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71
71화 대장장이 데뷔 (1)
“아저씨, 아저씨, 아저씨!!”
복도를 돌아서자마자 엘리베이터에서 막 내린 예림이와 마주쳤다. B급 던전 공략 간다더니 벌써 끝낸 모양이었다. 정비실에서 씻고 올라왔는지 가벼운 반팔 반바지 트레이닝복 차림에 머리칼이 촉촉했다.
“걔가 새로 데려온 몬스터군요!”
“응, 황금 그리폰인 블루야.”
“귀여워! 안아 봐도 돼요?”
피스는 질색했지만 블루는 괜찮지 않을까. 이미 예림이를 향해 호기심 어린 눈빛을 보내고도 있고.
– 꺄아!
품에 안고 있던 블루를 들어 내밀자 알아서 파드득 예림이에게 다가갔다. 예림이가 두 팔을 활짝 벌려 블루를 끌어안았다.
“진~ 짜 귀여워! 털도 부드럽고! 아이스크림 냄새가 나네?”
큰 거 한 통 다 퍼먹은 직후란다.
– 꺄우 꺄!
“피스는 금색젤리였는데 얜 분홍젤리네요? 발바닥 좀 봐, 콱 깨물고 싶다! 블루야~”
예쁨 받는 걸 아는 건지 블루의 꼬리가 휙휙 선풍기처럼 돌아갔다. 독수리 더하기 사자인 주제에 붙임성 좋은 강아지 같은 녀석이구만.
“솔직히 아저씨 네이밍센스 아저씨 같아요.”
“…뭐?”
“피스는 그렇다 쳐도 삐약이에 블루가 뭐예요. 유니콘들은 화이트 블랙이라면서요. 시골 개도 아니고 흰둥이 검둥이라니 완전 아저씨.”
“지, 직관적이고 짧고 좋잖아.”
알아보기 쉽고 편한 게 최고… 같은 게 아저씨 같은 생각인가. 아니, 회귀 전까지 쳐도 서른 살밖에 안 됐는데.
“근데 어디 가시는 길이었어요? 단련실?”
“헌터협회 사람 만나러.”
“앗, 그럼 저도 같이 가요! 요새 맨날 길드장님이랑만 나가고! 아저씰 지켜 주기로 한 건 저잖아요.”
“너야 던전 도느라 바빴으니까.”
그리고 앞으로는 더 바빠지겠지. 자신의 S급 팀 만들어야 하니까. 역시 내가 좀 도와주긴 해야겠다.
블루를 오늘 당번인 헌터에게 맡긴 뒤 아래로 내려갔다. 유현이와 얼굴을 마주치자 예림이에 비해 이놈 요즘 통 일을 안 한다 싶어졌다. 제일 중요한 던전 공략을 말이다. 나랑 같이 간 거야 이놈 수준엔 공략이 아니라 나들이 같은 거였고.
“너, 요즘 던전에 통 안가지 않았어? S급 던전 관리 안 해도 돼?”
공략 정보가 완벽히 갖추어진 하위 S급 던전이라면 A급 팀만으로도 공략 가능하지만 그 외엔 S급 헌터가 필요했다. 아직은 해연이 관리하는 S급 던전 수가 적은 편이겠지만 펑펑 놀 정도는 아닐 텐데.
“그렇잖아도 열흘 내로 들어가 봐야 해.”
유현이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S급 던전은 한번 공략 시작하면 못해도 일주일은 자리를 비워야 하니까 최대한 미뤄 뒀어. 내가 형을… 멀리했던 것도 S급 던전 공략 기간 탓이 컸지. 던전에 들어가면 당연히 신경 써 줄 수 없으니까.”
S급 던전 공략 기간은 공략 정보가 있는 경우나 최소 일주일이었다. 첫 공략이면 길게는 한 달 이상도 봐야 한다. 상성이 나쁘다면 정보가 충분해도 보름 이상 걸리기도 했다.
그렇게 긴 시간을 정기적으로 떠나 있어야 하는 건 S급 헌터가 길드장으로 있는 길드의 가장 큰 약점 중 하나였다. 길드장만이 아니라 정예 상급 헌터들까지 우르르 자리 비우게 되는 꼴이었으니까. 심지어 연락도 안 되고 도중에 나올 수도 없었다. 나중에야 거대 길드면 S급 헌터가 기본 둘 이상은 있게 되어 그런 약점도 사라졌지만.
“이제는 제가 있으니까 얼른 들어가시죠, 유현이 오빠.”
예림이가 내 팔에 답삭 매달리며 말했다.
“아저씨는 제가 잘 돌보고 있을게요. 그간 열심히 던전 돌았으니 열흘쯤 휴가 내고 옆에 딱 붙어 있죠 뭐. 이참에 제 스킬도 봐주시고요, 같이 던전도 갈래요? 아님 방탈출 카페는 어때요? 예전부터 가보고 싶었는데 비싸서 못 갔거든요.”
방탈출 카페라. 나도 가본 적 없는데.
“유현이 넌 가봤어?”
“그게 뭔데?”
…세상에, 스무 살짜리가 할 말이냐. 눈물이 다 날 거 같았다. 한창 유행 빠삭하게 놀 때 아니냐고.
“너도 같이 가자.”
“앗, 아저씨랑 둘만 가려고 했는데!”
“저 녀석도 못 가봤다잖아.”
“…알았어요. 한 번만 갈 것도 아니니까. 그럼 나가는 김에 오늘 갈까요?”
“별일 없으면 그러자.”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차에 탔다.
* * *
한참을 달려 도착한 곳은 헌터협회가 아닌 아직 개장 전의 각성센터였다. 협회 건물과 다르게 서울 외곽에 위치한 이곳은 유사시 협회 기능을 대신 수행하게 되어 있었다.
둥근 반구형 각성센터 옆에 붙어 있는 저 빌딩이 제2헌터협회인 셈이었다. 정확히는 각성센터가 뒤늦게 끼어든 것이었지만. 대중에겐 아직 신 헌터협회 건물로만 알려져 있었다.
“전 평 좋은 카페 찾아보고 있을게요!”
예림이가 잘 갔다 오라고 팔을 휘저으며 말했다.
햇살 아래 매끄럽게 드러난 새 건물을 바라보자 속이 조금 어수선해졌다. 좋은 기억은 없는 곳이다. 오히려 그 반대지. 몇 번 밟히지 않았을 계단이 반지르르했다. 주위에는 아직 아무것도 없었다. 펄럭이는 현수막도 모여든 기자들도.
조용하다.
“안 오고 뭐 해?”
내가 멈춰 서자 유현이가 의아하게 돌아보았다.
“그냥 구경 좀 했어.”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고 걸음을 옮겼다. 두 번 다신 오고 싶지 않았던 곳인데 그리 기분 나쁘진 않았다. 없었던 일 된 덕일 수도 있고 공포 저항 때문일 수도 있고.
“근데 넌 명우에게 잘해 주랬더니 왜 시비를 걸고 앉았었냐?”
계단을 오르며 물었다. 그러다 무기 안 만들어 주면 어쩌려고.
“시비가 아니라 형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확인해 본 거야. 형이 속인 게 있으니까. 만에 하나 그 일로 원망이라도 할 수준이라면, 그냥 내버려 둘 수 없잖아.”
“건드리지 말란 소리에 대답은 잘하더니.”
“스킬이 너무 좋아서 위험해.”
“명우 그럴 녀석 아니고 내가 먼저 털어놓긴 할 거야.”
“혹시라도 틀어지면 반드시 말해. 숨기지 말고.”
“…어.”
나와 사이가 소원해질 수는 있어도 적대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만에 하나 완전히 틀어진다면 유현이 말대로 위험한 상대이기는 했다.
괜찮겠지만… 좀 더 잘해 줄 걸 그랬나.
유리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 안도 텅 비어있었다. 기다란 데스크는 아직 비닐로 덮인 채였다. 이럴 거면 굳이 여기로 부를 필요 있었나. 그냥 가까운 협회 본 건물로 부르지. 저만치 복도로 들어가는 입구 앞에 서 있는 안내인 외엔 아무도 없었, 아니. 문현아도 있네.
“안녕, 형님. 도련님.”
문현아가 우리를 향해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여긴 어쩐 일이세요?”
“어쩐 일이긴, 당연히 우리 형님 보러 왔지. 블루는 어때? 잘 클 거 같아?”
역시 블루가 목적이었구나.
“아주 튼튼하고 활발해요. 아무거나 잘 먹긴 하지만 그리폰이니 마수마 고기가 제일 좋지 싶습니다.”
“그래? 해연 관리 던전에는 마수마종 나오는 곳이 없을 텐데.”
“브레이커엔 어때요?”
문현이가 씨익 웃으며 내 어깨에 팔을 턱 걸쳤다.
“그 정도 서비스야 당연히 해드려야지. 신선한 고기로 제공해 드리겠습니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마수마종 고기 먹을 때와 아닐 때 성장 속도 비교해 봐야겠다.
“이곳이 바로 각성센터의 중추인 각성룸입니다.”
긴 복도를 지나 둥그런 로비에 멈춰 선 안내인이 말했다. 들어온 입구를 제외하고 사방으로 다섯 개의 문이 달려 있었다. 회귀 전에 왔을 땐 사람이 많아 좁아 보였는데 텅 빈 지금 보니 꽤 넓구나.
각성룸 안쪽은 아직 미완성이었다. 그렇게 한 바퀴 살펴보고 헌터협회장 및 높으신 분들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한유진 헌터가 보내 준 A급, B급 헌터는 무사히 각성하였습니다.”
협회장보다 좀 더 젊어 보이는 부회장이 말했다. 내 앞으로 두 헌터의 프로필 자료가 차례로 놓였다.
특수 스킬 소유자 찾다가 덤으로 찾은 A급, B급 전투 적성 비각성자는 협회로 바로 보냈었다.
자료를 보니 A급은 최적화 스킬 셋 중 둘을, B급은 셋 다 얻었다. 역시 전투 적성은 최적화 각성하기 비교적 쉽구나.
“보시다시피 미리 알려 주신 스킬도 여섯 개 중 다섯 개가 무사히 나왔습니다. 조언해 주신 대로 스킬명으로 능력을 예상해 그에 맞는 상황을 만들어 주었지요. 강동훈 헌터의 B급 스킬 하나는 아쉽긴 하지만 한유진 헌터의 비각성자 상태창 확인 스킬의 능력은 확실히 실감했습니다.”
“그럼 이제 확인 작업은 끝난 것이겠군요.”
“만약 한유진 헌터가 특수 스킬 각성까지 무사히 해낸다면 우리로선 협조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지 않겠나.”
이번에는 협회장이 말했다. 뭐야, 실감했다면서. 그런데 왜 특수 스킬 각성까지 하라는 식으로 지껄이는 거냐.
“아니, 아예 각성센터 자체를 한유진 헌터와 협력하여 운영하는 것은 어떻겠나. 굳이 따로 만들 것 없이, 비각성자 적성확인 또한 각성센터에서 함께 맡는 거지. 한유진 헌터로부터 상태창 검증을 받은 후에 각성 시설을 이용하도록 체계를 잡아서 말이야.”
“…그건 좀 과하다고 생각합니다만.”
날 갈아 넣을 셈이냐. 게다가 저번과는 말이 다르잖아. 난 각성센터에서 일할 생각 없다고.
“우선 제 능력상 많은 숫자를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스킬 등급은 높지만 스탯 등급은 낮으니까요. 그런 상황에서 제게 먼저 확인을 받아야만 한다고 제한을 걸어 놓으면 제가 제일 욕먹… 설마 그게 목적인 건 아니겠지요.”
“허허허, 그럴 리가.”
협회장이 손사래를 쳤지만 영 믿음이 가질 않았다. 어디까지나 선택지가 있고 사설이어야 하루 일이백 명만 받아도 욕을 덜 먹지.
“성급하게 잘못 각성해 버릴 사람들이 아까워서 그런 거라네.”
“어디까지나 스스로의 선택이니 어쩔 수 없죠. 모든 사람을 일일이 챙겨 줄 수는 없습니다.”
이 정도면 할 만큼 했다.
“무엇보다 저는 헌터 협회에 들어갈 생각이 없습니다.”
단호한 내 말에 협회장이 미간을 살짝 좁혔다.
“젊은 사람이 보다 큰 공공의 이익을─”
“협회장님의 이득이겠죠.”
“너무 무례한 것 아닙니까!”
협회의 헌터가 버럭 소리쳤다. 그러자 유현이와 문현아가 동시에 그를 쳐다보았다. A급쯤 되어 보이는 헌터가 움찔 뒷걸음질 친다.
문현아가 긴 다리를 꼬며 손가락 끝으로 테이블을 톡, 두드렸다. 가볍게 건드렸을 뿐인데도 동그란 자국이 움푹 생겨났다.
“과식하면 체합니다. 나이도 있으시니 더더욱 위험하죠. 목에 탁 걸려서 그대로 넘어가실지도 몰라.”
“아니, 브레이커 길드장!”
“혹은 한국에서 자연발화 현상 같은 게 일어날지도 모르고. 도련님, 조만간 같이 술 한잔할까? 형님도 끼워서 말이야. 다른 길드장들이랑은 마신 적 없는 걸로 아는데, 내가 최초 한번 해보자.”
“처음 맞습니다. 그러죠.”
유현이가 짧게 고개를 끄덕이며 협회장을 바라보았다.
“가급적이면 늦은 시간이 좋겠습니다.”
“물론 술은 밤에 마셔야지. 취하지도 않으니 정신 멀쩡하게 도련님과 형님은 새벽까지 나와 함께 있었다~ 말해 줄 수 있겠어.”
농담처럼 말하고 있었지만 유현이도 문현아도 눈빛은 서늘했다. 협회장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테이블 위의 주름진 손이 무의식중에 꽉 맞잡히며 덜덜 떨렸다.
여기서 S급들이 기세까지 감추지 않으면 기절하실 듯. 자기를 태워 죽이고 알리바이를 만들겠다, 라는 소리 들으며 저만큼 버티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 해줘야겠지만.
“물론 강요하는 것은 아닙니다. 한유진 헌터가 거절한다면, 당연히 없었던 이야기로 하겠습니다.”
부협회장이 얼른 말했다. 이쪽이 좀 더 말이 잘 통하네.
결국 예전 협의안 그대로 나는 나대로 알아서 일하며 자료만 협회로 보내 주기로 했다. 현아 씨 협박 잘하시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내 말에 문현아가 눈을 찡긋했다.
“뭘, 별것도 아닌데. 내 애 키워 주실 분에게 이 정도도 못 해주겠냐.”
아니, 그 말만큼은 제발 좀……. 문현아는 조만간 마수마종 고기를 보내 주겠다며 먼저 자리를 떴다.
볼일을 마치고 간 방탈출 카페에서는 부수지 말란 소리만 백 번쯤 한 것 같았다. 예림이와 블루가 겹쳐 보이는 것은 눈의 착각일까. 그래도 예림이는 말을 알아듣기는 하지.
“아저씨, 다음에 또 같이 와요! 둘이서!”
웃기지 마라.
해연으로 돌아와 기숙사 층으로 올라가기 전에 단련실의 유니콘들에게 갔다. 예림이도 구경하겠다고 쫄래쫄래 따라왔다.
“하양아, 까망아, 안녕~ 어느 쪽이 여자애예요?”
“까만 쪽.”
“얘구나, 예쁘다. 이리 온.”
예림이가 까망이, 아니 블랙인데. 아무튼 까만 새끼 유니콘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유니콘이 귀를 번쩍 세우더니 내민 손을 콱 깨문다.
“아하하. 간지러워, 까망아~”
“물지 말라고 해야지. 그러다 버릇 된다. 너한텐 간지러워도 비각성자는 손가락 잘려 나가.”
“아차. 안 돼! 까망아!”
– 푸흥!
예림이의 가벼운 꿀밤에 까망이가 화들짝 놀라 물러났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내 뒤로 쪼르르 와 숨는다. 하얀 녀석도 따라왔다.
“얘들아! 어딜 숨는 거야. 그 아저씨 내 새끼손가락보다 약해!”
새끼손가락은 너무하잖아. 그 정도로 약하긴 하겠지만.
유니콘들 밥 챙겨 준 뒤 블루도 챙겼다. 녀석을 맡아 준 헌터가 동정 어린 눈빛으로 고생이 많으시네요, 하고 말했다. 그나마 돈 걱정은 없어서 다행이지 가난한 살림이었으면 눈물이 다 났을지도.
“피스야, 삐약아. 잘 있었니.”
– 끼앙!
– 삐약!
피스가 근엄한 자세로 컁 하고 짖자 블루가 파드득 내 품에서 빠져나갔다. 우리 블루, 학습 효과가 아주 없지는 않구나.
예림이가 부탁한 반찬을 가져다주고 애들 챙기고 저녁 먹을 때까지도 웬일인지 명우가 나타나지 않았다. 블루와 삐약이가 잠들고 피스가 꾸벅꾸벅 졸기 시작할 즈음에도 여전히 소식이 없었다.
‘연락할 수도 없고.’
황금대장간은 아공간이라서인지 던전에 들어간 것처럼 휴대폰도 안 터진다. 명우가 먼저 나오지 않는 이상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대장간에 있는 거 맞긴 맞겠지? 가끔 밤샘할 때도 있었지만 밥 때는 꼬박꼬박 나와서 챙겨 먹었는데. 힘쓰는 일 하려면 제대로 먹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왜 안 나오냐.
걱정에 잠을 설치다가 아침이 되었다. 수탉처럼 때맞추어 울어대는 블루를 꺼내 주고 아공간에 연락할 방법을 찾아봐야 하나 고민하는 그때, 드디어 명우가 나타났다.
“야! 넌 이렇게 오래 대장간에 있을 거면 말이라도 한마디 해야지! 안에서 무슨 일 났을까 봐 걱정했잖아!”
“미안.”
입은 미안하다고 했지만 명우의 얼굴은 활짝 피어 있었다. 밤을 새운 탓인지 눈 밑이 어둡긴 했지만 표정만은 밝았다. 무슨 좋은 일 있구나, 바로 알 수 있을 만큼.
“도중에 손을 뗄 수가 없었어.”
그렇게 말하며 명우가 인벤토리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길이가 2미터쯤 되어 보이는 장창이었다. 날부터 창대까지 푸르스름한 한기가 감도는 것이, 보통 물건은 아니었다.
“그거 혹시.”
“자.”
명우가 내민 창을 받아들자 간단한 아이템 설명창이 떴다.
[파르미니의 얼음나무 창 – S급솜씨 좋은 장인이 오래된 얼음나무 가지로 만들어 낸 창. 강력한 한기를 품고 있다.]
S급. 그것도 S급 무기였다.
스탯 옵션은 비율 증가라 내 스탯은 얼마 오르지 않았지만 대신 새로운 스킬은 생겼다.
[빙 속성 강화(S)]빙 속성 강화. 그것도 S급이었다. 예림이에게 내새끼 스킬 집중으로 썼을 때 뜬 게 A급 빙 속성 강화였는데. S급 속성 강화라니.
…우리 예림이 저축 많이 해놓았을까.
“드디어 S급 무기까지 만들어 냈구나!”
힘껏 감탄 어린 눈빛을 보내 주자 명우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다행히 첫 시도에 성공했지. 밤새 개고생 했지만. 두 번째부터는 좀 더 쉬워질 거야.”
“이렇게 빨리 성장할 줄은 몰랐는데. 이러다 SS급 무기도 금방 만들어 내는 거 아니냐.”
“그건 좀 힘들걸. 이스무아르가 보조해 줄 수 있는 건 S급 무기까지라더라고. 그래도 준비하고 있는 게 하나 있긴 하지.”
역시 SS급 장비는 힘들구나. 그래도 이게 어디냐. 진짜 대단했다. S급 방어구나 액세서리도 아닌 무기라니.
“이제 더 미룰 거 없겠다. 너도 이름 알려야지.”
원래는 A급 무기 만들었을 때 대장장이 헌터로 데뷔하자고 했지만 명우가 거절했었다. S급까지 만든 후에 나서겠노라고.
“그래. 이젠 당당하게 나설 수 있으니까.”
명우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마주 미소 짓다가, 미뤄 뒀던 일을 떠올렸다.
너무 늦어지기 전에 자진납세 해야지.
“명우야, 내가 말 안 한 게 하나 있는데.”
“뭔데?”
“사실은 우리가, 원래 알던 사이가 아니야. 내가 착각한 거 같더라.”
변명을 덧붙이며 털어놓았다. 가슴이 살짝 뛰었다. 명우가 뭐라고 할까.
“그래?”
명우가 대꾸했다. 그리고 그걸로 끝이었다. 잠시 기다려 보았지만 이어지는 말은 없었다. 아니, 잠깐만. 반응이 왜 이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