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717
716화 어린 미래 (1)
급히 소리가 들린 곳을 바라보았다. 설이 역시 당황하며 자신의 위쪽을 바라보았다. 곧장 덤벼들려던 독뱀도 새로운 상대의 등장에 잠시 주춤거린다.
– 삐약!
조그만 털짐승의 귀를 붙잡은 더 조그만 아기 새의 모습이 보였다. 삐약이였다. 삐약이 혼자 힘으로는 들고 날 수 없는 별이 등을 결이가 붙잡고 열심히 날개를 파닥거리고 있었다.
– 아, 아빠! 말리려고 했는데!
“삐약아! 당장 돌아가! 아니, 일단 이쪽으로-!”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걱정과 불안으로 머릿속이 새하얘진다. 설이의 등비늘이 바싹 세워졌다. 별이를 지키려는 듯 날개를 넓게 펼친다.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는 듯 흑룡의 네 다리에 힘이 바싹 들어갔다.
“삐약아! 제발!”
시스템 창과 삐약이를, 아이들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어쩌지, 어떻게 해야!
– 크르르!
흑룡이 사납게 송곳니를 드러내며 뱀에게 먼저 덤벼들었다. 힘으로 이길 수 없는 상대임에도 별이로부터 관심을 떼어 놓기 위해서였다.
콰앙!
온몸으로 돌진하는 설이를 뱀이 비늘을 곧추세우며 맞받아쳤다. 스르륵, 기다란 뱀의 몸뚱이가 흑룡을 휘감아 조인다. 뱀의 목을 단단히 문 설이가 옥죄이는 힘에 못 이겨 낮은 신음성을 흘렸다.
– 삣, 뀩!
그것을 본 별이의 털이 빳빳해졌다. 꼬리 또한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른다. 당장이라도 뱀에게 덤벼들 기세에 더욱 초조해졌다.
“별아! 거기 있으면 안 돼, 아빠한테 와!”
– 그래, 별아. 아빠한테 가자!
결이가 별이를 끌어당기며 한껏 날갯짓을 했다. 하지만 별이는 가지 않겠다고 발버둥을 쳤다. 그 서슬에 혹여 떨어뜨리기라도 할세라 요정용의 날개가 허둥거리며 다시 제자리에 정지비행을 한다.
– 큭!
그사이 설이가 한껏 몸을 뒤틀어 힘겹게 뱀을 떼어 냈다. 젠장, 지금 나까지 다가가면 더 방해가 될 텐데! 머리를 굴려 봤지만 윤윤이라도 불러오지 않고서야 애들을 안전하게 데려 올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 별아! 피해야 해!
결이가 별이를 다시금 끌어당긴다. 쿠웅, 뱀의 꼬리에 밀려 흑룡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별이가 또 삐익 소리를 높였다. 그리고, 펄럭.
금빛 작은 날개가 펼쳐졌다. 반달처럼 동그란, 노아의 것과 비슷한 깃털날개였다. 놀랄 틈도 없이 삐약이도 하얀 날개를 활짝 펼쳤다.
– 삐야!
– 뀨이!
삑 뀩 소리가 서로 손을 맞잡듯 어우러진다. 이어 결이의 모습이.
– 어? 어!
변하기 시작했다! 아니, 성장이었다.
“결아!”
요정용의 조그맣던 몸집이 순식간에 자라난다. 산에 비견되는 거대한 드래곤은 아니었다. 성인보다 약간 큰 정도로, 여전히 아담한 편이었다. 귀엽게 짧던 목이 우아하게 늘어나고 꼬리 또한 길게 물결쳤다. 매끄러이 날카로워진 뿔의 사이에 은빛 베일 같은 갈기털이 부드럽게 나부낀다.
동글동글한 몸에 어울리게 깜찍하던 날개 역시 한껏 커졌다. 반투명한 얇은 날개가 빛을 받아 오색찬란하게 반짝거린다. 천천히 하느작거리는 두 쌍의 날개는 난다기보다는 마치 바람 속을 헤엄치는 듯 유려한 움직임이었다.
– 이게…….
결이가 당황해하며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머리부터 갈기를 따라 날개와 꼬리의 끝까지 은은한 빛이 흐른다. 환상종, 그 말 그대로 환상적인 광경이었다. 설이를 공격하던 뱀조차 넋을 잃고 지극히 아름다운 용을 바라보았다.
드래곤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활짝 핀 은색 꽃 같기도 하고 길게 드리워진 분홍 무지개 같기도 하고 빛을 머금은 오색구름 같기도 하였다. 한 가지 형태로 묘사하기엔 부족함이 느껴졌다. 가장 아름다운 꿈을 모아 형상화시킨다면 저런 생명이 탄생할까.
– 아!
스스로도 놀람을 감추지 못하던 결이가 퍼뜩 머리를 저었다. 그리곤 황금색 눈을 크게 뜨며 뱀을 노려보았다. 설마 결이도 싸우려고? 하지만 요정용은-.
– 난 직접 싸우진 못해.
결이의 시선이 설이를 향했다.
– 그러니까 이름을 말해 줘!
– 한설.
– 한설. 네가 겪고 느껴온 모든 힘을 현실로.
결이의 능력, 환상의 현실화. 요정용이 온화한 빛을 전신에서 흘려낸다.
– 어린 나는 등급에 제한이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야!
퍼져 나가는 강렬한 기세에 뱀이 움찔 뒤로 물러난다. 흑룡이 몸을 일으켰다. 어긋났던 다리가 굳건하게 바닥을 딛고 서며 붉디붉은 화기가 안개처럼 어린다. 설이가 입을 열었다. 오래된 찬양이, 공포어린 수식언이 흘러나온다.
– 산맥을 녹이는 재앙.
목소리를 따라 옛 힘이 끌어내지며 현실화한다. 칠흑색 비늘이 더욱더 짙은 어둠을 머금는다. 치켜 들린 머리가 까마득한 산봉우리처럼 높아진다.
– 대륙의 끝에 선 절망.
피부가 따끔거릴 정도로 농도 깊은 마력이 퍼져 나갔다. 성현제의 공간이 부서지는 게 아닌가 걱정이 되었지만 오히려 부서진 벽이 수복되었다. 천장이 끝없이 올라가고 그 아래로 비현실적인 크기의 용이 하늘을 뒤덮는 피막의 날개를 너르게 펼쳤다. 온 사방에 재앙의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 오직 홀로 불타올라, 세계를 침식하는 칠흑의 군림자.
오랜 옛날, 근원이 보낸 몬스터들조차 모조리 삼키고 그 세계의 멸망을 대신하였던 불길. 전설의 현신 앞에 뱀이 몸을 웅크렸다. 당황하며 독기를 한껏 내뿜지만 제아무리 짙은 독기도 화기 앞에선 눈 녹듯이 사라진다.
흑룡이 뱀을 향해 머리를 숙인다. 누가 보아도 사자와 여우처럼 확연한 차이가 났다. L급인 뱀이건만 설이 앞에 두자 마치 하급 몬스터처럼 연약해 보였다.
‘…어르신, 설이 L급보다 더 강했었나 봐요.’
그대로 좀 더 시간이 주어졌다면 초월자의 자리에 오르지 않았을까. 검은 비늘 아래 새하얀 송곳니가 드러난다. 기세 좋게 설이를 몰아붙였던 뱀이 완전히 얼어붙었다.
– 너는 내 마지막 먹잇감이다.
그것을 영광스럽게 알라는 듯 붉은 눈동자가 푸른 뱀을 내려다보았다. 최후의 발악이라도 해보려는 듯 뱀이 독니를 앞세우며 용을 향해 몸을 날렸다. 하나 그보다 먼저 새빨간 숨결이 토해졌다.
화르륵-
드래곤 브레스. 불의 폭풍우가 휘몰아친다. 고온의 열기가 뱀을 순식간에 뒤덮으며 비명소리조차 모조리 삼켜 버렸다. 공기를 데우다 못해 끓여 버릴 어마어마한 불길임에도 펼쳐진 검은 날개 너머로는 그 뜨거움이 조금도 전해지지 않았다. 은은한 온기만이 흐를 뿐이었다.
이윽고 불이 잦아들었을 때, 그곳에 뱀의 흔적은 없었다. 마석조차 겉은 다 녹여 삼켜지고 엄지손톱만 한 핵만이 덩그러니 떨어져 있었다.
– 삐약!
마석을 본 삐약이가 순간이동 해 날름 물고 삼켜 버렸다. 동시에 별이의 날개가 사라지고 결이의 몸이 다시 작게 원래대로 줄어들었다. 결이가 떨어지는 별이를 얼른 붙잡고 힘겹게 내 쪽으로 날아온다. 설이 또한 처음 크기로 돌아갔다.
– 아빠!
커다란 금색 눈이 거의 울먹이며 나를 향했다. 우리 결이, 그 짧은 사이에 마음고생 많았겠지. 어린 동생 잘 돌보겠다고 했는데 갑자기 위험한 곳으로 뛰어들어 버렸으니까. 내가 가까워지자 별이가 결이 손에서 떨어져 나와 통, 높이 뛰었다. 긴 꼬리가 제법 신나게 흔들리며 폴짝폴짝 내게 달려오는 별이를,
“한별!”
인간으로 돌아온 설이가 확 낚아챘다. 동그란 털 공 같은 새끼 마수를 양손으로 눈높이까지 들어 올리곤 엄하게 바라본다.
“위험하잖아!”
– 뀨잇.
“형이 집에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으라고 했지!”
새파란 눈이 동그래지면서 깜박거렸다. 불만스럽게 꼬리를 탁탁 흔들던 별이가 인간 모습으로 변했다. 그대로 빠져나가려는 별이 팔을 설이가 다시 붙잡았다. 별이가 볼을 부풀리며 빼액 마주 소리쳤다.
“형이 다쳤어!”
“그래도 안 돼!”
“그럼 형도 나 다쳐도 안 와?”
“형은 강하니까-.”
“아니야!”
별이가 설이의 팔을 왕 깨물었다. 당황한 설이가 손을 놓자 내게 달려와 매달린다.
“잘못 안 했어.”
“별아.”
형이 왜 화내는 건지 이해하지 못한 별이의 등을 토닥거려 주었다.
“별이는 형을 많이 좋아하니까 도와주려고 한 거야, 그렇지?”
“응.”
“그건 잘했어, 별아. 하지만 별이는 아직 어려. 어린아이는 보호받아 마땅하고, 그러니까 별이가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어른들에게 먼저 말해야 해. 그럼 좋은 건 별이 손에 쥐어 주고 나쁜 건 다치지 않게 멀리 치워 줄 거야. 별이가 많이 배우고 자라나서 스스로 가고 싶은 길을 걸어갈 수 있을 때까지. 그리고 언젠가는 어른이 된 별이가 돌봐주고 싶은 아이들이 생기게 되겠지.”
“아이스크림은 좋은 건데 자꾸 뺏아.”
“많이 먹으면 아야하거든. 그래도 소영이 이모가 좋은 거 많이 주지?”
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새끼를 돌보지 않는 종의 기억 때문일까 보호받아야 한다는 말이 여전히 잘 이해가 가진 않는 모양이었다. 앞으로는 꼭 말하고 집밖에 나가자, 하고 타일렀다. 유현이는 워낙 얌전해서 이런 걱정은 없었는데 원래 애들은 잠깐만 한눈팔아도 금방 사라져 버리지.
“형이랑 화해하자. 응? 별이가 형을 걱정하듯이 형도 별이를 걱정해서 그런 거야.”
“응. 형. 앞으론 형한테 말하고 오면 돼?”
“…그래. 이제 형도 떨어져 있지 않을 거야.”
설이가 별이를 꼭 끌어안았다. 별이도 마주 팔을 뻗는다.
“그런데 어떻게 온 거야? 삐약이인 거 같지만.”
– 별이가 갑자기 놀라서 삐약이를 잡고 뀩뀩거리더니 이동했어.
내 어깨에 올라앉은 결이가 말했다. 그리곤 정말 많이 놀랐다며 목덜미에 머리를 대어왔다. 오빠가 고생이 많구나. 잘했다며 결이를 다독여 주었다. 이어 별이도 대답했다.
“삐약이한테 형한테 가자고 말했어.”
– 삐야!
어느새 별이 품에 안긴 삐약이가 한쪽 날개를 들어 올렸다. 그러니까…….
“…별아, 삐약이와 대화가 되니?”
“응.”
– 삐약삐약!
“어, 방금 뭐라고 한 건데?”
“아이스크림 먹고 싶대. 초콜릿이랑 쿠키 앤 크림이랑 더블 초코칩 마시멜로우.”
그렇구나. 그냥 서로 딴말하고 있지만 잘 맞는 그런 관계인 것 같았다. 결이를 성장시킨 건 삐약이의 힘일까. 하얀새와 관련이 있다면 미래예지종, 시간 계열 능력을 지녔을지도 모르니. 하지만 별이가 내가 확인하지 못한 힘을 가졌을 가능성도 있긴 있었다. 그래도 지금 당장은.
“위험하니까 얼른 집에 가자. 설이 너도. 삐약아, 애들 데리고 갈 수 있지?”
– 삐야악!
대답은 잘해요. 뱀의 마석을 먹었으니 마나는 넉넉하겠지. 결이가 바닥으로 내려서며 소년의 모습으로 변했다. 그런 결이를 설이가 바라보았다.
“도움이 되었어.”
“천만에. 형제니까.”
아직 둘이 거리감이 좀 있긴 해도 앞으로 얼마든지 잘 지낼 수 있지 않을까. 의외로 잘 맞을지도 모른다. 별이가 아빠도 같이 가는 거야? 하고 묻는 말에 아직은 아니지만 금방 갈 거라고 대답해 주었다. 셋이 나란히 선 모습을 보자 절로 가슴이 흐뭇해졌다.
“저 분홍머리 아이가 내-.”
“많이 피곤하신 모양이네, 헛소리를 다 하시고.”
뒤로 홱 고개를 돌렸다.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성현제가 보였다. 진짜 지쳐 보여서 좀 미안해졌지만 그래도 애들 앞에서 말은 바로 해야지.
“그쪽과는 아무 관계 없습니다.”
사실 따지자면 결이는 회귀 전 성현제의 조각이니까 현재의 성현제보다는 눈앞의 저 인간과 더 관계가 깊달 수 있지만. 뭐 그래도 결이는 결이일 뿐 아무 상관없는 사이다. 성현제가 우리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행복해 보이는군.”
“애들이 다 착해서요.”
그렇잖아. 멋대로 집 나와서 여기까지 날아 온 직후긴 하지만 그래도 착한 애들이다. 결이가 성현제를 빤히 쳐다보다가 고개를 홱 돌렸다.
“군림자의 검을 꺼내.”
별이 옆에 붙어 한숨을 포옥 포옥 내쉬던 설이가 말했다.
“이제 나는 한설이니까. 남은 힘은 검에 넣어 줄게.”
“그래도 괜찮겠어?”
“어차피 조금 전에 거의 다 쓰고 얼마 남지 않았어. 이대로라면 유지하지 못하고 흩어지게 될 거야. 양이 적을수록 응집력이 약하니까 새로운 몸으로는 더더욱 가지고 있기 힘들어.”
고개를 끄덕이곤 군림자의 검을 꺼내어 설이에게 건네었다. 설이의 손에서 흘러나온 화기가 검에 스며들었다.
[침식하는 군림자의 검 – SSS급]SS급이던 검의 등급이 한 단계 올라갔다. 얼마 안 남은 힘이 이 정도라니, 역시 대단하구나.
“살아서 돌아와.”
“당연히 그래야지.”
설이가 작은 검은 용으로 변했다. 별이와 결이 역시 마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요정용이 포르르 내 어깨 위로 날아왔다.
– 아빠, 있잖아.
성현제를 흘끔거리며 결이가 내게 작게 속삭였다.
– 집에 무사히 돌아와야 해, 아빠.
“응, 결아.”
– 아빠! 집에 올 땐 맛있는 거 사오는 거랬어!
별이가 해맑게 앞발을 흔들었다. 웃으며 말 잘 듣고 얌전히 있으면 잔뜩 사주겠다고 말했다. 삐약이를 가운데 두고 세 아이들이 사라졌다. 순식간에 사방이 고요해졌다. 밀려드는 허전함 속에서 뱀이 죽은 자리를 바라보았다.
“슬슬 납시실 겁니다.”
종속이 죽었다. 그것도 L급의 강력한 뱀의 일족이었다. 다시 말해 뱀의 주인, 포식의 왕이 직접 나타날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진 것이다. 성현제가 몸을 일으켰다. 그에게 스태미너 포션을 던져 주었다.
“아이들한테 거짓말을 해선 안 되지.”
“돌아갈 겁니다만. 이번에는 애들 대학 졸업할 때까지 열심히 키울 겁니다.”
행복한 시간들을 잔뜩 만들어 줄 거다. 구르릉- 공간의 마나가 흔들린다. 두려움을 느끼기라도 하는지 거세게 떨린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옆을 돌아보았다. 업적 보상 상자가 있던 그곳에.
[보상 지급 완료]새하얀 창 한 자루가 꽂혀 있었다. 판을 엎을 시간이다.