리에트를 데리고 올 수는 없었고 예림이도 좀 걱정이 되었다. 날 볼 때마다 도시 최고 미인 아저씨! 하며 웃지만 않았다면 동행해도 괜찮았겠지만 말이야. 그 둘만 내버려 두는 건 또 불안해 노아 씨까지 남았다 보니 자연히 유현이가 나를 따라오게 되었다.
우리 팀이 참 좋긴 한데 말이야… 음. 솔직히 리에트보다는 피스가 더 어른스럽고 믿음이 가지 않을까. 리에트를 무시하는 건 아니고 오히려 너무 대단해서. 여러모로.
“옷도 너무 무겁고.”
유현이가 내 옷자락을 들어 보였다. 복장은 무겁게 그러나 발걸음은 가볍게. 별로 좋은 문화는 아니야. 이거 다 낭비 아니냐. 자원이 아깝다. 그냥 깔끔하게만 입으면 되지 뭘.
“날개는 좀 떼고 싶긴 해. 그래도 종일 이러고 다니니 쪽팔린 건 덜해지더라.”
주위가 죄다 요 꼴이기도 하고. 눈이 하나뿐인 세상에선 두눈박이가 이상한 거라고 하던가. 계속 여기서 살게 되면 나도 화려한 예복이 당연한 거라고 생각하게 되겠지.
“형.”
유현이가 난간에 기댄 나를 내려다보았다.
“패배해도 괜찮아.”
“뭐?”
“나라 몇 개쯤 빼앗긴다고 해서 형이 죄책감 가질 필요 없어. 형의 잘못이 아니니까.”
“아니, 몇 개쯤이라고 해도… 우리나라가 걸릴 수도 있다고.”
“형과 함께 머물렀던 곳이니 조금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상관없어. 형이 있는 곳이 내 집이고 어디서든 지금처럼 잘 살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형이 잘못한 건 분명 아니잖아.”
그야 그렇다. 우리 세상 빼앗겠다고 난리 치는 놈들이 악당인 거지 그거 못 막았다고 해서 잘못인 건 아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 안 할걸.”
“형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 그래서 말하는 거야. 형이 다치면 아무런 소용이 없어. 잘 모르는 사람들까지 지키려고 하는 거, 이해는 가지 않지만 받아들일 수는 있어. 형은 그런 존재니까. 그러나 완벽할 수는 없어.”
나를 향한 시선이 밤처럼 무겁게 가라앉았다.
“형, 나는 형을 위해 전부 버릴 수 있어.”
“유현아.”
“무거운 각오가 아니야. 나를 먹이기 위해 형이 물고기를 잡고 내장을 꺼내 불에 굽는, 그런 정도로. 당연하고 아무렇지 않은 일이야.”
사람을 죽이는 거나 물고기를 죽이는 거나. 동생의 눈에는 별 차이가 없을 터였다. 더욱이 S급은 홀로 살아갈 수 있으며 사회라는 틀에서 벗어난다면 가치의 순위를 매기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이니까. 일억 달러 수표도 그것이 통하는 인간 사회에 속했을 때나 가치가 있다.
“형에게 같은 것을 바라지는 않아. 나는 물론이고 세상 모든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일에 매진한다더라도 최선을 다해 도울 거야. 형이 상처받지만 않는다면.”
“…그게 말이다,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라서. 무조건 괜찮다 말할 수도 없잖냐.”
내 말에 유현이가 시무룩한 얼굴을 했다. 나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이제는 예전처럼 무작정 가둬 둘 수도 없으니까. 어느새 내 귓가로 다가 온 이린이 작게 속삭였다.
-형, 진지하게 유현이랑 같이 끝내는 것도 괜찮을 거 같아요.
“…린아.”
-그럼 린이는 둘을 꼭 끌어안고 기쁘게 잠들 거야.
너 유현이 좋아한다면서. 언제는 유현이 오래 살게 나도 오래 살아야 한다더니. 역시 불의 정령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유현아, 이리 와.”
팔을 벌려 동생을 끌어안았다.
“너무 걱정하지 마. 나도 내 잘못 아닌 거 잘 안다. 다만 사람 마음이란 게 내가 좀 더 잘했으면, 싶은 건 어쩔 수 없더라. 넌 형이 키워 준 거 아무 불만 없지?”
“응, 당연히.”
“하지만 난 이따금 미안해지거든. 내가 더 잘 돌봐 줬어야 하는데, 하고.”
“난 정말로 좋았어. 형이 곁에 있어 줘서.”
“응, 그래도 내가 그냥 아쉬운 거야. 그래서 좀 더 잘해 보려 하고 이해해 보려 하고, 그런 거지. 이번에도 죄책감만 가지진 않을 거야. 게다가 욕할 상대도 확실하잖냐. 울적해지긴 하겠지. 그래도 초월자 놈들 망해라, 하고 일어설 테니까.”
사실 이미 속이 따끔따끔하긴 했다. 짐이 너무 무겁잖아. 그래도 혼자가 아니니까 아득바득 나아가고 있는 거지.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라고 해도 쉽지가 않았다. 동생이나 더 끌어안고 있어야지. 주위를 돌아보면 회귀해서 인생 참 잘 살았다 싶은데 앞날이 더럽게 깜깜하다니까.
[오늘의 주사위!]그때 눈치 없는 주사위가 튀어나왔다. 이어 게임 판도 펼쳐진다. 성현제의 주사위는 4였다. 골인 두 칸 앞. 다행이었다.
“잘하면 시장까지 하고 끝내겠네.”
새벽에 주사위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말이지. 자고 있을 땐 안 나오는 듯하니 오늘은 일찍 자야지. 동생에게서 떨어져 한 바퀴 빙그르 돌며 두 팔을 쫙 벌렸다.
“이렇게나 완벽하게 차려입었으니 정치나 하기엔 아깝지! 의원 관두고 패션모델을 하겠어! 유현아!”
유현이가 카메라를 꺼내 들어 나를 찍었다. 난간을 잡거나 발을 올리거나 걸터앉거나 하며 열심히 포즈를 잡았다. 유현이 말곤 없었지만 민망했다.
“크흠, 정말 완벽한… 젠장.”
주사위나 던지자. 데굴데굴 구르던 주사위가 멈추었다.
[6!]미니 내가 나아가다가 미니 성현제가 있는 칸에 잠시 섰다. 미니 성현제를 노려보더니 한 쪽 손을 내민다. 마지막이 코앞이니 화해하려는 건가? 미니 성현제가 미소 지으며 악수를 받았다. 미니 내가 손을 탁 놓곤 폴짝 한 칸 앞서 나갔다. 그리곤 의기양양하게 미니 성현제를 돌아본다. 야, 성현제 2만 나와도 먼저 골인이야.
“마지막에는 뭐가…….”
미니 내가 자신이 선 칸을 내려다보다가 나와 미니 성현제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뭐야, 뭐 이상한 거라도 나왔냐.
[당신의 인생에 축복을! 즐거운 여정이셨나요? 마지막을 함께할 연인을 선택하세요!]“…예?”
[지금까지 만나 온 이들 중 일정 이상 교류가 있었던 한 명을 선택하세요! 당신의 사랑이 무조건 이루어집니다! 곧장 결혼식장으로 골인♡ 마지막 보너스로 직업에는 영향을 끼치지 않습니다★]“…일단 모델은 때려치우고 다시 정치인 합니다. 내 적성이 아니야.”
그보다 결혼? 결혼이요? 게임이긴 하지만 갑자기 결혼?
“저는 독신주의자입니다만.”
[반드시 한 명을 선택하세요!]인생이란. 그렇게 나는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다.
식장은 바닷가 별장이었다. 커다란 창문 너머로 달빛 드리운 밤바다가 파도를 연주한다.
“결혼식 끝나고 죽여도 되지?”
유현이가 말했다.
“이번만큼은 저도 한유현 의견이 괜찮다고 생각해요. 살려 둘 필요 없잖아요?”
예림이도 말했다.
“유진 씨에게 위험할 수도 있으니… 저도 찬성입니다.”
노아가 진지하게 말하고,
“구울까 삶을까?”
리에트가 입맛을 다셨다. 나는 내 결혼 상대를 바라보았다. 바퀴 달린 커다란 수조가 좁아 보이는 대형 문어를. 문어의 다리가 수조 밖으로 나와 꿈틀거렸다.
하늘에 맹세코 내 이상형은 인간이다. 설사 종족이 다르더라도 나와 비슷하게 생겼으며 말도 통하는 상대가 좋았다. 다리 네 개까지는 사람으로 변할 수 있다면 괜찮은데 다섯 개부터는 가까이 하고 싶지 않았다.
“와… 형님…….”
“그런 거 아닙니다, 현아 씨. 오해하지 마세요, 송 실장님.”
“…조금 놀라기는 했지만 한유진 씨가 좋아서 문어와 결혼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좋아서 하는 거 아니에요?”
마리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마리 씨 편견이 유현이만큼이나 없구나.
“사람에게는 다양한─.”
“아니라고요, 사미르 씨.”
나는 문어가 싫다! 요리가 아닌 살아 있는 문어는 가까이 하고 싶지 않다고! 하지만.
“주사위가 억지로 사랑에 빠지게 만든다는데 멀쩡한 사람을 선택할 수는 없잖습니까…….”
그렇잖아. 아무리 일시적인 거라고 해도 내가 아는 사람들을 고르기엔 꺼림칙했다. 설사 풍선인형이라고 해도 말이 통하고 교류가 있었던 상대들이니 내키지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마음 편한 상대는 단 한 명, 아니 한 마리뿐이었다.
내 낚시 라이벌.
무려 라이벌이니 교류는 확실하게 있었지. 비록 사람은 아니지만 시스템은 흔쾌히 내 선택을 받아들여 주었다. 나와 교류 깊은 생물 중에는 퐁퐁이도 있긴 했지만 식물까지는 불가능했다. 그리고 결혼식은 조촐하게 가까운 지인들만 불러서 하기로 했다. 다행히 이 동네 결혼은 주례가 필요 없었다. 간단하게 하려면 다섯 명만 불러서 확인받으면 그만이었다.
“다행히 늦진 않았군.”
성현제 놈도 꽃다발을 들고 나타났다.
“벨론드에서 수배령 떨어졌다던데 잘도 여기까지 오셨네요.”
“한유진 씨께서 간절히 부르지 않았던가. 함께해 달라고.”
여유롭다 못해 옷까지 화려하게 차려입은 성현제가 저벅저벅 걸어와 꽃다발을 내밀었다.
“그 자리를 문어에게 빼앗길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벨론드 시 경찰님들 여기예요.”
꽃다발을 받아 들자 문어가 다리를 내밀어 왔다. 오지 마, 오지 마.
“한유진 님! 제가 부케 받을래요! 저요!”
“앗, 나도! 아저씨! 여기!”
“부케 아니다.”
이 동네엔 부케 같은 거 없다고. 성현제 넌 거기 왜 끼냐. 송 실장님 잡아끌지 마. 현아 씨도 실장님 밀지 마세요. 리에트, 동생한테 주긴 뭘 줘.
“형… 역시 형이 결혼하는 건 싫어. 지금 죽이자.”
“게임이잖아, 게임. 진짜 아니다. 결혼할 생각도 없고 상대도 없어. 아무튼 대충 결혼했다고 칩시다!”
하객들이 원하는 대로 꽃다발을 높이 던졌다. 리에트가 재빠르게 뛰어 올랐지만 그보다 성현제의 사슬이 한발 더 빨랐다. 사슬이 꽃다발을 쳐 정확하게 송 실장님을 향해 날려 보낸다. 송 실장님이 피하려고 했지만 현아 씨가 그를 붙들었다. 꽃다발이 송 실장님의 가슴에 부딪히기 직전 예림이가 순간이동 하고 마리가 손을 뻗었다. 둘의 손이 서로 얽히다가 아주 미세한 차이로 마리가 먼저 꽃다발을 잡았다.
“마리 꺼! 이번에는 성격 좋은 왕자님 찾을게요!”
마리가 웃으며 꽃다발을 흔들었다. 아무렴 그래야지. 성현제 같은 상대는 한 번으로도 너무 많다.
“이제 이혼하겠습니다. 저는 문어 양을─.”
“수컷이야.”
성현제가 친절하게 가르쳐 주었다. 아니 그런.
“혼인 취소야! 성별을 감추다니! 이거 취소 사유 되죠?”
무효면 더 좋은데. 종족이 다르니까 한국 법으론 가능하지 않나? 애초에 혼인 신고 자체가 불가능하겠지만. 어쨌든 저는 갔다 온 적 없습니다. 인생 게임이라고요, 게임.
“가족사랑당의 한유진 제1의원이 미랑글룬의 31대 시장이 되었음을 선포합니다.”
이제는 전 시장이 나를 바라보며 시장의 지팡이를 내밀었다. 그것을 받아 들고 모인 사람들과 방송국 카메라를 향해 미소 지었다.
“시민 여러분, 감사합니다. 미랑글룬 시를 위해 앞으로도 몸 바쳐 일하겠습니다.”
비록 내게 남은 시간은 오늘의 주사위가 나타나기 전까지 뿐이었지만. 축하 인사를 받고 시장을 위한 저택으로 돌아갔다. 본격적인 시장 업무는 내일부터였지만 내일은 오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기분이 묘해졌다.
“주사위 나올 때까지 푹 쉬자.”
이제 상황이 바뀔 일도 없고 한유진은 미랑글룬의 사랑받는 시장으로 엔딩이다. 진짜 인생이라면 지금부터 새로운 시작이었겠지만. 항구와 상업 도시 개발에 벨룬드 시도 견제해야 하고.
“잠옷 갈아입고 누워, 형.”
“졸리진 않은데. 헐, 예림아.”
“집안에 있는 쿠션이랑 베개랑 매트리스랑 이불 전부 꺼내 왔죠!”
거실이 커다란 침대처럼 변했다. 리에트가 쿠션더미 위에서 뒹구르 구른다. 언제 왔는지 마리도 그 옆에서 퐁퐁 뛰고 있었다. 무심코 미소가 머금어졌다.
“다른 사람들도 부르자. 전화번호가… 아, 현아 씨! 오늘 장사 안 하실 거죠? 술 잔뜩 가지고 오세요! 예림이 너 좋아할 거 없어.”
옷 갈아입고 나도 쿠션 위에 드러누웠다. 예림이와 마리가 서로를 향해 베개를 집어 던졌다. 내 옆에 앉은 유현이도 쿠션 하나를 들고서 이쪽으로 날아오는 베개를 쳐 냈다. 매트리스 위에 누워 쉬겠다 말하는 노아를 리에트가 웬일로 건드리지 않았다. 대신 예림이와 마리의 싸움에 끼어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현아 씨와 송 실장님, 사미르, 성현제도 도착했다. 쿠션 위를 뒹굴며 음료며 과자 따위를 먹었다. 뒤처리 신경 쓰지 않고 맘 편하게.
[오늘의 주사위!]해가 질 즈음에 주사위가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